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4.9총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작·사당 지역을 4차 뉴타운으로 만들자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고 허위사실을 퍼뜨린 불구속 기소됐다고 한다. 정의원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계기로 정의원이 당시 뉴타운과 관련해 내뱉었던 엉터리 논리들이 새삼스레 기억에 떠올랐다. 정 최고위원은 총선 직전 오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건강한 수요가 있다면 공급을 해 주는 것이 시장논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총선이 끝난 뒤 오시장이 ‘당분간 뉴타운 추가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해 ‘뉴타운 공약(空約)’ 논란이 거세게 일자 정의원은 “집값이든, 물건값이든 오르면 해결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뉴타운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라고 오시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정 의원의 이 같은 논리는 한 마디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의원의 인식 수준이 상당수 정치인들(상당수의 저질 언론인들과 경제학자들까지 포함해)의 인식 수준(그것이 정말 무식해서 그렇든, 이해관계에 젖어 자연스레 왜곡된 인식이 생긴 때문이든)을 대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의원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정의원이 대변하는 '폭넓게 퍼진 몰상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된다. 구체적으로 한 번 따져보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장기적이고 총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급 구조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나 투기 심리가 한껏 부풀어 시기의 부동산시장 문제를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만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택은 공장에서 버튼만 누르면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는 통조림이 아니다. 대부분의 시장 재화는 시장의 시그널을 받아 공급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지체(time lag)가 발생하는데, 주택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경우 시공기간만 2~3년씩 걸린다. 지금 수도권에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는데도 건설업체들이 올해만 10만여가구를 추가로 공급하게 되는 것도 이미 수 년 전에 분양해 올해 공급이 이뤄지는 물량들 때문이다. 또 주택이라는 재화는 공간적, 환경적으로 공급이 극도로 제약되는 특성을 지닌다. 서울 강남에 집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시 기반시설의 부하를 넘어 강남 아파트를 50, 60층씩 마구잡이로 빽빽이 지어댈 순 없다. 또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넘친다고 해서 강남으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 몇 년 전까지 청약대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상당수 신도시 아파트들에는 지금 불 꺼진 집들이 수두룩하다.

 

반면 수요는 어떤가. 투기 심리가 팽배할 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게 수요다. 지난해 초 집값이 들썩이는 강북의 경우에도 강남 등 타 지역 주민들이 거래한 물건이 태반이었다. 몇 년 전 판교신도시에 몰려드는 투기 수요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투기 수요를 막지 않고 국지적으로 물량공급 계획을 세운다고 당장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교부 관료들에게 포획돼 헤어나지 못했던 지난 정권이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공급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왜 집값이 더 뛰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100%를 넘지는 않았다. 따라서 꾸준히 질서정연하게 공급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맞다.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를 때까지는 꾸준히 주택공급을 늘렸다. 하지만 공급한 주택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세력에게 돌아가 집값 거품을 키운다면 서민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뉴타운 지역에 몰려드는 수요는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 또는 투기수요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얘기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주택 공급이 아닌 주거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인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은 신도시 개발과 같이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소유권을 기준으로 한 주택공급 호수는 상당히 늘어나지만 실제 수용할 수 있는 가구수는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다가구 주택과 소형 주택이 줄고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길뉴타운과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의 경우 주택 호수는 4만5803호에서 7만5428호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될 가구수는 8만5765가구에서 7만5428가구로 12%가량 줄어든다. 이는 뉴타운 지역에서 줄어든 가구수를 다른 지역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타운 두 곳만 해도 이런데, 이를 전체 35개 뉴타운 지역으로 확대해보면 이 같은 주택 수요 창출 효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만하다. 뉴타운 사업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주택 및 전세 수요만 계속 늘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의 수급논리에 따른다면 뉴타운은 추가 지정을 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도 취소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뉴타운 사업에 대한 정치인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많은 정치인이 뉴타운 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나 지역개발 촉진사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택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뉴타운 사업 추진이 자신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로만 판단한다. 그러는 가운데 집값은 뛰고, 서민들은 쫓겨나며 건설사들은 폭리를 챙기고 투기꾼들은 투기차익으로 희희낙락한다. 이 모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바람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이 같은 뉴타운의 부조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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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1. 20.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