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많은 언론이 ‘위기는 기회다’라면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한 기대감에 편승해 상당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집값이 반등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미국발 세계경제의 침체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많은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이 이번 세계 경기침체가 3~5년 정도의 중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의 3각축이 동시에 경기 침체로 빠져든 것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그러기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전례 없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한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사뭇 톤이 다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매우 걱정하는 현 경제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만 그토록 낙관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은 금방 호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강부자 정권’의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현 정부는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부동산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을 쏟아냈다. 이도 모자라 10·21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방안'과 11·0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내놓았다. 26조원에 이르는 올해 토건SOC사업 예산을 배정하고 ‘녹색 뉴딜’이라는 명목 아래 4년간 50조원의 대부분을 각종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쏟아붓기로 한 것도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구조를 볼 때 현정부의 이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거품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융권에서 대출제한을 넘어 본격적인 대출회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거품붕괴의 시장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기인 1992~94년 동안 무려 72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천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부양 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거품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1992~94년 3년 동안 사실상 제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은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키울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공급과잉 신호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억지로 주택공급을 늘리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네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대를 조금 상회하는데, 이는 5~7%대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낮은 수치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15. 10:39


부동산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이에 따른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부실 건설업체들의 도산을 막으려는 정부의 건설 경기 부양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8.21대책부터 시작해서 10년간 500만 호 주택공급을 천명한 9.19대책, 가계 주거부담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10.21대책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인 11.03대책, 지난 6일의 이른바 ‘녹색뉴딜’ 방안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건설경기 부양대책만 4차례나 쏟아져 나왔다. 또한 올해 예산액 가운데 건설SOC사업 예산이 24.7조원 가량으로 전년 대비 약 26%나 급증했다. 이밖에 직접적인 건설부양 정책으로 포장하지는 않았어도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건설경기 부양대책인 경우도 많다. 예컨대 정부가 향후 5년간 56조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같은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이명박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명분은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이다.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경제도 살리면서 결국 그것이 국가경쟁력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의 대규모 SOC사업을 앞당겨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10월 30일)

“아파트가 아닌 지방 SOC 사업같은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을 할 것이다.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간 교통과 물류시설 등에 투자할 것이다" (강만수기획재정부장관, 11월 3일)

그런데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현실에 비춰볼 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7,8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경기침체가 오면 건설경기 부양으로 대응한다는 게 거의 공식화돼 있었다. 당시 이 같은 대응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합리성을 가졌다. 우선, 당시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설산업의 GDP 비중이 높았고 산업연관효과와 고용 효과도 높았다. 그래서 건설업의 경기부양 효과도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건설업에 투자하면 건설업계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된 자재 생산 및 공급업체 등 연관 산업 전반에서 매출과 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또한 당시에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아직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취약한 SOC를 확충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도로, 항만, 공항 등 SOC 확충은 물류 수송의 확대와 물류 시간 및 비용 절감 등의 형태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확충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2,30년 전의 개발시대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은 건설업 말고도 수많은 새로운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로 인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설업의 비중도 크게 낮아졌고, 산업연관효과도 줄어들었다. 또 입지별로 다르겠지만, 웬만한 SOC 투자는 이미 이뤄져 전국에서 이용률이나 가동률이 낮은 도로, 공항, 산업단지 등이 급증하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SOC 확충 필요성도 크게 낮아졌다. 더구나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 건설업체들의 조직 구조와 고용 구조가 변화하면서 정부가 내세우는
경기 활성화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게 떨어졌다. 왜 그런지 아래 <도표1>을 참고로 해서 설명해보자.


우선, 건설업체들은 87년 민주화 이후 노조가 빠른 속도로 조직화되고 노조원들의 임금이 급상승하자 비용절감 명목으로 덤프트럭 운전자들과 중장비 인력들을 개인사업자 형태로 분리시켰다. 또한 시공인력들도 아웃소싱 명목으로 점차 하청업체에 떠넘겨 본사 인력을 줄여나갔다. 이 같은 추세는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 건설업체에는 최소한의 관리 및 영업인력만 남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의 상당수도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 가운데 개인사업자가 된 덤프트럭과 중장비 사업자들의 시장진입이 자유롭게 개방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트럭운임 및 중장비 단가는 계속 하락했다. 하청업체의 사정도 갈수록 열악해졌고, 시공인력들의 노임 단가도 불법 외국체류자들의 유입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90년대 이전에 비해 외환위기 이후 덤프 및 레미콘, 중장비기사와 하청업체 시공인력 등 소위 현장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실질가격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많은 건설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도표1> 한국 대형 건설업체들의 조직 및 고용 구조 변화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경기부양 명목으로 예전처럼 추경편성 등을 통해 건설사업 재정확대를 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경기부양 명목의 건설사업 예산의 대부분은 공사를 수주한 대형 원도급자가 차지해 버리고 밑바닥으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
 

왜 그런지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2002년 발주해 2004년까지 진행된 경기도 성남~호원 도로 건설공사 2공구 공사 현장 사례를 통해 보자. 아래의 <도표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공사에서 A건설 등 3개 대형 건설업체 컨소시엄은 총공사비(정부 예정가격은 3,032억 원) 2,853억 원에 수주한 공사 가운데 약 1,970억 원어치의 공사물량을 60.5% 정도인 1,190억 원에 하청을 주었다.

<도표2> 건설경기부양 재정사업의 경기부양 효과 실태



 

간접공사비와 자재비 등의 명목으로 챙긴 이익만이 883억 원(=2,853-1,970)이고, 이에 더해 직접공사비 하청 과정에서 780억 원(=1,970-1,190)을 추가로 챙긴 것이다.


