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집값 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 세븐'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공인 집값 통계인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통계는 요지 부동이다. 그렇다고 사설 부동산 정보업체의 집값 통계 또한 신뢰하기는 어렵다. 각종 부동산 통계의 문제점과 이에 근거한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응 행태에 대해 2회에 걸쳐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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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집값이 고점에서 유지되는 가운데 부동산 거래량이 줄어드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이제 집값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분당과 용인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2006년말~2007년초 고점 대비 30% 이상 폭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부 공인 통계인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통계나 부동산 114 등 사설 부동산 정보업체들의 아파트 시세 통계를 보면 이 같은 현장의 폭락 분위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수도권 내에서도 인천이나 일부 개발 호재 지역에 따라 집값이 소폭 상승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하락한 경우도 많아 전체적으로는 통계상 집값 하락폭이 적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실제 부동산시장의 현장 분위기와 각종 부동산 통계의 하락폭은 딴판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용인 지역에서 8억 원을 호가했던 148 형은 현장에서는 52,000만원에 급매로 나와 있지만 살 사람이 없다고 한다. 또 분당신도시 현동 한 아파트 108형도 2006 7억 원까지 올랐으나, 최근엔 49,00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강남재건축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102형은 2006년 말 12억 원에 육박했으나, 최근에는 8억 원선마저 무너진 78000만원에 급매물이 나와 있다. 실제 현장에서 이들 아파트들을 매수하려고 하면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보다 고가 주택의 경우 수천 만원에서 최고 1억 원 정도까지 더 싸게 살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들 지역의 집값이 30% 이상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행 통계상으로는 이들 지역 집값은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아래 <도표1>을 보면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된 올해 하반기 들어서도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소폭이지만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는 현재의 각종 주택가격 통계 작성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우선 주식시장의 주가지수 산출방식을 보면 된다. 예컨대 삼성전자 발행주식을 100만주라고 할 때 100만주 모두가 거래돼 주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발행주식 가운데 실제 매일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불과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거래되는 1% 미만의 물량이 삼성전자 주식 전체의 시가총액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전체 삼성전자 주식 100만주 가운데 1%1만주가 거래돼 어느 날 상한가를 기록했다고 하자. 증권시장에서 거래된 물량은 1만주밖에 안 되지만 이 1만주만 상한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삼성전자 주식 100만주의 가격 모두가 상한가로 상승한 것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지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주택 전체 재고가 약 1,300만호이므로 한 가구당 1억 원만 쳐도 1,300조원이다. 그런데 전국의 아파트 거래물량은 2006 112.5만호, 2007 84만호 수준이다. 계산의 편의상 연간 100만호 가량이 거래된다고 가정하면 전체 주택 재고의 약 7.7%가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7.7%의 주택 물량이 거래되면서 전체 1,300조원에 이르는 주택의 자산가격이 함께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개별 종목들처럼 주택시장에서도 대치동 은마아파트 102
, 분당 서현동 108형처럼 같은 지역의 같은 규모 아파트 별로 부동산도 일종의
종목별 시세가 형성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층별이나 조망권 여부 등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부동산 폭등기에 일부 주택 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택의 가격이 결정됐듯이 부동산 폭락기에도 일부 주택 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택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서울 강남 등 버블 세븐 지역의 주택가격은 이미 30% 이상 떨어진 것으로 보는 게 정상이다. 각 부동산 중개업소별로 고점 대비 최소 30% 이상 떨어진 매물들이 수십~수백 건씩 쌓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래량이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 비해 급격히 줄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거래가 일어나는 가격대는 이들 매물 가운데 가장 싼 매물의 가격대이고, 현재 매도자 입장에서는 그 가격대 이상으로는 주택을 아무리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게 부동산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지금 거래되는 아파트들이 급매물이므로 정상적인 시세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쌓여 있는 매물들은 모두 급매물들이다. 급매물이라는 표현도 모자라 급급매물 또는 초급급매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말이 급매물이지 사실은 정상적인 매물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정상적인 시장 거래 가격으로 보기 어려운 일시적인 급매물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아파트의 전체 평균 시세가 10억 원으로 형성돼 거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떤 가계가 해외 이주나 지방 전근, 또는 급한 현금 확보 필요성 등의 이유로 시세보다 낮은 9.5억 원에 집을 팔았다고 치자. 이 경우 9.5억 원에 그 집이 팔렸다고 해서 같은 종류의 아파트 시세가 9.5억 원으로 수렴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해당 급매물 하나만 부동산시장에서 거래되고 나면 나머지 아파트들은 여전히 10억원 선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버블 세븐 지역의 상황은 한 두 물건이 거래된 뒤 나머지 물건들이 다시 과거 고점 가격대로 환원돼 팔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행이나 사설 부동산 업체들의 아파트시세 통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부의 각종 부동산대책이나 투기지역 및 주택거래신고지역의 지정 및 해제에 사용되는 국민은행 주택 가격 지수를 살펴보자.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는 19,000여개의 표본 아파트를 대상으로 전국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표본 주택들의 가격을 월 단위로 산출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은행과 계약을 맺은 중개업소들이 시장에서 실제 부동산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으로 국민은행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실제 거래가 성립된 가격을 신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래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중개업소들이 가장 최근에 거래가 일어났던 과거 가격을 변함 없이 신고하거나 아예 중개업소가 생각하는 예상 거래가격 또는 호가를 불러주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거래가격을 그대로 올려 놓으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찮아 아예 실제 거래가격을 그대로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구나 이 같은 거래가격의 왜곡은 최근처럼 주택거래 물량이 줄어들 때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활황기에 거래 물량이 늘어 20%가 거래됐다면 이 경우에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 표본 아파트의 비중이 커지는 데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아파트의 경우에도 시장 거래 가격에 비춰 가격을 가늠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같은 불황기에 거래 물량이 확 줄어 거래량이 전체 주택 물량의 10%정도로 떨어졌다고 치면 실제 거래가 이뤄진 표본 아파트의 비중은 낮아지고 실제 시장거래 가격을 반영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업무계약을 맺은 중개업소 입장에서는 거래 사례가 드문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 등을 의식해 실제 거래가 가능한 가격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가격을 신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한 아파트 32평형 경우 국민은행 시세는 하한가가 43,750만원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매물 가운데는 38,000만원에 나와 있다. 물론 실제로 이 아파트를 사려면 현재 상황에서 1,000~2,000만원 정도는 쉽게 깎을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은행 시세와 현장 시세와는 적게 잡아도 13% 이상의 괴리가 발생하는 셈이다.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 24평형은 24,000만원에 현장에 매물로 나와 있지만, 국민은행 시세의 하한가는 31,000만원으로 돼 있다. 현장 시세가 국민은행 시세보다 약 7,000만원(22.5%) 더 싼 것이다. 또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32평형의 경우 급매 물건 가격이 65,000만원이지만, 국민은행 주택 통계 사이트에서는 상한가 9억 원, 하한가가 8억 원에 올라와 있다. 가격을 낮춘 매물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최근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은행 시세와 현장 실거래 가격의 괴리가 너무 과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국민은행은 중개업소의 신고가격이 실제 시장 거래가격에 근접했는지 여부는 제대로 따지지 않고 거의 그대로 인정한다. 기준 시세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의심되는 경우에는 현장 실사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국민은행의 현장 실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개업소들 입장에서는 기존 가격 추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을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신규주택과 기존주택의 거래를 구분하지 않는 것도 가격 통계상의 왜곡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03년 이후 신규주택은 전국에서 매년 40만호 가량 꾸준히 공급돼 왔다. 위에 언급한 2006, 2007년 전체 주택 거래 물량을 기준으로 할 때 매년 주택 거래 물량의 40%에 이른다. 신규 분양 물량이 모두 거래되지 않고 일부가 미분양 물량으로 남는다고 해도 매년 주택 거래의 30% 이상이 신규 분양 물량이라고 볼 수 있다. 신규 분양물량이 주택 통계상에서 대규모로 반영되게 될 경우 기존에 형성된 주택 가격의 왜곡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건설업체들의 고분양가 행진이 계속돼온 상황에서는 신규물량 효과는 상당히 커질 수 있다. 물론 국민은행이나 부동산정보 업체들은 이 같은 신규 물량 효과를 줄이기 위해 일정한 기간을 거친 뒤 표본으로 잡는다고 한다. 하지만 주택지수 통계상에서는 신규분양 물량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표본으로 포함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신규분양 물량이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고분양가의 영향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신규분양 물량의 고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므로 이 같은 가격상승이 신규분양 물량 공급에 따른 통계 왜곡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확한 원칙도 없이 갑자기 주택가격 통계에 반영된 이 같은 신규 물량의 고분양가가 실제 부동산 시장의 거래를 왜곡할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신규 물량에 의한 주택가격 왜곡 효과는 최근처럼 거래량이 급속히 줄어든 가운데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주변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주택업체들이 여전히 고분양가에 분양하는 물량이 많다면 해당 지역 전체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덜 하락한 것처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주택 침체기에는 고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신규 분양물량이 일정 시점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주택 통계에 반영될 경우 그만큼 실제 주택 거래가격과 통계상의 괴리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13. 16:25

지난 3일 발표된 소위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부동산 대책 가운데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가 향후 부동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맞춰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부 대책 이후 나온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재건축 단지에서만 호가 위주로 약간의 반등 조짐이 있고, 다른 지역은 여전히 침체 상황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재건축 단지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와 있던 급매물이 회수됐고, 호가가 수천만원에서 최고 1억원까지 올라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따라붙는 매수세는 현재까지는 크게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책 가운데 주택투기지역 해제나 투기과열지구 해제, 전매제한 완화, 지방 미분양 세제 지원 등은 이미 발표된 사항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 발표했거나 이미 예상된 것이어서 현재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에서는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미 시장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평정’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소형평형 의무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용적률을 국토계획법상 상한까지 허용하는 재건축 규제 완화책은 좀 다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기존 조건으로는 사업성이 떨어져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 대상지들의 사업성을 높여주는 직접적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지역에 제한된 조치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집값 폭등의 진앙지가 돼왔고, 집값 추세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상징적, 심리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효과라고 해봐야 매우 한정적일 것입니다. 우선, 위에서 본 것처럼 재건축 단지의 호가는 올라가지만 매수세가 없어서 거래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국내외 거시경제의 큰 흐름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습니다. 아마 매수세는 앞으로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과도한 이자 부담에 급매물을 내놓았던 가계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시장에 매물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제가 최근 본 기사 가운데는 9억몇천만원에 은마아파트 매물을 내놨다가 정부 발표 이후 호가를 10억원으로 올린 사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례의 가계가 진 빚이 8억2000만원이었습니다. 이런 가계의 경우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정부 발표에 따른 재건축단지의 수익성 증가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재건축단지의 사업성을 분석하는 기사들을 내놨습니다. 아래에 링크한 기사 내용을 보면 마치 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이 매우 크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완화 수익성` 시뮬레이션 해보니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10442481&type=&nid=&sid=0103&page=1

 

