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4.9총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작·사당 지역을 4차 뉴타운으로 만들자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고 허위사실을 퍼뜨린 불구속 기소됐다고 한다. 정의원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계기로 정의원이 당시 뉴타운과 관련해 내뱉었던 엉터리 논리들이 새삼스레 기억에 떠올랐다. 정 최고위원은 총선 직전 오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건강한 수요가 있다면 공급을 해 주는 것이 시장논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총선이 끝난 뒤 오시장이 ‘당분간 뉴타운 추가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해 ‘뉴타운 공약(空約)’ 논란이 거세게 일자 정의원은 “집값이든, 물건값이든 오르면 해결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뉴타운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라고 오시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정 의원의 이 같은 논리는 한 마디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의원의 인식 수준이 상당수 정치인들(상당수의 저질 언론인들과 경제학자들까지 포함해)의 인식 수준(그것이 정말 무식해서 그렇든, 이해관계에 젖어 자연스레 왜곡된 인식이 생긴 때문이든)을 대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의원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정의원이 대변하는 '폭넓게 퍼진 몰상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된다. 구체적으로 한 번 따져보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장기적이고 총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급 구조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나 투기 심리가 한껏 부풀어 시기의 부동산시장 문제를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만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택은 공장에서 버튼만 누르면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는 통조림이 아니다. 대부분의 시장 재화는 시장의 시그널을 받아 공급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지체(time lag)가 발생하는데, 주택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경우 시공기간만 2~3년씩 걸린다. 지금 수도권에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는데도 건설업체들이 올해만 10만여가구를 추가로 공급하게 되는 것도 이미 수 년 전에 분양해 올해 공급이 이뤄지는 물량들 때문이다. 또 주택이라는 재화는 공간적, 환경적으로 공급이 극도로 제약되는 특성을 지닌다. 서울 강남에 집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시 기반시설의 부하를 넘어 강남 아파트를 50, 60층씩 마구잡이로 빽빽이 지어댈 순 없다. 또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넘친다고 해서 강남으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 몇 년 전까지 청약대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상당수 신도시 아파트들에는 지금 불 꺼진 집들이 수두룩하다.

 

반면 수요는 어떤가. 투기 심리가 팽배할 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게 수요다. 지난해 초 집값이 들썩이는 강북의 경우에도 강남 등 타 지역 주민들이 거래한 물건이 태반이었다. 몇 년 전 판교신도시에 몰려드는 투기 수요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투기 수요를 막지 않고 국지적으로 물량공급 계획을 세운다고 당장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교부 관료들에게 포획돼 헤어나지 못했던 지난 정권이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공급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왜 집값이 더 뛰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100%를 넘지는 않았다. 따라서 꾸준히 질서정연하게 공급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맞다.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를 때까지는 꾸준히 주택공급을 늘렸다. 하지만 공급한 주택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세력에게 돌아가 집값 거품을 키운다면 서민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뉴타운 지역에 몰려드는 수요는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 또는 투기수요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얘기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주택 공급이 아닌 주거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인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은 신도시 개발과 같이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소유권을 기준으로 한 주택공급 호수는 상당히 늘어나지만 실제 수용할 수 있는 가구수는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다가구 주택과 소형 주택이 줄고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길뉴타운과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의 경우 주택 호수는 4만5803호에서 7만5428호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될 가구수는 8만5765가구에서 7만5428가구로 12%가량 줄어든다. 이는 뉴타운 지역에서 줄어든 가구수를 다른 지역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타운 두 곳만 해도 이런데, 이를 전체 35개 뉴타운 지역으로 확대해보면 이 같은 주택 수요 창출 효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만하다. 뉴타운 사업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주택 및 전세 수요만 계속 늘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의 수급논리에 따른다면 뉴타운은 추가 지정을 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도 취소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뉴타운 사업에 대한 정치인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많은 정치인이 뉴타운 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나 지역개발 촉진사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택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뉴타운 사업 추진이 자신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로만 판단한다. 그러는 가운데 집값은 뛰고, 서민들은 쫓겨나며 건설사들은 폭리를 챙기고 투기꾼들은 투기차익으로 희희낙락한다. 이 모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바람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이 같은 뉴타운의 부조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20. 10:37



YTN 보도국의 현직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YTN에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우려의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김기자는 "저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기자들이 대거 목이 잘리고 사법처리되는 대체 지금 이 상황은 뭐죠?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라고 개탄하고 있네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MBC노조와 YTN노조, 그리고 KBS의 사원행동 등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언론노조 관계자 및 해고된 언론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린달님입니다.

