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월17일) 통계청이 '2월 고용동향'을 내놓았습니다.
실업률은 4.9%로 1월(5.0%)보다 미미하게 하락했지만, 지난해까지 3%대 실업률을 유지하던 수준에서 여전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실업자 수는 116만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4만4000명 증가했습니다. 또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0.0%를 기록해  두 자릿수로 치솟아 청년 실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이 같은 공식 통계 이면의 고용상황은 훨씬 더 열악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지만, 오늘은 고용의 질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까 합니다. 아래 <도표1>에서 36시간 미만 취업자수와 36시간 이상 취업자수의 추이를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8시간 미만과 36시간 미만 불완전 취업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 2월에는 35.2%까지 치솟았습니다. 반면 36시간 이상 취업자수도 2000년대 초반 90%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추세적으로 85% 수준까지 내려왔고, 단기적이지만 2월에는 62.0%까지 떨어졌습니다.


<도표1>



계절조정을 하면 상대적으로 진폭은 작아집니다만, 아무리 단기적이라고 하더라도 36시간 미만 취업자 수가 35.2%까지 치솟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고용구조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해가 바뀌면서 단기근로 등으로 계약이 끝난 사람들이 잠시 단시간 일자리를 하는 것으로 보더라도 너무나 높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고용구조가 불안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국내 고용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였고, 상당수의 취업자들이 갈수록 단시간 근로와 같은 불완전 고용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에 따라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추세적으로 2000년대 초반 주당 50시간을 넘다가 최근에는 45시간까지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올 2월에는 38.1%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주5일제의 확산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로 주당 취업시간이 급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표2>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른바 '알바' 자리와 같은 불완전 취업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그렇지 않아도 치솟은 부동산가격으로 땅값은 금값이 됐지만, 정리해고 남발과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사람값은 똥값이 됐습니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지나치게 부풀어오른 땅값을 내리고 상대적으로 사람 값을 올려야 한다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또한 당위적으로는 그 같은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세계 각국 선진국의 인건비가 비싼 것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닙니다. 높은 인건비에서 양질의 노동력과 생산성이 나오는 것이고, 그 같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향상된 임금 소득이 내수기반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동산 값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떠받치고 가뜩이나 똥값인 사람 값은 낮추기 위해 혈안이 돼왔습니다. 그러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희망근로사업'과 같은 사업이나 대규모 토건사업 추진을 통해 단기 일자리와 일용직만을 양산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위기 속에서도 실업률을 3%대로 유지했다며 떠벌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작태일 뿐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의 실제 일자리가 이렇게 불안해지고 있는데, 수치놀음을 하고 여론조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용사정부터 제대로 인식하려 하지 않는 정부에게 무슨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겠습니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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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3. 18. 12:14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중수 OECD대사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내정됐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한은의 금통위에 참석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겠다고 해 한은의 정치적 독립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수준의 경기회복과 물가 인상 압력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잇따르는데 대한 정부의 한은 압박용 카드로 인식됐다.

 

그런데 이제 현 정권은 후임 한은총재 내정을 통해 이제 직접 통치에 나서게 된 것 같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김내정자의 내정 직후 첫 황당하기 짝이 없는 첫 발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며 국가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또는 중앙은행 정치적 독립성의 의미를 깔아뭉개고서라도 현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은의 정치적 독립은 바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이해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정권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말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빼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바로 정치적 독립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내정자는 이 같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이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과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 마치 별개인 것처럼 황당무궤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사실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그런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다수당에 의해 운영된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중앙은행은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니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나타낼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정책적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지난해 초 오바마정부는 5,000-1조 달러의 관민공동펀드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미 재무성과 연방준비이사회(FRB)는 상호간에 FRB의 정책적 독립성을 확인하는 4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 재무성과 FRB간에 중앙은행으로서의 FRB의 독립성과 건전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 합의문 서두에서 FRB는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책무와 더불어 물가안정과 실업 억제를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받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 재무성과 FRB는 이 합의문에서 다음과 같은 4개항의 원칙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첫째, 단기금융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미 재무성과 FRB는 상호 협력한다.

 

둘째, FRB는 미 재무성이 실시하는 구제금융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용위험과 구제금융 책임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 즉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의 책임은 미 재무성에 있으며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FRB가 대량의 부실자산을 떠안아 FRB마저 신용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실금융기관 구제금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미 정부가 져야 하며 중앙은행인 FRB가 그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셋째,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을 위해 FRB 고유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FRB 통화정책의 본연의 책무는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 재무성의 과도한 구제금융으로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할 경우 FRB의 통화정책은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미 재무성과 FRB는 금융시스템 실패를 방지하는 대책 마련에 있어서 미의회에 대해 양자가 포괄적인 공동책임을 진다.

