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MBC 뉴스데스크를 보는 도중 이명박 대통령의 ‘신빈곤층’ 발언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월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쇼’까지 연출했다.
왜 이 대통령의 행위를 ‘쇼’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바로 앞에 나온 MBC 보도내용과 지난해 말 정부가 통과시킨 정부 예산안 내용 때문에 그렇다. 이 대통령의 신빈곤층 발언에 앞선 MBC 보도 내용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차상위 계층 21만명에 대한 의료급여를 오는 4월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기초생활 수급자 숫자도 지난해보다 1만명 줄였다. 정부가 겉으로 말하는 사회 안전망 강화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뒤이은 보도에서는 대학생 63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 금리는 연 7.3%로 전 학기보다 0.5%포인트 떨어지는데 그쳤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7% 포인트나 떨어졌지만,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를 2배 이상 높여 사실상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돈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실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 하루의 뉴스에서만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기막힌 일들은 지금 계속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필자는 처가 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기에 기막힌 국내 사회복지의 현실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 처가 돌보는 사회복지 대상자 가운데는 단 돈 몇 만원이 아쉬운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당초 처가 맡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복지기관 거점센터 예산은 당초 1억원에서 7000만원으로 깎였다. 시의원 한 사람이 “성과가 없어 예산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거점센터가 지난해 10월에 시작했으니 예산 심의 시기인 12월에 성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예산 7000만원으로 박하디 박한 사회복지사 세 사람 연봉(평균 2000만원) 6000만원을 지급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는다. 그것으로 1년 내내 그 거점센터가 돌보는 지원 대상자 240여 케이스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들이 손을 놓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 예산이 없으니 잠재적인 민간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이 부르틀 지경이다. 그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정말 가슴이 미어질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12일과 13일 2009년도 예산안과 감세법안 등 예산 부수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정부는 당시 4대강 정비사업 예산 등 지난해보다 26%나 증액된 SOC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이미 기존에 발표한 대로 종합부동산세 대폭 완화와 소득세법, 법인세, 상속세 완화 등을 통해 상류층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안을 관철시켰다.
이처럼 강행 처리된 올해 예산안에 대해 당시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경기를 살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 띄운 해설자료를 통해 올해 예산안은 1) 사회안전망 구축 등 경제 위기 관리 2) 뉴딜, 구조조정, 인력 양성으로 미래 대비 3) 신기술과 녹색산업 투자로 경제 재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안전망 구축 등 경제 위기 관리를 올해 예산안 편성의 가장 큰 방향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말 이 같은 목표를 정말 실현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확정된 올해 예산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도표1>을 참고로 올해 예산내역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지난해보다 26% 늘어난 24.7조원 규모의 SOC사업이 눈에 띈다. 이 같은 SOC사업 예산을 편성한 것과 관련하여 현 정부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경기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지난해 12월 15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례 회동에서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하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올초 ‘녹색뉴딜’이라는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을 또 한 번 내놓았다. ‘녹색’이라고 포장했지만, 4대강 사업과 중소 댐 건설 등 도대체 왜 하는지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건설토목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고급 스테이크로 포장한 저질 소시지’였다.
<도표1> 2009년도 정부예산안 내역
(주) 기획재정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이미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질 정도로 불필요한 건설토목사업이 남발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래 <도표2>에서 1970년대 이후 건설산업의 부가가치가 전체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시기에 건설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크게 늘어나 11~12%대를 유지하다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90년대 말 IMF사태 직후 8%대까지 낮아졌다가 2000년대 부동산 투기가 본격화되면서 9%대로 상승하여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주) OECD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에는 90년대 초에 4% 수준에서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하여 5%대로 증가하였으나 이 정도 수준에서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부동산 투기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부가가치 비중으로 볼 때 한국 경제는 미국보다 두 배 가량 더 건설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에 9.7%를 기록한 후 버블 붕괴와 장기불황으로 계속 줄어들어 2005년에는 6.1%까지 감소했다.
