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여름 45일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은 적이 있다. 제주도에는 이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예닐곱 차례 간 적이 있었지만 올레길을 걸을 때만큼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적이 없었다. 이른바 제주도의 재발견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와 올레길을 걸을 때 나의 소비 패턴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어는 순간 느끼게 됐다. 과거에는 제주도에 내리면 렌터카(주로 금호그룹이 운영하는 금호렌터카를 빌렸던 것 같다)를 빌려 탔다. 며칠씩 제주도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렌터카로 이동하는 게 최고였다. 이 때문에 성수기에 가도 손님들을 기다리는 택시들의 행렬이 길었다. 나는 렌터카를 이용해 호텔이나 콘도로 가서 숙박을 했고, 식사도 그 안에서 해결한 적이 많았다. 그 때는 제주도에 갔다고는 하지만 렌터카와 호텔, 콘도 체인을 운영하는 롯데호텔이나 호텔신라, 하얏트 등 대기업의 돈벌이를 시켜줬던 셈이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골프 여행객들 경우엔 대기업 돈벌이를 시켜주는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반면 올레길 여행에서는 소비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제주도까지 가는 데는 여전히 재벌계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달랐다. 올레길을 걷는 도보여행을 해야 했기에 렌터카는 처음부터 불필요했다. 대신 제주공항에서 서귀포 주요 일대를 도는 600번 리무진버스를 단돈 5000원으로 이용했다. 올레 8코스부터 시작해 제주 해안길을 따라 걷다가 배가 고프면 길에서 가까운 동네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었다. 길을 걷다가 중간에 목이 마르면 생수나 아이스크림을 길가의 수퍼나 구멍가게에서 사먹었다. 잠도 올레길 근처의 민박이나 펜션에서 잤다. 잠들기 전에 동네 근처나 서귀포 시내의 호프집에서 회포를 풀기도 했다. 결국 제주 올레길 여행에서 내가 쓴 돈이 돌아간 곳은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같은 제주도를 간 것이지만 그 안에서 내 소비가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크게 달랐다. 물론 내가 지출한 액수는 예전 여행 때보다 크게 줄었지만 나처럼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적지 않은 규모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때 지출액은 줄지만 여행의 만족감은 훨씬 더 높았다.

 

그 때 올레길을 걸으면서 머릿속에 흐릿하던 개념 하나가 구체적인 형상을 얻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낙수효과, 토건개발, 재벌 독식, 양극화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경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델로서 내가 생각하는 구상이 있었다. 한 국가에서 생산되는 부가 소수 상류층이 아니라 대다수 서민들에게 널리 공유되는 그런 경제모델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던 추상적 경제모델이 제주올레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2일 단 하루지만 올레길 여행 겸 취재에 나섰다. 제주공항에 내려 예의 600번 리무진버스를 타고 제주 풍림콘도 근처에서 내려 오전 9시경부터 올레 7코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제주도에는 이따금씩 부슬비만 내리는 정도여서 걸을 만했다. 오히려 해가 쨍쨍한 것보다는 간간히 내리는 부슬비가 땀을 식혀주어 좋았다. 간간이 반대편에서 오는 올레여행객들과 마주쳤지만 여행객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이 1년 중 가장 비수기였다. , 가을이나 장마가 끝난 여름 휴가철이 붐빈다고 한다. 법환리를 지나자 올레길 양쪽으로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카페, 식당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다위 올레 펜션’ ‘올레 커피’ ‘막숙올레맛집’ ‘우리올레처럼 상호부터가 올레꾼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법환리 포구 근처에 있는 바당소풍이라는 곳에서는 속이 얼얼 션하게 들고 먹는 컵빙수등의 문구가 씌여진 칠판을 길 옆에 세워놓고 올레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올레커피에 들려 캐모마일 아이스티 한 잔을 시켜서 잠시 땀을 식혔다. 제주도 토박이 자매가 2년 전쯤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올레꾼들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해서 나오는데 다른 올레꾼들이 땀을 식히러 들어오기도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 올레길 바로 옆에 근사한 외관의 브런치카페가 보여서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 ‘카페 7373’이라는 곳이었는데, 근사한 외관 때문인지 주로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더 걷고 싶었지만 중단하고 큰 도로로 나와 택시를 타고 제주올레사무국을 찾았다. 서귀포시내 근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사무국 건물에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이 총 13명이고 1년 예산이 4억원 정도여서 박봉이 분명할 텐데도 직원들의 얼굴은 활기차고 열정이 넘쳤다.

 

사무국에서 만난 허지효 기획팀장은 제주 올레길이 생긴 이후 올레길 주변에 들어선 카페나 펜션 등만 해도 최소 200곳이 넘을 거라고 했다. 새로 생긴 곳만 해서 그렇지 기존에 있던 마을 수퍼나 민박, 펜션 등에 사람이 더 몰리는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허팀장은 모든 곳이 다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어서 숙박업소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는 등 좀 더 많은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제주올레 코스가 지나는 마을과 기업들을 결연해주는 11올레 마을 결연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한다.

 

허팀장은 올레길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면서 실핏줄 경제라는 표현을 썼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주도에 오면 제주시내와 중문단지, 서귀포시내, 그리고 성산일출봉 정도만 둘러보고 가는 관광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올레길이 열리면서 과거에는 가지 않던 곳까지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고 있어요.” 올레길은 과거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만 맴돌던 돈들이 밑바닥 서민가계 사이에서 돌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지역까지 사람들 발길이 가닿게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건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상에서 아주 미세한 틈새시장까지 만들어진다는 롱테일경제학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구현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 카스(cars)'에는 미국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발길이 끊긴 시골의 멋진 풍경이 나온다. 우리도 고속도로를 곳곳에 만들면서 물류 흐름을 앞당겼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지역 곳곳의 특성은 잊혀졌고, 나중에는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올레길은 제주도 곳곳의 후미진 곳곳을 다시 실핏줄처럼 이어 살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제주 올레의 경제적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의뢰로 작성된 도보여행 활성화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제주올레에의한 생산유발효과는 제주지역에서만 연간 2528억원, 전국 3311억원으로 추정됐다. 당시 전망치이기는 하지만 2015년에는 이 수치가 각각 9548억원, 12505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됐다.

 

사실 제주올레의 간접적 효과까지 생각하면 그 파급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 전국 곳곳에 생겨난 트레일들을 생각해보라. 제주올레는 외국에 수출도 되고 있다. 일본 규슈에 올레코스를 개설하는 등 올레 브랜드와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는 올해에만 구마모토 아마쿠사 등 일본에 네 개 코스를 추가로 개설하는 사업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에 물소리길 코스를 개발해 주기도 했다.