이 기사는 한 재개발 재건축 컨설팅 업체에 맡겨 은마아파트의 사업성을 계산하게 한 결과 단지 전체로 약 2조2000억원, 조합원 가구당 5억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뒷부분을 잘 보면 실제 개발이익은 여기에 턱도 없이 모자랄 가능성이 높음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2013년까지 연간 6%의 시세 상승을 전제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집값은 상당기간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데, 6%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년 6%가 상승한다고 가정한 것은 이율로 따지면 복리 개념입니다. 즉, 2009년부터 5년동안 33.8%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집값 상승이 가능할까요? 국내외 경제 환경은 고사하고 당장 국지적으로 보더라도 잠실, 서초구, 강동구 재건축, 송파 위례신도시 등에서 중대형 물량이 계속 쏟아지게 됩니다. 이들 지역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 인근 지역은 강남구 대치동 재건축 단지들과 시장 영역이 대체로 겹치는 부동산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치동 재건축단지들도 이들 주변 지역의 가격 약세에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건축 사업성을 따지는 기준점은 바로 인근 지역 시세이기 때문에 인근 시세가 내려가면 사업성이 떨어져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이 아예 진척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은마아파트는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아 실제로 사업기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쓰고 있지만, 아예 사업이 진척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것은 서울시의 태도입니다. 어찌보면 좀 정치적인 관점의 분석일 수 있는데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적률 280%까지 적용받아 빽빽하게 들어선 강남의 기존 재건축 아파트들이 한강변 도시 스카이라인이나 도시 주거 환경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용적률을 다시 그 수준까지 올리는 것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용적률 적용 권한을 무시한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같은 당 출신 대통령이 상왕처럼 버티고 있어 겉으로 큰 소리는 못내고 있지만, 결코 국토부 발표 내용대로 순순히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이번 대책 발표 전에도 국토부는 서울시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토부도 실무선에서는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주문 때문에 마지못해 거의 일방적으로 발표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렇기에 재건축 규제 완화에 관한 국토부 발표 내용도 두 문장으로 큰 틀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과 내년 초 도정법 개정을 앞두고 국토부와 서울시의 실무자들간에 벌이는 구체적인 조율 과정에서는 용적률이나 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 등의 측면에서 서울시 의견이 상당 수준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재건축 단지의 수익성이 지금 시중에서 기대하는만큼 높아지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서울시의 상황을 비교적 잘 정리한 기사가 있어서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3대 딜레마’에 빠진 서울시 재건축

http://www.fnnews.com/view?ra=Sent0501m_View&corp=fnnews&arcid=0921473301&cDateYear=2008&cDateMonth=11&cDateDay=04

   

이대통령과 오시장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밖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없어서 그렇지 서울시의 실제 입장은 기사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완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쓰고 보니 재건축 단지의 사업성 분석에 관한 글처럼 돼버렸군요. 사실 이번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비판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재건축단지의 임대주택 의무 건축 비율 사실상 축소는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의 대규모 지정, 개발에 따른 동시다발적 중소형 주택 철거로 서민 주거난을 불러온 이명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추진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2003년 이후 중대형 투기 붐 때문에 중대형 물량만 공급되는 과정에서 지금 중대형 아파트들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중대형 공급물량을 더 늘리겠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중에 동상에 걸리든 말든 당장 언발에 오줌을 눠 잠시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 된다는 식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떠받치고 싶은 ‘강부자’들의 집값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일단 강부자들이 거품 폭탄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떠넘기고 탈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경제 위기를 막는다는 명목에서 나온 이 같은 무분별한 부동산 부양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오는 피해의 총량을 더 키우게 된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정부가 좌충우돌식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내놓는 정책들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는 것도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엉터리로 내지르는 정책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가며 비판한다는 것도 솔직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비판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겠요.


by 선대인 2008. 11. 7. 10:31


일반인들은 잘 못 느끼지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경제 현상도 일정한 자연 법칙을 따른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거품도 너무 부풀면 꺼지기 마련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의 미국도 그렇다. 시장에서 투기적 요소로 버블이 극한에 이르면 그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압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금리 급등과 부동산 시장의 투자수익률 저하를 예로 들어보겠다.

 

우선 금리부터 보자. 한국의 집값 상승에는 은행과 제2금융권의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펌프질도 한 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계의 신용 관리는 등한시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대출 장사를 한 셈이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은행들은 매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각 가정이 부동산 거품에 취해 빚더미에 올라서는데도 은행들은 희희낙락했다.

 

이렇게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남발로 가계 빚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말 342조원에서 2008년 6월말에는 660조원으로 거의 320조원 늘었다. 매년 40조~50조원 가까이 불어난 셈인데 증가율(1999~2005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부동산 담보대출만 해도 307조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위장 대출까지 포함하면 4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데 은행권의 펌프질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급증한 2001년부터 은행은 계속 자금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은행권의 총대출이 총예금을 지속적으로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007년 한국 예금은행의 총대출액은 777조원이었고, 총 예금액은 580조원에 그치고 있다. 197조원의 과잉 대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과다 대출로 자금 부족난을 겪었던 1980년대말의 일본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일본의 과다대출은 부동산 버블 붕괴를 통해 해소됐다.

 

이 같은 상황은 주택 대출 금리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출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채와 CD 발행, 단기외화차입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계속 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신용공황이 나타날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국내은행의 외화차입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 은행들도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 기존 대출마저 회수할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설사 신규 대출을 한다고 해도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은 한층 더 높아지게 돼 금리는 계속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8월에 0.25%밖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시중 금리가 최고 1%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지만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은행의 자금 사정 때문에 이미 정책금리와 시중금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시중금리가 향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는 시중금리가 떨어질 수 있는 여력을 주지만, 시중금리 상승 압력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출 규제를 풀면 바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금융기관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과거처럼 부동산 대출을 할 것 같은가? 이게 바로 금리 측면에서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의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집값은 수급상황에도 영향을 받지만 수급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특히 2002년 이후 투기적인 상황에서 집값은 오히려 투자 또는 투기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투자(투기)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대 수익률을 따져 봐도 앞으로 집값 상승은 어렵다. 부동산 버블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부동산 값은 초기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갈수록 상승률이 둔화된다. 물론 주가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일시적으로는 집값이 주춤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값이 꼭지점에 가까워지면 오름세가 둔화된다. 단순화해 고교 수학에 나오는 2차함수의 포물선을 상상하면 쉽겠다.

 

왜 그럴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시세 1억원인 집이 1년 만에 2억원이 됐다면 연간 투자수익률은 100%다. 그런데 시세 10억인 집을 사 마찬가지로 1년에 1억원이 올랐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10%에 불과하다. 두 경우 모두 1년 만에 1억원을 벌었지만, 투자수익률에서는 10배의 차이가 생긴다. 주택 거품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웬만하면 세금과 은행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에서 후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10%라고 할 때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물가 상승분에다 각종 세금 등을 생각하면 실질 투자 수익륙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집을 새로 사는 경우라면 여기에 취등록세와 중개 수수료까지 최소 수백~수천만원 정도는 더 보태야 한다. 여기에다 빚을 지고 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목상 10% 투자수익률을 기록한다 해도 실제로는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횡보하거나 조금씩이라도 하락한다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소위 ‘버블 세븐’을 비롯,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 소유자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빚을 잔뜩 내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내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세금과 은행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이 1~2년 이상 지속된다면 웬만한 현금 부자가 아닌 한 버티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도 버블이 정점을 지나면 붕괴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많은 이들의 착각과는 달리 2000년대 집값 폭등은 국내에만 나타난 게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및 브릭스(BRICS)국가 등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달러 유동성의 과잉공급, 실물경제 자산을 담보로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 9.11테러 이후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 저금리 기조, 엔캐리 트레이드로 불리는 일본발 저금리 자금의 공급 등이 공통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시발로 해서 거의 대부분 국가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 있는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실질 주택가격의 곡선 그래프로 보더라도 이미 집값은 80년대 후반~90년대초의 상승기/91~98년의 하강기/99~2007년의 상승기를 거쳐 다시 올해부터 대세하락기로 접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의 V자형 반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내 집값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 시기였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단기간 급락했다. 따라서 이후의 빠른 집값 회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집값 하락은 그때처럼 일시에 끝나지 않는다. 모든 국내외 거시경제환경과 각종 지표들이 상당 기간 동안의 거품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집값은 변곡점을 지나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집값 거품의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집값의 기준인 서울 강남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는 회복될 줄 모르고 하락의 가속도만 높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기의 ‘치어 리더’ 역할을 했던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숲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 변동성이 커진 시대에 과거처럼 그들의 말을 믿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제가 최근 출간한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10. 15:19



제가 출간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책 표지사진입니다



고심 끝에 제가 쓴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머리말을 공개합니다. 이 머리말에는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할 여러가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정은 필요하다면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이 머리말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독자 여러분께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읽고 제 책을 성원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머리말-거품 붕괴의 시대가 온다

  

잔치는 끝났다. 거품의 시대는 가고 붕괴의 시대가 온다. 나라 전체가 아파트 거품에 취해 살던 시대는 저물어간다. 이제 빚잔치를 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겨운 한국 경제에 엄동설한이 다가온다.

탈고를 앞두고 책의 머리말을 쓰는 이 순간 매우 착잡하다. 나라 장래가 걱정돼서다. 앞으로 다가올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암담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3년 전 공저한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라는 책에서 이미 경고했다. 집값 거품에 취해 사는 나라는 장래가 없으며, 집값 거품을 빼고 정상적인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비슷한 취지로 상당수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거품은 그때로부터 다시 30~40%이상 부풀어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바뀌었다. 한국경제는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 위주의 산업구조로 탈바꿈했다. 전세계는 지식정보화의 시대, 창조경제의 시대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한 국내외 경제 패러다임에 걸맞은 경기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경기 규칙을 마련하기보다는 승자만이 더욱 많은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건전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재벌 그룹만이 대접받는 ‘엽기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재벌에게 온갖 R&D 자금을 몰아주고, 시장 경쟁을 헤치는 독과점 상황을 방조하고,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도 묵인하고 사면했다. 공공에서는 매년 50~60조원 이상의 돈을 풀어 개발사업을 벌이고, 민간에서는 집값 거품을 띄워 재벌 건설사들을 배 불렸다. 이렇게 외환위기 10년은 가진자들만이 더욱 많은 것을 향유하는 10년이었다.

지난 10년은 정부와 가계의 빚으로 거품을 만들어 성장한 시대였다. 외환위기 직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상위 재벌 기업들을 살리고, 방만한 공공기관들을 먹여 살렸다.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약삭빠른 이들이 권력자들과 결탁해 ‘공돈’을 노략질하는, 엄청난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친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미국의 인터넷 붐과 신경제 구호에 편승해 IT버블을 띄웠다. 대부분이 사기였다. 99년 온갖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하며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 많던 벤처기업들 가운데 남아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내일은 나도 부자’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객장으로 달려갔지만, 많은 수가 깡통을 찼다. 당시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외치며 주식투자 붐을 주도했던 현대증권 이익치 전 사장은 이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T주가 버블로 99년 9%대의 성장률을 기록하자 ‘외환위기를 1년만에 극복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 성장률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IT버블’은 그나마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배출했고, 하드웨어측면에서나마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우울하다.

