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 핵심 국정목표로 내세운 ‘창조경제’를 두고 정치권과 관가가 연일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목표를 이해하는 관료와 정치인들이 없어서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사실 수십 년 동안 정반대 방향의 행정관행과 사고방식에 젖어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창조경제’를 하라니 이해될 리가 있나. 더구나 ‘창조경제’는 누가 시키고, 거기에 맞춰 따르는 식과는 정반대의 경제 개념이다. 정부가 4대강사업 하듯이 대규모 재정을 직접 투입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 자연스러운 문화 및 산업생태계가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역대 어떤 정부의 정치인과 관료들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내세운 창조경제와 무관하게 원래 의미의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워싱턴DC, 텍사스주 오스틴, 시애틀. 이 미국 도시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이들 지역은 예술가, 음악가, 동성애자들이 많이 산다. 또 이른바 첨단기술산업들이 발전해 있다. 이런 첨단기술산업들이 주는 고용과 고임금의 기회와 삶의 질을 누리려는 고학력층 인재들이 많이 산다.
이들 지역은 저명한 지리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대표적인 ‘창조 도시’로 꼽는 미국의 도시들이다. 창조도시는 지난 20~30년 전부터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해 선진산업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지속적 발전을 해나가는 도시를 말한다. 이런 창조부문의 일자리로 플로리다 교수는 과학과 엔지니어링, R&D, 기술 기반 산업, 미술 분야, 음악, 문화, 심지적인 일과 디자인 분야, 또는 보건 금융 법률 등 지식 기반 전문직 분야 등을 들고 있다. 이 창조 부문 일자리는 미국 내 일자리의 약 30%를 차지하며 이들 일자리에 돌아가는 임금은 전체의 47%에 이른다. 그만큼 고부가가치 일자리라는 사실이다.
플로리다 교수는 이런 창조 부문이 번창하는 창조도시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크게 3T를 들고 있다. 여기서 3T는 기술(Technology),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 관용도(Tolerance)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부가가치 창조경제 시대에 걸맞게 기술과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 수용되는데 관용도에 이르면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게 된다. 관용도는 여러 문화적, 예술적 개방성과 생각과 가치관, 성적 취향 등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춘 지역일수록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문턱 낮은 도시’가 되고 그들이 가진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을 꽃 피우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미국내 삼성반도체 공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텍사스 오스틴이 대표적 사례다. (‘도시와 창조계급’(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푸른길) 110~111쪽에서 발췌 요약했다.)
텍사스 주의 오스틴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하이테크 산업 발전 사례로 언급된다. 1984년 설립된 델컴퓨터 사의 성공에 힘입어, 오스틴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개발 거점이 되었다. 오늘날 이 도시는 1750개가 넘는 하이테크 기업들이 입지하고 있으며, 이 기업들에서 11만 명이 넘는 사람들(오스틴 전체 고용자 수의 20%)이 근무하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의 선도적 거점으로서, 오스틴은 지역에서 교육 받은 지식 노동자 풀과 광범위한 레크리에이션 기회 그리고 높은 삶의 질을 보유하고 있다. 이 도시 노동력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다.(중략) 오스틴은 환경과 레크리에이션 어메니티(Amenity)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만든 대표적 도시다. (중략) 사실 오스틴은 라이브 음악과 얼터너티브 영화에 있어서는 미국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며, 암벽 등반, 활 사냥, 산악 자전거타기와 같은 야외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야간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이 도시는 경제, 레크리에이션, 환경 부문 모두에서 미국 최고의 도시 반열에 올라 있다.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도시 1위, ‘포천’이 선정한 하이테크 산업도시 1위, ‘POV매건진’이 선정한 붐타운 2위, ‘워킹 매거진’이 선정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5위 그리고 ‘바이시클링 매거진’이 선정한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 6위 등이 그것이다. (중략) 오스틴은 또한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질 문제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 도시는 고급 인재를 유치하고 보유하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어메니티와 문화 어메니티 조성을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창조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첨단산업 기반과 살기 좋은 라이프스타일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PMG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첨단산업 노동자들은 급여 조건에 이어 해당지역의 삶의 질을 일자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가족 및 친구와의 근접성, 기업의 각종 부수적 혜택, 스톡옵션, 기업 안정성 등을 압도하는 조건이었다. (‘도시와 창조계급’ 113쪽에서 재인용) 창조도시는 한 마디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넘치며 총체적으로 매력 있는 생활환경이 갖춰질 때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추진하는 전략은 여전히 개발시대의 ‘한 방 신화’에 기대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각종 경제자유구역이니 혁신도시니 국제자유도시니 하는 이름들을 내걸었지만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표적 사례로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사업들을 살펴보자. 