 

이 모든 사업들을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 거의 한 푼 없이 제주올레 재단이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과 자체 수익사업에서 나온 소액의 예산으로 6년여 동안 일궈온 결실이다. 나는 모든 정부 예산사업 가운데 이 정도 돈으로 이 정도 성공을 이뤄낸 경우를 보지 못했다. 현실은 투자한 비용도 못 뽑아내는 대규모 낭비성 사업들로 넘쳐나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도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도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발표된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포용하는 국제교류도시, 경제를 선도하는 청정산업도시 등 여러 슬로건을 내걸며 거창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거액의 재정을 투입해 각종 관광지와 레저스포츠 시설을 만드는 부동산개발사업으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같은 부동산 개발사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파리를 날리며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적자를 쌓고 있다. 정부와 제주도 돈으로 그 시설을 지은 재벌계 건설업체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다. 설사 그런 식의 대규모 리조트나 시설을 지었다고 해도 결국 혜택을 보는 것은 주로 대기업이었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식의 경제발전 방식을 채택해 왔다.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대규모 토건사업을 벌이거나 재벌대기업을 집중 육성해 수출을 하는 식으로 성장했다. 워낙 민간자본이 취약하다 보니 정부가 해외 차관이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모은 민간자본을 큰 놈들에게 배분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대기업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고 소득도 증가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낙수효과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들은 정리해고를 일상화했고, 비정규직을 늘렸으며 외주를 일상화했다. 다단계 하도급과 협력업체 납품가 후려치기도 더욱 심각해졌다. 그 결과 재벌대기업들의 배는 불렀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떡고물은 점점 줄었다. 대규모 개발사업도 재벌대기업들만 독식할 뿐 하도급업체들은 늘 쫄쫄 굶었고, 재벌대기업은 협력업체들의 납품가를 후려쳐 배를 더욱 불렸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관광 활성화 등 막대한 효과가 생길 거라고 떠벌리며 22조원이나 투입한 4대강 사업이 지금 어떻게 됐나.

 

쉽게 말해 현재 한국경제는 골프장 경제와 같은 방식이다. 어느 지역에 골프장이 지어졌다고 해서 그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골프장에 가면 골프 이용료를 내게 되고 게임부터 식사와 숙박까지 모두 골프장 안에서 해결된다. 골프장 18홀 한 곳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150~200명 정도의 인력을 고용하지만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은 50~6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 골프장 안에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은 개발업자가 챙길 뿐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돈이 재벌기업 등 소수의 수중에서 돌 뿐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경제, 낙수효과가 사라진 경제다.

 

이제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살찌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올레길이 대표적 모델이다. 올레길은 밖으로 열려 있으며 올레길 주변의 동네 곳곳에 여행객들이 떨어뜨리고 간 돈이 돈다. 더구나 그 돈들은 서민들 사이에서 돈다. 서민들에게 그 돈 한두 푼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서민경제가 튼튼해진다. 또한 그런 흐름이 만들어지면 제주도 주민들은 과거처럼 난개발식 관광지 개발 방식보다는 비용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제주의 자연스러운 경관을 살리는 생태관광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자연경관도 더 잘 보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이 확산되면 얼마든지 밑바닥에서부터 물이 솟아올라 경제 전반에 활력이 생기는 분수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는 골프장 경제에서 벗어나 올레길 경제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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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7. 8. 09:40

어제 가계부채 청문회에서 현오석 부총리는 "가계부채 문제가 위기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최고 정책당국자로서 현 상황에 대해 대놓고 위험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개인 부문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65%로 이미 부동산거품 꺼진 미국이나 남유럽국가들 모두 포함된 OECD국가 평균이 130%대보다 훨씬 높다.

 

미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은 서브프라임론 사태 직전에 130% 수준까지 갔다가 지금은 110% 수준까지 떨어졌다. 우리는 같은 시기 130% 대에서 165%로 올랐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내다가 나중에 원리금을 함께 내야 하는 구조. 이를 풍선식 대출이라고 하는데, 미국 대공황을 불렀던 금융상품 구조여서 이후 거의 사라졌다. 이걸 5년째 미루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으니 그나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게 안 위험하면 뭐가 위험하다는 건가? @@

 

현오석 부총리가 가계부채 문제 심각하지 않다고 한 근거가로미국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대출 연체율이나 부채 상환 부담 등이 양호한 것을 들었다. 어이 없다. 사상 최저금리에 거치기간 만기연장 5년째에 각종 부양책으로 떠받쳤으니 그런 거지 부실 채권은 수면 아래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떨어진 부동산 가격 현실로 인식하지 않고 호가 놀음하며 LTV비율을 최대한 낮은 수준으로 맞추고 있으니 그렇지 실제는 훨씬 심각한 지경이다. 그리고 위기가 점점 내연하고 있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저축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권을 비롯해 보험, 증권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위기란 이 같은 명백한 위험 신호들에 대한 경각심이 없을 때 현실화된다.

 

그나마 한은이 어제 위기관리 대응 시나리오와 배드뱅크 설립을 언급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참고 기사: 한은 "대규모 부실 대비 배드뱅크 설립" | 미디어다음 durl.me/5awkj8 ) 지난해와 올초 한은 조기경보팀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제가 거푸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한은이 꼭 내 말을 따른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접해본 경험으로는 그나마 한국은행 조기경보팀이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문제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일반에 공개하지 않지만, 한은은 주택담보대출의 LTV 비율이 실제보다 더 높고, 전세가를 포함할 경우 LTV 비율은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표본 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은 주장대로 배드뱅크 설립 등 체계적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현오석 부총리, 안이하게 있다가 허둥지둥 당하지 마라. 4.1대책이 '두 달 천하'로 끝난 데서 알 수 있듯이 임시 미봉책으로 지금의 사태를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마라. 조금이라도 빨리 외과적 수술 통해 부동산 거품 해소하고 가계부채 뇌관 제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은 더 커질 뿐이다. 가만히 있다가 폭탄이 터지는 것을 당하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선제적으로 가계부채 뇌관을 제거해 충격을 그나마 줄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후자를 따라야 한다. 90년대 초반 스웨덴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스웨덴정부가 미적대지 않고, 배드뱅크를 설립해 부실채권을 신속히 처리한 결과 불과 2년 안에 경제를 회복했다. 반면 부실채권 처리를 계속 미루고 좀비 건설 살리는 대규모 토건부양책으로 일관했던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진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스웨덴의 길을 갈 것인가, 일본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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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7. 4. 10:37

 

http://realestate.daum.net/news/detail/main/MD20130630173709821.daum 4.1대책 석달만에 도루묵

 

오늘자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기사다. 비슷한 종류의 기사가 이런 저런 신문들에 실리고 있다. 마치 취득세 감면이 연장 안 돼 집값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말도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집값이 올랐으면 이미 취득세 감면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올랐지 왜 안 올랐겠는가.

