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버블 붕괴의 여파가 주택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개발사업으로퍼져나가고 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두 120조원에 이르는 PF사업의 상당수가 좌초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사업규모가 큰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사실상 좌초됐고, 판교 알파트돔시티, 인천도화지구 프로젝트, 고양시 한류월드 2구역 사업 등 굵직굵직한 대규모 PF사업이 모두 좌초위기로 치닫고 있다. 특히 사업규모 31조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도심개발 사업인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의 좌초는 용산지역 부동산 가격 급락을 부르고, 코레일과 SH공사 등의 사업성 악화 등 큰 파장을 낳고 있는데 이 또한 부동산시장 침체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좌초했는지 한 번 짚어보자.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에는 코레일과 SH공사를 비롯해 프루덴셜, KB자산운용, 삼성생명, 삼성화재, 우리은행 등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고, 전략적 투자자로는 롯데관광개발㈜, 삼성SDS, KT&G, 미래애셋, CJ 등이 참여했다. 개발 시공을 맡게 되는 건설투자자들은 삼성물산, GS건설, 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SK건설, 한양 등 국내 시공능력평가 10위 안에 드는 6개 업체를 포함해 17개사가 참여했다. 국내 최대의 민간 PF사업에 걸맞게 국내 최대 기업들이 다수 참여해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이다. 그런 사업이 지금 좌초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자 선정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왜 이 사업이 지금 좌초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당시 컨소시엄을 주도한 삼성물산은 세계 최고층 건물인 버즈 두바이(현재 버즈 칼리파) 시공 과정을 담은 광고를 연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2007 8월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두바이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전이었고, 이명박 대통령과 세훈 서울시장 등이 두바이를 방문하는 등 두바이 모델에 대한 환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분위기를 이용한 수주 전략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시연 자료를 보면 두바이의 초고층 건물들을 모델로 해 마치 최첨단 미래형 초고층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추진 당시부터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치솟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사업이었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용산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에 해당하는 용산역세권개발㈜는 개발사업 부지 3.3㎡당 7,400만원씩 모두 8조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사업계약을 맺었다. 국내의 공공용지 사업부지 매각 사상 가장 고가였다.

 

이 같은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척되려면 투자비를 넘어서는 수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을 실현하는 방법은 결국 용산개발사업 결과 들어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공간들이 모두 매우 높은 가격에 분양되거나 임대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애초부터 없이 장밋빛 환상에 기초하고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용산국제업무개발지구의 사업부지는 모두 566,800㎡로 여기에 랜드마크타워와 업무시설, 상업시설, 주상복합시설, 문화, 숙박시설 등이 들어설 계획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총 100~106층 규모로 추진중인 랜드마크타워 한 곳에만 228,862㎡의 업무시설과 69,412㎡의 호텔숙박시설, 그리고 22877㎡의 판매시설이 들어서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랜드마크타워 한 곳의 규모만 해도 이 정도인데, 다른 업무시설과 상업시설, 주상복합시설 등의 공급 규모를 합치면 훨씬 더 막대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용산국제업무개발지구에 더해 많은 초고층 건물들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었다. 서울시내에서 추진되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사업만 해도 상암DMC단지에서 추진되는 서울라이트사업과 제2롯데월드를 비롯해 7곳에 이를 정도다. 물론 이들 사업이 모두 실현될 지는 미지수라고 하더라도 전례 없는 초고층 빌딩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돼 공급과잉 우려가 매우 높았다. 뿐만 아니라 100층 이상 초고층은 아니지만 대규모 초대형 오피스빌딩 공급계획이 서울 내에서만 무려 수십 군데에 이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1013년까지 공급되기로 계획된 연면적 33000㎡이상인 A급 빌딩이 43개에 이른다. 연면적 66000㎡이상 프라임급 빌딩도 23개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 현재도 부동산 버블기에 계획된 오피스 빌딩의 공급과잉으로 이미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오피스 빌딩의 공급 면적이 2007 166.9만㎡, 2008 101.1만㎡ 였는데, 이는 2000~2006년 연간 평균 공급물량인 약 50만㎡의 두 배를 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최근 강남권을 필두로 도심권과 여의도권의 공실률이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계획되고 있는 상당수의 오피스 공급 계획들이 다소 지연되거나 중단되더라도 이미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로 이어져 향후 오피스 임대료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오피스 건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대료도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2016년 이후 들어선다고 할 경우 계획된 공간을 모두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모두 채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비를 회수할 정도로 고가 분양에 성공하거나 높은 임대 수익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PF사업은 투자자들이 특정 사업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완료한 다음 발생하는 수익으로 투자자들에게 사업이익을 배분해주는 구조이다. 따라서 용산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용산역세권개발㈜로서는 더 많은 사무용 공간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을 현행 608%에서 800%까지 완화해달라는 등 당근을 더 달라고 코레일과 정부 및 서울시 당국에 졸랐다.

 

하지만 기존 용적률도 지나친 특혜라고 할 수 있는데, 800%까지 완화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이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추가 시공비용과 공급과잉 압력을 고려할 때 수익성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용산역세권개발㈜로서는 거액의 위약금과 기존 투자금을 물더라도 현 상태에서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부동산 버블기의 정점에서 부동산 가격이 언제까지나 오를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이 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버블 붕괴는 주택시장 붕괴와 오피스시장 버블 붕괴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주택시장과 오피스시장이 함께 무너지고 있으며, 각종 대규모 PF사업들도 좌초위기로 치닫고 있다. 또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여파가 지자체와 LH공사 등 개발공기업 등의 재정위기로 파급되고 있다. 이미 2008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있었으나 현 정부가 저금리와 세금, 각종 토건사업 남발 등 수백 조원 가량의 직간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다시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그런 부양책들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만 소진했을 뿐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민간과 공공 부문 모두가 부동산 거품이 영원할 것 같은 불패신화 속에서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고 대규모 부동산개발사업 등을 남발해왔다. 그렇게 하면 마치 한국경제가 금방이라도 선진경제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부동산 거품이 불러온 거대한 신기루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그 환상이 깨지고 있다. 환상에서 깨어날 때 고통과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연구소가 줄기차게 지적하고 경고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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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41

