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금융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환율폭등 및 주택가격 급락, 이에 따른 금융권 위기 등이 겹치면서 한때 그 같은 우려가 증폭된 적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잦아들면서 잊혀 졌던 이 질문이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부동산 거품과 이와 연계된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하면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경제전문가들 상당수가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그리고 현재 유럽의 부채위기도 결국 비슷한 문제에서 비롯됐다. 한국도 비슷한 위기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이 급격한 금융시스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낮다는 언론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계부채 폭탄은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 가계부채는 한국은행 가계신용 기준으로 2000년 1분기 222.2조원에서 2013년 3분기에 990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13년 여 만에 가계신용이 768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다. 더구나 가계부채 문제는 최근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노무현정부 5년 동안 가계부채가 202조원 증가했는데, 이명박정부 5년 동안에만 290조원이나 증가했다. 이명박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고 부동산 거래 침체가 지속됐는데도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정부 때보다 더 많은 가계부채가 늘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명박정부는 가계부채를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더욱 악화시켰다. 첫째, 다른 나라가 부동산거품을 빼고 가계부채를 줄일 때 오히려 가계부채를 막대하게 늘렸다. 둘째, 보험사, 대부업체, 신용카드 할부까지 금리 부담이 큰 가계부채를 늘려 가계부채의 질을 악화시켰다. 특히 카드할부구매액은 2003년 카드채 사태 당시 47조원을 훌쩍 넘어 54조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미 빚을 빚으로 돌려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수도권을 넘어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던 지방의 가계부채까지 크게 늘리고 악화시켰다.
이 같은 가계부채 수준은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개인 금융부채를 개인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가계부채 비율이 2012년에 164%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 미국의 같은 비율 131%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더구나 미국은 이 비율을 107% 이하로 낮추는 등 대다수 나라들이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나선 사이 한국은 금융위기 전 145% 수준이던 이 비율을 더욱 높여놓은 상태다.
가계부채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나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전세금 규모는 부동산업계 추산에 따르면 최소 600조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는 집 주인이 투기적 목적이 아니라 여유 있는 주거공간을 세입자에게 전세로 준 경우도 있겠지만, 전세를 끼고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여러 채 산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전세금의 절반인 300조원을 주택 소유자가 금융회사 대신 세입자에게 빌린 돈이라고 보면 현재 가계부채는 2013년 3분기 기준 990조원 수준에서 1290조원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주택담보대출액은 410조 원 수준이지만 전세금의 절반만 포함해도 바로 710조원 수준으로 급증하게 된다.
한편 주택담보대출 399조원 외에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은행권 207조원을 포함해 전체 금융권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233.4조원에 이른다. 또한 건설업체들의 주택건설사업 등에 대출된 PF대출 잔액이 금융권 전체로 약 46.7조 원 가량 된다. 이 세 가지만 따져도 현재 부동산 관련 대출은 679.1조원에 이른다. 향후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라 부실화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이 정도에 이른다는 뜻이다. 기업의 시설자금 대출 일부 등 사실상 부동산 관련 대출은 더 된다고 봐야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부동산 대출이나 가계부채 규모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금융위기 가능성을 낮게 점칠 수 있는 조건들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은 복잡하게 얽힌 금융파생상품이 도미노처럼 부실해지면서 초대형 금융사고로 비화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파생상품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국내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을 낮게 볼 수 있는 근거다.