 

  저희 YTN의 낙하산 반대 투쟁이 180일을 넘었습니다. 이제 정말 중대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방송통신위원회에서 YTN의 재승인을 '노사문제'로 보류한 이후로 , 또 저희가 매일 아침 벌이고

있는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집회가 법원에서 가처분 금지신청을 당한 이후로 이래저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처분으로 실제 출근 저지를 할 수는 없었고 (할 경우에 노조에 건당 천만 원,

개인은 백만 원씩을 변상하라는 처분이 내려졌죠.) 구본홍 물러가라는 구호만 외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정부에서 재승인 문제를 가지고 직접 협박에 나서니, 당연히 저희도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업을 한 적도, 단 일분 일초도 방송을 멈춘 적도 없는데 심의 요건에도 없는 노사문제라는 걸 빌미로

재승인 보류를 하겠다고 하니 정말 회사 문닫게 하려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구성원들을 엄습했고,

계속 공격적인 투쟁만 하는 게 옳냐는 의견도 많이 나와서 노조는 '보도국장 선거'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어쨌거나, 회사가 없어지면 모두 다 무용지물이니까요.

 

  지금까지는 보도국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직무대행이 보도국을 운영하고 있었고, 보도국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직무대행을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컨트롤이 안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보도국장 선거를 하고 보도국

구성원이 뽑은 보도국장이 사측과 노측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습니다. 사장 인사명령도 뭐도 다 거부하고 있지만 국장이 가운데에서 인사 거부등을 재명령해서

노조원들은 이를 따라주고 완충지대가 되어주면 노사 양측은 일단 휴전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노조는 이렇게 되려면 '민의를 따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YTN의 보도국장 선거는 직선제와 임명제를 절충한 형식입니다. 후보중 1,2,3등이 표수로 결정되면, 사장은

이 중 한명을 보도국장으로 임명할 권한을 갖습니다. 보도국 구성원들은 1,2,3 등 안에 누가 들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표를 누가 얻었는지 등수는 알 수 없습니다. 노조위원장과 개표위원만이

알지만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게 단서입니다. 그래서 '민의를 따르라'는 단서를 붙였던 거구요.

 

  하여튼, 사측은 이래 저래 튕기다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네 명이 출마해 선거가 진행됐습니다.

 

  김 모 , 정 모, 강 모씨 간부가 최종 순위 안에 들었고.  사장은 정 모씨를 보도국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김 모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몇 안되는 간부입니다.

정 모 강 모는 사장측 인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어긴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민의'를 공개했습니다.

2등, 3등, 4등의 표를 모두 합쳐도 김 모 부장이 얻은 표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요. 김 모씨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사장은 거의 지지도 얻지 못한 인물을 보도국장으로 임명한 셈입니다.

 

  대체 이럴거면 뭐하려고 보도국장 선거 했는지, 노조는 사장이 '민의 반영'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어겼다고 비난하고, 사장은 '일이삼등 중에 한명 뽑았으니 민의 반영한거다'라고 합니다. 뭐, 원칙상으로

4 등을 뽑은 건 아니니까 그런가요?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사람을 임명했더라면 정말 노사는 일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을 지 모릅니다.

그런 뻔히 보이는 쉬운 길을 두고 많은 보도국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올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요?  게다가 재승인 재심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저는 이 정권이 YTN을 문닫게 하려는 게

아닐까, 낙하산 사장은 '먹튀' 전략을 쓰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노조 집행부는 금요일 저녁부터 사장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사측은 오늘 낮 12시까지 농성을

풀라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고요. 가처분 신청까지 받아들여진 바 있으니 공권력 투입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사장실 점거가 합법적인 행동이라고는 강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사측과 이 정권은 결국 기자들에게

'벼랑끝 전술'을 택하라고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노조 집행부중 일부는 구속될

것으로 저희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공권력 투입 시점은 오늘 밤 아니면 내일 새벽으로 보는데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임명되는 경찰청장도 YTN 사태를 충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KBS 사원행동 소속 기자 3명은 해임되고 파면됐습니다. 파면되면 더 힘듭니다. 해임은 퇴직금이라도 받지만 파면은 아예 못받거나 반만 받는다고 합니다.

 

  MBC는 다음 달에 미디어법 통과시켜서 민영화하려고 하겠죠.

