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우스푸어문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각종 언론 보도들이 잇따르면서 하우스푸어는 ‘88만원세대처럼 빠른 속도로 일반명사화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 신드롬인 셈인데, 이 신드롬의 단초를 제공한 MBC PD수첩 김재영 PD <하우스푸어>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재영 PD에게 <하우스푸어> 집필을 권하고, 일부 분석 작업 등을 도와줬던 입장에서 이 책이 이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데 대해서는 가슴 뿌듯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우스푸어들이 놓인 험난한 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척 아프기도 합니다. 김재영 PD, 저도 하우스푸어가 이슈화되기를 바란 것은 지금 주택시장의 엄중한 현실을 경고하고, 더 이상 무리하게 빚을 얻어 하우스푸어의 행렬에 뛰어들지 말 것을 일반 가계에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는 이처럼 일반 가계가 계속 빚을 내게 해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는 제물로 삼지 말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는 관련 언론 보도들을 보고 있으면 가관입니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조명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하우스푸어가 사회문제가 됐으니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이른바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실 그 내용을 뜯어보면 실제로는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촉구하는 소재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전혀 우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하우스푸어' 상태에 놓이게 된 분들의 사정은 딱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 분들도 알고 보면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친지들이며 많은 경우 부동산 거품을 불러일으킨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쳐놓은 부동산의 덫에 걸려든 경우입니다. 저도 그런 분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자고 주장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줄 글로 선심 쓰는 것이야 쉽습니다만 그것이 정말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일까요? 예를 들어,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람 가운데도 깡통을 찬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도 구제해야 합니까? 시장경제에서 모든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집니다. 자기책임으로 투자한 것을 어떻게 보상하고 손실을 만회해주란 말입니까? 집값이 뛸 때 이익은 각 가계가 모두 가져가고, 집값이 내릴 때 발생하는 손실은 사회화하는 도덕적 해이는 길게 보면 국민경제를 망칩니다. 시장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정책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입니다. 이를 88만원세대와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하우스푸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투기 붐에 가담하거나 편승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분양광고 수익을 노린 무책임한 선동보도의 책임도 큽니다. 그렇다고 무리한 탐욕을 부린 가계들의 자기 책임 또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세대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50~60대 부모세대와 뒤늦게 뛰어든 30~40대가 하우스푸어의 주축입니다. 반면 88만원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집값이 높아 결혼도 하지 못하는 등 불똥을 맞은 경우입니다. 88만원세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층, 취약계층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제껴놓고 왜 하우스푸어를 먼저 구제해야 하는지요?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옵니까? 이미 막대한 국가채무 형태로 자식세대의 부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그 부담을 늘리게 될 공산이 큽니다. 온갖 사고는 기성세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이미 최대 피해자인 자식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입니다. 이게 자식 가진 기성세대가 할 짓입니까. 또한 하우스푸어 구제를 위해 돈을 쓰게 된다면, 결국 재원이 한정돼 있는 이상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돌아갈 몫은 어떤 식으로든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온갖 선동보도로 빚 내서라도 집 사라고 부추겼던 신문들이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역겹습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진 듯 생색냅니다. 이렇게 생색내는 신문들일수록 온갖 선동보도로 일반 가계들이 과욕을 부리도록 부추겼던 신문들입니다. 특히, 아예 대놓고 부동산 찌라시라고 광고하는 듯한 경제신문들이 하우스푸어 구제론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하우스푸어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양산된 데는 이들 경제신문들을 비롯해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의 선동보도가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신문들은 무슨 낯짝으로 자신들이 지은 죄과(?)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도 없이 그런 목소리를 드높이는지 지켜보는 제가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문제는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펴는 이들 언론들이 정말 일반 가계들을 진심으로 걱정이나 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들이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통해 목표하고 있는 것은 결국 경제 전체에 큰 부담을 주는 건설업계 부양책과 DTI규제 완화 같은 것들입니다. 지금까지도 일반 가계들에게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게 한 결과 많은 일반 가계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빚을 많이 져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에게 빚을 더 내라고 부추기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언제까지 일반 가계들이 빚을 내 여전히 거품 잔뜩 묻은 고분양가 아파트를 사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DTI규제를 풀어서 매도자의 매물을 사주게 한다면 누군가는 그 매물 폭탄의 폭탄받이가 돼야 합니다. 도대체 이 땅의 국민들은 건설업계를 먹여 살리고, 다주택 투기자 등 부동산 부자들의 폭탄을 받아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최근에는 양도세 중과 연장이나 경감 조치도 나오는 모양인데, 양도세 대상자라면 시세차익을 남긴 사람들이어서 하우스푸어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 세금은 왜 깎아줘야 할까요? 제발 파렴치한 언론들의 그런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속지 마십시오.

 

일부에서는 예의 건설업계나 저축은행 지원 논리에서 똑같이 전개한 것처럼 하우스푸어 문제를 방치하면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협박(?)합니다. 얼마 전까지 저를 폭락론자라고 색칠하던 언론들 스스로가 사실 폭락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솔직해 집시다. 지금의 부동산 거품은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부동산 부양책을 쓰면 쓸수록 부동산 거품의 에너지는 더욱 커져 오히려 경제적 충격을 더욱 키우게 됩니다. 이미 수백조원의 재정을 낭비한 것처럼 막지도 못하는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느라고 소중한 자원만 탕진하게 됩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주장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면에 싣고, 마치 자신들만이 우국지사인 양 행세하는 언론들을 보면서 정말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런 것들이 언론의 외피를 두르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니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된 겁니다.