 

이상의 합의문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정치적 책임과 정책적 독립성 영역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과도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중앙은행에 부실자산 등을 떠안기거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 무리한 양적 통화확대로 대차대조표가 부실화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중앙은행이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중앙은행에게 정치적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그 경우에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앙은행은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과 고용 안정에 대해서만 정책적 책임을 질 뿐이라는 것이다. 합의문이 최대 1조 달러의 오바마정부 금융안정화대책과 동시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 미국에서 이 같은 합의문을 체결했을까.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떤 이유로든 훼손됐을 때 어떤 막대한 폐해가 뒤따랐는지, 미국 사회가 똑똑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실제 국민들의 삶과는 상당히 유리된 지표상의 수치를 통해 자신들의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탐욕에 빠져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나치게 우선하는 경제정책들을 남발할수록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기본책무로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당하기 쉽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정치적 책임을 우선하는 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일종의 자동안정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동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되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가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경제의 위기는 부시정부 때에 이런 오류를 범한 결과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내정자의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다. 김내정자는 한은도 정부라고 말하고 이를  정책공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그 같은 인식이 바로 한은의 정치적 독립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인식이 바로 가뜩이나 경제위기의 여파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경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아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제대로 확보된 선진국에서 중앙은행 총재 내정자가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면 중앙은행 내정자로서 기본적인 자격이 없다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지만, 대체로 별 문제가 없다는 투다. 이미 대다수 언론이 현 정권의 채찍과 당근에 의해 장악된 마당에 그런 비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망이다. 다만 한은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깔아뭉개는 사람이 한은을 이끌 때 생겨날 경제적 부작용과 혼란이 미리 염려될 뿐이다. 그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이 땅의 서민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3. 17. 09:46

 

정원의 휘어진 나무는

땅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가 휘었다고 욕을 한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중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경제가 뭔가 단단히 잘못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의 이런 부분, 저런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얘기한다. 맞다. 경제의 여러 부분을 고쳐야 한다.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서도 주택 정책과 금리 및 조세와 관련한 각종 정책과 제도를 고치고 바꿔야 한다. 그런데 주택 정책과 금리 정책, 조세 정책은 누가 결정하는가. 정부와 정치권이다.


현실의 경제는 정치적, 정책적, 사회적 진공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 현실의 경제는 정치와 정책, 언론 보도와 여론 등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정치는 경제라는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이지만, 경제는 정치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일 수도 있다. 시인이 노래했듯 토양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휘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하지 못한 나무에서 자란 열매 또한 알차지 않다.


마찬가지다. 건전한 경제구조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건전한 정치적, 정책적 환경이 자리 잡아야 한다.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서도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른 처방을 제때에 실행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갖춘 정치세력과 정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마땅한 정책능력을 갖추지 못한 현 정부로는 국민경제 전체를 위한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다. 국민경제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말든 당장 집값 거품 떠받치기에 급급한 정부가 어떻게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건전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건전한 경제구조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확립돼야 한다. 정부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정확히 구분한 위에 올바른 정책을 기획-집행-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유대와 신뢰가 튼튼한 사회에서 시장경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반칙과 사기, 담합이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경제 또한 일그러지기 십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처벌하는 사법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 재력가 한 사람의 목소리가 평범한 서민 만 명의 목소리보다 더 큰 나라에서는 경제 또한 뒤틀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대북 문제 등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패러다임과 게임 규칙을 우리는 확립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중산층 서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큰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됐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전 국민 절반의 비정규직화, 극심한 청년 실업, 출산율 하락과 자살율 급증, OECD 최장 근로시간과 최고 산재사고율 등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이 사람들을 좌절케 했다. 이런 사회경제적 고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서민들에게 집중됐다. 서민들은 민생고를 해결해달라고 거듭 아우성쳤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정부는 서민들의 고충을 해소하지 못했다.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걸맞은 건전한 경제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채 낡은 기득권세력과 상당 부분 타협하고 굴종했다. 물론 그만큼 기득권 세력의 힘이 강고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정부가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진짜 개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음은 분명하다.   