A
사 등은 간접공사비와 자재비만으로 처음부터 총공사비에서 30.9%가량을 챙긴 다음 직접공사비 하청 과정에서 추가로 27.3%가량을 챙긴다. 총공사비의 58.2% 가량이 A사 등 대형 원도급업체의 이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데 대해 대형 건설업체들은 직원을 투입해 공사 전반을 관리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각종 관리비용은 이미 간접공사비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단순히 공사물량을 넘겨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하청발주 과정에서 다시 엄청난 차익을 챙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투입이 대형 건설업체들의 금고로 그대로 들어가버려 경기부양 효과와는 무관하게 퇴장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위의 예에서 건설경기부양 재정사업의 경기부양 효과를 살펴보기로 하자. 건설경기부양 예산 2,853억 원의 58.2%가 자재비/인건비 883억 원과 마진 780억 원의 형태로 대형 원도급업체에게 돌아간다. 원도급업체가 차지하는 이 돈은 사업관리 및 영업직원들의 월급과 음성적인 로비자금까지 포함된 활동비, 자재비 등으로 나가지만 대부분이 이익으로 사내유보 된다. 사내에 유보된 자금들의 상당 부분은 대형 건설업체의 향후 주택사업 등을 위해 택지매입 비용 등에 들어가 땅값을 부추길 뿐 당장에 경기부양에 기여할 수 있는 고용을 늘리거나 산업연관효과 확대를 통하여 연관산업의 소득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는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건설업체들이 무리한 차입과 분양사업 전개로 미분양이 급증하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는 정부 경기부양 예산이 이들 업체들의 부채 상환에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명박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통해 실제로 노리는 것도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건설업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적어도 현 정부가 건설경기부양책 실시를 위해 겉으로 내세우는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도급업체에 지급되는 1,190억 원(41.8%) 3, 4, 5차 다단계 하도급 과정을 통해 중간마진 형태로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최종 시공인력과 덤프트럭 및 중장비 기사 등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당초 건설경기부양 예산의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건설경기부양 명목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건설사업 현장에는 돈 구경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시공인력 가운데 30~4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의 상당 부분을 본국에 송금하므로 이들을 통한 국내소비 진작효과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사례에서 원도급자가 챙기는 마진이 큰 이유는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상위 대형건설업체들이 가격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턴키입찰 (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균 낙찰가가 가장 낮은 최저가낙찰제의 경우에도 원도급자는 20~30% 이상 남기는 게 보통이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급변한 건설업계의 사업구조 및 고용 구조 때문에 건설토목 사업을 통한 고용창출 및 내수진작 효과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건설경기부양을 한다고 해서 건설 및 토목사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소득증대 효과가 생기겠는가?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14. 10:12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전직 신문기자였습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족벌언론'의 기자였습니다. 더구나 그 신문에 소속돼 있을 당시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 나와서도 여러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족벌 신문사들의 추악한 면들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신문들이 가진 언론으로서의 문제점과 그 신문들이 왜곡보도를 일삼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왜곡 보도와 여론 조작을 일삼는 한국 언론, 특히 찌라시 신문들의 보도 태도와 이 같은 보도가 일어나는 구조적 배경에 대해 한 번 정리해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욕구만 있을 뿐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면 영원히 그런 작업을 못하고 말겠다 싶어 지난 주말에 작심하고 펜을 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틈나는 대로 정리한 글을 부담 갖지 않고 그때그때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언론개혁'란과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연재해볼 생각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대략 6~7회 정도 연재하면 대충 큰 골격은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좀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겠습니다. 연재 주기도 일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아랫글은 첫 회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은 아래 링크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3&articleId=50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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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가장 효과적인 검열이 될 수 있다. (The "market" can be a most effective censor.)”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즈니 교수의 책 ‘The Problem of the Media' 225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광고주로서 기업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 대신 자본이라고 표현하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위 문장에서 맥체즈니 교수는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의 미디어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로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미디어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직접 일리노이주의 지역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신문방송의 교차 소유를 확대하려는 2003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조치에 대한 대중적 반란을 주도한 단체인 ‘Free Press’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그는 탈규제를 통해 생겨난 거대 독과점 미디어그룹들이 ‘국민에 앞서서 이익(Profit over People)'을 챙기기 위해 사회적 의제를 제한하고, 사실을 조작하며 본질을 왜곡해 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인 언론 자유를 극도로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같은 독과점 미디어그룹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 연방정부가 미디어자본의 압력 아래 미디어그룹들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독과점 구조를 만들어준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미디어들은 미디어정책에 대한 논의를 독점하고 소수 정치가와 기득권 위주의 미디어 방송을 실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9.11테러와 이어진 미국의 침략전쟁에 관한 미국 미디어의 보도 태도는 한 마디로 '정치적 선전선동(propaganda)'에 불과했다고 힐난할 정도입니다.

 

