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특채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행정안전부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다섯 명의 면접위원 중 외부 위원 세 명은 다른 응시생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지만 면접에 참여한 외교부 간부 두 명은 유 장관 딸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또 일부 외교부 간부는 심사 회의 때도 "실제 근무 경험이 중요하다"며 외교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유 장관 딸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합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하면서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혀 공정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현 정부가 갑자기 여론조작용 모토인 공정한 사회를 들고 나왔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은 특혜와 반칙이 난무하는 불공정한 사회임을 단적으로 웅변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특혜와 반칙이 비단 이번 일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에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 경제에는 철저한 경쟁의 이중구조가 판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독과점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합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 통신 건설 유통 등에서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사실상 독과점과 담합, 불공정 경쟁을 일상화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부품을 조달하는 하도급 업체에는 생사를 건 납품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게 하고 불공정거래를 요구합니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대물변제라는 형식으로 미분양 물량을 하청업체 떠넘기고 임직원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형식상으로 미분양을 털어내면서 미분양이 없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합니다. 세계 일류라는 삼성전자부터가 납품하는 휴대폰 디자인 업체에 아이폰4가 나온 이후 갤럭시S를 떠넘기는 등 시대착오적 삼류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 강자들은 공정한 시장경쟁 상태에서보다 늘 많이 가져가는데, 그 몫은 결국 자신들의 하도급 업체와 같은 '을'과 일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입니다. 소비자 잉여로 올 것이 일부 재벌기업의 초과 이윤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등 사법시스템은 이 같은 구조적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합니다.


기업의 영역뿐만 아닙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대학들, 특히 명문 사립대들은 자신들의 서열구조 안에서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세계 최고의 등록금 장사를 하면서도 일반 가계와 학생들은 생사를 건 경쟁을 하게 합니다.


또한 공교육을 부실하게 만든 채 사교육을 최대한 팽창시켜 '학비 판돈'을 많이 댈 수 있는 부자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명문대 진학 경쟁에서 '승자 독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마치 판돈 많은 사람이 포커판에서 많이 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류층을 위해 ‘성공경로’에 이르는 패스트트랙을 제공하는 국제중, 자사고, 각종 특목고를 신설하는 한편 일반 공립학교들은 모두 ‘상대적 열등학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이런 것은 사정이 괜찮은 편입니다. 아예 그들만이 자격에 해당되는 특혜성 제도를 만들어 운용합니다. 상당수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외국민 특별전형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유명환 장관 딸 특채 사태를 계기로 함께 조명 받은 외시2부 운용도 바로 그런 통로로 변질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지만, 그런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도 공정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재벌기업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사법체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등 재벌기업 총수들은 늘 법의 심판을 비껴 가거나 잠시 여론에 밀려 처벌 시늉을 내다가도 사면되는 것이 거의 공식화돼 있습니다. 오히려 양심을 걸고 이들을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나 문화방송 이상호기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 같은 분들이 각종 불이익과 핍박을 받는 구조입니다.  또한 전관예우’를 통해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숭고한 이상을 버젓이 유린하는 나라, 정치적 잣대에 따라 검찰이 칼춤을 추는 나라는 공정한 게임 규칙이 작용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라는 양두구육식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이미 모두 기득권에 철저히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민들을 편하게 하는 규제완화는 없고, 재벌기업과 개벌업자에게 유리한 규제완화로 넘쳐납니다.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을 위해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면서도 13%가 넘는 최소 주거여건에 미달하는 가구에 대한 최소한의 주거 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상당수 선진국들에 비해 간접세 비중이 더 높아 조세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OECD최저 수준을 기록하는데도 부자감세를 실행하는 정권이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모자라는 세수를 충당한다는 명목으로 이제 에너지세와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추가로 올릴 태세입니다. 부동산 부자들이 막대한 불로소득을 올려도 이를 세제를 통해 흡수하기는커녕 제대로 시행도 못해본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 규칙 아래서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달리라는 말입니까? 불공정한 게임 규칙 아래서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제대로 된 실력과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능력을 갖추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기득권 구조에 맞춰 음성적 로비와 뒷거래에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사회는 벤처기업이 자라날 수도, 좋은 인재가 적재적소에 자리 잡을 수도 없는 사회가 됩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한국경제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한 사회가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적배분하는 것과는 동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득권층과 그들의 자녀들만이 자손대대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계층은 제대로 된 기회를 가지기 힘든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따라서 기득권층만이 아닌 모두에게 같은 잣대가 적용되는 공정한 경쟁 규칙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처럼 비열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깨고 공정한 경쟁 게임의 룰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한국사회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강자들에게는 더 많은 경쟁을, 약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경쟁을 완화하고 공정한 출발선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처럼 공정한 게임규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지금의 공정위는 여전히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범위한 부정부패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숙정하는 사법시스템도 갖춰야 하는데, 일부 재벌은 치외법권입니다.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제대로 적용하면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조중동의 무가지 뿌리기와 경품 판촉은 명백히 공정거래를 위반하는 사항으로 이만 막아도 그들의 지위는 한층 약화될 것입니다. 예산 낭비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에도 적용된 턴키입찰 방식은 상위 6개, 내지 10개 재벌 건설업체들이 가격 담합을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60원에 할 수 있는 공사를 95원, 98원에 수주해 폭리를 취하죠. 턴키담합을 통해 재벌 건설업체들이 취하는 폭리는 세금으로 불필요하게 퍼주는 격입니다. 턴키담합을 막고 공정경쟁만 하게 해도 막대한 예산을 아낄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시에 있으면서 지하철 9호선 2단계 공사의 담합을 분쇄해 약 1000억을 아꼈습니다. 또한 이제 재벌기업들이 국제시장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해 물가가 내려가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반면 우리 아이들에게 불필요하게 생사를 건 듯한 시험성적 경쟁을 치르는 구조는 바꿔야 합니다. 입만 열면 '인재가 자원이라는 나라'에서 교육재정은 형편 없는 수준입니다. 공교육 예산을 지금의 두 배 이상 늘려서 공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공교육을 강화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국공립대 등록금은 거의 무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아이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공정 사회를 고착화시키는 구조적, 제도적 틀들을 바로잡지 않고, 구호만 외쳐서는 결코 공정 사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같은 구조적 틀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습니다. 정책은 늘 반서민이면서 입으로만 친서민을 떠드는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들고 나온  공정 사회 구현이라는 말이 양두구육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정말 공정한 사회를 이루고 싶다면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반칙하는 강자들에게는 더 많은 경쟁을, 약자들에게는 공정한 경쟁 출반선과 기회를!




 

선대인 트위터 http://twitter.com/kennedian3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by 선대인 2010. 9. 6. 13:46
3일 오전에 IT서비스업계의 현실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절절한 얘기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정리해봤습니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아 제 타임라인을 긁은 뒤 정리한 것이니 양해를 바랍니다. 트위터가 그렇듯이 아래에서부터 거꾸로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좋은 의견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allther(윤준삼) @kennedian3 저는 하도급 자체가 문제의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목매고 살려고 하니 갑한테 힘이 쏠리게 되는거죠. 기술력이 있는 회사들이 하루빨리 해외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그래야 공정한 시장이 열립니다.

 

yooonsy(Seongyong Yoon) @changheeoh @kennedian3 저도 IT 분야에 있지만,IT 분야의 프리랜서는 급여의 수준이 정규직의 2배쯤은 되니, 다른 비정규직과는 많이 다르죠. 제 주변에서는 스스로의 의지로 프리로 전향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구요.


allther(
윤준삼) @kennedian3 그러다보니 혁신도 없고 완성도 높은 상품도 안나오고 갑의 횡포에 디어서 우수한 인재들 빠져나가고, 업체들은 중간에서 인력지원하고 마진만 챙기는거고, 프로젝트는 따야 하니까 허풍으로 가득 찬 PT만드는 능력만 쌓는거죠.


gateways(solomone You) @kennedian3
우선 부당한 하도급 환경을 혁파해야 합니다. 개발자 대부분은 비정규직입니다. 불법 하도급 관행 혁파가 필요


youngims(
이원영) @kennedian3 개발자들 써 본 입장에서 보면 굴지의 SI업체도 실 개발인력은 거의 하도급 입니다. 그것도 병, 정까지 내려 가지요 실 개발자에게는 쥐꼬리.. 발주자 입장에서는 책임회피를 위해 대기업하고 하는게 안전하니..

 

Anifx97(Gyeong-Seop, Shin) @stingcon ...물론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꼭 저런 하도급 방법밖에 없을까요? 먼가 다른 혁신적인 생태계나 구조로 이익을 추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애플처럼!! @kennedian3

 

 

allther(윤준삼) @kennedian3 국내는 시장이 작아서 엔드유저상대로 상품을 팔기 쉽지 않구요. (더존 정도만 성공) 그러다보니 대부분 완성도 높은 상품을 만들기보다는 대기업갑이 원하는대로 만들어주는 SI시장만 커졌죠. 제품의 완성도 보다는 인건비장사가 된거죠.