 

나는 ‘4.1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 막장으로 치닫는 부동산종합대책이라는 글에서 이번 대책도 결국 몇 달 후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하우스푸어만 더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마지막 기대감도 시장에서 사라질 때 부동산시장은 그 동안 지연시켰던 가격 조정까지 한꺼번에 반영해 더 큰 폭의 하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내가 경고한대로 ‘4.1부동산대책은 매경이 표현한 석 달이 아니라 사실 두 달도 채 못 가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동산시장은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어차피 부양책의 효과가 없으니 가계부채 뇌관이나 조금이라도 일찍 제거하자고 했더니 그 사이 하우스푸어만 또 잔뜩 양산한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더 지나면 각종 부동산 찌라시들이 또 건설업계나 하우스푸어가 죽는다며 부양책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더 대단히 내놓을 대책이 있나. 예를 들어, 취득세를 항구적으로 인하해준다고 부동산시장이 살아날까. 어림없는 소리다.

 

박근혜정부도 별수 없다는 걸 4.1대책이 일찌감치 확인사살해줬다고 해야 할까. 이미 경고한대로 나는 하반기부터 상당히 가파른 집값 하락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늘 신문들이 일제히 집값 약세, 전세값 강세등의 제목을 달고 집값이 약보합 수준이 될 거라느니 떠들지만, 그건 그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나는 올해 하반기부터 1년 이내에 상당히 가파른 하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꽤 높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체계적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갖고 가계부채 뇌관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길 바라지만 그럴 리 없다. 그러니 가계라도 정부 더 이상 기대지 말고, 찌라시에 현혹당하지 말고 잘 대비하시길 바란다.

 

내가 이렇게 전망하고 경고하는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꽤 여러차례 설명했지만, 여전히 그 설명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우선, 향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현재 주택시장이 어떤 국면에 와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보통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은 보통 10~20년 정도의 장기 사이클을 그린다. 대략적으로는 부동산시장의 주기가 약 18년 정도로 수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택시장 사이클의 흐름으로 볼 때 수도권 주택시장 상황은 여전히 부동산 버블 붕괴의 초기에 놓여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지역 아파트 실질가격 추이를 나타낸 <그림 1>을 보자. 많은 이들이 집값을 생각할 때 명목가격 추이만 생각한다. 그래서 집값은 늘 오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가격 지수 추이를 살펴보면 사정은 사뭇 달라 보인다.

 

<그림1>

<그림1> 국민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국민은행이 주택 가격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한국은 크게 두 차례의 부동산 버블기를 겪었다. <그림1>을 보면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1987~19915) 하강(19916~199811) 상승(199812~2006년 말) 하강(2007년 초~ 최근)의 파동을 그리고 있다. , 부동산 버블과 버블 붕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2009년 상반기나 2011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국지적으로 반등했다고는 하나,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2차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약한 흐름일 뿐이었다.

 

사실 2008년 말 집값 급락 후 집값이 죽 빠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부동산에 사활을 건 이명박정부와 바통을 이은 박근혜정부는 막대한 부동산 부양책을 동원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쳤다. 그런데 이런 부동산 부양책도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음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출구전략 신호를 계기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수준과는 상관 없이 시장금리는 일정한 오름세를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은 400조원의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해 96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위에 쌓아 올린 악성 거품이다. 이 같은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는다고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몇 년 째 유지하고 있는데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은 계속 떨어져 왔다. 사실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과 PF대출 잔액 등을 합하면 부동산 관련 부채는 650조원에 이른다. 또한 집값 대비 대출액의 비율을 나타내는 LTV 비율은 호가로 산정하고 있지만, 실거래가 기준으로 이미 훨씬 더 위험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무너지는 부동산 거품을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이나 만기 연장으로 미루고, 기업들에 대한 추가 대출 등으로 감추고 있지만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갈수록 돌아오는 만기 도래액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다.

 

아직 대구나 광주 등에서는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그건 수도권 주택시장의 부동산 상승여력이 다하자 부산, 대전, 울산 등지로 몰려갔던 부동산 투기세력이 그들 지역마저 가라앉자 마지막으로 대구나 광주로 몰려가 일시적으로 생겨난 현상일 뿐이다. 용머리-용허리까지 다 가라앉았는데, 용꼬리가 오르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 뒤늦게 철모르고 오르고 있는 지역인데, 곧 꺾이게 돼 있으니 결코 현혹되지 마라. 아래 <그림2>를 참고로 대구/경북지역 주택거래량을 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2012년 초반 이후로는 취득세 감면 여부에 따라 거래 진폭이 크지만 큰 흐름에서 거래량이 현저히 줄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대구조차도 집값이 오를만큼 다 올라 더 이상 그 가격을 유지해줄 수요가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2>

주) 국토해양부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나는 2008년말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경고했고, 2009년 찌라시들이 인천 청라, 영종, 김포한강신도시 등이 분양 거품을 만들어낼 때도 막차에 올라타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한 부산, 대전, 울산 등지의 부동산 가격이 뛸 때도 2~3년 이상 지속되기 어려우니 부동산투기에 가담하지 말라고 했다. ‘전세값이 뛰면 집값도 뛴다고 찌라시들과 대다수 부동산 투기 선동가들이 선동할 때도 전세값 상승은 부동산 침체기의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건설업계의 줄도산과 저축은행 부실 사태, 뉴타운 재개발 지역의 침체와 강남 재건축의 가파른 하락세,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대규모 PF사업 등의 좌초 등을 모두 경고했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동산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든지 수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대로 반성하고 일반가계를 위해 경고하는 언론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이해관계 때문에 사태를 정반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가계들이 이 같은 선동에 휘둘리고 있다. 그런 분들에게 제발 지금이라도 내 말 좀 들으라고 호소하기 위해서 거론한 것이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다들 알아서들 하겠지, 하다가도 정부나 언론의 잘못된 신호에 속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만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예지력이 있어서 오지랖 넓게 나서는 건 아니다. 다만 사심 없는 눈으로 부동산시장과 그를 둘러싼 한국경제 상황을 구체적 데이터를 근거로 분석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내가 분석해서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그런 내 눈에는 그동안 지연시켰던 거품 붕괴의 압력이 쌓이고 쌓여 올해 하반기부터 가파른 부동산가격 하락세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도 신이 아닌 이상 부동산시장 흐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예견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부동산가격 하락세가 폭락 양상을 동반할지 미, 일 등과 비교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큰 흐름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에 올 하반기 이후 최소 수 년 간의 집값 추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이 같은 부동산가격 추락 속도는 미국 출구전략의 여파나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의 불안정, 일본 아베노믹스의 여파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국내외 상황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다. 실은 이처럼 악화된 많은 부분들이 그동안 막대한 부동산거품과 가계부채를 쌓아올린 탓이기도 하다.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공공부채가 산더미인 나라에 인구 감소와 저출산고령화 충격이 향후 계속 주택시장을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2010년대 한국의 주택시장은 저출산·고령화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격히 진행되는 만큼 그 충격 또한 어느 나라보다 깊고 클 것이다.

