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 공사가 착공식도 없이 시작됐다. 경인운하 사업을 맡고 있는 수자원공사측은 얼마 전 경인운하 관련 공청회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자물쇠 공청회’를 연 바 있다. 환경영향평가도 요식행위처럼 뚝딱 3개월만에 해치웠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것처럼 그렇게 꼭 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왜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지 모르겠다. 마치 부잣집 담을 넘는 ‘밤손님’의 행태처럼 느껴진다. 


지난달에는 경인운하 사업에 지난 1월 확정된 정부 추정 사업비보다 3800억원 정도가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획재정부의 내부보고서 내용이 보도됐다. 재정부 내부 보고서대로라면 이 사업의 비용편익(B/C) 비율이 1이하로 떨어져 사업의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 거리인 곳에 물류를 수송하기 위해 운하를 판다는 사업에 애초부터 경제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한심스러운 일이다. 


거꾸로 어떻게든 경인운하 사업을 하기로 작정한 ‘불도저 정부’에게 경제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이 같은 토건사업을 통해 현 정부가 얼마나 많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지, 그리고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현재 예정된 경인운하사업 6개 공구의 총공사비 추정가격 1조 3500억원의 약 30% 정도인 4000억원을 낭비하게 된다. 경인운하사업을 턴키입찰(설계 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짧은 지면에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턴키입찰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위 10개 재벌건설사들은 설계비용에 들어가는 거액의 선투자 비용을 시장 진입장벽으로 활용, 지금까지 턴키 입찰 물량을 거의 싹쓸이해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각종 턴키입찰에서 철저한 가격 담합을 통해 경쟁입찰에 비해 평균 30% 가량 높은 추정공사비의 95~98% 수준에서 공사를 수주했다. 건설업체들간 경쟁하게 하면 아낄 수 있는 돈 30%를 낭비했다는 뜻이다. ‘떡고물’이 워낙 많다 보니 담합과 뇌물 수수 등 부패의 온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도 턴키사업을 남발했다. 청계천사업, 동남권 유통단지(가든파이브),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과 지하철 3호선 연장구간 등을 모두 턴키로 발주했다. 심지어 일반 주택단지를 만드는 은평뉴타운사업조차 턴키로 발주했다. 그 결과 부작용도 심각했다. 7000억원에 할 수 있었던 가든파이브에 1조원 이상이 들어간 결과 고분양가 때문에 상가 입점이 극히 부진한 상태다. 은평뉴타운은 과다한 토지보상금과 더불어 턴키 입찰을 통한 사업비 과용으로 후임자였던 오세훈 시장 초기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진행됐던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등에서는 업체들간 담합이 드러났고, 청계천사업과 가든파이브 사업에서는 각종 비리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심지어 청계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현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낭비된 예산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주장을 들으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행태를 이제 전국 단위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당장 경인운하사업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등 대규모 토목사업 대부분이 턴키 공사로 예정돼 있다. 재벌건설업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고분양가로 마구잡이 주택사업을 벌였다가 미분양에 물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이 시장의 채찍질은커녕 정부의 퍼주기 예산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말로는 ‘서민경기 부양’이니 ‘일자리 창출’이니 내세우지만, 결국 세금으로 재벌건설업체들을 위해 차리는 푸짐한 잔칫상이라는 것을 건설업계는 너무나 잘 안다. 이처럼 현 정부 ‘삽질경제’의 이면은 바로 부패경제, 반칙경제, 불공정경제인 것이다. 이 같은 이면을 들키지 않으려니 사업 추진 과정이 밤손님 행태를 닮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30. 10:11

지난주 금요일 (3월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 학회의 정책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대략 주택시장 전망 및 미분양 물량 해소 대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 예전에 TV토론에 패널로 함께 참석한 교수가 사정해 마지못해 참석했습니다. 건설업계와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그 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판단도 했고요.

우선, 학회 세미나라고 하는데 총 참석자가 발표자, 토론자, 중간에 돌아간 사람들까지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고 토론 시간이 되니 학회 관계자들을 뺀 방청객은 20여명 정도밖에 안 돼 보였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갈 때 방청객 한 무리에 물어보니 무슨 도시계획연구소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온 방청객 20여명도 사실상 관련 교수나 연구소에서 동원됐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만의 행사를 벌인 것입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미나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제가 듣기에는 기본적으로 논리에 닿지 않거나, 건설업계를 위한 논리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귀담아들을만한 얘기를 하시는 분은 한양대 임덕호 교수였습니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이토록 급증한 것은 선분양제도 때문인데, 후분양제로 이행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분의 평소 지론이라고 하시던데, 제가 시사경제에 썼던 내용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하시더군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초청한 분에게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함께 토론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상당히 놀란 부분은 참석자 상당수가 집값 전망에 대해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한건설협회 부설 건설산업연구원의 김모 박사조차도 이번에는 외환위기와 같은 V자형 반등은 어렵고, L자형 침체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불과 6개월 전 TV토론에서 '집값 폭락은 없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일시적으로 주택시장이 가라앉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했었던 분이니 말입니다. 그 분 발표를 듣는데 TV토론 때 했던 그 분 발언이 생각나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김 박사뿐만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들뿐만 아니라 토론자의 상당수가 주택시장 전망을 했는데, 대체로 향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114 사장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한양대 임덕호 교수님, 발표자로 나선 건설관련 연구소의 김모 소장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김소장은 2010년 하반기경 공급 물량 부족 때문에 일시적으로 집값이 단기적으로는 꽤 오를 수도 있다고 보긴 하더군요.

 

물론 비슷한 전망을 하더라도 결론은 크게 달랐습니다. 발표에 나선 김 박사나 김 소장뿐만 아니라 참석자의 상당수는 결국 침체를 피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나마 김 소장은 건설업계가 시장 상황에 대응해 분양가를 내리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을 하더군요.

 

세미나 끝나고 나서 참석자들이 모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더군요. 저는 먼저 나왔습니다. 사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봐야 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우연히 세미나 관련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아마 학회가 낸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쓴 것 같았는데, 정부에 대해 주택시장 침체 극복을 위해 이러이러한 지원책을 주문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저를 초청해준 교수님의 의도는 아니겠지만(사실 그 분은 주택정책에 관한 한 상당히 서민들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왔던 분입니다), 왠지 들러리 선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위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를 대변하던 ‘전문가’들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일시적인 반등과 부침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정부에 앓는 소리해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제 현장에 기자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기자들이 없으니 이들도 비교적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한 탕'을 노리시는 분이 아니고 정말 주택의 실수요자라면 길게 내다보시길 바랍니다.