 

이미 수많은 과오가 긴 세월에 걸쳐 누적돼 발생한 문제를 아무것도 없었던양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미 많은 문제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하우스푸어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집값 부양 시그널을 주지 않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DTI규제를 푼다면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것이며, 부동산 거품의 에너지를 더욱 키우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주택정책 및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로세우는 일입니다. 부동산 투기 사이클의 진폭을 키우고 하우스푸어를 대량으로 양산한 선분양제 같은 제도들 고치는 한편 공공임대/전세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 서민 주거난을 해소해가야 합니다. 서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토록 무리한 주택 투기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우스푸어로 전락했거나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일반 가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많은 집 가진 분들의 오해와 달리 저는 집 가진 분들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을 부동산 덫에 걸려들게 한 정부정치권과 언론, 건설업체 등 부동산기득권 세력들과 일부 다주택 투기자들을 비판할 뿐 일반 가계들을 절대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른바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반대하는 것도 집 가진 분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길게 볼 때 한국경제를 위해 옳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지나치게 과욕을 부렸다면 지금이라도 가계의 재무구조를 다시 점검하고 부채 조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부동산 기득권의 덫에 걸려 자신들을 덫에 걸려들게 한 기득권 세력들과 운명공동체로 생각하는 심리를 버리셔야 합니다. 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는 스톡홀룸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강부자 정권을 비롯해 당신들을 구제해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은 여러분들의 편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착취자에 가깝습니다. ‘혹시나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힘은 이제 그들에게도 없습니다. 부동산 버블의 시장 압력은 그만큼 강력한 것입니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부채 조정에 나서는 것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가계생활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언제까지 미련을 가지고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대시렵니까. 잔뜩 부풀어올라 있는 부동산 거품을 자식세대들에게까지 떠넘기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부동산 거품은 결국 근본적 수술을 통해 떼내야 할 악성종양과 같은 겁니다. 이제라도 부동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주거정책을 정부정치권에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경제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반석 위에 서는 길이며, 일반가계가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재테크 머니게임에서 벗어나 결과적으로 모두가 잘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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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19. 09:06
*아래 문구는 출판사측의 광고문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제가 쓴 내용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아빠는 하우스 푸어, 아들은 88만원 세대!!!!

 

아파트로 망가진 당신의 미래, 어디로 가고 있나


88만원 세대와 하우스 푸어, 그들의 미래는?

 

행복한 가정을 무너뜨린 부동산 시장의 진실을 말한다

 

- 강연회 일정 -

 

* 일시 : 2010년 9월 10일 19:30~ 21:30

 

* 강연자 : 김재영 (저자, MBC PD)

              우석훈 (88만원 세대의 저자)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 장소 :  한국과학기술회관 대회의실 (서울 강남 - 약도보기) 

         http://www.kofst.or.kr/kofst/kofst06.php

 

* 주최 : 더 팩트, YES24, 김광수경제연구소

 

* 후원 : 미디어 오늘


* 참가방법 : 아래에 댓글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by 선대인 2010. 8. 18. 11:54

며칠 전 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 주택정책 자문회의 다녀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국내 전문가 5, 일본 노무라증권연구소 서울지점 고문이 통역자 대동해 참석. 국내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상황 우려하면서도 아직 상황 잘 모르는 분위기. 하지만 일본 전문가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 국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버블을 부인하지만, 일본 전문가의 눈에는 명확하게 버블로 보이고, 지금 주택시장 현상이 버블 붕괴 현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국내 전문가라는 분 중에는 일본 전문가의 주장을 반박하듯 버블은 꺼지기 전에는 버블인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펴시는 분이 있더군요. 그렇다면, 버블과 버블 붕괴의 충격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인데, 왜 그 회의석상에는 나온 것인지 저로서는 요령부득. 어쨌거나 일본 전문가의 주장은 제 생각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 제 주장으로 오해하실 분들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적인 회의석상에서 나온 발언을 제 마음대로 옮길 리는 없겠지요^^ 아래에서그 전문가의 발언 중 주요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괄호안은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 또는 부연설명한 내용입니다.

 

 

-일본 부동산은 상업지에서 주택지로, 지역별로는 도쿄도심→도쿄권→대도시권→지방권으로 서서히 파급. 이러한 현상이 진정되기까지 오랜 시간 소요. 도쿄도심은 1988년부터 급등세 멈추며 보합세로 전환

 

-도쿄권 지가는 90년 가을부터 붕괴하기 시작. 토지 불패신화 깨지고, 토지도 상승과 하락이 존재하는 리스크 자산으로 변화. 부동산 버블기 때 공사비가 40% 정도 상승했는데, 이후 버블이 해소되면서 공사비도 하락.

 

-내가 볼 때 한국 주택시장 버블이다. PIR(소득대비 주택가격)만 따져봐도 한국 주택가격 높다. 일본의 경우 버블 당시 PIR 4.8~6.5배였는데, 한국의 PIR 6배가 넘는다. (서울, 수도권만 따지면 훨씬 더 높음)비정상적 주택가격은 어느 단계, 어떤 시점에서든 무너져 적정가격으로 하락하게 돼 있다. 지금 수도권에서 거래량이 줄고,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바로 그런 흐름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문제는 폭락하느냐, 비교적 서서히 하락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주택 가격 하락 기대감이 커져 수요가 더욱 위축되면 급속한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도했던 주택가격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이를 정책적으로 막으려 해서도 안 된다. 주택 가격을 높은 상태로 유지한 상태에서 일반 가계들이 주택을 계속 취득하도록 하는 정책에 매달리는 것이 오히려 잘못.

 

-일본과 한국의 부동산 버블의 양상이나 주택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 건설업체들이 고가분양한 아파트를 미분양인 채로 안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건설업계의 모럴헤저드와 관계가 깊다. 일본의 경우 한국처럼 건설업계 모럴해저드를 불러일으키는 미분양 해소책 같은 것은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하락의 문제에서 따르는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인데, 이를 위해서 새로운 주택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역할과 비중이 한국에서는 많이 낮은데 이를 많이 늘려야 할 것이다. 주택 보유와 임대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택재고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임대주택 재고비율이 4%에 불과해 너무 주택 보유에 편중돼 있음)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 붕괴 후 공공에서는 분양주택은 전혀 짓지 않았고, 공공임대주택 법제를 정비해 공공임대 주택 공급 늘렸다. 특히 저소득 일인가구(단신생활자) 등 소규모 세대 증가에 대응하는 임대공급 크게 늘렸다.

 

-1인가구 증가하니 무턱대고 계속 (분양)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데, 너무 단순한 접근이다. 일본에서도 부동산 버블기에는 주택공급 주장에 근거해 각종 개발계획들이 나왔다. 하지만 무작정 (분양)주택을 공급하면 된다는 식보다는, 세밀한 수요에 대응한 세밀한 임대주택 공급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에서도 뉴타운, 신도시 개발 등의 개념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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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17. 09:10

어제 피디수첩 아파트,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편 어떻게들 보셨는지요? 우선, 담당 PD가 상당히 촉박한 가운데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현재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상황만이라도 잘 정리해서 전달하라고 조언 드렸는데, 그런 면에서는 일정하게 잘 정리한 것 같습니다.