이 글은 2008년초 김광수소장님이 <경제시평> 특집에서 3회 연재로 발표된 학교교육 정상화에 관한 小考시리즈의 세 번째 글의 내용입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사립학교 문제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교육기본법에서 사립학교에 대한 조항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주요 법령들은 7,80% 이상이 일본의 법령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말이 참고해서 만든 것이지 사실상 순서만 바꾸어 거의 베꼈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한국의 근대화가 대부분 일제 강점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또 베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 하는 차원에서 참고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기본법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의 교육기본법도 이웃 일본의 교육기본법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베꼈으되 한국적 기득권 상황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례로, 사립학교에 관한 한일 양국의 교육기본법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25조 사립학교의 육성에 관한 내용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립학교를 지원·육성하여야 하며,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교육기본법 제8조의 사립학교에 관한 내용을 보면, 사립학교가 지니는 공적 성격 및 학교교육에 있어서의 중요한 역할을 감안하여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그 자주성을 존중하면서 조성 또는 기타 적당한 방법으로 사립학교교육의 진흥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일본의 교육기본법에서는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학교교육에 있어서 공적 성격과 역할을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서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진흥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사립학교의 공적 성격과 역할에 관한 부분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단지 사립학교를 지원,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국가의 의무로 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립학교가 국가 의무교육을 전제로 한 학교교육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물론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9조에서는 학교는 공공성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잘 읽어보면 학교시설물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인지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하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상기에서, 일본과 한국의 교육기본법 모두 국가와 지자체가 사립학교 학교교육의 진흥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 있어서 사립학교의 현실적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양국의 교육기본법의 사립학교 진흥에 관한 조항의 취지와 해석도 전혀 달라지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일본의 사립학교는 사학의 자주성을 존중하여 일본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사실상의 자유방임주의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정부지원도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9년에 제정된 일본 사립학교법 제1조에서는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공공성을 높임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사립학교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경영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일본정부는 1975년에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을 제정하여 이과교육, 산업교육, 학교도서관, 의무교육 교과서 등 국가가 지정하는 분야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실시함과 동시에 사학에 대한 감독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지원의 근거는 일본헌법 제89조에 근거합니다. 일본 헌법 제89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금 및 공적 재산은 종교조직이나 단체의 사용·편익·유지를 위해, 혹은 공적 지배에 속하지 않는 자선사업, 교육사업, 박애사업에 지출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립학교에 대한 일본정부의 감독이 공적 지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은 위헌이 됩니다. 이로부터 1975년의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은 사립학교의 공립학교화의 출발점이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2006년 5월 현재 일본은 대학생의 75%, 전문대학의 95%, 고등학생의 30%, 유치원의 80%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2004년 4월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학교법인에 대한 관리운영제도의 개선, 재무정보의 공개, 사립학교심의회 구성의 개선을 단행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정부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게 된 배경에는 저출산으로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파산 등 경영위기에 처한 사학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 급증한 사립학교들의 학교시설 등이 30년 이상 되어 노후화되고 교육여건도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일본 사립학교 전반이 처한 상황은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립대학은 40.4%가 정원미달이며, 전문대학은 51.7%가 정원미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립고등학교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 지역은 대학입시 교육에 치중하는 일부 사립고를 중심으로 학비가 비싸고 경쟁이 치열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학비가 매우 싼 공립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립고에 못 가는 학생들이 사립고에 가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사학법개정을 통해 문부과학성에 학교법인경영지도실을 설치하여 경상비 보조와 학교시설 개선 등의 지원을 통해 사립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신, 학교법인경영조사위원 제도를 활용하여 사립학교 운영 및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경영자문 및 상담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일본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을 통해 자조 노력을 강화하도록 했습니다.

 

2005년 5월에는 학생의 취학기회 확보를 위해 경영난에 빠진 학교법인에 대해 세 가지 긴급지원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학교법인은 스스로의 책임으로 경영기반 강화를 꾀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둘째, 문부과학성은 경영분석 및 지도, 자문, 경영개선계획 제출 등을 통해 학교법인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셋째, 학교법인이 파산할 경우 재학생의 취학기회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사립학교 진흥은 학교교육에 있어서 사립학교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립학교의 공립학교화에 가까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굳이 상론할 필요도 없을 지경입니다. 한국에서 사립학교 하면 우선 사학비리와 세습이라는 말이 가정 먼저 떠오른다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학재단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학재단들의 학교경영이 지극히 불투명하며 필요 이상의 학교부지 확장에만 힘을 쏟아 부동산투기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재단은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상속수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종교단체에 의해 설립된 사학은 막강한 정치적 기득권을 형성하여 학교교육과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삼아 심지어는 공권력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경쟁 논리와 사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정치와 종교와 교육이 구분되지 않은 주장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마구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은 일부 종단 사학들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채 자사고 100개 설립을 내세워 공립학교 교육을 말살하고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려 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에 사학법개정을 극력 반대한 것도 이명박정부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 것도 나아가 사학의 사적 재산권을 주장한 것도 다름아닌 종단 사학들입니다. 그로 인해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으며, 학교교육이 정치적 이념과 종파적 이해관계에 휩쓸리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만들어냈다고 큰 소리치는 종파가 있을 정도인데 이들 특정 종단 사학들의 정치적 기득권이 얼마나 막강하겠습니까!

 

사학비리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사학들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초중고 사립학교 교원 급여를 국가가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학들은 올바른 교육보다는 시장논리와 자율성을 주장하며 돈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내가 내 마음대로 학교를 세워 내 마음대로 돈 받고 종교교육이든 정치적 이념교육이든 내 마음대로 가르칠 터이니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제대로 논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고등학교 사학은 그저 땅 사서 학교 건물만 지어 놓으면 그 나머지 운영비는 거의 대부분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구조가 악용된 결과, 한국 고등학교의 사립학교 비중이 50%에 달하는 황당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말로 만일 국가가 사학 교원들의 급여를 지급해주지 않았다면 그 돈으로 거의 모든 사학을 사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계기야 어찌됐든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사학에 대해 지나치게 과잉보조를 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학에 공립학교가 먹히고 있는 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마저도 꼭두각시가 되어 교육의 기회균등과 학교교육 질의 향상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서슴없이 포기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초중고 학교교육은 2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50%에 육박하는 사립학교 비중에서 볼 수 있듯이 공립학교의 사립학교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사고, 특목고 확대와 자율성 주장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립학교의 입시 학원화가 그것입니다. 이런 2중 구조 속에서 공립교육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학과 학원은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교육논리가 아닌 돈을 앞세운 시장경쟁 논리를 내세워 공립학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학교교육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처럼 초중고 공립학교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립학교 역할 강화를 위해서는 고민하고 해결해야 될 많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연구소의 짧은 글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에 있어서 공립학교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교당 학생수를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래 <도표3>에서 한미일 3국의 교사 1인당 학생수를 비교해보면, 3국 모두가 교사 1인당 학생수 15-20명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교사의 질적인 면에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질적 수준 향상은 이미 문제로 노출되어 있으며 개선책이 강구되고 있습니다. 교원평가를 바탕으로 한 재교육 연수 프로그램의 강화와 행정 업무의 축소가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표3> 한미일 3국의 교사 1인당 학생수 비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리고 학교장의 학교운영 능력 강화도 빼놓을 수 없는 개선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학교교육의 최대 문제점 중의 하나는 학교운영의 불투명성에 있습니다. 학교운영 책임자인 교장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감추고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미일 3국의 학교교육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도표4>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학교당 학생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미국과 일본의 학교당 평균 학생수는 각각 485명과 314명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743명으로 2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의 학교당 평균 학생수가 485명과 329명인데 비해, 한국은 684명으로 거의 2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미국이 717명, 일본 639명에 비해 한국은 838명에 달해 미국에 비해 120명 가량, 일본에 비해 200명 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초중학교는 학급 수를 절반으로 줄여 2개 정도로 쪼개서 소규모 단위로 해야 하며, 고등학교 역시 평균 700명 수준까지 줄여야 합니다. 이는 초중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를 현재의 절반 수준 이하로 줄여야 하며, 고등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를 현재보다 12-24% 가량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미국의 초등과 중등은 합산치임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학교당 평균 학생수가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주로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도시개발 지역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사고 100개 만드는 것보다 학교당 평균 학생수를 줄여 콩나물 학교를 하루 빨리 해소하는 것이 학교교육 정상화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기로 합시다. 미국과 일본은 세계 1,2위의 시장경제 대국이며 기술강국이기도 합니다. 이들 국가가 세계 1,2위의 시장경제 대국이 된 데에는 어떠한 정파적, 종파적 간섭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의 기회균등의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확고한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10. 08:37

