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갈 데까지 가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정부는 8월29일 이른바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ㆍ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제목부터가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미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지금도 주택 가격이 너무 높아 많은 서민 가계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가격을 떠받치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정부의 뻔뻔함과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정책으로는 무수한 반서민 정책을 쓰면서도 말로는 ‘친서민 정책’을 떠벌리고 투기적 가수요를 부추기면서도 ‘실수요자’ 운운하는 식으로 실제와 언어를 정반대로 짜맞추는 현 정부의 언어파괴 능력에 대해서는 실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번 대책의 핵심내용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시피 DTI규제 한시적 폐지(내년 3월까지, 강남3구 및 9억원 이상 주택 제외), 양도세 중과 면제 연장, 보금자리 사전예약 물량 축소 등이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을 수백 조원의 공공부채로 떠받치다가 이제 그마저도 약발이 다하고 여력이 없자, 가계부채 늘리기로 떠받쳐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양도세 중과 면제를 연장한다고 해봐야 이미 지난해 이후 시행해오던 것의 연장일 뿐이어서 이 때문에 거래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다만, 양도세가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택거래에 따른 자본차익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이를 부동산 부양책이라며 끼워 넣는 ‘강부자정권’의 파렴치함이 씁쓸할 따름이다.
보금자리 사전예약 물량 축소는 건설업계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것이 보금자리주택 때문이라는 건설업계 민원 때문인데, 이는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것은 이미 주택시장이 구조적 침체기에 들어갔는데도 고분양가 분양을 고집하는 건설업계가 자초한 것이다. 정말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주택시장 침체가 왔다면 보금자리주택 분양 경쟁률은 치열해야 하는데 강남지역 일부 보금자리 주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보금자리주택도 저조한 청약률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실질적인 입주물량을 조정하는 것도 아닌 사전예약 물량을 일부 조절하는 정도로 부동산시장 부양효과가 발생할 리 또한 만무하다.
따라서 이번 대책 가운데 DTI규제 해제 외 다른 조치들은 시장에 별 의미도, 효과도 없는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DTI규제 해제 문제에 집중하기로 하자.
우리 연구소는 그 동안 각종 보고서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이미 부동산 거품 빼기가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 그나마 부동산 거품 붕괴 충격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최근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라도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야 향후 1,2년 후에 몰리게 될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분산해 최악의 상황을 피해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현 정부는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필자의 예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말았다.
어차피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 기조를 바꿀 게 아니었다면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DTI규제를 찔끔찔끔 완화해서 사람들이 미련을 갖게 하기보다는 한꺼번에 DTI규제를 확 풀어서 가뜩이나 죽어가는 부동산시장을 하루빨리 ‘확인사살‘하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이 없다.
그러면 왜 이번에 DTI규제를 한시적이나마 해제하게 됐을지 배경부터 생각해보자. 이미 정부는 7월 22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부동산 부양책을 발표하려다 부처간 이견으로 발표를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는 DTI규제 완화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명한 반면, 건설업계 이해를 대변하는 국토해양부는 DTI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DTI규제 완화 발표가 연기됐던 데는 신문지상에 주로 소개되는 부동산업계-건설업계의 목소리와는 달리 ‘DTI규제 완화만큼은 안 된다’는 경제전문가와 경제학계 등의 컨센서스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달여 뒤 발표된 어제 부양책은 DTI 비율 10% 완화 조치 등을 뛰어넘은 것이다. 한 달 사이에 이처럼 다소 급격한 정책 전환이 일어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정부가 DTI 비율 10% 완화 정도로는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칠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그렇다면 아예 DTI 완화 조치는 아니 한 만 못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경우 정부는 DTI규제를 확 풀든가 아니면 아예 풀지 않든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주택시장 상황이 사실 매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된 듯 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생이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핵심기반으로 하는 현 정부가 지금의 주택시장 침체를 가만두고 볼 리 만무하다. DTI규제 완화를 두고 벌이는 부처간 신경전을 청와대가 나서서 직접 정리했을 공산도 크다. 물론 여당인 한나라당의 정치적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전혀 정책 마인드가 없어 정책위의장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아이러니인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지역구가 주택 가격 하락폭이 가장 큰 분당갑이다. 이들 지역구민들의 염원(?)을 고흥길 의장이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정부측에 상당히 강하게 압박한 탓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DTI규제 해제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DTI규제의 약발이 아무리 길어도 3개월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조치로 정부가 의도하는 주택거래가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강부자 정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DTI규제를 풀어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야 3개월이라는 뜻이다.