 

보통 급하게 만들면 상대적으로 심층성은 약해지고 대신 전체 조감도를 보여주는 식의 구성이 되기 쉬운 듯합니다. 어제 프로그램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주택시장의 생생한 현실을 전하고 과거의 투기 열풍이 가라앉으면서 곳곳에 생겨난 하우스푸어분들의 실태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었다는 점 등에서 대체로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다만, 다른 PD수첩팀에 평소 걸고 있는 기대치에 비하면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청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그리고 향후 관련 프로그램 제작시 PD수첩을 비롯한 다른 언론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언론 발전을 위한 충정의 뜻으로 여겨 주십시오.

 

우선, 프로그램 앞 부분에서 부동산정보업체의 사기적 호가지수를 사용해 가격하락폭을 소개했는데요. 실제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낙폭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강남 3구의 경우 이미 고점 대비 15% 전후, 다른 수도권 주요 도시들의 경우 30% 이상 실거래가가 하락한 상태입니다. 만약 부동산정보업체 가격지수 수준대로라면 어제 방송에 소개된 분들이 그렇게 고생하고 있을 리가 없죠.

 

또한 여론조사로 지금 주택시장상황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설령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면 이미 대상을 고르는 단계부터 어떤 식으로든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점. 지난번 MBC 마감뉴스에 이어 왜 고종완씨를 등장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입장을 선뜻 말해줄 사람이 고종완씨 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현 정부 초기에 인수위 시절 정보를 활용해 부동산 투자 자문 영업을 해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종완씨는 MBC로 인해 완전히 복권(?)됐네요.

 

반면 건설업계의 의견을 들어보자면서 건설산업연구원 간판 보여주고 인터뷰한 것은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동안 기회 될 때마다 건산연과 주산연의 이해관계를 명확히 밝혀주라고 요청했는데, 어제 프로그램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모범적인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여러 가지 문제가 상당 부분 선분양제 때문이라는 것을 짚은 것 또한 좋은 접근이었습니다. 다만, 좀 더 그 문제를 깊이 다뤘으면 좋을 듯 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공급자 위주 선분양제만 없어도 일반 가계들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지금의 선분양제가 왜 부동산시장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수도권 곳곳에서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피해가 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주택 선분양제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선분양제의 폐해와 문제점을 거론하기에 앞서 선분양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도입되고 존속하게 됐는지를 간단히 살펴봅시다. 주택 선분양 제도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주택건설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판단한 정책당국이 주택건설업체들의 금융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제도입니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제도권 금융에 이자를 물지 않고 주택 수요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같은 선분양제는 당시 민간 주택건설업체들이 규모도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유입 가속화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분양제는 시장가격 이하로 책정된 분양가와 실제 시장거래가격 간의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를 유발시켰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고착화 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반복적인 부동산 투기 파동과 경기 침체기에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 피해가 두드러지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1995년 선분양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분양가 규제도 함께 자율화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사태는 엉뚱하게 치달았습니다. 건설업계의 분양가 자율화 요구는 즉각 받아들이면서도 외환위기 직후 고사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선분양제 도입은 뒤로 미뤄졌습니다.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분양가마저 자율화돼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의 힘만 일방적으로 잔뜩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2003년초 노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후분양제 도입 방침이 결정됐으나, 당시 건설교통부 등의 미온적 태도로 후분양제 도입은 지지부진해지고 선분양제가 여전히 대세를 이뤘습니다. 한국 주택시장은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 자율화라는 공급자를 위해서는 최선이지만 소비자를 위해서는 최악의 제도가 자리잡게 것입니다. 그로 인해 2000 부동산 거품이 빠른 속도로 커지게 주요 원인 하나가 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선분양제가 일으키는 문제점을 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됩니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주택업체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자가 떠안아야 합니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분양자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은 상당 부분 불가피합니다. 실제로 주택업체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습니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되므로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할 때는 분양만 받으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에 나섰습니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자들이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만일 극심한 청약열풍이 불었던 판교신도시나 인천 송도/청라, 파주신도시 주택을 지금쯤 후분양제로 공급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결국 주택업체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분양자들만 자산가치 급락과 엄청난 부채 부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입주 지연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 아파트나 기존 주택을 팔아 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래가 마비되면 기존 주택이든 신규 분양 아파트든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함께 빚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지연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호황기에 무리한 주택사업이 일어나는 유인으로 작용합니다. 주택업체들은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근시안적 시각에서 사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큽니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큽니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합시다.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합니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습니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기응변적 처방과 건설업계 특혜 주기에 골몰하는 정부가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저도,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아내도 계속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부동산 기득권 구조의 덫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어제 PD수첩에 나온 사례들처럼 '하우스푸어' 문제가 이슈가 되자, 재빨리 이들에 대한 구제론을 펼치는 언론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몇 줄 글로 그런 선심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부동산 거품에 아무런 책임도 없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도외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부터 구제하는 것은 정책 형평성 차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하우스푸어분들도 우리의 이웃이지만, 시장경제에서 어떤 투자도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기율을 피해가게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훨씬 더 큰 피해를 양산하게 됩니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정부 당국은 이런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되는 DTI규제 완화 조치에 더 이상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동산 버블 위기를 증폭시키고, 가계를 제물로 삼아 건설업체와 금융권을 배불려온 시대착오적 선분양제 등을 정비할 때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다시 엄격히 구분하는 등 금융 재규제(Re-regulation)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겪고 나서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제도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미 숱한 위기를 겪고서도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에 집착하는 등 제도적 개선은커녕 문제를 일으킨 건설업체와 금융권 등에 대한 선심성 부양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계속 증폭되는 위기 속에서 일반가계들만 고생하고, 건전한 경제구조의 토대가 허물어질 뿐 경제가 제대로 된 발전을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정부당국이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합니다. 더 이상 가계를 제물로 삼아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궁리를 하지 말고, 시장퇴출이 일어나는 실질적 구조개혁을 서두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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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1. 09:18