ChangheeOh(
오창희) @kennedian3 15년가까이 SI 분야에서 일 하고 있는데, 요즘은 개발자 중에서 절반 이상이 프리랜서. 결국 비정규직. 예전 처럼 동기 부여도 안됩니다. 주관 회사입장에서 눈치 보는 경우도. 고용 시장의 변화는 IT 분야도 빗겨갈 수 없죠.


foresttour(Foresttour) @kennedian3
일을 제일 많이 하고 실제로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 영원한 워킹푸어로 고착화 되는 구조입니다.


jaeyoungl(
이재영) @kennedian3 @anifx97 SI업계랑 똑같네요. 중간에 마름질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이 먹습니다.


foresttour(Foresttour) @kennedian3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주와 소작제도" 이것이 요즘 "갑과 을" "원청업자와 하도급" 이런 구조지요. 건설업에서 유래한게 아니랍니다.

 

RT @kennedian3: 절묘한 표현이네요 RT @soulmateforu: @kennedian3 18세기 거대자본 CEO들이 19세기 생산방식으로 20세기 IT종사자들을 쥐어짜서 21세기 세계 IT흐름을 따라잡으려하니...당연히 자연스럽지 못하고 잠재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kennedian3(
선대인) 디자인업계에도 하도급 문화가 이렇게 RT @Anifx97: @kennedian3 대기업 발주 → 중소기업 → 소규모 스튜디오 or 프리랜서 로 이어지고 있지요. 약삭빠른 사람들은 중간구조에 브로커로 계속 개입을 할테고 http://dw.am/L76qD

 

Anifx97(Gyeong-Seop, Shin) @kennedian3 대기업 발주 → 중소기업 → 소규모 스튜디오 or 프리랜서 로 이어지고 있지요. 약삭빠른 사람들은 중간구조에 브로커로 계속 개입을 할테고. 좀 유명한 디자인회사조차도 소식란에 발주, 수주라는... http://dw.am/L76qD  

 

 

lhb337(LeeHeeByoung) @kennedian3 예를들어 한전과 같은 곳에 문서 제출을 할때... "시방서"라는 타이틀로 문서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무슨... 코미디인지..


taehank(Taehan Kim) @kennedian3
이게 다 xx탓이야, 식의 일반화 오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군대문화의 냄새도 짙게 풍깁니다.


lhb337(LeeHeeByoung) @kennedian3
건설과 IT는 쓰임과 과정, 결과물 자체도 틀리거늘, 상거래 관련 법제는 건설에 있는 법제를 고대로 쓰고 있습니다. Developer의 차이는 삽을 들고 있느냐, 키보드를 들고 있느냐의 차이일 정도죠.. --;


rimbaudsong(Song In Soo) @kennedian3
저는 조금 다른 얘기. 우리 나라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대졸 지식 근로자 공급이 너무 풍부해요. 대체 가능 인력이 많으니까 마음놓고 저임금에 혹사시키고, 그러다 보니 좋은 인력이 그리 안 가게 되어 산업 발전도 어렵게 되죠.


kennedian3(
선대인) 절묘한 표현이네요 RT @soulmateforu: @kennedian3 18세기 거대자본 CEO들이 19세기 생산방식으로 20세기 IT종사자들을 쥐어짜서 21세기 세계 IT흐름을 따라잡으려하니...당연히 자연스럽지 못하고 잠재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RT @kennedian3:
지식정보화 시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IT서비스업조차 여전히 70,80년대 노동력과 시간 투입량을 계산하는 식의 개발연대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 특히 토건사업 방식이 IT서비스업 등에도 악영향. 제가 삽질패러다임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이런 의미

 

HtwoW(HHW) @kennedian3 하지만 비단 IT뿐만은 아니죠 지금 난리인 건축업계또한 IT못지 않죠 아마 더 열악하죠 특히 설계직은요 사람들이 단순히 드라마상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로만 생각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비참합니다.

 

youngsu999(Youngsu Park) RT @namelessone0: @kennedian3 제가 소프트웨어 중소기업 회사에 다니는데, 경영이 제조업이나 건설업 스타일로 이루어지고 경영자의 기술에 대한 이해 및 IT 산업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요. 제조... http://dw.am/L76mG 

 

 

kennedian3(선대인) 불공정 하도급의 뿌리이자, 갑과을 문화의 근원입니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 RT @kevin0801: @kennedian3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뿌리깊게 베인 하도급 문화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겠네요~

 

Anifx97(Gyeong-Seop, Shin) @kennedian3 예전엔 1개의 패러다임만 존재했다면 요즘은 다양한 패러다임이 존재하는데 말이죠. 경영자들은 왜 모를까요? IT뿐만 아니라 요즘 뜨고 있는 디자인도 결국 하도급구조로 갈려는 경향이 너무 보여요 ㅠ_

 

 

kennedian3(선대인) 이런 건축맥락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부동산 거품빼기라고 생각 RT @freeofex: @kennedian3 신영복 선생님 말씀 마냥 맥락이 중요하네요. 우리 사회가 진자 발전을 이루려면 빨리 그 건축 맥락, 도로 맥락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pagan2k(Kwon, Tae-Hyun) @kennedian3 생각해보니 지식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건 제안서 작성비를 주지 않는 것도 있네요. 십여군데에 RFP 보내고 제안 설명을 모두 듣고 그 분야를 파악한 다음 자체 개발 진행한 모 업체 사례도 떠오르고요

 

coreajy(황진이) 공감합니다...RT @kennedian3: 개발연대식의 삽질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것은 건설업뿐 아닌 전 분야에서 이뤄져야 T @xgracad: @kennedian3 물론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제점... http://dw.am/L76kM


kevin0801(Jaekyung Choi) @kennedian3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뿌리깊게 베인 하도급 문화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겠네요~


rohsundal(SangilRoh) @kennedian3
공감합니다..지식정보화라는 것이 인프라 구축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노동집약적인 산업 모델에서 출발한 경제 활동 방식에서 벗어나서 생산자도 소비자도 양질의 컨텐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조성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foresttour(Foresttour) @kennedian3 날밤 새면서 일할 때 이미 미래가 없는 산업이었지요.

 

jaeyoungl(이재영) @namelessone0 @kennedian3 @anifx97 네 공감합니다. 결국은 비용을 많이 발생시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저한테 그 절반의 비용만 줘도 해결해줄텐데요. 권한도 좀 필요하지만..^^;

kennedian3(선대인) 개발연대식의 삽질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것은 건설업뿐 아닌 전 분야에서 이뤄져야 T @xgracad: @kennedian3 물론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제점이 건설과 연결된다는게 이아침 또 우울해집니다 삽질이나 코딩이나 매한가지

 

freeofex( Huh Young Jin) @kennedian3 신영복 선생님 말씀 마냥 맥락이 중요하네요. 우리 사회가 진자 발전을 이루려면 빨리 그 건축 맥락, 도로 맥락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ChangheeOh(
오창희) @kennedian3 해외는 패키지 기반으로 생산성 높은 개발이 대세, 우리도 길게 보면 개발자 수급이 안되면서 해외 개발인력 활용해야 하니 패키지 의존도, 시간을 두고 요건 정리해서 전달하는 분위기로 바뀔 것으로 보여요.


gateways(solomone You) @kennedian3
개발자 중 특허에 준하는 기술을 모두 대기업에게 빼앗기는 수모도~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도 부실~


xgracad(Grapia) @kennedian3
물론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제점이 건설과 연결된다는게 이아침 또 우울해집니다 삽질이나 코딩이나 매한가지

 

ChangheeOh(오창희) @kennedian3 SW SI 영역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분야, 국내 요건이 까다로와서 패키지 사용 어렵고, 짧은 시간에 개발해야 해서 대부분 야근/주말근무 기본.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피. 개발자 수급도 쉽지 않음.

 

Itishappy(Joo Hyun) @kennedian3 국내 IT 서비스業에 있어 SI(시스템 통합)분야는 대기업 계열 IT 업체(S, L, S사 등)들을 위주로 외산 솔루션(H/W, S/W)을 기반으로 하여 외부 업체의 용역을 제공받아 납품... http://dw.am/L76iS 


namelessone0(Namelessone) @kennedian3
제가 소프트웨어 중소기업 회사에 다니는데, 경영이 제조업이나 건설업 스타일로 이루어지고 경영자의 기술에 대한 이해 및 IT 산업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요. 제조원가 덜 드는 제조품 만들기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anifx97


pagan2k(Kwon, Tae-Hyun) @kennedian3
건설업계는 어떤지 모르지만 IT DC라는 게 있죠. 표준단가대로 받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저는 한 번도 못봤습니다). 표준단가 자체도 건설업계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실제 보유 기술 수준 대비 금액도 높지 않습니다


niyaaong(Hong Seung kwang) @kennedian3
해외 대비 개발자의 인건비, 근로환경 등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IT는 개개인의 맨파워에 의존하는 경향이 유난히 크죠. 일본도 대체로 it노동환경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나쁜데, 그래서 일본도 그모양인듯 합니다.


hann2k(
이호철) @kennedian3 개념없는 갑의 저비용 발주, 무리한 설계변경. 실력없는 을(대기업)의 재하청. 부족한 자금의 재하청업체와 부족한 자금에 맞춘 실력 모자란 인재채용. 소프트웨어 개발과정 무시하는 PM. 내 기술이 최고라며 공개 안하는 개발자.


dearwony(Deirdre) @kennedian3
일단 IT기술에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가치가 하락했고, 우리나라는 서비스료를 내는 데 개념이 없지요. A 업무에 대한 돈을 내는 게 아니라 A 업무를 하는데 사람이 세명 필요하니 세명 분 인건비를 주겠다는 식.