진짜 개혁의 좌절과 서민 경제의 지속되는 악화는 정치적 반동을 가져왔다. 독일이 1차대전의 전쟁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선거를 통해 히틀러를 택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 또한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병든 경제라는 나무가 부실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현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이뤄온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의 성과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고 있다.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은 시간이 갈수록 권위주의 시절 마냥 정권의 주구로 변질되고 있다. 낡은 틀을 벗지 못한 정부 관료들 또한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거듭되는 정책실패로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법 체계 또한 삼성에버랜드 사건 대법원 판결 등에서 보듯 법의 잣대를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구부리는 경향이 여전하다. ‘신영철 대법관 파동’ 등 일부 개혁적 움직임이 있지만 근본적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것은 언론이다. 여전히 신문시장에서 현 정권과 유착한 기득권 언론이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가운데, 현 정부의 집요한 방송장악 시도로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이처럼 낡고 부패한 정치, 시대착오적인 관료체제, 편파왜곡보도에 찌든 언론, 서민과 특권층을 차별하고 전관을 예우하는 사법체계를 두고 한국 경제가 건전한 선진경제로 도약하기란 어렵다. 필자가 줄기차게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을 비판하고 언론의 왜곡보도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추후 구체적으로 다룰 기회가 다시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전반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연대의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산업 위주로 한국의 산업구조는 확 바뀌었다. 이 같은 경제 및 산업구조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지 않고 자산경제와 생산경제가 조화롭게 선순환하며 성장하는 나라. 지식정보화시대를 선도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나라. 공정한 게임 규칙에 따라 출신과 배경이 아닌, 능력과 노력이 성공의 핵심이 되는 나라.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적 변화를 국민 대다수가 갈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명박 정부로 대변되는 시대적 반동에 굴복하고 새 희망을 가꾸지 못한다면 한국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여기까지 전진해온 우리 국민의 저력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쉽게 주저앉을 리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기력감을 많이 느낀다. 원고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필자도 많이 울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마음도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마저 비운에 가야 하는 이 땅의 서글픈 현실 때문에 울었다. 필자는 그를 많이 비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권위주의 타파 등을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그의 말과는 달리 건설족 관료들에게 임기 내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한숨짓고 분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에 버림받고 결국 정권까지 놓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정권 치하에 살고 있다.


이처럼 형편없는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공동체의 토양이 되는 경제 패러다임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치권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확립할 구체적 정책과 대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민생’을 외쳤지만, 문제 해결의 근본적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반도 대운하’라는 개발공약 외에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어 보이는 이명박 정부는 그렇다 치고 국민이 만들어준 과반수 정당의 우위 속에서도 ‘진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던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섰지만, 이를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로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다’ ‘그래도 현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당장은 민주당을 밀어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정도로 봐야 한다.


한 번 물어보자. 무지와 무능, 사악함으로 점철된 현 정부가 물러간다고 ‘믿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정치 세력이 있는가.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지금 한국이 당면한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춘 정치 세력이 있는가. 말로만 서민중산층 정당일뿐 서민중산층을 위한 문제해결 역량도 없고, 아직도 자기 정체성을 못 찾고 헤매는 민주당이 우리의 미래인가. 아니면 시대 인식과 비전이 개발주의 시절의 국가주의적 관념에 고착돼 있는 박근혜와 그 추종세력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가. 아니면 낡은 이념과 편협한 노선 투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어느 정치 세력 하나 제대로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기력감과 동시에 결연한 책임감 또한 느낀다. 이 나라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정치세력, 기득권세력들만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아닌 탄탄한 공동체 기반 위에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우뚝 세울 정치세력이 지금 없다면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도 혼자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편협함에 빠져 자기들의 지지기반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부시 행정부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함께 일궈낸 기적이다. 추종자론(followership)의 대가인 바바라 켈러먼 교수의 말을 굳이 빌려오지 않더라도 “좋은 추종자들이 좋은 지도를 배출한다”는 상식을 여실히 입증한 것이다. 우리라고 못 할 리 없다.


그러한 변화와 기적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20대에서 40대 전반의 젊은 세대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변혁을 주도한 것은 젊은 세대였지, 결코 기성세대가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가 국가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부터 47세의 젊은 대통령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지금 많은 선진국에서는 40대, 심지어 30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경륜과 관록보다는 스피디한 변화와 창발적인 개혁을 세상은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의 60,70대 ‘올드보이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대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주도할 수 있는 세대는 젊은 세대다.


더구나 낡은 경제 패러다임과 불공정한 게임규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고통받는 세대 또한 젊은 세대다.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88만원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거액의 교육비를 들여 자신을 갈고 닦은 젊은이들에게 낡은 기득권 세력은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실패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고 젊은이들만 눈이 높다고 윽박지른다. 오른 집값에 결혼도 하기 힘든데 대졸 초임까지 깎고, 일자리 만든다며 젊은 세대가 나중에 쓸 돈을 끌어와 각종 단기 ‘알바’ 자리를 양산하고서는 생색을 낸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30대는 대부분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면 손만 빨고 있어야 했다. 개발연대의 획일적 사고방식에 갇혀 제대로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자기계발시간도 없이 세계 최장시간의 과로에 시달려야 한다. 향후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후세대를 부양할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세대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미래의 재원까지 당겨와 강바닥을 파헤치는 등 대규모 토건사업에 쏟아 붓고 있다. 이처럼 낡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젊은 세대가 왜 판판이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이 막대한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결정을 왜 소수 기성세대가 하도록 빤히 보고 있어야 하는가.