 

참, 주택업체 관계자가 현재 미분양 물량은 실제의 70% 수준에서 신고한 물량일 거라고 하더군요.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참고삼아 전해드립니다.


by 선대인 2009. 3. 30. 09:51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예정보다 나흘 앞서 발사대에 장착한 것으로 확인돼 발사일을 앞당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오늘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문제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가진 'yjw23'님이 우리 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 올린 '직시해야 할 북한 위협의 한계'라는 글을 좀더 많은 분들께 읽히고자 소개합니다. 최근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사태와 관련한 북한 태도에 대한 훌륭한 분석입니다. ***********************************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우주개발의 일환으로 4월 4∼8일 사이에 통신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지난 3월 11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통보했다(ICAO 전문 바로가기). 이에 대해 미국, 일본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남한과 함께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남한과의 무력충돌을 시사하고 개성공단을 수시로 차단하는 등 남한에 대해서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남한에 대한 적대정책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 불이행, 제63차 유엔총회에서 있었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남한의 공동제안, 탈북자 단체의 삐라살포에 대한 남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 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상할 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2008년과 달리 비난을 자제하는 등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나타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대해 한 보수언론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그렇게도 원하면서 기회를 걷어차는 북한 당국의 처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북한 외교를 총괄하는 두뇌에 고장이 생겼거나 내부 상황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판단마저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이 상당한 강수를 두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시각에 따라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정상적인 대외정책 결정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얼핏 보기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외교정책에 있어서 일정한 목표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남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를 살펴보자.

 

북한은 지난 2월 24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를 통해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 2호'를 운반로켓 '은하 2호'로 발사하기 위한 준비를 본격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요격 가능성을 시사했고, 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그러한 시도를 할 경우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은 발사를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발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실(失)보다 득(得)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중동에서 벌여놓은 전쟁을 수습하느라 바쁜 상황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역시 최근 아시아 순방에서 북핵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면 관계 정상화와 국제경제 협력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동일한 대답만을 반복했다. 북한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을 압박하여 북한에 주목하도록 하기 위한 강력한 유인이 존재하는 셈이다. 내부적으로도 최근에 있었던 김정일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과시해 체제결속력을 다질 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인공위성’ 발사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또한 전 정부와 다른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는 남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된다. 반면 북한이 발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UN 안보리 결의안 제1718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UNSC 1718 전문 찾아보기). 그러나 조악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인공위성으로 판명될 경우 UN 결의안 1718조 적용가능 여부가 불분명하며, 설령 제재가 가해진다 하더라도 현재 북한이 받고 있는 제재의 수준을 감안할 때 추가제재가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압박은 미미하다 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발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남한을 비롯해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인공위성이든 미사일이든 발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발사를 시도하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발사는 내부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북한의 극단적인 선택의 일환인가,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하나인가. 

 

  이와 관련해 북한은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 2호’를 발사하겠다고 미리 통보한 것이다. 1998년 동해상으로 대포동1호 미사일을 발사할 당시 국제사회에 어떤 예고나 통보도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해사기구(IMO)에 위험좌표를 제시하는 ‘친절’을 베푸는 한편, 인공위성 발사 관련 국제조약에도 가입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들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와 미국의 요격 움직임을 무력화하려는 명분 쌓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로켓발사를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어 협상력을 높이고, 남한 정부를 압박하며, 대내적으로 체제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로켓발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이를 공격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는 사인(sign)을 간접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를 눈치 채서였는지 미 국가정보국(NI) 국장인 데니스 블레어는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이 인공위성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으며,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역시 19일 북한이 현재 일본 오키나와, 괌,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중이라고 밝히면서도 북한에 의한 단기적이고 명백한 도전행위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북한의 움직임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본다면 최근에 벌어진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의 의도와 범위 역시 보다 분명해진다. 즉, 북한이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간의 조약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지만, 미국을 자극할 정도의 긴장상태를 한반도에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은 군 통신선을 절단하고 남북간 육로통행을 금지해 남측인원을 실질적으로 감금하는 등 긴장상태를 조성했으나 키리졸브(Key Resolve) 한미 합동군사훈련(3. 9~20)이 끝나자 이러한 조치들을 해제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이 남북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리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이는 [도표 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남북교역이 늘어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이 지난 1년간 이명박 정권을 강하게 비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남북교역량은 18억 2,000만 달러로 2007년의 17억 9,700만 달러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보다 흥미롭다. 남한 정부의 대북지원은 2007년 3억 1,900만 달러에서 2008년 6,700만 달러로 약 1/5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는 남한 정부의 대북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제성 거래와 비결제성 거래를 비롯한 남북 총교역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는 남북교역의 관성이 민간영역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북한이 정부차원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민간차원과 함께 실리를 추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도 북한이 남북관계에 있어 이와 같은 관성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2009년 1월의 남북교역량이 1억 1,302만 달러로 전년 동월의 1억 4,050만 달러에 비해 약 19.6% 감소한 점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북한이 외화수익원이 다변화된다면 이명박 정부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북한이 보다 강경한 수단으로 남한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가늠해보았다. 지금까지 본 바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계획하고 있으나 미국 등에 공격적인 행위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물론 미사일 발사는 여러 가지 의미와 효과를 갖는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의도 역시 일정한 한계와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실리를 취하면서도 남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대미관계에 변화가 생길 경우 위상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남한과 미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러한 압박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민감한 시점에서는 그러한 온도차를 감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판세변화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이미 어떤 그림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이에 반해 남한은 원칙고수로 일관하고 한미공조를 근거로 통미봉남 가능성을 일축하는 등 북한과의 소통은 뒤로한 채 현 정부가 내세운 대북정책의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위기의 한계를 명확히 직시하고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위협을 과대평가해서 부화뇌동하거나 우리 정부처럼 원칙론만 내세워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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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26. 10:55
 

YTN 노조 파업을 주도했던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지난해 9월 그를 인터뷰했던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노 위원장은 YTN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돌발영상’을 처음 제안하고 안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노 위원장은 먼저 “(현 정권은) 방송을 정권 우호 세력으로 만들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를 보내서 공정방송을 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며 현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그때 “절대 지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력의 탄압으로 지금은 구속된 상태지만, 그와 YTN노조의 공정방송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이해하고 현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가 저지되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필자는 당시 그와 인터뷰하고 나서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썼는데, 지금 읽어봐도 마지막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가슴에 와 닿는다. 당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소개한다.


-원론적 질문을 한 가지 하겠다. YTN은 ‘공정방송’을 지향한다고 했는데, 공정방송이 왜 중요한가?


