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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이 사상 최대 규모인 30조원 안팎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 여당은 일자리를 만들고 급격히 가라앉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추경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악화 일로의 경제 위기 속에서 추경 편성 자체를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화급한 상황을 핑계로 마구잡이로 추경을 편성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국가채무가 폭증하고 있는 상태에서 수십조원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추경 편성의 타당성과 시기, 내용 등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따질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추경편성은 급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예산으로 편성된 285조원을 제대로 집행하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추경은 4월 개최 예정인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명박정부가 자화자찬용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이명박대통령이 G20에서 30조원 추경 편성을 내세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한들 귀담아 들을 나라는 별로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러다 보니 30조원의 추경이 타당한 것이며 시의적절한 것인지,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지금까지의 관행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급조된 추경은 보통 각 정부 부처와 여권이 짧은 기간에 마구잡이로 짜낸 사업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당초 예산 배정에서 밀려났던 사업이나 여권이 내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추진하려는 각종 선심성 사업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30조원을 채우려면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과 전달 체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급조된 일회성 사회복지 정책들로 짜깁기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부 여당이 발표한 생계곤란 가구에 대한 현금지급 등 6조원 규모의 민생안정대책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민생안정 긴급대책은 그 정책적 일관성과 정당성도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행과정 상에서 많은 혼란도 예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명박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상속세 부담 완화 등 ‘부자 감세’를 단행했다. 반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없애는 등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을 오히려 줄였다. 그러면서도 민생안정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생색을 내고 있다. 정부 여당이 이제 와서 ‘일자리’와 ‘서민 생계지원’을 들먹이는 것도 막대한 부자 감세와 토건 예산 투입에 대한 반발 무마용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렇게 급조된 추경은 사용 방법과 내용에서도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추경 재원은 ‘발 등의 불’을 끄기 위해 미리 당겨쓰는 돈이다.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미래세대의 빚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추경예산은 현재의 경제적 약자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동시에 미래 자식세대를 위한 전략적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의료 전산정보망 구축과 21세기형 교실 실험실 도서관 건설,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그동안 부진했던 노후화된 사회인프라 유지보수 등에 대부분의 예산을 쓴다. 오바마 행정부는 또 미국 자동차 빅3에게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도 친환경차량 기술개발 자금을 저리 융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모두 세 차례의 긴급경기부양책을 마련한 일본의 경우도 많은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 위기에 따른 서민과 저소득층 생활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오죽하면 지난해 10월 발표한 경기부양책의 제목부터가 ‘생활대책’이었을까.
반면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를 볼 때 이번 추경안은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현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은 현재의 화급한 문제에 대응하고 미래를 전략적으로 대비하기보다는 과거 회귀적이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여전히 70,80년대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에 매달렸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4대강 하천 정비사업이나 경인운하 사업 등 이름만 녹색일 뿐인 각종 토건사업에 예산을 소진하고 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재벌 건설업체들을 돕고 꺼져가는 부동산 버블을 떠받치기 위해서 말이다.
버블 붕괴로 발생한 경제위기 때 버블을 초래했던 산업에 자원을 쏟아 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오히려 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과거 일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인 1992부터 1995년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한 해 전체 예산 규모인 약 70조엔의 경기부양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0%대 성장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과도한 토건 예산을 편성한 바람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경기침체를 장기화했다. 일본도 당시 가라앉는 경기를 부양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 충격의 총량을 더 키운 셈이 됐다.
막대한 국채발행을 통해 추경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문제다. 국채발행으로 시중 자금을 다 빨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물량 쇼크’를 예상해 채권 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현 정부는 한국은행이 국채 물량 전부를 소화하도록 할 것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막대한 국채를 인수한다는 것은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물가가 상승한다면 추경편성의 의미도 희석화된다. 왜냐하면 가계부문의 임금동결 내지는 임금삭감도 모자라 실질구매력까지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편성한 추경이 한편에서는 가계의 실질소득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급속도로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서민가계의 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최대 책무이다. 서민가계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물가와 환율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계의 내수소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오히려 정반대다. 경기불황을 이유로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허울 아래 대대적인 임금 삭감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부동산거품 붕괴를 막는다며 금리인하로 물가와 환율 폭등을 방치하고 있다. 그 결과 서민가계는 2중, 3중의 펀치를 맞고 있다. 임소득 감소와 예금이자 수입 감소에 물가와 환율 급등으로 실질소득마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이 갑자기 수십 조원의 국채발행을 통한 대규모 추경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경 편성도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와 적반하장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지난 90년대 말의 외환위기 이후 되풀이되는 경제위기의 주범은 정부와 정치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정책실패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정책실패로 발생한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며 마구잡이 대책을 내놓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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