글의 첫 머리에 그의 활동과 주장을 소개한 이유는 그가 비판하는 상황이 한국의 미디어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비판하는 미국 사회의 미디어 현실은 주로 방송을 장악한 거대 미디어그룹들에 관한 것이고, 제가 볼 때 미국사회의 언론 자유와 보도의 품질, 그리고 시청자와 독자들의 선택권 및 다양성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가 비판하는 내용을 한국의 경우 신문들, 특히 기득권 신문들에서 훨씬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신문들은 광고주의 압력을 매우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난 번 글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왜 그런지를 신문사의 수익 구조와 연관해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구독료 수입이나 각종 부대사업과 광고수입이 거의 반반씩 균형을 이루고 있는 ‘뉴욕타임스’ 등 선진국 신문과 달리 국내 신문은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품 등을 통해 구독자를 유치하는 관행에 젖어 있는 국내 신문들의 경우 구독료 수입은 거의 그대로 신문지국 지원 및 ‘확장 비용’ 등으로 나가므로 사실상 100%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신문사 경영이 광고주의 압력에 심각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렇게 광고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각 신문들, 특히 기득권 메이저 신문들은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을 중심으로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신문을 봐야 기업이 비싼 단가의 광고를 싣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문사에 있으면서 이 같은 주문들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강남 독자층을 공략해야 하니,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기사를 발굴하라’는 지시는 매우 점잖은 주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지체장애인 이야기는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 빼’ ‘외국계 명품 브랜드 광고 유치하기 위해 고급 패션과 외국계 화장품 기사를쓰라’는 식의 주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나중에는 정말 이런 주문들이 무감각해지는 수준까지, 그래서 기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과 ‘동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런 기사들을 생산하게 되는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재산세 문제나 종부세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정부의 투기 억제대책을 ‘강남 때려잡기’라고 비판하는 것도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방향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기득권 지향적 보도--->구매력 있는 독자층 확보--->고가 기업광고 유치--->기득권 지향적 보도로 이어지는 왜곡된 순환구조가 국내 기득권 신문들의 보도태도를 오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뉴스포털, 무가지 등 경쟁매체들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이들 신문들의 구독률과 열독률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광고유치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신문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슈가 부동산 문제입니다. 신문들의 영업 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동산 광고는 신문사 경영 측면에서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동산 광고는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한 2001년 이후 학습지 광고, 유통(백화점) 광고 등을 제치고 신문 광고 매출 기여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메이저신문에서 부동산 광고의 매출 기여도는 더 높습니다. 메이저신문사들의 경우 지난 6~7년 동안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 광고 매출의 35% 전후를 차지해 사실상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들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아파트 분양 정보나 가격대 등의 정보는 고지성이나 시의성 측면에서 신문이 가장 적절한 매체로 평가받습니다. 이 때문에 각 신문사들은 부동산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여름 휴가철 등 비수기를 빼고는 매월 부동산 광고 특집면을 별도로 제작할 정도였습니다. 부동산광고가 신문 광고매출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신문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강한 유인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반시장, 반소비자적인 제도로 꼽히는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를 신문들이 달가워할 수 없는 사정도 부동산 광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 신문사의 한 광고국 직원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 스스로의 자금력으로 70%이상 시공한 뒤 광고를 할 수 있게 돼 있어 광고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신문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도입을 막고 싶은 제도가 후분양제”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한 전직 건설업체 직원의 증언을 통해서도 언론과 건설업체와의 유착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라갈수록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인다. 부동산 값이 뛸수록 분양가를 높이는데도 유리하니 부동산 값을 띄우기 위한 여론 조작도 한다. 고도의 전략인데 업체가 땅을 산 지역에 대해 ‘유망개발정보’ 등의 형식으로 언론, 특히 신문에서 보도되게 한다. 건교부의 중장기 전략을 분석하는 자료를 내고 화성 동탄과 행정수도 부지 등이 터지면 얼마나 오르고 식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거다. 이렇게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만든다. 홍보팀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접대하면서 애로 있다, 도와달라고 호소하거나, 현금을 쥐어주면서 어떤 기사 나갈 때 우리 회사 부각시켜달라 이런 식으로 부탁도 한다. 물론 부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접대가 통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대형업체들은 홍보팀을 통해 관련 기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분양가를 산정할 때 광고비를 간접비의 1~2% 정도로 산정한다. 광고비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반드시 광고를 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안 해도 분양되는데 웬만하면 전면광고한다. 분양 끝난 뒤에도 사례광고를 한다. 메이저 신문은 기본이고 경제신문에도 대부분 광고한다. 언론에는 괜히 밉보이면 안 되니 광고하는 거다. 공사 프로젝트 관련해서 주위 민원도 있고 산업재해도 발생하고 회사 비리도 드러날 수 있으니 급할 때를 대비해 광고를 통해 언론사와 미리 유착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광고 유치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주택 및 부동산 개발사업 참여, 그리고 다량의 부동산을 보유한 언론사 사주들의 이해관계도 객관적인 보도를 힘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세계일보, 한국일보, 심지어 언필칭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신문까지 현재 상당수 언론사들이 직접 주택 개발 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경우에는 “조선일보가 정말 떼돈 버는 방법은 방송 참여가 아니라 코리아나 호텔과 주변 조선일보 건물들을 한데 묶어 용도를 변경한 뒤 거대한 주상복합단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뿐인가요? 상암DMC의 첨담 업무 용지의 경우 땅값에서만 몇 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각 언론사의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그 업무용지를 분양받기 전 상암DMC사업과 그 사업을 벌이는 서울시를 거의 ‘찬양’하는 수준의 기사를 잇따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과정을 거쳐서 족벌 언론사들은 대부분 상암DMC의 노른자위 땅을 분양받았습니다. 왜 청계천 사업으로 자사 사옥의 부동산 가치가 껑충 뛴 일부 신문들이 대선 전 ‘청계천찬가’와 ‘이명박 찬가’를 그토록 열심히 불러댔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처럼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언론사들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족벌 언론사들의 사주들은 모두 엄청난 ‘부동산 재벌’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 종부세가 오르면 언론사주들의 부담은 매우 커집니다. 이들 언론사주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액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려우나 그 일단이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부 초년병 시절 수도권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지방 주재 선배가 사주집안의 부동산과 관련된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소위 기득권 신문들의 종부세 비판 기사들은 고가 부동산 소유주인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지만, 언론사들은 몇 년전까지 ‘공급 부족론’이라는 건설업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건설물량 확대를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또 집값 거품을 더 커지기 전에 꺼뜨려야 할 시기에도 정부에 끊임없이 각종 주택 사업 및 은행 대출 관련 규제완화를 주장해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해왔습니다.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지고 있는 2008년 상반기 이후에도 이런 식의 보도는 약간의 변화를 거쳐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집값 거품이 붕괴하면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사실상의 집값 부양을 요구한다거나 집값 하락 소식을 전하면서도 집값의 급격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또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가면 2~3년 후 공급이 줄어 집값이 폭등한다”며 정부가 나서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같은 주장이 공급 과잉 해소를 지연시켜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장기화하고 결국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발 등의 불 끄기에 급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 기득권 언론들은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 건설업체들이 살아야 (광고수입이 늘어나) 자신들이 산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많은 신문들은 줄기차게 ‘집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집을 사라는 식으로 유도하는 기사를 자주 냅니다. 물론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셈입니다. 또 광고주인 건설사들을 위해 ‘잘 고르면 알짜배기’라는 식의 미분양 물량 해소에 도움 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쓸 말은 많지만 글이 길어지니 이 정도에서 줄일까 합니다. 이번 주제는 다음 글에서 제 개인적인 경험들을 중심으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국의 언론들, 특히 일부 기득권 신문들은 절대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고비마다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철저히 희생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너무 강합니다. 앞서 소개한 맥체즈니 교수 등 세 명의 미디어학자가 편집한 ‘The Future of Media'라는 책의 서문을 쓴 빌 모이어스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특수 이익집단이 법을 무시하고 일반대중들의 복지를 훼손하면 사회적으로 부채가 생겨난다. 그런데 그 부채는 우리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부채다. 그리고 그 부채의 총합은 바로 우리의 시민권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거대 미디어 기업집단들(conglomerates)이 우리가 보고, 읽고, 듣는 것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거대 사업체로서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정치적 과정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포함해서-을 증대하기 위해 매체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좀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중략) 상업적인 표현(commercial speech)만이 유일하게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된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14. 04:14

최근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는 가운데 주택 선분양제의 문제점과 폐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제도인 선분양제는 건설 및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운다. 투기적 분양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인한 건설업계의 극단적인 부침, 분양자의 금융부담 증가 등의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붐이 일 때는 차익을 노린 주택 투기를 조장하는 반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자산 가치 폭락에 의한 가계의 경제적 피해를 키우고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을 초래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문제들이 금융권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처럼 큰 문제점과 폐해를 낳는 선분양 제도의 도입 배경과 존속과정을 먼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주택 선분양 제도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주택건설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판단한 정책당국이 주택건설업체들의 금융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제도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제도권 금융에 이자를 물지 않고 주택 수요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선분양제는 당시 민간 주택건설업체들이 모도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유입 가속화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분양제는 시장가격 이하로 책정된 분양가와 실제 시장거래가격 간의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를 유발시켰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고착화 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다. 반복적인 부동산 투기 파동과 경기 침체기에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 피해가 두드러지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때문에 이미 1995년 선분양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분양가 규제도 함께 자율화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사태는 엉뚱하게 치달았다. 건설업계의 분양가 자율화 요구는 즉각 받아들이면서도 외환위기 직후 고사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를 살린다는 명목으로분양제 도입은 뒤로 미뤄졌다.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분양가마저 자율화돼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의 힘만 일방적으로 잔뜩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2003년초 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후분양제 도입 방침이 결정됐으나, 당시 건설교통부 등의 미온적 태도로 후분양제 도입은 지지부진해지고 선분양제가 여전히 대세를 이뤘다. 한국 주택시장은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 자율화라는 공급자를 위해서는 최선이지만 소비자를 위해서는 최악의 제도가 자리잡게 것이다. 그로 인해 2000 부동산 거품이 빠른 속도로 커지게 주요 원인 하나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사업의 진행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보자.

