지금 대부분 언론은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당연한 듯이 보도하고 있다. 굳이 한다는 게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던 사람들의 개인적 선택을 문제 삼을 뿐이다. 반면 왜 이처럼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해졌는지, 하우스푸어를 양산해낸 구조적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대신 집값이 더 떨어지면 하우스푸어가 더 늘어나게 된다며 건설업계 등을 위한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는 핑계로 사용하고 있다.
하우스푸어 구제책을 말하기보다 누가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하우스푸어를 양산한 주체들은 엉터리 정책들을 반복해온 정부정치권과 부동산 투기심리를 부추기며 고분양가 폭리를 취한 건설업계, 부동산시장에 펌프질하며 빚을 권해온 금융권, 그리고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매 부동산 투기 심리를 조장했던 다수의 언론들, 그리고 이들 언론을 통해 건설업계 또는 부동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해온 건설산업연구원이나 주택산업연구원, 그리고 부동산업계 종사자 등 객관적인 ‘부동산 전문가’인 양 행세해온 이해관계자들이다.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에 이르고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된 것은 바로 이처럼 강고한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설족에 휘둘린 노무현정부, 건설족을 위한 이명박정부
정부 책임을 생각해 보자. 노무현정부는 정권 초기 10.29대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억제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 2003년 하반기~2004년까지 부동산시장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2004년 하반기부터 이헌재 재경부 장관-강동석 건교부 장관을 ‘투톱’으로 하는 건설부양책을 쏟아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서는 ‘한국판 뉴딜’이라며 토건 부양책을 밀어붙였다. 이것이 ‘판교 로또’와 맞물리면서 2005~2006년 수도권 2차 폭등의 도화선이 됐다. 또한 기업도시, 혁신도시, 경제자유개발구역 등을 잇따라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인천 송도신도시 등의 사례에서 보듯 부동산 개발만 부추기고 심각한 재정 부담만 남기고 말았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동시다발적인 뉴타운 재개발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에 불을 질렀다. 이 같은 뉴타운 정책이 먹히는 것 같자 당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열린우리당까지 합세해 초당적으로 뉴타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노무현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서민 중심의 주거정책을 추진할 의지라도 있었다. 하지만이명박정부는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사실상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강부자정권이었다. 2008년 뉴타운돌이들의 사기성 헛공약으로 뉴타운 재개발 집값은 더욱 부풀어올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열풍에 가세했다. 2008년 말 경제위기 이후 나온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대책도 부양책 일변도였다. 그러면서 집값이 떨어질 때마다 DTI규제 해제나 완화 등 단기 미봉책을 내놓아 가계 부채 증가를 조장했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 5년 동안 부동산 활황기에도 202조원 가량 늘어난 가계부채가 이명박정부 4년 1분기 동안에만 240조원 가량 증가했다.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는 증가일로를 걸었고 멀쩡하던 가계들이 하우스푸어로 대거 전락했음은 물론이다.
정부가 대책 내놓을 때마다 금융위나 국토해양부는 늘 금융업계나 건설협회 관계자들만 만나왔다. 무주택서민들이나 많은 빚을 진 가계 또는 이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나 금융소비자단체들을 만난 적은 거의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늘 나온 대책은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의 민원성 대책들이었다 (미분양 매입, 양도세-취득세 완화, DTI완화.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양성화하는 제도, 각종 재건축 규제 완화, 후분양제 폐지 등). 늘 서민을 팔지만 늘 대책의 수혜자는 건설업계, 금융업계, 부동산 부자들이었다.
저축은행 사태 때도 ‘더 이상 영업정지 없다’는 식의 시그널 보내 저축은행이 부실해지는 등 믿고 돈을 맡긴 가계들이 피해보게 하는 식이었다. 집값이 조금 떨어질만하면 집값 떠받치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으며 이를 ‘부동산 시장 정상화 대책’이라고 표현하는 정부 정책도 누구의 시선에서 시장상황 보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DTI와 LTV 규제에 대한 정부 태도의 차이만 봐도 마찬가지다. 금융권 보호막인 LTV규제는 상대적으로 일찍 도입했고 큰 틀에서 한 번도 완화한 적이 없으나 대출자인 가계를 ‘약탈적 대출’로부터 보호하는 DTI규제는 수시로 풀어가며 부동산 부양책을 위한 제물로 삼았다. 실제로 그 결과 DTI규제를 풀 때마다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증가했고, 하우스푸어는 양산돼 왔다.
건설업계/금융권: 고분양가 거품과 부채 펌프질에 피박 쓴 하우스푸어들
건설업계는 어땠나. 건설업계는 부동산 호황기 때 선분양제와 분양가 자율화 등 공급자인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들을 이용해 고분양가로 막대한 폭리를 취해왔다. 떳다방과 임직원들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투기를 조장했다. 2008년 이후 부동산 침체기에 들어서는 자신들이 망하면 한국경제가 망한다며 협박(?)하며 자신들의 무리한 탐욕에 따른 경영 부실 책임을 사회로 전가했다, 그리하여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건 재정부양책과 미분양 물량 매입 등을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음은 물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미분양 물량을 속이고 ‘회사보유분 특별분양’이라는 식의 속임수 분양으로 가계를 하우스푸어 행렬로 들어서도록 유혹했다.