이 글은 2008년 초에 <경제시평> 특집에서 3회 연재로 김광수소장님께서 발표한 학교교육 정상화에 관한 小考시리즈의 두 번째 글의 내용입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정권이 바뀌자마자 학교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발언과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의 학교교육 자율화 발언을 계기로 서울시의회는 학원들의 심야학습 철폐를 내세웠다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를 철회했습니다. 대신에 학원 학습시간을 밤 10시에서 11시로 늘렸습니다. 물론 이런 규제가 있다고 한들 형식적일 뿐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육과학부는 방과후 학교에 학원들의 상업적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통령은 자사고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우열반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가 학원에 대해 패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학원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사실 학교의 학원화를 주장한다면 굳이 대통령도 교육과학부도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시장논리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학부가 문제라기보다는 교육부 관료들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도 교육감들은 대부분 2,30년 동안 학교교육에 몸담아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학교교육을 부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여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부끄럼도 자존심도 없이 말입니다. 이들이 이런 황당한 언행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이들이 완전히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아마도 학교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또는 학교와 학원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든 학원이든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규제완화라는 말로 강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몰입교육이니 학교교육 자율화이니 대학입시 자율화이니 하는 것들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식의 사고에는 두 가지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학교교육 정책을 누가 수립하고 추진할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적 평가(Learners Outcome)라는 말과 시장경쟁(Market Competition)이라는 말이 동의어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에 관해서 논해봅시다.

 

일견, 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나 특정 종단의 종교인들이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학교교육 정책은 백년대계 차원에서 그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賢者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현자들의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으며 정치권력의 변화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현자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방식으로 민간 자율에 입각하여 추천되며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게 됩니다.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 조항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웃 일본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교육재생회의)와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中央育審議)라는 곳에서 결정합니다. 교육재생간담회와 중앙교육심의회의 위원들은 일본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명망 있는 현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민간의 추천을 받아 총리와 문부과학성 장관이 형식적으로 임명합니다. 이곳에서 일본 학교교육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되면 일본 총리와 문부과학성 그리고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입법화와 예산편성을 수립할 뿐입니다.

 

일본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 위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PTA전국협의회의장, 게이오대학 총장, 주식회사 시세이도상담역, 방송대학교수, 캐스터겸치바대학특명교수, 저널리스트, 동경도내초등학교교장, 동경도내 사립학교 이사장, 이화학연구소이사장(노벨화학상수상자), 동경도교육위원회 교육장의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일본 사회에서 명망 있고 검증된 전문성을 지닌 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는 이 간담회에 일체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는 교육제도분과회, 생애학습분과회, 초중등교육분과회, 대학분과회, 스포츠/청소년분과회의 5개 분과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임시위원 및 전문위원을 둘 수 있습니다. 또 각 분과회마다 소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교육정책을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각자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결정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으로 위배됩니다. 교육기본법의 제6조는 교육정책에 있어서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조항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정책은 YS정권에서 DJ정권으로 그리고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바뀔 때마다 그때그때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매번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채 이런 혼란이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교육정책은 정치적, 이념적, 종파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대통령의 독단이나 개똥철학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다음에, 교육적 평가와 시장경쟁의 차이에 대해 논해보기로 합시다. 미국과 일본은 매년 교육백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매년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읽어보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보면 교육적 평가라는 말은 있어도 지금까지 시장이나 시장경쟁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학업성적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도 교육적 방식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에는 교육정책의 성과평가의 하나로써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전체 학생의 평균성적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수 상위권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전체 학생에 대한 것이지 특정 소수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기본법에서 주창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은 소수의 특공대나 게릴라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방면에 걸쳐 전인격적 평균을 상승시키는 전면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언제 어느 때이든 조건과 기회만 맞으면 깨우침과 깨달음을 얻어 인간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보다 수준이 떨어져서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사학)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공립 및 사립학교 현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의 <도표1>에서, 초중등학교 수 면에서 사립학교의 비중을 보면, 일본은 2.8%, 한국은 8.6%인데 비해 미국(K-8)은 21.4%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사립학교 비중을 보면, 미국(K9-12)은 11.3%, 일본은 24.9%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44.8%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단순히 양적으로만 보아도 한국은 이미 사립학교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사립학교 비중이 의외로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는 공립학교 교육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그래서 공립학교는 거의 학비가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도표1> 한미일 3국의 초중고등 학교 수 현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가 하면, 아래의 <도표2>에서 한미일 3국의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생수 비중을 비교해보면, 미국 9.8%, 일본 3%, 한국 7.1%로 나타나 그다 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등학교는 미국 8.2%, 일본 29.7%에 비해 한국은 49.3%로 거의 절반 가량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얼마나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사립학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표2> 한미일 3국의 초중고 학교 수 현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흔히 미국이 우리가 말하는 자사고 즉 자립형 사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교수 비중은 21.4%에 달하지만 학생수 비중은 9.8%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사립학교 5,123개 중 73%에 달하는 3,731개가 초중등학교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27%인 1,307개가 고등학교에 있습니다. 즉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초중등학교에 비해 오히려 사립학교 비중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 미국 사립학교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종교계 사립학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사립학교 분포를 살펴보면, 로마 카톨릭계가 46.2%, 기타 종교계가 35.8%로 종교계 사립학교(mission school)가 82%에 달하고 있으며, 비종교계가 18%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종교계 사립학교는 사실 유명대학 입시에 매달리기보다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수한 종교교육에 전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학입시 교육과는 거의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종교인 양성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며 대학입시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부터, 사실상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특목고나 자사고 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제도가 이처럼 공립교육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다인종 이민국가(states)로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질성이 높은 민족 중심의 국가(nation)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교육의 기회평등이 중요하며 그래서 공립학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나라의 교육제도가 다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처럼 다민족 국가로 교육의 기회평등 원칙 아래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지닌 대학교육의 수학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양질의 학생들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고, 영재고, 외고, 자사고, 대학위탁 영재교육 등 온통 천재교육투성이입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사고 100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사립학교 비중이 높은 마당에 대통령 스스로가 나서서 공립교육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국가가 공립교육은 포기했으니 돈 있는 사람들은 자사고에 보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사고 설립허가는 더욱 가관입니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은평 뉴타운 지구에 자사고를 설립하려는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 부당한 규제라며 서울시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니 하나은행이 설립하려는 자사고가 하나은행 임직원 자녀와 일반학생을 반반씩 입학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일개 민간기업이 사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지방정부인 서울시에 학교부지를 제공하라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과 친분을 자랑하는 회장님께서 청와대에 전화질을 해대 서울시에 압력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는 과학고를 영재과학고로 이름을 바꾸어 수십억 원의 예산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과학고와 영재고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과학고를 영재고로 이름을 바꾸면 영재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부산영재고는 서울과학고를 못간 학생들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별로 대학위탁 영재교육이라는 것도 머니 게임에 불과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재의 기질이 있는 학생을 해당지역 대학에 위탁하여 영재교육을 시킨다는 취지이지만 거의 모두가 대학입시 교육에 불과합니다. 대학위탁 영재교육 대상이 되면 거의 일류대학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재교육 입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머니 게임 전쟁이 치열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도대체 영재와 영재교육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외국유학이나 대학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을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당연히 일반 공립학교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 수천만 원씩만 지원해주어도 학습능력 향상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제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 역시 공립학교 중심으로 20여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자사고다 특목고다 영재고다 하면서 엉터리 정치싸움 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방식으로 가장 효율적인 교육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초중고 학교교육이든 대학교육이든 말입니다. 교육의 기회균등은 비용이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바보가 아닌 이상 돈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교육의 기회균등을 확립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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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34