부동산 버블 붕괴의 여파가 주택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개발사업으로퍼져나가고 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두 120조원에 이르는 PF사업의 상당수가 좌초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사업규모가 큰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사실상 좌초됐고, 판교 알파트돔시티, 인천도화지구 프로젝트, 고양시 한류월드 2구역 사업 등 굵직굵직한 대규모 PF사업이 모두 좌초위기로 치닫고 있다. 특히 사업규모 31조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도심개발 사업인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의 좌초는 용산지역 부동산 가격 급락을 부르고, 코레일과 SH공사 등의 사업성 악화 등 큰 파장을 낳고 있는데 이 또한 부동산시장 침체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좌초했는지 한 번 짚어보자.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에는 코레일과 SH공사를 비롯해 프루덴셜, KB자산운용, 삼성생명, 삼성화재, 우리은행 등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고, 전략적 투자자로는 롯데관광개발㈜, 삼성SDS, KT&G, 미래애셋, CJ 등이 참여했다. 개발 시공을 맡게 되는 건설투자자들은 삼성물산, GS건설, 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SK건설, 한양 등 국내 시공능력평가 10위 안에 드는 6개 업체를 포함해 17개사가 참여했다. 국내 최대의 민간 PF사업에 걸맞게 국내 최대 기업들이 다수 참여해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이다. 그런 사업이 지금 좌초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자 선정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왜 이 사업이 지금 좌초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당시 컨소시엄을 주도한 삼성물산은 세계 최고층 건물인 버즈 두바이(현재 버즈 칼리파) 시공 과정을 담은 광고를 연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2007 8월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두바이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전이었고, 이명박 대통령과 세훈 서울시장 등이 두바이를 방문하는 등 두바이 모델에 대한 환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분위기를 이용한 수주 전략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시연 자료를 보면 두바이의 초고층 건물들을 모델로 해 마치 최첨단 미래형 초고층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추진 당시부터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치솟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사업이었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용산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에 해당하는 용산역세권개발㈜는 개발사업 부지 3.3㎡당 7,400만원씩 모두 8조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사업계약을 맺었다. 국내의 공공용지 사업부지 매각 사상 가장 고가였다.

 

이 같은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척되려면 투자비를 넘어서는 수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을 실현하는 방법은 결국 용산개발사업 결과 들어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공간들이 모두 매우 높은 가격에 분양되거나 임대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애초부터 없이 장밋빛 환상에 기초하고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용산국제업무개발지구의 사업부지는 모두 566,800㎡로 여기에 랜드마크타워와 업무시설, 상업시설, 주상복합시설, 문화, 숙박시설 등이 들어설 계획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총 100~106층 규모로 추진중인 랜드마크타워 한 곳에만 228,862㎡의 업무시설과 69,412㎡의 호텔숙박시설, 그리고 22877㎡의 판매시설이 들어서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랜드마크타워 한 곳의 규모만 해도 이 정도인데, 다른 업무시설과 상업시설, 주상복합시설 등의 공급 규모를 합치면 훨씬 더 막대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용산국제업무개발지구에 더해 많은 초고층 건물들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었다. 서울시내에서 추진되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사업만 해도 상암DMC단지에서 추진되는 서울라이트사업과 제2롯데월드를 비롯해 7곳에 이를 정도다. 물론 이들 사업이 모두 실현될 지는 미지수라고 하더라도 전례 없는 초고층 빌딩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돼 공급과잉 우려가 매우 높았다. 뿐만 아니라 100층 이상 초고층은 아니지만 대규모 초대형 오피스빌딩 공급계획이 서울 내에서만 무려 수십 군데에 이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1013년까지 공급되기로 계획된 연면적 33000㎡이상인 A급 빌딩이 43개에 이른다. 연면적 66000㎡이상 프라임급 빌딩도 23개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 현재도 부동산 버블기에 계획된 오피스 빌딩의 공급과잉으로 이미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오피스 빌딩의 공급 면적이 2007 166.9만㎡, 2008 101.1만㎡ 였는데, 이는 2000~2006년 연간 평균 공급물량인 약 50만㎡의 두 배를 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최근 강남권을 필두로 도심권과 여의도권의 공실률이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계획되고 있는 상당수의 오피스 공급 계획들이 다소 지연되거나 중단되더라도 이미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로 이어져 향후 오피스 임대료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오피스 건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대료도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2016년 이후 들어선다고 할 경우 계획된 공간을 모두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모두 채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비를 회수할 정도로 고가 분양에 성공하거나 높은 임대 수익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PF사업은 투자자들이 특정 사업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완료한 다음 발생하는 수익으로 투자자들에게 사업이익을 배분해주는 구조이다. 따라서 용산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용산역세권개발㈜로서는 더 많은 사무용 공간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을 현행 608%에서 800%까지 완화해달라는 등 당근을 더 달라고 코레일과 정부 및 서울시 당국에 졸랐다.

 

하지만 기존 용적률도 지나친 특혜라고 할 수 있는데, 800%까지 완화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이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추가 시공비용과 공급과잉 압력을 고려할 때 수익성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용산역세권개발㈜로서는 거액의 위약금과 기존 투자금을 물더라도 현 상태에서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부동산 버블기의 정점에서 부동산 가격이 언제까지나 오를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이 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버블 붕괴는 주택시장 붕괴와 오피스시장 버블 붕괴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주택시장과 오피스시장이 함께 무너지고 있으며, 각종 대규모 PF사업들도 좌초위기로 치닫고 있다. 또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여파가 지자체와 LH공사 등 개발공기업 등의 재정위기로 파급되고 있다. 이미 2008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있었으나 현 정부가 저금리와 세금, 각종 토건사업 남발 등 수백 조원 가량의 직간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다시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그런 부양책들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만 소진했을 뿐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민간과 공공 부문 모두가 부동산 거품이 영원할 것 같은 불패신화 속에서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고 대규모 부동산개발사업 등을 남발해왔다. 그렇게 하면 마치 한국경제가 금방이라도 선진경제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부동산 거품이 불러온 거대한 신기루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그 환상이 깨지고 있다. 환상에서 깨어날 때 고통과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연구소가 줄기차게 지적하고 경고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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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41

http://bit.ly/9SoGpa  부동산 이상 징후 3제라는 서울신문의 기사입니다. 타워팰리스 반값 낙찰, 광교 소형 청약도 미달, 새학기 강남 전세값도 ''. 제 눈에는 이상 징후가 아니라 현 시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정상적 징후로 보입니다만...

