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4대강 하천정비 예산으로 14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폴 크루그먼에게서 배우는 MB정부에 속지 않는 법(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특히 준칙 5와 관련한 예로서, 폴 크루그먼은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말은 확실히 대운하 추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잠정 보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맞았습니다. 그것은 일보 후퇴 작업이었을 뿐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대운하는 결국 부활했습니다. 일부에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준칙 1과 준칙 5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현 정부는 그렇게 순수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구나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핵심 측근이기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과 올해 5월에 나눈 아래 대화를 상기해보십시오.
한나라당 안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수정해 추진하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19일,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하천)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강의) 연결 부분은 (나중에) 계속 논의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는 당초부터 명칭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마치 맨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낙동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나중에 연결부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정 의원의 주장은 운하의 운송 기능을 뒤로 미루고 치수와 하천정비 사업을 앞세우자는 것으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확인된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의 대운하 추진계획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방안도 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5월19일자 보도)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이미 5월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후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말바꿔치기 해서 계속 추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국민들의 어떤 가열찬 국민들의 반대에도 온갖 명분과 포장을 동원해서라도 결국 달성하고 마는 집요함에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사실은 대운하뿐만 아닙니다. 공기업 민영화든, 영어몰입교육이든, 방송장악 시도이든 모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프레임 바꿔치기’입니다. ‘프레임(frame)'은 <프레임전쟁>을 쓴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입니다. 똑같은 현상 또는 사실에 대해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이명박을 불세출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소위 명빠들이 있는 반면, ‘건설족의 수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감세 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보느냐, ‘강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특혜’로 보느냐, 어떠한 프레임이 우세한 프레임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여부는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으며 반환경 사업으로는 비판에 부닥치자, 지금의 집권 세력은 대운하는 쏙 뺀 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기에 이재오 류의 사람들은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매우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합니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 현 정부는 그들이 당초 계획했던 사업들을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바뀌었고, 영어몰입교육은 공정택의 서울교육청을 통해 ‘영어 선도 사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방송장악 의도는 ‘방송의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포장됐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프레임 바꿔치기의 명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포장만 바뀌었을뿐 그들이 추진하는 알맹이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빈약한 복지 인프라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14조원이라는 돈을 건설족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 일가친척과 땅부자들이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지도,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올리는 일도 아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핑계는 서민들을 위한 경기부양이랍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이라면서 소수 상류층을 위한 각각 수십조원의 부자 감세와 지방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과 건설업체 배불리기 사업으로 점철된 건설토목 사업 예산 편성에만 목숨을 걸까요? 정말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왜 서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요? 왜 항성 서민들은 항상 상류층에 지원한 돈에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국물을 얻어마시며 감지덕지해야 하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부자의 돈을 걷어 빈민을 돕는 로빈 훗 정책(소득재분배 정책이라는 게 원래 이런 취지입니다)이 아니라 서민의 돈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갈취해 부자를 돕는 ‘거꾸로 로빈 훗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꿔치기라는 얄팍한 수를 써서 민의에 따른 정책 의사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응당 추구해야 할 공익은 포기하고, 자신들과 자신들 지지세력의 사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골수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폴 크루그먼이 정의한 ‘우파 혁명세력’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속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고 야비하며 저질스러운 세력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바꿔가며 국민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로서의 국민들은 그렇게 순진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63.2%의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지금은 현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 방식 때문에 큰 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안 가서 이들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호되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인 정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는 난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배가 난파한 뒤 그 배를 대신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건전한 공동체 정신과 공정한 게임 규칙을 토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그 같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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