사실상 세계 최고인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매년 치솟는 등록금을 잡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등록금 상한제와 대학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도입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은 사립대의 지나친 비대화/국공립대의 왜소화와 정부 재정투입 부족 등 대학 등록금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근본 구조를 도외시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를 푸는 일도 한국의 왜곡된 고등교육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위축된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의 경우 사립대의 비율이 거의 78%에 해당한다. 또한 대학 전반에 대한 정부 재정지출이 OECD국가 최저 수준이고 국공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수준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공립대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등록금 장사 등을 통해 배를 불리는 사립대와 경쟁하기 위해 국공립대들도 등록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연고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들은 학벌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실상의 서열 담합구조 속에 안주해 등록금 장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립대를 중심으로 매년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잡기 위해서도 정부가 국공립 대학의 위상을 제고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을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현재의 GDP대비 0.7% 수준에서 OECD 평균 1.3%나 미국 수준인 1.4%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실 갈수록 고착화되는 학벌 구조 및 수도권의 경제력집중 현상과 맞물려 지방의 대표적 국공립대학들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이 쳐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지방 국공립대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수도권 사립대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되 그 재원의 대부분을 지방 국공립대로 집중해야 한다. 정부 재정지원 확대를 통해 지방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수도권 사립대의 1/3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는 한편 양질의 교원 확충 등을 통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점차로 높여 간다면 지금처럼 사립대학들이 활개치며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비용(등록금) 대비 편익(교육 서비스의 질) 측면에서 국공립대가 좋아진다면 점진적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국공립대로 몰릴 수밖에 없고, 사립대의 위상은 점차로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 또한 국공립대와의 경쟁을 위해 마구잡이로 등록금을 올리는 일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국공립 인프라 확충 및 질적 개선이라는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공립대가 일정하게 가격 안정화장치(price stabilizer)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부가 사립대 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함으로써 사립대 일부의 위헌 소송 운운하는 논란에도 휩싸일 필요가 없다.

더구나 지방 국공립대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몰리던 지역의 젊은이들이 지방에 남게 돼 지역의 상대적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학벌구조의 정점인 서울대라는 이름 대신 예를 들어, 한국 1대학 한국 2대학 한국 3대학 식으로 국공립대의 명칭과 학제를 전반적으로 통합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교수들의 순환 근무 등을 활성화한다면 학벌구조의 폐해를 희석화하는 한편 지방 국공립대학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나마 한국과 유사한 국공립과 사립대 비율을 가진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도쿄대뿐만 아니라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히토쯔바시대, 도쿄공대, 도호쿠대, 규슈대 등이 모두 국공립대학으로 일본의 대표적 사립대인 와세다대학이나 게이오대학보다 더 높거나 엇비슷한 대학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학 가운데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도호쿠대, 규슈대, 홋카이도대는 모두 일본의 대표적 지역 대학으로서 지역 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미국 또한 한국에는 아이비리그로 알려진 명문 사립대학들이 매우 높은 학문적 성과를 자랑하지만, 전체 대학의 67% 가량이 주립대학 등 국공립 형태로 운영되며 대학 등록금도 평균적으로 사립대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주별로 편차는 있지만 각 주의 대표적 주립 대학들의 학문 및 교육 서비스 수준도 매우 높아 지역의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UC버클리나 UCLA 등으로 대표되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들이나 텍사스주립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실력을 갖춘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 주의 대표적인 주립대에 진학해 졸업 후 지역의 기업들이나 정부 등에 취직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수도권이 젊은 인재들을 싹쓸이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렇게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을 낮추고 교육서비스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사전에 또는 병행해서 실행해야 할 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교 졸업자에 대한 다양한 진로기회 제공 및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도표9>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 22.6%에서 2008년에는 83.8%, 전체 학령 인구 가운데 대학 재학 비율을 나타내는 취학률은 같은 기간 11.2%에서 70.5%로 급상승했다. 이는 전문대 학생 수가 같은 기간 16.5만명에서 77.2만명으로, 대학생수가 41.2만명에서 212.9만명으로 급증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대학 진학률의 가파른 상승과 학생수의 급증 현상과 함께 정부의 대학 설립 자율화 바람에 편승해 대학 수도 같은 기간 96개교에서 197개교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대학 수의 급증으로 전문대 수는 같은 기간 128개교에서 147개교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 같은 대학 진학률은 OECD국가들 가운데 호주에 이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도표9> 대학 및 대학생 관련 추이 현황



(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처럼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한국의 교육열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경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경우 취업과 소득 면에서 받게 되는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데다 독일이나 핀란드 등에서 활성화된 산업과 연계된 고교 수준의 직업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교 수준에서 전문직업교육을 활성화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교육정책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들이 채용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무턱대고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에 관계없이 대졸자만을 채용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업무에 걸맞은 수준의 인력을 채용하는 식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도표9>에서 보는 것처럼 1999년 이후 대학의 재학률(=재학생수를 전체 재적학생 수로 나눈 비율)이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전문대의 경우에도 2000년대 초 재적률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듯했으나 2007년 이후로는 다시 떨어지고 있다. 대학 재학률이 공장의 가동률에 비견할 수 있다고 볼 때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이 계속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 대학 진학자 수가 더 이상 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파르게 줄어들게 돼 있고, 이미 부실한 상당수의 사립대들이 전국 곳곳에 난립해 있어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구조조정 압력에 따라 <도표9>에서 대학 수는 이미 200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국공립대의 경우 통폐합 작업을 가속화하고 학사운영이 부실하거나 비리가 만연한 사학들의 경우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고교 졸업자들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사회적 수요 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를 줄이는 한편, 국공립대와 사립대 모두 예외 없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공립 대학들을 중심으로 재정을 지원하면 상대적으로 고등교육 재원의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다.

물론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정부의 책임 못지 않게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에 놓인 사립대들의 무사안일주의와 횡포에도 매우 큰 문제점이 있다. <도표10>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등록금 수입이 전체 수입의 20%에 불과한 반면 하버드대재단의 기금운용수입금이 3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지원(15%)과 기부금(7%) 수입 등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경우도 총수입 가운데 학생 납부금(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8.2%에 불과한 반면 의료수입(17.0%)와 자산매각 수입(15.9%), 자산운용수입(9.5%), 기부금 수입(6.9%), 보조금 수입(7.2%) 등 다양한 수입원을 갖추고 있다.