시행사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택지를 분양 받거나 매입한 뒤 해당 택지에서 사업할 시공사와 공사도급 계약을 맺고 주택건설사업을 총괄 진행한다. 시행사가 개발업자인 경우에는 개인 전주(錢主)들로부터 돈을 빌려 택지를 매입하기도 한다. 또 주택 건설업체들 가운데는 직접 시행사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는 해당 사업지의 조합이 시행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시행사보다 규모가 큰 시공사가 신용보증을 서서 금융기관이 시행사에 택지 매입비 등 초기 사업자금을 대주게 하는 한편 시공사 자신도 직접 자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분양이 이뤄진 뒤 해당 주택사업의 분양계약자들이 내는 중도금 및 잔금을 대출해주고 수익을 올린다. 분양계약자 입장에서는 분양 계약금을 낸 뒤 자신의 돈이나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가 완공되면 입주하는 것이다. 이상이 선분양제 하의 주택건설 사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음에, 선분양제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선분양제는 주택가격의 등락폭과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운다고 할 수 있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 건설업체들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서둘러 주택 분양을 크게 늘린다. 주택가격이 오르는 추세에서는 손쉽게 분양할 수 있고 선분양 대금으로 큰 부담 없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는 약간의 초기 계약금만 있으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으므로 분양권 전매차익(분양권 전매 허용시)이나 입주 후 매매차익을 기대하고 자신의 예산한도를 넘어서서 무리한 청약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초과 수요에 의한 청약 과열→주택건설업체의 고분양가 분양→주변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집값 상승폭을 키우는 주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져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이 무리한 선분양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미분양만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침체에 빠지는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둘째, 선분양제는 분양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긴 시차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수급 미스매칭을 유발한다. 선분양제 하에서는 아파트 분양 시점에서 입주 시점까지 최소한 3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획 및 토지 매입 기간까지 포함하면 입주시점까지 4~5년 정도 걸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차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우는 속성을 갖고 있다. 부동산 붐이 일 때는 주택건설업체들이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실제 수요 이상으로 건설 물량을 늘리고, 부동산 붐이 꺼지면 수익성이 떨어지므로 사업을 줄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차가 있기 때문에 주택건설업체들은 주택 경기가 정점을 지난 뒤까지도 주택을 공급하게 된다. 거꾸로 주택 경기가 바닥을 친 뒤 회복할 때에도 주택건설업체들은 뒤늦게 이를 인식하고 그때서야 주택 공급을 계획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선분양제는 주택 수급 불균형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시킨다. 이는 선분양제와 후분양제 하에서 주택건설업체가 하는 사업 판단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는 금융비용의 상당 부분을 분양계약자에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예산제약을 넘어 무리한 사업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후분양제였다면 매년 평균 2개의 주택사업을 벌일 주택업체가 선분양제에서는 3개 이상의 사업을 벌이게 되는 식이다. 또한 3년 후 분양시점이 아니라 바로 당장의 분양률만 높이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근시안적인 사업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부동산 거품기에 분양된 주택은 부동산 침체기에 입주가 시작돼 가뜩이나 가라앉는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내게 된다. 지금 서울 잠실이나 과천, 용인, 분당 등 수도권 전역에서 쏟아지고 있는 물량 폭탄들이 집값 하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져 주택건설업체들이 긴축 경영을 통해 분양 물량을 대폭 줄이다 보면 정작 몇 년 후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때에는 입주물량 부족으로 주택경기를 더욱 가열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면 후분양제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건설업체의 자체 자금이 많이 들어가야 하고, 3 입주시점에 분양에 성공할 있을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주택건설사업에 돈을 대주는 금융기관 역시 3 입주 시점에서 성공적으로 분양될 있는지를 따져야 하므로 좀더 냉철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성을 따져 대출을 하게 된다. 또 주택건설업체는 가능하다면 주택경기 침체기에 저렴한 비용을 들여 사업을 시작해 부동산 활황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완공 분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경우 주택건설업계 전체로는 자연스럽게 경기 침체기 때에 주택건설사업을 시작해 경기 활성화 효과를 있게 되며 경기 활황기에 완공주택 증가로 주택가격 급등을 제어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선분양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주택 수급의 진폭을 줄일 있는 것이다.  

 

넷째,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있고,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선분양제 탓이 크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의 갑작스러운 냉각으로 주택건설회사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 계약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공기업인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건설사의 부도나 파산 등에 의해 생겨나는 분양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 주택 수요자의 피해는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건설회사 등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 하반기 이후 주택분양 보증사고[1] 세대수와 주택분양 보증사고 금액이 급증하고 . 최근 3개월 사이에 보증사고가 세대 수만 7,000 가구에 사고금액은 15,877억 원에 이르고 있어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세대수의 80%와 사고금액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분양보증 사고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아파트건설 공정이 당초 계획에 비해 15% 이상 늦어진 현장이 지난해 11 53 6,866가구에서 올해는 85 23,168가구로 늘었다. 특히 공정이 20~25%가량 지연돼 분양보증 사고 대상이 되기 직전의 사업장은 지난해 11 21 3,656가구에서 올해 55 13,095가구로 3배 이상 늘었다. 이것은 앞으로 분양 계약자들의 피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다섯째, 선분양제 아래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완공 입주 전에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주택을 청약할 수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후분양제에 비해 자신의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분양만 받으면 앉은 자리에서 몇 억원의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시장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 그 결과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판교신도시 등 수도권의 웬만한 주택단지에는 청약 경쟁률이 수백~수천 대 1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투기적 가수요가 생겨났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분양 시점이 아닌 3년 후 입주 시점의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소득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계약자들이 아파트 입주하기도 전에 중도금과 잔금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금융권에 수억 원의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실제로 MBC <PD수첩>팀이 지난해 11월에 방영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조사한 내용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PD수첩>팀이 무작위로 샘플링한 경기도 용인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200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34,6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가구 가운데 금융권 대출을 갖고 있는 세대는 전체 세대의 81.5%163가구였고, 대출이 없는 집은 37세대(18.5%)에 불과했다. 대출이 2억원 이하인 경우는 28세대, 2억원~3억원인 경우는 29세대, 3억원~5억원인 경우는 58세대였고, 5억원 이상인 경우도 58세대나 됐다. 물론 용인의 경우 부동산 투기 붐이 극에 달했을 때 대규모 분양이 이뤄졌으므로 정도가 심한 편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 차입을 통한 가계의 부동산 투기는 용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잔뜩 빚을 진 가계들이 지금처럼 주택가격이 급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세차익은커녕 극심한 자산가치 하락과 함께 감당하기 힘든 부채만 떠안게 된다. 특히 기존에 보유한 주택의 가격이 뛰면서 이를 담보로 수도권 등지에 추가로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은 양쪽 집의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고 대출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 개인파산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만일 판교신도시 주택을 완공시점에 맞춰 후분양제로 청약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주택 수요자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건설사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주택 수요자들만 부동산버블 붕괴로 자산가치 급감이라는 위험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서울과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소위 입주 대란과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인 아파트를 팔아 은행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또 기존 주택을 팔아 넓은 평수 아파트로 옮겨가려 했던 실거주 목적의 계약자들도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기존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져 신규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을 치를 수 없어 입주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계약자들이 선택하는 대안은 신규 분양 아파트를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최근 송파구 잠실 재건축 아파트 단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세값까지 급락하며 역전세난까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분양제가 주택 공급자에게 유리하고 주택 소비자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해서 주택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선분양제는 부동산 경기 호황기에 주택건설업체가 무리한 주택사업을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건설업체들은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켜 주택 청약자들을 희생양 삼아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국토부가 집계한 올해 9월 기준 미분양 157,241가구 가운데 404,36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만일 후분양제였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미분양 물량이 최소한 117,000여 가구에 달한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8.21 부동산 대책에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11월초 건설사들이 조기 분양에 나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재건축 후분양제를 폐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1] 민간주택건설사업 시행사가 부도가 나거나 파산하는 경우, 또는 공정률이 당초 예정보다25% 이상 늦어져 아파트 분양계약자들이 분양 이행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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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1. 13. 09:56

