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건설·조선사 구조조정 작업이 우려대로 '용두사미'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주채권은행들이 신용위험평가 완료시한인 16일까지 1차 분류작업을 벌인 결과 건설·조선사 중 퇴출등급(D)으로 판정난 곳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어든 3개 전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태산명동서일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사태에 이어 또다시 경제 위기를 부른 정부와 정치권의 장본인들은 두 달 여 전  ‘낫과 망치로 깨부수듯’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애초부터 한쪽에서는 미분양 물량 매입과 택지 환매에다 대대적인 건설업체 부양을 통해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은 막으면서, 대주단을 구성해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엇박자를 놓으니 실제 정부 의도를 믿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정부가 개입해 시장에서 선별하는 것보다 살릴 기업과 퇴출시킬 기업을 더 엄정히 구분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은 막으면서 대주단협약이라는 틀을 추진하는 정부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다. 오히려 건설사들의 로비에 따라 정치적 판단이나 관료적 재량에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시절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이라는 명목 아래 오히려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이후 경제위기를 지속시킨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번 대주단 협약의 결과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가 역시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한국 경제와 정부는 10여년 전의 우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무리한 경영판단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부실을 쌓아온 건설업체들을 다 먹여살리기로 작정한 셈이다. '녹색뉴딜'이니 '광역선도권 개발프로젝트'니 온갖 명목을 다 붙여가며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을 억지로 떠받치는 건설경기 부양책은 효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장기침체를 불러와 국민경제 전체의 고통의 총량을 키운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이제, 일본 사례를 통해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 정부의 건설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경우 2007년 하반기 서브 프라임론(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급격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과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하 등도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많은 사람이 미국은 일본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폴슨 재무장관이나 버냉키 FRB 의장 등도 가장 먼저 일본의 거품 붕괴 사례를 주시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도표1>에서 보듯 일본 정부는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1992~1995년 무려 66조9000억엔에 달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그밖에 2조엔씩 세 차례 보완 대책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재정 투입은 73조엔에 달한다.

  <도표1> 부동산 버블 붕괴 시기 일본의 경기부양책 및 투입 규모

이는 1994년 일본 정부의 일반 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였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결국에는 거품 붕괴를 막지 못했다. 이 기간 일본 경제는 0%대의 실질성장률에 그쳤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 당시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건설족(토건족) 의원의 요구에 따라 불요불급한 각종 건설·토건사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말하자면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당시엔 뚜렷한 계획도 없이 육지와 무인도를 연결하는 대교를 건설했다. 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산을 마구 훼손해 도로를 건설했지만 나중에 겨우 산토끼와 노루만 지나다닌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그만 시골길과 연결되는 거대한 고가도로도 지었다. 그러나 이런 퍼주기식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거품이 붕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당시 일본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책을 폄으로써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가 연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 건설업체는 거품 붕괴 초기의 줄도산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그 수가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 경제전문가 사이토 세이치로는 저서 ‘일본경제 왜 무너졌나’(들녘, 1998년)에서 건설 토목산업 종사자 수는 1991년 604만명에서 1996년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같은 기간 건설·토목 관련 업체 수는 60만2000개에서 64만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었다.

또 일본 전문가인 알렉스 커 역시 저서 ‘치명적인 일본(Dogs and Demons)’(홍익출판사, 2001년)에서 1994년 일본의 콘크리트 제조량은 모두 9160만t으로 7790만t인 미국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국토의 단위 면적당 미국에 비해 약 30배나 많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생기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반대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거품이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건설업체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 건설업체는 상당수 부실 업체였다.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졌다면 이들 업체는 인수합병되거나 퇴출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예산이라는 인공호흡기가 있었기 때문에 연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저가 입찰 등 시장 질서를 어지럽힘으로써 건강한 기업의 발목까지 잡았다.