IT버블이 싸늘하게 식자, 정부는 다른 두 개의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나는 카드채 거품이요, 다른 하나는 집값 거품이었다. 먼저 카드채 거품부터 이야기해보자. 2001~2002년 마구잡이 신용카드 남발로 만들어낸 반짝 소비 거품으로 한국 경제는 2002년 다시 7%대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신용카드로 몇 천만원씩 빌려 쓸 때는 좋았다. 하지만 카드채를 다른 카드채로 돌려막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가 다하자 2003년부터 카드채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다시 침체에 빠졌다. 많은 가계가 빚 청산에 시달렸다. 빚 청산 여력이 없는 가계와 개인들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주로 저소득계층의 빚으로 만들어진 카드채 버블은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숱한 자살자도 생겨났다. 카드채 버블이 생기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금융당국은 단기적 성과에 목맨 정부의 압력 때문인지 제때 제동을 걸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당국자들 가운데 처벌받은 사람은 전무했다. 부실 카드채로 부도 위기에 처한 재벌 카드사들도 모두 나랏돈을 들여 살려냈다. 자신들의 경영 부실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국민의 돈으로 살려내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용불량자들은 못 본 체 했다. 자신들의 정책 실패는 감추고 ‘재무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며 뻔뻔스럽게 신용불량자들을 나무라기까지 했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권, 재벌 카드사들은 모두 살아남았고, 저소득층 가계만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찌됐든 카드채 사태는 2~3년 만에 한국경제에 큰 상처를 남긴 채 아물어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한 채.

하지만 카드채 거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품이 자랐다. 부동산 거품이다. 외환위기 이후 집값은 99년부터 급반등했다. 소위 V자 반등이었다. 2000년까지 집값은 원래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이르렀을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집값은 투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강력한 주택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기조에 더해 수급 불균형도 초기 집값을 뛰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집값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집 사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자, 사람들은 있는 빚, 없는 빚 다 끌어와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설마 더 안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투자(또는 투기) 행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집값 거품은 계속 커져갔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이제는 소매금융이다’라는 구호아래 펌프질을 해댔다. 가계의 신용 평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손쉬운 주택 담보 대출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했다. 계속 펌프질을 해대다 대출 자금이 부족해지자 은행채와 CD를 남발하고, 엔 캐리 자금 등 단기 외화까지 끌어와 펌프질을 해댔다.

하지만 많은 부분 집값을 키운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진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과 단기 경제 성적표에 치중한 정부 관료들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집착해 부동산 투기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개발주의 시대 때 형성된 공급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소비자 위주로 전환하는 과제를 방기했다.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만 배불리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분양가만 자율화하고 함께 패키지로 추진키로 했던 후분양제 약속은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건설업체들이 공급자 위주의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려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주었다.

집값 안정과 서민 경제 활성화라는 염원을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부였다. 말로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면서도 건설과 개발 마인드로 무장한 관료들에게 놀아났다. 인수위 때 채택해놓고도, 결국 후분양제를 제대로 시행도 못했고, 조작된 통계에 속아 불과 2,3년 전까지 ‘집값 거품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신도시 개발을 발표하며 투기세력에게 먹잇감을 제공했다. 판교를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쾌적하고 질 높은 장기 임대 주택 단지로 만들라는 혜안 있는 전문가의 제안도 걷어찼다. 오히려 판교를 거대한 로또판으로 만들어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의 집값을 치솟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행정복합도시다, 기업도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다, 골프장 건설이다, 경제특구다 하며 온갖 개발 사업을 만들어냈다. S프로젝트, J프로젝트 같은 국적불명의 거대한 개발 사업 구상도 쏟아졌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명분을 채울 정책 구상과 공간 기획,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한 마디로 개혁정부가 아닌 개발정부였다. 전국이 투기장으로 변했고, 엄청나게 풀린 보상금 중 일부가 역류해 다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마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낸 ‘일본 열도개조론’의 한국판을 연상케 하는 조치였다. 한 쪽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을 올리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신도시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투기판을 확대하고 부동산 시장에 돈을 몰리게 했으니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 ‘10.29’대책을 발표해 부동산 투기를 한 풀 꺾어놓고도 대책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이러다 경착륙한다’는 관료들과 일부 언론의 엄포에 속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임기 내에 거품이 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2005년 이후 2차 집값 폭등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집값만은 잡겠다’고 임기 내내 되풀이하면서도 집값 잡는 방법도 모르고, 집값 거품을 깨트릴 용기도 없었으니 얼마나 무능하고, 얼마나 위선적인가? 오죽하면 맹목적으로 ‘좌파 노무현’을 싫어하는 강남 아줌마들조차 “노무현이 집값 올려준 것 하나는 정말 고맙다”고 비아냥거렸겠는가? 자신을 뽑아준 서민들의 기대를 깡그리 저버린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안 받을 줄 알았는가?

그런데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가관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있었지만, 현 정부는 그런 의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파트를 지어대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우는 것이 경제 발전의 시작이자 끝인 줄 아는 정부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산실인 건설산업의 대표격인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니 오죽하겠는가? 한국판 건설족의 우두머리라 할 만하다. 허구한 날 어디다 삽질할 것인지 ‘삽질 경제학’에만 심취해 있는 분이니, 한국 경제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뿐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 집값 올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서울시에 있는 동안 그가 집값 상승을 얼마나 부추겼는지 여실히 확인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시절부터 물밑에서 당시 이슈가 됐던 강남 5개 재건축 단지의 사업 승인을 약속했다. 물론 겉으로 내세우기는 찜찜했는지 정식 공약으로는 내세우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시장 취임 불과 몇 달 후부터 ‘강남북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강남북 균형발전’이지 실제로는 ‘강북 집값도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한 번 정치바람을 타기 시작한 뉴타운 열풍은 거세게 불었다. 그는 은평뉴타운을 시작으로 임기 내 세 차례에 걸쳐 33개의 뉴타운을 지정했다. 말이 33개이지,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약 7.5%로 30여년 서울시 전체 재개발 면적보다 더 넓다. 뉴타운을 계기로 사업대상지와 인근 지역들뿐만 아니라 향후 사업 가능성이 있는 지역들까지 집값이 폭등을 거듭했다. 오죽하면 전직 서울시 간부조차 “지방 땅값은 노무현이 올리고, 서울 땅값은 이명박이 다 올렸다”고 하겠는가?

이명박의 뉴타운 사업은 앞으로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지에 있던 중소형 주택은 모두 헐렸다. 그 자리에는 대부분 중대형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대부분 뉴타운 사업지에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70~80%를 차지한다. 중소형 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에 세 들어 있던 세입자들은 모두 쫓겨난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철거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서울 동북부와 인접한 경기 북부지역까지 극심한 전월세난이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투기세력이 끼어든 탓도 있지만, 노원, 도봉, 강북 3구의 집값이 2008년 상반기 거세게 상승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역의 대학가 하숙비가 폭등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쫓겨나는 세입자들조차 “뉴타운하면 우리도 좋아지는 것 아닌가?” 착각하고,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하숙비 상승을 초래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을 찍었다. 하긴 이런 사실을 언론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어찌 알겠는가 싶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삽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시대착오적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로 물줄기를 따라 땅값이 폭등하게 만들더니 요즘도 하는 행태가 가관이다. 더 이상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아랑곳 않고, 거품을 키우는 부양책 일색이다. 우선, 정부가 8월 21일 내놓은 ‘주택공급 기반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이하 8.21대책)’은 한 마디로 ‘건설업체 종합 부양책’이었다. 이에 더해 후분양제 무력화,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미분양 물량 해소대책, 재건축 규제 완화, 전매제한 기간 단축, 추경 편성을 통한 유동성 공급 등 부양책은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종부세 완화, 양도세 완화, 재산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세금 선물도 패키지로 준비하고 있다. 집 없는 서민이야 어찌 되든 부동산 부자들의 집값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식이니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정부인가? 하긴 ‘강부자 내각’으로 이뤄진 정부에 뭘 기대한단 말인가?

현 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각종 규제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정책을 모두 뒤집기만 하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보는 착각에 사로잡힌 듯하다. 이들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전 집값은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지만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선행하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 정부는 거품을 계속 지탱하거나 키울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한다. 그것은 필연에 가깝다. 버블을 더 큰 버블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카드채 사태 때 이를 여실히 경험했다. 하지만 역사의 실패에서 배울 만큼 능력 있는 정부가 아니니 어쩌겠는가?

정부만 거품을 키운 것도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정치권 인사들이 집값 거품 키우기에 뛰어들었다. 예를 들어,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 소위 ‘뉴타운법’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입법화하는데 열을 올렸다. 서민입법과 구조적 개혁에는 도통 무관심한 여야 의원들이 그렇게 초당적으로 합심해 만든 법은 입법사상 유례가 드물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다. 한나라당이야 못 사는 지역을 중산층 위주의 아파트촌으로 바꾸면 자신들 선거에 유리하니 ‘뉴타운 맨더링’(선거구를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에 대비해 선거구는 그대로 둔 채 뉴타운을 통해 선거구민의 구성을 바꾸는 것을 일컫기 위해 필자가 만든 조어다)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뉴타운이 뜨니 자신들도 우르르 몰려가 뉴타운 입법에 다리를 걸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제 발등 자기가 찍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한나라당 ‘뉴타운돌이’들을 비난하는 통합민주당의 모습은 애처롭다기보다 코미디에 가까웠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집값을 올린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위해 경제를 파탄내고, 서민들의 주름살을 늘렸다. 사람 귀한 줄은 모르고 전 국민의 반을 비정규직으로 내몰며 내부 식민지처럼 착취한 이들이 집값 거품을 부풀리고 유지하는 데는 앞 다퉈 나섰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아파트 값이 오르면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될 것처럼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그런 환상이 모두 망상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80년대 말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사며 기세등등했던 일본이 이후 10여년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집값 거품에 취해 온 국민을 투기장으로 몰아넣었던 정치인과 그 세력들을. 그 때가 오면 그들을 정치적으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모든 경제 현상도 일정한 자연 법칙을 따른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거품도 너무 부풀면 꺼지기 마련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의 미국도 그렇다. 몇 년 전 카드채 거품도 마찬가지다. 빚으로 쌓아올린 집값 거품이라는 모래성이 얼마나 견고하겠는가? 지금 5억, 10억 가는 집들이 50억, 100억까지 가도록 쌓아올릴 수 있을 것 같은가? 바벨탑도 하늘에 닿지 못했다.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포커판의 판돈도 참여자의 밑천이 바닥나면 더 키울 수 없듯이 말이다. 2008년 상반기 이후 집값 거품의 붕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집값의 기준인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는 회복될 줄 모르고 하락의 가속도만 높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전세계적인 동조화 현상을 보였던 세계 각국의 집값도 미국을 필두로,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중국 등 곳곳에서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의 압력은 점증하고 있다. 금리는 뛰고, 물가는 오르는 가운데 경기 하강세로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은행의 대출여력은 고갈됐고, 거액 가계 대출자들의 만기는 속속 돌아오고 있다. 게다가 몇 년 전 추진됐던 수도권 공급 물량들의 입주 시점이 가까워오면서 ‘물량 쇼크’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집값 하락을 초래할 요인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집값 올리기’의 사명을 띠고 탄생한 ‘강부자 정권’이라고 해도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집값 버블 붕괴는 단시일 안에 끝나지 않는다. 많은 엉터리 전문가들이 ‘외환위기 학습효과’ 운운하며 집값이 떨어져도 단시일 안에 반등할 것처럼 떠들어댄다. 과연 그럴까? 투기 부추기기 전문가인 이들이 부동산 시장 상황을 둘러싼 국내외 거시 경제의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집값 거품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취약하다. 카드채 사태로 저소득층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이후 2~3년 동안 한국경제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2003년 경제성장률이 3%까지 떨어진 것도 카드채 버블 붕괴 충격 때문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은 카드채 버블보다 몇 배나 더 큰 충격을 한국 경제에 가할 공산이 크다. 카드채 버블은 주로 저소득층의 문제였지만, 부동산 버블에는 중상류층까지 대거 가담했다. 버블이 꺼질 때 과다한 빚을 졌던 상당수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다. 각 가계가 빚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경제 여력을 회복하기까지 족히 4~5년간은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막대한 물량의 주택 공급이 2010년대 이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쏟아질 것이다. 2013년이면 주택 수요층의 중핵을 이루는 35~55세 연령대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시작된다. 더구나 이후 주택 수요층에 진입할 ‘88만원세대’는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매물을 받아줄 경제력이 없다.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이 2015년 무렵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집값 거품 붕괴는 집값 급락 이후 장기간에 걸쳐 침체를 면치 못하는 L자형 장기 대폭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간 일본형 침체 현상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전망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이제 부동산을 떠나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한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부동산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며, 돈덩이가 아니라 빚덩이로 바뀐다. 버블 붕괴가 아닌 ‘조정기’라는 사기꾼들에게 속는 사람은 ‘피박’을 쓰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도 늦게까지 부동산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한동안은 일반인들이 부동산으로 돈 번다는 생각은 가능하면 잊어야 한다. 부동산을 단기 투자상품이 아닌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보는 시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제 부동산에 투자할 돈이 있으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굳이 둘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면, 매월 빚에 쪼들려 사는 ‘집 가진 빈민’으로 살기보다 자기 계발에 투자하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집 없는 부자’로 사는 게 차라리 낫다.