 

용산업무지구사업 등 대형 PF사업 좌초, LH공사와 각종 수도권 개발공기업 부실,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줄도산 위기, 각종 뉴타운/재개발 사업 좌초 또는 연기, 극심한 주택거래 침체. 이런 현상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징후로 보시겠습니까?

 

사심 없는 눈으로 지금 주택시장 상황을 들여다 보면 보입니다. 지금 주택시장의 이상 징후라고 하는 것들이 제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택시장 안팎의 구조적 흐름은 단순히 시기의 문제일 뿐 계속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값 하락/전세가 상승이 제게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매매포기수요, 매도 후 전세전환 수요 등이 늘면서 나타난 병목현상. 그런데 주택시장은 공급과잉. 국지적 시차는 있어도 전세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집값 폭등 선동이 난무할 때도 미분양 증가, 건설업체/PF대출/저축은행 위기, 거래 침체, 실거래가 재하락, 대형 개발사업 좌초 등을 경고할 수 있었던 것은 현상 이면의 구조적 흐름을 보고 있었을 뿐. 사심 없이 보면 모두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predictable surprise"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풀면 '예고된 재난' 쯤 될까요? 모든 예고된 재난은 사실 이미 예고되고 있었기에 사실은 잘만 대응했다면 모두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국내의 부동산 버블 위기도 마찬가지.

 

예고된 재난의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국의 911테러, 엔론스캔들, 그리고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경제위기도. 지금 한국의 부동산 버블 위기도, 그리고 10년 후쯤부터 본격화할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도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예고된 재난'에 대비하지 못하는 이유.낙관적 환상, 미래 가치절하, 현상유지 심리, 확률 낮은 손실 위험 회피경향/조직 칸막이 현상(정보공유 회피), 대리인문제(개인적 유인으로 집단이익 희생), 부패한 집단, 문제 초기에 희생양 찾기로 땜질식 처방 등.

 

언급한 것을 국내의 부동산 버블 위기와 국가재정 위기, 최근의 LH공사 부실 위기, 지자체의 재정난 위기, 저출산 고령화 위기 등에 모두 대입해 보십시오. 지금의 위기는 과거부터 예고되고 있었던 위기입니다.

 

'예고된 위기'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위기가 예고될 때 예방하는 것이 최상책, 예고된 위기 초기에 재빨리 개선하는 게 중책,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온갖 난리법석을 떨면서 막는 게 하책, 위기가 터지고 나도 손쓰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게 최하책입니다.

 

저나 저희 연구소는 적어도 예방 가능한 단계인 최상책이나 초기인 상책을 쓸 수 있는 단계부터 경고. 그러나 거듭된 정부정치권의 정책실패와 언론 선동보도로 이제 최선의 경우 하책밖에 안 남은 상황이 돼버렸죠.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겠죠.

 

일부 분들이 이제 와서 대안이 뭐냐고 묻습니다.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이미 숱하게 최상책과 상책의 방안을 내놓고,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정치권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 갈수록 경고음을 크게 울리고 비판을 세게 한 것입니다.

 

이미 저희가 했던 경고와 비판 속에 숱한 대안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들을 듣지 않고 일을 모두 저절러놓은 상태에서 대안을 내놓으라면 저희도 한 큐에 모든 상황을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부터라도 충격을 최소화할 방책들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가계 부채를 늘리지 않고 다이어트 유도,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 중지, 시장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저축은행 구조조정 등등. 이미 일정한 충격이 불가피한 상태. 단기적 충격을 입더라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미디어오늘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9. 09:00

 

최근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MBC PD수첩 김재영 PD가 다년간의 부동산 문제 관련 취재를 바탕으로 출간한 동명의 책이 촉발한 현상이다. 이 책은 이미 인터넷서점 예스24 집계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들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 책을 소개하고 하우스푸어 관련 기획들을 펼치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2006년 이후 부동산 고점기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으나 집값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자 부담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계들을 말한다. 이미 수도권에서만 줄잡아 10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우스푸어가 부동산 버블 붕괴 시대의 화두가 될 공산이 커보이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화두라면 88만원세대가 있다. 이 또한 우석훈박사가 쓴 동명의 책에서 비롯됐다. 알다시피 저임금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시기에 평균 월급 88만원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든 10대, 20대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사이에 공통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묘한 관계를 본다. 우선, 공통점은 이들 모두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라는 점이다. 하우스푸어야 그렇다 치고, 88만원세대가 부동산 거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명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일면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경제 영역은 한껏 비대해진 반면 생산경제 영역은 침체 일로를 겪었다.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기보다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가계도 무리하게 빚을 빌려 주택 투기에 가담하면서 은행에 이자내는 월세생활자로 전락해 씀씀이를 줄였다. 그렇게 빚어진 만성적인 내수 침체는 다시 제품과 서비스 수요를 줄여 생산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 이 같은 부담을 88만원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88만원세대는 치솟은 집값 때문에 원룸이나 고시촌, 심지어 쪽방을 전전하게 됐다. 결혼해서 애 낳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돼버렸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는 집값, 땅값은 금값이 되는 반면 사람 값은 똥값이 되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가 88만원세대였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88만원세대가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동산 거품의 한 산물이라고 본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 가담 여부에서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하우스푸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 투기 붐에 가담하거나 편승한 사람들이다. 물론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분양 광고 수익을 노린 무책임한 선동보도의 책임도 크다. 그렇다고 무리한 탐욕을 부린 가계들의 자기 책임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세대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50,60대 부모세대와 뒤늦게 뛰어든 30,40대가 하우스푸어의 주축이다. 반면 88만원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의 불똥을 맞은 경우다.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재빨리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거론하고 있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다. 마음 같아서는 필자도 그 정도 선심은 쓰고 싶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막대한 국가채무 형태로 자식세대의 부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그 부담을 늘리게 될 공산이 크다. 온갖 사고는 기성세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이미 최대 피해자인 자식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게 자식 가진 기성세대가 할 짓인가.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 취약계층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될 DTI규제 완화 조치를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선분양제와 같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부터 고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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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6. 07:16

지금 국내에는 경착륙하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논리로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는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으로 연착륙을 바라는 주장이라면 필자도 동의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연착륙론이 오염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연착륙론은 주로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재벌계 연구소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 신문들에서 주로 내놓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착륙론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연착륙론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론에 가깝다.

