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과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있다.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 호 주택공급안,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미분양 물량 증가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이밖에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 또한 도로, 항만, 공항 건설 및 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개발사업이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정책은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을 쓴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최근의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보면 부동산 거품 붕괴는 어떤 형태로든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 대책은 부동산 거품이 좀더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이미 커질 대로 커져버린 거품을 없앨 수는 없다.


또 당장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가의 미래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근본에서 허물고 있어 염려스럽다. 감세안이 그 대표적 사례다. 외환위기 전 50조원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300조 원에 육박했다. 그런 가운데 2013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등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될 것이다. 복지재정 충당금 등 재정 수요는 급증하는데 반해 경제 활력 저하로 세수(稅收) 기반은 줄어든다. 더구나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에서 보는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세원 투명화로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을 단행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지지층을 위한 복지’를 실현하는데 골몰하는 형국이다.


근시안적인 건설 부양책은 오히려 향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50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안은 2010년대 이후 주택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아갈 수 있다. 이미 미분량 물량이 공식적으로만 15만 호 이상이고, 뉴타운과 2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서 이미 계획된 물량만으로도 2010년 이후 막대한 공급이 이뤄진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주택수요인구는 2010년대 이후 급감하고 수도권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은 정부를 보자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상황을 바람이 잔뜩 든 풍선에 비유하자면 최대한 서서히 바람을 빼가야 한다. 물론 현재 부동산 거품 크기나 가계 부채로 잔뜩 쌓아 올린 거품 구조로 볼 때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듯 풍선에 바람을 더 집어넣어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 풍선이 지금보다 더 부푼 상태에서 터진다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은 한국경제라는 신체에 자라는 악성종양과 같은 것이다. 악성종양은 더 커지기 전에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한다. 계속 안고 가다가는 한국경제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일반 국민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경제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종양이 자라면서 이미 엄청난 중증을 잃고 있다. 한국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가격은 상승하면 그만큼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생한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충당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정말 한국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가야 한다. 한동안은 버블 붕괴의 고통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몰린 돈을 생산경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다. 만약 2000년 이후 자산경제에 몰렸던 수백 조원의 돈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생산경제에 몰렸다면, 지금 이 나라는 일자리가 넘쳐나 주체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당장 정부가 재정을 더 풀고 민간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에 돈을 더 집어넣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첨단 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이 이런 영역에 더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사람이다. 부동산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배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으로 사람은 천대하면서 부동산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 경제가 사는가? 서울 집값이 미국 뉴욕보다 비싸진다고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는가? 전국 곳곳에 아파트를 즐비하게 짓는다고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가? 현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5.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