DTI규제는 마지막 규제 마지노선이자,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다. 이것을 해제해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면 무리하게 집 샀던 사람들의 ‘혹시나’ 하는 마지막 기대감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도표들을 참고로 설명하기로 하자.
먼저, 건설 및 부동산업계에서는 DTI 규제 때문에 주택시장이 가파르게 무너졌으니 DTI규제를 풀면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주택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주택가격이 너무 높은 가운데 이미 빚을 내서 집을 살 사람들이 거의 모두 사버려 구조적으로 수요가 고갈된 영향이 크다. 실제로 <도표1>을 보면 2000년대 초반과 2006년말 분기별 20만호를 넘던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이제는 8만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높은 집값을 받쳐줄 수요는 거의 바닥났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표1>
또한 지난해 DTI 규제 도입 이후 주택가격과 주택대출 증가액 추이를 비교해봐도 지금의 주택시장 침체가 DTI규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도표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올해 1분기에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DTI규제 도입 직후인 지난해 4분기와 올해 2분기에는 8조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 DTI규제 도입 이전인 지난해 평균치와 비슷한 수준의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이미 현재도 평균 DTI비율은 23%수준으로 투기지역 기준인 4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 거래량은 급감하고 주택가격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줄어들고 리스크는 매우 커진 상태에서 일반 가계가 얼마나 빚을 내 집 살지 의문이다.
<도표2>
오히려 이는 주택 가격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남은 잠재 수요자들의 소득 여력이 취약해 주택 거래가 일어나려면 상대적으로 가구당 부채를 더 많이 일으켜야 하는 상황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 <도표3>과 같다.
<도표3>
필자가 아파트 거래량과 가계 부채 증감액과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추정해본 결과 아파트 거래량이 거래 활성화 시기인 2000년대 초반이나 2006년 말 수준으로 늘어나려면 분기별로 32.4조원(도표에서 가상의 경우)이나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올해 3~5월 가계 부채 증가량은 2.5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금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얼마나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 이미 주택수요가 고갈된 시장을 떠받쳐 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즉, 이는 DTI 규제 완화 정도로 지금의 집값 거품을 떠받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미 금융기관 또한 얼마나 과감히(?) 빌려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부실 리스크가 훨씬 큰 기업대출보다는 그나마 주택담보를 잡을 수 있고, 아직까지 연체율이 크게 높지 않은 주택대출을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 부동산 활황기처럼 주택대출 실적을 올릴 수 없는 상태다. 얼마 전 만났던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DTI규제가 풀린다 해도 과거처럼 주택대출이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DTI규제를 풀었을 때 생각했던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려 버블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DTI규제 해제의 정책적 문제점을 살펴보자.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 140%를 상회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더 늘리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바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소수민족 그룹 위주의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모기지 대출을 해준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마당에도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근시안적 탐욕의 발로라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소득 대비 부채 규모를 제한하는 DTI규제는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 관행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한편 금융시스템 위기를 보호하는 긴요한 장치다.