Anifx97(Gyeong-Seop, Shin) @kennedian3
우리 사회가 건설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신생업들이 건설업의 표준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다단계하도급. 이런거 말이죠 경제를 이룩한 세대(50~60)가 건설회사에서 배운 생리를 그대로 전수하는 것 같습니다.

 

 

alkee_na(나승원) @taehank @jaeyoungl @jaemyl @yunheesung @kennedian3 50년 남짓된 전혀다른 분야를 별다른 노력없이 수백년 수천년된 프로세스에만 끼워넣으려는것도 문제이고요..


kennedian3(
선대인) 다단계하도급과 표준품셈 같은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표준품셈은 건설은 매우 부풀려져 있는 게 문제인데, 그쪽은 좀 다르죠? RT @xgracad: @kennedian3 건설시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건설시장의 모순덩어리를 IT 업계도 그대로

 

 

gateways(solomone You) @kennedian3 인도 개발자에 대비 한국 개발자 기술력도 부족하고...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을 적정 시기에 내놓지 못함


gateways(solomone You) @kennedian3
소프트웨어 용역 댓가 기준표가 IT분야 초토화 시켰네요


alwayswinner(ERIC K. AHN) @kennedian3
국내 IT서비스 업의 문제점은 근시안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듯. 당장 돈이 되느냐를 따지다 보니 향후 미래를 대비한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서비스의 생태계(환경)를 만드는 일에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움과 도전의 결여!


irchama(Youngsoo Kim) @kennedian3
건설업과 비슷한 하도급 관행으로 대규모 업체만 살고, 중소 업체는 죽어나죠. 그리고 SI 업체에 노조가 거의 다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노조가 생겨야 합니다. 대부분 업체들이 노조를 못하게 하거나 어용 노조로 막아 놨죠.

 

zeroyoung(zeroyoung) @kennedian3 IT서비스업만 그런가요? 컨설팅도 다 그냥 들으려 하죠. '서비스'는 다 그냥 해주는걸로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xgracad(Grapia) @kennedian3
건설시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건설시장의 모순덩어리를 IT 업계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ChangheeOh(
오창희) @kennedian3 SW의 경우 국내에 최적화하면 해외에 팔기는 쉽지 않고, 해외시장을 바로 공략하기엔 장벽이 많죠. 시장 규모와 선점(기술표준, 주도권) 효과 높은 미국이 그래서 유리. 덩치로 보면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꺼리.


rohsundal(SangilRoh) @kennedian3
전형적인 저임금에 성과급이 전무합니다..개발자의 의욕을 높여 소비자의 입장, 유저의 입장에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토목공사 식으로 하도급으로 연결되는 구조라 쉽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irchama(Youngsoo Kim) @kennedian3
기본적으로 일한만큼의 댓가를 못 받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댓가를 단순 코딩 라인수로 평가 할 수는 없는데요. 여태까지 M/M로 산정을 하는 관행이었고, FP로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죠.


puziloi(
서인재) 일에 대한 대가가 시간당 인건비로 계산을 하지요. 지식노동에 대한 대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식노동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쌓을 시간을 주밍낳고 쓰고 폐기하는 기계처럼 대하는것도 하나의 문제이지요.RT @kennedian3:


CJDREAM(UK KIM) @kennedian3
내수시장 중심으로 발달했고 그이유는 주민번호인증이라는 큰 장애물이 이었죠. 내수시장은 대기업들이 잘하는 문어발확장을 배워서 포털들이 했죠.


taehank(Taehan Kim) @jaeyoungl @jaemyl @yunheesung @kennedian3
제대로 된 프로세스 정립도 어렵지만 다 잡아놓고도 위에서 그걸 뭉개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죠. '까라면 까' '고객이 왕', 이 무서운 두 마디.

 

jaeyoungl(이재영) @hann2k @jaemyl @yunheesung @kennedian3 제 경우엔 창의성이라기 보다는 좋은 프로세스가 이미 나와있고, 개발방법론들이 있음에도 개인의 역량에 의지해서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를 많... http://dw.am/L76Vw


hann2k(
이호철) @jaeyoungl @jaemyl @yunheesung @kennedian3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필요한게 창의성이죠. 협업이라도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다만 개발이 시작되면 협업에 따르는 개발 프로세스를 준수하는 것이 느리면서 가장 빠른길이구요.


jaemyl(Jaemyl) @yunheesung @kennedian3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를 못하는 이유는 못할 수 밖에 없는 문화적 환경속에서 있기 때문이죠. 정답찍기 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에게 무한대의 자유도가 주어지는 소프트웨어 제작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by 선대인 2010. 9. 3. 12:41

최근 문화방송 <MBC스페셜>에서는 미니멈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주로 10~30대 전반의 세대별 노조를 지향하는 청년유니온이 올해 3월 출범한 이후 겪고 있는 국내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방영된 내용 가운데는 커피값이 부담돼 연애도 마음 편하게 하기 어렵다,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왜 우리는 집이 없느냐는 푸념 등이 젊은이들의 육성으로 쏟아져 기성세대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미 석훈 박사의 88만원세대 이후 10~30대 초반의 국내 젊은이들의 우울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가 상당히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 젊은 세대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젊은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도표1>을 통해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할 수 있는 실업난에 대해 살펴보자. 20대의 실업률을 보면 외환위기 충격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난 2000년대 이후 전체 실업률은 3~4%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20대의 실업률은 2000년대 초반에는 빠른 속도로 떨어져 2002년 한때 5%대까지 떨어졌으나 이후에는 7~10%대에서 등락을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은 2010 7월에도 전체 실업률은 3.7%대로 사실상 완전 고용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20대 실업률은 8.5%로 상당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몇 차례 설명한 바 있듯이 한국의 실업률 통계는 신뢰성이 매우 낮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20대의 체감 실업률은 8.5%보다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잘 방증하는 것이 연령별 고용률 추이나 쉬었음 응답자 추이다. 전체인구 대비 고용자 수의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 추이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 내내 51~53% 수준을 유지하던 20~24세 연령대 고용률이 2005년 하반기 이후 가파르게 하락해 2009년 이후로는 45% 전후 수준의 낮은 고용률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 등 각종 명목으로 실업 통계에는 포함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고용되는 20대 전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 조사에서 쉬었음이라고 응답해 비경제활동인구 로 분류되는 쉬었음 응답자의 추이를 보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20대에서 쉬었음이라고 응답하는 숫자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9년에는 33만 명에 불과하던 이 응답자 수가 70만명 수준까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난 때문에 대학에 적을 둔 채 졸업을 미루거나 휴학하거나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에 나서는 등의 이유로 많은 젊은이들이 사실상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설사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상당수가 이른바 알바 일자리들로 불완전 취업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의미에서 20대의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8.5%의 몇 배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공적부문의 채무를 바탕으로 한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청년층 실업난은 거의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도표1> 청년층의 고용사정 현황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청년층의 소득이 주는 가운데, 주택 가격은 급등해 젊은이들이 집을 사서 결혼하는 것이 매우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도표2>에서 아파트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2000 1월을 100으로 잡을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260.2, 전국 아파트 가격은 197.5로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청년층의 평균소득은 그보다 한참 못 미치는 속도로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보다는 청년층 평균소득이 훨씬 낮다고 할 수 있는데,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은2000 1분기 100에서 2009 4분기 현재 169.4로 증가하는데 그치고 있다.


