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JTBC ‘썰전에 출연하고 있는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해 이미지세탁을 하고 있다며, 대중을 우습게 아느냐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의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강용석도 문제지만, 이들을 내세우는 방송이나 제작진도 정말 문제다. 우리가 아무리 똘레랑스를 베풀더라도 타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는 극우파시즘세력까지 용인하지는 않듯이, 공적으로 우리가 수용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용석은 그간 그의 언행으로 볼 때 깊은 반성과 회개를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공직 진출은 물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송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그런 사람은 걸러내는 것이 맞다. 언론이 일베류의 5.18광주에 대한 증오 발언과 모독성 주장들을 그대로 방송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강용석을 출연시킨 JTBC썰전제작팀도 반성하고, 그를 지금부터라도 출연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편 진중권교수의 종편 출연에 관해서도 이런 저런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종편에 관해서는 여러 입장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크게는 종편 활용론종편 거부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종편 거부론 쪽에 가깝지만 종편 활용론이 일리가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보는 방송에서 자신의 메시지나 주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물론 자신의 발언 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는 종편으로 전환되기 이전부터 출연했던 MBN에는 지금도 여건이 맞으면 출연하기도 한다. 종편이라고는 해도 기존에 있던 방송이 거의 그대로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중동 종편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종편이 생겨난 배경부터가 조중동과 이명박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방송이고 절차상으로도 매우 하자가 많은, 사실상 불법 날치기를 통해 태어난 방송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논리적 이유라면 좀 더 솔직한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다. 나는 나는 꼽사리다의 패널로 참여하면서 종편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썰전을 비롯해 조중동 종편 여러 곳에서 인터뷰나 출연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두 했고 이젠 소문이 충분히 났는지 이제 나를 조중동종편에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정말 그 방송들이 탄생 과정과는 무관하게 정론의 방송으로 거듭난다면 입장을 바꿀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미 TV조선이나 동아 채널A‘5.18광주 북한국 침투보도 등이 보여주듯이 개과천선할 가능성도, 그럴 이유가 있는 방송들도 아니다. 물론 관련 방송을 하지 않은 JTBC는 조금 다르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JTBC 내부적으로 문화방송 등 기존 방송사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가있고, 조선과 동아 종편방송과는 차별화되는 방송을 만들려고 한다고 알고 있다. ‘시선집중을 진행하던 손석희씨를 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그런 시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손사장 역시 좋은 뜻을 분명히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손석희의 JTBC’ 보다는 ‘JTBC의 손석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1년여 전 그가 민언련 언론학교에서 오랜 동안 강의해 감사패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올해 민언련 언론학교 강의 4년 째인 나도 같은 감사패를 받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 그 자리에 선 그가 너무나 멋져보였기 때문이다. 민언련 언론학교는 강연료는 있지만 강연료가 적어 그에게는 아마 기부강연에 가까웠을 터.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언론학교 강의를 맡아왔다는 게 내게도 참 고마웠다. 그리고 그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 선 그가 내게는 가장 우러러 보였다.

그리고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내 자존심의 마지노선이 있다. 사실 나도 선대인경제연구소라는 사업체를 꾸린 이상 조건만 맞는다면 언론에 출연해 연구소를 알릴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꼽살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를 쳐다보게 된다. 방송계에서 베테랑 코미디작가였던 그는 사실 JTBC ‘썰전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초기에 받았지만, 이를 뿌리쳤다. 사실 그는 공인도 아니지만 나꼽살에서 우리가 했던 말 때문에 그는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짭짤한 그 제의를 단칼에 뿌리쳤다. 참 존경스럽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그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나도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내가 가진 자존심의 마지노선이다.

그리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조선, 동아의 종편방송보다는 중앙의 JTBC가 물적 토대 측면에서 오히려 더욱 위험한 방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럴까. 이 사회에서 삼성의 힘은 곧 돈의 힘인데, 삼성은 이 돈의 힘으로 사람들의 인식까지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JTBC가 그 한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어떤 종편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가 대주주인 JTBC, 이른바 중앙종편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삼성방송일 것이라는 추측을 누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종편의 자본금 납입 과정을 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삼성방송이라는 심증을 확실히 굳혀준다.

홍석현 회장은 2009년 미디어 관련법의 날치기 통과 이후 편집국 간부회의에서 종편 진출을 위한 선제적 포석으로 사재 1500억 원을 종편 자본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시는 경기 급락으로 중앙일보 광고 매출이 급감해 2009년 상반기에만 39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중앙일보는 2008년부터 신문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바꾸기 위해 윤전기 여섯 대에 1000억 원 가량을 투자해 자금 사정까지 안 좋았다. 그래서 중앙일보의 종편 참여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홍회장이 호기롭게 거액의 사재 출연을 선언함으로써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홍회장은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홍회장의 1500억 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바로 삼성코닝정밀소재(이하 삼성코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삼성코닝은 삼성전자와 미국계 코닝 사가 합작해 설립한 비상장회사다. 주로 LCD TV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의 특수 유리를 공급하는데, 삼성전자 등 독점적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는 알짜배기 회사다. 비상장기업인 삼성코닝의 주주는 미국 코닝 사(49.5%)와 삼성전자(42.6%) 그리고 홍석현 회장(7.32%), 우리사주조합(0.23%) 등이다. 그런데 삼성코닝은 삼성전자와 홍회장 및 우호 지분을 합치면 50%가 넘기 때문에 이회장의 지배하에 있는 삼성전자와 홍회장만 의결하면 사실상 얼마든지 배당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삼성코닝은 그렇게 했다.

2010년 삼성코닝은 국내 주식 배당 역사상 가장 많은 배당을 실시했다. 모두 33600억 원의 배당을 실시했는데, 이는 삼성코닝의 그해 순이익 32900억 원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보통 배당은 한 해에 번 순이익에서 일정액을 떼어 배당하는 것이므로 순이익을 넘어서 배당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2464억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은 홍회장은 2011년 압도적인 격차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은 인물이 됐다. 2위인 박의근 보나에스 대표가 받은 배당금 590억 원의 네 배 이상을 챙겼으니 말이다. 홍회장은 이 돈으로 중앙종편 자본금 1500억 원을 납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자신의 다른 사재로 납입했다고 해도 주머닛돈이나 쌈짓돈 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홍회장이 삼성코닝으로부터 받은 배당금 2464억 원은 정말 홍회장 자신의 돈일까.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신도 못 받는 엄청난 현금 배당을 처남인 홍회장이 받게 했다면 정말 너그러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앙종편에 들어간 1500억 원은 결국 삼성 꼬리표를 뗄 수 없는 돈이라는 점이다. 홍회장이 삼성코닝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본인 돈이든, 이회장이나 다른 삼성 일가의 돈이든 말이다. 중앙일보에 이어 중앙종편의 돈줄도 결국 삼성인 건 변함 없는 셈이다. 중앙종편, 태생이 삼성방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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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17. 12:47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삼성 등 재벌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폭되고 있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삼성은 대체로 찬사의 대상이다. 삼성전자 등의 눈부신 실적 등의 영향이 크지만, 나는 대체로 그것이 언론 굴종의 산물이라고 본다. 1999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법 상속 문제를 참여연대가 처음 제기했을 때 당시 신문기자였던 나는 내가 쓴 관련 기사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 날 나는 그 신문이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파는 거래를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문 사주의 아들은 삼성가의 둘째 딸과 결혼했다.