그런데도 근시안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정부와 정치권은 그에 대한 전략적 대비가 부실한 상태다. 오히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빼기보다는 부동산 연착륙이라는 명목 아래 오히려 건설업체의 정상적 시장 퇴출을 지연시키고 부실 은폐를 방조하고 가계 부채 증가를 부추겼다. 단기적 충격을 줄이겠다는 욕심으로 주택시장의 가격 조정을 지연시키면 시킬수록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는 커지고, 주택시장의 침체는 길어질 뿐이다.

 

끝으로 이미 여러번 되풀이했지만 다시 한 번 나의 주장을 정리한다. 수많은 과오가 긴 세월에 걸쳐 누적돼 발생한 문제를 아무것도 없었던 양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많은 문제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더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집값 부양 시그널을 주지 않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주택정책 및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부동산 투기 사이클의 진폭을 키우고 하우스푸어를 대량으로 양산한 선분양제 같은 제도들 고치는 한편 공공임대/전세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 서민 주거난을 해소해가야 한다. 서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토록 무리한 주택 투기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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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7. 1. 11:29

양적완화 축소 및 종료 시기를 명확히 언급한 벤 버냉키 미국 연준(FRB) 의장의 발언으로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대규모 양적완화도 미증유의 경험이었지만, 양적완화에서 퇴각할 때도 미증유의 경험일 수밖에 없겠죠. 어떤 파장이 올지 불확실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적완화 퇴각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금리와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이 치솟는 것은 그만큼 지난 몇 년간 경제가 돈의 힘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돈의 힘에 기댄 비중이 높았던 나라들일수록 충격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계적 양적완화에 힘입어 외국인 증권투자가 쏟아져 들어온 가운데 한국은 공공부채와 가계부채를 급증시켰고,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양적완화라는 쿠션이 있을 때 해야 할 일들을 계속 미룬 결과 향후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 가운데는 원화약세로 수출이 증가하고 그에 힘입어 실적이 증가한 기업들로 인해 증시가 반등할 거라고 보도합니다. 물론 그런 효과가 없지 않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이미 몇 년간 환율효과 누려왔던 대기업들의 실적이 계속 위축돼 왔는데, 이렇게 다시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얼마나 더 큰 실적을 올릴지 의문이고요. 설사 그렇게 된다 한들 수입인플레로 인한 물가부담으로 내수가 위축되는 효과를 생각할 때 결코 반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양적완화 퇴각을 예상한 외국자본 유출 등이 더 큰 영향 미치겠죠.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국내 주식과 채권 등에 들어온 약 3000억 달러 이상의 돈들 가운데 일부라도 빠져나갈 때 증시와 환율, 시장금리 등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겁니다. 자본 유출입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죠.

오늘은 이 정도로 줄이고요. 다음 주 저희 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심층적으로 다뤄볼 테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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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21. 10:37

6 18일자 한겨레 1면과 4,5면에서 전한 이명박정부의 통계 조작 행위는 국정원 선거 개입에 이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하는 일의 특성상 나는 각종 통계를 매우 많이 들여다보는데 그 동안 분배지표 들여다보면서 가졌던 '통계조작' 의구심이 그냥 심증만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대표적인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가 노무현정부 때까지 계속 높아졌는데 경제위기 시작된 이명박정부 들어 오히려 지니계수가 더 낮아지는 것으로 통계를 조작했다. 그런데도 이런 통계조작을 통해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 때 악화된 소득격차를 개선했다'고 홍보한 것이다. 현실을 바꾼 게 아니라 통계를 조작해 사람들 인식을 조작하려 한 것이다. 이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범죄행위다
.

더구나 한계레 보도를 보면 상대적으로 조금 더 현실에 가깝게 작성된 지니계수 지표가 포함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대선 직후에 공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통계는 정확한 현실 진단과 대책을 내놓기 위해 꼭 필요한 국가 운영의 필수 인프라다. 통계가 왜곡되거나 부실하면 국가 운영에 큰 문제가 생기고 결국 국민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정부가고성장 기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했던 것처럼 보험료나 금반지 같은 것들을 물가개편 작업 때 넣지 않으면 물가 상승률이 실제보다 낮아진다. 실제로 201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간 4.0%로 한은의 물가통제 목표 상한선을 찍은 수치였다. 만약 이전 물가 체계를 그대로 가져갔더라면 그 수치는 4.4%로 많은 언론과 국민들의 더 많은 분노를 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물가통계를 실제보다 낮게 나오도록 마사지하면 한은이 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 경우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계속 지속돼 대다수 일반가계에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

사실 이밖에도 통계조작 의혹이 드는 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향후 인구추계 통계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은 2011년 새로운 인구추계 결과를 내놓으면서 갑자기 인구감소 추정 시기를 2018년에서 2030년으로 변경했다. 갑자기 무슨 사회경제적 큰 변화 발생한 것도 아닌데 12년이나 인구감소 추정 시기를 늦춘 것이다
.

인구감소 추정 시기를 늦춰잡은 가정 몇 가지를 보니, 2007년 이후 출산력이 가장 높은 30대 전반 여성의 일시적 인구 증가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거나 이명박정부의 적극적 이민정책으로 인한 국제인구순유입이 지속된다는 식으로 매우 낙관적으로 가정했다. 이미 올초부터 30대 전반 여성의 인구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출산율도 떨어지는 등 그 같은 낙관적 가정이 현실성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렇게 낙관적 가정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통계청 추계로 발표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종 연구와 정책들이 이뤄지니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

예를 들어, 인구감소 시기가 늦춰지면 건설업계가 주택 공급을 더 지속해야 하는 명분이 되기도 해 결국 가뜩이나 공급 과잉인 주택시장이 더욱 과포화상태가 되게 만든다. 또한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인구감소 시기가 늦춰져서 2030년까지는 대세하락이 안 일어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억측이길 바라지만 나는 실제로 정부가 통계를 통해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인구감소 시기를 늦추도록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또한 인구추계가 좀 더 낙관적으로 달라지면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재정추계도 실제보다 낙관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통계 왜곡이 일으키는 문제는 심각하다
.