 

  저도 어린 딸 둔 애엄마인데, 정말 사법처리되어도 괜찮은지 앞에 나설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기자들이 대거 목이 잘리고

사법처리되는 대체 지금 이 상황은 뭐죠?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

 

by 선대인 2009. 1. 18. 21:48
지난해 5월 출범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는 지난 15일 그간 활동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 내용에 대한 프레시안의 16일 관련 기사 “뉴타운 태어나지 말았어야”의 내용을 짧게 살펴보자.



자문위가 발표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종합점검 및 보완발전방안'을 살펴보면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뉴타운사업의 문제를 숨기려했던 자료들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 담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관련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지적해 온 뉴타운 사업의 폐해가 실증적으로 잘 반영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방식의 주택사업이 중단 없이 추진될 경우 오는 2010년이 되면 주택 멸실(滅失)량은 13만6346호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뉴타운 등 재개발사업으로 새로 공급되는 주택수는 6만7134호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 절반이 사라져버린다는 얘기다. "싸고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해 강북을 업그레이드하겠다"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호언과는 달리 이처럼 주택 공급이 오히려 크게 줄어드는 까닭은 뉴타운사업으로 공급되는 주택 대부분이 대형주택이기 때문이다. (중략)


실제 보고서를 보면 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재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했을 조합원마저 뉴타운에 재정착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정비사업 전 평균주택가격은 3억9000만 원이었으나 정비사업이 끝나면 5억40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거주가구 평균소득은 사업 전 207만 원에서 사업이 완료된 후 653만 원으로 세 배가량 뛰었다.



사실 이 같은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은 그동안 이미 많이 거론됐던 문제다. 심지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뉴타운 사업에 착수할 당시부터 이 같은 문제점은 예상됐다. 그런데도 왜 이처럼 부동산 투기 거품을 조장하고 많은 서민들이 자신들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사업이 시작됐을까?


뉴타운 사업은 치밀한 도시계획 및 엄밀한 주거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강북 주민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했다. ‘강북뉴타운 건설’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력이 서울시장 취임 초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핵심사업이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사업 취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발전에 목마른 강북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표 계산이 있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보이는 실적’으로 승부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서울시장 재임 동안 뉴타운 사업에도 적용됐다. 일부 소외 지역을 번듯한 주택단지로 바꿔놓을 경우 ‘전시효과’를 통해 다른 지역 주민들의 표심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때문에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더불어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초기부터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 길음, 왕십리 3개 지구를 시범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의 시장 취임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이들 3개 시범지구에 투입한 시 재정만 1500억원가량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은평뉴타운 지역은 이 대통령이 뉴타운 사업의 ‘모델 케이스’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낡은 주거지역을 재정비해야 하는 다른 뉴타운 지역과 달리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사업 속도를 높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대통령은, 다른 뉴타운과 달리 은평뉴타운을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통해 공영 개발했다.


은평뉴타운 사업의 임기 내 가시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무리수가 뒤따랐다. 사업을 서두르면서 과다한 토지 보상비를 지급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은평뉴타운의 입찰 방식으로 아파트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던 턴키 방식을 택한 것도 문제가 됐다.


턴키 방식은 외국에서 공장 등 유형화한 건축물을 반복 설계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시공, 납품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기술 및 설계의 창의성을 활용하고 공기를 단축한다는 취지로 시행돼왔다. 문제는 이 방식이 높은 설계비용 때문에 사실상 상위 6대 건설업체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가격 경쟁입찰 방식에 비해 20~30% 이상 많은 사업비가 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턴키 방식은 주로 지하철이나 터널공사, 장대(長大) 교량 등의 공사에 적용됐을 뿐 아파트 시공에는 도입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은평뉴타운에 턴키 방식 적용을 고집한 것은 왜일까. 우선 공기 단축이 이유로 지적된다. 턴키 방식은 기본설계를 확정한 다음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다른 입찰 방식과 달리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에 부치기 때문에 공기가 단축된다. 4년 임기 내 사업 가시화를 바란 이 대통령으로서는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또한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전시’할 목적으로 고급 브랜드 아파트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경쟁입찰 방식의 경우 삼성, 현대 등 고급 아파트 브랜드 업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고가 브랜드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턴키로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 뉴타운이 확정되자마자 뉴타운은 또 한번 정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 주민들의 욕구를 대변해 각 구청장과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가 쏟아졌다. 서울시장실 주변은 뉴타운 사업과 관련한 구청장 등 면담자들과 지역 민원인들로 붐볐다.