세이치로씨는 이를 두고 “1990년대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건설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 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했다. 세이치로씨는 이런 건설경기 부양 대책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폐해는 일본 경제에 오래도록 악영향을 끼쳤다. 우선 적자 재정 편성이 계속되고 국채 잔고가 누적되면서 재정 건정성이 위협받았다. 초저금리 정책을 펴고 재정 지출을 확대함으로써 격렬한 통증은 숨길 수 있었지만 일본 경제의 병인(病因)이 모호해져 병의 원인 진단에 오류가 발생했다. 또 건설사의 부실은 수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심해졌고, 결국 1998년부터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

일본 정부는 1996년 실질 GDP 성장률이 3.5%로 올라서자 1996~97년에는 경기부양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도표1 참조). 그동안 건설경기 부양으로 국가 채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1997년부터 건설업체와 금융기관이 줄도산하는 등 2차 위기를 맞게 됐다. <도표2>를 보면 1990년대 후반 도산 기업 수와 도산 기업의 부채 총액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건설업의 도산 급증으로 실직, 감봉, 장기휴가 등 근로자 피해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표2> 일본 기업의 도산 추이 및 근로자 피해 추이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와 주가부양 대책도 함께 동원했다. 일본 대장성은 우정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통해 1992년 하반기에만 약 2조8200억엔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주가를 떠받쳤다. 이후 공적 연금은 1995년까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주식시장에서 순매수했다.

제 금융계에서는 당시 일본의 이 같은 주가 부양 대책을 두고 유엔 평화유지군의 머릿글자인 PKO(Peace-Keeping Operation)에 빗대 PKO(Price-Keeping Operation)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주식시장의 건전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한정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당시 특정 목표주가를 정해 투자를 직접 결정하고 집행함으로써 조롱 대상이 된 것이다.

또 일본 대장성은 일본은행에 수시로 압력을 가해 1990년 8월까지 6%였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4.5%로 떨어뜨렸다. 1994년엔 1.75% 수준으로 낮췄다. 하지만 건설 및 부동산 업계는 이런 금리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은행은 이미 부동산 및 건설업계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잔뜩 떠안고 있는 상태였는 데다 신용경색까지 겹쳐 추가 대출을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미 부동산시장의 투자자가 모두 거품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부동산 쪽으로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요약하자면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 공공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한 막대한 건설경기 부양책(재정정책)과 금리 인하(통화정책), 주가부양책(공적 연금 동원) 등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버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과감한 구조조정 이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재정 및 통화정책 수단을 일찌감치 소진해버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1990년대 일본은 엔고(高)가 급속히 진행됐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가운데 1990년대 일본 정부가 하던 정책을 따라 하고 있다. 재정 확대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책, 대통령까지 나선 금리 인하 요구, 연금을 동원한 주식 매입과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등이 그것이다. 바로 일본이 장기불황으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자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대주단을 구성해 건설업체들에 대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결과는 '퇴출기업 제로'로 나타났다. 시장에 좀비 건설업체들을 계속 양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는 결국 일본식으로 경기 침체를 장기화할 뿐이다.  

물론 한국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정책 실패가 계속되고 국가적 위기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미 외환위기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 및 정치권의 무능과 무지가 드러났다. 이들은 급변하는 21세기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발 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2008년 10월30일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긴급 경기부양 대책인 ‘생활대책’이 참고가 될 수 있다(아래 도표 참조).

 

여기에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생활지원 정액 급부금(가칭) 실시 및 재계에 임금인상 요청, 고용보험료 인하, 전기 및 가스요금의 2009년1~3월 인상폭 축소,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 대책 강화, 중소기업 등 고용 유지 지원 대책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과 서민,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건설·토목사업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과거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 뭔지를 보여주는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자산시장 가격 조정은 자산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상이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가격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하지 않던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미국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서 자산가격 하락을 막으려 한들 ‘밑 빠진 독에 돈 붓기’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벌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 경제를 만들 수 없다.