또한 정부가 기초통계를 입맛대로 왜곡해 보도자료로 내놓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통계까지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기획재정부가 실효 법인세율 부담 관련 통계를 왜곡한 경우다
.

2012
년 들어 한겨레신문 등 상당수 언론이 삼성전자 등 재벌대기업들의 실효 법인세율이 매우 낮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자 기획재정부는 2012 7 19일 이를 반박하는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국세통계연보를 이용한 실효법인세율을 거론하면서 중소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이 13.1%로 낮은 반면 대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이 17.7%로 높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보도참고자료에서 기획재정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분류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그림1>을 보면 과세표준 구간별 실효법인세율 변화 추이를 숨긴 채 자의적으로 나눈 중소기업과 대기업 분류를 통해 상황을 호도했다. 기획재정부가 중소기업으로 분류한 대상기업은 상대적으로 실효세율이 낮은 50억원 이하 기업 23 2837개 기업이었다. 명목세율 10% 적용대상인 과세표준 2억원 이하가 79.5%를 차지해 실효세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잡은 것이다. 반면 대기업은 현행 최고세율 22% 적용 대상인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기업으로 잡았다. 언론은 삼성전자 등 극소수 재벌대기업의 실효법인세율 부담이 중견기업보다 오히려 낮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대기업의 범위를 넓게 잡아 사실상 '물타기'를 한 것이다.

<그림1> 기획재정부 실효법인세율 왜곡


) 2011년 국세통계연보 및 기획재정부 보도참고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실효법인세율이 200억원 이상~500억원 초과 구간을 지나면서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실효 법인세율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기획재정부가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자의적으로 구분해 실효법인세율을 제시하다 보니 50억원 초과~100억원 이하, 100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과표 구간 기업들이 기재부 분류에서는 통째로 빠져 버렸다.

꼭 통계 조작이나 마사지, 통계 왜곡이 아니더라도 실업률, 물가, 부동산 가격, 미분양 물량, 심지어는 GDP통계까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부실한 통계들이 국내에는 수두룩하다. 그런 부실 통계들을 바탕으로 국가운영을 하니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통계가 엉터리니 코미디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모두가 체감하듯이 고용난이 매우 심각한데도 일시적으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의 자영업 일자리가 많아지니 박재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대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 국민은행 주택가격은 3%밖에 안 떨어졌는데도 4.1종합부동산대책 같은 대대적 부양책을 내놓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국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몇 년 전일반 국민들이 부동산 호가에 속지 않도록 국토해양부 실거래가를 왜 국민들이 보기 편하게 만들지 않느냐 LH공사에 문의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답했다.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요,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익히 알다시피 한국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이 기득권에 유리하게 왜곡돼 있다. 정부 정책이나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증권사나 정부 산하 연구소, 재벌계 연구소 등은 이해관계나상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은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보들을 주로 보도한다. 그런데 이 같은 정보 왜곡을 바로잡고 공익에 봉사해야 할 정부부터가 오히려 기초통계를 조작 또는 왜곡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앞서 말했듯이 통계는 국가운영의 기초 인프라다. 이 인프라를 정권의 입맛에 따라, 또는 일부 정부 부처의 관료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중대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정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통계 조작이나 왜곡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뜩이나 부실한 통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통계 시스템 구축체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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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19. 06:34

 

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JTBC ‘썰전에 출연하고 있는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해 이미지세탁을 하고 있다며, 대중을 우습게 아느냐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의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강용석도 문제지만, 이들을 내세우는 방송이나 제작진도 정말 문제다. 우리가 아무리 똘레랑스를 베풀더라도 타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는 극우파시즘세력까지 용인하지는 않듯이, 공적으로 우리가 수용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용석은 그간 그의 언행으로 볼 때 깊은 반성과 회개를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공직 진출은 물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송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그런 사람은 걸러내는 것이 맞다. 언론이 일베류의 5.18광주에 대한 증오 발언과 모독성 주장들을 그대로 방송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강용석을 출연시킨 JTBC썰전제작팀도 반성하고, 그를 지금부터라도 출연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편 진중권교수의 종편 출연에 관해서도 이런 저런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종편에 관해서는 여러 입장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크게는 종편 활용론종편 거부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종편 거부론 쪽에 가깝지만 종편 활용론이 일리가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보는 방송에서 자신의 메시지나 주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물론 자신의 발언 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는 종편으로 전환되기 이전부터 출연했던 MBN에는 지금도 여건이 맞으면 출연하기도 한다. 종편이라고는 해도 기존에 있던 방송이 거의 그대로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중동 종편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종편이 생겨난 배경부터가 조중동과 이명박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방송이고 절차상으로도 매우 하자가 많은, 사실상 불법 날치기를 통해 태어난 방송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논리적 이유라면 좀 더 솔직한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다. 나는 나는 꼽사리다의 패널로 참여하면서 종편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썰전을 비롯해 조중동 종편 여러 곳에서 인터뷰나 출연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두 했고 이젠 소문이 충분히 났는지 이제 나를 조중동종편에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정말 그 방송들이 탄생 과정과는 무관하게 정론의 방송으로 거듭난다면 입장을 바꿀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미 TV조선이나 동아 채널A‘5.18광주 북한국 침투보도 등이 보여주듯이 개과천선할 가능성도, 그럴 이유가 있는 방송들도 아니다. 물론 관련 방송을 하지 않은 JTBC는 조금 다르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JTBC 내부적으로 문화방송 등 기존 방송사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가있고, 조선과 동아 종편방송과는 차별화되는 방송을 만들려고 한다고 알고 있다. ‘시선집중을 진행하던 손석희씨를 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그런 시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손사장 역시 좋은 뜻을 분명히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손석희의 JTBC’ 보다는 ‘JTBC의 손석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1년여 전 그가 민언련 언론학교에서 오랜 동안 강의해 감사패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올해 민언련 언론학교 강의 4년 째인 나도 같은 감사패를 받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 그 자리에 선 그가 너무나 멋져보였기 때문이다. 민언련 언론학교는 강연료는 있지만 강연료가 적어 그에게는 아마 기부강연에 가까웠을 터.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언론학교 강의를 맡아왔다는 게 내게도 참 고마웠다. 그리고 그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 선 그가 내게는 가장 우러러 보였다.