그런데도 이 같은 변화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이명박 천하장사’의 괴력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의 신뢰는 대단하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집값을 반드시 다시 올려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가히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하지만 꿈 깨시라. 꿈 안 깨시면 당신의 삶이 위험해진다.

그런데 이런 미몽 상태에 빠져 계시는 분들에게 수면제를 더 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사기꾼에 가깝다. 만나서 이야기해면 경제적 지식과 이해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숲 속에서 땅바닥만 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숲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집값 대세 상승기에 편승해 투기 심리를 부추기며 고수인 양 행세했다. 굳이 그들이 고수라고 불린다면 ‘투기 고수’일 뿐이다. 하지만 경제 흐름은 바뀌었고, 집값은 거대한 변곡점에 이르렀다. 그들이 변곡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에게 속지 마라. 사석에서는 버젓이 “우리가 집값 떨어진다는 얘기를 어떻게 합니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투자자에게는 “지금은 조정기다. 지금 사놓으면 오른다”라고 얘기하면서 자신의 강남 집은 팔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에는 자신만만하게 “버블 붕괴는 없다. 있다고 해도 조금 긴 조정기만 있다”고 떠들면서, 필자에게는 “버블이 붕괴할 수도 있을까요?”라고 묻는 엉터리들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중의 한 명을 전문가랍시고 청와대 인수위에까지 끌어들였으니 현 정부의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언론도 너무 믿지 마라. 특히 사주가 부동산을 많이 가진 신문들일수록 믿지 마라. 한국의 신문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특히 더 심하다. 일부 신문은 부동산 재벌들인 사주의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광고 매출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건설업체들의 영향도 받는다. 신문사들이 직접 주택 사업에 참여한 경우도 적지 않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신문들은 매우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다. 오죽하면 필자가 서울시에 있는 동안 상업용지 분양을 위해 필자에까지 관계자가 로비를 하겠는가? 어째서 기자들로 하여금 기사는 안 쓰고 상업용지 분양을 따내는데 필요한 정보를 ‘취재’하게 하는가? 도대체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기자들의 전문성도 한심한 수준이다. 부동산을 몇 년 동안 담당해도 주택산업의 구조도 모르고,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거시경제 흐름을 모르는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전하는 ‘업 앤 다운(up and down) 기사'밖에 쓸 줄 모른다. 그들이 접하는 취재원이 건설업체 관계자와 그들을 옹호하는 업계 연구원, 위에 언급한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 정도이니 그 시각이나 수준이 빤하지 않겠는가? 일부 신문의 몇몇 기자들을 빼고는 신뢰할만한 수준의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드물다.

이 책이 이런 엉터리 정보들을 걸러내는 면역주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솔직히 그런 마음으로 썼다. 필자가 재테크 전문가가 아닌데도, 집을 살지 말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지난해 말부터 부쩍 늘었다. 아마 집값이 불안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필자 나름대로 분석한 내용을 전해줬는데, 지금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집값 거품에 편승해 막판 투자를 감행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상투를 잡는 것으로 보였다. 대체로 끝까지 버티다 마지막에 결심한 사람들인데 아마도 거품이 꺼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일 것이다. 거품이 꺼질 때 그들이 볼 피해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난해 연말 점심식사 도중 대학 동기인 웰시안닷컴 심영철 대표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써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심 대표는 베스트셀러 ‘은행을 떠나라’의 저자로 신뢰받는 재무컨설턴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구체적인 분석과 전망을 토대로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고 올바른 대비를 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필자가 집값 버블 붕괴에 대한 분석과 전망 등을 쓰고 심대표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무 관리를 할 것인지를 쓰기로 했다. 그러한 구상이 고스란히 이 책의 구성으로 이어졌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현재의 집값 버블이 왜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이 같은 집값 버블이 언제, 얼마나, 어떤 형태로 무너질지 버블 붕괴 메커니즘에 대해 전망했다. 3부에서는 이러한 버블 붕괴 시대에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하며 부동산 시장에서 탈출할지에 대해 조언했다. 4부에서는 부동산을 탈출한 사람들이 향후 자신의 가계경제를 효과적으로 꾸릴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소개했다. 이 책의 1부에서 3부까지는 필자가, 4부는 심대표가 집필했다.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인 심대표와 이 책을 함께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책이 나올 때까지 수고해준 한경BP 사장님과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늘 이 못난 아들과 사위의 든든한 배경이 돼주시는 양가 부모님께도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해준 아내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재능이 참 많지만, 남편 뒷바라지에 많은 것을 희생했던 아내다. 몇 년간의 주부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회복지사의 길을 걸어가는 아내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08년 9월  저자 선대인
by 선대인 2008. 10. 6. 13:22

“건설업체들이 벌벌 떨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건설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상위 대형 건설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건설업체 출신 대통령이 저렇게 돈다발을 갖다 안기려 하는 것 아닌가?”

 

건설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중견 건설업체인 H건설의 임원 권모씨도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으로 난리를 치고 있다”며 “그래서 건설업계가 현 정부에 유동성을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이고, 정부도 최근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완연해지고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주택 500만 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개발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분당신도시 16배 크기의 그린벨트 해제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직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이 아니어도 같은 정책 의도를 가진 게 많다.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부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상암 DMC초고층 빌딩이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많다. 하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이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르다. 롯데그룹은 현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풍부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부사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지금 같은 신용 경색기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롯데그룹은 정부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 방침에도 불구하고 버블 세븐의 집값은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블 세븐 지역에서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가격대가 깨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높은 집값, 극심한 거래 부진으로 표현되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저금리와 달러 유동성 급팽창에 기인했던 전세계적 부동산 버블의 동시 붕괴 현상, 수도권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표현되는 공급 과잉, 투자 수익률의 저하와 투기 심리의 위축,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시중의 신용 수축과 금리의 지속적 상승, 이미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개발과 뉴타운 등등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버블 붕괴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중구난방식 대책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각종 주택 공급 확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지를 주택 수급 구조 분석과 전망을 통해 살펴보자.

이미 시장에는 공급 과잉임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8년 9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6만호를 넘었고, 수도권에만 2만3000가구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를 훌쩍 넘는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악성(惡性)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4만가구를 넘는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물량의 25%가량이 모두 미분양되고 있다. 넘쳐나는 중대형 위주의 공급 물량으로 버블 세븐과 수도권 남부축 등에서는 심각한 집이 남아돌고 있다.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2006년 하반기 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자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000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000세대), 광교신도시(3만1000세대), 동탄2신도시(11만 3천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 외에 검단신도시 6만6000가구, 파주신도시 3만4000가구, 김포신도시 5만9000가구, 양주신도시 5만6000가구 등 모두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 5023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 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에서 4만9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

 

서울은 어떤가? 우선 뉴타운을 보자. 뉴타운은 사업지 수로는 35개지만 한 사업지역 당 개발면적은 재개발사업지 평균 면적의 약 40~80배에 이른다. 서울시가 73~2007년 사이 추진한 주택재개발 사업 전체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급될 예정인 물량은 모두 32만호. 여기에 더해 준공업지역 내 아파트 공급도 시작된다. 서울시 전체 준공업지역 면적은 27.7㎢로 뉴타운 사업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이들 준공업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후로 상당한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에 정부는 9.19대책을 통해 수도권에서 뉴타운 25개를 추가 지정하고 도심에서 18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들 물량이 향후 주택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까?

 

주택 공급 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향후 이들 주택에 대한 충분한 수요층이 있을까?

 

보통 주택 구입이 왕성한 시기는 35~54세 정도로 잡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된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사지 않거나 기존보다 작은 주택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밟는다. 노후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서는 은퇴 세대의 주택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선두 주자인 58년 개띠들이 2013년을 전후해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74년생이 35세가 되는 2009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출생자 수가 101만(71년)--->87만(80년)--->66만(90년)--->64만(2000년)--->44만(2005년)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결국 2013년 이후부터는 주택 구입 세대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정년 시기는 52세 전후로 당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감소 여파가 주택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78년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절대 숫자에서뿐만 아니라 주택 구매력 측면에서도 앞선 베이비 붐 세대들의 빈자리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세대다. 동시에 2000년 이후 발생한 부동산 거품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게 된 세대다. 이들의 대부분은 베이비 붐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하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빠져나간 주택 시장을 채워주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질러대기식 주택 공급 확대책은 한 마디로 향후 주택시장의 수급 구조를 완전히 오판한 데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에 계속 찬물을 끼얹어 주택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제가 출간한 책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필요하다면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쓴 내용이 여러분들에게 계속 전달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제가 고심끝에 이 책의 머리말 부분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제 블로그의 '임박한 부동산 파국'란에 들어가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프롤로그를 읽어주십시오. 제가 많은 분들께 꼭 전달하고 싶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6. 11:18
 


이명박 정부가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과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있다.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 호 주택공급안,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미분양 물량 증가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이밖에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 또한 도로, 항만, 공항 건설 및 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개발사업이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정책은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을 쓴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최근의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보면 부동산 거품 붕괴는 어떤 형태로든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 대책은 부동산 거품이 좀더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이미 커질 대로 커져버린 거품을 없앨 수는 없다.


또 당장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가의 미래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근본에서 허물고 있어 염려스럽다. 감세안이 그 대표적 사례다. 외환위기 전 50조원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300조 원에 육박했다. 그런 가운데 2013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등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될 것이다. 복지재정 충당금 등 재정 수요는 급증하는데 반해 경제 활력 저하로 세수(稅收) 기반은 줄어든다. 더구나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에서 보는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세원 투명화로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을 단행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지지층을 위한 복지’를 실현하는데 골몰하는 형국이다.