2000
년 초와 2009년 말의 서울 아파트 가격지수를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지수로 나누어보면 1에서 1.54로 벌어지고 있다. 2000년이 1이라는 것은 2000년에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걸린 년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그 년수가 2000년에 7년이었다고 한다면 2009년에는 10.8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청년층은 이보다 훨씬 격차가 벌어졌을 것이다. 예컨대 청년층의 평균소득이 도시근로자의 60% 도라고 가정할 경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안 되는 청년층은 적어도 자신이 받는 평균연봉의 18년분 가량을 모아야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30세 전후로 취업했다고 해도 하나도 안 쓰고 거의 50세까지 모아야 겨우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도표2> 청년층의 소득수준 및 주거 부담 추정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변변한 소득이 없어 웬만한 전세조차 구하기 벅찬 청년층들의 상당수는 대학가 하숙촌이나 반지하 월세, 고시촌, 심지어 쪽방촌 등에서 주거를 해결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사무직 또는 전문직 미혼 청년층 정도가 오피스텔 등에 거주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 기준으로 전국 317만명의 1인가구 가운데 약 34% 108.7만명이 30대 전반 이전의 청년층인데,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1인가구의 60% 이상이 19평 이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어도 주택문제 등 때문에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도표3>에서 보듯이 초혼 연령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남성의 초혼 연령은 1990 27.79(전국)/28.26(서울)에서 2009년에는 31.61(전국)/31.95(서울)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여성의 초혼연령도 1990 24.78(전국)/25.54(서울)에서 2009 28.71(전국)/29.60(서울)로 올라갔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적극적 사회진출 등 사회 변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갈수록 결혼하기 어려운 여건이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도표3> 초혼연령 및 혼인율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연령대별로 인구 천명당 혼인자수를 나타낸 혼인율을 보더라도 이 같은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남성의 경우 20대 후반의 혼인율은 급감하는데 반해 30대 전반과 후반의 혼인율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경우 20대 전반의 혼인율은 급감했으나 20대 후반의 혼인율이 급증하다가 2007년 이후로는 이마저도 줄면서 30대 초반의 혼인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젊은이들이 결혼도 제때 하지 못할 정도로 젊은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 젊은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도표4>의 통계청 인구 추계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이 갈수록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000년대 이후 가파르게 늘고 있고 이 추세는 2010년대 이후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노인인구 가운데 상대적 고령층 노인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는 어렵고 건강유지 및 노후복지 비용이 증가하는 연령대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도표4> 노인인구 증가 및 각종 부양비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발생하는 복지부담이 얼마나 급속히 늘어나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15~64세 사이 경제활동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및 15세 미만 인구를 합산한 인구의 비율을 포괄적 부양비라고 할 경우 지난 70년대 이후 이 비율이 감소해 경제성장에 기여했으나, 2016년 이후로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경제활동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부양비를 보면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특히 2010년대부터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은 20~34세 연령대 젊은층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청년층 대비 부양비 추이에 비하면 약과다. 청년층 부양비는 2010 50.2%에서 10년 후인 2020년에는 80.6%, 2030년에는 155.5%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88만원세대로 상징되는 국내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위에서 거론한 문제 외에도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듯이 가계 경제력 및 교육 서비스의 질 대비 세계 최고의 대학등록금 때문에 청년들과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치솟고 있는 등 청년층이 받고 있는 사회경제적 고통과 부담이 매우 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따라 향후 청년층이 짊어져야 하는 고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고통과 부담 때문에 젊은이들이 시집장가를 못 가고 아이를 낳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학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 자식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은커녕 부동산 거품 부양 등을 위해 약 1년 반 사이에 공적부문에서만 200조원의 국공채를 발행해가며 4대강사업 등 토건부양책에 탕진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현 세대의 고통을 줄인다는 명분 아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더욱 키우는 한편 자식세대들이 써야 할 자원들을 마구 낭비하면서 그들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의 실세라는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등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첨단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우리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하고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어가며 눈가림 식의 알바형 일자리를 늘려 실업률 수치 놀음을 하면서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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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25. 10:12

대학 개강을 앞두고 다시 각 일반 가계가  자녀들(또는 본인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에 따른 가계부담도 경제력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정부의 열악한 교육재정 지원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실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대학의 등록금 수준과 교육재정 지원 실태를 국가간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2006/2007학년도 기준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수준을 살펴보자.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구매력평가 기준 달러환산 한국의 국공립대 등록금은 4,717달러로 5,666달러인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 보다 등록금이 높았다. 한국은 사립대뿐만 아니라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대부분 나라의 등록금보다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 높다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핀란드, 덴마크, 체코 등에서는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전혀 없으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거의 미미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도표1>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및 공사립대학 비율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중간

도표에서 파란색은 순수 사립대를 나타내며 나머지는 정부의존형 사립대임.

 

한국의 사립대 등록금 또한 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 20,517달러에 이어 8,519달러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또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등에서는 사립대 등록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국공립 대학이 전체 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0%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반면 사립대 비중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립대의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국공립대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일반 가계가 부담하는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사립대 명목 등록금이 가장 높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사립대의 비중이 높으면서 사립대의 명목 등록금도 높은 일본의 등록금도 장학금 차감액이나 소득 수준, 대학 교육의 질을 감안하면 한국보다 상당히 낮음은 이미 설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대학 등록금 부담도 공공과 민간 등이 적절하게 분담하는 식이라면 일반 가계들의 부담은 덜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 이상 고등교육비를 누가 부담하는지를 <도표2>를 참고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고등교육 재정지출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 전체 재정지출 대비 2.2%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고, GDP대비로는 0.7% 0.6% 수준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나라로 나타난다. OECD평균이 각각 3.1%, 1.3% 수준인 것에 비하면 현격히 낮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출 비중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현격히 낮다.



 

<도표2> 고등교육 재정지출 및 고등교육비 부담 주체 현황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는 고등교육비 부담주체 가운데 공공재원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로 이어진다. 고등교육비 부담주체를 보면 한국의 경우 공공재원 부담률이 23.1%로 가장 낮은 반면 민간 부담률은 76.9%로 가장 높다. 한미일 3국을 제외한 대부분 OECD 국가들에서는 공공재원 부담률이 절반을 넘고 특히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고등교육비를 공공재원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공재원 부담률이 각각 72.6%, 81.1% OECD평균이나 EU19개국 평균과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교육비를 민간재원으로 충당하는 비중에서 민간부담 주체를 다시 일반가계와 기타 민간부담으로 나눠볼 경우에도 한국의 일반가계 부담률은 52.8%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공사립대의 등록금이 높은 수준이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장학금을 차감한 실질 등록금이나 국민소득, 교육의 질 등을 고려한 측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비싼 대학 등록금을 대부분 민간에서, 그것도 일반가계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국공립 대학 인프라나 투자해야 할 고등교육 재정을 제대로 투자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이를 빌미로 사립대학들부터 앞다투어 대학 등록금을 올리는 가운데 일반 가계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등록금을 부담하느라 등골이 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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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12. 07:03

이 글은 2008년초 김광수소장님이 <경제시평> 특집에서 3회 연재로 발표된 학교교육 정상화에 관한 小考시리즈의 세 번째 글의 내용입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사립학교 문제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교육기본법에서 사립학교에 대한 조항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주요 법령들은 7,80% 이상이 일본의 법령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말이 참고해서 만든 것이지 사실상 순서만 바꾸어 거의 베꼈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한국의 근대화가 대부분 일제 강점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또 베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 하는 차원에서 참고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기본법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의 교육기본법도 이웃 일본의 교육기본법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베꼈으되 한국적 기득권 상황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례로, 사립학교에 관한 한일 양국의 교육기본법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25조 사립학교의 육성에 관한 내용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립학교를 지원·육성하여야 하며,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교육기본법 제8조의 사립학교에 관한 내용을 보면, 사립학교가 지니는 공적 성격 및 학교교육에 있어서의 중요한 역할을 감안하여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그 자주성을 존중하면서 조성 또는 기타 적당한 방법으로 사립학교교육의 진흥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일본의 교육기본법에서는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학교교육에 있어서 공적 성격과 역할을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서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진흥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사립학교의 공적 성격과 역할에 관한 부분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단지 사립학교를 지원,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국가의 의무로 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립학교가 국가 의무교육을 전제로 한 학교교육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물론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9조에서는 학교는 공공성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잘 읽어보면 학교시설물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인지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하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상기에서, 일본과 한국의 교육기본법 모두 국가와 지자체가 사립학교 학교교육의 진흥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 있어서 사립학교의 현실적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양국의 교육기본법의 사립학교 진흥에 관한 조항의 취지와 해석도 전혀 달라지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일본의 사립학교는 사학의 자주성을 존중하여 일본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사실상의 자유방임주의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정부지원도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9년에 제정된 일본 사립학교법 제1조에서는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공공성을 높임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사립학교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경영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일본정부는 1975년에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을 제정하여 이과교육, 산업교육, 학교도서관, 의무교육 교과서 등 국가가 지정하는 분야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실시함과 동시에 사학에 대한 감독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지원의 근거는 일본헌법 제89조에 근거합니다. 일본 헌법 제89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금 및 공적 재산은 종교조직이나 단체의 사용·편익·유지를 위해, 혹은 공적 지배에 속하지 않는 자선사업, 교육사업, 박애사업에 지출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립학교에 대한 일본정부의 감독이 공적 지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은 위헌이 됩니다. 이로부터 1975년의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은 사립학교의 공립학교화의 출발점이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2006년 5월 현재 일본은 대학생의 75%, 전문대학의 95%, 고등학생의 30%, 유치원의 80%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2004년 4월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학교법인에 대한 관리운영제도의 개선, 재무정보의 공개, 사립학교심의회 구성의 개선을 단행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정부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게 된 배경에는 저출산으로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파산 등 경영위기에 처한 사학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 급증한 사립학교들의 학교시설 등이 30년 이상 되어 노후화되고 교육여건도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일본 사립학교 전반이 처한 상황은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립대학은 40.4%가 정원미달이며, 전문대학은 51.7%가 정원미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립고등학교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 지역은 대학입시 교육에 치중하는 일부 사립고를 중심으로 학비가 비싸고 경쟁이 치열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학비가 매우 싼 공립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립고에 못 가는 학생들이 사립고에 가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사학법개정을 통해 문부과학성에 학교법인경영지도실을 설치하여 경상비 보조와 학교시설 개선 등의 지원을 통해 사립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신, 학교법인경영조사위원 제도를 활용하여 사립학교 운영 및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경영자문 및 상담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일본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을 통해 자조 노력을 강화하도록 했습니다.