그 신문만이 문제인가.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이 삼성에게 영혼을 팔아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다. 예를 들면, 20102월 이건희 회장 발언에 대한 언론 보도다. 당시 이회장은 삼성특검 수사 결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고 139일만에 초고속 특별사면을 받았다. 오로지 회장님 한 분 만을 위한 원포인트 특사였다. 그렇게 특사를 받고 풀려난 지 단 3개월. 그는 이병철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이회장이 화두를 던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게 정직이라고 가르칠 수 있나.

보통 이 정도 얘기하면 재벌가인 삼성가와 삼성그룹의 기업들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가의 행태와 무관하게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의 선전은 평가하자는 얘기인데,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삼성가와 삼성그룹이 그렇게 쉽게 분리될 수 있나. 쥐꼬리 만한 지분을 가진, 철학자 김상봉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아무런 법적 실체도 없는 회장님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재벌체제 속의 기업들이 어떻게 삼성가와 분리돼 움직인다는 건지 나는 잘 상상이 안 된다.

어쨌거나 삼성재벌은 이미 한국경제의 대주주다. 그래서 그나마 삼성 때문에 먹고사는 것 아니냐”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경제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미 삼성에 매수된 언론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자 프로파간다다. 하지만 대다수가 믿어버리면 진실이 된다. 삼성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어쩌면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돈의 힘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동굴의 우상과 동굴 밖 찬란한 태양 아래 놓인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확하게 재벌독식 체제 때문에 한국의 산업생태계는 질식해 활력을 잃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구글,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학교 기숙사나 집 안의 주차장에서 시작한 벤처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벤처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좀 된다 싶은 사업이 보이면 삼성 등 재벌이 인수해버리거나 시장에 들어가서 해당 기업을 고사시켜버리거나, 특허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이건희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 있다. 이회장이 내심하고 싶었던 말은 삼성이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99% 국민을 등쳐서 자신들의 부를 불리고 있는 것에 가깝다. 삼성이 정말 순전히 자신들의 경쟁력만으로 지금과 같은 엄청난 실적을 낸다면 나는 기꺼이 박수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삼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을 싹쓸이하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 마음 편히 갈채를 보내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체제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일자리가 줄고 협력업체와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말 나온 김에 삼성이 누리는 특혜를 몇 가지만 열거해보자. 우선 환율효과.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경제위기 전 900원대 초반이었다가 경제위기 이후 1100~1200원대를 유지해왔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했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240원대이던 환율이 지속적으로 올라, 즉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수출대기업들을 도와주면서 성장했다. 수입 인플레로 소비자들은 늘 만성 불가 불안에 시달리면서 수출대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온 셈이다. 요즘 일시적인 엔저로 수출 비상운운하지만 삼성전자 등 수출대기업이 누린 혜택은 엄청나다. 내가 분석해본 결과로는 매 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가운데 최소 3분의 1가량은 환율효과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뿐인가. 2012년 예산안 기준으로 16조원이 넘는 R&D 투자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이 향유한다. 일부 기득권 언론들이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사실상 조세도피처를 경쟁국으로 비교하며 한국의 법인세율이 높다고 질타하지만 국내 법인세율은 일정한 내수규모를 갖춘 대다수 OECD 국가들보다 낮다. 특히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으로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법인세 부담을 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상대적으로 가계들이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대신 낮은 산업용 전기료 부담으로 가장 많은 보조를 받는 것도 삼성이요, 늘 담합을 주도해 거래 업체나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 가장 많은 부당이득을 취하고도 리니언시제도의 힘을 빌려 가장 많은 과징금 면제혜택을 받는 것도 삼성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삼성이 한국을 떠날 수 있으니 삼성을 더 잘 모시라고 떠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우리는 삼성에 엄청나게 몰아줬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잘 살게 되고 더 행복해졌나. 한국경제의 많은 자원을 삼성에 몰아주고, 삼성전자는 모바일부문에 몰아준 결과 한국경제는 당장 경제 포트폴리오 면에서만 봐도 매우 취약해졌다. 외국자본들의 작전논란에도 불구하고 JP모건의 리포트 한 방으로 삼성주가가 무너지고, 한국 증시가 기진맥진하는 이유는 뭔가. 삼성사옥 앞에서 만난 한 삼성 직원은 그래도 관리의 삼성이 충분히 잘 관리할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한국경제가 불안하다.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기보다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이 튼튼해 가계가 스스로를 믿고 살 수 있는 경제를 보고 싶다. 내가 아는 삼성 직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사상 최대의 승진 잔치 이면에 사상 최대의 살육(=해고)이 진행되는 회사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직원, 사회공동체와 공존공영하는 착한 회사가 한국의 대표 기업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삼성에도, 한국 경제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선대인경제연구소가 준비한 특강 시리즈 <경제 마스터 클래스> 2탄 '생활의 경제학'! 이번 특강은 사교육, 노후대비, 부동산, 소비, 커리어전환 등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들에 관한 강의들로 구성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링크 연결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http://www.bizhard.com/pub/weblink.aspx?guid=REU1RjY5ODk2MTVFOTJFRkUwNDAwMDdGMDEwMDEyNEN8MTM4MzY0ODQw.jpg

by 선대인 2013. 6. 14. 10:56

 

 

저희 연구소가 주최한 <경제마스터클래스> 1탄이 4일 저의 강의(언론에 속지 않고 경제흐름 읽는 법)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간단한 설문조사 결과 수강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많이 고무됐습니다. 이번 특강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좋은 경제특강 시리즈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 수강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다음 기회에는 꼭 수강해 보시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아래 소개하는 글들은 이번 특강에서 제가 소개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1990년과 2008년(사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의 동아일보는 전혀 다른 신문이 돼버렸습니다. 1990년 대학에 입학한 저는 대학시절 내내 한겨레신문을 주로 봤지만 동아일보도 적지 않게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자본권력에 굴종하고, 이 사회의 기득권에 아부하는 신문의 변질을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1991년 당시 김중배 동아일보 편집국장(이후 문화방송 사장도 역임)이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했었는데, 그 계시적 발언이 현실화되는 것을 생생히 체험한 셈입니다.