21세기는 첨단 기술경제 시대다. 지식정보화 시대이고, 창조경제 시대다. 당연히 한정된 국가의 자원을 이런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한국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토건국가적 개발사업을 자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다 오히려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미래가 없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16. 12:29


새해가 시작되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많은 언론이 ‘위기는 기회다’라면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한 기대감에 편승해 상당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집값이 반등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미국발 세계경제의 침체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많은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이 이번 세계 경기침체가 3~5년 정도의 중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의 3각축이 동시에 경기 침체로 빠져든 것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그러기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전례 없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한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사뭇 톤이 다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매우 걱정하는 현 경제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만 그토록 낙관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은 금방 호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강부자 정권’의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현 정부는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부동산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을 쏟아냈다. 이도 모자라 10·21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방안'과 11·0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내놓았다. 26조원에 이르는 올해 토건SOC사업 예산을 배정하고 ‘녹색 뉴딜’이라는 명목 아래 4년간 50조원의 대부분을 각종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쏟아붓기로 한 것도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구조를 볼 때 현정부의 이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거품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융권에서 대출제한을 넘어 본격적인 대출회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거품붕괴의 시장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기인 1992~94년 동안 무려 72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천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부양 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거품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1992~94년 3년 동안 사실상 제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은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키울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공급과잉 신호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억지로 주택공급을 늘리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네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대를 조금 상회하는데, 이는 5~7%대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낮은 수치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15. 10:39


부동산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이에 따른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부실 건설업체들의 도산을 막으려는 정부의 건설 경기 부양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8.21대책부터 시작해서 10년간 500만 호 주택공급을 천명한 9.19대책, 가계 주거부담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10.21대책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인 11.03대책, 지난 6일의 이른바 ‘녹색뉴딜’ 방안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건설경기 부양대책만 4차례나 쏟아져 나왔다. 또한 올해 예산액 가운데 건설SOC사업 예산이 24.7조원 가량으로 전년 대비 약 26%나 급증했다. 이밖에 직접적인 건설부양 정책으로 포장하지는 않았어도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건설경기 부양대책인 경우도 많다. 예컨대 정부가 향후 5년간 56조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같은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이명박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명분은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이다.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경제도 살리면서 결국 그것이 국가경쟁력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의 대규모 SOC사업을 앞당겨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10월 30일)

“아파트가 아닌 지방 SOC 사업같은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을 할 것이다.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간 교통과 물류시설 등에 투자할 것이다" (강만수기획재정부장관, 11월 3일)

그런데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현실에 비춰볼 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7,8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경기침체가 오면 건설경기 부양으로 대응한다는 게 거의 공식화돼 있었다. 당시 이 같은 대응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합리성을 가졌다. 우선, 당시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설산업의 GDP 비중이 높았고 산업연관효과와 고용 효과도 높았다. 그래서 건설업의 경기부양 효과도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건설업에 투자하면 건설업계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된 자재 생산 및 공급업체 등 연관 산업 전반에서 매출과 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또한 당시에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아직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취약한 SOC를 확충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도로, 항만, 공항 등 SOC 확충은 물류 수송의 확대와 물류 시간 및 비용 절감 등의 형태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확충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2,30년 전의 개발시대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은 건설업 말고도 수많은 새로운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로 인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설업의 비중도 크게 낮아졌고, 산업연관효과도 줄어들었다. 또 입지별로 다르겠지만, 웬만한 SOC 투자는 이미 이뤄져 전국에서 이용률이나 가동률이 낮은 도로, 공항, 산업단지 등이 급증하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SOC 확충 필요성도 크게 낮아졌다. 더구나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 건설업체들의 조직 구조와 고용 구조가 변화하면서 정부가 내세우는
경기 활성화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게 떨어졌다. 왜 그런지 아래 <도표1>을 참고로 해서 설명해보자.


우선, 건설업체들은 87년 민주화 이후 노조가 빠른 속도로 조직화되고 노조원들의 임금이 급상승하자 비용절감 명목으로 덤프트럭 운전자들과 중장비 인력들을 개인사업자 형태로 분리시켰다. 또한 시공인력들도 아웃소싱 명목으로 점차 하청업체에 떠넘겨 본사 인력을 줄여나갔다. 이 같은 추세는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 건설업체에는 최소한의 관리 및 영업인력만 남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의 상당수도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 가운데 개인사업자가 된 덤프트럭과 중장비 사업자들의 시장진입이 자유롭게 개방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트럭운임 및 중장비 단가는 계속 하락했다. 하청업체의 사정도 갈수록 열악해졌고, 시공인력들의 노임 단가도 불법 외국체류자들의 유입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90년대 이전에 비해 외환위기 이후 덤프 및 레미콘, 중장비기사와 하청업체 시공인력 등 소위 현장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실질가격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많은 건설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도표1> 한국 대형 건설업체들의 조직 및 고용 구조 변화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경기부양 명목으로 예전처럼 추경편성 등을 통해 건설사업 재정확대를 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경기부양 명목의 건설사업 예산의 대부분은 공사를 수주한 대형 원도급자가 차지해 버리고 밑바닥으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
 