 


시민인 시청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바르게 이해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세상 일을 전하는 권한, 사실 굉장한 권한인데, 그 권한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권한을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 정부 못지않게, 조중동 등 기득권 신문들이 현 정권의 입맛에 맞춰 방송사들을 공격하는 등 정권의 선동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 신문의 보도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공정하지 않다. 철저히 사주의 이익에 봉사해왔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 언론 환경에서 언론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번 낙하산 인사 문제만 하더라도 그들 언론이 얼마나 정치적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보도하는지 알 수 있다. 몇 년 전 노무현 정권 시절 서동구씨가 KBS에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뒤 출근 저지당할 때 조중동은 낙하산 인사의 부당함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이번 YTN의 낙하산 사장에 대해서는 얼마나 외면하는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주의 이익, 사주가 좋아하는 정치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지, 시민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기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과거 제가 진행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신문마다 다르다’는 코너였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신문별로 어떤 보도를 하는지 비교한 코너였다. 조중동은 팩트(fact)를 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강조점을 달리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팩트를 왜곡하는 사례마저 있다. 무섭다. 여론조사 경우에는 동아일보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임기 말에 지지율이 한 때 꽤 올라갔는데, 다른 신문들은 지지율 상승을 꽤 비중 있게 다루는데 동아일보는 한 쪽 구석에 살짝 숨겨놓는 식이었다. 노무현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뉴스 가치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보기 싫은 팩트는 안 보겠다는 식이다. 최소한의 균형감도 없이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면 일반 시정잡배들과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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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26. 09:17

YTN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 기자가 우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의 <언론개혁>방에 글을 현재 YTN파업 사태에 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이 곳에도 소개합니다. YTN 노조 등 이 땅의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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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어린달님입니다.



 일단 어제 자정 쯤에 YTN 기자 3명- 노종면 노조위원장,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 조승호 기자- 에 대해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임장혁 돌발영상 팀장은 석방돼 오늘 아침 파업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까칠해진 임 선배의 얼굴을 보니, 그리고 아직도 갇혀 있는 선배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번 사법처리 방식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회사 기물을 부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때린 것도 아니고 쇠파이프 각목을 들고 덤빈 것도 아닌데 구속수사 하겠다니요?


 


 우리 YTN 노조는 23일 아침 05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목숨같은 방송을 끊어서 YTN을 지키려 합니다.  외환위기 때 6개월동안 월급이 안 나와도, 그후 6개월동안 월급이 반만 나와도 그저 방송'쟁이'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한 번도 마이크와 카메라와 방송 장비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순한 YTN사람들입니다. 저에게 파업에 돌입하며 조금의 부담감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 '쟁이'로서의 책임감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제 동료들이 평온한 일요일 아침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연행되어 철창 뒤에 갇혀있는 마당에, 저는 일말의 부담감마저 모두 지워버리고, 부당함에 저항하겠다는 또 다른 '쟁이'로서의 고집으로 내 모든 걸 바쳐 파업에 나서고 동료를 지키려 합니다.



이번에 사측과의 임단협에서 노조 집행부는 임금 문제를 파업의 이유로 내걸었고, 해정직자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해정직자 문제가 파업의 전면에 나서면 정치파업이 되고 불법 파업으로 규정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와이티엔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번 임단협은 해정직자 문제에 관한 사측의 해결 의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저를 비롯한 많은 노조원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사측은 '고통 분담'을 강요하면서 이미 해직과 정직 징계 등으로 고통받다 못해 피흘리고 있는 동료들을 방치하고 협상의 카드로만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저희가 파업에 돌입하면 아마 회사측은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임금 7.2%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는 어느나라 노조냐,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방송 차질을 빚게 되었다' 뭐 이런 레퍼토리를 방송할 게 뻔합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위의 조정에서 경영진은 '기본급 동결과 영업이익 발생 시 인상분 소급 지급'이라는 안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YTN 노조는  '적정한 임금 인상분을 지금 결정하되 실제로 적자가 발생하면 내년도 임금분에 이를 반영하자'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7.2%인상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경영진이 요구하는 '고통 분담' 얘기를 해볼까요. 



낙하산이 낙하산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는 결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깜냥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칭 사장 구본홍씨는 자기가 경영에 아무런 재주도 없고 돈을 아껴 쓸 생각도 없다는 걸 불과 지난 200여일 동안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자기 수행 보디가드 고용비에 9천 6백여만원, 임직원 회의, 식사 비용에 3천 3백여만 원, 비밀 집무실 비용에 3천여만 원, 비품, 음료와 '구본홍 와이셔츠'에 천 3백여만 원, 몰카, 도청 탐지 비용에 6백여만 원...뿐만 아니라 '비상 경영'을 해야 한다고 난리치면서 수천만원에서 억대 연봉에 이르는 임원 자리를 10여개나 늘렸고 그 임원 자리에 자기 고등학교 동문을 낙하산으로 두 명이나 앉히는 내용의 안을 얼마 전 주총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자리 늘린 뒤 그 사람들 앉아있을 사무실 만드느라  공사비로 또 6천여만원을 들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출신 대학 동문회보에 실을 광고비와 복지단체에 내는 성금까지 자기 돈을 안 쓰고 회삿돈을 지출했더군요.



저희 와이티엔, 다른 회사들이 벌써 두 번 세 번째 장비 바꿀때 창사 이래 쓰던 장비 꿋꿋하게 버티며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오디오맨도 없어서 취재기자가 트라이포드 들고 뛰었고 녹화 테잎도 너무 재활용을 많이 해서 화면에 비가 죽죽

내려도 또 재활용합니다. 편집 기계가 너무 오래되어서 버튼도 눌러지지 않아도 어려운 시절 생각하면서 참아왔습니다.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회사에서 장비 바꿔줄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동안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우리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함께 고통 분담 열심히 해 왔었습니다.



'고통 분담'을 요구하려면, 먼저 자신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동참해 달라고 설득해야합니다. 밥은 반드시 호텔에서 먹어야만 하고 기부를 해도 회삿돈으로 생색을 내며 와이셔츠 한 장을 사입어도 회삿돈이 곧 내돈이고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나에게 충성할 임원 자리는 늘리고 억대 연봉도 챙겨줘야 하는 이런 낙하산이 '경제가 어려우니 너희가 허리를 졸라매라'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  솔직히 말해 '임금 백 원이라도 안 올려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일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노조원중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방만한 경영은 책임지지 않고 우리에게만 고통을 감내하라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라는 겁니다.



사측에서는 '임원진이 자진해서 상여를 300% 삭감하는'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너스를 깎아도 새로 생긴 임원들에게 들어가는 연봉과 판공비 등을 합하면 아직도 한참 모자라는 데다 어이없는 저 지출내역까지 계산하면 여전히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임금 삭감이 아니라 동결한 기업들도 임원들은 '상여'가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거나 반납하고 있습니다. 


 


진정 회사측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이고, 감히 '고통 분담'을 입에 올리기 전에 고통받고 있는 해정직자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비췄다면, 이런 파국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YTN 사람들은 그동안도 묵묵히 어려운 길을 걸어 왔고, 지금도 해정직자들에게 '희망 펀드'를 만들어 우리 월급을 나누며 피흘리는 동료들을 부축하며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단 말입니까 ?