 

2005년 5월에는 학생의 취학기회 확보를 위해 경영난에 빠진 학교법인에 대해 세 가지 긴급지원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학교법인은 스스로의 책임으로 경영기반 강화를 꾀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둘째, 문부과학성은 경영분석 및 지도, 자문, 경영개선계획 제출 등을 통해 학교법인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셋째, 학교법인이 파산할 경우 재학생의 취학기회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사립학교 진흥은 학교교육에 있어서 사립학교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립학교의 공립학교화에 가까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굳이 상론할 필요도 없을 지경입니다. 한국에서 사립학교 하면 우선 사학비리와 세습이라는 말이 가정 먼저 떠오른다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학재단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학재단들의 학교경영이 지극히 불투명하며 필요 이상의 학교부지 확장에만 힘을 쏟아 부동산투기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재단은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상속수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종교단체에 의해 설립된 사학은 막강한 정치적 기득권을 형성하여 학교교육과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삼아 심지어는 공권력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경쟁 논리와 사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정치와 종교와 교육이 구분되지 않은 주장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마구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은 일부 종단 사학들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채 자사고 100개 설립을 내세워 공립학교 교육을 말살하고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려 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에 사학법개정을 극력 반대한 것도 이명박정부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 것도 나아가 사학의 사적 재산권을 주장한 것도 다름아닌 종단 사학들입니다. 그로 인해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으며, 학교교육이 정치적 이념과 종파적 이해관계에 휩쓸리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만들어냈다고 큰 소리치는 종파가 있을 정도인데 이들 특정 종단 사학들의 정치적 기득권이 얼마나 막강하겠습니까!

 

사학비리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사학들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초중고 사립학교 교원 급여를 국가가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학들은 올바른 교육보다는 시장논리와 자율성을 주장하며 돈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내가 내 마음대로 학교를 세워 내 마음대로 돈 받고 종교교육이든 정치적 이념교육이든 내 마음대로 가르칠 터이니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제대로 논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고등학교 사학은 그저 땅 사서 학교 건물만 지어 놓으면 그 나머지 운영비는 거의 대부분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구조가 악용된 결과, 한국 고등학교의 사립학교 비중이 50%에 달하는 황당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말로 만일 국가가 사학 교원들의 급여를 지급해주지 않았다면 그 돈으로 거의 모든 사학을 사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계기야 어찌됐든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사학에 대해 지나치게 과잉보조를 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학에 공립학교가 먹히고 있는 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마저도 꼭두각시가 되어 교육의 기회균등과 학교교육 질의 향상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서슴없이 포기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초중고 학교교육은 2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50%에 육박하는 사립학교 비중에서 볼 수 있듯이 공립학교의 사립학교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사고, 특목고 확대와 자율성 주장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립학교의 입시 학원화가 그것입니다. 이런 2중 구조 속에서 공립교육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학과 학원은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교육논리가 아닌 돈을 앞세운 시장경쟁 논리를 내세워 공립학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학교교육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처럼 초중고 공립학교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립학교 역할 강화를 위해서는 고민하고 해결해야 될 많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연구소의 짧은 글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에 있어서 공립학교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교당 학생수를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래 <도표3>에서 한미일 3국의 교사 1인당 학생수를 비교해보면, 3국 모두가 교사 1인당 학생수 15-20명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교사의 질적인 면에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질적 수준 향상은 이미 문제로 노출되어 있으며 개선책이 강구되고 있습니다. 교원평가를 바탕으로 한 재교육 연수 프로그램의 강화와 행정 업무의 축소가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표3> 한미일 3국의 교사 1인당 학생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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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리고 학교장의 학교운영 능력 강화도 빼놓을 수 없는 개선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학교교육의 최대 문제점 중의 하나는 학교운영의 불투명성에 있습니다. 학교운영 책임자인 교장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감추고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미일 3국의 학교교육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도표4>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학교당 학생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미국과 일본의 학교당 평균 학생수는 각각 485명과 314명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743명으로 2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의 학교당 평균 학생수가 485명과 329명인데 비해, 한국은 684명으로 거의 2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미국이 717명, 일본 639명에 비해 한국은 838명에 달해 미국에 비해 120명 가량, 일본에 비해 200명 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초중학교는 학급 수를 절반으로 줄여 2개 정도로 쪼개서 소규모 단위로 해야 하며, 고등학교 역시 평균 700명 수준까지 줄여야 합니다. 이는 초중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를 현재의 절반 수준 이하로 줄여야 하며, 고등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를 현재보다 12-24% 가량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미국의 초등과 중등은 합산치임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학교당 평균 학생수가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주로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도시개발 지역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사고 100개 만드는 것보다 학교당 평균 학생수를 줄여 콩나물 학교를 하루 빨리 해소하는 것이 학교교육 정상화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기로 합시다. 미국과 일본은 세계 1,2위의 시장경제 대국이며 기술강국이기도 합니다. 이들 국가가 세계 1,2위의 시장경제 대국이 된 데에는 어떠한 정파적, 종파적 간섭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의 기회균등의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확고한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10. 08:37

이 글은 2008년 초에 <경제시평> 특집에서 3회 연재로 김광수소장님께서 발표한 학교교육 정상화에 관한 小考시리즈의 두 번째 글의 내용입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정권이 바뀌자마자 학교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발언과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의 학교교육 자율화 발언을 계기로 서울시의회는 학원들의 심야학습 철폐를 내세웠다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를 철회했습니다. 대신에 학원 학습시간을 밤 10시에서 11시로 늘렸습니다. 물론 이런 규제가 있다고 한들 형식적일 뿐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육과학부는 방과후 학교에 학원들의 상업적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통령은 자사고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우열반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가 학원에 대해 패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학원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사실 학교의 학원화를 주장한다면 굳이 대통령도 교육과학부도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시장논리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학부가 문제라기보다는 교육부 관료들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도 교육감들은 대부분 2,30년 동안 학교교육에 몸담아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학교교육을 부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여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부끄럼도 자존심도 없이 말입니다. 이들이 이런 황당한 언행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이들이 완전히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아마도 학교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또는 학교와 학원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든 학원이든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규제완화라는 말로 강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몰입교육이니 학교교육 자율화이니 대학입시 자율화이니 하는 것들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식의 사고에는 두 가지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학교교육 정책을 누가 수립하고 추진할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적 평가(Learners Outcome)라는 말과 시장경쟁(Market Competition)이라는 말이 동의어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에 관해서 논해봅시다.

 

일견, 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나 특정 종단의 종교인들이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학교교육 정책은 백년대계 차원에서 그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賢者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현자들의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으며 정치권력의 변화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현자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방식으로 민간 자율에 입각하여 추천되며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게 됩니다.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 조항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웃 일본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교육재생회의)와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中央育審議)라는 곳에서 결정합니다. 교육재생간담회와 중앙교육심의회의 위원들은 일본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명망 있는 현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민간의 추천을 받아 총리와 문부과학성 장관이 형식적으로 임명합니다. 이곳에서 일본 학교교육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되면 일본 총리와 문부과학성 그리고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입법화와 예산편성을 수립할 뿐입니다.