그리고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내 자존심의 마지노선이 있다. 사실 나도 선대인경제연구소라는 사업체를 꾸린 이상 조건만 맞는다면 언론에 출연해 연구소를 알릴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꼽살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를 쳐다보게 된다. 방송계에서 베테랑 코미디작가였던 그는 사실 JTBC ‘썰전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초기에 받았지만, 이를 뿌리쳤다. 사실 그는 공인도 아니지만 나꼽살에서 우리가 했던 말 때문에 그는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짭짤한 그 제의를 단칼에 뿌리쳤다. 참 존경스럽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그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나도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내가 가진 자존심의 마지노선이다.

그리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조선, 동아의 종편방송보다는 중앙의 JTBC가 물적 토대 측면에서 오히려 더욱 위험한 방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럴까. 이 사회에서 삼성의 힘은 곧 돈의 힘인데, 삼성은 이 돈의 힘으로 사람들의 인식까지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JTBC가 그 한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어떤 종편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가 대주주인 JTBC, 이른바 중앙종편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삼성방송일 것이라는 추측을 누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종편의 자본금 납입 과정을 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삼성방송이라는 심증을 확실히 굳혀준다.

홍석현 회장은 2009년 미디어 관련법의 날치기 통과 이후 편집국 간부회의에서 종편 진출을 위한 선제적 포석으로 사재 1500억 원을 종편 자본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시는 경기 급락으로 중앙일보 광고 매출이 급감해 2009년 상반기에만 39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중앙일보는 2008년부터 신문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바꾸기 위해 윤전기 여섯 대에 1000억 원 가량을 투자해 자금 사정까지 안 좋았다. 그래서 중앙일보의 종편 참여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홍회장이 호기롭게 거액의 사재 출연을 선언함으로써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홍회장은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홍회장의 1500억 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바로 삼성코닝정밀소재(이하 삼성코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삼성코닝은 삼성전자와 미국계 코닝 사가 합작해 설립한 비상장회사다. 주로 LCD TV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의 특수 유리를 공급하는데, 삼성전자 등 독점적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는 알짜배기 회사다. 비상장기업인 삼성코닝의 주주는 미국 코닝 사(49.5%)와 삼성전자(42.6%) 그리고 홍석현 회장(7.32%), 우리사주조합(0.23%) 등이다. 그런데 삼성코닝은 삼성전자와 홍회장 및 우호 지분을 합치면 50%가 넘기 때문에 이회장의 지배하에 있는 삼성전자와 홍회장만 의결하면 사실상 얼마든지 배당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삼성코닝은 그렇게 했다.

2010년 삼성코닝은 국내 주식 배당 역사상 가장 많은 배당을 실시했다. 모두 33600억 원의 배당을 실시했는데, 이는 삼성코닝의 그해 순이익 32900억 원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보통 배당은 한 해에 번 순이익에서 일정액을 떼어 배당하는 것이므로 순이익을 넘어서 배당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2464억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은 홍회장은 2011년 압도적인 격차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은 인물이 됐다. 2위인 박의근 보나에스 대표가 받은 배당금 590억 원의 네 배 이상을 챙겼으니 말이다. 홍회장은 이 돈으로 중앙종편 자본금 1500억 원을 납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자신의 다른 사재로 납입했다고 해도 주머닛돈이나 쌈짓돈 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홍회장이 삼성코닝으로부터 받은 배당금 2464억 원은 정말 홍회장 자신의 돈일까.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신도 못 받는 엄청난 현금 배당을 처남인 홍회장이 받게 했다면 정말 너그러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앙종편에 들어간 1500억 원은 결국 삼성 꼬리표를 뗄 수 없는 돈이라는 점이다. 홍회장이 삼성코닝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본인 돈이든, 이회장이나 다른 삼성 일가의 돈이든 말이다. 중앙일보에 이어 중앙종편의 돈줄도 결국 삼성인 건 변함 없는 셈이다. 중앙종편, 태생이 삼성방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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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17. 12:47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삼성 등 재벌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폭되고 있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삼성은 대체로 찬사의 대상이다. 삼성전자 등의 눈부신 실적 등의 영향이 크지만, 나는 대체로 그것이 언론 굴종의 산물이라고 본다. 1999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법 상속 문제를 참여연대가 처음 제기했을 때 당시 신문기자였던 나는 내가 쓴 관련 기사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 날 나는 그 신문이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파는 거래를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문 사주의 아들은 삼성가의 둘째 딸과 결혼했다.

그 신문만이 문제인가.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이 삼성에게 영혼을 팔아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다. 예를 들면, 20102월 이건희 회장 발언에 대한 언론 보도다. 당시 이회장은 삼성특검 수사 결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고 139일만에 초고속 특별사면을 받았다. 오로지 회장님 한 분 만을 위한 원포인트 특사였다. 그렇게 특사를 받고 풀려난 지 단 3개월. 그는 이병철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이회장이 화두를 던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게 정직이라고 가르칠 수 있나.

보통 이 정도 얘기하면 재벌가인 삼성가와 삼성그룹의 기업들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가의 행태와 무관하게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의 선전은 평가하자는 얘기인데,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삼성가와 삼성그룹이 그렇게 쉽게 분리될 수 있나. 쥐꼬리 만한 지분을 가진, 철학자 김상봉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아무런 법적 실체도 없는 회장님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재벌체제 속의 기업들이 어떻게 삼성가와 분리돼 움직인다는 건지 나는 잘 상상이 안 된다.