반면 3~5년 정도의 거치기간 이후 원리금 상환액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풍선식 대출(balloon payment)이 90%를 넘는 주택담보대출 구조는 한국이 훨씬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풍선식 대출은 ‘옵션 ARM’이라고 불리는 일부 대출상품 외에는 거의 적용되지도 않았다. 이 같은 풍선식 대출은 미국 대공황기 이전에 성행했으나, 부동산 폭락을 부른 주요 요인으로 지적돼 대공황기를 거치면서 미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실제로 미국의 주택모기지대출은 보통 20% 이상의 선금(downpayment)을 내고 원리금을 오랜 기간에 걸쳐 균등 분할 상환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한국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대책의 하나로 장기 원리금 균등 분할상환 구조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도 지금의 국내 대출구조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한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는 다른 주요한 근거는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낮은 LTV 비율이다. LTV 비율은 주택 가격 대비 주택대출액의 비중을 나타낸다. 이 비율이 낮으면 집값이 하락해도 그만큼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금융권의 LTV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특히 제1금융권의 급격한 시스템 붕괴 위험이 현재로서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TV비율이 낮다는 것은 금융권에 대한 보호막은 되지만 일반가계에 대한 보호막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일반가계 입장에서 주택자산가치 대비 차입 비율이 어떤지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려면 한국의 경우 전세금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는 전세 제도가 없고, 이로 인해 전세금을 레버리지로 삼아 집을 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세금도 분명히 계약만료 시에 주택 소유주가 세입자에게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이다. 특히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전세를 끼고 두세 채씩 집을 사는 방식의 투기가 극성을 부렸던 만큼 전세금 가운데 상당부분은 부동산투기에 동원된 차입금이라고 봐야 한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이 은행에서 3억 원 대출을 받아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서 2억 원에 전세를 놓고 그 전세금에 다시 3억 원을 대출받아 또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식으로 말이다. 이 경우 A는 은행대출 6억 원에 5억 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은행대출 6억 원과 전세보증금 4억 원으로 5억 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산 것이다. 전세보증금을 합산한 일반가계의 주택차입 비율은 매우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말 경제위기 때 본 것처럼 주택가격이 급락하면 전세가격도 동반하락하게 된다. 만일 2년 후에 세입자가 이사를 가게 되면 전세가격 하락분만큼 A는 추가로 은행대출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파트 두 채의 담보가치가 주택가격 하락으로 떨어졌으므로 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A는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주택가격은 연쇄적인 하락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미 이런 현상이 실제로 수도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말(수도권 핵심지역) 또는 2008년 중반(수도권 외곽) 이후 강남 3구를 비롯한 서울 전역의 실거래가도 이미 15~20% 가량 하락한 상태다. 용인, 분당, 평촌, 일산, 김포, 파주 등 상당수 수도권 도시들에서는 2008년 말 수준인 30~40% 가량 하락한 상태이다.
LTV 비율은 이미 상당 폭 떨어진 실거래가와는 달리 여전히 부동산중개업소들의 호가에 근거한 국민은행 가격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실거래가는 국민은행 호가보다 상당히 더 떨어져 있는데,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수도권의 LTV 비율은 더 올라가게 된다. 실제로 우리 연구소가 MBC 수첩>팀의 의뢰로 경기도 파주시 한 아파트 933세대의 부채 실태를 분석해 본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아파트의 경우 84.5%가 대출을 얻었고, 대출 받은 가구의 전체 평균 대출금액이 3억 원이 넘었다. 그런데 호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와 실거래가를 적용했을 때 LTV 비율이 크게 달라졌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부동산 시세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고부채 가구로 분류하는 LTV 비율 60%이상 가구 비중이 이미 50.2%로 절반을 넘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은행권에서 적용하고 있는 국민은행 시세를 기준으로 한 LTV 비율과도 유사한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면 60%이상 가구 비중이 61.6%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LTV 비율 100%이상인 가구는 1.8%에서 15.1%로 급증했다. 더 심각한 것은 대출금에 전세액까지 포함할 경우 LTV비율은 100이상이 절반에 육박하는 47.9%에 이르게 되고, 최근 경매낙찰가율인 70% 이상 가구 비중만 71%에 이르렀다. 이들 가구는 이미 깡통아파트인 셈이다.
더구나 금융권의 주택대출 만기상환 연장 등의 조치로 이자만 내는 상태인 가계들이 전체 주택대출의 76%에 이른다. 거치기간이 끝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지만 정부와 금융권이 거치기간 연장을 통해 몇 년 째 이자만 내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상 최저금리에 대부분의 주택대출자들이 이자만 내는 상황에서도 부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택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폭탄 돌리기’를 계속할수록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대출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2012년에 거치기간이 끝나는 일시상환 대출 규모는 55.9조원이고, 분할상환 규모는 19.6조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치기간을 계속 연장하게 되면 2015년에는 일시상환과 분할상환의 만기 도래액이 각각 두 배와 네 배로 커지게 된다. 그만큼 금융시스템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국내 주식과 채권시장에는 외국인 투자 자금이 급증한 상태다. 경제위기 시 이 같은 자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요동치게 된다. 또한 대외채무가 사상 최대로 급증한 상태여서 국내 금융권이 단기 외채 차입금 상환 압력에 직면할 경우에도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처럼 어느 쪽에서 먼저 위기가 발생하든 금융위기와 외환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위기를 증폭시킬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진작 부동산 거품을 빼고 부채 다이어트에 나섰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빚 갚기를 미루어왔다. 말로는 연착륙 대책이라고 포장했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부채 규모를 키워 경착륙을 부르는 대책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위기의 순간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아직 시중은행은 재무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분할해서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면 시스템적인 금융위기는 피해가면서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폭탄 돌리기에 나선다면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가 알라딘 종합 3위, 전국출판인협회가 집계하는 전체 서점 종합으로는 12위까지 올랐습니다. 많은 분들 성원 덕에 부동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좀 더 많은 분들께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상세 목차: http://www.sdinomics.com/data/blog/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