 

원래 의미의 연착륙을 생각해보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에 비유하자면, 바늘로 쿡 찔러서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 경착륙이라면 풍선의 바람 구멍을 열어 서서히 바람을 빼나가는 것이 연착륙이다. 따라서 연착륙론은 부동산 가격의 하향 조정을 점진적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연착륙론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거품이 좀 빠질만하면 거품을 다시 불어넣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2008년말 이후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쓴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의 근거도 연착륙론이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더했고, 이미 상당수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4년 주택 시장 침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까지 지속됐던 2000년대 1차 부동산 폭등기가 일단락되자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경착륙은 안 된다연착륙론으로 포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그 결과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을 투톱으로 투기 과열지구 해제 등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또한 판교신도시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건설업계를 먹여살리기 위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짐으로써 수도권 중심의 2차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결국 지금까지 연착륙론은 부동산 거품 빼기를 계속 미루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이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원을 탕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품은 계속 커져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 규모도 커지고, 가계 부채는 늘어왔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워 한국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2004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 당시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건설경기 부양론에 휘둘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뺐더라면 지금 같은 위기감에 시달렸을 것인가. 따라서 불순한 속내를 가지고 연착륙을 부르짖어온 사람들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일 버블 붕괴서 배울 것이라는 칼럼에서 주장한 연착륙론또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칼럼주장대로라면 일본이 “89년에서 90년에 걸쳐 금리를 2.5%에서 6%로 수직상승시킨 것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2008년말 주택 가격 급락 현상이 일어나자 5.25%이던 기준금리를 2%라는 사상 최저금리로 낮췄고,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과 DTI 및 재건축 규제 완화, 부동산 세금 감면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 물량 매입,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토건 부양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지난해 9 DTI규제를 다시 묶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기준 금리 인상이나 지난해 DTI규제 재도입 또한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빠르게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이미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마지못해 취한 고육책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경제 정책을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용해 갈 데까지 가보길 원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게는 성에 안 찰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너무 조급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민경제와 일반가계를 볼모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속내가 보이는 느려터진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일보 스스로 몇 달 전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한국 정부는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기보다는 여전히 부동산 버블을 방치하는 기조에 가깝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대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조장책으로 시장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용수철도 수축돼야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법인데, 현 정부는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이 되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가로막고 있다.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용수철은 끊어져 복원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건설업계를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으니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이미 고갈된 수요 이상의 공급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이미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도 수급 조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좀비처럼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실 채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바닥을 친 뒤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잠재 수요자들을 계속 무리하게 빚을 내 사게 함으로써 결국 주택시장 회복을 주도할 미래 수요를 고갈시키게 된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당겨써버림으로써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키우는 반면 주택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과 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현재 건설업계 및 부동산업계 및 이들의 대변지격인 기득권 언론들이 주문한 결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정확히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전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지연시킨 탓에 일본의 주택시장이 자연스러운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컸지만, 초기에 각종 토건부양책으로 재정을 탕진하고,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수요 대비 과도한 주택 공급을 지속해 부동산 시장이 복원력을 잃어버린 가운데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황들이 2010년대 한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자고 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어오른 상황에서도 연착륙운운하며 추가 부양책을 주문하는 세력들이야말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 경착륙을 넘어 한국경제의 불시착을 유도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희희낙락했던 건설업계와 금융업계, 그리고 아파트 분양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게 돌아갈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올 충격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들은 일반가계와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이들 좀비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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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3. 09:10

축구장에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어느 순간 관중석 앞쪽에 앉은 관중들이 경기를 좀 더 잘 보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차례로 모두 일어서야 했다. 일어선 앞 사람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축구장 관중들은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불편하게 서서 봐야 했다. 모두가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익히 잘 아는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다. 이 예화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동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화다.


그런데 2000년대 국내 부동산 상황은 합성의 오류가 난무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개인이 부동산 시장에 차례로 뛰어든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옆의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또 다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값이 더 뛸까 불안해서 거액의 빚을 내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다. 더 나중에는 투기 광풍이 불어 ‘묻지마 투자’까지 횡행했다. 그렇게 해서 수도권 아파트 값을 평균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가계의 상당수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한국경제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생산경제에 가야 할 돈은 급격히 위축됐다. 부동산 비용 상승으로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인상된 임대료를 내느라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은 열 사람 쓸 것을 다섯 사람만 쓰거나 열 사람을 다 쓰되 저임금으로 부리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이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실업 급증과 비정규직 증가로 나타났다.