물론 동아일보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가장 영향력 있던 신문, 그리고 제 생각에 조선, 중앙과는 달리 한국사회의 정론이자 수준 높은 공론장이 될 수 있었던 동아일보의 변질과 추락은 한국언론사에서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저에게 동아일보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한편으로는 6년간을 함께 보낸 선후배동료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신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1% 기득권의 또 다른 대변지가 된 신문...지금이라도 저는 동아일보가 조선, 중앙과는 달리 한국 사회 여론의 균형추 같은 역할로 돌아와 주길 바라지만 이미 기대 난망인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 동아일보가 가졌던 위상과 브랜드도 이제 모두 사라졌고, 신문의 품질도, 엄정한 비판의 목소리도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10년 전까지 (적어도 사석에서는) 멀쩡한 생각을 가졌던 선배나 동료들이 이상한(?) 칼럼을 쓰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자회사인 종편 채널A는 '5.18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방송을 편성하고, 편성 책임자인 과거 동아일보 선배는 "북한군이 침투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디 있느냐"고 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1990년과 2013년의 동아일보, 그리고 저와 선후배동료들 사이에 같은 세월이 흘렀는데 간극은 왜 이렇게 천지차이로 벌어진 걸까요? 그 사이 재벌 등 부패한 자본권력의 무한 증식과 대한민국 여론지향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겠죠. 어쨌든 저는 1990년의 동아일보가 지향했던 정신, 그리고 제가 걸오온 길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참고로, 아래 인용한 1990년의 사설은 '주저앉은 나그네'님의 다음 아고라 글에서 제가 퍼온 것입니다.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16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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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7. 12:28

 

최근 조셉 스티글리츠의 책 <불평등의 대가>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저는 미리 읽어보고 이 책의 해제를 쓰기도 했는데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보기를 바라는 좋은 책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해제를 소개하니 일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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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티글리츠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는 드물게 좌파로 분류되는 학자이면서 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강력한 비판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최근작 <불평등의 대가>는 조셉 스티글리츠의 책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불평등을 핵심어로 해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그러면서도 학자적 엄격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학자와 대중들의 지지를(물론 주류 경제학계의 반발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스티글리츠의 책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저작일 뿐만 아니라 최근 나온 각종 경제서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저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의 주장은 설득력 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강력한 열망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딱 두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현실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처럼 정밀하게 설명하는 책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이 책의 지적과 분석이 가장 잘 들어맞는 나라는 미국 다음에 한국일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역시나 한국은 미국과는 다른 현실 맥락이 있다. 사실 한국은 이 책이 보여주는 미국의 현실보다 더 악화된 측면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이들 또한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한국의 악화된 현실이 궁금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매우 심각해졌다. 불평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소득격차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 소득이 101만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 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약 아홉 배가량 더 많이 늘어난 셈이다. 상위 10%의 월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지를 보여주는 배율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높아졌다. 이 배율은 19936.8배를 기록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진 19989.4배까지 치솟았다가 지금도 9배 전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의 통계 기준이 2009년 이후 달라져 연속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2009년 이후에도 격차 확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청 조사는 표본조사를 통한 것으로 타워팰리스거주자처럼 조사를 꺼리는 최상류층의 실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행히도 상위 1%의 소득 집중도 윤곽이 경제학자 출신인 민주당 홍종학 의원에 의해 드러난 바 있다. 홍의원이 그동안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개되지 않던 국세청의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상위 1%의 평균 소득(38120만원)은 중위 소득(2510만원)15.1배였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 적어 면세 대상이 되는 과세 미달자를 뺀 비교인데, 과세미달자 560만 명을 포함한 경우 중위소득(1688만원)22.6배나 됐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의 소득격차도 계속 늘어났는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상위 10%의 평균 소득 증가액은 710만원으로 전체 평균 소득증가액 226만원의 3.1, 하위 10% 평균 소득증가액 40만원의 17.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통합소득 상위 10% 이상 소득계층의 비중은 200732.9%에서 201134.3%로 늘어났다. 이 같은 소득 집중도는 대다수의 선진국들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 상당수의 중남미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사실 국세청의 소득 자료는 각종 비과세 및 감면 소득이 빠진 액수이므로 실제 소득격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한국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중반에 이미 30여개 OECD국가들 가운데 빈곤층(전 국민 가운데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인 계층)이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또 멕시코와 스위스,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빈곤격차(poverty gap, 중위소득과 빈곤층의 평균 소득의 차이를 나타냄)가 큰 나라가 됐다. 하위 10%의 소득 대비 중위소득의 배율이 2.5배 정도로 멕시코, 미국, 터키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런데 이 같은 통계조차 한국의 불평등도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처럼 보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대로 통계청 자료는 최상위 계층의 소득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한편 평균 소득이나 중위 소득 등은 국세청 자료보다 상당히 높게 잡혀 있다. 하지만 통계청은 이 같은 표본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불평등 관련 지표를 내고 있고 그것이 OECD에도 보고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불평등 지표가 실제보다 훨씬 완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홍의원이 밝힌 국세청 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불평등도 지표인 지니계수를 구하면 2011년 기준 0.448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셈인데, 이 수치를 그대로 대입하면 OECD 34개국 가운데 2000년대 후반 기준 가장 지니계수가 높은 멕시코(0.4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진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OECD 통계로는 0.38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는데, 스티글리츠가 책에서 인용한 수치는 0.48로 멕시코와 맞먹는 수준이다. 어떤 경우든 분명한 것은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사회가 멕시코나 남미국가들처럼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개탄했는데, 한국 또한 미국의 궤적을 뒤쫓아 빠른 속도로 불평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빈부격차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교육기회의 격차와 건강 격차, 사회적 이동성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교육기회의 격차만을 따져보면 한국은 공교육 비중이 낮아 세계에서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에 따라 집안의 재력에 따라 학생들의 진학 기회가 크게 달라진다. 이른바 포커판에서처럼 판돈(=사교육비)을 많이 댈 수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사립초등학교와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등으로 이어지는 성공경로에 일찍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소득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교육의 승자독식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환상이 된지 오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의예과 신입생의 43%, 법대 신입생의 38%가 자신이 상류층 출신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상류층 응답 비율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이처럼 상류층 출신들이 한국의 지배엘리트로 성장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법조계가 대표적인데, 특목고가 생겨난 이후 외고--->서울대--->법조계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는 유행이 되다 시피했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대원외고를 나온 현직 판검사가 129명으로 전통의 명문고인 경기고 55명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기회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공식적으로는 OECD국가들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67% 가량이 국공립대 등록금을 내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78%가 사립대 등록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소득은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고 대학 교육의 수준도 훨씬 낮은 나라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은 더 높은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개탄하는 미국의 등록금 현실도 한국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다수 국민들을 희생해 경제 성장의 과실을 재벌 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준 탓이 크다. 특히 상시적인 정리해고 등을 통해 가계 소득의 주축인 일자리를 뿌리째 흔들려버린 것이 국민 대다수의 빈곤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자리 불안에는 부동산거품, 수출편향 경제, 저출산 고령화 등이 주요하게 작용했지만 재벌독식 구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재벌독식구조가 강해지다 보니 중견,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생태계가 사라지고 골목상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자리의 88% 가량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담당하는데 이들 일자리가 점점 위축되거나 불안한 일자리가 돼버린 것이다. 일례로, 두부시장에 CJ나 대상과 같은 대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중소 두부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나 동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SSM 등에 밀려난 것이 대표적이다. 재벌그룹의 부와 이익은 늘어났으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무너졌다. 그렇다고 재벌대기업들이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을 확대한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전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13%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 이후 5%대로 떨어진 뒤 조금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7%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노력하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경제 기득권에 막대한 특혜를 몰아주고 이들이 중소하도급업체나 협력업체 및 그 종사자들의 소득을 사실상 가로채는 삥땅경제’ ‘가로채기 경제행태가 만연해 있다. 각종 사내하청이나 파견근로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건설, IT서비스, 화물수송, 택배 등 많은 산업 및 직업 영역에서 이 같은 행태가 횡행한다. 실제로 정부 등 발주자나 원주문자가 지급하는 금액이 100이라고 한다면 현장 노동자에게는 40~50 정도밖에 내려가지 않는다. 원도급자나 중간 하도급업자, 알선업자 등이 모두 떼먹고 실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쥐꼬리만한 돈만 내려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의 일당은 외환위기 전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갔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그들의 일당은 반토막났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부동산 광풍이 불고 공공건설 물량도 몇 배나 늘었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대우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진행돼온 게 이런 식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생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재벌대기업에 대해서는 인위적 고환율과 연간 16조원이 넘는 R&D 예산의 대부분, 대규모 공공토건사업, 불공정거래 및 담합 등에 대한 방조, 세계적으로 낮은 법인세율과 대폭적인 비과세감면 혜택 등으로 재벌의 독식을 방치해왔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재벌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는데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계속 가난해졌다.