정부가 6일 이른바 '녹색 뉴딜' 구상을 발표, 오는 2012년까지 총 50조 원을 투입해 새 일자리 96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 정부에서 발표한 사업들과 4대강 하천 정비 등 개발시대의 건설토목사업 위주의 사업들을 ‘녹색 뉴딜’이라고 포장한 것은 저질 소시지를 스테이크로 포장한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전체적인 토목사업을 녹색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건설사업도 사실 따지고 보면 또 하나의 콘크리트 사업일 뿐입니다.

 

도심의 자전거 도로를 확충해 자전거 출퇴근을 늘리고 기존 교통수단 이용률을 낮춤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한편 교통혼잡을 줄여야 친환경 사업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교통 혁명을 이뤄냈다고 하는 프랑스의 벨리브가 모두 도심 내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자전거도로는 어떻습니까? 네덜란드는 도로 예산의 10%를 자전거 시설을 지원하는데 지출하는데, 2007년 자전거 시설에 대한 국비 투자액은 102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자동차도로 사업에는 올해의 경우 약 10조원을 배정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 경우에도 최근 몇 년간 자전거도로를 대폭 확충한다고 했지만,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는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도로를 보도에 만들어 놓았지만 각종 주행방해 시설물이 즐비하고 폭도 극히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조금 달리다 보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인도에 페인트로 줄만 그어놓고 자전거도로로 우기는 것도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러니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이 네덜란드는 27%, 일본 14%, 독일 1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2%에 불과한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도심 내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지 않고 전국 해안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내면 어떻게 될까요? 전국일주 자전거도로가 생긴다고 도심 내 통행량이 줄어들까요? 전국일주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사람들은 결국 큰맘먹고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도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고 그런 도로가 생기면 이용을 하고는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요가 얼마나 될까요? 또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수요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도심의 교통량이 절대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에너지 절감도 온실가스 배출 감소도 되지 않습니다. 자전거 장거리 여행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위해 거액의 예산을 들일 뿐입니다. 비용 대비 편익이 1이 넘을지 정말 의구심이 생깁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전거도로를 닦기 위한 도로사업은 결국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드는 토목사업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불요불급한 토목사업에 예산을 들이고 건설업체들 좋은 일만 시킬 뿐입니다.

 

더구나 이 사업은 제가 볼 때 시작일뿐이고, 계속 잇따라 자전거용 도로포장사업을 확대재생산할 것입니다. 전국 일주 자전거도로가 생겼는데, 해안 일주 도로만 닦고 말겠습니까? 곧 건설족들은 각 주요 길목별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내자고 하겠지요. 그때마다 ‘친환경’이니 ‘그린’이니 하는 포장을 달아가면서요.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자전거도로 사업은 계속 확대되고, 계속 해마다 예산도 늘어나겠지요. 실제로 이번 정부 발표자료를 보면 ‘자치단체가 개설한 자전거도로와 연결사업 추진’이라고 해서 그런 가능성을 이미 명시해뒀더군요. 토건족들이 가장 수익을 많이 남기는 사업이 도로 예산인데, 자동차도로가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니 이제는 새로운 도로수요를 만들어낼 명분을 만들어내는군요.

 

해안일주도로 건설사업에 들어갈 예산만 2008년 불변가격으로 1조 2456억원이네요. 그런데 자전거 도심 급행도로 시범사업에는 30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사실 10km 3개 구간, 총연장 30km를 닦는데 3000억원을 퍼붓는 것은 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나게 퍼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전거도로 1km당 100억원이라니요. 그래도 이왕 퍼줄 돈이라면 그나마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만드는데 쓰는 것보다는 도심 내 자전거도로 확충에 쓰는 것이 100배 낫지요.

 

그런데 이 사업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는 더욱 불쾌하군요. 정부 자료를 보면 이 사업을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중인 자전거 길 만들기 사업과 연계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을 ‘녹색 뉴딜’로 포장한 것부터가 가당찮은 이야기이지만, 전혀 별개의 사업처럼 보이는 사업조차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숙원사업 추진을 위한 포석으로 삼다니요. 어떤 명목을 만들어서라도 자신들의 하려는 일은 기필코 해내고 마는 이들의 똥고집에는 질릴 뿐입니다. 현 정권이 이처럼 기를 쓰고 건설업체들을 먹여살리려고 애쓰는 한편에서는 단돈 몇 만원의 지원이 아쉬운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즐비합니다. 그런데도 경제성과 시급성이 거의 없는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예산 탕진은 매년 누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늘려도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핑계로 불요불급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또 다시 일으키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기부양을 하더라도 과거에 꼴아박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경기부양을 할 수는 없을까요? 미국 오바마 차기 행정부의 계획처럼 제대로 된 신재생 에너지 투자, 매우 지체돼 있는 노후 교량 및 도로의 유지 보수 투자, 의료시스템의 전산화, 광역인터넷망 확충, 21세기형 도서관, 실험실, 교실 증개축 같은 사업들은 미국 사회의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투자입니다. 이 같은 방안은 현재 미국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기를 부양할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경기부양책으로서 당장의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겠지만, 그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시대착오적 토건형 개발사업에 투자하려는 것일까요? 그것도 마치 미래지향적인 투자인 것처럼 국민들을 우롱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런 이면에 우리 아이들의 도서관, 실험실, 교실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이고, 소외된 이웃들은 단돈 몇 만원이 없어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홑이불로 추운 겨울을 지새고 있다는 점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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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1. 8. 11:25

정부의 올해 예산안을 보면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지난해보다 26% 증액편성된 24.7조원 규모의 SOC사업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처럼 대규모로 추진되는 많은 건설토목사업들이 정말 거액의 예산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들일까?