근시안적인 건설 부양책은 오히려 향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50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안은 2010년대 이후 주택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아갈 수 있다. 이미 미분량 물량이 공식적으로만 15만 호 이상이고, 뉴타운과 2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서 이미 계획된 물량만으로도 2010년 이후 막대한 공급이 이뤄진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주택수요인구는 2010년대 이후 급감하고 수도권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은 정부를 보자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상황을 바람이 잔뜩 든 풍선에 비유하자면 최대한 서서히 바람을 빼가야 한다. 물론 현재 부동산 거품 크기나 가계 부채로 잔뜩 쌓아 올린 거품 구조로 볼 때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듯 풍선에 바람을 더 집어넣어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 풍선이 지금보다 더 부푼 상태에서 터진다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은 한국경제라는 신체에 자라는 악성종양과 같은 것이다. 악성종양은 더 커지기 전에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한다. 계속 안고 가다가는 한국경제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일반 국민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경제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종양이 자라면서 이미 엄청난 중증을 잃고 있다. 한국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가격은 상승하면 그만큼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생한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충당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정말 한국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가야 한다. 한동안은 버블 붕괴의 고통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몰린 돈을 생산경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다. 만약 2000년 이후 자산경제에 몰렸던 수백 조원의 돈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생산경제에 몰렸다면, 지금 이 나라는 일자리가 넘쳐나 주체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당장 정부가 재정을 더 풀고 민간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에 돈을 더 집어넣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첨단 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이 이런 영역에 더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사람이다. 부동산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배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으로 사람은 천대하면서 부동산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 경제가 사는가? 서울 집값이 미국 뉴욕보다 비싸진다고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는가? 전국 곳곳에 아파트를 즐비하게 짓는다고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가? 현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5. 11:26

 

오늘 국토해양부는 주택 공급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 주택 건설방안(9.19대책)’을 발표했다.오늘 대책 발표와 관련,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다만, 뉴타운과 관련해서 서울시내 7~8곳에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상 오보다. 국토부가 15개를 추가 지정한다고 하니, 기자들이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서울시에서 지정하지 않겠느냐는 짐작에서 나온 ‘작문’이므로 믿지 말기를 바란다. 이는 서울시 주택국의 고위 간부에게서 직접 확인한 내용이니 믿어도 좋다. 참고로, 서울시는 올해말까지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운영한 뒤 자문단 결과를 토대로 뉴타운 추가 지정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했던 필자 판단으로는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서울시장의 뉴타운 추가 지정은 어려울 것이다. 설사 추가 지정을 한다고 해도 매우 극소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에 대해서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국토부는 발표문에서 지속적인 공급만이 주택 시장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공급 확대론’을 근거로 대책을 마련했음을 밝혔다. “수요 억제를 통한 ‘불안한 안정’보다는 도심 등 선호 지역에 대한 안정적 공급을 통해 ‘근본적 시장안정’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발표문은 또 “당정은 최근 주택시장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는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가 단기적으로 위축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앞으로도 주택 수요 연간 50만호에 상응하는 공급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국토부의 주택부족론에 기인한 주택 공급 확대론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치에 닿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90년대 초중반 7년여에 걸쳐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 거품이 발생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수요는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want)만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땡전 한 푼 없는데 아무리 집을 사고 싶다고 집을 살 수 있나?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유효수요가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말 유효 수요가 충분하다면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주택 담보 대출이 200조원 이상 늘었겠는가?

 

최근 및 향후 주택 공급 상황에 대하여

 

이미 시장에는 공급 과잉임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과잉임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징표는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입주율 저조다. 2008년 6월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약 15만호.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에 이른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에 묶인 돈만 최소 45조원이다. 악성(惡性)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008년 6월 기준으로 3만5190가구를 기록했다. 5월 기준 2만1757가구보다 약 62%나 급증한 수치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물량의 25%가량이 모두 미분양되고 있다고 한다.

 

전에도 설명한 바 있는 공급의 시차 효과 때문에 분양 위주의 주택 공급은 발표 당시에는 오히려 투기 심리를 자극한다. 반면 이렇게 한꺼번에 지어댄 아파트의 입주가 한꺼번에 몰리면 집값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물량 들이붓기 효과를 가장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 송파구 잠실 재건축 단지의 역전세난이다. 2008년 8~9월에 1만8000여 가구의 재건축 아파트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했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산 사람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한때 수도권 부동산시장에서 각광을 받았던 경기도 용인에도 불 꺼진 아파트와 상가들이 수두룩하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는데 들어가 살 수도 없고, 세입자조차 구할 수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수도권의 아파트 공급이 지금도 사실상 초과 상태라는 점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현상이 있을까?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2006년 하반기 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자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000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000세대), 광교신도시(3만1000세대), 동탄2신도시(11만 3천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 외에 검단신도시 6만6000가구, 파주신도시 3만4000가구, 김포신도시 5만9000가구, 양주신도시 5만6000가구 등 모두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 5023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 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에서 4만9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

 

서울은 어떤가? 우선 뉴타운을 보자. 뉴타운은 사업지 수로는 35개지만 한 사업지역 당 개발면적은 재개발사업지 평균 면적의 약 40~80배에 이른다. 2008년 7월까지 지정돼 있는 뉴타운 사업지의 총 면적은 27.22㎢로 서울시 행정구역의 4.5%, 시가화 면적의 7.6%에 해당한다. 부천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고, 서울시가 73~2007년 사이 추진한 주택재개발 사업 전체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급되는 물량은 30만호가 넘는다. 여기에 더해 준공업지역 내 아파트 공급도 시작된다. 서울시 전체 준공업지역 면적은 27.7㎢로 뉴타운 사업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뉴타운과 준공업지역 개발 두 사업만 합쳐도 서울시 전체 시가화 면적의 15%를 상회한다. 물론 준공업지역 전체가 주택단지로 개발되지는 않는다. 산업용 부지를 확보해야 하고 공공 및 공익시설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공장비율이 30% 이상인 곳에는 공동주택이 허용되지 않았고, 10~30% 곳은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점을 고려하면 ‘계획적 개발’의 조건 아래 공동주택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들 준공업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후로 상당한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에 중앙 정부가 주택 공급 물량을 대폭 더 늘인다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되겠는가?

 

향후 주택 수요 측면에 대하여

 

주택 공급 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향후 이들 주택에 대한 충분한 수요층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보통 주택 구입이 왕성한 시기는 35~54세 정도로 잡는다. 보통 30세 전후에 결혼한 뒤 5년 정도 자금을 모은 뒤 35세 전후부터 첫 번째 집을 산다. 이후 40대에 들어 직장 등에서의 승진 등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자녀들이 자라면 넓은 평수로 늘려간다. 이후 50대가 되면 가정 사정에 따라 한두 차례 실제 수요나 투자 차원에서, 또는 출가를 앞둔 자녀들 증여용으로 사게 된다. 이후 55세 이후가 되면 고정 수입이 줄고, 자녀들의 출가 등으로 다시 평수를 줄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구구조론적 측면에서 80년대 후반과 2000년대의 집값 상승을 일정 부분 설명할 수도 있지만,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사지 않거나 기존보다 작은 주택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밟는다. 노후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서는 은퇴 세대의 주택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선두 주자인 58년 개띠들이 2013년을 전후해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74년생이 35세가 되는 2009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출생자 수가 101만(71년)--->87만(80년)--->66만(90년)--->64만(2000년)--->44만(2005년)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85만명 전후가 태어났던 78년생이 35세가 되는 시기는 2013년 무렵. 이보다 7년 후인 2020년에 35세가 되는 85년생의 출생자는 66만명 수준으로 급감한다. 결국 2013년 이후부터는 주택 구입 세대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정년 시기는 52세 전후로 당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감소 여파가 주택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더해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보통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나라)에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나라)로 가는데 보통 80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한국은 고령사회에 진입한 2001년 이후 불과 26년만에 초고령사회로 이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일본이 36년 걸렸던 것에 비해서도 10년이나 빠른 속도다.

 

더구나 78년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절대 숫자에서뿐만 아니라 주택 구매력 측면에서도 앞선 베이비 붐 세대들의 빈자리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세대다. 동시에 2000년 이후 발생한 부동산 거품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게 된 세대다. 이들의 대부분은 베이비 붐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하다. 이들이 기성 세대가 빠져나간 주택 시장을 채워줄 수 있을까?

 

이처럼 이번 9.19대책은 한 마디로 최근 및 향후 주택시장의 수급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국토부가 이런 황당한 주택 공급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필자가 볼 때 가장 강력한 근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이다. 한 마디로 이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와 통화했던 서울시 고위 간부도 “국토부에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연간 50만호 공급에 맞춰준 것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대로 실행된다면 집값은 매우 안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 키워 거품 붕괴를 막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지만, 현재 국내외 거시경제 흐름을 생각하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번 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에 계속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잠실 재건축 물량들이 인근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처럼 말이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무모한 정책을 내놓는 정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만 매우 무식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집값은 확실히 떨어질 것 같으니 반겨야 할까?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 씁쓸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발표로 그린벨트 등 일부 개발 대상지를 중심으로 투기 심리에 기대 섣불리 뛰어들지 말기를 바란다. 투기꾼들의 선동에 의해 일부 지역의 가격 상승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집값 버블이 붕괴한 후 상당히 장기간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19. 17:15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에서 개설되는 수업 중에 ‘시스템 역학(system dynamics)'이라는 수업이 있다. 이 수업에서는 초기에 학생들이 조를 짜서 ‘맥주 유통 게임(Beer Distribution Game)’을 해보게 한다. 필자도 이 수업을 들을 때 실제로 게임에 참여해 보았다. 이 게임은 공급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간 지연(time delay)이 생산공장과 유통업자,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를 거치면서 연쇄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지를 간접 체험해보게 하는 게임이다. 게임은 이런 식이다. 학생들이 각각 소비자와 소매상 등 한 가지 역할을 맡는다. 소비자가 주문을 내면 이에 반응해 소매상--->도매상--->유통업자--->공장으로 이어지며 주문을 내게 된다. 각 단계에서 학생들은 재고를 갖게 되면 한 상자당 0.5달러, 주문 적체(마이너스 재고)가 생기면 한 상자당 1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고 가정한다. 즉, 재고를 최대한 0에 가깝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소비자는 처음 몇 주 동안 4 상자를 주문하다가 이후 8상자로 올려 주문한 다음에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소매상, 도매상, 유통업자, 공장 등에서는 소비자 주문이 8상자로 오른 다음에는 주문이 들쭉날쭉 해진다. 소비자 주문은 8상자로 올라선 뒤 일관됐는데도 각 공급 단계의 반응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또 각 단계별 재고는 +에서 -로 진폭이 생겨나고, 약 20~25주에 걸친 사이클도 생겨난다. 특히 소비자 주문 증가에 대응한 공장의 생산량 증가는 약 15주 후에 절정에 이르렀고, 생산증가량은 주문 증가량의 약 4배였다. 각 단계의 행위자들은 재고량을 최대한 0에 가깝게 만들려 하지만 실제 재고는 크게 넘치거나 모자라는 주기를 되풀이했다. 이 같은 반응은 이 게임이 되풀이 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았다. 현실의 복잡한 공급 과정에 비해서는 훨씬 단순화된 시뮬레이션인데도 이 같은 진폭과 불안정성이 나타났다. 공장의 기계 고장부터 시작해서 수송 사고, 노조 파업, 양산능력의 한계나 예산 제약 같은 것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는 불안정성이 훨씬 증폭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맥주 유통 과정에서만 발생할까? 아니다. 오히려 시장 수요의 시그널에 반응해 시장에 제품이 재빨리 공급되는(즉, 시간 지연이 적은) 공산품은 덜한 편이다. 공급 과정에서 시간 지연이 많이 생기는 주택시장은 이런 진폭 현상이 훨씬 심하고 진폭의 주기도 길다. 주택 시장의 시간 지연으로 인한 집값의 등락 사이클은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관찰돼온 일반화된 현상이다. ‘시스템 다이내믹스’ 수업의 기본 교재로 사용되는 존 D 스털먼(John D. Sterman) 교수의 명저 ‘비즈니스 다이내믹스'에도 부동산 시장의 버블과 버블 붕괴 현상을 아예 케이스 스터디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스털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은 가장 불안정한 주기성을 띤 자산 시장 가운데 하나로 약 10~20년에 걸친 증폭 주기를 가진다”고 적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그 같은 주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의 설명을 인용해보자. (시스템 역학에 나오는 용어는 충분한 설명 없이는 오해를 부를 수 있으므로 일부 표현은 필자가 일반적 용어로 대체하거나 생략했다)