 

<도표10> 하버드대와 게이오대의 총수입 내역


() 하버드대 및 게이오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반면 한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표11>에서 보는 것처럼 사립대 전체 교비회계의 총수입 가운데 약 68% 가량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입금 수입이 6%, 기부금 수입이 3% 정도에 불과한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학 재정의 2/3 가량을 등록금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추세를 보더라도 총수입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재단전입금 수입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립대학들은 2004년 이후 매년 전체 운영지출 예산의 10%가 넘는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사립대들은 교육부령에 따라 예산 혹은 추경 예산에 없는 적립금은 쌓을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언론의 추적조사에 따르면 사립대 적립금의 거의 대부분이 교육부령을 무시하고 적립금을 쌓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걷어들인 뒤 남는 돈을 학생들의 학비 감면 혜택 등으로 돌리지는 않고 각종 명목으로 적립금으로 쌓아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년 물가 상승이나 재정 부족 등을 호소하며 등록금을 가파르게 인상해온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적립금 비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4년 운영지출대비10.0%에서 2008 13.4%까지 늘었다. 금액으로는 8,216억원에서 17,45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같은 액수는 전체 사립대의 장학금 및 학비감면을 위한 지출의 약 75~88%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사립대들이 적립금을 학생 지원에 사용했다면 장학금 및 학비감면에 모두 썼다면 학생들에게 혜택을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사립대학들도 조금씩이나마 운영지출에서 장학금 및 학비감면 비중을 높여오고는 있으나 이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비율과 비교하면 그 상승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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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11> 국내 사립대학 수입 및 지출 현황


() 사립대학 회계정보시스템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거꾸로 사립대들이 이들 여윳돈을 적립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하하는데 썼다면 2004년 이후 매년 6~7% 이상 올려온 대학 등록금을 전혀 인상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이들 사립대들이 필요한 예산을 훨씬 넘어서 과도하게 등록금을 걷어 각종 명목으로 적립하고 있으니 등록금 장사라는 비판이 전혀 무리가 아닌 셈이다.
 

더구나 이들 대학들이 적립한 내역을 살펴보면 건축기금 적립액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성격이 불분명한 기타기금 적립액이 두 번째로 많은 가운데 연구기금이나 장학기금, 퇴직기금 적립액은 거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건축기금 적립은 수도권의 대부분 사립대들이 교내 건물을 신축하거나 부동산개발 붐에 편승해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들로부터 각종 세금감면 혜택 등을 끌어내 제2, 3캠퍼스 등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축물 건립 자금 등을 명목으로 쌓아놓고 있다. 등록금 수입으로 마련한 적립금으로 학생 지원이나 연구기금으로 쓰기는커녕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립대들이 이처럼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데도 이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립대들이 무분별하게 적립금을 쌓는 관행부터 없애도록 해야 하며 현재 쌓아놓은 적립금을 등록금 인상률 억제와 연동하거나 학생 지원 등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토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사립대들은 재단 전입금 수입을 늘리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사학 재단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방해 외부 기부금 비중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립대들은 사립대를 사유재산이라는 식으로 강변하고 있고, 실제로 상당수 사립대의 재단이 일부 가문 중심의 족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족벌식으로 재단을 운영하고 이들 재단을 사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지원 확대나 기업과 지역사회, 또는 뜻 있는 유지들의 기부를 호소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소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한 바 있듯이 미국의 하버드대나 일본의 게이오대 등도 실제로는 학생/학부모 및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재단이사로 올려 단순히 한 집안의 사유물이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공적 기관으로 자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사립대들이 사유재산 운운하면서 학벌 서열구조에 안주하면서 등록금장사에 매달리는 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이미 세계 최고인 한국의 등록금 수준을 낮출 길은 요원하다.

 

<도표12> OECD 회원국 대학등록금 대출제도 현황(2004/2005)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모색하고 있는 방법은 매년 대학 등록금 상한을 물가상승률의 1.5배 이내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와 취업후 상환제도 도입과 같은 땜질식 처방뿐이다. 특히 이번에 도입하는 취업후 상환제는 한마디로 정부와 정치권의 파렴치한 생색내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높은 이자율(5.8%)과 복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근로자학자금 및 훈련비 대부(1~1.5%), 공무원학자금 대부(무이자), 군인학자금 대부(무이자), 교직원학자금대여(무이자) 등인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위의 <도표12>에서 보는 것처럼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학자금 대출제도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빚 부담에 허덕이게 하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 사학재단들은 잘못된 고등교육 구조를 통해 일반 가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등록금 부담을 지게 하면서도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생색내기용으로 내놓은 취업후 상환제조차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돈놀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등교육 시스템 또는 교육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의사도 역량도 없는 현 정부와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물갈이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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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26

대학 개강을 앞두고 다시 각 일반 가계가  자녀들(또는 본인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에 따른 가계부담도 경제력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정부의 열악한 교육재정 지원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실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대학의 등록금 수준과 교육재정 지원 실태를 국가간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2006/2007학년도 기준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수준을 살펴보자.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구매력평가 기준 달러환산 한국의 국공립대 등록금은 4,717달러로 5,666달러인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 보다 등록금이 높았다. 한국은 사립대뿐만 아니라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대부분 나라의 등록금보다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 높다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핀란드, 덴마크, 체코 등에서는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전혀 없으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거의 미미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도표1>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및 공사립대학 비율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중간

도표에서 파란색은 순수 사립대를 나타내며 나머지는 정부의존형 사립대임.

 

한국의 사립대 등록금 또한 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 20,517달러에 이어 8,519달러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또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등에서는 사립대 등록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국공립 대학이 전체 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0%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반면 사립대 비중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립대의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국공립대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일반 가계가 부담하는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사립대 명목 등록금이 가장 높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사립대의 비중이 높으면서 사립대의 명목 등록금도 높은 일본의 등록금도 장학금 차감액이나 소득 수준, 대학 교육의 질을 감안하면 한국보다 상당히 낮음은 이미 설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대학 등록금 부담도 공공과 민간 등이 적절하게 분담하는 식이라면 일반 가계들의 부담은 덜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 이상 고등교육비를 누가 부담하는지를 <도표2>를 참고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고등교육 재정지출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 전체 재정지출 대비 2.2%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고, GDP대비로는 0.7% 0.6% 수준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나라로 나타난다. OECD평균이 각각 3.1%, 1.3% 수준인 것에 비하면 현격히 낮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출 비중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현격히 낮다.



 

<도표2> 고등교육 재정지출 및 고등교육비 부담 주체 현황

() OECDEducation at a Glance 2009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는 고등교육비 부담주체 가운데 공공재원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로 이어진다. 고등교육비 부담주체를 보면 한국의 경우 공공재원 부담률이 23.1%로 가장 낮은 반면 민간 부담률은 76.9%로 가장 높다. 한미일 3국을 제외한 대부분 OECD 국가들에서는 공공재원 부담률이 절반을 넘고 특히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고등교육비를 공공재원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공재원 부담률이 각각 72.6%, 81.1% OECD평균이나 EU19개국 평균과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교육비를 민간재원으로 충당하는 비중에서 민간부담 주체를 다시 일반가계와 기타 민간부담으로 나눠볼 경우에도 한국의 일반가계 부담률은 52.8%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공사립대의 등록금이 높은 수준이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장학금을 차감한 실질 등록금이나 국민소득, 교육의 질 등을 고려한 측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비싼 대학 등록금을 대부분 민간에서, 그것도 일반가계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국공립 대학 인프라나 투자해야 할 고등교육 재정을 제대로 투자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이를 빌미로 사립대학들부터 앞다투어 대학 등록금을 올리는 가운데 일반 가계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등록금을 부담하느라 등골이 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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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10. 08:15

http://bit.ly/9SoGpa  부동산 이상 징후 3제라는 서울신문의 기사입니다. 타워팰리스 반값 낙찰, 광교 소형 청약도 미달, 새학기 강남 전세값도 ''. 제 눈에는 이상 징후가 아니라 현 시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정상적 징후로 보입니다만...