결론은 잠시 유보해두고 필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국제종합전시장(킨텍스, KINTEX) 건립 사업을 한 번 살펴보자. 2005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 들어선 킨텍스 건립에는 총사업비 2,315억원이 투입됐다. 고양시에 따르면 킨텍스에서는 올해 1~9월 동안 모두 328건의 전시회와 컨벤션 행사가 열려 평균 가동율 약 5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전시회 시설 설치 및 해체 기간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실제 가동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또한 대부분의 전시는 세미나나 심포지엄, 워크샵, 대학이나 기업의 내부행사 등 굳이 컨벤션센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전시였다. 이렇게 공간을 놀리다 보니 킨텍스는 몇 년째 여름에는 간이물놀이 수영장, 겨울에는 인공눈썰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킨텍스 제1전시장조차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양시는 국비와 도비의 지원을 받아 모두 3591억원(2009년 고양시 전체 예산(1조1483억여원)의 31%에 해당하는 규모다)이 드는 같은 면적의 제2전시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세계 수준의 국제컨벤션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만㎡ 이상의 전시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더구나 제2전시장 건립사업은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만 참여한 가운데 업체들간 담합이 기정사실화된 턴키(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돼 총사업비의 30% 정도를 불필요하게 건설업체에 안겨주었다.

이 같은 건설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들인다 하더라도 투입비용을 상회하는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제1전시관 가동 현황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자유선진당 권선택의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킨텍스 제2전시장 건립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편익 비율이 0.92로, 예상 경제적 효과가 투입한 비용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을 정도다.

사실 이 같은 대형 컨벤션시설 조성이나 확충 움직임은 고양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천시는 2017년까지 영종도 인천공항 인근에 전시시설만 20만㎡가 넘는 ‘영종전시복합단지’를 건립할 계획이고, 서울시도 잠실종합운동장~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코엑스 등을 잇는 컨벤션 벨트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수도권의 3개 광역시도가 모두 대규모 컨벤션센터 짓기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아무리 컨벤션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에서만 이 같은 대규모 컨벤션 시설을 모두 채울 수요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킨텍스와 대각선 방향으로 불과 수백m 떨어진 고양시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다. 이 운동장에는 약 1,2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고, 연간 운영예산은 22억 여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경기장은 실업 축구팀인 고양국민은행의 홈 경기가 연간 10여 차례 열리지만 관중은 거의 없고, 국제경기 대회 등의 일부 예선전이 연간 두세 차례 열릴 뿐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잔디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평소에 시민들이 축구경기장 안에 들어가 축구 등 스포츠 경기를 즐길 수도 없다. 1,200억 원의 예산을 탕진했지만 사실상 고양시민들에게 주는 효용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같은 예산 낭비는 대부분 지자체에 공통되는 현상으로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돈 쓸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회복지 비용 등 한국의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총액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고, 한국의 교육비 지출은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대상국 127개국 가운데 71위에 머물고 있다. 반면 건설업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토건형 국가다.

한국의 사회복지 및 교육, 문화 인프라는 경제력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현 정권은 ‘747공약’을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단돈 몇 만원의 지원이 아쉬운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정작 서민들을 지원하는 복지 인프라와 지식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교육 및 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에는 스크루지영감처럼 인색하다. 그러면서도 ‘서민을 위한 경기부양책’이라며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이 가는 경기 부양인지 의심스럽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9. 1. 5. 10:58

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MBC파업 사태에 대한 소감을 올렸습니다. 최근 MBC  등 언론파업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MBC노조와 YTN노조 등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언론노조 관계자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린달님입니다.

이번 파업에 대한 저의 생각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YTN 기자로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냥 일반 국민으로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번 싸움을 '밥그릇 챙기기'라고 보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 지적 맞습니다. 솔직히 '밥그릇 챙기기' 맞습니다.

공중파가 민영화 되면, MBC 를 비롯한 방송사에서는 일단 엄청난

구조조정이 일어날겁니다. 당연히 많은 인력이 물갈이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밥그릇 싸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MBC나 다른 공중파 입장에서만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닙니다. 조중동 신문 역시 '밥그릇 챙기기' 차원에서,
생존경쟁 차원에서 이 싸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닙니다만은, 신문은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 포털과 블로그 등등 신 매체에 밀려서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중동 가운데 한 신문사는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부도설이 나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신문사 어차피 점차 구독률

떨어져가는 신문 팔아봐야 남는 것 없다고 합니다. 광고수익이 대부분입니다.

안정된 수익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 방송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그것도

기본적으로 광고 단가가 높게 책정되어 있는 지상파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신문으로서는 미래를 보장받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조중동 역시
언론법 통과를 목숨 걸고 바라고 있는 겁니다. MBC 파업을 '밥그릇 싸움'
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속내는 똑같습니다. 남을 비난할
자격이 못됩니다.
 
  '밥그릇 지키기'대 '밥그릇 빼앗기' 싸움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래, 서로 똑같이 '자사 이기주의'에서 출발한다는 데에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칩시다.

 

   문제는 이번에 한나라당에 통과시키려 하는 법안의 내용은
'신문과 방송 겸영'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지분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신문사들 돈 별로 없습니다. 당근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지상파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주로

정부 소유의 지분이 대부분인 지상파 방송의 주인이 신문+대기업 자본으로

바뀌거나 아니면 이 신문+대기업 자본은 아예 보도를 포함한 종합 편성채널을

지상파에 새로 만들 것입니다. 언론법 개정안이 단순히 신방 겸영만 허용하는

내용으로만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재벌의 자본이 없으면 현실화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솔직히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가장 힘든 때 중 하나가 기업 비판하는
보도를 할 때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정부 권력보다 더 무섭습니다.
기업은 아예 광고 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방송 나가기도 전에 윗선을 통해서 얘기가 내려옵니다. '이거 나가면 광고
억대가 빠진다는데 기사 빼주거나 수위좀 낮춰주면 안돼겠니' 하고. 
일선 기자는 데스크며 간부하고도 싸우다가 결국은 기업 로고 빼고 이름
빼고 뭐 이런 식으로 김빠지는 기사를 내보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광고만 가지고도 이정도인데, 기업이 오너가 되면 기업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는게 구조적으로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닌데
벌써 반대하고 나서냐고 하시는 분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길에 나선 아나운서들 말대로 '불량제로' '소비자 고발' 이런 프로그램 당근
못 보게 될 겁니다.


