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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잘 못 느끼지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경제 현상도 일정한 자연 법칙을 따른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거품도 너무 부풀면 꺼지기 마련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의 미국도 그렇다. 시장에서 투기적 요소로 버블이 극한에 이르면 그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압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금리 급등과 부동산 시장의 투자수익률 저하를 예로 들어보겠다.
우선 금리부터 보자. 한국의 집값 상승에는 은행과 제2금융권의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펌프질도 한 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계의 신용 관리는 등한시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대출 장사를 한 셈이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은행들은 매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각 가정이 부동산 거품에 취해 빚더미에 올라서는데도 은행들은 희희낙락했다.
이렇게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남발로 가계 빚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말 342조원에서 2008년 6월말에는 660조원으로 거의 320조원 늘었다. 매년 40조~50조원 가까이 불어난 셈인데 증가율(1999~2005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부동산 담보대출만 해도 307조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위장 대출까지 포함하면 4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데 은행권의 펌프질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급증한 2001년부터 은행은 계속 자금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은행권의 총대출이 총예금을 지속적으로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007년 한국 예금은행의 총대출액은 777조원이었고, 총 예금액은 580조원에 그치고 있다. 197조원의 과잉 대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과다 대출로 자금 부족난을 겪었던 1980년대말의 일본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일본의 과다대출은 부동산 버블 붕괴를 통해 해소됐다.
이 같은 상황은 주택 대출 금리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출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채와 CD 발행, 단기외화차입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계속 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신용공황이 나타날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국내은행의 외화차입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 은행들도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 기존 대출마저 회수할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설사 신규 대출을 한다고 해도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은 한층 더 높아지게 돼 금리는 계속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8월에 0.25%밖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시중 금리가 최고 1%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지만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은행의 자금 사정 때문에 이미 정책금리와 시중금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시중금리가 향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는 시중금리가 떨어질 수 있는 여력을 주지만, 시중금리 상승 압력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출 규제를 풀면 바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금융기관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과거처럼 부동산 대출을 할 것 같은가? 이게 바로 금리 측면에서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의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집값은 수급상황에도 영향을 받지만 수급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특히 2002년 이후 투기적인 상황에서 집값은 오히려 투자 또는 투기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투자(투기)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대 수익률을 따져 봐도 앞으로 집값 상승은 어렵다. 부동산 버블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부동산 값은 초기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갈수록 상승률이 둔화된다. 물론 주가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일시적으로는 집값이 주춤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값이 꼭지점에 가까워지면 오름세가 둔화된다. 단순화해 고교 수학에 나오는 2차함수의 포물선을 상상하면 쉽겠다.
왜 그럴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시세 1억원인 집이 1년 만에 2억원이 됐다면 연간 투자수익률은 100%다. 그런데 시세 10억인 집을 사 마찬가지로 1년에 1억원이 올랐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10%에 불과하다. 두 경우 모두 1년 만에 1억원을 벌었지만, 투자수익률에서는 10배의 차이가 생긴다. 주택 거품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웬만하면 세금과 은행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에서 후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10%라고 할 때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물가 상승분에다 각종 세금 등을 생각하면 실질 투자 수익륙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집을 새로 사는 경우라면 여기에 취등록세와 중개 수수료까지 최소 수백~수천만원 정도는 더 보태야 한다. 여기에다 빚을 지고 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목상 10% 투자수익률을 기록한다 해도 실제로는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횡보하거나 조금씩이라도 하락한다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소위 ‘버블 세븐’을 비롯,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 소유자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빚을 잔뜩 내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내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세금과 은행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이 1~2년 이상 지속된다면 웬만한 현금 부자가 아닌 한 버티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도 버블이 정점을 지나면 붕괴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많은 이들의 착각과는 달리 2000년대 집값 폭등은 국내에만 나타난 게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및 브릭스(BRICS)국가 등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달러 유동성의 과잉공급, 실물경제 자산을 담보로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 9.11테러 이후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 저금리 기조, 엔캐리 트레이드로 불리는 일본발 저금리 자금의 공급 등이 공통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시발로 해서 거의 대부분 국가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 있는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실질 주택가격의 곡선 그래프로 보더라도 이미 집값은 80년대 후반~90년대초의 상승기/91~98년의 하강기/99~2007년의 상승기를 거쳐 다시 올해부터 대세하락기로 접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의 V자형 반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내 집값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 시기였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단기간 급락했다. 따라서 이후의 빠른 집값 회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집값 하락은 그때처럼 일시에 끝나지 않는다. 모든 국내외 거시경제환경과 각종 지표들이 상당 기간 동안의 거품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집값은 변곡점을 지나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집값 거품의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집값의 기준인 서울 강남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는 회복될 줄 모르고 하락의 가속도만 높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기의 ‘치어 리더’ 역할을 했던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숲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 변동성이 커진 시대에 과거처럼 그들의 말을 믿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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