 

용산업무지구사업 등 대형 PF사업 좌초, LH공사와 각종 수도권 개발공기업 부실,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줄도산 위기, 각종 뉴타운/재개발 사업 좌초 또는 연기, 극심한 주택거래 침체. 이런 현상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징후로 보시겠습니까?

 

사심 없는 눈으로 지금 주택시장 상황을 들여다 보면 보입니다. 지금 주택시장의 이상 징후라고 하는 것들이 제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택시장 안팎의 구조적 흐름은 단순히 시기의 문제일 뿐 계속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값 하락/전세가 상승이 제게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매매포기수요, 매도 후 전세전환 수요 등이 늘면서 나타난 병목현상. 그런데 주택시장은 공급과잉. 국지적 시차는 있어도 전세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집값 폭등 선동이 난무할 때도 미분양 증가, 건설업체/PF대출/저축은행 위기, 거래 침체, 실거래가 재하락, 대형 개발사업 좌초 등을 경고할 수 있었던 것은 현상 이면의 구조적 흐름을 보고 있었을 뿐. 사심 없이 보면 모두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predictable surprise"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풀면 '예고된 재난' 쯤 될까요? 모든 예고된 재난은 사실 이미 예고되고 있었기에 사실은 잘만 대응했다면 모두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국내의 부동산 버블 위기도 마찬가지.

 

예고된 재난의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국의 911테러, 엔론스캔들, 그리고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경제위기도. 지금 한국의 부동산 버블 위기도, 그리고 10년 후쯤부터 본격화할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도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예고된 재난'에 대비하지 못하는 이유.낙관적 환상, 미래 가치절하, 현상유지 심리, 확률 낮은 손실 위험 회피경향/조직 칸막이 현상(정보공유 회피), 대리인문제(개인적 유인으로 집단이익 희생), 부패한 집단, 문제 초기에 희생양 찾기로 땜질식 처방 등.

 

언급한 것을 국내의 부동산 버블 위기와 국가재정 위기, 최근의 LH공사 부실 위기, 지자체의 재정난 위기, 저출산 고령화 위기 등에 모두 대입해 보십시오. 지금의 위기는 과거부터 예고되고 있었던 위기입니다.

 

'예고된 위기'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위기가 예고될 때 예방하는 것이 최상책, 예고된 위기 초기에 재빨리 개선하는 게 중책,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온갖 난리법석을 떨면서 막는 게 하책, 위기가 터지고 나도 손쓰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게 최하책입니다.

 

저나 저희 연구소는 적어도 예방 가능한 단계인 최상책이나 초기인 상책을 쓸 수 있는 단계부터 경고. 그러나 거듭된 정부정치권의 정책실패와 언론 선동보도로 이제 최선의 경우 하책밖에 안 남은 상황이 돼버렸죠.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겠죠.

 

일부 분들이 이제 와서 대안이 뭐냐고 묻습니다.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이미 숱하게 최상책과 상책의 방안을 내놓고,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정치권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 갈수록 경고음을 크게 울리고 비판을 세게 한 것입니다.

 

이미 저희가 했던 경고와 비판 속에 숱한 대안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들을 듣지 않고 일을 모두 저절러놓은 상태에서 대안을 내놓으라면 저희도 한 큐에 모든 상황을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부터라도 충격을 최소화할 방책들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가계 부채를 늘리지 않고 다이어트 유도,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 중지, 시장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저축은행 구조조정 등등. 이미 일정한 충격이 불가피한 상태. 단기적 충격을 입더라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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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9. 09:00

개각단상1. 대외적 개각 모토는 소통과 친서민. 소통한다면서 반대여론이 훨씬 높은 4대강에 올인한 김태호이재오를 인선하고, 친서민이라면서 서민 출신일 뿐 전혀 서민적 정책을 펴지 않는 사람들만 기용. 현 정부에게 소통과 친서민은 포장일 뿐.

 

개각단상2. 김태호 내세워 세대교체론 점화. 하지만 세대교체는 단순히 젊은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젊은 비전과 정책역량을 가져야. 김태호의 성장과정이나 이력은 골수 한나라당 성향으로 겉만 젊은 낡은 인물. 이 역시 포장술.

 

개각단상3. 이번 개각 인사들이 맞이할 향후 한국 경제상황은 상당히 어려울 것. 하지만 이재오, 이주호, 진수희, 신재민 등 정치적, 이념적 색채가 짙은 인선. 소통과 친서민은 고사하고 이들 내각이 향후 경제적 상황 전개에 따라 압사당할 가능성 농후.

 

개각단상4. 박근혜 대항마 포석은 분명. 하지만 박근혜보다 오세훈, 김문수가 불의의 일격 받은 셈. 특히 오세훈 경우 젊고 미남형 이미지 겹치는 김태호 부담. 더구나 무소신 기회주의자 오세훈 4대강사업 등 MB정책 충성도가 높은 김태호에 밀릴 수도.

 

개각단상5. 어쨌거나 한나라당은 여러 명의 대선 후보군을 키우고, 연령대도 낮췄음. 그에 비해 민주당은 정권을 잃고도 새 인물을 영입하고 키우는데 매우 소극적. 오히려 민주당이 늙은 정당 이미지 될 판. 이미지가 아니라 쇄신 능력이 부족한 게 문제.

 

개각단상6. 개인적으로는 정권이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기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다만, 이런 류의 개각에 대해 기득권 신문들은 과거 '코드인사'로 맹비난했음. 그런데 이들 신문들은 현 정부 들어서는 '코드인사'라는 표현을 잊어버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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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9. 08:54

 