부모세대에게도 호소한다. 필자가 세대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필자는 부모 세대가 자식세대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흘린 피와 땀, 눈물을 잘 안다. 필자의 부모만 하더라도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뜨거운 뙤약볕 아래 그을리고 손발이 부르터가며 농사를 지어 자식들 교육을 시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 다수의 부모들이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했다. 부모세대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 한국경제가 보릿고개를 넘어 이 정도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부모세대들이 자식세대가 잘 되는 것을 위해 언제든지 양보하고 물러날 자세가 돼 있다고 믿는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에 눈이 멀어 낡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일 뿐이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 때문에 국민들 전체가 ‘축구장의 바보들’로 전락해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식세대가 끌고 부모세대가 밀어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쩡한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기득권 세력을 타파해야 한다. 전 국민이 합심해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의 동시대인인 젊은 세대에게 호소한다. 제발 정치를 멀리하지 마라. 정치는 더러운 것, 사기치는 것, 뻔뻔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버려라. 필자가 케네디스쿨에서 유학하는 동안 느꼈던 문화적 충격가운데 하나는 ‘정치는 고귀한 책무’라는 인식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정치 선진국에서 온 학생들 대부분은 정치는 개인이 국가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공봉사(public service)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케네디스쿨의 교수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물론 공중을 위한 봉사가 늘 정치일 필요는 없다. 몸담은 곳이 언론이든, 시민단체든, 정부든 공중을 위한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거꾸로 그것이 정치라고 해서 피할 필요가 없다. 정치는 사이코나 철면피, 또는 강심장들이나 한다는 생각을 제발 버려라.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정치는 더럽다’는 인식을 더욱 조장한다.  정치는 더럽다는 인식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정치에 발을 담그는 것을 회피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이다. 물론 현실의 한국 정치는 온갖 적폐로 넘쳐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젊은 인재들이 정치를 멀리하면 할수록 정치의 수준은 더욱 더 떨어진다.


필자가 기자로서 지켜본 정치판 인력(=정치인과 그 보좌진 및 정치인 지망생들)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도덕성으로 볼 때는 한국사회의 평균적 수준을 유지하지도 못한다. 물론 개중에는 매우 능력 있고,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더럽고 낡은 기성 정치판에 좀 더 잘 적응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왜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를 부패한 사람들의 손아귀에 맡겨놓는가.


필자가 아내 때문에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시티홀’에서 작은 지방도시의 시장에 당선된 신미래가 바로 진짜 정치인이다. 거대한 건설토목사업에 헛돈 쓰지 않고, 작더라도 서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신미래가 진짜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치인이다. 정치술수에 닳아빠지고 지역 토호들과 유착된 정치인보다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시장 커피 타던 30대 젊은 여성이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점점 전문화해가는 세상 속에서 전문적 역량을 대중적으로 검증받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 정치판 인력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정치를 경원시하는 것은 안타깝다.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을 갖추고 도덕성과 전문 역량으로 뭉친 인재들이 우리의 지자체와 지방의회, 중앙 정치무대를 주도할 때 한국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왜 썩어빠진 낡은 세력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놓고서 그들이 우리 뜻대로 안 한다고 욕 하는가. 이제 도덕성과 전문성으로 중무장한 젊은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 직접 나서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꿈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미국 젊은이들을 대거 투표소로 끌어낸 것은 오바마로 상징되는 변화요, 개혁에 대한 열망이었다. 미국의 젊은이들도 인터넷을 주무대로 그러한 희망을 스스로 만들고 참여했다. 그리고 함께 승리했다. 우리 젊은이들도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고 믿는다. 지금 젊은이들은 그동안 기득권의 게임 규칙에 갇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뿐 결코 역량이 없는 세대가 아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세계를 선도할 잠재력을 가진 세대다. 지금 이들 세대들이 주축이 돼 인터넷에서 함께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의 힘을 보라. 얼마나 대단한가. 이 힘들을 모으고 축적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한국판 ‘오바마 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 기적을 만드는데 부모세대와 자식세다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40여년 전 ‘나는 꿈이 있다’고 한 말이 지금 미국에서 현실이 됐듯이,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정치를 바꾸어야 경제도 바꿀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3. 11. 09:52

제 블로그 '불량사회'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지난주 연인원 방문자 수가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저도 의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우연히 제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알게 됐습니다.
한동안 다음 아고라에 글을 쓰면서 블로그 사용이 좀 뜸했다가 최근 다시 자주 활용하면서 방문자 수가 순식간에 늘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분들께서 이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면서 제 글을 애독해주셨는데, 뭔가 조그만 보답이라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블로그 방문자들 가운데 40분을 추려 책을 선물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책은
1. <세계경제지표의 비밀>(럭스미디어, 10권)
2. <통장의 고백>(더난, 30권)
입니다.
(사실 제가 책을 낸 적이 있었던 출판사들의 협찬을 받아 최근에 발간된 책 가운데 유익해 보이는 책으로 골랐습니다.^^;)

