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 공사가 착공식도 없이 시작됐다. 경인운하 사업을 맡고 있는 수자원공사측은 얼마 전 경인운하 관련 공청회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자물쇠 공청회’를 연 바 있다. 환경영향평가도 요식행위처럼 뚝딱 3개월만에 해치웠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것처럼 그렇게 꼭 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왜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지 모르겠다. 마치 부잣집 담을 넘는 ‘밤손님’의 행태처럼 느껴진다. 


지난달에는 경인운하 사업에 지난 1월 확정된 정부 추정 사업비보다 3800억원 정도가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획재정부의 내부보고서 내용이 보도됐다. 재정부 내부 보고서대로라면 이 사업의 비용편익(B/C) 비율이 1이하로 떨어져 사업의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 거리인 곳에 물류를 수송하기 위해 운하를 판다는 사업에 애초부터 경제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한심스러운 일이다. 


거꾸로 어떻게든 경인운하 사업을 하기로 작정한 ‘불도저 정부’에게 경제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이 같은 토건사업을 통해 현 정부가 얼마나 많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지, 그리고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현재 예정된 경인운하사업 6개 공구의 총공사비 추정가격 1조 3500억원의 약 30% 정도인 4000억원을 낭비하게 된다. 경인운하사업을 턴키입찰(설계 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짧은 지면에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턴키입찰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위 10개 재벌건설사들은 설계비용에 들어가는 거액의 선투자 비용을 시장 진입장벽으로 활용, 지금까지 턴키 입찰 물량을 거의 싹쓸이해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각종 턴키입찰에서 철저한 가격 담합을 통해 경쟁입찰에 비해 평균 30% 가량 높은 추정공사비의 95~98% 수준에서 공사를 수주했다. 건설업체들간 경쟁하게 하면 아낄 수 있는 돈 30%를 낭비했다는 뜻이다. ‘떡고물’이 워낙 많다 보니 담합과 뇌물 수수 등 부패의 온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도 턴키사업을 남발했다. 청계천사업, 동남권 유통단지(가든파이브),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과 지하철 3호선 연장구간 등을 모두 턴키로 발주했다. 심지어 일반 주택단지를 만드는 은평뉴타운사업조차 턴키로 발주했다. 그 결과 부작용도 심각했다. 7000억원에 할 수 있었던 가든파이브에 1조원 이상이 들어간 결과 고분양가 때문에 상가 입점이 극히 부진한 상태다. 은평뉴타운은 과다한 토지보상금과 더불어 턴키 입찰을 통한 사업비 과용으로 후임자였던 오세훈 시장 초기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진행됐던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등에서는 업체들간 담합이 드러났고, 청계천사업과 가든파이브 사업에서는 각종 비리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심지어 청계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현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낭비된 예산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주장을 들으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행태를 이제 전국 단위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당장 경인운하사업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등 대규모 토목사업 대부분이 턴키 공사로 예정돼 있다. 재벌건설업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고분양가로 마구잡이 주택사업을 벌였다가 미분양에 물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이 시장의 채찍질은커녕 정부의 퍼주기 예산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말로는 ‘서민경기 부양’이니 ‘일자리 창출’이니 내세우지만, 결국 세금으로 재벌건설업체들을 위해 차리는 푸짐한 잔칫상이라는 것을 건설업계는 너무나 잘 안다. 이처럼 현 정부 ‘삽질경제’의 이면은 바로 부패경제, 반칙경제, 불공정경제인 것이다. 이 같은 이면을 들키지 않으려니 사업 추진 과정이 밤손님 행태를 닮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3. 30. 10:11

지난주 금요일 (3월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 학회의 정책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대략 주택시장 전망 및 미분양 물량 해소 대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 예전에 TV토론에 패널로 함께 참석한 교수가 사정해 마지못해 참석했습니다. 건설업계와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그 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판단도 했고요.

우선, 학회 세미나라고 하는데 총 참석자가 발표자, 토론자, 중간에 돌아간 사람들까지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고 토론 시간이 되니 학회 관계자들을 뺀 방청객은 20여명 정도밖에 안 돼 보였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갈 때 방청객 한 무리에 물어보니 무슨 도시계획연구소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온 방청객 20여명도 사실상 관련 교수나 연구소에서 동원됐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만의 행사를 벌인 것입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미나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제가 듣기에는 기본적으로 논리에 닿지 않거나, 건설업계를 위한 논리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귀담아들을만한 얘기를 하시는 분은 한양대 임덕호 교수였습니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이토록 급증한 것은 선분양제도 때문인데, 후분양제로 이행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분의 평소 지론이라고 하시던데, 제가 시사경제에 썼던 내용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하시더군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초청한 분에게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함께 토론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상당히 놀란 부분은 참석자 상당수가 집값 전망에 대해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한건설협회 부설 건설산업연구원의 김모 박사조차도 이번에는 외환위기와 같은 V자형 반등은 어렵고, L자형 침체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불과 6개월 전 TV토론에서 '집값 폭락은 없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일시적으로 주택시장이 가라앉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했었던 분이니 말입니다. 그 분 발표를 듣는데 TV토론 때 했던 그 분 발언이 생각나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김 박사뿐만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들뿐만 아니라 토론자의 상당수가 주택시장 전망을 했는데, 대체로 향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114 사장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한양대 임덕호 교수님, 발표자로 나선 건설관련 연구소의 김모 소장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김소장은 2010년 하반기경 공급 물량 부족 때문에 일시적으로 집값이 단기적으로는 꽤 오를 수도 있다고 보긴 하더군요.

 

물론 비슷한 전망을 하더라도 결론은 크게 달랐습니다. 발표에 나선 김 박사나 김 소장뿐만 아니라 참석자의 상당수는 결국 침체를 피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나마 김 소장은 건설업계가 시장 상황에 대응해 분양가를 내리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을 하더군요.

 

세미나 끝나고 나서 참석자들이 모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더군요. 저는 먼저 나왔습니다. 사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봐야 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우연히 세미나 관련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아마 학회가 낸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쓴 것 같았는데, 정부에 대해 주택시장 침체 극복을 위해 이러이러한 지원책을 주문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저를 초청해준 교수님의 의도는 아니겠지만(사실 그 분은 주택정책에 관한 한 상당히 서민들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왔던 분입니다), 왠지 들러리 선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위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를 대변하던 ‘전문가’들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일시적인 반등과 부침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정부에 앓는 소리해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제 현장에 기자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기자들이 없으니 이들도 비교적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한 탕'을 노리시는 분이 아니고 정말 주택의 실수요자라면 길게 내다보시길 바랍니다.

 

참, 주택업체 관계자가 현재 미분양 물량은 실제의 70% 수준에서 신고한 물량일 거라고 하더군요.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참고삼아 전해드립니다.


by 선대인 2009. 3. 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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