그런데도 이 같은 현실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최근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시켜 왔다. 조세구조를 예로 들어보자. 득세의 경우 한국은 평균임금의 167%를 받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OECD 국가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또 한국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당히 낮은 수준에 속한다. 오히려 스티글리츠가 불만을 터뜨리는 미국의 법인세율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일본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대부분 국가들이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명목세율뿐만 아니라 실효세율은 더 낮아 삼성전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누리기 힘든 낮은 실효세율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 등 재벌기업들은 언론을 통해 세금 부담이 높아 금방이라도 한국을 떠날 것처럼 협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재분배해서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효과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예를 들어, 가계 가처분소득 가운데 과세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OECD 국가 간에 비교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이 비율이 8.0%OECD국가 중 가장 낮다. 한국 바로 다음인 아일랜드도 19.4%로 한국보다 2.4배 이상 높다. OECD 평균은 28.3%로 한국의 3.5배 가량에 이른다. 미국도 OECD 평균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약 26%로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한편 이 같은 과세로 인해 불평등이 감소하는 효과가 스위스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가계 가처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비율이 가장 낮고 누진세 적용 등이 미약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고소득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 적용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소득 부유층과 재벌 대기업 등의 세금 부담이 적은데도 이명박정부는 미국 부시행정부를 따라 대규모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세계적으로 3위 수준의 대규모 감세였다. 그 같은 감세정책의 결과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경제성장에도 기여하지 못했고, 불평등을 키웠으며 정부채무만 잔뜩 늘려놓았을 뿐이다. 이명박정부 들어 국세 수입의 3대 축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가운데 직접세인 소득세(-3.6%)와 법인세(5.2%)는 줄거나 거의 늘지 않았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인 종합부동산세(-57.4%)와 개별소비세(-1.8%)도 줄었다. 반면 간접세여서 상대적으로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부가가치세(20.0%), 유류세(21.9%), 주세(27.2%)는 대폭 늘었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왕창 깎아주고 중산층과 서민들 세금을 대폭 올려 소득 역진성을 키워버린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 때 상위 20%의 세금 증가율은 63.7%였으나 이명박정부에서는 13.2%로 감소했다. 반면, 하위 20~40% 계층의 세금 증가율은 3.8%에서 65.7%로 크게 늘었다. 가뜩이나 심각한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시켜 버린 것이다.

이 같은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결과 성장 잠재력마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불평등의 대가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13.6% 성장한데 이어 20122.0% 성장률에 머문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9% 수준인데, 이는 김대중정부 5년 동안 5.0%, 노무현정부 4.3% 수준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물론 세계경제위기라는 상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2011년과 2012년 연속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밑돌 정도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극소수 상류층과 재벌대기업들로 부가 쏠린 반면 대다수 서민들의 소득이 부족해져 지출 여력이 고갈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 가운데도 내수주들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백화점이나 마트의 매출이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위축되고 있다. 가계 소득이 부족하니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한들 사줄 여력이 바닥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따라 경제의 성장성과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것은 멕시코, 핀란드, 남미국가들에서 이미 목격한 바다. 그런데 이 같은 궤적을 미국과 한국 같은 과거의 상대적 고성장 국가들이 빠르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의 대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정치적 기득권을 강화하고 그 사회정치적 기득권이 어떻게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다. 한국에서도 그 같은 양상은 낯설지 않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에도 정경유착에 의한 이권 주고받기가 횡행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더욱 교묘하게 그들만의 이권 주고받기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원리든 정부개입주의든 기득권에 유리한 방식들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받아들인 결과 한국은 기득권 만능 사회가 됐다. 예를 들어, 분양가 자율화 도입과 함께 폐지하기로 했던 반시장제도인 선분양제를 허용함으로써 공급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주택시장을 만들어 주택 폭등을 자극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들 경제적 기득권은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독과점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한다. 약자에게만 한 없이 가혹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통신 건설 유통 등에서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사실상 독과점과 담합, 불공정 경쟁을 일상화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부품을 조달하는 하도급 업체에는 생사를 건 납품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게 하고 불공정거래를 요구한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대물변제라는 형식으로 미분양 물량을 하청업체 떠넘기고 임직원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형식상으로 미분양을 털어내면서 미분양이 없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그 결과 경제적 강자들은 공정한 시장경쟁 상태에서보다 늘 많이 가져간다. 하도급 업체와 같은 ''과 일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그들의 배를 불리는데 쓰는 것이다.

이 같은 기득권구조를 뒷받침하는 세력들은 한국사회의 주요 영역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및 관련산업에 형성된 모피아나 토건족은 한국경제의 자원 배분과 정책 및 제도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재벌에 매수된 검찰과 법원 등은 재벌과 상류층의 구조적 불공정게임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 재벌 광고주들이 던져주는 광고에 눈이 먼 기득권언론들은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와 같은 거짓말로 국민들을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재벌대기업의 용역을 받아 일하는 다수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이들 언론의 보도나 정부의 결정에 기꺼이 권위와 (허구적인)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렇게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끈끈하게 인지 포획이 일어나고 1%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는 규제 포획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막대한 일반대중의 이익을 희생해 상류층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는 불평등 사회다. 재벌 계열사들에 국가가 쥐꼬리만한 면허세를 받고 황금알 낳는 거위인 면세점을 허용해주거나 각종 민자사업과 재정사업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에게는 막대한 퍼주기를 지속하도록 하면서도 OECD국가 가운데 복지 예산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을 왜곡하며 복지로 망한다고 협박한다. 최소 주거여건에 미달하는 가구가 13%에 이르지만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가진 자들의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각종 세금 감면책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식으로 상위 1%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와 정책, 법률들을 누적시켜온 결과 한국의 불평등은 스티글리츠가 우려하는 미국 이상으로 극심해졌다. 이 같은 불평등을 반영해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재벌개혁과 복지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운동에 상응하는 흐름인 셈이다. 물론 대선 1번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국정목표에서 빼버린 박근혜정부에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를 완전히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정년 60세 연장안이 통과되고, 재벌 경제력 집중 견제와 공정거래 질서 강화를 위한 몇 가지 입법안이 통과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스티글리츠가 강조하듯이 지금의 불평등이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정치적, 정책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사회정치적 기득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날이다. 하지만 낙관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노력할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해진다’. 이 책을 읽고 함께 꿈꾸어 보자. 재벌 등 경제기득권에 주던 특혜를 없애고 이를 서민의 혜택으로 전환한 미래를.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서민들의 부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이전해온 거대한 부의 이전 시스템을 바꾼 미래를. 재벌대기업 지원과 토건부양책으로 탕진하던 세금을 아껴 보육과 교육, 복지, 문화, 생활체육 등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데 쓰는 나라 살림살이를. 그리고 수출대기업이나 건설업계,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업체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 주택수요자, 금융소비자 등에 유리한 정책기조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우리가 함께 꿈꾸는 한 그 같은 세상은 결코 꿈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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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31. 09:31