어쨌거나 삼성재벌은 이미 한국경제의 대주주다. 그래서 그나마 삼성 때문에 먹고사는 것 아니냐”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경제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미 삼성에 매수된 언론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자 프로파간다다. 하지만 대다수가 믿어버리면 진실이 된다. 삼성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어쩌면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돈의 힘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동굴의 우상과 동굴 밖 찬란한 태양 아래 놓인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확하게 재벌독식 체제 때문에 한국의 산업생태계는 질식해 활력을 잃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구글,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학교 기숙사나 집 안의 주차장에서 시작한 벤처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벤처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좀 된다 싶은 사업이 보이면 삼성 등 재벌이 인수해버리거나 시장에 들어가서 해당 기업을 고사시켜버리거나, 특허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이건희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 있다. 이회장이 내심하고 싶었던 말은 삼성이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99% 국민을 등쳐서 자신들의 부를 불리고 있는 것에 가깝다. 삼성이 정말 순전히 자신들의 경쟁력만으로 지금과 같은 엄청난 실적을 낸다면 나는 기꺼이 박수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삼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을 싹쓸이하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 마음 편히 갈채를 보내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체제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일자리가 줄고 협력업체와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말 나온 김에 삼성이 누리는 특혜를 몇 가지만 열거해보자. 우선 환율효과.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경제위기 전 900원대 초반이었다가 경제위기 이후 1100~1200원대를 유지해왔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했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240원대이던 환율이 지속적으로 올라, 즉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수출대기업들을 도와주면서 성장했다. 수입 인플레로 소비자들은 늘 만성 불가 불안에 시달리면서 수출대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온 셈이다. 요즘 일시적인 엔저로 수출 비상운운하지만 삼성전자 등 수출대기업이 누린 혜택은 엄청나다. 내가 분석해본 결과로는 매 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가운데 최소 3분의 1가량은 환율효과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뿐인가. 2012년 예산안 기준으로 16조원이 넘는 R&D 투자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이 향유한다. 일부 기득권 언론들이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사실상 조세도피처를 경쟁국으로 비교하며 한국의 법인세율이 높다고 질타하지만 국내 법인세율은 일정한 내수규모를 갖춘 대다수 OECD 국가들보다 낮다. 특히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으로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법인세 부담을 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상대적으로 가계들이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대신 낮은 산업용 전기료 부담으로 가장 많은 보조를 받는 것도 삼성이요, 늘 담합을 주도해 거래 업체나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 가장 많은 부당이득을 취하고도 리니언시제도의 힘을 빌려 가장 많은 과징금 면제혜택을 받는 것도 삼성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삼성이 한국을 떠날 수 있으니 삼성을 더 잘 모시라고 떠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우리는 삼성에 엄청나게 몰아줬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잘 살게 되고 더 행복해졌나. 한국경제의 많은 자원을 삼성에 몰아주고, 삼성전자는 모바일부문에 몰아준 결과 한국경제는 당장 경제 포트폴리오 면에서만 봐도 매우 취약해졌다. 외국자본들의 작전논란에도 불구하고 JP모건의 리포트 한 방으로 삼성주가가 무너지고, 한국 증시가 기진맥진하는 이유는 뭔가. 삼성사옥 앞에서 만난 한 삼성 직원은 그래도 관리의 삼성이 충분히 잘 관리할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한국경제가 불안하다.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기보다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이 튼튼해 가계가 스스로를 믿고 살 수 있는 경제를 보고 싶다. 내가 아는 삼성 직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사상 최대의 승진 잔치 이면에 사상 최대의 살육(=해고)이 진행되는 회사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직원, 사회공동체와 공존공영하는 착한 회사가 한국의 대표 기업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삼성에도, 한국 경제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선대인경제연구소가 준비한 특강 시리즈 <경제 마스터 클래스> 2탄 '생활의 경제학'! 이번 특강은 사교육, 노후대비, 부동산, 소비, 커리어전환 등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들에 관한 강의들로 구성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링크 연결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http://www.bizhard.com/pub/weblink.aspx?guid=REU1RjY5ODk2MTVFOTJFRkUwNDAwMDdGMDEwMDEyNEN8MTM4MzY0ODQw.jpg

by 선대인 2013. 6. 14. 10:56

 

4.1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 저는 이 대책의 효과가 불과 몇 개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당시 썼던 글에서(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669020) 밝혔던 것처럼 부동산시장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 한들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본 것입니다. 결과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약한 것 같습니다. 4.1대책 직후 부동산시장이 들썩인다고 호들갑 떨던 기득권신문들이 이제는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다시 집값이 추락하고 있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변석개하는 그들의 보도 행태를 보고 있자니 처량하기까지 합니다만, 그 사이 잠재적 하우스푸어 행렬에 뛰어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대략 3~6개월 정도의 효과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불과 ‘2개월 천하로 끝나는 모양입니다.

결국 빠질 거품은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도한 집값은 결국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막대한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아무런 충격이 없을 거라고 상상하긴 어렵습니다. 각각 1000조원 가까이 쌓아놓은 공공부채와 가계부채, 그리고 5년 째 거치기간과 상환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는 주택대출. ‘부동산 연착륙을 외치며 내놓은 각종 부양책들이 결국 길게 보면 이런 식으로 부동산 경착륙의 에너지를 키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4.1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기는커녕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를 더 키우고, 가격 조정 과정을 더 지연시키고, 잠재적 하우스푸어들을 더 늘려버렸습니다. 4.1대책의 효과가 끝난 뒤 지연된 만큼 가격 하락 폭은 더 커지고, 침체 기간도 그 만큼 더 길어질 것입니다.

4.1대책 직후 일부 언론이 종합선물세트라고까지 표현했던 대책조차 약발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언론에서는 단순히 6월까지인 취득세 감면 종료 시점 때문이라고 그러는데, 과연 그 때문일까요? 혜택 종료 시점이 아직 남았는데도 거래가 위축되면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는데, 이게 순전히 취득세 감면 효과 때문일까요? 물론 취득세를 면제한 것이 대책 발표 후 약간의 효과를 발휘하긴 했겠지요. 그런데 취득세를 감면해줘야 겨우 한두 달 거래가 (그것도 큰 흐름에서 볼 때 여전히 바닥 수준이지만) 느는 식으로 부동산시장의 대세를 바꿀 수 있을까요?

부동산시장이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가계들은 기득권언론들의 선동보도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마시고, 오히려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라도 건설업자들과 금융업체, 부동산 부자들 중심의 부동산 대책을 폐기해야 합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저서장 저소득 시대, 1인가구 급증 시대의 달라진 주택패러다임을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부동산정책을 내놓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차원에서 엄청난 혼란과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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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10. 10:37

 

 

저희 연구소가 주최한 <경제마스터클래스> 1탄이 4일 저의 강의(언론에 속지 않고 경제흐름 읽는 법)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간단한 설문조사 결과 수강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많이 고무됐습니다. 이번 특강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좋은 경제특강 시리즈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 수강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다음 기회에는 꼭 수강해 보시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아래 소개하는 글들은 이번 특강에서 제가 소개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1990년과 2008년(사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의 동아일보는 전혀 다른 신문이 돼버렸습니다. 1990년 대학에 입학한 저는 대학시절 내내 한겨레신문을 주로 봤지만 동아일보도 적지 않게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자본권력에 굴종하고, 이 사회의 기득권에 아부하는 신문의 변질을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1991년 당시 김중배 동아일보 편집국장(이후 문화방송 사장도 역임)이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했었는데, 그 계시적 발언이 현실화되는 것을 생생히 체험한 셈입니다.

