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2007년 여름까지 2년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늦깎이 유학’에 나섰으니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웠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갈지, 돌아가면 어떤 삶을 살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른바 ‘세속적 성공의 경로’에 마음의 곁눈질도 많이 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케네디스쿨에 공부하러 왔던 초심을 늘 생각했습니다. 어떤 식이든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버틴 2년이 훌쩍 지나가 어느덧 졸업식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라는 화두를 던진 바로 그 졸업식 축사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연설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하기까지 30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아빠, 내가 항상 말했죠. 꼭 돌아와서 (하버드대)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라는 농담으로 그는 축사를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그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큰 후회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하버드를 중퇴할 때 엄청난 세상의 불평등(inequity)에 대해 거의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건강과 부, 기회의 가공할만한 격차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게 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나라에서 소아마비, 말라리아, 홍역, 폐렴, 황열병과 같은 이미 치료제가 개발된 병으로 수백만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그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간 이유는 단지 그들의 엄마 아빠가 시장에서 아무런 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좀 더 창의적인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시장의 힘이 좀 더 잘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물었습니다. “하버드 가족 여러분, 여기 졸업식장에 있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지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런데...무엇 때문에 와 있습니까?” 그 순간 심장이 날카로운 뭔가에 찔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은 많은 기대도 받는다”며 “우리가 받은 재능과 특전, 기회를 생각할 때 세상이 우리에게 아무리 요구하더라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올라갔습니다. “활동가가 되십시오. 커다란 불평등과 맞서십시오. 그것은 여러분들 삶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축사를 끝맺었습니다. “나는 30년 후 당신이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장 깊은 불평등과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기를 바랍니다.”


빌 게이츠의 연설은 이후 제 마음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제가 힘들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 제가 인생의 먼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항상 이 연설문을 꺼내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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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2. 12. 7.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