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발 경제위기를 정확히 경고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위기경제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근의 재앙은 돌발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심지어 예측도 가능했다. 왜냐하면 금융위기란 일반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따라 되풀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취약점이 쌓이다 보면 결국에는 정점을 찍게 된다." 미국발 경제위기는 제도적 미비와 정책 실패들이 누적돼 발생한 ‘예고된 위기’로 조기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피할 수 있거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 부동산 버블 위기도 국내 주택가격이 무섭게 부풀어 오를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지금의 국가채무 위기와 LH공사 부채 문제, 각 지자체 재정난 및 산하 개발공기업들의 부채 위기, 용산개발사업 좌초 위기 등도 모두 과거부터 예고되고 있었던 위기다. 그리고 이들 위기는 모두 부동산 버블 위기에서 파생된 위기다.
예고된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며 위기가 예고되는 초기에 개선하는 게 중책이다.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온갖 난리법석을 떨면서 막는 게 하책, 위기가 불거져도 계속 대처를 미루다 어느 시점에 손쓰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게 최하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소는 적어도 상책이나 중책을 쓸 수 있는 단계부터 이들 예고된 위기들에 대해 숱하게 경보음을 울려왔다. 그러나 거듭된 정부정치권의 정책실패와 아파트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보도 때문에 대처를 미뤄 이제 선택지가 하책 또는 최하책 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다. 이미 많이 그르친 상태에서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저금리 상황을 이용해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것,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을 줄이고 기존 무리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 시장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등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의 진폭을 키우고 투기를 부추겼던 양대 제도인 선분양제와 3년 거치 일시 상환식 대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투기에 강한 내성을 가지는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 등도 부동산 시장 건전화를 위한 기본 과제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연착륙’이라는 미명 아래 거품 빼기를 지연시키며 공공 부채와 가계 부채를 동원해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해왔다. 최근 DTI규제 완화를 포함한 추가 부양책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이렇게 계속 미룰수록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은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에 힘입어 지난해 가계부채가 45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계속 연장하면 2012년에는 분기별로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만기 도래액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미루기를 선택해 90% 이상의 주택대출이 재연장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온갖 빚을 동원해 만든 강력한 몰핀주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회복’이라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임기 내에만 무탈하면 된다는 식으로 거품빼기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만 200조원 이상이나 국공채 발행을 늘려 쏟아부었는데도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 공기업 가리지 않고 씀씀이와 부채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각종 국공채 만기는 2012~2013년에 몰리게 돼 있다. 그 때는 빚을 갚아나가는 것만 해도 정신없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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