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난주 금요일 (3월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 학회의 정책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대략 주택시장 전망 및 미분양 물량 해소 대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 예전에 TV토론에 패널로 함께 참석한 교수가 사정해 마지못해 참석했습니다. 건설업계와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그 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판단도 했고요.
우선, 학회 세미나라고 하는데 총 참석자가 발표자, 토론자, 중간에 돌아간 사람들까지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고 토론 시간이 되니 학회 관계자들을 뺀 방청객은 20여명 정도밖에 안 돼 보였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갈 때 방청객 한 무리에 물어보니 무슨 도시계획연구소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온 방청객 20여명도 사실상 관련 교수나 연구소에서 동원됐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만의 행사를 벌인 것입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미나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제가 듣기에는 기본적으로 논리에 닿지 않거나, 건설업계를 위한 논리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귀담아들을만한 얘기를 하시는 분은 한양대 임덕호 교수였습니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이토록 급증한 것은 선분양제도 때문인데, 후분양제로 이행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분의 평소 지론이라고 하시던데, 제가 시사경제에 썼던 내용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하시더군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초청한 분에게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함께 토론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상당히 놀란 부분은 참석자 상당수가 집값 전망에 대해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한건설협회 부설 건설산업연구원의 김모 박사조차도 이번에는 외환위기와 같은 V자형 반등은 어렵고, L자형 침체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불과 6개월 전 TV토론에서 '집값 폭락은 없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일시적으로 주택시장이 가라앉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했었던 분이니 말입니다. 그 분 발표를 듣는데 TV토론 때 했던 그 분 발언이 생각나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김 박사뿐만 아니었습니다. 발표자들뿐만 아니라 토론자의 상당수가 주택시장 전망을 했는데, 대체로 향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114 사장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한양대 임덕호 교수님, 발표자로 나선 건설관련 연구소의 김모 소장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김소장은 2010년 하반기경 공급 물량 부족 때문에 일시적으로 집값이 단기적으로는 꽤 오를 수도 있다고 보긴 하더군요.
물론 비슷한 전망을 하더라도 결론은 크게 달랐습니다. 발표에 나선 김 박사나 김 소장뿐만 아니라 참석자의 상당수는 결국 침체를 피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나마 김 소장은 건설업계가 시장 상황에 대응해 분양가를 내리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을 하더군요.
세미나 끝나고 나서 참석자들이 모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더군요. 저는 먼저 나왔습니다. 사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봐야 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우연히 세미나 관련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아마 학회가 낸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쓴 것 같았는데, 정부에 대해 주택시장 침체 극복을 위해 이러이러한 지원책을 주문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저를 초청해준 교수님의 의도는 아니겠지만(사실 그 분은 주택정책에 관한 한 상당히 서민들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왔던 분입니다), 왠지 들러리 선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위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를 대변하던 ‘전문가’들도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일시적인 반등과 부침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정부에 앓는 소리해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제 현장에 기자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기자들이 없으니 이들도 비교적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한 탕'을 노리시는 분이 아니고 정말 주택의 실수요자라면 길게 내다보시길 바랍니다.
참, 주택업체 관계자가 현재 미분양 물량은 실제의 70% 수준에서 신고한 물량일 거라고 하더군요.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참고삼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