책을 받으실 수 있는 자격은 간단합니다.
이 글 아래에 비밀댓글로 댓글을 달아주십시오.
댓글 내용은 앞으로 저희 연구소 및 연구소포럼, 그리고
우리고 연구소가 발간하는 <경제시평>과 서적들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알리겠다 하는 내용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 우리 연구소를 소개하는 글을 직접 쓰거나 소장님 인터뷰 등을 올리거나 소개할 수도 있고, 다른 카페에 저희 연구소를 소개해준다든지, 직장동료들에게 우리 포럼을 소개하거나 운영위 가입을 독려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면 됩니다. 
또 이미 이런 작업을 하신 분들은 '나는 이미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니 책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아주셔도 좋습니다.
물론 제가 사후에 확인할 수 없으니 그냥 성심성의껏 노력해주시면 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약속하신 분들께 <세계경제의 비밀>을 우선 보내드리겠습니다. 책은 출판사에서 배송하도록 할 테니 댓글 내용과 함께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사가 종료되는 즉시 이 블로그를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참고로 두 권의 책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세계경제의 비밀>은 과거 타임지의 저명한 경제전문기자였던 버나드 보몰의 저서로 미국의 각종 주요 경제지표들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지표의 발표 내용과 의미 등을 자세하게 소개한 책입니다. 현재 각종 언론에서 인용되는 각종 지표들이 구체적으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미국과 세계 경제의 구조적 흐름을 읽는 방법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경제의 흐름을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곁에두고 참고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기사와 예스24 링크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2/e2010022617433794220.htm
http://www.yes24.com/24/goods/3714311?scode=032&srank=1


두번째 책인 <통장의 고백>은 저와 <부대시>를 같이 쓴 적이 있는 심영철씨가 최근 출간한 책입니다.
일반적인 재테크 책들과 다르게 기존의 금융상품의 문제점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보험상품은 매우 왜곡된 구조 속에서 사기성에 가까운 상품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 같은 보험상품의 이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와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22317052190495&outlink=1
http://www.yes24.com/24/goods/3713027?scode=032&srank=1



by 선대인 2010. 3. 9. 10:42



얼마 전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면 사실상 세계 최고인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푸는 일은 한국의 왜곡된 고등교육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위축된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의 경우 사립대의 비율이 거의 78%에 해당한다.


또한 대학 전반에 대한 정부 재정지출이 OECD국가 최저 수준이고 국공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수준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공립대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등록금 장사 등을 통해 배를 불리는 사립대와 경쟁하기 위해 국공립대들도 등록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연고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들은 학벌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실상의 서열 담합구조 속에 안주해 등록금 장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매년 치솟는 등록금을 잡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등록금 상한제와 대학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도입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은 사립대의 지나친 비대화/국공립대의 왜소화와 정부 재정투입 부족 등 대학 등록금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근본 구조를 도외시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에 도입하는 취업후 상환제는 한마디로 정부와 정치권의 파렴치한 생색내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높은 이자율(5.8%)과 복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근로자학자금 및 훈련비 대부(1~1.5%), 공무원학자금 대부(무이자), 군인학자금 대부(무이자), 교직원학자금대여(무이자) 등인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헝가리나 캐나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학자금 대출제도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빚 부담에 허덕이게 하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도표> OECD 회원국 대학등록금 대출제도 현황(2004/2005)




()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 사학재단들은 잘못된 고등교육 구조를 통해 일반 가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등록금 부담을 지게 하면서도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생색내기용으로 내놓은 취업후 상환제조차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돈놀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등교육 시스템 또는 교육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의사도 역량도 없는 현 정부와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물갈이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3. 9. 09:52

 

 20대 청년들의 비경제활동인구 수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같은 비경제활동인구는 사실상의 실업자로 정부가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20대 청년들의 고용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의 실업자들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업률을 낮추는 것은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래에서 연령대별 고용구조를 살펴보고, 20대의 고용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도표1>에서 연령대별 고용구조를 살펴보자. 연령대별 인구수 추이를 보면 저출산 추세의 영향으로 15~19, 20대 인구가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 또는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30대 인구 또한 감소 상태에 들어갔다. 40대 인구는 가파르게 늘어나다가 증가 폭이 둔화되는 반면 베이비붐 세대가 50대로 편입되면서 50대 및 60대 이상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연령대별 경제활동인구는 인구수 추이와 거의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령대별 경제활동참가율을 보면 15~19세 및 20대 등 청년층과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 최근으로 올수록 낮아지고 있는 반면 50대에서는 소폭 상승하고 있고 다른 연령대에서는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구직난에 따라 취업이 어려워지는 세태를 반영해 취업을 포기하거나 유보한 청년층과 노년층의 상당수가 비경제활동인구나 구직 단념자 등으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연령대별 비경제활동인구 추이를 보면 10대 후반의 비경제활동인구 수가 4,5년 전부터 크게 늘고 있으며 60대 인상 노년층의 비경제활동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사실상 취업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대거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표1> 연령대별 고용 상황 추이