이때부터 이 대통령도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초 3~5곳만 지정하려 했던 뉴타운지구가 결국 12곳까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도 열악한데 왜 어떤 지역은 해주고, 우리는 안 해주느냐”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이 대통령은 뉴타운지구와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기준의 하나로 ‘권역별 형평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지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니 권역별로 안배하겠다는 뜻.


하지만 뉴타운 사업 지정만으로 집값이 껑충 뛰는 현실을 목도한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대권 도전을 앞두고 표를 염두에 둔 이 대통령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03년 2차 뉴타운 12곳과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이하 균촉지구) 5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후 사업 대상지가 확대되고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됨에 따라 서울시는 2005년 6월 뉴타운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게 된다.


뉴타운 사업의 정치적 효과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도 ‘뉴타운 특별법’ ‘도시구조개선 특별법’ ‘도시광역개발 특별법’ 등 3개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이후 국회는 3개 법안을 통합해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 그해 12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그 사이 다시 3차 뉴타운 10곳과 2차 균촉지구 3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지정된 세운균촉지구 등 2곳을 합해 당초 3곳으로 출발한 뉴타운 사업은 모두 35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총 사업대상지는 27㎢로 약 720만평.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5%에 이르는 규모다.


“사업지 주변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가구의 15%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되는 서울시 창건 이래 최대 규모의 역사(役事)”라는 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서울시가 수십년간 추진해온 주택재개발사업 면적보다 더 넓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발을 빼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며 “당시 이명박 시장도 이 정도까지 사업이 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불거진 뉴타운 공약(空約) 사태도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당수 낙후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되자마자 집값이 뛰는 것을 지켜본 다른 낙후지역 주민들에게 뉴타운은 지역개발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주민들의 이러한 개발 기대감을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후보 각각 20여 명이 뉴타운 추가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 권한이 있는 오세훈 시장을 활용한 여당 후보자들이 단연 유리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뉴타운을 시작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뉴타운 공약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거 막판 이 대통령이 자신이 재임시절 공들여 추진했던 은평뉴타운을 전격 방문한 것도 여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다분했다는 게 중론이다. 뉴타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를 유권자에게 과시하는 이벤트였다는 것.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시점 이후 박빙 지역 유권자 상당수가 여당 후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자문단의 건의로 더 이상 뉴타운의 추가 지정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뉴타운 사업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현 정부는 이미 지난해 9.19대책에서 전국에서 약 26개의 뉴타운을 추가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수습하기는커녕 부동산 거품을 떠받쳐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만 골몰하는 이 대통령의 행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뉴타운 확대는 ‘원조 뉴타운돌이’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수도권 한나라당 의원들 대부분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이들은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켜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에 유리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드러났듯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곳의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 친한나라당 성향을 띤다. 그러니 서민층 주거지인 지역구를 아파트 단지 위주의 중산층 주거지로 바꿀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우호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집중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때문에 같은 행정구역 내 계층별 지지성향 분화가 심하지 않아 게리맨더링의 유혹은 비교적 작았다. 하지만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대규모 뉴타운 사업 등으로 지역구민들을 ‘물갈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를 ‘뉴타운맨더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지정된 지역들의 뉴타운 사업이 진행돼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진폭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대부분의 지역구는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로 변모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 대통령이 이런 것까지 염두에 뒀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정말 ‘지속가능한 기여’를 한 셈이다.


뉴타운 사업은 이 같은 정치논리에만 맡겨두기에는 그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너무나 큰 사업이다. 이제 기존 뉴타운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펼쳐야 할 시점이 됐다. 향후 뉴타운 사업은 ‘강북을 강남만큼 끌어올린다’는 균형발전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주민이나 투자자들의 집값 상승 욕망에 기댄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주택 공급, 기존 도시의 흔적을 송두리째 없애는 도시 설계, 개별 조합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세입자 주거 대책, 주민 사이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 방식, 상당수 원주민을 쫓아내는 비인간적인 뉴타운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주민들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뉴타운 추가 지정을 보류하고, 이미 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 중인 곳도 단계적, 순차적 개발로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또 뉴타운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 가운데 소형 및 임대 주택 공급 비율을 높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공공 임대주택 및 장기전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뉴타운 개발로 쫓겨난 서민들이 안정적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은 향후 10여 년 동안 서울의 모습을 확 바꿀 대역사다. 지금처럼 개발욕망과 정치논리에 물들어 집값 폭등과 낮은 재정착률로 대변되는 ‘뉴타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서울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동체가 중심이 된 뉴타운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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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1. 17.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