금융권은 또 어땠나. 외환위기 이후 ‘메가뱅크론’ 등을 내세우며 매출 및 외형 확대 경쟁으로 신도시 등의 집단대출을 통해 가계들이 무리하게 빚을 떠안게 했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정부의 공적자금 등 온갖 특혜를 받고서도 CD금리 담합으로 주택대출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한편 연체자에게는 가혹한 채권 추심과 재빠른 경매처분을 통해 채권을 회수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당국의 압박 아래 주택대출 거치기간을 계속 연장하며 폭탄 돌리기를 지속했다. 당장 급한 불은 막았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하우스푸어들의 부실 위험성은 더욱 키운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건설업체들의 선분양제와 국내 금융회사들의 3~5년 거치식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결합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대표적 제도들이다. 분양후 입주까지 3년 정도 걸리는 선분양제와 거치식 주택대출은 호황기 때 일반가계의 지나친 투기 심리를 부추겨 수분양자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 계약하게 한다. 반면 주택시장 침체가 오면 수분양자들이 고스란히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분양하고 난 건설업체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이들을 외면하고, 금융회사들은 빚 독촉하기 바쁘다. 최근 잇따른 주택집단대출과 관련한 수분양자와 건설사-금융회사의 집단 소송이 이어지고 있지만 수분양자들은 백전백패다. 물론 이들 수분양자들의 과도한 욕심도 문제지만, 이들의 탐욕을 자극해 무리하게 빚을 지게 한 건설업체들과 금융회사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기득권 언론들, 그리고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의 나팔수들
정부정치권의 정책이나 건설업계-금융권의 펌프질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부동산광고에 목을 맨 조중동이나 대다수 경제지 등 기득권 언론들이다. 이들 언론들은 광고단가가 센 아파트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홍보성 일변도 기사를 쓰고 건설업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논리들을 전파해왔다. 상당 부분 가계부채를 동반한 투기적 요인 때문에 집값이 뛰었음에도 늘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뛴다’는 식으로 시장수급에 따른 상황인 것처럼 호도해왔다. 이들 언론에서는 건설업계 산하의 건설산업연구원이나 주택산업연구원을 별다른 설명 없이 객관적 전문 연구기관인 것처럼 포장했다. 또한 이들의 코멘트를 결론으로 인용해 이해관계자들을 객관적인 전문가인 양 둔갑시켰다. 또한 건설업계 등에서 각종 용역을 받거나 후원을 받는 도시공학 전공자나 부동산학과 교수들도 거의 대부분 마찬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집값이 오른다’고 선동해야 먹고 사는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내놓은 선동 레파토리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음은 쉽게 알 수 있다. 부동자금 800조원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외환위기 직후처럼 V자형으로 반등한다/ 실수요를 나타내는 전세가 상승이 지속되면 매매가가 오른다/주택 공급이 부족해 2-3년후 집값 폭등한다/시중에 풀린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 유발돼 집값 오른다/인구는 줄어도 가구수는 증가하기 때문에 오른다/ 토지보상급 수십 조원이 풀리면 집값이 오른다/지방선거, 총선 등에서 개발공약들 나오면 집값 오른다 등등의 주장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들이었는가. 이렇게 이미 거짓으로 드러난 주장들을 수도 없이 되풀이한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들은 반성해야 한다. 이들의 선동에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들은 정말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그 같은 반성은커녕 여전히 하우스푸어 핑계를 대며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를 부양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니 뻔뻔스럽기 그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했던 자들이 앞장서서 이제는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거론한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 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취약계층, 그리고 무주택서민들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선분양제나 거치식 주택담보대출 제도와 같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부터 고치는 것이 옳다.
이미 수많은 과오가 긴 세월에 걸쳐 누적돼 발생한 문제를 아무것도 없었던 양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많은 문제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하우스푸어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집값 부양 시그널을 주지 않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정부가 한 것처럼 틈만 나면 DTI규제를 푼다거나 완화한다면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것이며, 부동산 거품의 에너지를 더욱 키우는 것이다. 또한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주택정책 및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부동산 투기 사이클의 진폭을 키우고 하우스푸어를 대량으로 양산한 선분양제 같은 제도들 고치는 한편 공공임대/전세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 서민 주거난을 해소해가야 한다. 서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토록 무리한 주택 투기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하우스푸어로 전락했거나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일반 가계들에게. 그 동안 지나치게 과욕을 부렸다면 지금이라도 가계의 재무구조를 다시 점검하고 부채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부동산 기득권의 덫에 걸려 자신들을 덫에 걸려들게 한 기득권 세력들과 운명공동체로 생각하는 심리를 버리길 바란다. 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는 ‘스톡홀룸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부자 정권’을 비롯해 당신들을 구제해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은 여러분들의 편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착취자에 가깝다. ‘혹시나’ 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힘은 이제 그들에게도 없다. 부동산 버블의 시장 압력은 그만큼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부채 조정에 나서는 것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가계생활로 돌아가는 길이다. 언제까지 미련을 가지고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댈 것인가. 잔뜩 부풀어 올라 있는 부동산 거품을 자식세대들에게까지 떠넘기셔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부동산 거품은 결국 근본적 수술을 통해 떼내야 할 악성종양과 같은 것이다. 이제라도 부동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주거정책을 정부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경제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반석 위에 서는 길이며, 일반가계가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재테크 머니게임’에서 벗어나 결과적으로 모두가 잘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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