 

 

()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연령대별 취업자수 추이를 보면 인구 및 경제활동인구의 증가에 따라 30대 이상의 취업자수 감소와 40대 이상의 취업자 수 증가 패턴을 보이고 있다. 연령대별로 취업자수를 인구로 나눈 연령대별 고용률을 보면 역시 20대 이전의 고용률은 계속 줄고 있는 반면, 30대와 60대 이상은 정체, 40대와 50대는 소폭 증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령대별 실업자수 추이를 보면 20대의 실업자수가 가장 많고, 이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실업자수가 점차 줄고 있다. 실업률 상으로는 10대 후반과 20대의 실업률이 상당히 높고, 30대 이후부터는 2~3%대 수준으로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듯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1%대 수준의 극도로 낮은 실업률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60대 인구를 은퇴와 동시에 취업 포기자로 간주해 대규모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이처럼 연령별로 볼 때는 사회에 새롭게 진출하는 청년층과 급속한 노령화에 따라 은퇴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노년층이 일자리 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20대의 고용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래 <도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50대와 60대의 고용률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증가하고 있다. 특히 55~59세 사이의 고용률은 경제 위기 이후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반면 20대의 고용률은 2005년 하반기 이후 떨어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20대 전반의 고용률은 2005 7월의 54.7%에서 지난해 말까지 43.6%까지 약 11.1%포인트나 급감하고 있다. 통계상으로는 청년 실업률이 여전히 7~8% 수준에 불과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대학 졸업생들이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용 사정이 악화돼 있는 것이다.

 

이는 취업자수 현황을 봐도 마찬가지다. 20~30, 특히 20대 취업자수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40대는 경제위기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반면 50~60대 이상의 취업자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경제위기 이후 20대의 취업자수 하락이 가속화되고 50대의 취업자수가 불어나고 있는 것은 눈에 띈다. 정부가 청년인턴제도 등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거의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약 2조원의 예산을 들여 실시한 희망근로사업의 경우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한 반면 일자리를 갖고 있지 않던 50대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대거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취업자로 편입됨으로써 취업자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도표2> 연령대별 고용률 및 취업자수 현황




 

() 통계청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하지만 이 같은 일자리 늘리기는 결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하기 어렵다. 지금도 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적자재정을 퍼부어 명목상의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으나, 재정적자 부담 등으로 더 이상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순간 일시에 사라지는 일자리인 것이다.

 

 

경제위기를 전후로 출범한 현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통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주는 반면 일반 국민들의 구매력은 크게 떨어뜨렸다. 이는 일반 국민들에게 환율 인상이라는 형태로 세금을 걷어 수출기업들에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한국은 경기회복의 과실이 가계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경제 구조와 현실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급 위주의 성장정책이 극단화되고 있어 매년 80조원에 이르는 공공사업 재원으로 각종 불요불급한 대형 토건사업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일자리를 늘리거나 국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리지도, 국민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부가 경기회복이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계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구매력과 소득이 늘어나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 더 나아가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3. 8. 10:16

고려대학교 기수 총장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교육의 질에 비해 매우 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교육 수요자인 대다수 국민들의 체감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한마디로 특혜를 누리는 한국의 대표적 사립대학의 오만과 자가당착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한국 대학의 등록금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는지 <도표1>을 참고로 사립대와 국공립대의 등록금(납입금)이 물가지수에 반영되기 시작한 1975년부터 2009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및 대학 유형별 등록금 추이를 살펴보자.

먼저 사립대, 국공립대, 전문대 등록금을 가릴 것 없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매년 등록금 상승률 추이를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사립대 등록금이 매년 10~30% 가량 가파르게 상승했고, 국공립대도 10~20%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는 70년대 중반부터 시행된 고교 평준화의 여파로 대학 진학자가 늘어나 대학들의 시설 확장이 필요한 데다, 70년대 말의 2차 오일쇼크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물가 급등과 외환부족 등의 경제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대학 등록금도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80년대 중후반에 물가가 진정됨에 따라 등록금도 한 자리수 상승률를 보였다.