왜 그런지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2002년 발주해 2004년까지 진행된 경기도 성남~호원 도로 건설공사 2공구 공사 현장 사례를 통해 보자. 아래의 <도표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공사에서 A건설 등 3개 대형 건설업체 컨소시엄은 총공사비(정부 예정가격은 3,032억 원) 2,853억 원에 수주한 공사 가운데 약 1,970억 원어치의 공사물량을 60.5% 정도인 1,190억 원에 하청을 주었다.

<도표2> 건설경기부양 재정사업의 경기부양 효과 실태



 

간접공사비와 자재비 등의 명목으로 챙긴 이익만이 883억 원(=2,853-1,970)이고, 이에 더해 직접공사비 하청 과정에서 780억 원(=1,970-1,190)을 추가로 챙긴 것이다.


A
사 등은 간접공사비와 자재비만으로 처음부터 총공사비에서 30.9%가량을 챙긴 다음 직접공사비 하청 과정에서 추가로 27.3%가량을 챙긴다. 총공사비의 58.2% 가량이 A사 등 대형 원도급업체의 이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데 대해 대형 건설업체들은 직원을 투입해 공사 전반을 관리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각종 관리비용은 이미 간접공사비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단순히 공사물량을 넘겨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하청발주 과정에서 다시 엄청난 차익을 챙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투입이 대형 건설업체들의 금고로 그대로 들어가버려 경기부양 효과와는 무관하게 퇴장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위의 예에서 건설경기부양 재정사업의 경기부양 효과를 살펴보기로 하자. 건설경기부양 예산 2,853억 원의 58.2%가 자재비/인건비 883억 원과 마진 780억 원의 형태로 대형 원도급업체에게 돌아간다. 원도급업체가 차지하는 이 돈은 사업관리 및 영업직원들의 월급과 음성적인 로비자금까지 포함된 활동비, 자재비 등으로 나가지만 대부분이 이익으로 사내유보 된다. 사내에 유보된 자금들의 상당 부분은 대형 건설업체의 향후 주택사업 등을 위해 택지매입 비용 등에 들어가 땅값을 부추길 뿐 당장에 경기부양에 기여할 수 있는 고용을 늘리거나 산업연관효과 확대를 통하여 연관산업의 소득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는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건설업체들이 무리한 차입과 분양사업 전개로 미분양이 급증하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는 정부 경기부양 예산이 이들 업체들의 부채 상환에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명박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통해 실제로 노리는 것도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건설업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적어도 현 정부가 건설경기부양책 실시를 위해 겉으로 내세우는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도급업체에 지급되는 1,190억 원(41.8%) 3, 4, 5차 다단계 하도급 과정을 통해 중간마진 형태로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최종 시공인력과 덤프트럭 및 중장비 기사 등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당초 건설경기부양 예산의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건설경기부양 명목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건설사업 현장에는 돈 구경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시공인력 가운데 30~4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의 상당 부분을 본국에 송금하므로 이들을 통한 국내소비 진작효과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사례에서 원도급자가 챙기는 마진이 큰 이유는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상위 대형건설업체들이 가격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턴키입찰 (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균 낙찰가가 가장 낮은 최저가낙찰제의 경우에도 원도급자는 20~30% 이상 남기는 게 보통이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급변한 건설업계의 사업구조 및 고용 구조 때문에 건설토목 사업을 통한 고용창출 및 내수진작 효과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건설경기부양을 한다고 해서 건설 및 토목사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소득증대 효과가 생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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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1. 14.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