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기금은 주택구입 자금대출 상품 중 근로자서민대출, 생애최초대출, 주택금융공사의 우대형 보금자리론, 이렇게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단일화한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 상품이 2014년 1월에 출시했다.
디딤돌 대출의 대상을 간단히 요약하면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과 배우자의 합산 총소득이 연간 6천만원(생애최초주택구입자는 연간 7천만원) 이하여야 한다. 세대주를 포함한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8월 11일부터는 이 자격 조건이 완화되어 1주택자라고 해도 기존 주택이 매매가격 6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읍면지역은 100㎡) 이하라면 3개월 안에 처분하는 것을 조건으로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집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완화 조치를 통해 대출 대상자가 약 40만 명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존 대출 상품을 묶어서 디딤돌 대출이라는 새로운 통합 상품을 만들고, 여기에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것은 정부에서 계속해서 전력을 기울여 온 ‘집값 떠받치기’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주택금융공사는 ‘전세수요의 매매전환’이라는 정부의 구호를 거의 노골적으로 옮겨놓은 광고를 지면 및 지하철역 등지에 대대적으로 노출시키기도 했다. 아래 주택금융공사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전셋집 알아본 아내 우리집 사자고 합니다’는 문구를 메인 카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디딤돌대출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서 과연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민간금융 업체들에 비해 정부가 관리의 주체인 국민주택기금은 이자가 낮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정부에서 앞장서서 ‘빚내서 집사라’는 총공세를 펼치고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디딤돌대출을 내놓았으므로 더더욱 수요층을 유혹할 만한 "당근"이 필요하다. 그러니 은행권의 담보대출보다는 조건이 유리해야 정상(?)일 것이다.
과연 현실은 어떤지 살펴보자. 현재 국민주택기금에서 제시하고 있는 디딤돌대출의 금리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디딤돌대출은 고정금리와 5년 단위 변동금리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변동금리에 비해 고정금리가 높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현재 국민주택기금에서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의 차이를 별도로 안내하고 있지 않다.
<그림 1>
디딤돌 대출의 금리는 대출 기간과 부부합산 연 총소득에 따라서 2.6%에서 3.4%까지 차등적용 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금리 할인을 적용 받을 수도 있다. 다자녀가구인 경우에는 0.5%, 최초주택구입자, 다문화, 장애인가구는 0.2%의 금리우대가 가능하다. 또한 청약(종합)저축에 본인 또는 배우자가 가입했을 경우에는 가입 기간과 불입 횟수에 따라서 0.2%까지 금리우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우대금리를 모두 적용 받는다면 연 총소득 2천만 원 이하 가계의 경우 2% 초반 선까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애기가 된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과연 부부의 총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 다시 말해서 월 166만 원 이하인 가계가 디딤돌 대출을 이용해서 집을 사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조회해보면 서울 외곽지역의 12~15평형 소형 아파트도 매매가가 1억 5천만원 이상, 대체로 2억 원 안팎으로 나타난다. 부부 연소득이 2천만 원인 어떤 가계가 노원구 상계동의 1억 5천만 원짜리 13평형 아파트를 집값의 70%인 1억 5백만 원을 10년 만기 디딤돌 대출로 받아서 샀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한 해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252만 원으로 한 달에 21만원꼴이다. 이 지역의 비슷한 면적형 아파트 월세 가격이 보증금 2천만~3천만 원에 40만~60만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자 부담이 높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디딤돌 대출은 분할상환이므로 최대 1년의 거치기간 이후에는 원리금을 같이 갚아야 한다. 1년의 거치기간이 경과하고 원금을 9년에 걸쳐서 분할상환하는 경우 해마다 1,167만 원, 월 97만 2500원을 내야 한다. 이자와 원금을 합치면 월 118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월 166만 6천원을 버는 가계가 디딤돌 대출 원리금 상환에 약 3분의 2를 쏟아 붓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여기에 주택 매입에 따르는 취득세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 및 사회보험료 등의 증가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비용까지 합치면 소득의 거의 대부분이 주거비로 날아가게 된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위에서 든 1억 5천만원에서 2억원 선의 아파트는 대체로 평수가 13~20평 이하의 소형아파트이고 지은 지도 20년 이상 된 아파트다. 내집 마련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 달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쏟아 부어서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사고 싶어 할까? 집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분양을 받거나 최근에 지은 아파트를 사고 싶어할 것이다. 최근 주거환경에서는 자녀마다 각자 방이 필요하므로 20평도 작을 것이다. 연 소득 2천만원 이하 가정이 소득 대비 매우 큰 부채 부담을 지고 장만할 수 있는 주택의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연 소득 4천만원(월 소득 약 333만원)인 가계는 사정이 좀 더 낫겠지만, 여전히 월 소득의 35%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부어야 한다. .
따라서 디딤돌 대출을 받아서 실제로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그나마 있는 수요층은 대체로 연 총 소득 4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사이 구간에 있는 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은행권의 금리와 비교해 보면 디딤돌대출은 얼마나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림 2>
<그림 2>는 시중은행 및 디딤돌대출(연소득 4천만원~6천만원 구간)의 주택 담보대출 금리를 비교한 차트다. 10년 만기 디딤돌대출의 금리는 은행권보다 약간 낮은 수준을 보이는데, 만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격차가 줄어든다. 그런데 억대 이상의 대출을 받을 경우 원리금 분할 상환 부담 때문에 보통 10년 만기 상품은 드물고 20, 30년 만기를 설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어지면 상당수 은행권 대출보다 오히려 금리가 높아진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우대금리 조건에 부합하는 가계는 금리를 더 낮출 수 있지만 은행권 역시도 실제 대출 상담 과정에서 우대 금리를 적용 받기 때문에 디딤돌대출이 가진 매력이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 거주 목적을 가지고 주택 대출을 받는 경우에는 디딤돌대출은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은행의 경우에 신용등급에 따라서 금리가 차등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은 경우라면 디딤돌대출이 유리할 수 있다. 특히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경우라면 조건이 맞을 경우 디딤돌대출로 갈아타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딤돌대출 취급 금융기관과 상담을 해 본 뒤에 이전 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 등을 감안해서 대출을 갈아타는 것이 유리한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주택기금포털에서는 자신의 조건을 입력하면 디딤돌대출의 예상 대출금액과 대출 조건을 추정해 주는 도구인 주택구입자금계산마법사 서비스(http://nhf.molit.go.kr/loan/01_search11.do)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디딤돌대출은 시중은행에 비해 저소득층일수록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실제로 주택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소득계층에 적용되는 금리 조건은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오히려 시중은행 기준에서는 거액의 대출을 받기 어렵고 사실상 집을 살 여건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게 하는 효과가 더 크다. 무주택서민들의 주택 구입을 지원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집을 살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을 동원해 소형 주택 위주의 집값을 떠받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말로는 ‘내집 마련을 위한 디딤돌대출’이지만 자칫하면 ‘하우스푸어로 가는 디딤돌대출’이 될 위험이 적지 않다.
만약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가뜩이나 소득이 부족한 저소득층 가계들이 집을 빼앗기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을 키우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디딤돌대출의 대상과 조건을 완화해 잠재적 하우스푸어를 늘리기보다는 주택 매매가와 전월세 가격의 하향 안정화를 도모해 무주택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한편 저소득층 가계들은 시기의 문제일 뿐 금리 인상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싸다는 이유로 무리한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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