물론 동아일보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가장 영향력 있던 신문, 그리고 제 생각에 조선, 중앙과는 달리 한국사회의 정론이자 수준 높은 공론장이 될 수 있었던 동아일보의 변질과 추락은 한국언론사에서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저에게 동아일보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한편으로는 6년간을 함께 보낸 선후배동료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신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1% 기득권의 또 다른 대변지가 된 신문...지금이라도 저는 동아일보가 조선, 중앙과는 달리 한국 사회 여론의 균형추 같은 역할로 돌아와 주길 바라지만 이미 기대 난망인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 동아일보가 가졌던 위상과 브랜드도 이제 모두 사라졌고, 신문의 품질도, 엄정한 비판의 목소리도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10년 전까지 (적어도 사석에서는) 멀쩡한 생각을 가졌던 선배나 동료들이 이상한(?) 칼럼을 쓰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자회사인 종편 채널A는 '5.18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방송을 편성하고, 편성 책임자인 과거 동아일보 선배는 "북한군이 침투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디 있느냐"고 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1990년과 2013년의 동아일보, 그리고 저와 선후배동료들 사이에 같은 세월이 흘렀는데 간극은 왜 이렇게 천지차이로 벌어진 걸까요? 그 사이 재벌 등 부패한 자본권력의 무한 증식과 대한민국 여론지향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겠죠. 어쨌든 저는 1990년의 동아일보가 지향했던 정신, 그리고 제가 걸오온 길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참고로, 아래 인용한 1990년의 사설은 '주저앉은 나그네'님의 다음 아고라 글에서 제가 퍼온 것입니다.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16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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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6. 7. 12:28

 

최근 뉴스타파의 명단공개로 국내 재벌가와 고관대작들의 조세 도피와 역외 탈세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신흥개발국 가운데 한국의 해외 재재산 도피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3위에 이를 정도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이처럼 조세 도피와 역외 탈세가 심각한 줄 한국정부가 그 동안 과연 몰랐을까? 특히 이명박정부가 과연 몰랐을까?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수출입 등 실물거래의 증가 없이 이른바 조세도피처로 빠져나가는 국내 투자 규모가 급증했기 때문에 정부가 이 같은 흐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림1>을 보자. 선대인경제연구소가 국제적으로 조세도피처조세정보 비협력국으로 분류되는 42개국에 투자되는 투자금액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2005년까지 1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던 이들 지역에 대한 투자금액이 2006년 이후 급증해 2007~2012년까지 50~6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다. 조세도피처로 향한 투자 규모가 5~6배나 급증한 것이다. 물론 2000년대 초에도 외환위기 직후의 혼란기에 헐값에 자산을 가로채거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빼돌린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07년 이후의 조세도피처 투자 급증은 그와는 달리 재벌 3,4세 승계 등을 앞두고 해외 투자 형태로 자산을 외국에 빼돌리는 경우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당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듯이 당시 이명박정부의 실세 등이 대규모 비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림1>

주) 한국수출입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또한 법인별 투자규모를 비교해보면 조세도피처에 투자된 법인당 투자규모가 조세도피처를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법인당 투자규모보다 두 배 이상 크다. 대부분 조그만 섬나라인 곳에 투자하는데도 투자 규모는 오히려 일반적인 경우보다 두 배 이상 크다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가. 또한 <그림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세도피처에 대한 투자액은 이 지역들에 대한 수출액과 거의 상관관계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는 나타내지 않았지만 실제로 상관 분석을 해보면 상관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일반적으로 투자액과 수출액이 연동하는 일반적인 지역의 경우와 상당히 다른 흐름이다. 해당 지역에 대한 수출입과 거의 무관하게 투자액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2>

주) 관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더구나 이처럼 정부에 신고하지 않은 채 불법으로 국내 재산을 빼돌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불법 자금들은 정식 신고된 투자금과 뒤섞여 각종 은밀한 금융거래를 통해 은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뉴스타파가 현재 발표하고 있는 사례들은 대부분 정부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경우들로 추정된다. 통계자료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국내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으며, 이들 자금의 상당수가 비자금이나 탈세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재벌 3,4세 승계를 앞두고 해외 불법자금 도피가 기승을 부린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한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는 3년 전쯤 요즘 재벌가들이 국내 재산을 해외로 엄청나게 빼돌리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실태를 정부가 몰랐을까. <그림>에서 나타낸 자료는 관세청과 수출입은행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이들이 이 같은 조세도피처에 대한 투자는 모두 정부에 신고한 뒤 투자된 금액인데, 이 같은 실태를 정부당국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국회 박원석의원실에 따르면 국세청과 관세청, 금감원간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2010~2012 50억 원 넘는 불법외환거래 38건에 대한 형사처벌은 전무했다. 어쩌면 국내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했던 이명박대통령이나 핵심 실세들과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조세도피처에 대한 투자액이 급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어쨌거나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지금 뉴스타파가 발표하는 명단은 빙산의 일각 중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뉴스타파가 의존하는 명단은 겨우 두 개의 조세도피처 대행회사에서 나온 정보들을 확인한 것일 뿐이다. 또한 역외 탈세를 노린 재산 도피는 법인이 아닌 신탁(trust) 형태로 위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신탁의 형태로 된 것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발표되고 있는 금액도 몇 십억~몇 백억원 단위여서 최근 몇 년 동안 조세도피처로 빠져나간 자금 규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정보들을 탐사해 보도하고 있는 뉴스타파의 노력과 이들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은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연구소 차원에서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있으며, 결코 한국의 거대 언론들이 하지 못한 일을 '독립언론'인 뉴스타파가 해내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열쇠는 정부가 갖고 있다. 정부당국은 훨씬 더 많은 관련 자료를 갖고 있으며, 미국 영국 등 공식적으로 국제공조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예를 들어, 뉴스타파가 발표한 명단이 정부에 신고된 투자인지, 아닌지는 관세청이나 금감원 등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전혀 관련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나 글로벌 수퍼리치들에 대한 글로벌 과세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비밀 금융과 조세 체계를 활용한 역외 탈세 문제를 쉽게 추적하고 근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당국은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일반 국민이자 납세자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눈을 부릅떠서 계속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 99% 1%에 속지 않는 정직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연구소의 연간 구독회원이 되시면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한편 연구소의 정직한 목소리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by 선대인 2013. 6. 4.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