정부는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송도, 영종, 청라지구를 각각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송도는 지식정보산업, 바이오, 첨단산업클러스터 단지로, 영종은 운북복합레저단지, 용유무의관광단지, 영종물류복합단지, 메디시티로 개발하며 청라지구는 레저스포츠단지와 첨단산업단지, 로봇랜드 등을 조성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계획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인천은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끼고 있지만 서울의 위성도시에 가까운 지역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금융이나 첨단산업, 관광 기능을 제공할 수 없었다. 대중국 수출입 기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인천 자체도 서울과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창조도시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거의 텅 비어있던 송도와 청라, 영종도 등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며 각종 세제 및 개발상의 특혜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삶의 질 측면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찾아오고 싶은 어떤 매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당초부터 부동산 개발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한 때 아파트 투기가 극성을 부렸으나 그것이 신기루였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투기 거품도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 이들 도시들을 건설하기 위해 2조원을 넘게 들여 인천대교를 건설하는 등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고, 인천시는 막대한 부채를 쌓아 올렸다. 또한 이들 지역에 신도시들이 들어서면서 구도심의 주택가들이 텅 비고 상가가 죽으며 구도심과 신도시 지역이 함께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사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의 다수는 여전히 ‘한 방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부터가 그렇고, 전북 주민들의 새만금사업 유치 열기나 부산과 경남북 주민들의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이 모두 그런 환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은 세금으로 경기장 건설 등 막대한 건설사업을 벌이게 돼 오히려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보다는 재정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 그렇게 열을 올린 것도 바로 이런 환상 때문이다. 하지만 전남도와 전남 영암군이 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했다가 이미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신기루일 뿐이다. 그것은 그들 사업이나 행사 유치를 통해 이득을 보는 재벌건설업체와 지역토호세력,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노린 외지 부동산 투기세력에게는 좋을지 모르나 결코 시민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정말 아시안게임이나 F1 대회를 치르고 새만금이나 경인운하사업을 할 돈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복지시설을 짓고 다양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지역의 인재를 키웠더라면 한국경제는 중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아졌을 것이다.
경제 발전은 그렇게 한 방에 이뤄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조성된 양질의 생활환경 속에서 인적 자원과 자본, 기술, 문화환경 등이 결합할 때 생겨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창조경제의 성격상 탑다운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하는 ‘창조경제’가 뭔지 눈치 살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창조경제는 사실 그런 일방적 지시와 눈치 살피기의 정반대편에 있는 개념이다. 더구나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현오석, 서승환 등 주요 경제정책 라인은 창조경제와는 거리가 먼 개발경제론자들이다. 사실 한국의 관료들 대부분이 창조경제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업무 방식과 문화에 젖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창조경제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될 리가 없다. 문화정책이라고 하면 예술가들을 키우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창작스튜디오라는 건물 짓는 사람들, 홍대 앞을 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해 오히려 가난한 예술가들을 내쫓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창조경제는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감성과 감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그나마 추진할 때 가능한 일이다. 정말 창조경제를 하고 싶다면 민간의 창조적 감수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시켜야 한다. 그 포스트의 주요 인사들은 지금 국장급 관료들보다 평균 20년 가량은 젊은 세대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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