건설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발경제 시대에 비해 건설토목사업의 경기부양 효과와 일자리창출 효과는 매우 낮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SOC예산을 줄이기는커녕 대폭 늘린 것이다. 그 가운데는 대운하 추진을 위한 걸치기 예산으로 의심받는 4대강 하천정비 예산 1조7,000억 원과 소위 ‘형님예산’으로 비판 받는 포항지역 건설예산 4,370억 원도 포함돼 있다. 특히 4대강 하천정비 사업에는 향후 4년간 모두 14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나왔다. 홍수 대비 물길 정비라는 내용 외에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의 근거도 없이 14조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건설업체들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정치인들이 과시용 지역 예산으로 가장 선호하는 도로 예산은 모두 9조4,942억 원이나 편성됐다. 국토해양부는 당초 지난 10월 도로예산으로 7조9,540억 원을 편성했다. 이곳 저곳 공사를 벌리기 보다는 완공위주의 집중투자를 통해 예산 효율성을 높인다고 이같이 편성했었다. 그런데 11월 수정예산안에서는 경기침체를 내세워 선도사업이라며 10월보다 18.6%가 늘어난 모두 9조3,966억 원을 편성했고, 이마저도 국회에서 더 증액돼 통과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예산에 반영된 음성~충주고속도로, 충주~제천고속도로, 동해~삼척고속도로, 상주~영덕고속도로 등은 2007년 국가기간교통망계획에서 모두 경제성이 낮다고 평가된 사업이었다.
이처럼 상당수가 불요불급한 예산인 토목건설사업에 국가 자원이 과다 배분되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절실히 필요하거나 향후 국가발전 면에서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한 곳에는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이 주가 되는 보건복지 예산이다. 정부와 여당은 줄기차게 경기침체 시에 가장 타격을 많이 받는다며 대규모 지원을 할 것처럼 떠들어 댔으나 2009년도 보건복지 예산은 전년대비 10.4% 증가에 그쳐 전체 예산 증가율 10.6%보다 낮게 나타났다.
보건복지 예산은 74.7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25.9%를 차지하여 겉으로는 매우 크게 보인다. 하지만 2005년부터 정부 세출예산에 포함된 국민연금(7.7조원)과 건강보험(31.6조원) 급여액이 약 39.3조원 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한 보건복지 예산 비중은 35.4조원 안팎으로 줄어들어 전체 예산의 12.3%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체 보건복지 예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사회보장연금 지출 증가율이 2005-2007년 증가율 수준인 14~17% 수준을 유지한다면 순수한 보건복지 예산 증가율은 대략 5~7% 정도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복지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취약한 복지 인프라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었다.
아래 <도표 3>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도표3> OECD 사회지출 비중 및 한국의 기초생활보장 지급 실적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수정예산안에서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요구로 실업급여 및 기초생활 수급자 지원 확대,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등에 1조원, 청년실업 대책에 3,000억 원을 추가로 배정했다. 그러나 이 정도 증액으로는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편성해놓았으니 MBC 뉴스 보도에서 보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굳이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현실의 절실한 문제에 대응하거나 미래를 전략적으로 대비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방향과 내용이 대부분 이런 것이다. 과거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지금 한국 정부와 같은 대규모 건설토목사업을 잇따라 편성했다가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로 몰고가면서 정부 부채만 잔뜩 키웠던 일본의 경기 부양책조차 건설토목사업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이름부터 ‘생활대책’으로 서민층 보호 위주로 돼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정부는 ‘광역경제권 선도포르젝트’니 ‘녹색뉴딜’이니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경기부양’이니 온갖 명목으로 시대착오적인 7,80년대식 건설토목사업에 예산을 탕진하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으니 거의 범죄적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서도 이명박은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고 하니 쑈도 이런 생쑈도 없다. 쑈도 속과 겉이 다르고, 속내가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원래 신빈곤층은 없었고, 정부가 전혀 그동안 나몰라라 하며 돌보지 않은 빈곤층만 있을 뿐이다. 설사 이명박이 이름붙이 신빈곤층이 있다고 한들, 한쪽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깎으면서 새로 신빈곤층을 찾아내 지원을 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닌가? 어차피 현재 상황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결여돼 있고, 따라서 전혀 상황 파악과 장악을 할 수 없는 이명박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제발 코웃음이 나오게 하는 생쑈만이라도 집어치우고 지하 벙커에 숨어서 대중의 눈 앞에서 어른거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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