여기까지였다면, 물론 우리 모두가 저 낙하산이 어디서 떨어졌는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싸움이 반드시 정부에 대한 싸움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YTN 노조와 경영진 사이의 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권력이 경찰을 앞세워서 직접 우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파업을 하루 앞두고 노조 집행부를 체포해가는 행위는 분명 파업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동안 숱한 고소에 경찰서에 불려다니면서도 저희는 충실히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를 피하기는 커녕 조사 일정이 잡히면 노조원들이 함께 경찰서 앞까지 가서 출두하는 동료들을 격려하고 응원했습니다.이번 주에 함께 조사 일정을 논의해서 잡았던 경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번 체포가 말도 안된다는 것을. 공권력 배후에 권력자가 있다는 걸 자기들 스스로가 증명해 보이는군요.



저희 파업은 모 차관도 '합법'으로 인정해준 파업입니다. 모 차관, 며칠 전에 와이티엔 노조가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고 '합법 파업' 한다며 '비굴하다'는 표현을 했더군요. 노조에게 불법 파업을 할 것을 은근히 독려하시는 건지 모르겠으나, 이 정권의 비굴함이야말로 여기에 있습니다. 끝끝내 굴복 안하는 와이티엔 노조를 어떻게 손을 봐주기는 해야겠는데 불법 파업도 아니니

결국 얼토당토 않은 잣대로 '출석 일정 조정한 적 없다'고 경찰에게 거짓말까지 시켜가며 과거 업무방해 고소 건을 빙자해 고무줄 잣대로 체포까지 해간 겁니다. 여기서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자는 YTN 노조가 아니라 공권력이며 그 뒤에 숨어있는 권력자의 입김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줄과도 같은 마이크를, 카메라를 내려놓음으로써 무능한 낙하산과 그에 아첨하고 부역하는 무리들과 입을 틀어막으려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서 동료를 지키고 방송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가 투사가 되기를 원해서도 아니며, 우리가 깃발이 되기를 원해서도 아니며, 그저 우리의 동료를 사랑하고 상식을 사랑하고 방송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파업을 앞둔 새벽, 세상 모르고 잠든 내 아기의 얼굴을 봅니다. 또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있을 체포된 동료들의 부인들과 어린 자식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합니다. 이번 우리의 파업은 사랑하는 동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분노의 표출입니다. 우리의 자식들, 미래 세대가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개를 개라고, 낙하산을 낙하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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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24. 14:27

 

        3월23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경인운하 사업에 지난 1월 확정된 정부 금액보다 3800억원 더 들어갈 것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재정부 내부 보고서대로라면 경인운하의 비용편익비율(B/C)이 1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민일보 보도의 요지다. 

 

재정부가 재검토한 공사비, 물동량, 배후단지 분양가 등을 근거로 B/C를 산정할 경우 사실상 1 이하로 떨어져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국민일보 보도는 전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국토해양부가 경인운하 사업 추진의 근거로 삼는  KDI자료에 따르더라도 B/C 비율이 1을 간신히 넘는 상황에서 우리의 건설족 정부는 건설업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퍼주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다. 사실 B/C 비율 개념에서 보듯이 경인운하 사업 비용을 줄이면 사실 얼마든지 B/C 비율을 넉넉하게 1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도, 국토해양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권 차원에서 밀어주는 사업이어서 어떻게든 하게 될 텐데 자신들의 영원한 밥그릇인 건설업체들 퍼주는 게 더 낫다고 믿기 때문 아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국토해양부는 경인운하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건설업계에 4000억원을 퍼주기로 작정했다. 수자원공사가 발주하는 경인운하사업 6개 공구(총공사비 추정가격 1조 3500억원)를 모두 턴키입찰(설계 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하기로 이미 1월말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턴키입찰을 통해 전체 추정예산의 30% 정도인 4000억원 정도는 그냥 낭비될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물론 경인운하사업은 아직 발주되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달 중으로 발주될 것으로 보이는데, 턴키입찰의 낙찰률은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발주 전이라도 필자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턴키입찰이 4000억원의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좀 길더라도 공공공사 입찰제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멈추면 당신은 혈세를 건설족들에게 빼앗기면서도 계속 당하게 된다. 건설족들은 빠삭하게 알고 각종 이권을 나눠먹는 개발사업의 메커니즘을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기에 그들이 마음놓고 시민의 혈세로 파티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설명을 시작해보자.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사용하는 입찰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가격 위주로 경쟁하게 하는 가격(최저가) 경쟁입찰과 적격심사제, 대안입찰, 턴키입찰(설계시공일괄입찰) 등 크게 네 가지다. 물론 수의계약과 같은 다른 방식도 있고, 민간자본유치사업(민자사업)도 큰 틀에서는 공공공사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이 가운데 특히 턴키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턴키 공사는 일괄입찰계약 방식의 하나로 도급자가 건설공사의 재원조달, 토지 구매, 설계와 시공, 시운전 등을 모두 마친 뒤 발주자에게 인계하는 공사를 의미한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턴키 방식은 주로 표준적이거나 반복적인 건축공사에 적용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턴키 방식은 일반 건설업체가 설계회사에 용역을 주고 설계도면을 작성해 함께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질됐다. 한 마디로 기존에는 발주처가 설계회사를 통해 설계용역을 마친 뒤 시공사를 선정했던 것을 시공사가 설계회사와 짝을 이뤄 입찰하게 한 제도일 뿐이다.

재벌계 대형 건설사들은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하는 턴키 입찰제도의 특성을 활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합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통 전체 공사 예정금액의 3% 가량을 설계금액으로 쓰는데 이는 1,000억 원대 공사의 경우 30억 원을 선투자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사 수주에 대한 확신도 없이 수십억 원대의 설계비를 선투자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상위 1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거액의 선투자 비용이 일종의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같은 진입장벽을 활용, 이들 상위 대형 건설사들은 사실상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했다. 상위 6개 내지 10개 건설사들이 돌아가면서 공사를 수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적인 담합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자신들끼리는 가격은 일정한 수준에서 철저히 담합하는 반면, 설계 점수를 통해서만 경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설계점수도 평가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주로 의존하고 평가점수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져 사후 전문가들 사이의 검증(Peer Review)이 불가능하다 보니 설계점수 평가위원들을 향한 탈법적, 불법적 로비가 구조화됐다. 이처럼 한국의 턴키입찰 제도는 원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돌연변이가 돼버렸다.   

이 같은 턴키 입찰의 결과들을 한 번 살펴보자. 2001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 7개 공구를 모두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7개 공구 가운데 5개 공구에는 2개 업체군, 나머지 2개 공구에는 3개 업체군만이 응찰했다. 참여 업체들은 대표입찰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공구에 공동도급자로 참여해 사실상 모두 한 건씩은 공사를 수주했다. 이처럼 7개 공구에서 20개 미만의 대형 건설업체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 공사의평균낙찰률은 98.3%였다.  이렇게 낙찰률이 높아진 이유는 사실상 담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각 공구별 입찰가격을 보면 서로 담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금액 차이가 적다.