그러나 1990~1996년까지 민주화 정부 출범을 전후로 대학 자율화 붐과 대학 설립이 난무하면서 다시 대학등록금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치솟던 대학 등록금은 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상승세가 주춤하다가 2000년부터 6~8%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가 지난해 경기 침체로 1~3%대의 상승률에 그쳤다. 2000년대에는 사립대와 국공립대의 등록금 상승률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도표1> 대학별 등록금 추이


(
)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사립)대학 등록금이 가계의 가처분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더 
상승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가처분소득 증가율에서 사립대학 등록금 상승률을 차감해보자. 90년대 초까지는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개인가처분 소득도 빠르게 증가해 대학 등록금이 가파르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등록금 부담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개인가처분소득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는 반면 대학 등록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여 가계들이 대학 등록금을 점차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대학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싸다는 이기수 총장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대학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싼지는 좀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 교육의 수요자인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알고 있다. 정말 한국 대학의 질이 우수하다면 왜 많은 대학생들이 외국 유학을 가고 있겠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글로 다루도록 하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대학 등록금 상승률은 국내 물가나 가처분소득 상승률보다 훨씬 더 빠르게 올랐다. 또 미국 사립대학의 등록금 상승률과 비교해 매년 평균 3~5% 정도 상승률이 더 높을 정도로 급격히 상승했다. 또 지역별로는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전공별로는 의대의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가계가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하거나 빚을 내야 할 정도로 이미 큰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고등교육의 민간부담, 즉 가계부담 비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한국의 가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녀들의 대학 학비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대부분의 일반 가계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벌 서열구조 속에 안주하면서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희희낙락하는 대학 총장들만 모를 뿐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2. 18. 17:43

고려대학교 기수 총장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교육의 질에 비해 매우 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교육 수요자인 대다수 국민들의 체감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한마디로 특혜를 누리는 한국의 대표적 사립대학의 오만과 자가당착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한국 대학의 등록금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는지 <도표1>을 참고로 사립대와 국공립대의 등록금(납입금)이 물가지수에 반영되기 시작한 1975년부터 2009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및 대학 유형별 등록금 추이를 살펴보자.

먼저 사립대, 국공립대, 전문대 등록금을 가릴 것 없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매년 등록금 상승률 추이를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사립대 등록금이 매년 10~30% 가량 가파르게 상승했고, 국공립대도 10~20%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는 70년대 중반부터 시행된 고교 평준화의 여파로 대학 진학자가 늘어나 대학들의 시설 확장이 필요한 데다, 70년대 말의 2차 오일쇼크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물가 급등과 외환부족 등의 경제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대학 등록금도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80년대 중후반에 물가가 진정됨에 따라 등록금도 한 자리수 상승률를 보였다.

그러나 1990~1996년까지 민주화 정부 출범을 전후로 대학 자율화 붐과 대학 설립이 난무하면서 다시 대학등록금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치솟던 대학 등록금은 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상승세가 주춤하다가 2000년부터 6~8%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가 지난해 경기 침체로 1~3%대의 상승률에 그쳤다. 2000년대에는 사립대와 국공립대의 등록금 상승률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도표1> 대학별 등록금 추이


(
)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사립)대학 등록금이 가계의 가처분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더 
상승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가처분소득 증가율에서 사립대학 등록금 상승률을 차감해보자. 90년대 초까지는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개인가처분 소득도 빠르게 증가해 대학 등록금이 가파르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등록금 부담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개인가처분소득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는 반면 대학 등록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여 가계들이 대학 등록금을 점차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대학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싸다는 이기수 총장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대학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싼지는 좀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 교육의 수요자인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알고 있다. 정말 한국 대학의 질이 우수하다면 왜 많은 대학생들이 외국 유학을 가고 있겠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글로 다루도록 하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대학 등록금 상승률은 국내 물가나 가처분소득 상승률보다 훨씬 더 빠르게 올랐다. 또 미국 사립대학의 등록금 상승률과 비교해 매년 평균 3~5% 정도 상승률이 더 높을 정도로 급격히 상승했다. 또 지역별로는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전공별로는 의대의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가계가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하거나 빚을 내야 할 정도로 이미 큰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고등교육의 민간부담, 즉 가계부담 비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한국의 가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녀들의 대학 학비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대부분의 일반 가계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벌 서열구조 속에 안주하면서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희희낙락하는 대학 총장들만 모를 뿐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2. 18. 10:21

 