 

일본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 위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PTA전국협의회의장, 게이오대학 총장, 주식회사 시세이도상담역, 방송대학교수, 캐스터겸치바대학특명교수, 저널리스트, 동경도내초등학교교장, 동경도내 사립학교 이사장, 이화학연구소이사장(노벨화학상수상자), 동경도교육위원회 교육장의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일본 사회에서 명망 있고 검증된 전문성을 지닌 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는 이 간담회에 일체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는 교육제도분과회, 생애학습분과회, 초중등교육분과회, 대학분과회, 스포츠/청소년분과회의 5개 분과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임시위원 및 전문위원을 둘 수 있습니다. 또 각 분과회마다 소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교육정책을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각자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결정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으로 위배됩니다. 교육기본법의 제6조는 교육정책에 있어서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조항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정책은 YS정권에서 DJ정권으로 그리고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바뀔 때마다 그때그때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매번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채 이런 혼란이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교육정책은 정치적, 이념적, 종파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대통령의 독단이나 개똥철학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다음에, 교육적 평가와 시장경쟁의 차이에 대해 논해보기로 합시다. 미국과 일본은 매년 교육백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매년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읽어보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보면 교육적 평가라는 말은 있어도 지금까지 시장이나 시장경쟁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학업성적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도 교육적 방식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에는 교육정책의 성과평가의 하나로써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전체 학생의 평균성적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수 상위권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전체 학생에 대한 것이지 특정 소수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기본법에서 주창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은 소수의 특공대나 게릴라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방면에 걸쳐 전인격적 평균을 상승시키는 전면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언제 어느 때이든 조건과 기회만 맞으면 깨우침과 깨달음을 얻어 인간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보다 수준이 떨어져서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사학)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공립 및 사립학교 현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의 <도표1>에서, 초중등학교 수 면에서 사립학교의 비중을 보면, 일본은 2.8%, 한국은 8.6%인데 비해 미국(K-8)은 21.4%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사립학교 비중을 보면, 미국(K9-12)은 11.3%, 일본은 24.9%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44.8%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단순히 양적으로만 보아도 한국은 이미 사립학교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사립학교 비중이 의외로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는 공립학교 교육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그래서 공립학교는 거의 학비가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도표1> 한미일 3국의 초중고등 학교 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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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가 하면, 아래의 <도표2>에서 한미일 3국의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생수 비중을 비교해보면, 미국 9.8%, 일본 3%, 한국 7.1%로 나타나 그다 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등학교는 미국 8.2%, 일본 29.7%에 비해 한국은 49.3%로 거의 절반 가량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얼마나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사립학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표2> 한미일 3국의 초중고 학교 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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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흔히 미국이 우리가 말하는 자사고 즉 자립형 사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교수 비중은 21.4%에 달하지만 학생수 비중은 9.8%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사립학교 5,123개 중 73%에 달하는 3,731개가 초중등학교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27%인 1,307개가 고등학교에 있습니다. 즉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초중등학교에 비해 오히려 사립학교 비중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 미국 사립학교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종교계 사립학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사립학교 분포를 살펴보면, 로마 카톨릭계가 46.2%, 기타 종교계가 35.8%로 종교계 사립학교(mission school)가 82%에 달하고 있으며, 비종교계가 18%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종교계 사립학교는 사실 유명대학 입시에 매달리기보다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수한 종교교육에 전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학입시 교육과는 거의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종교인 양성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며 대학입시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부터, 사실상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특목고나 자사고 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제도가 이처럼 공립교육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다인종 이민국가(states)로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질성이 높은 민족 중심의 국가(nation)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교육의 기회평등이 중요하며 그래서 공립학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나라의 교육제도가 다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처럼 다민족 국가로 교육의 기회평등 원칙 아래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지닌 대학교육의 수학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양질의 학생들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고, 영재고, 외고, 자사고, 대학위탁 영재교육 등 온통 천재교육투성이입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사고 100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사립학교 비중이 높은 마당에 대통령 스스로가 나서서 공립교육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국가가 공립교육은 포기했으니 돈 있는 사람들은 자사고에 보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사고 설립허가는 더욱 가관입니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은평 뉴타운 지구에 자사고를 설립하려는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 부당한 규제라며 서울시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니 하나은행이 설립하려는 자사고가 하나은행 임직원 자녀와 일반학생을 반반씩 입학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일개 민간기업이 사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지방정부인 서울시에 학교부지를 제공하라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과 친분을 자랑하는 회장님께서 청와대에 전화질을 해대 서울시에 압력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는 과학고를 영재과학고로 이름을 바꾸어 수십억 원의 예산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과학고와 영재고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과학고를 영재고로 이름을 바꾸면 영재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부산영재고는 서울과학고를 못간 학생들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별로 대학위탁 영재교육이라는 것도 머니 게임에 불과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재의 기질이 있는 학생을 해당지역 대학에 위탁하여 영재교육을 시킨다는 취지이지만 거의 모두가 대학입시 교육에 불과합니다. 대학위탁 영재교육 대상이 되면 거의 일류대학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재교육 입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머니 게임 전쟁이 치열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도대체 영재와 영재교육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외국유학이나 대학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을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당연히 일반 공립학교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 수천만 원씩만 지원해주어도 학습능력 향상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제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 역시 공립학교 중심으로 20여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자사고다 특목고다 영재고다 하면서 엉터리 정치싸움 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방식으로 가장 효율적인 교육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초중고 학교교육이든 대학교육이든 말입니다. 교육의 기회균등은 비용이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바보가 아닌 이상 돈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교육의 기회균등을 확립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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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34

사실상 세계 최고인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매년 치솟는 등록금을 잡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등록금 상한제와 대학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도입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은 사립대의 지나친 비대화/국공립대의 왜소화와 정부 재정투입 부족 등 대학 등록금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근본 구조를 도외시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푸는 일도 한국의 왜곡된 고등교육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위축된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의 경우 사립대의 비율이 거의 78%에 해당한다. 또한 대학 전반에 대한 정부 재정지출이 OECD국가 최저 수준이고 국공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수준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공립대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등록금 장사 등을 통해 배를 불리는 사립대와 경쟁하기 위해 국공립대들도 등록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연고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들은 학벌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실상의 서열 담합구조 속에 안주해 등록금 장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립대를 중심으로 매년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잡기 위해서도 정부가 국공립 대학의 위상을 제고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을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현재의 GDP대비 0.7% 수준에서 OECD 평균 1.3%나 미국 수준인 1.4%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실 갈수록 고착화되는 학벌 구조 및 수도권의 경제력집중 현상과 맞물려 지방의 대표적 국공립대학들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이 쳐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지방 국공립대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수도권 사립대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되 그 재원의 대부분을 지방 국공립대로 집중해야 한다. 정부 재정지원 확대를 통해 지방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수도권 사립대의 1/3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는 한편 양질의 교원 확충 등을 통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점차로 높여 간다면 지금처럼 사립대학들이 활개치며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비용(등록금) 대비 편익(교육 서비스의 질) 측면에서 국공립대가 좋아진다면 점진적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국공립대로 몰릴 수밖에 없고, 사립대의 위상은 점차로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 또한 국공립대와의 경쟁을 위해 마구잡이로 등록금을 올리는 일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국공립 인프라 확충 및 질적 개선이라는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공립대가 일정하게 가격 안정화장치(price stabilizer)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부가 사립대 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함으로써 사립대 일부의 위헌 소송 운운하는 논란에도 휩싸일 필요가 없다.

더구나 지방 국공립대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몰리던 지역의 젊은이들이 지방에 남게 돼 지역의 상대적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학벌구조의 정점인 서울대라는 이름 대신 예를 들어, 한국 1대학 한국 2대학 한국 3대학 식으로 국공립대의 명칭과 학제를 전반적으로 통합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교수들의 순환 근무 등을 활성화한다면 학벌구조의 폐해를 희석화하는 한편 지방 국공립대학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나마 한국과 유사한 국공립과 사립대 비율을 가진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도쿄대뿐만 아니라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히토쯔바시대, 도쿄공대, 도호쿠대, 규슈대 등이 모두 국공립대학으로 일본의 대표적 사립대인 와세다대학이나 게이오대학보다 더 높거나 엇비슷한 대학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학 가운데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도호쿠대, 규슈대, 홋카이도대는 모두 일본의 대표적 지역 대학으로서 지역 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미국 또한 한국에는 아이비리그로 알려진 명문 사립대학들이 매우 높은 학문적 성과를 자랑하지만, 전체 대학의 67% 가량이 주립대학 등 국공립 형태로 운영되며 대학 등록금도 평균적으로 사립대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주별로 편차는 있지만 각 주의 대표적 주립 대학들의 학문 및 교육 서비스 수준도 매우 높아 지역의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UC버클리나 UCLA 등으로 대표되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들이나 텍사스주립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실력을 갖춘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 주의 대표적인 주립대에 진학해 졸업 후 지역의 기업들이나 정부 등에 취직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수도권이 젊은 인재들을 싹쓸이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렇게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을 낮추고 교육서비스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사전에 또는 병행해서 실행해야 할 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교 졸업자에 대한 다양한 진로기회 제공 및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도표9>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 22.6%에서 2008년에는 83.8%, 전체 학령 인구 가운데 대학 재학 비율을 나타내는 취학률은 같은 기간 11.2%에서 70.5%로 급상승했다. 이는 전문대 학생 수가 같은 기간 16.5만명에서 77.2만명으로, 대학생수가 41.2만명에서 212.9만명으로 급증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대학 진학률의 가파른 상승과 학생수의 급증 현상과 함께 정부의 대학 설립 자율화 바람에 편승해 대학 수도 같은 기간 96개교에서 197개교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대학 수의 급증으로 전문대 수는 같은 기간 128개교에서 147개교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 같은 대학 진학률은 OECD국가들 가운데 호주에 이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도표9> 대학 및 대학생 관련 추이 현황