<도표1> 지하철 9호선 1단계 입찰참여 업체별 입찰 가격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지난해 3월 입찰이 이뤄진 용산구종합행정타운 사업에서도 입찰에 참여한 두 업체의 입찰금액은 짜맞춘 듯 거의 똑같았다. 아래 <도표2>를 보면, 이 공사에 입찰한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의 입찰금액이 불과 0.0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금액 1,200억 원대 공사에 두 업체의 입찰금액이 불과 2,50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도표2>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입찰 결과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쯤에서 재벌 건설업체 직원들은 초기 투입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니 원래 턴키입찰 공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서울시에 재직할 때 업체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지하철 9호선 2단계 사업의 경우 낙찰률이 각각 60%와 72%, 86%로 9호선 1단계 때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지하철 9호선 1단계 사업의 평균 낙찰율 98.3%에 비하면 약 12~38% 가량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업체간 담합 여지를 최대한 없애고 실질적 경쟁을 유도한 효과다. 경쟁입찰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적용해도 이만큼 거액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재벌 건설업체들과 ‘건설족’ 정치인과 정부는 이같은 이권들을 주고 받으며 강고하게 결합돼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인운하 사업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경인운하 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것을 경기 부양 목적이며 궁극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미분양 아파트 물량 급증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 특히 재벌 건설업체들에게 가만 앉아서 떼돈을 벌게 해주려는 것뿐이다.

  현 정권 들어와서는 그같은 성향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경인운하뿐만 아니라 현 정부 들어와서 추진하고 있는 새만금 사업,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등 대규모 토목사업 대부분이 턴키 공사로 예정돼 있다.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명박 정권이 이 같은 턴키 발주 공사를 왜 남발하겠는가?

하기야 그는 이미 서울시장 시절에도 턴키 공사 발주를 남발해 시민들의 예산을 절감하기는커녕 도리어 엄청나게 낭비했던 사람이다. 그가 서울시장 재임 때 발주했던 사업들 가운데 청계천사업을 비롯해서 은평뉴타운, 지하철 7호선, 동남권유통단지(가든 파이브) 등이 모두 턴키 입찰로 발주한 사업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낭비한 시민의 세금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필자는 그가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고 만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3000억원에 할 수 있었던 청계천 사업을 4000억원에 했다. 7000억원에 할 수 있었던 동남권유통단지는 1조원 이상을 퍼부은 결과 지금 고분양가 때문에 상가 입점이 극히 부진한 상태가 됐다. 은평뉴타운은 과다한 토지보상금과 턴키 입찰을 통한 사업 진행으로 이후 후임자였던 오세훈 시장 초기 고분양가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진행했던 대부분의 사업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현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이 구속되는 등 불법행위가 만연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수백억, 수천억원을 날로 먹는데 어떻게 검은 돈이 오가지 않겠는가?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현 정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도대체 왜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 사업에 약 20조원을 쓴다고 한다. 용산참사에서 보듯이
세입자에게 제대로 보상하는 것은 극도로 아까워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분양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들에게는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그냥 퍼주는 정부를 온전한 정부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현재 한국의 부조리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기득권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하는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단면 또한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23. 10:54

 

정부 여당이 사상 최대 규모인 30조원 안팎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 여당은 일자리를 만들고 급격히 가라앉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추경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악화 일로의 경제 위기 속에서 추경 편성 자체를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화급한 상황을 핑계로 마구잡이로 추경을 편성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국가채무가 폭증하고 있는 상태에서 수십조원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추경 편성의 타당성과 시기, 내용 등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따질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추경편성은 급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예산으로 편성된 285조원을 제대로 집행하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추경은 4월 개최 예정인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명박정부가 자화자찬용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이명박대통령이 G20에서 30조원 추경 편성을 내세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한들 귀담아 들을 나라는 별로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러다 보니 30조원의 추경이 타당한 것이며 시의적절한 것인지,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지금까지의 관행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급조된 추경은 보통 각 정부 부처와 여권이 짧은 기간에 마구잡이로 짜낸 사업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당초 예산 배정에서 밀려났던 사업이나 여권이 내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추진하려는 각종 선심성 사업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30조원을 채우려면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과 전달 체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급조된 일회성 사회복지 정책들로 짜깁기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부 여당이 발표한 생계곤란 가구에 대한 현금지급 등 6조원 규모의 민생안정대책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민생안정 긴급대책은 그 정책적 일관성과 정당성도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행과정 상에서 많은 혼란도 예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명박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상속세 부담 완화 등 ‘부자 감세’를 단행했다. 반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없애는 등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을 오히려 줄였다. 그러면서도 민생안정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생색을 내고 있다. 정부 여당이 이제 와서 ‘일자리’와 ‘서민 생계지원’을 들먹이는 것도 막대한 부자 감세와 토건 예산 투입에 대한 반발 무마용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렇게 급조된 추경은 사용 방법과 내용에서도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추경 재원은 ‘발 등의 불’을 끄기 위해 미리 당겨쓰는 돈이다.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미래세대의 빚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추경예산은 현재의 경제적 약자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동시에 미래 자식세대를 위한 전략적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의료 전산정보망 구축과 21세기형 교실 실험실 도서관 건설,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그동안 부진했던 노후화된 사회인프라 유지보수 등에 대부분의 예산을 쓴다. 오바마 행정부는 또 미국 자동차 빅3에게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도 친환경차량 기술개발 자금을 저리 융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모두 세 차례의 긴급경기부양책을 마련한 일본의 경우도 많은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 위기에 따른 서민과 저소득층 생활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오죽하면 지난해 10월 발표한 경기부양책의 제목부터가 ‘생활대책’이었을까.


반면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를 볼 때 이번 추경안은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현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은 현재의 화급한 문제에 대응하고 미래를 전략적으로 대비하기보다는 과거 회귀적이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여전히 70,80년대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에 매달렸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4대강 하천 정비사업이나 경인운하 사업 등 이름만 녹색일 뿐인 각종 토건사업에 예산을 소진하고 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재벌 건설업체들을 돕고 꺼져가는 부동산 버블을 떠받치기 위해서 말이다. 


버블 붕괴로 발생한 경제위기 때 버블을 초래했던 산업에 자원을 쏟아 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오히려 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과거 일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인 1992부터 1995년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한 해 전체 예산 규모인 약 70조엔의 경기부양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0%대 성장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과도한 토건 예산을 편성한 바람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경기침체를 장기화했다. 일본도 당시 가라앉는 경기를 부양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 충격의 총량을 더 키운 셈이 됐다.


