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
“주택건설 허가 20년만에 최저…수급 불균형에 2~3년후 집값 폭등 우려”
3월9일부터 각 포털의 메인 화면에 올라오기 시작해 3월 10일자 각종 일간지에 실린 기사들의 제목이다. 기사 내용은 아래 세계일보 기사의 앞 부분을 참조하길 바란다. 세계일보 기사가 그래프가 있어 인용했지만, 기사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런 기사를 보면 황당해서 기가 막힌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건설 붐이 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신규 주택건설 허가나 신규 주택 착공 등의 지표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만큼 주택경기가 침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붐이 일면서 단기적으로 과잉공급된 주택 공급이 시장 위축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규 주택 착공이 줄어들면 2~3년 후에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신규 주택 착공은 부동산 버블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서 외국 언론 가운데, 신규주택 착공 물량 감소로 2~3년 후 집값이 폭등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하는 언론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내가 아는 제대로 된 나라 언론들 중에 그런 보도를 할 나라는 없다.
실제로 지난 2월 발표된 올해 1월의 미국 신규 주택 착공 및 허가 건수에 관한 블룸버그 보도를 아래 링크를 따라가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 어디에도 "주택 공급 부족으로 2~3년 후 집값 폭등 우려" 운운하는 식의 표현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도 없다. http://www.bloomberg.com/apps/news?pid=20601068&sid=aovjsitjEZNQ&refer=home
심지어 그 기사를 인용해 쓴 국내 외신기사도 그런 표현은 안 쓰고 있다.
http://www.edaily.co.kr/news/world//newsRead.asp?sub_cd=DD22&newsid=02778166589591832&clkcode=&DirCode=0050304&OutLnkChk=Y
그런데 이 나라는 이럴 때는 이른바 진보, 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2~3년후 집값 폭등 우려’라는 제목을 단다. 아무리 ‘기사자판기’로 전락한지 오래된 기자들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비판적 안목은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나 건설업계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옮기니 이런 허무맹랑하고 천편일률적인 기사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제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왜 엉터리인지를 한미일 3국의 현재 또는 과거 사례를 통해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러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연도별 신규주택착공 추이를 보면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 전인 1980년대 초에는 매년 120만~13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으나, 부동산 버블이 시작된 1986년을 거쳐 1987~1990년 동안에는 연간 170만호 전후 수준의 신규주택이 착공됐다. 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1년 20% 가량 급감한 뒤 또 다시 꾸준히 늘어났다. 일본 정부의 억지 부양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택 공급량은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일본 내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버블 발생 이전의 120만 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경제가 버블 붕괴 후 2차 위기를 맞자 그 동안 일본 정부의 ‘재정호흡기’에 기대 연명해왔던 대형 금융기관과 종합건설업체들이 잇따라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주택이 지나치게 과잉 공급된 데다 인구 감소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도 본격화한 뒤였다.
<일본의 신규주택 착공 및 지가 추이>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런데 주택 공급은 연간 120만호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지가는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계속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심지어 부동산 거품이 어느 정도 빠졌다고 여겨지던 90년대 중반에 분양된 주택이 2000년대에도 자산가치가 절반에서 3분의 1까지 추가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상황을 보자.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호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유효 수요에 비해 주택은 매우 과잉 공급된 상태다.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90년대 전반에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으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 후에도 주택은 계속 공급돼 미분양 물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93년부터 이미 미분양 물량은 크게 늘어나 95년 미분양 물량은 15만 호를 넘어섰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주택 가격이 9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래프상으로 명목가격지수는 크게 안 떨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지수로는 외환위기 때까지 거의 반토막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기를 바란다) 사실 미분양 물량은 91년부터 꾸준히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당시에는 건설업계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금융시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공식 미분양 물량과 비공식 미분양 물량의 괴리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95년 공식적으로만 15만여호를 넘어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 최소 3~4년 이상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16만호를 넘는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짧게 간추리자면 심각한 경기침체와 가계 소득 감소와 부채 청산 과정의 장기화, 주택수요 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실은 필자가 계산한 바로는 향후 수도권 분양 아파트의 과잉 공급은 적어도 2010년대까지도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될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자, 한 번 물어보자. 신규 주택 착공이 줄었다고 2~3년 후 집값이 폭등할까? 지금 판교와 광교, 잠실, 은평 등의 수많은 미입주물량은 갑자기 2~3년 동안 어디로 사라지고, 3만호가 넘는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은 하루아침에 해소가 된단 말인가? 정말 정상적인 정보가 생산, 유통되는 나라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내용에 대해 이렇게 각종 자료를 근거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경기 침체와 주택 침체가 장기화하는 지표로, 그래서 집값의 추가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읽혀야 할 지표까지 정반대로 뒤집어 보여주는 언론이 한심하고, 그런 논리를 퍼뜨리는 국토부 건설족 관료들과 건설업계의 행태에 기가 찰 뿐이다. 건설업계와 국토부 관료들은 그같은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사람들이 거품이 잔뜩 묻은 집을 사주길 바랄 것이다. 경기 침체로 광고 매출이 확 준 가운데 비중이 큰 부동산 광고로 이 힘겨운 시기를 나야 하는 언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같은 거짓말에 속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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