(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한국의 교육열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경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경우 취업과 소득 면에서 받게 되는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데다 독일이나 핀란드 등에서 활성화된 산업과 연계된 고교 수준의 직업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교 수준에서 전문직업교육을 활성화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교육정책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들이 채용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무턱대고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에 관계없이 대졸자만을 채용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업무에 걸맞은 수준의 인력을 채용하는 식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도표9>에서 보는 것처럼 1999년 이후 대학의 재학률(=재학생수를 전체 재적학생 수로 나눈 비율)이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전문대의 경우에도 2000년대 초 재적률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듯했으나 2007년 이후로는 다시 떨어지고 있다. 대학 재학률이 공장의 가동률에 비견할 수 있다고 볼 때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이 계속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 대학 진학자 수가 더 이상 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파르게 줄어들게 돼 있고, 이미 부실한 상당수의 사립대들이 전국 곳곳에 난립해 있어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구조조정 압력에 따라 <도표9>에서 대학 수는 이미 200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국공립대의 경우 통폐합 작업을 가속화하고 학사운영이 부실하거나 비리가 만연한 사학들의 경우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고교 졸업자들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사회적 수요 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를 줄이는 한편, 국공립대와 사립대 모두 예외 없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공립 대학들을 중심으로 재정을 지원하면 상대적으로 고등교육 재원의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다.

물론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정부의 책임 못지 않게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에 놓인 사립대들의 무사안일주의와 횡포에도 매우 큰 문제점이 있다. <도표10>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등록금 수입이 전체 수입의 20%에 불과한 반면 하버드대재단의 기금운용수입금이 3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지원(15%)과 기부금(7%) 수입 등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경우도 총수입 가운데 학생 납부금(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8.2%에 불과한 반면 의료수입(17.0%)와 자산매각 수입(15.9%), 자산운용수입(9.5%), 기부금 수입(6.9%), 보조금 수입(7.2%) 등 다양한 수입원을 갖추고 있다.

 

<도표10> 하버드대와 게이오대의 총수입 내역


() 하버드대 및 게이오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반면 한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표11>에서 보는 것처럼 사립대 전체 교비회계의 총수입 가운데 약 68% 가량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입금 수입이 6%, 기부금 수입이 3% 정도에 불과한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학 재정의 2/3 가량을 등록금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추세를 보더라도 총수입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재단전입금 수입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립대학들은 2004년 이후 매년 전체 운영지출 예산의 10%가 넘는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사립대들은 교육부령에 따라 예산 혹은 추경 예산에 없는 적립금은 쌓을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언론의 추적조사에 따르면 사립대 적립금의 거의 대부분이 교육부령을 무시하고 적립금을 쌓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걷어들인 뒤 남는 돈을 학생들의 학비 감면 혜택 등으로 돌리지는 않고 각종 명목으로 적립금으로 쌓아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년 물가 상승이나 재정 부족 등을 호소하며 등록금을 가파르게 인상해온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적립금 비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4년 운영지출대비10.0%에서 2008 13.4%까지 늘었다. 금액으로는 8,216억원에서 17,45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같은 액수는 전체 사립대의 장학금 및 학비감면을 위한 지출의 약 75~88%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사립대들이 적립금을 학생 지원에 사용했다면 장학금 및 학비감면에 모두 썼다면 학생들에게 혜택을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사립대학들도 조금씩이나마 운영지출에서 장학금 및 학비감면 비중을 높여오고는 있으나 이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비율과 비교하면 그 상승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
도표11> 국내 사립대학 수입 및 지출 현황


() 사립대학 회계정보시스템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거꾸로 사립대들이 이들 여윳돈을 적립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하하는데 썼다면 2004년 이후 매년 6~7% 이상 올려온 대학 등록금을 전혀 인상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이들 사립대들이 필요한 예산을 훨씬 넘어서 과도하게 등록금을 걷어 각종 명목으로 적립하고 있으니 등록금 장사라는 비판이 전혀 무리가 아닌 셈이다.
 

더구나 이들 대학들이 적립한 내역을 살펴보면 건축기금 적립액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성격이 불분명한 기타기금 적립액이 두 번째로 많은 가운데 연구기금이나 장학기금, 퇴직기금 적립액은 거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건축기금 적립은 수도권의 대부분 사립대들이 교내 건물을 신축하거나 부동산개발 붐에 편승해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들로부터 각종 세금감면 혜택 등을 끌어내 제2, 3캠퍼스 등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축물 건립 자금 등을 명목으로 쌓아놓고 있다. 등록금 수입으로 마련한 적립금으로 학생 지원이나 연구기금으로 쓰기는커녕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립대들이 이처럼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데도 이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립대들이 무분별하게 적립금을 쌓는 관행부터 없애도록 해야 하며 현재 쌓아놓은 적립금을 등록금 인상률 억제와 연동하거나 학생 지원 등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토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사립대들은 재단 전입금 수입을 늘리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사학 재단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방해 외부 기부금 비중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립대들은 사립대를 사유재산이라는 식으로 강변하고 있고, 실제로 상당수 사립대의 재단이 일부 가문 중심의 족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족벌식으로 재단을 운영하고 이들 재단을 사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지원 확대나 기업과 지역사회, 또는 뜻 있는 유지들의 기부를 호소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소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한 바 있듯이 미국의 하버드대나 일본의 게이오대 등도 실제로는 학생/학부모 및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재단이사로 올려 단순히 한 집안의 사유물이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공적 기관으로 자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사립대들이 사유재산 운운하면서 학벌 서열구조에 안주하면서 등록금장사에 매달리는 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이미 세계 최고인 한국의 등록금 수준을 낮출 길은 요원하다.

 

<도표12> OECD 회원국 대학등록금 대출제도 현황(2004/2005)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모색하고 있는 방법은 매년 대학 등록금 상한을 물가상승률의 1.5배 이내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와 취업후 상환제도 도입과 같은 땜질식 처방뿐이다. 특히 이번에 도입하는 취업후 상환제는 한마디로 정부와 정치권의 파렴치한 생색내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높은 이자율(5.8%)과 복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근로자학자금 및 훈련비 대부(1~1.5%), 공무원학자금 대부(무이자), 군인학자금 대부(무이자), 교직원학자금대여(무이자) 등인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위의 <도표12>에서 보는 것처럼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학자금 대출제도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빚 부담에 허덕이게 하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 사학재단들은 잘못된 고등교육 구조를 통해 일반 가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등록금 부담을 지게 하면서도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생색내기용으로 내놓은 취업후 상환제조차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돈놀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등교육 시스템 또는 교육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의사도 역량도 없는 현 정부와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물갈이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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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26

대학 개강을 앞두고 다시 각 일반 가계가  자녀들(또는 본인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에 따른 가계부담도 경제력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정부의 열악한 교육재정 지원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실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대학의 등록금 수준과 교육재정 지원 실태를 국가간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2006/2007학년도 기준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수준을 살펴보자.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구매력평가 기준 달러환산 한국의 국공립대 등록금은 4,717달러로 5,666달러인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 보다 등록금이 높았다. 한국은 사립대뿐만 아니라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대부분 나라의 등록금보다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 높다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핀란드, 덴마크, 체코 등에서는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전혀 없으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거의 미미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도표1>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및 공사립대학 비율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중간

도표에서 파란색은 순수 사립대를 나타내며 나머지는 정부의존형 사립대임.

 

한국의 사립대 등록금 또한 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 20,517달러에 이어 8,519달러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또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등에서는 사립대 등록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국공립 대학이 전체 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0%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반면 사립대 비중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립대의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국공립대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일반 가계가 부담하는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사립대 명목 등록금이 가장 높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사립대의 비중이 높으면서 사립대의 명목 등록금도 높은 일본의 등록금도 장학금 차감액이나 소득 수준, 대학 교육의 질을 감안하면 한국보다 상당히 낮음은 이미 설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대학 등록금 부담도 공공과 민간 등이 적절하게 분담하는 식이라면 일반 가계들의 부담은 덜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 이상 고등교육비를 누가 부담하는지를 <도표2>를 참고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고등교육 재정지출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 전체 재정지출 대비 2.2%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고, GDP대비로는 0.7% 0.6% 수준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나라로 나타난다. OECD평균이 각각 3.1%, 1.3% 수준인 것에 비하면 현격히 낮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출 비중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현격히 낮다.