최근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MBC PD수첩 김재영 PD가 다년간의 부동산 문제 관련 취재를 바탕으로 출간한 동명의 책이 촉발한 현상이다. 이 책은 이미 인터넷서점 예스24 집계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들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 책을 소개하고 하우스푸어 관련 기획들을 펼치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2006년 이후 부동산 고점기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으나 집값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자 부담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계들을 말한다. 이미 수도권에서만 줄잡아 10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우스푸어가 부동산 버블 붕괴 시대의 화두가 될 공산이 커보이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화두라면 88만원세대가 있다. 이 또한 우석훈박사가 쓴 동명의 책에서 비롯됐다. 알다시피 저임금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시기에 평균 월급 88만원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든 10대, 20대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사이에 공통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묘한 관계를 본다. 우선, 공통점은 이들 모두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라는 점이다. 하우스푸어야 그렇다 치고, 88만원세대가 부동산 거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명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일면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경제 영역은 한껏 비대해진 반면 생산경제 영역은 침체 일로를 겪었다.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기보다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가계도 무리하게 빚을 빌려 주택 투기에 가담하면서 은행에 이자내는 월세생활자로 전락해 씀씀이를 줄였다. 그렇게 빚어진 만성적인 내수 침체는 다시 제품과 서비스 수요를 줄여 생산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 이 같은 부담을 88만원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88만원세대는 치솟은 집값 때문에 원룸이나 고시촌, 심지어 쪽방을 전전하게 됐다. 결혼해서 애 낳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돼버렸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는 집값, 땅값은 금값이 되는 반면 사람 값은 똥값이 되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가 88만원세대였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88만원세대가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동산 거품의 한 산물이라고 본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 가담 여부에서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하우스푸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 투기 붐에 가담하거나 편승한 사람들이다. 물론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분양 광고 수익을 노린 무책임한 선동보도의 책임도 크다. 그렇다고 무리한 탐욕을 부린 가계들의 자기 책임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세대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50,60대 부모세대와 뒤늦게 뛰어든 30,40대가 하우스푸어의 주축이다. 반면 88만원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의 불똥을 맞은 경우다.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재빨리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거론하고 있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다. 마음 같아서는 필자도 그 정도 선심은 쓰고 싶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막대한 국가채무 형태로 자식세대의 부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그 부담을 늘리게 될 공산이 크다. 온갖 사고는 기성세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이미 최대 피해자인 자식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게 자식 가진 기성세대가 할 짓인가.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 취약계층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될 DTI규제 완화 조치를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선분양제와 같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부터 고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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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6. 07:16

지금 국내에는 경착륙하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논리로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는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으로 연착륙을 바라는 주장이라면 필자도 동의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연착륙론이 오염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연착륙론은 주로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재벌계 연구소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 신문들에서 주로 내놓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착륙론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연착륙론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론에 가깝다.

 

원래 의미의 연착륙을 생각해보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에 비유하자면, 바늘로 쿡 찔러서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 경착륙이라면 풍선의 바람 구멍을 열어 서서히 바람을 빼나가는 것이 연착륙이다. 따라서 연착륙론은 부동산 가격의 하향 조정을 점진적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연착륙론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거품이 좀 빠질만하면 거품을 다시 불어넣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2008년말 이후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쓴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의 근거도 연착륙론이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더했고, 이미 상당수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4년 주택 시장 침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까지 지속됐던 2000년대 1차 부동산 폭등기가 일단락되자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경착륙은 안 된다연착륙론으로 포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그 결과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을 투톱으로 투기 과열지구 해제 등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또한 판교신도시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건설업계를 먹여살리기 위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짐으로써 수도권 중심의 2차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결국 지금까지 연착륙론은 부동산 거품 빼기를 계속 미루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이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원을 탕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품은 계속 커져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 규모도 커지고, 가계 부채는 늘어왔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워 한국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2004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 당시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건설경기 부양론에 휘둘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뺐더라면 지금 같은 위기감에 시달렸을 것인가. 따라서 불순한 속내를 가지고 연착륙을 부르짖어온 사람들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일 버블 붕괴서 배울 것이라는 칼럼에서 주장한 연착륙론또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칼럼주장대로라면 일본이 “89년에서 90년에 걸쳐 금리를 2.5%에서 6%로 수직상승시킨 것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2008년말 주택 가격 급락 현상이 일어나자 5.25%이던 기준금리를 2%라는 사상 최저금리로 낮췄고,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과 DTI 및 재건축 규제 완화, 부동산 세금 감면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 물량 매입,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토건 부양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지난해 9 DTI규제를 다시 묶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기준 금리 인상이나 지난해 DTI규제 재도입 또한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빠르게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이미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마지못해 취한 고육책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경제 정책을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용해 갈 데까지 가보길 원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게는 성에 안 찰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너무 조급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민경제와 일반가계를 볼모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속내가 보이는 느려터진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일보 스스로 몇 달 전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한국 정부는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기보다는 여전히 부동산 버블을 방치하는 기조에 가깝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대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조장책으로 시장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용수철도 수축돼야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법인데, 현 정부는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이 되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가로막고 있다.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용수철은 끊어져 복원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건설업계를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으니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이미 고갈된 수요 이상의 공급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이미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도 수급 조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좀비처럼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실 채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바닥을 친 뒤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잠재 수요자들을 계속 무리하게 빚을 내 사게 함으로써 결국 주택시장 회복을 주도할 미래 수요를 고갈시키게 된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당겨써버림으로써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키우는 반면 주택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과 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현재 건설업계 및 부동산업계 및 이들의 대변지격인 기득권 언론들이 주문한 결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정확히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전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지연시킨 탓에 일본의 주택시장이 자연스러운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컸지만, 초기에 각종 토건부양책으로 재정을 탕진하고,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수요 대비 과도한 주택 공급을 지속해 부동산 시장이 복원력을 잃어버린 가운데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황들이 2010년대 한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자고 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어오른 상황에서도 연착륙운운하며 추가 부양책을 주문하는 세력들이야말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 경착륙을 넘어 한국경제의 불시착을 유도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희희낙락했던 건설업계와 금융업계, 그리고 아파트 분양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게 돌아갈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올 충격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들은 일반가계와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이들 좀비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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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3. 09:10

축구장에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어느 순간 관중석 앞쪽에 앉은 관중들이 경기를 좀 더 잘 보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차례로 모두 일어서야 했다. 일어선 앞 사람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축구장 관중들은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불편하게 서서 봐야 했다. 모두가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익히 잘 아는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다. 이 예화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동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화다.


그런데 2000년대 국내 부동산 상황은 합성의 오류가 난무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개인이 부동산 시장에 차례로 뛰어든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옆의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또 다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값이 더 뛸까 불안해서 거액의 빚을 내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다. 더 나중에는 투기 광풍이 불어 ‘묻지마 투자’까지 횡행했다. 그렇게 해서 수도권 아파트 값을 평균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가계의 상당수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한국경제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생산경제에 가야 할 돈은 급격히 위축됐다. 부동산 비용 상승으로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인상된 임대료를 내느라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은 열 사람 쓸 것을 다섯 사람만 쓰거나 열 사람을 다 쓰되 저임금으로 부리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이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실업 급증과 비정규직 증가로 나타났다.