 

이미 국내 재벌들의 횡포와 탐욕, 부정비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나마 재벌1,2세들은 정경유착과 부패 속에서도 기업가정신이라도 있었는데, 재벌 3,4세로 넘어오면서는 그 같은 기업가정신은 고사하고 타락과 탐욕뿐이다. 이들이 재벌기업을 주도할 때 기술 및 제품 혁신에 대한 유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재벌 3,4세 가운데는 소시오패스형 인간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런데 이들 재벌 3,4세들은 이미 자신들이 여러 탈불법적 상황에서 부를 대물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이 같은 인간형은 한국의 재벌들에게 거의 공통된 특징이다. 45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조원대의 탈세를 하고 온갖 탈불법을 자행한 이건희 회장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설교하는 게 전형적 예다.

그 아들 이재용은 어떤가. 그 자녀가 국제중의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대상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적 조작 정황까지 드러났다. 말끝마다 초일류 글로벌기업이라고 떠드는 삼성전자의 부회장이 일반 전형자나 사배자 전형자의 몫까지 가로채며 자녀를 입학시켰으니 참 남새스럽다. 어떤 불법과 반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까. 하긴 생각해보면 이재용 자녀가 사배자인 것 같기도 하다. 이재용은 2조원대 넘는 삼성 지분 불법 상속할 때 돈이 없어 지 아비인 이건희로부터 받은 60억원에서 16억원을 증여세로 냈으니 말이다.

이미 몇 년 전 일이지만,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이 시비 끝에 아들을 때린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을 심야에 인적이 드문 청계산으로 끌고가 조폭들에게 폭행을 가한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씨가 차를 매매하기 위해 찾아간 노조원을 야구 방망이로 실컷 휘두르고 맷값을 던진 사건이다. 그는 경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을 때도 기자들 앞에서 히죽히죽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의 뜻은 전혀 없었다. 사실 최철원씨는 드러난 경우일 뿐 사실 재벌가 3,4세 가운데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이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게 될 때는 동정을 구한다고 한다. 동정을 구한 뒤 다시 강자로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악행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2003년 재판에서 선처를 구해 경영일선에 복귀했던 최태원 회장이 2011년 다시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도 나눔 경영과 사회공헌을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법정에 다시 서게 된 그는 또 다시 선처와 동정을 구했다. 문제는 재벌 2세뿐만 아니라 3,4세로 내려오면 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다른 국민들을 등치고 희생시켜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이들이 활개 치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다수 국민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소시오패스 경향이 재벌가에만 그치지 않고, 이 땅의 가진자들 상당수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이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범인인 윤모씨의 경우도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윤씨야 재벌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적어도 이 땅의 돈 가진 자들이 갖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길이 창창한 여대생을 청부살인하고, 국제중 사배자 전형의 절반을 부자들이 차지하고, 아직도 고관대작들의 자녀들은 군면제나 수도권 편한 곳에서 근무하고, 역외에서 세금 빼돌리고...도대체 이 땅 가진자들의 탐욕과 파렴치는 끝이 어디인가. 이 같은 상황을 바꾸는 것은 한두 가지 조치로 될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물갈이할 수 있는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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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29. 12:03

 

“여기에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죄수가 갇혀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 벽만 보고 산다. 목도 결박당하여 머리를 좌우로도 뒤로도 돌릴 수 가 없다. 죄수의 등 뒤 위쪽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죄수는 횃불에 비추인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산다.



죄수와 횃불 사이에는 무대 높이의 회랑이 동굴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회랑 뒤에서 누군가가 인형극 놀이를 한다고 상상하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동물 모형, 사람 모형을 담장 위로 들고 지나가는 것이다. 죄수는 횃불에 의해 투영되는 모형의 그림자만을 볼 뿐, 실재의 모형을 본적이 없지. 인형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을 경우, 죄수는 모형의 그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할 거야.




이제 죄수의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자. 모형을 죄수에게 보여주자. 당신이 보아온 동굴 벽의 이미지는 모형의 그림자였음을 설명해 주자. 죄수는 악을 쓸 것이다. 평생 그림자만 보아온 죄수는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고집할 게야.”



(플라톤의 ‘국가(Politeia)’중에서)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장치는 ‘희생양 만들기’다. 반면 피지배세력은 현재 자신이 겪는 고통이 ‘극소수 지배세력’의 음모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를 단순화해 실체적 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벽에 투영된 인형극 놀이일 뿐이다. 동굴 벽에 투영된 그림자는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다. 실체적 진실은 동굴 밖 찬란한 태양 아래 놓여 있다.



매트릭스(Matrix). 이 영화에서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가상 현실을 진짜 현실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 체계를 뜻한다. 한국 사회경제에도 분명히 매트릭스와 같은 현실이 있다. 그것은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이건회 회장 등이 무죄판결을 받은 현실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광고를 주는 건설업체를 위한 기사를 쏟아내는 한국 신문들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워낙 복잡하고, 그것을 떠받치는 세력 또한 워낙 강고하므로 일반인들이 매트릭스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설사 매트릭스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매트릭스가 어떤 식으로 구성돼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매트릭스를 빠져 나와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을 통한 집단지성의 발현은 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매트릭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것은 한국의 정보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이 기득권에 유리하게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정부부터 많은 경우 정보를 통제하거나 왜곡한다또 정부 정책이나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증권사나 정부 산하 연구소, 재벌계 연구소 등은 이해관계나 ‘상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정보 유통 구조 또한 많이 일그러져 있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많은 사안에서 상당수 기득권 신문들은 자사의 기득권과 광고주, 그리고 그들 신문이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을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장악했고, ‘조중동방송’이라고 불리는 종편방송도 허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언론들이 정부의 거짓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일본 국민들이 제대로 경제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카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대본영의 발표만 전달했던 상황에 비유하며 버블 붕괴라는 ‘제2의 패전’ 뒤에 가려진 진실을 국민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지금 한국 언론의 상황은 당시 일본 언론의 상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일부 기득권 언론을 비판하는 매체들이 있지만, 충분한 깊이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런 언론들조차 ‘진보진영’ ‘개혁진영’으로 스스로를 표방하며 기득권세력을 은연중에 ‘보수세력’으로 미화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언론 또한 낡은 이념의 틀로 사람들의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그들 언론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서는 비교적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경제 문제 등의 보도는 깊이와 전문성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다.