빚을 내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외환위기 직후 25%에 육박하던 가계 순저축율은 2008년말 2.5%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과거 은행에서 이자수입을 타서 쓰던 가계들이 이제 은행에 거꾸로 매월 수십만~수백만원씩을 월세 내듯 꼬박꼬박 이자로 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시중은행들은 국내 최대 월세 임대사업자들이 됐다. 1,2백만원씩을 은행 이자로 내고 난 가계들은 그만큼 소비를 줄여야 했고, 이는 지속적인 내수침체로 이어져 더더욱 생산경제를 위축시켰다. 정부와 상당수 언론은 줄곧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에 따른 향후 차익 실현 기대감으로 현재 소비가 는다는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들먹였다. 하지만 부동산 부채 증가로 인한 내수 위축 효과는 자산효과를 압도했다. 이 때문에 지표상으로는 GDP성장률 4~5%를 오르내렸지만, 서민경제는 항상 침체기였다.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축구장에서 모든 관중들이 다 일어선다고 모두 같은 시야를 확보하는 게 아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어린이는 일어서도 경기를 볼 수 없다. 심지어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부동산 시장의 원초적 불공정성은 훨씬 컸다. 우선, 주택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심했고, 평형별로, 가격대별로 편차가 심했다. 세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없던 젊은 세대에 비해 자금력과 부동산 투자 노하우까지 갖춘 기성세대는 부동산 투자로 덕을 봤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부동산 거품으로 일자리와 소득까지 줄어든 상태에서 집값까지 뛰자 결혼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 돼버렸다. 계층별로 양극화도 심해졌다. 부동산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10년 이상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불과 1~2년 만에 벌기도 했다. 소득 양극화보다 자산 양극화가 훨씬 더 극심해졌고, 집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근로의욕 감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덕을 본 것인가? 물론 부동산 가격이 올라 고가 주택 보유자와 투기성 다주택자를 합쳐 5% 정도로 추정되는 부동산 부자들은 큰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한 채가 고작이다. 이제 수도권의 웬만한 지역은 대부분 집값이 올라 이제 싼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 세대는 많은 돈을 주택에 깔고 앉아 소비를 줄여야 한다. 2억원이면 될 집을 5억원에 사게 되면 3억원 만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쓸 돈이 줄어든다. 사실상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자녀가 출가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 신혼 집 장만을 도와주는 것을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도권의 웬만한 평형 전세가 2억원에 이르고, 매매가가 4,5억원을 쉽게 넘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머리를 싸매지 않겠는가? 자녀들 집 장만 비용이 커지면 자신들의 노후 비용은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이치다. 자녀들의 집장만을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자식들이 높은 집값을 감당하느라 등골이 휘는 모습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처럼 부동산 거품은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국민 대다수를 사실상 더욱 가난하게 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가장 확실하게 서민들을 말살하는 게임이자,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게임이다. 부동산 부자 5%를 승자로 만들기 위해 선량한 국민 95%가 패자가 돼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도 집을 한 채라도 가진 상당수 국민들이 정부의 거듭된 정책실패와 기득권 언론의 선동에 휘둘려 집값 올리느라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자산양극화는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정치적 계급투쟁 양상까지 띠고 있다. 주택 소유여부에 따라 계급적 이해를 달리하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의 계급투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집값의 하향 안정을 바라던 사람들도 일단 거액의 빚을 지고 집을 산 뒤에는 180도 달라졌다. 거의 전 재산이 걸린 주택 가격이 올라주지 않으면 가계경제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변화가 정치적 태도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더해 부동산 투기 조장꾼들의 선동과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성 언론들의 왜곡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교’의 신도가 돼버렸다. “2004년 이전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를 외치던 여론이 다수였으나, 이후에는 부동산 규제 완화 여론이 다수가 돼버렸다”는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처럼 이를 생생히 입증하는 말도 없다.


집값을 둘러싼 계급투쟁은 급기야 정권을 교체하는 숨은 원동력이 됐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바라는 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권을 빼앗겼다. 임기 내내 건설족 정치인과 관료, 건설재벌, 그리고 기득권 언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운데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정책실패를 거듭했던 탓이다. 반대로 부동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은 현 대통령인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재임 기간 동안 모두 32개의 뉴타운을 지정해 서울 강북 집값을 거세게 밀어 올렸다.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7.5%를 한꺼번에 개발하게 한 탓에 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전세난 등 서민 주거난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또한 경부 대운하 등 각종 개발 공약과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 등을 통해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메시지로 집권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현 정부에게 부동산은 재개발 철거민들을 ‘법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권력살인을 하는 것조차 합리화할 만큼 신성시됐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수준을 넘어 ‘강부자 정권’ 자신들과 정치적 기반인 건설업계 및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온갖 특혜성 정책들을 남발했다.


이렇게 볼 때 부동산 거품을 꺼뜨리지 않고서는 절대 서민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 거품 부양에 목숨 건 현 정부는 이미 태생부터 최악의 반서민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말끝마다 ‘서민 정부’임을 내세우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동원된 온갖 경기 부양책의 명목도 대부분 서민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같은 것이었다. 현 정부가 쏟아내는 수사나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서민들을 우선 배려하라”는 주문을 쏟아내고 재래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사먹기도 했다. 새벽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신빈곤층’ 가정 어린이와 통화하며 울먹이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을 접할 때마다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실제 정책은 특권층을 위한 기득권 위주로 운용하면서 서민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생색내기 쇼라는 게 너무나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서민가계에 돌아가는 혜택은 늘 쥐꼬리만했다. 오히려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는 등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의 지원과 보장을 줄이기까지 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마트의 상권 잠식 때문에 한탄하면 “옛날에는 (국민들이) 죽어지냈는데 요즘에는 할 말 다한다”는 식으로 윽박질렀다.


현 정부는 ‘친서민’을 부르짖지만, 실제 그들의 정책 속에는 서민이 없다. 말끝마다 친서민을 내세우지만, 정책은 늘 반서민이었다. 당장 미국 부시행정부가 실시했던 감세안을 흉내내 현 정부가 실시한 감세안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안 혜택의 70%가 중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고 떠벌렸지만 실제로는 감세 혜택의 80%가 철저히 부유층과 매출 1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돌아간다. 더구나 현 정부는 감세 규모가 5년간 100조원에 육박하는 사실을 숨기고 36.5조원이라고 지금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한 해에만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 GDP 대비 5%를 넘는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부가가치세와 에너지세, 주세 등 간접세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간접세 비중이 높아지면 역진성으로 인해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같은 감세안에 대한 민심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번에는 ‘친서민 세제’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분칠을 시도하고 있다. 1조 9500억원짜리 각종 세제 혜택을 내놓았지만, 기존에 시행되던 것을 연장하거나 이미 예정됐던 방안들을 제외한 감면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친서민임을 내세우기 위한 어설픈 짜깁기 임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친서민’을 떠벌일 이유도 없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친서민 정부인 것인데, 이 정부는 자신들이 제 발 저리니 말끝마다 친서민이라고 떠벌일 뿐이다.


결국 현 정부가 말하는 ‘친서민’은 자신들이 ‘친재벌’과 ‘친부유층’을 눈속임하기 위한 사기술에 불과하다. 말로는 서민 경기부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를 실시해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4대강 강바닥에 2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으며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과 소수 재벌 건설업체들에게 온갖 퍼주기를 일삼으면서도 현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피해본다’고 선량한 서민들을 세뇌시켰다. 당장 숨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건설족 정부’에 엉겨 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아니면 집값이 오를 때 빚을 내 집을 여러 채 사들였다가 이제는 ‘집값을 올려 달라’고 댕댕거리는 다주택 투기자들이 서민이라는 말인가.


