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금 국내에는 “경착륙하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논리로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는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으로 연착륙을 바라는 주장이라면 필자도 동의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연착륙론’이 오염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연착륙론’은 주로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재벌계 연구소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 신문들에서 주로 내놓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착륙론’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연착륙론’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론’에 가깝다.
원래 의미의 ‘연착륙’을 생각해보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에 비유하자면, 바늘로 쿡 찔러서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 경착륙이라면 풍선의 바람 구멍을 열어 서서히 바람을 빼나가는 것이 연착륙이다. 따라서 연착륙론은 부동산 가격의 하향 조정을 점진적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연착륙론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거품이 좀 빠질만하면 거품을 다시 불어넣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2008년말 이후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쓴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의 근거도 ‘연착륙론’이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더했고, 이미 상당수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4년 주택 시장 침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까지 지속됐던 2000년대 1차 부동산 폭등기가 일단락되자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경착륙은 안 된다’며 ‘연착륙론’으로 포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그 결과 당시
결국 지금까지 연착륙론은 부동산 거품 빼기를 계속 미루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이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원을 탕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품은 계속 커져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 규모도 커지고, 가계 부채는 늘어왔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워 한국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2004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 당시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건설경기 부양론에 휘둘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뺐더라면 지금 같은 위기감에 시달렸을 것인가. 따라서 불순한 속내를 가지고 연착륙을 부르짖어온 사람들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일 버블 붕괴서 배울 것’이라는 칼럼에서 주장한 ‘연착륙론’ 또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칼럼주장대로라면 일본이 “89년에서 90년에 걸쳐 금리를 2.5%에서 6%로 수직상승”시킨 것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2008년말 주택 가격 급락 현상이 일어나자 5.25%이던 기준금리를 2%라는 사상 최저금리로 낮췄고,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과 DTI 및 재건축 규제 완화, 부동산 세금 감면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 물량 매입,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토건 부양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지난해 9월 DTI규제를 다시 묶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기준 금리 인상이나 지난해 DTI규제 재도입 또한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빠르게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이미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마지못해 취한 고육책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경제 정책을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용해 갈 데까지 가보길 원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게는 성에 안 찰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너무 조급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민경제와 일반가계를 볼모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속내가 보이는 느려터진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일보 스스로 몇 달 전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한국 정부는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기보다는 여전히 ‘부동산 버블을 방치’하는 기조에 가깝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대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조장책으로 시장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용수철도 수축돼야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법인데, 현 정부는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이 되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가로막고 있다.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용수철은 끊어져 복원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건설업계를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으니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이미 고갈된 수요 이상의 공급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이미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도 수급 조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좀비처럼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실 채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바닥을 친 뒤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잠재 수요자들을 계속 무리하게 빚을 내 사게 함으로써 결국 주택시장 회복을 주도할 미래 수요를 고갈시키게 된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당겨써버림으로써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키우는 반면 주택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과 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현재 건설업계 및 부동산업계 및 이들의 대변지격인 기득권 언론들이 주문한 결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정확히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전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지연시킨 탓에 일본의 주택시장이 자연스러운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컸지만, 초기에 각종 토건부양책으로 재정을 탕진하고,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수요 대비 과도한 주택 공급을 지속해 부동산 시장이 복원력을 잃어버린 가운데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황들이 2010년대 한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자고 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어오른 상황에서도 ‘연착륙’운운하며 추가 부양책을 주문하는 세력들이야말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 경착륙을 넘어 한국경제의 불시착을 유도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희희낙락했던 건설업계와 금융업계, 그리고 아파트 분양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게 돌아갈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올 충격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들은 일반가계와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이들 ‘좀비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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