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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범위도 확대하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오늘(13일) 입법예고한다고 한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기에 재계의 주장만을 거의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친기업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에 어이가 없다. 이번 정부의 조치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지난 IMF사태 이후 한국사회는 노동을 미국식의 단기 생산비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일본식의 장기 인적 자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와 사람을 키우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확대를 추진해온 결과 모든 근로자들의 삶과 장래가 공중에 붕 떠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기업의 장래 역시 불안해지고 국민경제의 토대는 갈수록 취약해지고 말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비용절감 효과가 컸을지 모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노-사간 또는 노-노간 불신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났다. 또한 기업에 대한 애사심이나 직장생활을 통하여 근로자의 삶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IMF사태 이전의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도 아니다.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오 등과 같은 신조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정규직 자체도 이미 언제 정리해고 또는 명퇴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오해는 동일노동을 과거 연공서열제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다. 과거 IMF사태 이전에 한국기업의 연공제는 양적 의미의 연공제였다. 즉 노동의 질적 차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양적으로 동일 분량의 노동을 하면 모두 동일임금을 받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연공제의 고용안정과 사내교육 강화에 의한 생산성향상이라는 순기능적 측면이 위축되고 단지 임금의 누진적 증가라는 역기능적 측면만이 크게 부각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동일노동의 정의와 범위는 ‘시간’이라는 양적 개념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직무 난이도나 전문성, 근로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될 수 있다. 다양하게 세분화된 동일노동 직군에 대해서는 직군마다 각기 다른 임금체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노동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채 양적 기준에 따라 모두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거나 기업이 고용의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적어도 사회정의 차원에서 동일노동 직군에 대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경제 전체적으로 동일노동에 대한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노동에 대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를 의미한다. 이는 명백히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위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에 대한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장 유연성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사회적 공헌은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기부나 기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창출과 고용안정에 있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해 기업이 고용 창출과 일자리 안정을 유지해주기만 한다면 굳이 억지춘향 식으로 여론에 못 이겨 기부금이나 기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다소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고 투자로 인식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도 기업 경영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이 양산될수록 사회 전체적으로 사회안전망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부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다시 정부 재정부담의 증가는 결국 기업의 직간접적 세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내 OJT 등의 사내교육은 근로자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올리는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체계적인 사내교육을 받기 어려운 비정규직이 양산될수록 한국경제 전체적으로 노동의 질과 부가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기업에도 노동의 질 저하라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요컨대, 경제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의 양산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 되는 셈이다.
경제의 궁극적 목적은 간단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2년전 도입됐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기술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부정적 효과보다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사, 노-노 모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어야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 같은 상생 분위기를 저해하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비정규직 비중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이미 전체 노동의 55%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입법예고안대로 비정규직 사용 기간과 업종이 대폭 늘어난다면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정부는 이 같은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통해 기업의 해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위에서 본 것처럼 단견이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 ‘내부 식민지’처럼 착취하는 경제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 경제가 지금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훨씬 더 큰 경제 충격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양산으로 내수소비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려놓은 탓이 적지 않다.
또한 지식정보화 시대는 지식정보 생산과 관련한 일자리가 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경제영역에서 노동자의 지식노동과 창의성 발현이 중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체계적인 교육도 못 받고 단기간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날수록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노동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장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국 경제는 그 같은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에 걸맞은 노동패러다임을 정립하지 못했기에 한국 경제와 사회의 모든 자원을 몰아준 일부 재벌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현 정부는 시행 2년밖에 안 된 비정규직 보호법을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제 위기’를 핑계로 재계의 근시안적인 민원 사항을 수용하는데 급급하다. 중장기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내수기반을 더욱 위축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정부 말대로 ‘친기업정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빠져 근시안적 기업의 이익만 떠받들다 보니 국민경제 전체가 파탄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경제의 파탄은 결국 국민경제의 한 부분인 재계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이다. 옆으로 말이 조금 새지만, 이런 점에서 ‘친기업 정책’이 마치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 좋다는 상당수 기득권 언론의 보도는 속이 뻔히 드러나 보이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계의 이해만 대변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면 굳이 정부가 왜 있는가? 아예 재계가 나서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을 하라고 하지, 왜 방대한 정부조직과 수많은 관료들을 두고 있는가? 관료들 밥그릇 챙겨주는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믿는 것인가?
말이 나온 김에 ‘잡 세어링’을 명분으로 대졸 초임을 깎는다는 엉터리 술수에 대해서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노사민정 대타협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것을 하는 줄도 모르는 새 어느날 갑자기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적어도 수개월간에 걸쳐 최소한 5년, 10년은 내다보고 현 위기 국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국민적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런 게 도대체 있기나 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대타협’이 이뤄진 이튿날부터 터져나온 것은 재계의 대졸초임 삭감 발표였다.
경제위기시에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는 국민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최대한 보전하고 여기에서 탈락되는 근로자와 가계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말만 대타협이지, 사실상 그 대타협의 결과는 사회적인 평균 임금의 삭감이라는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대타협’이라는 허울을 빌어 사실상 경제위기의 고통을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그렇지 않아도 치솟은 부동산가격으로 땅값은 금값이 됐지만, 정리해고 남발과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사람값은 똥값이 됐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지나치게 부풀어오른 땅값을 내리고 상대적으로 사람 값을 올려야 한다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당위적으로는 그 같은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계 각국 선진국의 인건비가 비싼 것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니다. 높은 인건비에서 양질의 노동력과 생산성이 나오는 것이고, 그 같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향상된 임금 소득이 내수기반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동산 값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떠받치고 가뜩이나 똥값인 사람 값은 더욱 낮추겠다는 발상 자체야말로 정부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특정 이해세력의 단기적 이익에만 봉사하는 방향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비용? 비용 핑계대지 마라. 이 같은 임금삭감이나 비정규직 양산으로 기껏 줄일 수 있는 인건비는 기업의 전체 비용 가운데 1%도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자구노력도 없이 선심쓰듯 예산을 지원해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서는 안 되지만, 정 써야한다면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 등 강바닥 파헤치는데 들일 수십조원의 돈의 절반이라도 임금삭감과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인센티브로 써보라.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대부분이 건설대기업 배불리는데 쓰이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부 말대로 일용직 일자리라도 늘리기 위해서라면 왜 이런 식으로는 돈을 쓰지 못하나. 건설일용직만 일자리이고, 일반 기업의 일자리는 일자리가 아니란 말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경제의 궁극적 목표는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현 정부도 겉으로는 상생이니 고통분담이니 말하며 이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가 실제로 실행하는 정책들의 실제 효과를 보면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보다는 원래 잘 먹고 잘사는 놈만 더 배 불려주는데 골몰하고 있다. ‘친기업’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빠져서 말이다. 그것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같은 ‘몰아주기’ 정책에 대한 거대한 반작용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현 정부는 지금 자신들이 저지른 실정과 편향적 정책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달게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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