다행히 쌍방향 정보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이 같은 정보 유통과정의 왜곡을 어느 정도 중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미디어가 만들어낸 왜곡된 컨텐츠를 대량 유포하는 통로가 되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또한 인터넷이나 SNS 또한 정파적, 진영적 논리에 함몰된 글들이 넘쳐나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공론의 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정보를 소비하는 수용자의 태도도 매우 왜곡돼 있다. 왜곡된 정보 생산과 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거기에 많은 이들이 길들여진 탓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를 비판하면 그 논리를 따지기 전에 정치적 또는 이념적 색깔부터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여야 안에서도 다시 친노, 반노, 안빠 등으로 딱지를 붙여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성향이 크게 강해졌다. 경제적 문제에서도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 그 논리적 근거를 보기보다 ‘집이 없으니 배 아파서 그러느냐’는 인신공격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 같은 정보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중요한 사회경제적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지 않아 생기는 폐해는 매우 크다. 소비자나 투자자로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공급자인 기업과 그 기업의 내부자들에게 판판이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사기와 선동이 난무하는 것도, 수많은 하우스푸어가 양산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민으로서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면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없다. 그 같은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또한 전적으로 그 이유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으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언론지향을 문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는 기자나 연구자, 저자로서의 경험 등을 통해 올바른 정보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기에 한국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알리는 작업을 필생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필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또 필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해관계를 멀리하고 최대한 양심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로 현상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좀 더 큰 틀에서 하기 위해 선대인경제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재벌과 정부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정직한 목소리 낼 수 있는 연구기관을 만든다.

2. 연구소를 모태로 일반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경제미디어를 만든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완전한 형태로 달성하는데 당초에는 7년 정도의 목표시한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시기를 좀 앞당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앞당겨야 하겠다는 절박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여러 이유로 국내에 아직 없는 정보 DB를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DB, 전국 곳곳의 예산 낭비사례를 감시하고 축적하는 DB,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부동산 실거래가 DB, 각종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사업과 예산, 투자, 조직, 임원 등의 정보 DB, 그리고 재벌 대기업의 지분 및 내부거래, 회계정보 및 사업정보 등을 담은 DB 등을 구축할 생각이다. 이 DB들을 바탕으로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다. 또 국민들의 알권리를 확장하고 올바른 정치, 경제적 의사결정을 돕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를 좀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 수 있는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정책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인력들을 키워내고 싶다. 외환위기 이후 여야가 번갈아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경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데는 올바른 인식과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선대인경제연구소를 통해 정책 대안의 개발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래서 최소 20~30명 이상의 전문인력들이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연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들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실현할 생각이다. 그것이 필자가 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성원과 채찍질을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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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16. 09:32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남녀와 세대 구분이 없다. 가히 ‘만성불안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1997IMF 외환위기 이후 이 같은 현상은 매우 가속화됐다. 외환위기 여파로 상당수 중견기업들이 무너졌고, 상시적인 정리해고가 일상화됐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198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도입됐던 일본식 종신고용제는 정착되기도 전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소수 상위 재벌들의 독식구조가 고착되면서 미국처럼 활발한 창업 및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뿌리부터 흔들리니 삶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유럽식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있어 고용불안에 따른 생활수준 악화를 막아주거나 시장소득의 부족을 메워준 것도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사회안전망과 복지 인프라가 큰 틀에서 조금씩 확충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OECD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OECD국가 34개국 가운데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두 번 째로 낮은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 같은 불안감은 더 한층 증폭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4~5%대라도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이 2008년 이후에는 2%대를 기록하는 저성장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나마 성장의 과실도 대부분 재벌대기업과 고소득층에 편중되고 있다. 2008년부터 5년 동안의 누적 경제성장률이 13.4%를 넘는데 실질가계소득 증가율은 7.8%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는 만성 위기구조를 갖고 있다. 산더미처럼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정부채무와 공기업부채를 합한 공공부채도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400조원 이상 더 늘어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저출산고령화 충격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밀려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불안감을 극적으로 고조시키는 것이 한국의 매우 빠른 정년퇴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대부분 50대 초반에 퇴직한다. 물론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은퇴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것을 선호하고 퇴직한 뒤 재취업도 어렵기에 현실에서는 사실상 은퇴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퇴직 직전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게 다반사여서 퇴직 이후에 대한 준비를 할 기간도 많지 않아 막막하기도 하다. 사실 대부분 국내 기업에서 정년을 55~57세 정도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직급별 정년이 있어서 때에 맞춰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40대 중후반에도 퇴직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에서 거의 보도하지 않지만 삼성 등 재벌 대기업들의 대규모 승진인사 뒤에는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대량 해고가 함께 일어난다.

 

한국의 공무원들 정년 연령은 60세로 돼 있지만 민간 부문은 이보다 훨씬 빠르다. 고용노동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민간 부문의 정년은 평균 53~54세 정도다. 그런데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진국의 정년은 60세나 65세가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과 아이슬란드의 정년은 67세이고, 영국, 독일, 일본, 스페인 등 대부분 선진국들은 65세이며 조금 낮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60세 전후이다. OECD 평균 정년은 남성63.1, 여성 60세다. 한국의 민간 부문 실제 정년에 비해 최소 6~9년 이상 늦은 것이다. 이에 따라 그나마도 고령화와 수명 연장, 은퇴자들에 대한 연금 지출 증가 추세에 따라 이들 나라들은 정년을 단계적으로 2~5년씩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통 정년 연장과 함께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프랑스 등에서는 정년 연장을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한국에서는 상당히 낯선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영국은 아예 정년을 폐지하려 하고 일본은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빠른 정년 연령은 정년 이후 노후기간의 장기화로 이어진다. 각국 인구의 기대수명에서 정년 연령을 뺀 퇴직 후 노후기간은 한국 남성과 여성이 각각 26.2세와 31.2세로 터키를 제외하고 가장 길다. OECD 평균은 남녀 각각 17.3세와 23.3세로 나타나는데 이에 비해 8.9세와 7.9세나 긴 것으로 나타난다. 그만큼 한국의 경우 정년 퇴직 이후 뚜렷한 소득 없이 더 오랫동안 노후를 보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림1> OECD국가들의 정년 및 노후기간, 노동중단 시점 현황