막대한 국채발행을 통해 추경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문제다. 국채발행으로 시중 자금을 다 빨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물량 쇼크’를 예상해 채권 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현 정부는 한국은행이 국채 물량 전부를 소화하도록 할 것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막대한 국채를 인수한다는 것은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물가가 상승한다면 추경편성의 의미도 희석화된다. 왜냐하면 가계부문의 임금동결 내지는 임금삭감도 모자라 실질구매력까지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편성한 추경이 한편에서는 가계의 실질소득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급속도로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서민가계의 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최대 책무이다. 서민가계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물가와 환율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계의 내수소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오히려 정반대다. 경기불황을 이유로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허울 아래 대대적인 임금 삭감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부동산거품 붕괴를 막는다며 금리인하로 물가와 환율 폭등을 방치하고 있다. 그 결과 서민가계는 2중, 3중의 펀치를 맞고 있다. 임소득 감소와 예금이자 수입 감소에 물가와 환율 급등으로 실질소득마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이 갑자기 수십 조원의 국채발행을 통한 대규모 추경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경 편성도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와 적반하장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지난 90년대 말의 외환위기 이후 되풀이되는 경제위기의 주범은 정부와 정치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정책실패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정책실패로 발생한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며 마구잡이 대책을 내놓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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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19. 08:47
 

  최근 정부 여당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겉보기에는 정반대 방향의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반값 아파트’로 포장한 토지임대부 정책을 다시 들고 나왔고,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집값은 지금보다 더 내려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양도소득세 완화와 투기지역 해제,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집값 거품을 떠받치기 위한 부동산 투기 조장책들을 계속 남발하고 있다. 심지어 3불정책을 사실상 무력화해 서울 강남 학군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도록 만드는 등 교육정책까지 집값 거품 떠받치기에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일부 아고라 네티즌들조차 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헛갈리는 것 같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홍준표 의원이 재발의한 이른바 ‘반값아파트’ 법안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부터 살펴보자. 이 법안의 실제 효과를 알 수 있어야 겉으로는 무주택 서민을 위하는 척 포장하는 현 정권의 속내를 알 수 있고, 진짜 의도는 결국 집값 거품 떠받치기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라고 불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토지임대부 주택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본회의까지 상정됐으나 여야간 밀고당기기 끝에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법안을 발의한 홍준표 의원이 여당 원내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법안은 4월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이란 토지 소유권은 국가 또는 토공 등 공공단체가 갖고 그 토지 위에 짓는 주택만 개인에게 분양하도록 하는 주택 공급방식을 말한다. 이 경우 사람들은 아파트 건물만을 소유하고 토지 임대료를 내게 된다. 그런데 이 같은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은 주택 투기를 막거나 주택가격 하락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은 로또식의 시세차익을 없애는 방안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그 이유를 보자.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이란 A와 B가 공동 투자하여 아파트 한 채를 지어 ‘공동소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컨대 100m2(30평형) 아파트의 택지가격이 1억5,000만원이고 아파트 건축비가 1억5,000만원이라고 하자. 그 경우 아파트 분양가는 3억원이 된다.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은 B가 단지 토공으로 바뀔 뿐으로 주택에 대한 공동소유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A와 B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의 바로 옆에 사실상 똑같은 아파트 매매가가 5억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A와 B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의 시세는 얼마일까? 당연히 옆집 C가 소유한 아파트의 매매가인 5억원이 될 것이다. 만일 두 아파트 가격이 다르다면 무위험 차익을 얻기 위한 재정거래(arbitrage)가 생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 받은 사람은 주택건물에 대한 지분만 소유한 채 매월 토지 사용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토지임대부 분양은 주거비용을 싸게 해주는 방식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주택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반값 아파트 방식은 ‘반쪽 사과’라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더구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주택을 분양 받은 사람이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를 억제하는 효과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투기를 더 조장할 수도 있다.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의 경우 토지에 대한 토공의 권리 행사는 제한되는 반면 주택에 대한 시세차익이 발생할 경우 그 권리는 A가 일방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가 그대로 보전되는 토지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주택 가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10년, 20년 후에 주택을 전매한다고 할 때 시세는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또 약 40년 후에 건물의 내구연한이 다 되어 건물가치가 0이 된다고 하면 그때 주택소유주의 권한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까? 결국 모든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의 매매 시 토지가격 및 시세차익 배분과 관련해 극심한 혼란과 분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토지임대부 주택법안을 발의한 홍준표 의원의 그간 행태를 생각하면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의 미래는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홍의원은 지난해 총선 이후 당분간 뉴타운 추가지정을 하지 않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맞서 뉴타운 추가지정을 강력히 압박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당시 홍의원은 “뉴타운은 원래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집값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뉴타운 개발을 하면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남은 규제하더라도 강북 부동산 값은 좀 더 올려 키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의원이 지역구로 있는 서울 동대문구 주민들을 비롯해 강북 주민들 처지에서 들으면 반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그가 서민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이라는 주택정책의 목표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조차 갖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집값을 올려 시민들의 불로소득을 늘리는 것이 공공 주택정책의 목표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여당의 중진이라니 한심할 뿐이다. 주택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역 유권자들의 탐욕만을 부추기는 데에만 급급한 홍의원이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글로벌 부동산버블 붕괴와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파트 값을 올리겠다는 사기적 공약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거의 오로지 부동산가격을 올리거나 지탱하는데 모든 정책을 올인 해왔다. 그런 한나라당과 홍의원이 이제 와서 ‘반값 아파트’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집값은 지금보다 더 내려가야 한다”는 정책 기조와는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양도소득세 완화와 투기지역 해제 등 각종 투기 조장책을 남발하고 있다. 이들은 오른쪽에서는 부동산가격 올리기 공약과 온갖 부동산투기 조장책 남발로 이미 부동산투기에 물려버린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붙잡아두면서 왼쪽에서는 아파트값이 더 내려야 한다느니 ‘반값 아파트’ 운운하며 반대파 세력을 기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양다리 걸치기 술수를 써서 또다시 국민들을 기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처럼 양다리 걸치기의 기만적 술수를 쓰는 저의는 이미 부동산시장의 대세가 버블붕괴 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어 버리면 부동산투기에 물려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아파트값을 올려주겠다’는 자신들을 지지해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이탈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집값을 떠받치는 각종 부동산 정책 방향과 달리 ‘아파트값이 더 내려야 한다’는 말을 내놓거나 ‘반값 아파트’와 같은 기만책을 또다시 들고 나와 아파트가격 폭락에 대비한 기만적 술수를 동원하는 것이다.