빚을 내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외환위기 직후 25%에 육박하던 가계 순저축율은 2008년말 2.5%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과거 은행에서 이자수입을 타서 쓰던 가계들이 이제 은행에 거꾸로 매월 수십만~수백만원씩을 월세 내듯 꼬박꼬박 이자로 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시중은행들은 국내 최대 월세 임대사업자들이 됐다. 1,2백만원씩을 은행 이자로 내고 난 가계들은 그만큼 소비를 줄여야 했고, 이는 지속적인 내수침체로 이어져 더더욱 생산경제를 위축시켰다. 정부와 상당수 언론은 줄곧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에 따른 향후 차익 실현 기대감으로 현재 소비가 는다는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들먹였다. 하지만 부동산 부채 증가로 인한 내수 위축 효과는 자산효과를 압도했다. 이 때문에 지표상으로는 GDP성장률 4~5%를 오르내렸지만, 서민경제는 항상 침체기였다.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축구장에서 모든 관중들이 다 일어선다고 모두 같은 시야를 확보하는 게 아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어린이는 일어서도 경기를 볼 수 없다. 심지어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부동산 시장의 원초적 불공정성은 훨씬 컸다. 우선, 주택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심했고, 평형별로, 가격대별로 편차가 심했다. 세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없던 젊은 세대에 비해 자금력과 부동산 투자 노하우까지 갖춘 기성세대는 부동산 투자로 덕을 봤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부동산 거품으로 일자리와 소득까지 줄어든 상태에서 집값까지 뛰자 결혼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 돼버렸다. 계층별로 양극화도 심해졌다. 부동산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10년 이상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불과 1~2년 만에 벌기도 했다. 소득 양극화보다 자산 양극화가 훨씬 더 극심해졌고, 집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근로의욕 감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덕을 본 것인가? 물론 부동산 가격이 올라 고가 주택 보유자와 투기성 다주택자를 합쳐 5% 정도로 추정되는 부동산 부자들은 큰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한 채가 고작이다. 이제 수도권의 웬만한 지역은 대부분 집값이 올라 이제 싼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 세대는 많은 돈을 주택에 깔고 앉아 소비를 줄여야 한다. 2억원이면 될 집을 5억원에 사게 되면 3억원 만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쓸 돈이 줄어든다. 사실상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자녀가 출가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 신혼 집 장만을 도와주는 것을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도권의 웬만한 평형 전세가 2억원에 이르고, 매매가가 4,5억원을 쉽게 넘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머리를 싸매지 않겠는가? 자녀들 집 장만 비용이 커지면 자신들의 노후 비용은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이치다. 자녀들의 집장만을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자식들이 높은 집값을 감당하느라 등골이 휘는 모습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처럼 부동산 거품은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국민 대다수를 사실상 더욱 가난하게 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가장 확실하게 서민들을 말살하는 게임이자,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게임이다. 부동산 부자 5%를 승자로 만들기 위해 선량한 국민 95%가 패자가 돼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도 집을 한 채라도 가진 상당수 국민들이 정부의 거듭된 정책실패와 기득권 언론의 선동에 휘둘려 집값 올리느라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자산양극화는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정치적 계급투쟁 양상까지 띠고 있다. 주택 소유여부에 따라 계급적 이해를 달리하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의 계급투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집값의 하향 안정을 바라던 사람들도 일단 거액의 빚을 지고 집을 산 뒤에는 180도 달라졌다. 거의 전 재산이 걸린 주택 가격이 올라주지 않으면 가계경제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변화가 정치적 태도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더해 부동산 투기 조장꾼들의 선동과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성 언론들의 왜곡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교’의 신도가 돼버렸다. “2004년 이전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를 외치던 여론이 다수였으나, 이후에는 부동산 규제 완화 여론이 다수가 돼버렸다”는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처럼 이를 생생히 입증하는 말도 없다.


집값을 둘러싼 계급투쟁은 급기야 정권을 교체하는 숨은 원동력이 됐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바라는 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권을 빼앗겼다. 임기 내내 건설족 정치인과 관료, 건설재벌, 그리고 기득권 언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운데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정책실패를 거듭했던 탓이다. 반대로 부동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은 현 대통령인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재임 기간 동안 모두 32개의 뉴타운을 지정해 서울 강북 집값을 거세게 밀어 올렸다.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7.5%를 한꺼번에 개발하게 한 탓에 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전세난 등 서민 주거난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또한 경부 대운하 등 각종 개발 공약과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 등을 통해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메시지로 집권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현 정부에게 부동산은 재개발 철거민들을 ‘법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권력살인을 하는 것조차 합리화할 만큼 신성시됐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수준을 넘어 ‘강부자 정권’ 자신들과 정치적 기반인 건설업계 및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온갖 특혜성 정책들을 남발했다.


이렇게 볼 때 부동산 거품을 꺼뜨리지 않고서는 절대 서민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 거품 부양에 목숨 건 현 정부는 이미 태생부터 최악의 반서민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말끝마다 ‘서민 정부’임을 내세우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동원된 온갖 경기 부양책의 명목도 대부분 서민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같은 것이었다. 현 정부가 쏟아내는 수사나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서민들을 우선 배려하라”는 주문을 쏟아내고 재래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사먹기도 했다. 새벽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신빈곤층’ 가정 어린이와 통화하며 울먹이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을 접할 때마다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실제 정책은 특권층을 위한 기득권 위주로 운용하면서 서민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생색내기 쇼라는 게 너무나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서민가계에 돌아가는 혜택은 늘 쥐꼬리만했다. 오히려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는 등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의 지원과 보장을 줄이기까지 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마트의 상권 잠식 때문에 한탄하면 “옛날에는 (국민들이) 죽어지냈는데 요즘에는 할 말 다한다”는 식으로 윽박질렀다.


현 정부는 ‘친서민’을 부르짖지만, 실제 그들의 정책 속에는 서민이 없다. 말끝마다 친서민을 내세우지만, 정책은 늘 반서민이었다. 당장 미국 부시행정부가 실시했던 감세안을 흉내내 현 정부가 실시한 감세안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안 혜택의 70%가 중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고 떠벌렸지만 실제로는 감세 혜택의 80%가 철저히 부유층과 매출 1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돌아간다. 더구나 현 정부는 감세 규모가 5년간 100조원에 육박하는 사실을 숨기고 36.5조원이라고 지금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한 해에만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 GDP 대비 5%를 넘는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부가가치세와 에너지세, 주세 등 간접세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간접세 비중이 높아지면 역진성으로 인해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같은 감세안에 대한 민심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번에는 ‘친서민 세제’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분칠을 시도하고 있다. 1조 9500억원짜리 각종 세제 혜택을 내놓았지만, 기존에 시행되던 것을 연장하거나 이미 예정됐던 방안들을 제외한 감면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친서민임을 내세우기 위한 어설픈 짜깁기 임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친서민’을 떠벌일 이유도 없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친서민 정부인 것인데, 이 정부는 자신들이 제 발 저리니 말끝마다 친서민이라고 떠벌일 뿐이다.


결국 현 정부가 말하는 ‘친서민’은 자신들이 ‘친재벌’과 ‘친부유층’을 눈속임하기 위한 사기술에 불과하다. 말로는 서민 경기부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를 실시해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4대강 강바닥에 2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으며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과 소수 재벌 건설업체들에게 온갖 퍼주기를 일삼으면서도 현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피해본다’고 선량한 서민들을 세뇌시켰다. 당장 숨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건설족 정부’에 엉겨 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아니면 집값이 오를 때 빚을 내 집을 여러 채 사들였다가 이제는 ‘집값을 올려 달라’고 댕댕거리는 다주택 투기자들이 서민이라는 말인가.


오히려 현 정부 들어 서민 경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공동체의 유대는 깨지고 있으며 각 개개인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해지는 ‘만성불안사회’가 되고 있다. 기득권에만 유리한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 편법 승계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이 사실상 법의 지배를 벗어난 특권세력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고 집값이 폭등해 결혼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다. 국제중과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을 통해 사교육비를 늘리는 정책을 만들고 ‘사교육비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파렴치한 정부다. 수십 조원의 돈을 강바닥에 쳐바르면서도 가뜩이나 빈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외면하는 정부는 결코 친서민 정부일 수 없다. 특권층의, 특권층에 의한,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 정부일 뿐이다. 

by 선대인 2010. 8. 2.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