  공중파 방송사 직원들이 돈 많이 받는다고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돈 많은 대기업이 인수하면 지금보다 방송사
직원들 돈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 일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아무나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간부급은 잘릴 지 몰라도
일반 사원은 많이 살아남을 겁니다. 저희 YTN처럼, 주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공중파도 아니어서 수신료도 없고 광고 단가도 낮아서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 받는 회사는, 심지어 외환위기때
월급 6개월동안 안나왔던 회사는 돈만 생각한다면
대기업이 와서 민영화 해주기를 바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희도 민영화 결사 반대합니다.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방송은
사내방송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광고지 보도입니까 ?
비판의 기능을 잃은 언론사는 언론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직업정신을 가진

언론 종사자라면, 반대하는 게 정상입니다.

 

  'OECD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가 왜 있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언론법 개정을 원하는 쪽은 '우리나라만 재벌 소유와 신방겸영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하더라도 독과점이 불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놈의 선진국 그렇게 따라하고
싶으면 제대로 따라해야죠. 껍데기만 제목만 따라하지 말고.
    
  방송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조중동이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국가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면,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다면 진정 그런 민주주의 사회라면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중도도 있는게 정상 아닙니까?
방송이 모두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 게 정상인가요? 모든 지상파가 한 목소리
내는게 정상입니까? 그건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전체주의는 북한처럼
좌파에도 있지만 (사실 실상을 보면 공산주의 이념과는 완전 거리가 멀지만)
과거 나치처럼 우파 전체주의도 있습니다.


 만약 그동안 방송의 내용이 이른바 '좌빨'이었다고 생각하고 이게 불만이신 분이

있다면,(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용이 편향됐다고 비판하십시오.
얼마든지 비판하고 그래도 맘에 안들면 TV를 꺼 버리십시오. 시청률 낮춰서

광고 못 받게 하십시오.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고, 방만한 경영이 마음에 안 든다 생각되면
감사하라고, 철저히 받으라고 주문하십시오.

 

그러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보수 성향을 가진 신문사에 주려는 이번 법안은 일방적으로 한 편을 들어주는
게 됩니다. 이게 바로 '특혜'라는 겁니다. 보수 정권이 보수지에 주는
'특혜'. 적어도 지금의 지상파 방송 소유구조는 좌파던 우파던 자본이던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소유구조는 아닙니다. 공기업, 정부지분으로
쪼개고 민간 자본 비중을 낮게 잡아 어느 누구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에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지상파를 인수하겠다고 덤비는 일이 일어난다면
(물론 매우 가능성이 낮은 경우이지만) 그때도 역시 반대하고 나설 겁니다.


  노무현 정권때는 왜 고분고분하다가 왜 지금은 파업하고 난리냐고요?
이른바 '좌파정권'이라고 불리는 전 정권이 '선진화 방안'인지 들고 나와서
기자실 못질하고 전기 끊을 때도 저희 깜깜한 데서 플래시 켜고 기사 쓰면서

개겼습니다.  전 정권도 KBS에 참여정부 언론특보 출신 서동구씨를 사장으로

앉히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전 정권은 아예 법까지 바꿔서 언론사의 소유 구조를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바꿔보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하는 '순진한' 정권이었던 것 같네요. 언론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정권이건 성격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여기에 장단맞추지 말고 현혹되지 말고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 하는 게

언론입니다.

 

  어떤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언론법은 이념대립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정권에만 반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론을 독과점하는 구조를 만들어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냐, 전체주의냐의 문제입니다.

 

  언론이 굴종해야 할 대상은 자본도 아니고 정권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고
국민의 공익입니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있습니다. 이번 언론법 개정안은 언론이기를 포기하라는 법입니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언론이 약자의 편을 들지 않고 강자의 편만 든다고
쓴소리를 듣는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비판해 주십시오. 그러나 강자의 편을
아주 대놓고 들도록 구조적으로 허용해주는 이런 법안이 통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네한테 불리하면 무조건 좌파라고 이름붙이면서 밀어붙이는 논리에 현혹되면
어느 날 여러분은 입만 열면 보수의 논리만 말하고 썼다 하면 기업 논리만 그대로

읊어대는 앵무새 보도를 보게 될겁니다. 여러분의 눈과 귀가 가려질 것입니다.

by 선대인 2008. 12. 29. 09:46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4대강 하천정비 예산으로 14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폴 크루그먼에게서 배우는 MB정부에 속지 않는 법(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083162)’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라는 책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소개했습니다. 이른바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의 정책에 속지 않고 대응하는 준칙이었던 셈인데요.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는데, 그 5가지 가운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준칙 1과 준칙 5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특히 준칙 5와 관련한 예로서, 폴 크루그먼은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말은 확실히 대운하 추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잠정 보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맞았습니다. 그것은 일보 후퇴 작업이었을 뿐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대운하는 결국 부활했습니다. 일부에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준칙 1과 준칙 5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현 정부는 그렇게 순수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구나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핵심 측근이기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과 올해 5월에 나눈 아래 대화를 상기해보십시오.

 

한나라당 안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수정해 추진하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19일,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하천)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강의) 연결 부분은 (나중에) 계속 논의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는 당초부터 명칭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마치 맨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낙동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나중에 연결부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정 의원의 주장은 운하의 운송 기능을 뒤로 미루고 치수와 하천정비 사업을 앞세우자는 것으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확인된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의 대운하 추진계획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방안도 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5월19일자 보도)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이미 5월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후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말바꿔치기 해서 계속 추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국민들의 어떤 가열찬 국민들의 반대에도 온갖 명분과 포장을 동원해서라도 결국 달성하고 마는 집요함에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사실은 대운하뿐만 아닙니다. 공기업 민영화든, 영어몰입교육이든, 방송장악 시도이든 모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프레임 바꿔치기’입니다. ‘프레임(frame)'은 <프레임전쟁>을 쓴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입니다. 똑같은 현상 또는 사실에 대해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이명박을 불세출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소위 명빠들이 있는 반면, ‘건설족의 수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감세 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보느냐, ‘강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특혜’로 보느냐, 어떠한 프레임이 우세한 프레임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여부는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으며 반환경 사업으로는 비판에 부닥치자, 지금의 집권 세력은 대운하는 쏙 뺀 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기에 이재오 류의 사람들은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매우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합니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 현 정부는 그들이 당초 계획했던 사업들을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바뀌었고, 영어몰입교육은 공정택의 서울교육청을 통해 ‘영어 선도 사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방송장악 의도는 ‘방송의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포장됐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프레임 바꿔치기의 명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포장만 바뀌었을뿐 그들이 추진하는 알맹이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빈약한 복지 인프라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14조원이라는 돈을 건설족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 일가친척과 땅부자들이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지도,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올리는 일도 아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핑계는 서민들을 위한 경기부양이랍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이라면서 소수 상류층을 위한 각각 수십조원의 부자 감세와 지방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과 건설업체 배불리기 사업으로 점철된 건설토목 사업 예산 편성에만 목숨을 걸까요? 정말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왜 서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요? 왜 항성 서민들은 항상 상류층에 지원한 돈에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국물을 얻어마시며 감지덕지해야 하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부자의 돈을 걷어 빈민을 돕는 로빈 훗 정책(소득재분배 정책이라는 게 원래 이런 취지입니다)이 아니라 서민의 돈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갈취해 부자를 돕는 ‘거꾸로 로빈 훗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꿔치기라는 얄팍한 수를 써서 민의에 따른 정책 의사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응당 추구해야 할 공익은 포기하고, 자신들과 자신들 지지세력의 사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골수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폴 크루그먼이 정의한 ‘우파 혁명세력’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속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고 야비하며 저질스러운 세력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바꿔가며 국민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로서의 국민들은 그렇게 순진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63.2%의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지금은 현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 방식 때문에 큰 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안 가서 이들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호되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인 정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는 난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배가 난파한 뒤 그 배를 대신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건전한 공동체 정신과 공정한 게임 규칙을 토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그 같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7. 08:55