정말로 정부 여당이 주택가격 하락을 원한다면 기만적인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으면 된다. 지금처럼 버블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놔두면 부동산가격은 저절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부 여당이 잘도 부르짖는 시장논리에 맡기면 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명박 대통령과 홍의원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얼마나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보이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에게는 국민의 주거안정과 경제의 성장잠재력 증대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권력욕과 사리사욕에만 사로잡혀 끊임없이 대국민 사기극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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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16. 11:32

 

정부가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범위도 확대하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오늘(13) 입법예고한다고 한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기에 재계의 주장만을 거의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친기업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에 어이가 없다. 이번 정부의 조치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지난 IMF사태 이후 한국사회는 노동을 미국식의 단기 생산비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일본식의 장기 인적 자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와 사람을 키우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확대를 추진해온 결과 모든 근로자들의 삶과 장래가 공중에 붕 떠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기업의 장래 역시 불안해지고 국민경제의 토대는 갈수록 취약해지고 말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비용절감 효과가 컸을지 모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노-사간 또는 노-노간 불신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났다. 또한 기업에 대한 애사심이나 직장생활을 통하여 근로자의 삶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IMF사태 이전의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도 아니다.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오 등과 같은 신조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정규직 자체도 이미 언제 정리해고 또는 명퇴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오해는 동일노동을 과거 연공서열제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다. 과거 IMF사태 이전에 한국기업의 연공제는 양적 의미의 연공제였다. 즉 노동의 질적 차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양적으로 동일 분량의 노동을 하면 모두 동일임금을 받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연공제의 고용안정과 사내교육 강화에 의한 생산성향상이라는 순기능적 측면이 위축되고 단지 임금의 누진적 증가라는 역기능적 측면만이 크게 부각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동일노동의 정의와 범위는 ‘시간’이라는 양적 개념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직무 난이도나 전문성, 근로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될 수 있다. 다양하게 세분화된 동일노동 직군에 대해서는 직군마다 각기 다른 임금체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노동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채 양적 기준에 따라 모두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거나 기업이 고용의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적어도 사회정의 차원에서 동일노동 직군에 대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경제 전체적으로 동일노동에 대한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노동에 대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를 의미한다. 이는 명백히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위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에 대한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장 유연성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사회적 공헌은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기부나 기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창출과 고용안정에 있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해 기업이 고용 창출과 일자리 안정을 유지해주기만 한다면 굳이 억지춘향 식으로 여론에 못 이겨 기부금이나 기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다소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고 투자로 인식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도 기업 경영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이 양산될수록 사회 전체적으로 사회안전망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부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다시 정부 재정부담의 증가는 결국 기업의 직간접적 세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내 OJT 등의 사내교육은 근로자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올리는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체계적인 사내교육을 받기 어려운 비정규직이 양산될수록 한국경제 전체적으로 노동의 질과 부가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기업에도 노동의 질 저하라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요컨대, 경제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의 양산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 되는 셈이다.

 

경제의 궁극적 목적은 간단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2년전 도입됐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기술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부정적 효과보다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 -노 모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어야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 같은 상생 분위기를 저해하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비정규직 비중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이미 전체 노동의 55%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입법예고안대로 비정규직 사용 기간과 업종이 대폭 늘어난다면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정부는 이 같은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통해 기업의 해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위에서 본 것처럼 단견이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 ‘내부 식민지’처럼 착취하는 경제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 경제가 지금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훨씬 더 큰 경제 충격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양산으로 내수소비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려놓은 탓이 적지 않다.

 

또한 지식정보화 시대는 지식정보 생산과 관련한 일자리가 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경제영역에서 노동자의 지식노동과 창의성 발현이 중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체계적인 교육도 못 받고 단기간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날수록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노동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장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국 경제는 그 같은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에 걸맞은 노동패러다임을 정립하지 못했기에 한국 경제와 사회의 모든 자원을 몰아준 일부 재벌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현 정부는 시행 2년밖에 안 된 비정규직 보호법을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제 위기’를 핑계로 재계의 근시안적인 민원 사항을 수용하는데 급급하다. 중장기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내수기반을 더욱 위축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정부 말대로 ‘친기업정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빠져 근시안적 기업의 이익만 떠받들다 보니 국민경제 전체가 파탄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경제의 파탄은 결국 국민경제의 한 부분인 재계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이다. 옆으로 말이 조금 새지만, 이런 점에서 ‘친기업 정책’이 마치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 좋다는 상당수 기득권 언론의 보도는 속이 뻔히 드러나 보이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계의 이해만 대변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면 굳이 정부가 왜 있는가? 아예 재계가 나서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을 하라고 하지, 왜 방대한 정부조직과 수많은 관료들을 두고 있는가? 관료들 밥그릇 챙겨주는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믿는 것인가?

 

말이 나온 김에 ‘잡 세어링’을 명분으로 대졸 초임을 깎는다는 엉터리 술수에 대해서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노사민정 대타협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것을 하는 줄도 모르는 새 어느날 갑자기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적어도 수개월간에 걸쳐 최소한 5, 10년은 내다보고 현 위기 국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국민적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런 게 도대체 있기나 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대타협’이 이뤄진 이튿날부터 터져나온 것은 재계의 대졸초임 삭감 발표였다.

 

경제위기시에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는 국민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최대한 보전하고 여기에서 탈락되는 근로자와 가계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말만 대타협이지, 사실상 그 대타협의 결과는 사회적인 평균 임금의 삭감이라는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대타협이라는 허울을 빌어 사실상 경제위기의 고통을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그렇지 않아도 치솟은 부동산가격으로 땅값은 금값이 됐지만, 정리해고 남발과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사람값은 똥값이 됐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지나치게 부풀어오른 땅값을 내리고 상대적으로 사람 값을 올려야 한다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당위적으로는 그 같은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계 각국 선진국의 인건비가 비싼 것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니다. 높은 인건비에서 양질의 노동력과 생산성이 나오는 것이고, 그 같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향상된 임금 소득이 내수기반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동산 값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떠받치고 가뜩이나 똥값인 사람 값은 더욱 낮추겠다는 발상 자체야말로 정부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특정 이해세력의 단기적 이익에만 봉사하는 방향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비용? 비용 핑계대지 마라. 이 같은 임금삭감이나 비정규직 양산으로 기껏 줄일 수 있는 인건비는 기업의 전체 비용 가운데 1%도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자구노력도 없이 선심쓰듯 예산을 지원해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서는 안 되지만, 정 써야한다면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 등 강바닥 파헤치는데 들일 수십조원의 돈의 절반이라도 임금삭감과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인센티브로 써보라.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대부분이 건설대기업 배불리는데 쓰이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부 말대로 일용직 일자리라도 늘리기 위해서라면 왜 이런 식으로는 돈을 쓰지 못하나. 건설일용직만 일자리이고, 일반 기업의 일자리는 일자리가 아니란 말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경제의 궁극적 목표는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현 정부도 겉으로는 상생이니 고통분담이니 말하며 이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가 실제로 실행하는 정책들의 실제 효과를 보면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보다는 원래 잘 먹고 잘사는 놈만 더 배 불려주는데 골몰하고 있다. 친기업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빠져서 말이다. 그것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같은 ‘몰아주기’ 정책에 대한 거대한 반작용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현 정부는 지금 자신들이 저지른 실정과 편향적 정책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달게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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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13. 09:31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http://cafe.daum.net/kseriforum )



주택건설 허가 20년만에 최저수급 불균형에 2~3년후 집값 폭등 우려

 

