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자세다. 주택대출규제를 완화한 것도 적어도 겉으로는 고금리 부채를 저금리 부채로 바꿔 관리하겠다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이후 주택대출이 급증했고, 잠재적 가계부채 부실 위험을 1금융권으로 이전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관리"는커녕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안심전환대출도 같은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해 위험 관리를 하겠다는 뜻으로 이 대출을 내놓았고, 같은 불안감을 가진 주택담보대출자들이 줄을 섰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정부가 LTV, DTI 규제를 강화하는 등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정책 기조 속에서 가계부채의 질을 바꾸는 안심전환대출 제도가 나왔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풀고, 한국은행을 압박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기조 속에서 안심전환대출 제도를 내놓았다. 같은 제도라도 이런 맥락에서는 집값 거품을 떠받치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안심전환대출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핵심 정책대상이 돼야 할 가계들을 비껴나간다는 데 있다.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고부채가구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이 위기를 부를 수 있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리금을 함께 분할상환하는 구조에서는 그나마 소득 여력이 있는 저부채 가구들이 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구들은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가구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걸 정책당국이 몰랐을까.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도 그랬을 수 있지 않을까. 중산층 중심의 부채를 줄여주면 향후 집값 하락 폭이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하나다. 실제로 그런 효과를 일정하게는 발휘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런 생각이었다면 늘 위기는 극단(여기에서는 저신용 고부채가구)에서 온다는 점을 간과했다.
둘째는 안심전환대출 제도 설계 자체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2.5%의 고정금리 대출상품은 당초부터 정상적인 시장금리로는 내놓을 수 없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걸 정부가 은행들의 팔을 비틀고, 정부 지급 보증 아래 주택금융공사의 MBS로 소화해 억지로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부채 가구들의 주택저당채권을 주로 편입한 MBS를 만들면 MBS 금리를 지금처럼 낮출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고부채가구에 맞추지 않고 지금과 같은 식으로 상환 능력이 되는 가구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은 것이다. 그래야 난색을 표하는 은행들에게 이렇게 하자고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안심전환대출의 효과는 앞서 말했듯이 유사시 위기 가능성을 줄이기보다는 집값 떠받치기에 활용되는 측면이 커졌다. 하지만 그 효과도 어차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 공급분까지 합쳐서 40조원의 주택담보대출이 안심전환대출로 전환돼도 전체 가계부채의 3.7%, 주택담보대출의 7.2% 수준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전반적으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무제한적으로 안심전환대출 공급을 늘려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안심전환대출에는 주택금융공사의 MBS 공급이 핵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주택금융공사의 자본금이 확충돼야 한다. 물론 법을 개정해서 자본금을 확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한들 이렇게 막대하게 늘어난 MBS물량을 채권시장에서 다 받아줄 수 있을까. 그걸 모두 받아주려면 결국 MBS 수익률을 높여줘야 채권시장에서 소화가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안심전환대출 금리를 낮추느라고 결국 채권시장의 금리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은행들이 지금 떠안게 되는 40조 MBS 물량도 채권시장에서 소화하기 만만치 않다. 아마도 1년 후에는 채권시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올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계속 쏟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1,2년 후에는 아마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 기준금리는 몰라도 시장금리는 그렇지 않아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 당장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안심전환대출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장금리 수준에 맞지 않게 금리를 낮춘 탓에 금리가 높아질 경우 손실의 상당 부분을 주택금융공사와 은행들이 떠맡아야 한다. 주택금융공사는 이미 낙관적인 주택연금 설계로 최소 수천억원 규모의 잠재 부실을 갖고 있지만, 안심전환대출에서는 향후 훨씬 많은 잠재 부실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주택금융공사의 MBS 발행은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이뤄지기에 그 부실이 커질 경우에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뜩이나 예대마진이 줄어 수익성이 바닥인 은행권으로서는 고금리 마진을 포기해야 하는데다, 향후 강매로 떠맡은 MBS를 채권시장에서 제대로 팔 수 없을 때 추가적인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경제 전체로 보면 이로 인한 소비 위축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그 동안 이자만 갚던 가계들이 원리금을 함께 갚아야 하니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의 저금리에 끌려 많은 가계들이 신청했지만, 실제로 도중에 원리금 납부를 감당하지 못해 연체하는 가구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납입 금액이 훨씬 적은 10년 장기저축 같은 것도 만기까지 납입하는 경우가 30~40%에 못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몇 배나 되는 원리금을 상환하며 10~20년 지속할 가구가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신청하는 이들은 당장 낮아지는 이율만 보고 달려들지 말고, 만기 동안 자신의 상환능력을 잘 고려하길 바란다. 이자만 내다가 원리금을 함께 갚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주택담보대출자의 70% 이상이 몇 년째 갈아타기를 하면서 이자만 내고 있겠는가. 더구나 만약 시기적으로 전반적인 금리 인상 시기에 맞물려 다른 차입자들의 연체 증가와 맞물려 상환 연체자들이 늘어날 때는 문제도 커진다.
사실 가계부채 문제를 푸는 정공법은 나와 있다. 누구나 손쉽게 소득 증대를 말하지만, 이미 외환위기 이후 재벌독식구조와 부동산 거품, 가계부채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놓은 결과 일자리와 소득이 늘지 않는 구조가 만성화됐다. 이런 마당에 저출산고령화 충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고성장 체제에서는 몇 년 지나면 웬만한 문제들이 해결됐지만, 이제는 어렵다. 그러면 인정하고 거품을 빼고 체질을 바꾸자. 아무리 비대한 사람도 예전처럼 잘 먹지 못하면 몸집이 저절로 줄어든다.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 가계들이 돈은 못 버는데, 집값은 여전히 높다. 그걸 가계부채라는 정크푸드로 당장은 비대한 몸집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시간이 갈수록 건강은 크게 나빠진다.
결국 과거처럼 소득을 늘리기 어렵다면, 현재 가구의 소득 수준에 맞춰 주택 가격도 낮아지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폭락과 같은 사태는 막아야 하지만, 이미 아무런 충격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왔다. 단기적으로는 어렵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점진적으로 해소하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 LTV, DTI 등 주택대출규제는 점진적으로 다시 강화하면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한계가구들의 부채 뇌관을 뽑아야 한다. 그들 가구들을 중심으로 공공재무컨설팅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고, 필요한 경우 채무상환 조건과 일정을 재조정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과 협동조합주택 공급을 늘리고 선분양제와 같은 주택 공급자 절대 우위의 시장구조를 바꾸는 정책 전환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당장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안심전환대출로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효과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1,2년 후에는 오히려 더 큰 위험 요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공법이 실은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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