각종 건설부양책과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떡칠된 내년도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강행 통과를 마치 국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치적이라도 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조기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12월 15일 수출 40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업계 대표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 관건으로, 그 집행의 결과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직자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가운데 60%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을 빨리 풀어 극심한 내수 침체를 해소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 내용만 보면 내년 상반기에 시중에 정부 재정이 상당히 풀릴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같은 정부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쑈쑈쑈’에 불과하다.

 

물론 서민들 생계 지원 형태의 예산은 빨리 풀 수 있다면 빨리 풀수록 좋다. 하지만 장애인과 독거노인, 빈곤층 등 대부분의 복지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될 뿐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나 동사무소까지 빨리 내려보내는 것일 뿐 실제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장에 돈이 빨리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정부 예산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현실을 살펴보면 기가 차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2008~2009년에 걸쳐 2000억원짜리 공사를 한 대형 건설업체가 수주했다고 치자. 이 공사를 수주한 대형 건설업체는 정부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연차별로 공사할 금액의 절반을 선급금으로 받는다. 이렇게 받은 선급금 가운데 60~70% 가량은 아예 처음부터 선급금으로 지급할 대상이 아니다. 일단 자재비는 거래관행상 미리 안 준다. 정부에서 미리 준다고 자신들도 자재대금을 미리 주는 원도급업체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직원급료도 미리 안 준다. 대기업이 정부에서 돈을 미리 받았다고 직원들 월급을 미리 당겨주겠는가?

 

결국 건설 대기업이 정부에서 받은 돈을 조기집행할 수 있는 돈은 기껏 하도급 업체들에게 주는 공사대금 뿐이다. 이는 정부 예산 집행액에서 겨우 30~4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액수의 보통 3분의 1 밖에 집행을 안 한다.

 

철도공사를 하청하는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업체는 원도급업체가 정부로부터 공사대금 선급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원도급업체는 정부에서 공사대금을 받은 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15일 이내에 자기가 정부에서 받은 같은 비율만큼 하청업체에 줘야 한다. 하지만 원도급업체는 2008년 공사물량이 원래 100억원이라면 50억원어치 공사만 하는 것처럼 축소하고, 선급금 적용 비율도 최대한 줄였다. 이런 방법으로 이 업체는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예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에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만 하도급업체에 전달됐으니 결국 이 업체에는 정부예산 집행액의 9~12%만 전달됐다. 이런 양상이 이 업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인 양상이다.

 

이런 식이면 정작 돈이 필요한 하도급업체에는 돈이 내려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중소건설업체들과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몇 년간 부동산붐으로 배룰 잔뜩 불렸다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재벌건설업체들의 호주머니로만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해서야 무슨 경기부양 효과가 있겠는가? 정부가 예산을 조기 집행했으면 제대로 줬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각 해당 부처는 대기업에만 돈을 줬으면 예산을 집행했다고 기획재정부(과거에는 기획예산처)에 통보하고, 기획예산처는 이를 ‘실적’으로 잡아 예산 집행 계획을 달성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혈세를 들여 정책을 실시했다면 실제로 현장에까지 내려가는지, 그래서 정책적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매련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실태를 조사해 평가한 적이 없다. 무조건 대형건설업체에 돈만 갖다 안긴다고 정책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정부관료들은 앞뒤 재지 않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기 예산 집행’을 입버릇처럼 외고 있다.

 

이런 조기 예산 집행은 결국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대형 건설업체에게 현금 다발만 안기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각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극심한 신용경색 때문에 돈 구경하기 어려운데 왜 대형건설업체들은 직접 시공하지도 않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억~수천억 원의 현금을 미리 받아챙기는 엉터리 같은 일이 매년 벌어지는 것인가? 과연 공공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정부가 돈을 막 퍼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치고 어디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정부는 거기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반기에 60%를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40%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조기 집행을 하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경제 성장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처럼 주장한다. 상반기에 50% 쓰일 것이 60%가 쓰이면 정부가 주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효과가 생기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40%를 집행하게 되는 하반기에는 어떻게 되는가? 원래 쓰여야 할 예산보다 덜 집행되니 그만큼 경기는 더 가라앉을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지능 수준을 원숭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광고라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심화돼 하반기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가서 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쓸데 없는 건설토목사업으로 가득한 추경예산을 다시 편성해 여당 단독으로 밀어붙일 작정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 년간 건설업체들은 신문 광고와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겨가며 터무니없는 고분양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 그같은 부동산 거품에 취해 과욕과 무리한 경영판단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분양 물량으로 지금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일 때 폭리를 취한 것을 모두 자신들이 차지했듯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생겨나는 모든 손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의 세금까지 포함된 막대한 건설토목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모자라 예산 조기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퍼붓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집행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감춰진 속내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재벌건설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쇼’일 뿐이다. 말 끝마다 서민을 외치지만, 그들에게 서민은 뒷전이다. 건설족의 수괴인 MB를 비롯한 현 정권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일 뿐이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6. 10:33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피해가 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주택 선분양제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주택업체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분양자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업체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에 보증사고가 난 세대 수만 7,000 가구에 사고금액은 1조5,877억 원에 이른다. 올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세대수의 80%와 사고금액의 68%에 이를 정도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되므로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할 때는 분양만 받으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에 나섰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자들이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만일 극심한 청약열풍이 불었던 판교신도시 주택을 지금쯤 후분양제로 공급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업체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분양자들만 자산가치 급락과 엄청난 부채 부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 아파트나 기존 주택을 팔아 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래가 마비되면 기존 주택이든 신규 분양 아파트든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함께 빚어지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지연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호황기에 무리한 주택사업이 일어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업체들은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근시안적 시각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올해 9월 기준 미분양 15만7241가구 가운데 4만 436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분양제였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미분양 물량이 11만7000여 가구에 이른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8.21 부동산 대책’에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11월초 ‘건설사들이 조기 분양에 나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재건축 후분양제를 폐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적 처방과 건설업계 특혜 주기에 골몰하는 정부가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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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8. 12. 15.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