) OECD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일자리 불안과 소득 단절이나 감소에 대한 공포다. 한국은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OECD국가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반면 비정규직과 자영업은 OECD 평균의 두 배씩이나 된다. 그만큼 안정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안정적 정규 직장의 일자리조차도 정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6~9년 이상 빠르다. 물론 정년이 빠르기 때문에 정규직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고령 비정규직과 자영업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 악순환 구조인 셈이다. 정년이 빠르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전 생애에 걸쳐서 돈을 버는 기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짧아진다는 점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대학을 못 나오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학 진학이 필수 코스처럼 돼 있다. 남성의 경우 2년 전후의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대졸 신입사원들 일자리가 줄어 젊은이들의 취직이 늦어지고 있다. 취업 재수는 필수, 취업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보다 첫 직장생활이 4~5년 정도 늦은데다 정년은6~9년 이상 빠른 것이다. 당연히 정규 직장에서 취직하는 기간은 25~30년 정도로 선진국의 40년 전후보다 훨씬 짧다. 그만큼 노후를 대비할 충분한 소득을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노후를 대비할 충분한 소득을 벌기 어려운 데다 사회복지 및 연금 혜택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보니 한국의 노후 세대는 퇴직 이후 상대적으로 저소득 일자리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 등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 고령 시기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실제 노동 중단 시기는 남성 70.3, 여성 69.8세로 실제 정년보다 약 16년이나 더 길다. OECD국가들의 평균 노동 중단 시기가 남녀 각각 63.9세와 62.4세로 정년 연령과 거의 차이 나지 않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대부분 OECD국가들은 정년이 되면 일을 그만 두고 은퇴한 뒤 그 동안 벌어놓은 소득과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는 반면 한국은 그 같은 소득과 연금이 부족해 정년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이 41%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 기현상을 보이지만 이들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과로 노동을 하고 있다. 편히 노후를 보내기는커녕 부족한 노후 소득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소득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취업해 저소득 과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도 부족한 소득을 채우지 못해 OECD국가들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두 번째로 높은 상태다.

 

특히 한국의 노후세대는 정년 이후에도 국민연금을 타기까지는 65세까지 약 1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고 이마저도 향후 계속 뒤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퇴직연금은 보통 55세부터 받을 수 있지만, 이는 과거의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받는 것일 뿐이어서 충분한 생활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정규직장에서 퇴직한 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퇴직연금에 의존한 채 10년 이상을 변변한 소득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50대 초반이야말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다. 이미 대학생이거나 출가를 앞둔 자녀들을 두고 있고, 아직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일자리와 소득이 뚝 끊겨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날벼락 같은 현실인가. 아직도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는 기력과 능력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대규모로 퇴직해야 하는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불안감이 2012년 대선에서 폭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직장에서 젊은 30,40대에게 밀려났다는 서러운 감정 때문에 30~40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의 반대쪽 후보로 지지가 쏠린 측면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민간 기업의 정년을 최소 60세 이상으로 늘리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삶을 안정화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정년 60세 연장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어제 여야 합의로 2016년부터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너무 더딘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정년 연장을 법제화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규직의 정년을 확대할 경우 현 상태라면 비정규직의 지위는 더욱 악화될 수 있으므로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을 확고히 하는 등 비정규직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조치들을 병행돼야 한다. 또한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정년을 늘릴 경우 청년 세대의 일자리가 더욱 위축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 활발한 산업생태계가 생겨나 안정적 일자리들이 늘어나도록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기업의 정년 연장을 유도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확대하거나 고령 노동자의 재교육 지원이나 고용 유지 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들 부담을 일정하게 덜어줄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들이 고령 직원들에 맞는 유연한 근무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체력과 가용 시간에 맞게 근무 시간과 장소, 임금액 등을 융통성 있게 조절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근무 시간과 임금액 등을 조금씩 줄여가는 단계적 퇴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하면 일자리와 소득이 갑자기 단절되는 충격을 줄이면서 정년을 연장해 갈 수 있다. 대신 단계적 퇴직 단계의 최종 임금액이 연금 수령 시 불리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연금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가 국내 최고 강사진으로 구성된 경제특강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선대인경제연구소와 함께하는 [경제마스터 클래스] 제1탄. 유종일, 우석훈, 곽수종, 이유영, 제윤경, 그리고 선대인. 여섯 분의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현실경제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키우십시오.

by 선대인 2013. 4. 23. 10:00

 

안녕하세요.

저희 연구소가 국내 최고 강사진으로 구성된 경제특강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선대인경제연구소와 함께하는 [경제마스터 클래스] 제1탄입니다.

유종일, 우석훈, 곽수종, 이유영, 제윤경, 그리고 선대인. 여섯 분의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현실경제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키우십시오.

 


 

많은 분들 성원에 힘입어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신간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이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또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책으로도 선정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는 앞으로도 일반인들의 도움에 되는 정직한 정보를 계속 생산하고 발신하겠습니다.

by 선대인 2013. 4. 22. 11:42

 

저출산고령화로 저성장에 시달릴 한국경제에 북한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남한의 자본 및 기술력, 경제개발 경험과 북한의 저렴한 숙련 노동 및 광물자원과 결합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대륙으로 뻗어갈 수도 있다. 이런 판에 전임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물밑 창구 다 끊긴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개성공단마저 문 닫게 생겼다. 남북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높여 전쟁억지 역할을 하던 보루마저 닫혔다. 남북 경제통합의 미래도 함께 닫히는 느낌이어서 안타깝다. 경제가 그렇듯, 북한 문제도 이명박정부에서 저질러진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경제의 구조적 전환이야 단기간에 쉽지 않고, 박근혜정부가 그럴 능력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대북문제는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비교적 단기간에 일정한 변화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 동안 국방부의 강성발언만 나올 뿐 박근혜대통령의 존재감이 크게 안 보였다. 다행히도 뒤늦게나마 박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이다. 남북간 대치상황이 하루빨리 해소돼 남북간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다시 증진되기를 기원한다.