“상업 용지 수요는 경제 활동에 좌우된다. 해당 지역 고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공실률은 떨어진다. 공실률이 낮을 때 임대료는 오르기 시작한다. 임대료 상승은 기업들이 직원 일인당 공간을 줄여 적응함으로써 약간의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하지만 수요 반응의 탄력도는 낮고 반응 시간은 길다. 공급 측면에서는 상승하는 임대료는 기존 자산들의 수익성과 시장 가치를 높인다. 가격이 높고 상승 중일 때 임대료와 운영 수익은 높고 디벨로퍼들도 상당한 자본 이득을 실현할 수 있다. 높은 수익은 새 디벨로퍼들을 끌어들이고, 그 붐에 편승해서 돈을 벌려는 금융적 지원도 부족함이 없다. 많은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들이 시작되고, 이는 개발 중인 건물들의 공급을 늘린다. 오랜 지연 끝에(2~5년) 임대 공간은 늘어나고 공실률은 떨어지며 임대료도 시장 가치를 끌어내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익이 떨어지면 개발 비율도 떨어진다. 시장은 가격을 통해 수요 공급의 균형을 잡으려는 음의 순환고리를 만든다.

새로운 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평가할 때 디벨로퍼들과 투자자들은 수요와 공급의 성장을 전망함으로써 장래 공실률을 예측해야 한다. (중략) 그렇게 했다면 새 개발 프로젝트 착수율은 임대료가 정점에 이르기 훨씬 전에 떨어졌을 것이다. 디벨로퍼들은 지금 공실률이 낮고 수익이 높다 해도 수급 균형을 이룰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한다. 하지만 가격이 정점을 지난 후에야 건물 공급은 정점에 이른다. 공급이 넘쳐나고 공실률이 높아지며 임대료가 떨어진 다음에 말이다. 디벨로퍼들은 ‘지금 당장’ 수익이 높다고 본다면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한다. 프로젝트를 끝내는데 2~5년이 걸리는데도 말이다. 이 공급과정을 계산에 넣지 못하기 때문에 붐일 때는 건물 과다 공급으로 이어지고 거품이 꺼진 뒤에는 건설 투자가 재빨리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난 100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윗글을 보면 최근 한국 부동산 시장 상황이 떠오르지 않는가? 한국의 집값 버블 붕괴도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선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입주율 저조가 공급 과잉 신호를 세차게 보내고 있다. 2008년 6월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약 15만호.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에 이른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구나 2008년 하반기에 전국 입주 아파트는 수도권 7만7000채를 포함, 모두 25만1000여채나 된다. 이중 상당수가 미분양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2008년 이후 중대형 평형의 집값이 맥을 못 추는 것도 공급시차 측면에서 볼 수 있다. 2001~2003년 집값 폭등기에 중대형 평수 위주로 집값이 오르자 대부분 언론에서는 중대형 평수의 공급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떠들어댔다. 실제로 중대형 평형 공급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중대형이 돈이 된다’는 생각에 여러 사람이 사재기를 한 탓도 컸다. 그러다 보니 건설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중대형 평형을 지어댔다. 이후 이뤄진 대부분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2007년말 펴낸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한 저가 소형주택 확보방안’에 따르면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 비중이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2002년의 경우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이 전체 서울지역 주택 건설 비중의 64.6%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21.3%로 대폭 줄었다. 반면 아파트 건설 비중은 2002년 32.4%였으나, 2006년에는 76.5%나 됐다.

서울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03년 이후 지어진 수도권 아파트도 중대형 평형이 대세였다. 이 흐름을 가장 강하게 탔던 경기도 용인이 전국에서 아파트 평균 면적이 가장 큰 도시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대량으로 분양됐던 중대형 평수의 입주물량이 쏟아진 서울 잠실재건축 단지나 용인 등 경부축의 중대형 평형이 죽을 쑤는 것도 이런 수급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입주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이 지역은 심각한 역전세난까지 겪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주로 서민들이 사는 중소형 평형의 공급은 크게 줄었다. 올해 총선을 전후해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 등의 집값이 상승한 것이나 최근에도 강북 중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전세난을 겪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5~2007년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가량의 소형 주택이 철거된 반면 신축된 소형 주택은 1만4000여 호에 불과하다. 더욱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8만5000가구가 철거될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강북 소형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 세력이 가세해 집값 상승이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동북 3구의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기는 어렵다. 우선 거래량이 올해 강북 지역 투기가 극성을 부렸던 2008년 3, 4월에 비해 3분의 1 아래로 뚝 떨어졌다. 추가 매수자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또 뉴타운 지역 주민들의 70~80%가 세입자여서 이 같은 수급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매매 수요의 급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탕’하고 뜨려고 했던 투기꾼들로서는 오히려 스스로 덫에 걸려든 격이 됐다. 수익을 현실화하려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들 지역의 집값은 추가 매수세가 없자 2008년 7월부터는 아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다만 해당 지역 및 인근 지역의 전월세난은 계속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인 뉴타운이 가져온 폐해인 셈이다.

공급과정의 시간 지체로 인한 수급 불균형만이 집값의 거품 형성과 붕괴 사이클을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각종 투기적 상황과 정부의 정책 실패, 건설업계와 중앙 정부의 유착, 건설업계의 담합 및 투기에 편승한 분양가 조작, 건설업계의 분양광고를 매개로 한 언론 매체의 선동적 왜곡 보도, 부녀회나 반상회 등 주민들의 집값 담합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투기 현상이나 건설 부패와 담합 등에 의한 집값 상승을 ‘사이비 시장논리’로 정당화함으로써 투기 버블을 확대재생산한 일부 신문들의 책임은 매우 크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택 수급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제 집값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공급 부족론’을 들고 나오며 이미 10개의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8.21대책’에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 등 두 개의 신도시를 확대 지정하기까지 했다. 서울시가 이명박 전임시장 시절 지정했던 35개 뉴타운의 주택 공급 물량 30여만호도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말이 35개이지 서울시가 30여년동안 재개발한 물량의 1.5배가 넘는 규모다. 지금도 공급 초과인 상황에서 집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2010년 이후 집값은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정부나 서울시도 부동산 시장 위축 상황을 보며 계획을 수정할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공급을 더 확대하라’고 부르짖는 엉터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움츠러들면 3~4년 후에는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다시 폭등한다. 그러니 건축 규제를 최대한 완화해서 계속 공급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다. 실제로 8.21대책 가운데 추가 신도시 지정이 이 같은 논리에 따라 나왔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겠다거나 도심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를 계속 부르짖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무조건 공급 타령인 셈이다. 향후 공급 위축을 우려해 정말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뜻이 가상하다. 통폐합 위기에 놓인 국토해양부 산하 토공과 주공을 위한 밥그릇(결국 퇴직 후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길 빌 뿐이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 공유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세요.

by 선대인 2008. 9. 18. 15:50
 
9월 1일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의 서울특파원인 이나다 키요히데 기자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 소장님을 대신하여 부소장인 제가 인터뷰에 응하였습니다. 주제는 한국 부동산 버블의 붕괴 가능성과 이와 관련된 한국 경제 위기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나다 기자는 이번 인터뷰는 자신들이 준비중인 기획기사의 큰 방향에 대해 저희 연구소의 자문을 듣는 한편 관련 코멘트를 인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나다 기자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말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는 듯 했습니다. 약 한 시간 반동안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이나다 기자는 크게 네 가지 질문을 했는데, 우선 이에 대한 저의 답변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 답변은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1. 최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고, 서울 강남과 수도권의 집값이 떨어지는 이유가 뭐냐?


답변 1: 집값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공급이 초과상태다. 이미 2006년 말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모두 66만호가 초과 공급된 상태였다. 2007년부터는 수도권에서도 공급 과잉 상태로 돌아섰다. 현재의 집값 수준에서는 자기 돈이든, 은행 돈을 빌려서든 집을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 그런데도 이미 발표한 광교, 판교, 화성 동탄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 대규모 물량 공급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급등, 경기 위축, 금리 상승 등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되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물량 증가와 집값 하락 현상도 바로 이 때문이다.


2.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느냐? 버블이 붕괴한다면 가계 부채로 인한 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


답변 2: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하기 마련이다. 십수년간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던 일본의 버블도 붕괴하지 않았느냐? 이미 한국의 부동산 버블도 붕괴되는 상황에 진입했다. 그 증거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값 거품이 꺼지기 전에 집값은 높이 유지되는 가운데,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1년반에서 2년가량 선행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이 2007년 상반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 지금 한국의 은행들은 대출 자금이 부족해 CD와 은행채 발행, 단기 외화 차입 등을 통해 예수금 대비 140%의 초과 대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니 시중금리도 뛰고, 환율이 오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에도 똑같이 나타났던 현상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더라도 부동산 버블 붕괴는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버블 붕괴를 막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가계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다. 2001년 340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올해 2분기 현재 660조원으로 늘어났다. 증가한 320조원의 60% 정도가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때는 상업용 건물을 중심으로 한 기업이 많이 가담했지만, 한국의 부동산 버블에는 가계가 대부분 가담한 것이 차이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비교적 거뜬하게 버텼지만, 이번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 가계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겪게 될 것이다. 또 가계 부채로 시작된 경제 충격이 매우 깊고 큰 파장을 장기간에 걸쳐 일으킬 것이다. 적어도 2003년에 있었던 카드채 버블 붕괴보다 몇 배나 더 큰 경제적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3. 한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8.21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특히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데 한국 정부가 또 다시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유가 뭐냐?


답변 3: 한 마디로 건설업체들에 대한 종합 선물세트다. 환매조건부 미분양물량 매입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회사들에게 거액의 금융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은 한국 정부가 얼마나 상황을 오판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생기는 것은 공급 과잉의 명백한 징표인데, 현 정부는 노무현 정권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약 이를 알고서도 추가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면, 이는 한국의 국토해양부 관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OECD국가 가운데 건설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들인데, 일본의 토건족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체와 건설관료들 사이의 강한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히 국토부 관료들은 자신들의 미래 직장이기도 한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원하지 않는다. 국토부가 산하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막기 위해 ‘몇 년 후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동원해 일거리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4. '9월 위기설'이 도는데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것이냐?