고려대 이기수 총장이 한국대교협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교육의 질에 비해 매우 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교육 수요자인 대다수 국민들의 체감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한마디로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독과점적 혜택을 누리는 한국 대표 사립의 오만함과 자가당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일 3국의 교육의 질 대비 사립대 등록금 수준을 비교한 것은 우리 연구소가 소개한 글을 참조하시기 바라고요. 저는 이 글에서 1995년 이후 사립대와 전문대의 납입금 상승 추이와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을 비교해봤습니다. 아래 <도표1>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1995년 1월을 100으로 할 때 생활물가지수는 191.4로 변동한 반면, 사립대 납입금은 256.5, 전문대 납입금은 289.7로 급상승했습니다. 이를 금액으로 생각해보면 예전에 100만원으로 살 수 있던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가 191.4만원으로 상승한 반면, 1995년에 100만원이던 등록금은 256.5만원, 전문대 납입금은 289.7만원으로 올랐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비교적 등록금이 낮은 지방의 사립대와 전문대를 포함한 수치로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사립대와 전문대의 등록금은 이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려대 총장과 같은 교육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교육 수요자 입장에서 지금 한국 교육의 현실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아래 <도표2>를 참고로 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과 민간의 지출 부담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은 민간, 즉 가계의 부담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고등교육에 대해서도 대부분 국가가 책임지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민간 지출 부담이 높은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높은 것입니다. 이만큼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민간 부담으로 지출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처럼 된 데에는 정부가 80년대 이후 질적 수준을 따지지 않고 각종 사립대학을 무분별하게 난립하게 하고, '학벌 신드롬'을 조장해 대다수의 고교 졸업생이 어떤 식으로든 대학에 진학하게 하는 점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분별하게 난립한 대학 가운데 다수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한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비 부담은 매우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학들은 경제위기 전까지 가파르게 등록금을 올려 진정한 교육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캠퍼스 내 건물을 올리고 각종 수도권과 지방에 캠퍼스를 조성해 '부동산 장사'와 '등록금 장사'에 더 열을 올려왔습니다. 이런 자신들의 행태는 망각하고 교육의 질에 비해 대학 등록금이 싸다고 주장하는 신임 대교협 회장의 발언은 그야말로 오만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고려대 이기수 총장의 발언이야말로 왜 한국의 대학들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왜 필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1. 28. 10:44

 

 

얼마 전 정부의 실업률 통계가 왜 현실과 크나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로는 절대 '이태백'과 같은 청년실업난의 현실을 살펴볼 수 없다. 하지만 실업률에 비해 그나마 취업 및 고용 실태를 잘 보여준다고 판단되는 취업자수 및 고용률의 추이를 살펴보면 현재 대학 졸업생들이 느끼는 취업난의 실상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번 살펴보자. 

 

<도표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50대와 60대의 고용률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증가하고 있다. 특히 55~59세 사이의 고용률은 경제 위기 이후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반면 20대의 고용률은 2005년 하반기 이후 떨어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20대 전반의 고용률은 2005 7월의 54.7%에서 올해 10 43.6%까지 약 11.1%포인트나 급감하고 있다. 통계상으로는 청년 실업률이 여전히 7~8% 수준에 불과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대학 졸업생들이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용 사정이 악화돼 있는 것이다.

 

이는 취업자수 현황을 봐도 마찬가지다. 20~30, 특히 20대 취업자수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40대는 경제위기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반면 50~60대 이상의 취업자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경제위기 이후 20대의 취업자수 하락이 가속화되고 50대의 취업자수가 불어나고 있는 것은 눈에 띈다. 정부가 청년인턴제도 등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거의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약 2조원의 예산을 들여 실시한 희망근로사업의 경우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한 반면 일자리를 갖고 있지 않던 50대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대거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취업자로 편입됨으로써 취업자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도표1> 연령대별 고용률 및 취업자수 현황

 


(
) 통계청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하지만 이 같은 일자리 늘리기는 결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하기 어렵다. 지금도 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적자재정을 퍼부어 명목상의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으나, 재정적자 부담 등으로 더 이상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순간 일시에 사라지는 일자리인 것이다.

 

경제위기를 전후로 출범한 현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통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주는 반면 일반 국민들의 구매력은 크게 떨어뜨렸다. 이는 일반 국민들에게 환율 인상이라는 형태로 세금을 걷어 수출기업들에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도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민처분가능소득 가운데 법인과 정부(세수)부문의 분배 비중은 꾸준히 늘어왔지만 일반가계의 분배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갈수록 법인에 집중되고 일반가계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복지 대안지표(Alternative Measures of Well-being)라는 OECD 연구자그룹의 2006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상위권에 속하지만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경제성장률과 가처분소득 증가율의 괴리가 가장 심한 나라로 분류됐다. 특히 가계부문의 가처분소득 비중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도표2> 부문별 가처분소득 비중 추이

 


(
)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한국은 경기회복의 과실이 가계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경제 구조와 현실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급 위주의 성장정책이 극단화되고 있어 매년 80조원에 이르는 공공사업 재원으로 각종 불요불급한 대형 토건사업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일자리를 늘리거나 국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리지도, 국민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부가 경기회복이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계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구매력과 소득이 늘어나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 더 나아가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1. 19.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