다만, 필자는 북한문제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와 관련한 논의는 생략하고 이 글에서는 우리가 위기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쉽게 잊어버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북한의 대남 위협 상황 속에서도 북한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전임 이명박정부나 다수의 기득권언론들은 막대한 통일비용을 거론하며 북한이 한국경제에 위협 요인인 것처럼 다뤄왔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한국경제에 가진 기회의 측면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다. 물론 북한의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붕괴한다든지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북한 체제가 안정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한국경제에 새로운 미래를 제공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 기회 요인을 따져보기 전에 통일비용에 대한 논란을 잠시 살펴보자. 통일비용은 연구자나 연구기관에 따라 최소 500억 달러에서 최대 5조 달러까지 천차만별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환율로 약 55조원에서 5500조원까지 100배 가량의 편차를 보인다니 과연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사실 통일비용은 통일비용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정 방법을 어떻게 달리하느냐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정세현의 정세토크>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통일비용 논쟁에서 간과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북간의 군사적, 외교적 긴장관계와 이에 따른 유무형의 비용을 일컫는 분단비용은 통일이 되면 사라지게 되므로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을 빼서 계산하는 게 옳다는 점이다. 둘째는 통일비용만 고려할 뿐 통일에 따른 편익을 고려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계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지 않은 통일비용 논쟁은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통일이 한국에 위협요인 또는 부담요인으로만 인식되도록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는 남북관계가 20~30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관리되면서 질서정연한 통일로 이어질 경우 비용보다는 편익이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 북한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여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가지는 한국경제에 가지는 잠재적 기회 요인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노동력과 토지 비용이다. 북한 개성공단의 사례를 들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월급은 60달러, 공장부지는 평당 15만 원 정도다. 특히 북한의 노동자는 남한의 관리자와 언어 소통이 자유롭고 숙련도가 높은데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보다 인건비 수준이 낮다는 점에서 남한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인력이다. 특히 남북 경제가 통합된다면, 저렴한 인건비 등을 노리고 동남아시아 등지에 투자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북한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그 같은 수출기업들의 투자는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 수준을 끌어올려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남한과 북한의 비교 우위에 따라 남한의 첨단기술 집약형 경제와 북한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남북이 서서히 경제협력 단계를 거쳐 경제공동체 단계에 이르면 현재로도 7500만 명 가까운 내수 시장을 가지게 된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도의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면 이들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할도 하게 된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경제계획을 통해 고속 성장했던 남한의 경험을 살려 북한의 고속성장을 이끌어낼 경우 북한 주민의 구매력도 빠르게 신장될 수 있다. 그 경우 상당히 큰 규모의 내수시장이 형성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통합된 한반도 경제는 장기적으로 세계 7~8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좀 더 단순하게 보더라도 북한과의 경제적 통합은 향후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기요인인 저출산 고령화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남한 인구4875만여 명의 중간연령(median age)38.4세다. 북한 인구 2445만여 명의 중간 연령은 32.9세다. 이 두 인구가 합쳐지면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중간 연령이 36.6세 정도로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같은 식으로 2011년 기준 남한의 합계 출산율 1.23명이 경제공동체가 되면 1.49명으로 올라간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경제 통합만으로도 저출산 고령화가 상당히 완화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통합된 인구가 건실한 노동력과 소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점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할 때 통일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내수 위축 효과 등을 상당히 상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통합에 따라 북한에 상당한 개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건설 SOC 사업과 설비투자가 다시 활발히 진행될 수 있다. 이 경우 개발사업과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사실상 일감이 크게 줄어든 국내 건설업체 등에 상당한 사업 기회들이 열릴 수 있다.

북한에 매장돼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의 경제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남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높은 40여 종을 포함, 매장돼 있는 지하자원의 종류만 220여 종에 이른다. 특히 항공기와 노트북 등에 사용되는 값비싼 희귀금속인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은 무려 60억 톤에 이르러 중국과 매장량 1,2위를 다투고 있다. 더구나 이들 북한의 지하자원은 대부분 남한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아 매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수입해야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을 실시하는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북한이 중국에 헐값에 막대한 북한 광산 개발권과 채굴권을 넘기고 있는 점은 뼈아픈 부분이다.

물론 이밖에도 북한과 통일될 경우 유라시아 대륙과 육로로 이어지면서 명실상부한 대륙국가가 됨으로 해서 얻게 되는 직간접 파급효과 또한 매우 커질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본 것처럼 북한은 한국경제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요인이다. 다만 대북정책 및 향후 통일과정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북한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비용과 편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통일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그 편익, 또는 기회요인은 극대화하는 전략을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 같은 전략은 몇 가지 점을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통일 과정에 따르는 비용과 혜택을 시기적으로 잘 매치시키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북한 체제가 갑자기 붕괴한다든가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반면 통일에 따른 편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혼란으로 남한 경제마저 큰 충격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협력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점진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해야 자연스럽게 남북한 경제의 시너지 효과도 높이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편익은 점점 키워갈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세력균형을 도모하며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중국이 동북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는 시기에 기존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는 외교 전략을 취해왔다. 군사안보적으로 미국에만 의존한 상태에서 지역내 세력균형의 변화가 생길 경우 한국의 입지만 매우 난처해질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이 향후 동북아시아의 지역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다고 할 때 지금과 같은 상태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중국 입장에서는 안보 또는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남한이 북한에 강경일변도로 일관할 경우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마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 양국과 전략적 등거리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북한과 점진적 경제적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분들 성원에 힘입어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신간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이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는 앞으로도 일반인들의 도움에 되는 정직한 정보를 계속 생산하고 발신하겠습니다.

by 선대인 2013. 4. 12. 09:44

 

 

많은 분들 성원으로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이 예스24 종합 17위까지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성원에 보답코자 무려 머리말씩이나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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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 어렵다고 한지도 오래돼 무감각해질 지경까지 왔다. 이런 저런 정부를 겪어봤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했지만 기대감이 높지 않다. 한 때 부동산에, 주식에, 펀드에 열광했지만 그 열광도 가라앉았다. 많은 돈을 들여 뛰어난 스펙을 쌓았지만 졸업해도 젊은이들은 갈 곳이 없다. 쌓아놓고 벌어놓은 게 많지 않은데 50대 초반에 퇴직한 베이비부머들은 막막하다. 일자리도, 복지도 부족한 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지만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곳도 드물다. 대다수 언론들은 거대 광고주나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실한 정보를 넘어 광고주의 이해에 오염된 정보가 넘쳐난다. 그들 언론의 정보를 믿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 책은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답답해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기획됐다. 형식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 직접 답변하는 형식으로 전개했다. 그 동안 각종 강연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받았던 질문들을 기초로 삼았다. 경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 진행 과정에서 받았던 청취자들의 질문도 반영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하다 보니 일종의 ‘생활경제학’이 됐다. 한국경제 구조에 대한 고담준론보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알고 싶어 하는 경제 현상과 판단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았다. 물론 여기에 실은 내용이 ‘만병통치약’도 ‘절대 진리’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연구소가 현 시점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정보와 최선의 조언을 담았다는 점만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세대간 대결구도가 극명해졌지만, 잘못된 경제구조로 불안하고 힘겨워 한다는 점은 모든 세대가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20~40대든, 50대 이상 노후세대든 서로가 처한 상황과 고민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세대간 공감대 형성에 일조했으면 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의 트위터 친구(@jumeok_)가 보내준 사진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아래 이미지 참조) 리어카에 한 가득 폐지를 싣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친 한 노인이 고개를 떨구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머리말을 쓰기 며칠 전 비슷한 실제 상황에 마주쳐 60대 할머니를 대신해 리어카를 끌어보았다. 겨우 100여 미터 떨어진 고물상까지 가는데 땀이 솟았다. 고물상에서 무게를 재보니 리어카 무게를 포함해 360 킬로그램이나 됐다.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해도 그 노인이 손에 쥐는 돈은 1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 노인 복지 수준은 뒤에서 두 번째인 우리 상황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는 50대 이상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마저 왜 노후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경제구조를 바꾸고 나라 살림살이만 제대로 해도 우리 부모님들을 지금보다 더 잘 모실 여유는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면 우리의 현재도, 노후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은 선대인경제연구소 출범 이후 연구소 명의로 처음 발간하는 책이다. 지난해 출범하면서 우리 연구소는 재벌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은 정직한 정보, 일반 가계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경제정보를 생산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같은 취지에 상당히 걸맞은 첫 책이 탄생한 것 같아 흡족하다.



선대인경제연구소는 앞으로도 정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연구소지만 10년 후 삼성경제연구소를 능가할 연구소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아무쪼록 부족한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조언과 채찍질을 기대한다.

by 선대인 2013. 4. 4.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