답변 4: ‘9월 위기설’은 외국인 만기 채권의 대량 환매가 몰린 것 때문에 불거졌다. 물론 기획재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시중에 떠도는 ‘9월 위기설’이 당장 외환위기의 형태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후 외환위기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 국내의 외환 보유고가 24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해도 수백억달러가 미국 연방주택금융공사인 페니메이와 프래디맥에 묶여 있다. 또 한국투자공사(KIC)가 얼마나 손실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어 2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간다면 패닉이 발생해 외환 유동성 위기가 생길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층의 붕괴, 실업률 증가 및 비정규직의 확대, 자산 및 소득 양극화 등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누적돼온 구조적 문제들이 모두 폭발 직전에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최근 급격히 악화된 국내외 거시경제 지표들과 맞물려 한꺼번에 극적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9월에 당장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모든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 ‘계속되는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떨어져 경제 주체의 불신을 부르고,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나다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동행했던 아사히 지국의 한국인 기자가 한 가지 질문을 곁들이더군요. “많은 이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즉답을 하는 대신 이나다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일본의 버블기에도 만연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랬더니 이나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본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지만 결국 버블이 붕괴되고 나니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답하더군요. 제가 말을 받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도 함께 붕괴할 것”이라고 했더니, 이나다 기자가 표현이 재미있다는 듯 메모를 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나다 기자는 “일본에서는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이번 기획기사도 그런 점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며칠 안으로 부동산 침체와 미분양 사태가 가장 심각한 대구 지역을 찾아 현장 르뽀를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움이 더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한 뒤 헤어졌습니다.



이나다 기자와의 인터뷰 소감


일본이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나라인지라 상대적으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외신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부동산 시장 등 한국 경제 전반의 상황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현 정부는 ‘경제 위기설’과 관련된 영국 더 타임스의 최근 보도나 일본 니케이 신문의 보도를 과장보도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를 외국인들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부로서는 실제로 위기가 있다고 해서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외국 언론의 보도를 과장보도나 음모론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그렇지만, 영국 더 타임스나 일본 니케이신문 등은 각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들입니다. 한국의 언론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언론들입니다. 그런 외국 언론들이 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물론 외신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몰라 때로 엉뚱한 보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 익숙해 보지 못하거나 또는 정관언 유착 등을 통해 보도할 수 없는 것을 정직하게 보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 한국 언론은 마지막까지 정부당국의 말만 믿고 외환위기 가능성을 조기 경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의 보도도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소위 메이저 신문들은 너무 친정부 성향이 강해 더욱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외신 보도를 통해 한국 경제가 외부에서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7. 08:35

부동산 대폭락 가능성

기사입력 2008-08-25 13:35
[신동아]

《지난해 말부터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집값의 대세하락을 설파해왔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느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지금 집을 사면 상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사지 마라. 특히 부채를 지고는 절대 사지 마라”고 답하곤 했다. 길게 잡아도 2년 안에 본격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같은 판단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1990년대 말 이후 집값 폭등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주택 투기 버블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및 브릭스(BRICs) 국가 등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세계 경제 동조화 현상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를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과잉공급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실물경제 자산을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도 주택 버블 형성에 기여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금융권에서는 주택모기지 대출을 유동화하는 금융상품을 통해 부동산 투기 레버리지(leverage)를 극대화했다.

9·11테러 이후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미국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지한 저금리 기조도 주택 버블 형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됐다. 여기에 1999년 유로화 국가들의 시장통합에 따라 역내 금융기관들의 저금리 여유자금 유입과 역내 직접투자가 확대된 것도 유럽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른 원인이 됐다.

이 같은 경제적 동인들을 배경으로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의 집값은 급격히 상승했다. 예를 들어 쉴러-케이스(Shiller-Case) 주택가격지수 추이에 따르면 미국 10대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약 2.25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주택 버블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붕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6월 현재 미국 10대 도시의 경우 정점 대비 주택 가격이 17.8%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더구나 물가가 하락한 대공황 때와는 달리 현재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집값 하락폭은 대공황 때보다 더 크다.

미국보다 조금 늦게 거품이 걷히고 있는 영국의 경우도 집값 하락세가 완연하다. ‘이코노미스트’ 7월5일자에 따르면, 영국의 집값도 6월 현재 지난해 동기 대비 6.3% 하락했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등 상당수 국가의 집값이 빠른 속도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함께 오르던 전세계 집값이 이제는 함께 떨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전 지구적 동조화 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주가 등락 그래프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세계 증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시장도 1990년대 말 이후 동조현상이 뚜렷하다. 다른 나라와 함께 오른 국내 집값이 다른 나라가 내릴 때에도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있을까? 전세계적인 동조현상에서 한국만 벗어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국토가 좁고,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한국인은 주택 소유욕이 강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은 다르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9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에 있던 일본에서도 거의 똑같은 이유를 들먹이며 ‘부동산 불패론’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택수급 불균형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택수급 상황이다. 이 같은 오해를 바탕으로 한 언론 보도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엉터리 주장도 많다. ‘아직 주택보급률이 100%에 이르지 않았으니 집이 모자란다’거나 좀 더 국지적으로는 ‘강남 같은 여건을 갖춘 아파트는 모자란다’는 식의 주장이 그렇다. 이런 주장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는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1990년대 초·중반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 거품이 발생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수요는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want)만 있다고 수요라고 할 수 없다.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유효수요가 된다. 많은 이가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35% 전후의 주택 미소유자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집값은 정점 대비 17.8%가 빠졌다. 그런데도 아직 절반밖에 안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은 미국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한 주택 앞에 내걸린 주택 매매 광고판. ‘꼭 들어와서 구경하세요’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각 개인의 구매력은 자신의 가처분 소득과 은행 등에서 부채를 얻을 수 있는 신용의 정도, 소비하고자 하는 상품(이 경우 주택) 가격 등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가계의 가처분소득 규모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주택 가격은 지난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의 집값 상승은 수급 불균형 측면에서도 합리화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 건설경기 침체로 주택 잠재수요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데 반해 실제 공급량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부동산 투기 붐이 일면서 아파트 신규 공급이 급증해 공급 부족이 빠르게 해소됐다.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약 41만호에 이르렀던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량 부족은 2006년에는 7만3000호까지 빠르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소는 다주택 보유 가구 및 수도권 비거주자의 투기적 가수요를 빼면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 부족은 거의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분양 미달, 입주율 저조 등을 통해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2만9859호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두 배가량인 25만가구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올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5만352가구 중 미분양 물량은 19.5%인 9819가구나 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균형촉진지구의 주상복합 ‘서교자이’가 1순위 분양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은 것이나 은평뉴타운의 입주율이 25%에 불과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낮은 투자수익률

집값은 수급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상황이 보여주듯, 투자 또는 투기적 요소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투자 또는 투기를 한다고 할 때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대수익률을 따져봐도 앞으로 집값이 상승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버블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부동산 값은 초기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부동산 거품이 꼭짓점에 가까워질수록 상승률이 둔화된다. 물론 주가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일시적으로 집값이 주춤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값이 꼭짓점에 가까워지면 오름세가 둔화된다. 단순화하자면 고교 수학에 나오는 2차함수의 포물선과 같다.

왜 부동산 거품이 꼭짓점에 가까워지면 추가 상승 여력이 떨어질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시세 1억원인 집이 1년 만에 2억원이 됐다면 연간 투자수익률은 100%다. 그런데 시세 10억원인 집을 사 마찬가지로 1년에 1억원이 올랐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10%에 불과하다. 두 경우 모두 1년 만에 1억원을 벌었지만, 투자수익률에서는 10배의 차이가 생긴다.

주택 거품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웬만하면 세금과 은행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충분히 수지가 맞는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에서 후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10%라고 할 때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우선 물가상승분을 빼야 한다. 올해의 경우 물가상승률은 낮게 잡아 4% 정도다. 여기에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로 수천만원을 내고 나면 실질 투자수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다. 더욱이 은행 대출 등의 부채를 지고 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실제 고가 아파트를 살 때 대부분의 경우 집값의 20~30%는 금융기관의 주택 담보대출로 메운다. 은행과 제2금융권의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는 추세이므로 부채 차입 비용도 갈수록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목상 10% 투자수익률을 기록한다 해도 실제로는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매년 투자수익률이 최소 10% 이상은 돼야 투자처로서 매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를 만큼 올라버린 아파트가 매년 10% 이상 추가 상승한다는 게 가능할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횡보하거나 조금씩이라도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버블 세븐’에서 최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들 주택 소유주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거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내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세금을 내는 데 더해 수천만 원의 은행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이 1~2년 이상 지속된다면 더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다.

투기 심리의 위축

최근 경매에 나온 강남의 고가 아파트수가 크게 늘거나 고가 아파트 시세가 수억원씩 떨어지는 것도 모두 이런 상황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체 아파트 재고에 비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집값 거품 붕괴라는 폭우의 첫 빗방울이라고 보는 게 더 현명하다.

투자수익률의 하락은 투기 심리의 위축을 부른다. 최근 ‘경부 라인’ 축의 집값 하락세를 지켜본 많은 이가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투기 심리가 위축됐음을 뜻한다. 지난 몇 년간 집값의 대부분은 투기 심리로 올랐다. 물론 초기에는 실제로 주택 공급도 부족했고,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졌고, 소위 (사)교육여건의 지역 편차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기 버블이 발생해 그 거품이 계속 지속되고 커진 것은 많은 부분 투기심리 때문이다. 이런 투기심리를 키운 데는 정치권과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정책 실패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투기심리로 잔뜩 부풀어 오른 집값 거품은 투기심리가 사라지는 순간 꺼지게 마련이다. 최근 강남과 수도권 전역에서 집값이 절정기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매수세가 없는 것은 투기심리가 얼마나 위축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정부나 서울시의 각종 정책이나 정책 시그널에 부동산시장이 반응하는 양상을 봐도 투기심리가 상당히 위축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당수 언론에서는 정부가 대출 규제 및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지 않아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가 마련되고 집행됐던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집값은 줄기차게 올랐다. 그 규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집값이 떨어질 이유는 없다. 더구나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규제를 조금씩 완화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집값을 자극할 만한 발언이나 지시를 여러 차례 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에서도 분양 뒤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왔다. 사진은 GS건설이 서초구 반포동의 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총 3410채의 반포자이 아파트.

이 대통령은 올초 국토부 업무 보고 때 규제 완화책을 강하게 주문했다. 또 기획재정부는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경감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강 장관은 최근 종부세 완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불과 3,4년 전 비슷한 발언을 대통령과 재경부 장관이 했다고 상상해보라. 부동산시장이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였겠는가. 그만큼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전체적인 경제 요인들이 강력한 하락 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에 반응해 투기심리 또한 상당히 위축돼 있는 것이다.

