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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많은 언론이 ‘위기는 기회다’라면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한 기대감에 편승해 상당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집값이 반등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미국발 세계경제의 침체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많은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이 이번 세계 경기침체가 3~5년 정도의 중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의 3각축이 동시에 경기 침체로 빠져든 것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그러기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전례 없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한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사뭇 톤이 다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매우 걱정하는 현 경제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만 그토록 낙관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은 금방 호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강부자 정권’의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현 정부는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부동산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을 쏟아냈다. 이도 모자라 10·21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방안'과 11·0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내놓았다. 26조원에 이르는 올해 토건SOC사업 예산을 배정하고 ‘녹색 뉴딜’이라는 명목 아래 4년간 50조원의 대부분을 각종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쏟아붓기로 한 것도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구조를 볼 때 현정부의 이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거품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융권에서 대출제한을 넘어 본격적인 대출회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거품붕괴의 시장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기인 1992~94년 동안 무려 72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천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부양 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거품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1992~94년 3년 동안 사실상 제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은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키울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공급과잉 신호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억지로 주택공급을 늘리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네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대를 조금 상회하는데, 이는 5~7%대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낮은 수치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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