일부에서는 DTI 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많지 않다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 금융권의 대출 실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진국 금융기관 대부분에서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credit rating)을 통한 대출이 정착돼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신용평가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의 후진적 대출관행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따라서 DTI규제는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신용평가를 통한 대출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미 느슨한 금융규제로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가들조차 금융 규제를 재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DTI규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당이다. 그리고 DTI 비율이 이미 40~60%로 정해져 있었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액의 40~60%에 이르는 것도 매우 과도한 빚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더 늘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DTI규제 해제는 ‘실수요자를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투기수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임이 너무나 명확하다. 구체적 근거로 정부 스스로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자영자들 가운데는 그 동안 소득증명 절차 때문에 집을 사지 못했다”며 “DTI규제 해제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구성해 자영자소득을 파악하겠다고 했던 정부가 아직 온갖 핑계를 대가며 자영자 소득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한 술 더 떠 이런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내고 탈세를 처벌할 생각은커녕 이들을 이용해 남은 투기가수요를 짜내려는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인가? 한마디로 제정신 아닌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투기적 가수요마저도 상당히 고갈된 상황이다. 이들 소득파악이 어려운 자영자들 가운데 부동산 작전 세력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이들도 과거처럼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의 단타매매 작전이 성공하려면 자신들을 추격매수해줄 세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이들이 작전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격매세수력이 없다면 오히려 그들이 덫에 물리게 될 공산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투기조장책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정부가 부동산 자산가치 대비 대출 비율을 규제하는 LTV규제는 그대로 두면서 DTI규제만 푼 것은 정말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도권 집값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기존 LTV 비율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을 위한 마지막 보호막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명무실한 구조조정으로 시장퇴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건설업체들과 저축은행 등 금융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DTI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로서 일반 가계는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에 노출돼 파산해도 괜찮다는 식의 정부 태도에 치가 떨린다. 미안하지만 국민경제의 근간인 가계가 무너지면 결국엔 그 경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부가 DTI규제를 해제한 것은 그 동안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던 정부의 공개 립서비스와는 달리 실제로는 정부가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을 매우 다급하게 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궁지에 몰린 나머지 내린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동산 광고에 목맨 상당수 신문들에서 ‘강남 급매물 회수‘ ‘일부 아파트 덜썩‘ ‘매도호가 상향 움직임‘ 등의 선동성 기사를 잇따라 내놓을 공산이 크다. 정부 투기 조장책과 언론의 선동보도 합작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한 제물을 찾게 될 텐데 선량한 일반 가계가 속지 마시길 당부한다.
요약하자면 이번 DTI규제 해제는 정부가 과거처럼 투기적 가수요를 불러일으켜 부동산시장을 살려보겠다, 일반가계를 제물로 삼아 건설업계와 금융기관을 떠받치겠다는 고육책일 뿐이다. 하지만 DTI규제 해제가 약발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면 거품 붕괴는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DTI규제 완화로 실제 부동산 투기로 인한 가계부채가 크게 급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설혹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는 기준금리 인상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현 정부와 부동산-건설업계가 원하지 않는 패착으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볼 때 정부가 노리는 마지막 부동산 폭탄 돌리기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다주택 투기자들의 환호는 다시 한탄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데는 3개월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연구소는 적어도 상책이나 중책을 쓸 수 있는 단계부터 이들 예고된 위기들에 대해 숱하게 경보음을 울려왔다. 그러나 거듭된 정부정치권의 정책실패와 아파트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보도 때문에 대처를 미뤄 이제 선택지가 하책 또는 최하책 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다. 이미 많이 그르친 상태에서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생각은 없지만,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말하자면 이렇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저금리 상황일 때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 유도하는 것,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을 줄이고 기존 무리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 시장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등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의 진폭을 키우고 투기를 부추겼던 양대 제도인 선분양제와 3년 거치 일시 상환식 대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투기에 강한 내성을 가지는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 등도 부동산 시장 건전화를 위한 기본 과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조치들을 깡그리 내팽개치고 결국 다시 부양책에 나섰다. 문제는 이렇게 계속 미룰수록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은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에 힘입어 지난해 가계부채가 45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계속 연장하면 2012년에는 분기별로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만기 도래액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미루기를 선택해 90% 이상의 주택대출이 재연장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온갖 빚을 동원해 만든 강력한 모르핀주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회복’이라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임기 내에만 무탈하면 된다는 식으로 거품빼기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만 200조원 이상이나 국공채 발행을 늘려 쏟아 부었는데도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 공기업 가리지 않고 씀씀이와 부채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각종 국공채 만기는 2012~2013년에 몰리게 돼 있다. 그 때는 빚을 갚아나가는 것만 해도 정신 없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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