국방부가 5월 말 112층 ‘제2롯데월드’ 건립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 ‘제2롯데월드’ 사업 부지와 가장 근접해 있는 잠실 5단지에서는 과거 긍정적인 보도가 나올 때마다 집값이 껑충 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집값은 수천만원이나 떨어졌다. 당시 종부세 납부일을 앞둔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후에도 잠실 5단지 집값은 여전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세 상승기에는 조그만 호재에도 집값이 크게 뛰는 반면, 대세 하락기에는 웬만한 호재에도 하락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집값은 전체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원유가 등 수입 물가 상승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과 동시에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서는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르는 상태에서 경기 침체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면 개별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양쪽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소비는 위축되고, 부동산처럼 덩치가 큰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와 시중 금리 상승

이런 가운데 지속적인 시중 금리 상승은 집값 하락을 부채질한다. 한국의 집값 상승에는 시중 은행과 제2금융권의 주택을 담보로 한 무분별한 대출도 한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기업 대출보다는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 대출에 집중해 시중 유동성을 과잉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 말 342조원에서 올해 3월 말에는 640조원으로 거의 300조원가량 늘어났다. 물론 늘어난 가계 부채 대부분은 부동산 대출이다. 이 같은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제도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대출 규제다.

하지만 이제 은행권의 펌프질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최근 은행 대출금리는 고정금리형과 변동금리형이 모두 상승하고 있다. 먼저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서 고정금리형 대출상품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도 최근 6.70%까지 상승했다. 3개월 전인 4월 말(연 5.74%)에 비해 1.23%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채 금리에 연동되는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9%대를 넘어섰다. 또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주택대출 금리가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 등으로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은행권이 낮은 저축률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채와 CD 발행을 계속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2007년 8월 이후 11개월째 5.0%에서 유지돼온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 금리 인상은 경기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한국은행으로서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7월10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제2차 물가 충격’을 언급해 8월에는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중금리는 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부담 때문에 추가적인 주택 구매가 줄어들고, 기존 주택 담보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령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연간 이자 부담은 100만원씩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고금리가 지속되면 당연히 원리금 상환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주택 소유자들의 매물이 증가하게 된다.

위에서 본 것처럼 전반적인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집값의 대세하락 압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점증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하락 요인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최근의 집값 하락 현상이 과거 대세 상승기에 흔히 일어났던 일시 조정기라는 생각은 ‘기대 섞인 희망’에 불과하다.

비근한 예로, 올초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 연방 정부와 FRB의 긴급 구제 조치로 일단락됐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미국의 집값 하락은 기껏해야 ‘절반을 지났다(halfway through)’고 할 정도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발생할 손실규모는 1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주장이 맞다면 올 6월 말까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발생한 전세계 투자손실 3970억달러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이처럼 지금 국내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엄혹한 경제 상황은 단기간에 쉽게 마무리될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집값 상승 요인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필자는 국지적인 개발 호재를 논외로 할 경우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값 거품을 떠받치는 요인들

우선 현 정권이 경기 침체를 빌미로 강력한 건설경기 부양책 및 집값 부양책을 쓸 경우다. 소위 정치적, 정책적 요인이다. 국내 부동산시장에 미친 정치적, 정책적 요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 이명박 대통령은 소위 ‘부동산 대통령’이 아닌가. 최근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의 조합원 지위 양도금지 조항 폐지, 소형 아파트 및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집값의 추가적인 상승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가 상당히 폭넓게 자리 잡고 있어 세칭 ‘강부자 정권’도 집값을 폭등시킬 정도의 규제 완화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이 시장에 미칠 파장을 좀 더 살펴봐야 하겠으나, 집값 거품 붕괴 속도를 늦출 뿐 집값을 과거 정점 위로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현재 경제 상황 때문에 정부가 원해도 취할 수 없는 정책수단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집값 상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금리 인하. 지금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꿈도 못 꿀 조치다. 설사 정부가 집값을 자극하는 규제 및 세금 완화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집값 하락 요인들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집값 하락과 대출 금리 상승이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에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살 투자자가 얼마나 있을까. 이처럼 거대한 시장의 하락 압력을 정치적, 정책적 요소로 떠받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두 번째 집값 불안 요인은 강북의 뉴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형 평형의 수급 불균형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소형주택이 크게 줄었다. 올해 총선을 전후해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의 집값이 상승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이 같은 소형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북 소형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폭이 확대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향후 몇 년 동안 강북 및 인접 경기도 지역의 집값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올해부터 뉴타운 지구 내 주택 철거가 본격화돼 2010년까지 약 8만5000가구가 줄어든다.

하지만 이 같은 소형주택 위주의 수급 불균형은 국지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주 가구 대부분이 인접지역에 재정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뉴타운 지역 주민의 70~80%가 세입자여서 이 같은 수급 불균형에도 매매 수요의 급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북의 중소형 아파트는 주식으로 치면 오랫동안 소외돼온 비우량주여서 부동산시장 전체를 뒤흔들 힘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강북의 집값 상승이 강남 집값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누가 뭐래도 수도권 집값의 기준은 강남 집값이다. 올초 강북 집값의 가파른 상승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동산시장에서 저평가됐던 소외 지역이 ‘키 맞추기’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최근 강북 집값 상승은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마지막까지 오르지 않았던 부동산 상품이 오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강북도 앞으로 추가적인 대규모 개발 호재가 나오지 않는 한 올초와 같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는 어렵다. 실제로 최근 집값 동향을 보면 강북 집값의 상승세도 크게 꺾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인의 관점을 회복하라

주변에는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는지’ 또는 ‘더 늦기 전에 집을 팔아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모두 집값이 불안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자신의 장삿속 또는 이해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능하면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방향으로, 집을 사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많다.

그들은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전문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많은 경우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의 국지적 개발 정보와 개발 절차에 따른 집값 상승 패턴을 이용해 주택 투자 또는 투기를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집값 상승이 지속될 땐 그들의 조언을 듣는 것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집값 버블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기 직전 미국 내 한인 부동산 브로커의 말을 듣고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감행한 경우가 그렇다. 2006년 말에서 2007년 상반기에 미국 부동산에 투자해 상투를 잡은 사람들의 피해는 매우 크다. 필자가 아는 사람의 경우 30만달러를 선금(downpayment)으로 넣고 모기지 대출을 받아 80만달러에 집을 샀다가 나중에 집값 폭락으로 모기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결국 집을 은행에 처분하고 빚 청산을 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모두 35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처럼 버블의 정점에서 잘못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버블 붕괴의 언저리에 있는 현 국면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되도록 새로운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언젠가는 부동산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주문하고 싶다. 10여 년 전 일본의 사례와 지금의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이 부동산 거품은 언젠가는 깨지며, 한국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는 중임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 대해 투기자가 아닌 생활인의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집값이 급등하고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많은 이에게 집은 삶의 보금자리라기보다는 투자 대상이 돼버렸다. 많은 이가 증시에서 주식을 사고팔듯이 집을 거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주택에 대해 주거공간이라는 본연의 가치로 바라볼 시점이 됐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주거공간으로서의 주택을 생각한다면, 지금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사는 것은 금물이다.

대세 하락기엔 호재가 있어도 좀처럼 하락세가 꺾이지 않는다. 제2롯데월드 착공 소식에도 인근 아파트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사진은 제2롯데월드 신축계획안(조감도)

더구나 무주택자가 은행 부채 등을 잔뜩 지고 집을 사려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단기적 투자 개념이 아니라 10년 단위의 중장기적 재무설계 관점에서 판단해보라. 예를 들어, 당신이 30대 중후반의 무주택자라고 해보자. 무리하게 주택 투자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 사람들이 안정된 노후기반으로 집이 필요한 시기는 10여 년 후인 50세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집값 거품 붕괴가 과거 1990년대 초의 패턴을 따른다면 7~8년간의 집값 하락 시기를 예상할 수 있다. 집값은 1990년 초의 정점 대비 실질적으로 약 절반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향후 10여 년 사이에도 집값이 사실상 반토막 나는 시점이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가 집값 거품이 충분히 걷힌 시기에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집을 사도 된다.

반면 집값이 금방이라도 다시 오를 것 같은 환상을 갖고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똑같은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당신은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사서 매년 세금을 내고 은행 이자를 내느라 쪼들리게 될 것이다. 더구나 당신 집의 자산 가치는 그 사이에도 계속 하락한다. 또한 당신이 집에다 투자한 최소 수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을 생각해보라.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꼬박꼬박 은행에서 이자를 받거나,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다. 비단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금융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상실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10년 정도의 긴 호흡으로 재무설계를 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구나 서울시에서 도입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기 전세가 중앙정부에 의해 법제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최장 20년까지 평형별로 주변 전세 시세의 60~80% 가격에 살 수 있는 장기 전세는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된 주거를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장기 전세는 임대주택과 달리 향후 40평형대까지 공급되고 청약자격 조건도 완화돼 일반인에게도 입주 기회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주장대로 집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본다면 장기 전세는 매우 매력적인 주거 대안이 될 수 있다.

거품붕괴 공포증은 거품

마지막으로 집값 거품 붕괴가 불러올 경제적 충격을 과장하면서 집값 부양을 요구하는 논리에 대해 한마디하고자 한다. 일부에서는 집값 거품이 붕괴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주로 건설업체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학계 인맥,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가 그렇다. 예를 들어 미분양이 증가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매입하거나 분양을 촉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집값이 폭등할 때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니 정부가 억제책을 쓰지 말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작 집값이 떨어지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 시장 원리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입장을 바꿔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하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언필칭 주장하던 시장 원리에 따르면, 미분양 물량 증가는 공급 과잉과 높은 분양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면 충분한 수요가 생길 때까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이들은 무이자 할부 등 온갖 분양 촉진책은 써도 분양가는 낮추지 않는다. 실제로 닥터아파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분양 적체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상반기 아파트 신규 분양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수도권 분양가는 평균 9.1%, 지방 아파트는 60.1%나 올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분양 물량 적체를 국민 세금으로 해결하라고 온갖 떼를 쓴다.

문제는 이해 당사자인 건설업체들이야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상당수 정책결정자가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을 들여 미분양 주택을 정부의 비축임대주택 물량으로 매입하겠다는 조치가 그런 예다. 이처럼 기획재정부(과거 재경부)와 국토해양부(과거 건설교통부)의 관료들은 경기 부양 등의 명목으로 오히려 집값 거품을 떠받쳐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집값 거품이 붕괴하면 서민 피해가 더 커진다”는 식의 ‘대국민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부동산 광고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당수 언론을 통해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은 형성될 때부터 그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끼친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증대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에는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의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일반 소비재와 달리 노숙자가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주택이라는 재화를 이용하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 주거비용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거품은 최대한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급격한 파열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건설업체와의 유착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는 거품을 계속 키우는 우를 범했다. 지금이라도 거품은 터뜨려야 한다. 거품은 무한정 커질 수 없고,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정부처럼 부동산 경기를 억지로 부양하면 할수록 이후 집값 거품 붕괴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상당수 사람이 일본의 거품붕괴 현상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집값 부양을 옹호하고 있는데 이는 착각이나 의도적인 왜곡이다. 일본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거품 붕괴 자체보다 붕괴 후 일본 정부의 부실한 수습과 지연된 구조개혁이 장기 침체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집값 거품을 떠받쳤던 은행족과 토건족 등 기득권세력에 가로막혀 구조개혁을 질서정연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막대한 재정을 들여 건설경기 부양책을 남발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현 정부가 집값 거품을 계속 키우다 결국 거품이 터진 뒤 허둥지둥한 일본 정부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by 선대인 2008. 9. 4.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