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건설부양책과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떡칠된 내년도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강행 통과를 마치 국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치적이라도 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조기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12월 15일 수출 40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업계 대표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 관건으로, 그 집행의 결과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직자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가운데 60%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을 빨리 풀어 극심한 내수 침체를 해소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 내용만 보면 내년 상반기에 시중에 정부 재정이 상당히 풀릴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같은 정부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쑈쑈쑈’에 불과하다.

 

물론 서민들 생계 지원 형태의 예산은 빨리 풀 수 있다면 빨리 풀수록 좋다. 하지만 장애인과 독거노인, 빈곤층 등 대부분의 복지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될 뿐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나 동사무소까지 빨리 내려보내는 것일 뿐 실제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장에 돈이 빨리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정부 예산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현실을 살펴보면 기가 차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2008~2009년에 걸쳐 2000억원짜리 공사를 한 대형 건설업체가 수주했다고 치자. 이 공사를 수주한 대형 건설업체는 정부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연차별로 공사할 금액의 절반을 선급금으로 받는다. 이렇게 받은 선급금 가운데 60~70% 가량은 아예 처음부터 선급금으로 지급할 대상이 아니다. 일단 자재비는 거래관행상 미리 안 준다. 정부에서 미리 준다고 자신들도 자재대금을 미리 주는 원도급업체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직원급료도 미리 안 준다. 대기업이 정부에서 돈을 미리 받았다고 직원들 월급을 미리 당겨주겠는가?

 

결국 건설 대기업이 정부에서 받은 돈을 조기집행할 수 있는 돈은 기껏 하도급 업체들에게 주는 공사대금 뿐이다. 이는 정부 예산 집행액에서 겨우 30~4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액수의 보통 3분의 1 밖에 집행을 안 한다.

 

철도공사를 하청하는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업체는 원도급업체가 정부로부터 공사대금 선급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원도급업체는 정부에서 공사대금을 받은 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15일 이내에 자기가 정부에서 받은 같은 비율만큼 하청업체에 줘야 한다. 하지만 원도급업체는 2008년 공사물량이 원래 100억원이라면 50억원어치 공사만 하는 것처럼 축소하고, 선급금 적용 비율도 최대한 줄였다. 이런 방법으로 이 업체는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예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에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만 하도급업체에 전달됐으니 결국 이 업체에는 정부예산 집행액의 9~12%만 전달됐다. 이런 양상이 이 업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인 양상이다.

 

이런 식이면 정작 돈이 필요한 하도급업체에는 돈이 내려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중소건설업체들과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몇 년간 부동산붐으로 배룰 잔뜩 불렸다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재벌건설업체들의 호주머니로만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해서야 무슨 경기부양 효과가 있겠는가? 정부가 예산을 조기 집행했으면 제대로 줬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각 해당 부처는 대기업에만 돈을 줬으면 예산을 집행했다고 기획재정부(과거에는 기획예산처)에 통보하고, 기획예산처는 이를 ‘실적’으로 잡아 예산 집행 계획을 달성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혈세를 들여 정책을 실시했다면 실제로 현장에까지 내려가는지, 그래서 정책적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매련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실태를 조사해 평가한 적이 없다. 무조건 대형건설업체에 돈만 갖다 안긴다고 정책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정부관료들은 앞뒤 재지 않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기 예산 집행’을 입버릇처럼 외고 있다.

 

이런 조기 예산 집행은 결국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대형 건설업체에게 현금 다발만 안기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각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극심한 신용경색 때문에 돈 구경하기 어려운데 왜 대형건설업체들은 직접 시공하지도 않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억~수천억 원의 현금을 미리 받아챙기는 엉터리 같은 일이 매년 벌어지는 것인가? 과연 공공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정부가 돈을 막 퍼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치고 어디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정부는 거기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반기에 60%를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40%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조기 집행을 하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경제 성장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처럼 주장한다. 상반기에 50% 쓰일 것이 60%가 쓰이면 정부가 주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효과가 생기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40%를 집행하게 되는 하반기에는 어떻게 되는가? 원래 쓰여야 할 예산보다 덜 집행되니 그만큼 경기는 더 가라앉을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지능 수준을 원숭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광고라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심화돼 하반기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가서 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쓸데 없는 건설토목사업으로 가득한 추경예산을 다시 편성해 여당 단독으로 밀어붙일 작정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 년간 건설업체들은 신문 광고와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겨가며 터무니없는 고분양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 그같은 부동산 거품에 취해 과욕과 무리한 경영판단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분양 물량으로 지금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일 때 폭리를 취한 것을 모두 자신들이 차지했듯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생겨나는 모든 손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의 세금까지 포함된 막대한 건설토목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모자라 예산 조기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퍼붓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집행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감춰진 속내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재벌건설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쇼’일 뿐이다. 말 끝마다 서민을 외치지만, 그들에게 서민은 뒷전이다. 건설족의 수괴인 MB를 비롯한 현 정권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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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8. 12. 16.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