 

<도표2> 고등교육 재정지출 및 고등교육비 부담 주체 현황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는 고등교육비 부담주체 가운데 공공재원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로 이어진다. 고등교육비 부담주체를 보면 한국의 경우 공공재원 부담률이 23.1%로 가장 낮은 반면 민간 부담률은 76.9%로 가장 높다. 한미일 3국을 제외한 대부분 OECD 국가들에서는 공공재원 부담률이 절반을 넘고 특히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고등교육비를 공공재원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공재원 부담률이 각각 72.6%, 81.1% OECD평균이나 EU19개국 평균과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교육비를 민간재원으로 충당하는 비중에서 민간부담 주체를 다시 일반가계와 기타 민간부담으로 나눠볼 경우에도 한국의 일반가계 부담률은 52.8%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공사립대의 등록금이 높은 수준이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장학금을 차감한 실질 등록금이나 국민소득, 교육의 질 등을 고려한 측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비싼 대학 등록금을 대부분 민간에서, 그것도 일반가계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국공립 대학 인프라나 투자해야 할 고등교육 재정을 제대로 투자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이를 빌미로 사립대학들부터 앞다투어 대학 등록금을 올리는 가운데 일반 가계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등록금을 부담하느라 등골이 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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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15

개각단상1. 대외적 개각 모토는 소통과 친서민. 소통한다면서 반대여론이 훨씬 높은 4대강에 올인한 김태호이재오를 인선하고, 친서민이라면서 서민 출신일 뿐 전혀 서민적 정책을 펴지 않는 사람들만 기용. 현 정부에게 소통과 친서민은 포장일 뿐.

 

개각단상2. 김태호 내세워 세대교체론 점화. 하지만 세대교체는 단순히 젊은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젊은 비전과 정책역량을 가져야. 김태호의 성장과정이나 이력은 골수 한나라당 성향으로 겉만 젊은 낡은 인물. 이 역시 포장술.

 

개각단상3. 이번 개각 인사들이 맞이할 향후 한국 경제상황은 상당히 어려울 것. 하지만 이재오, 이주호, 진수희, 신재민 등 정치적, 이념적 색채가 짙은 인선. 소통과 친서민은 고사하고 이들 내각이 향후 경제적 상황 전개에 따라 압사당할 가능성 농후.

 

개각단상4. 박근혜 대항마 포석은 분명. 하지만 박근혜보다 오세훈, 김문수가 불의의 일격 받은 셈. 특히 오세훈 경우 젊고 미남형 이미지 겹치는 김태호 부담. 더구나 무소신 기회주의자 오세훈 4대강사업 등 MB정책 충성도가 높은 김태호에 밀릴 수도.

 

개각단상5. 어쨌거나 한나라당은 여러 명의 대선 후보군을 키우고, 연령대도 낮췄음. 그에 비해 민주당은 정권을 잃고도 새 인물을 영입하고 키우는데 매우 소극적. 오히려 민주당이 늙은 정당 이미지 될 판. 이미지가 아니라 쇄신 능력이 부족한 게 문제.

 

개각단상6. 개인적으로는 정권이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기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다만, 이런 류의 개각에 대해 기득권 신문들은 과거 '코드인사'로 맹비난했음. 그런데 이들 신문들은 현 정부 들어서는 '코드인사'라는 표현을 잊어버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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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9. 08:54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대가 바바라 켈러먼 교수는 'Bad Leadership'이라는 책에서 나쁜 리더십 유형을 일곱가지로 나눕니다. incompetent, rigid, intemperate, callous, corrupt, insular, evil.

 

이 가운데 incompetent는 무능, rigid는 완고함, intemperate은 절제력이 없는, callous는 팔로워들의 욕구를 살피지 않는, corrupt는 부패한, insular는 편협한, evil은 히틀러나 유고 전범들처럼 사악한 리더십.

 

그런데 우리 정치판에는 이들 나쁜 리더십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부패하며(corrupt), 제기되는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incompetent) 서민들의 욕구에는 둔감한 (callous) 등등,

 

이번에 성추행에 가까운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은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 절제력이 없어 보입니다.(intemperate) 공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말을 해야 할 장소와 때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요? 모두 갖췄죠. 무능하고(국민의 삶 저하), 무절제하며(공사 구분을 못하죠)고집스러우며(4대강 불도저처럼 밀기), 민생 욕구에 둔감(친서민 포장만 요란), 부패했으며(설명 불필요), 편협한(복잡한 외교 방정식을 고려 않는 천안함 대처). 이명박 대통령이 아직 evil 단계까지 갔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물론 용산참사 등에 대한 현 정부의 잔혹한 대처 방식을 보면 그런 측면이 없어 보이지도 않습니다만.

 

그런데 정치인들이나 대통령 욕만 할 게 아닙니다. 켈러먼 교수는 나쁜 리더는 나쁜 팔로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강용석의원은 화려한 스펙 이면에 그 사람의 품성과 능력, 비전 등을 검증하는데 실패한 유권자들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물론 전 정권의 문제해결능력 부족과 거듭된 정책실패에 대한 심판의 요소도. 하지만 그 이면에 집값 거품 유지 욕구, 조야한 배금주의, 부패에 대한 관대함, 공동체 전체로서 새로운 시대 비전 부족이 낳은 결과 아닐까요?

 

켈러먼 교수는 그의 저서 'followership'에서 팔로워의 유형을 사안에 대한 참여도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bystanders(방관자), participants(참여자), Activists(활동가), Diehards(신명을 바치는 사람)

 

켈러먼 교수는 방관자들이 많으면 나쁜 리더십이 자라날 소지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물론 적극적 팔로워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기력감이나 '나 하나쯤이야' 하는 책임의 분산 심리 등이 적극적 팔로워가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모든 이들이 시간과 에너지의 제약이 있는 만큼 모든 일에 적극적 팔로워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심 영역 안에 들어오는 일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고, 관심영역을 넓혀간다면 우리는 모두 적극적 팔로워들이 될 수 있고 세상을 바꿔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언제나 리더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훌륭하고 뛰어난 팔로워는 훌륭한 리더 못지않게 세상을 바꿀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르겠지만, 미국민들은 적어도 전세계적으로 비난받던 부시 행정부를 갈아치웠습니다.

 

트위터의 팔로잉, 팔로워 용어만큼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의 팔로우를 받지만, 또 그는 어떤 다른 사람의 팔로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팔로워이면서 리더입니다.

 

물론 영향력 있는 리더와 영향력 있는 팔로워가 있습니다. 저는 아마도 부동산문제에 관한 한 트위터 세계에서 리더격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많은 부분에서 팔로워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문제에서도 저를 따르는 많은 분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습니다.

 

잘 결합된 리더와 팔로워는 이처럼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람직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리더와 팔로워가 서로 긴밀한 상호작용을 지속적으로 이뤄갈 때 그 공동의 목표는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더가 잘못된 방향으로 팔로워들을 이끌 때 팔로워들은 방관자로 머물지 말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이라 샬레프가 쓴 'The Courageous Followers'에서는 훌륭한 팔로워의 자질로 여섯가지를 듭니다.

 

팔로워들이 가져야 할 여것가지 용기는 필요한 책임을 맡을 용기, 봉사할 수 있는 용기,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변화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용기, 도덕적 행위를 취할 수 있는 용기, 다른 팔로워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적극적 팔로워에서 머물지 말고 리더가 되십시오. 저도 한때는 리더십이 지배자의 학문이고, 거창한 영웅들의 학문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리더십 이론이 지위나 권위를 기준으로 리더를 정의합니다.

 

켈러먼 교수가 '리더십 산업'이라고 꼬집는 것도 이유가 있을 법합니다. 특히 매우 뒤틀린 상업적인 '리더십 산업'이 번창한 한국에서는 더더욱 리더는 성공과 출세를 향한 전략 정도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 그런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정신분석의 출신의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가 쓴 'Leadership without easy answers(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리더십수업)' 'Leadership on the line(실행의 리더십)'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이페츠 교수는 리더를 지위(position)나 권위(authority)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고, 어떤 과제를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action을 이끌어낼(lead) 수 있으면 리더라고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서강 살리기 운동에서 시작해 쓰레기시멘트 문제, 4대강사업과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문제점들을 꾸준히 제기하는 최병성 목사님. 그 분야의 조직을 이끌지도 타이틀도 없지만, 이슈들을 선도적으로 제기해 여론을 환기하는 최목사님은 리더입니다.

 

 

짧게 쓰려던 글이 길어졌습니다. 영어 책 제목 등을 많이 사용해 잘난 척(?)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언급한 책들 가운데 하이페츠 교수책은 한글로도 번역돼 있으니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다만, 번역이 제대로 잘 돼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주제넘게 잘 알지도 못하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냥 평소 저의 소박한 생각을 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리더십과 팔로워십에 대한 멘션들을 보면 개인으로서의 무기력감을 많이 호소합니다. 그런 분들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의 지역공부방 모임에 한 번 참여해 보십시오. 많은 사회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다루고 함께 개혁할 방안들에 대해 모색하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미디어오늘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7. 22.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