39일부터 각 포털의 메인 화면에 올라오기 시작해 310일자 각종 일간지에 실린 기사들의 제목이다.  기사 내용은 아래 세계일보 기사의 앞 부분을 참조하길 바란다. 세계일보 기사가 그래프가 있어 인용했지만, 기사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런 기사를 보면 황당해서 기가 막힌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건설 붐이 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신규 주택건설 허가나 신규 주택 착공 등의 지표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만큼 주택경기가 침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붐이 일면서 단기적으로 과잉공급된 주택 공급이 시장 위축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규 주택 착공이 줄어들면 2~3년 후에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신규 주택 착공은 부동산 버블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서 외국 언론 가운데, 신규주택 착공 물량 감소로 2~3년 후 집값이 폭등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하는 언론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내가 아는 제대로 된 나라 언론들 중에 그런 보도를 할 나라는 없다.
실제로 지난 2월 발표된 올해 1월의 미국 신규 주택 착공 및 허가 건수에 관한 블룸버그 보도를 아래 링크를 따라가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 어디에도 "주택 공급 부족으로 2~3년 후 집값 폭등 우려" 운운하는 식의 표현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도 없다.  http://www.bloomberg.com/apps/news?pid=20601068&sid=aovjsitjEZNQ&refer=home 

심지어 그 기사를 인용해 쓴 국내 외신기사도 그런 표현은 안 쓰고 있다.
http://www.edaily.co.kr/news/world//newsRead.asp?sub_cd=DD22&newsid=02778166589591832&clkcode=&DirCode=0050304&OutLnkChk=Y

그런데 이 나라는 이럴 때는 이른바 진보, 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2~3년후 집값 폭등 우려라는 제목을 단다. 아무리 기사자판기로 전락한지 오래된 기자들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비판적 안목은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나 건설업계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옮기니 이런 허무맹랑하고 천편일률적인 기사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제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왜 엉터리인지를 한미일 3국의 현재 또는 과거 사례를 통해 한 번 살펴보자. 먼저,
미국 주택시장 지표를 통해 이 같은 기사들이 얼마나 엉터리 보도인지를살펴보자. 미국 부동산 특히 주택시장은 아래 <도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1995년부터 1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상승세를 지속해왔다. 특히 2000년부터는 투기적인 급등세를 보여왔다. 부동산투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2000년 이후 미국 주택재고 추이를 살펴보면, 2002년 말 재고주택수가 1,433만호였던 것이 서브프라임론 대출이 확대되기 시작한 2003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7 6월 말 현재 1,739만호로 불과 4년 동안에 약 306만호 가량이나 급증하였다. 이 중 별장 등 계절주택과 주택재고 추세적 증가분을 제외하면, 이 기간 동안에 적정 재고량을 초과하는 주택재고 과잉분은 약 250만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서브프라임론 대출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5년과 2006 2년 동안에는 약 200만호에 달하는 주택 과잉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또 미국의 주택재고율 추이를 살펴보면, 1980년대 말의 부동산투기 버블이 발생하기 전에는 전체 주택수의 9% 전후 수준에서 안정적인 추이를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투기 붐의 영향으로 주택재고율이 급상승하기 시작하여 1993 11%를 기점으로 서브프라임론 대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3년부터 부동산투기가 과열되기 시작하면서 주택재고율이 2007 6월 기준으로 13.6%까지 치솟았다.  

 
1989년의 부동산 투기버블 전후 주택재고율 추이를 보면, 1984 9% 수준에서 1989년에는 11.6%까지 급증하였다가 버블붕괴와 더불어 1993 11%로 버블 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약 3,4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로부터 13.6%에 달하는 주택재고율이 12% 수준까지 조정되는 데는 최소한 3,4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는 대공황 이후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런 경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 같은 조정기간은 90년대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택의 과잉재고도 흡수되지 않고 있는데 신규 주택을 짓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런 신규주택이 과거 버블기 때처럼 공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2~3년후 집값이 폭등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부동산 담당 기자들은 이 같은 시장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 못하거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건설족을 대변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연도별 신규주택착공 추이를 보면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 전인 1980년대 초에는 매년 120~13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으나, 부동산 버블이 시작된 1986년을 거쳐 1987~1990년 동안에는 연간 17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다. 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120% 가량 급감한 뒤 또 다시 꾸준히 늘어났다. 일본 정부의 억지 부양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택 공급량은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일본 내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버블 발생 이전의 120만 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경제가 버블 붕괴 후 2차 위기를 맞자 그 동안 일본 정부의 재정호흡기에 기대 연명해왔던 대형 금융기관과 종합건설업체들이 잇따라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주택이 지나치게 과잉 공급된 데다 인구 감소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도 본격화한 뒤였다.

                               <일본의 신규주택 착공 및 지가 추이>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데 주택 공급은 연간 120만호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지가는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계속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심지어 부동산 거품이 어느 정도 빠졌다고 여겨지던 90년대 중반에 분양된 주택이 2000년대에도 자산가치가 절반에서 3분의 1까지 추가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상황을 보자.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호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유효 수요에 비해 주택은 매우 과잉 공급된 상태다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90년대 전반에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으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 후에도 주택은 계속 공급돼 미분양 물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93년부터 이미 미분양 물량은 크게 늘어나 95년 미분양 물량은 15만 호를 넘어섰다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주택 가격이 9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래프상으로 명목가격지수는 크게 안 떨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지수로는 외환위기 때까지 거의 반토막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기를 바란다) 사실 미분양 물량은 91년부터 꾸준히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당시에는 건설업계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금융시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공식 미분양 물량과 비공식 미분양 물량의 괴리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95년 공식적으로만 15만여호를 넘어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 최소 3~4년 이상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16만호를 넘는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짧게 간추리자면 심각한 경기침체와 가계 소득 감소와 부채 청산 과정의 장기화, 주택수요 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실은 필자가 계산한 바로는 향후 수도권 분양 아파트의 과잉 공급은 적어도 2010년대까지도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될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자, 한 번 물어보자. 신규 주택 착공이 줄었다고  2~3년 후 집값이 폭등할까? 지금 판교와 광교, 잠실, 은평 등의 수많은 미입주물량은 갑자기 2~3년 동안 어디로 사라지고, 3만호가 넘는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은 하루아침에 해소가 된단 말인가? 정말 정상적인 정보가 생산, 유통되는 나라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내용에 대해 이렇게 각종 자료를 근거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경기 침체와 주택 침체가 장기화하는 지표로, 그래서 집값의 추가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읽혀야 할 지표까지 정반대로 뒤집어 보여주는 언론이 한심하고, 그런 논리를 퍼뜨리는 국토부 건설족 관료들과 건설업계의 행태에 기가 찰 뿐이다. 건설업계와 국토부 관료들은 그같은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사람들이 거품이 잔뜩 묻은 집을 사주길 바랄 것이다. 경기 침체로 광고 매출이 확 준 가운데 비중이 큰 부동산 광고로 이 힘겨운 시기를 나야 하는 언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같은 거짓말에 속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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