오히려 현 정부 들어 서민 경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공동체의 유대는 깨지고 있으며 각 개개인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해지는 ‘만성불안사회’가 되고 있다. 기득권에만 유리한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 편법 승계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이 사실상 법의 지배를 벗어난 특권세력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고 집값이 폭등해 결혼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다. 국제중과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을 통해 사교육비를 늘리는 정책을 만들고 ‘사교육비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파렴치한 정부다. 수십 조원의 돈을 강바닥에 쳐바르면서도 가뜩이나 빈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외면하는 정부는 결코 친서민 정부일 수 없다. 특권층의, 특권층에 의한,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 정부일 뿐이다. 

by 선대인 2010. 8. 2. 09:32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며 일반가계들을 현혹하기 바빴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신문들이 다급해지자 이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당장이라도 한국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며 DTI규제를 풀어서라도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당초 22일 발표 예정이던 DTI대출 규제 완화 등 추가 부동산 부양책 발표가 일단 연기되긴 했지만, 정부가 계속 과도한 집값 거품을 떠받치고 DTI규제를 풀어서라도 가계에 빚을 권한다면 이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 140%를 상회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더 늘리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바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소수민족 그룹 위주의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모기지 대출을 해준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마당에도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근시안적 탐욕의 발로라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소득 대비 부채 규모를 제한하는 DTI규제는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 관행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한편 금융시스템 위기를 보호하는 긴요한 장치다.

 

일부에서는 DTI 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많지 않다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 금융권의 대출 실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진국 금융기관 대부분에서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credit rating)을 통한 대출이 정착돼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신용평가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의 후진적 대출관행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따라서 DTI규제는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신용평가를 통한 대출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미 느슨한 금융규제로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가들조차 금융 규제를 재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DTI규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당이다. 그리고 DTI 비율이 이미 40~50%로 정해져 있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액의 40~50%에 이르는 것도 매우 과도한 빚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더 늘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DTI를 완화한다고 해도 이미 구조적으로 주택 수요가 거의 고갈된 주택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DTI 규제완화나 다른 부양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집값이 꺼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한 가계들이 지난해처럼 무리하게 주택시장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2008년 10월 이후 정부가 DTI 규제를 푼 뒤 2009년 초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반등했기 때문에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에서는 DTI 규제를 풀면 주택 가격이 금방이라도 반등할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해 수도권의 주택 가격 반등은 급격한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2%의 사상최저금리 유지,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 50조원에 이르는 적자재정 부양책, 각종 부동산 세금 감면책, 미분양 물량 매입 및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와 같은 조치 등 전방위적인 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다. 이 같은 ‘부동산 올인’ 정책을 통해 이미 거의 바닥나 버린 주택 수요를 마른 수건 쥐어짜듯 짜내 만들어낸 것이 지난해의 일시적 반등이었다. DTI 규제는 이처럼 전방위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집값이 반등하자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반 가계들이 자금을 동원하는 가운데 돈줄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DTI 규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동산 부양 기조가 거의 그대로인 상황에서도 이미 주택시장이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는 주택시장의 전반적인 버블 붕괴 압력 때문이지 DTI규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이는 <도표1>을 보면 좀더 명확히 드러난다.

 

<도표1> 전국 및 수도권 광역시도 주택대출 추이

 

지난해 DTI 규제를 도입한 이후 몇 달 간은 잠시 주택대출 증가액이 감소하거나 주춤해졌으나 이후 올해 3월부터 최근으로 올수록 다시 주택대출은 상당한 폭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 거래량은 급감하고 주택가격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이는 주택 가격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남은 잠재 수요자들의 소득 여력이 취약해 주택 거래가 일어나려면 상대적으로 가구당 부채를 더 많이 일으켜야 하는 상황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 <도표2>와 같다.

 

<도표2>

 

필자가 아파트 거래량과 가계 부채 증감액과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추정해본 결과 아파트 거래량이 거래 활성화 시기인 2000년대 초반이나 2006년 말 수준으로 늘어나려면 분기별로 32.4조원(도표에서 가상의 경우)이나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올해 3~5월 가계 부채 증가량은 2.5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금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얼마나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 이미 주택수요가 고갈된 시장을 떠받쳐 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즉, 이는 DTI 규제 완화 정도로 지금의 집값 거품을 떠받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력과 행정력을 비축해뒀다가 진짜 다급할 때 써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 광고에 목 맨 대다수 언론들은 정부더러 부동산 부양을 위해서라면 이미 누적된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한데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고, 가계부채를 늘려서라도 투기적 거래라도 일어나게 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는 “집값 떨어진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물귀신처럼 멀쩡한 가계들을 집 가진 빈자인 하우스푸어(house poor)의 행렬로 끌어들이는 선동보도에 여념이 없다. 이들의 정말 ‘물귀신 작전’ 같은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접하면 마음 한 켠으로는 정말 DTI규제를 확 풀어 안 그래도 죽어가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DTI 규제를 풀면 약발을 지켜보기 위해 몇 달간 매도를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이미 부동산이 매우 위태롭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이 확인한 마당에 과거처럼 빚내 얼마나 덥석 집을 살지 의문이다.

 

이미 다이어트 중인 은행 또한 얼마나 과감히(?) 빌려줄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만났던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DTI규제가 풀린다 해도 과거처럼 적극적인 대출을 할 은행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DTI규제를 완화했을 때 생각했던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려 버블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에서 DTI규제 완화 효과가 별무소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DTI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것은 이 조치가 결국 가계들을 제물로 삼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을 소진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은 진척되지 않았는데, 이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가계 빚을 더 많이 내도록 부추긴다면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정부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거품 잔뜩 묻은 아파트 폭탄을 받아줄 ‘잠재적 하우스푸어’들을 계속 양산하려 하기보다는 이제라도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통해 하우스푸어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투기 선동세력들의 마지막 선동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이들의 선동에 넘어가는 순간 ‘잠재적 하우스푸어’가 될 초청장을 받아든 셈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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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7. 30.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