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으로 연일 떠들썩하다. 난리칠 것 없다. 우리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뻔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고 하고 있고, 다수 언론은 ‘집값 바닥론’을 선동하기에 바빴다.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이라고 떠들면서 한쪽에서는 빚 내서 집 사라고 유도하는 정부와 언론이 제 정신인가. 그들은 지금 가계부채가 왜 늘어나는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정부의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부양책이야말로 실은 가계부채를 계속 늘려온 주범이자, 길게 보면 경착륙 대책이었다. 실제로 연착륙을 지속한 결과 가계부채는 얼마나 증가했을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신용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996년 1분기 147.7조원에서 2013년말 현재 1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투기 억제잭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처음 연착륙론이 나왔던 2004년 1분기의 가계부채는 470조원이었다. 그 때에 비해 가계부채가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특히 부동산 침체기라고 할 수 있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가팔라졌다. 노무현정부 5년 동안 가계부채가 202조원 증가했는데, 이명박정부 5년 동안에만 292조원 증가했다.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정부 때보다 부동산 침체기였던 이명박정부에서 더 많은 가계부채가 늘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집을 살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빚을 내 집을 사게 만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이 같은 추세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아니, 이제는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한다’는 그럴듯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결국 세입자들까지 물귀신처럼 끌어들이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4.1부동산대책이 나온 이후 2013년 2분기에 가계부채 16.9조원이 늘어난 것이나 8.28대책 이후 지난해 10~12월에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연착륙대책이라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실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폭탄 돌리기’ 대책인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 집을 살 수 있는 유효수요층이 금융규제 때문에 집을 사지 못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도 알 수 있다. 정말 구매력 있는 유효수요층이 많다면 거래량이 크게 늘지도 않았는데, 가계부채와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겠는가.
이처럼 부동산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2008년 이후 가계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정상적으로 빚을 내 집을 살 수 없는, 소득 여력이 적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도록 부추긴 때문이다. 주택 거래량은 줄었어도 주택 거래당 부채 크기는 더 커진 것이다. 바로 연착륙론이라는 미명 아래 부동산 부양책을 지속한 결과인 것이다. 둘째, 고환율-저금리에 따른 고물가와 재벌편중 경제 심화로 가계 소득이 늘지 않아 가계들이 빚을 내 생활할 수밖에 없게 만든 때문이다. 노무현정부 때 평균 경제성장률은 4.3%였고 가계소득이 꾸준히 성장했다. 이명박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8%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구나 실질 가계소득은 대기업 편중 성장과 고물가부담 때문에 거의 정체됐다. 그 결과 이명박정부 기간 동안 누적 경제성장률이 12%를 넘지만 가계가처분소득 성장률은 7.5%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가계부채는 같은 기간 동안 30% 가량 급증했으니 절대액뿐만 아니라 상대적 부담 측면에서도 가계부채는 훨씬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가계부채의 절대액뿐만 아니라 가계소득 대비 상대적 크기도 훨씬 커졌다. 한미일 3국의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 부문 가계부채 비율 추이를 살펴보자. 2008년 133.7%에서 올해 1분기 현재 107.3% 수준까지 내려온 미국의 경우 주택 거품의 배경이 됐던 가계부채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소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국은 145.7% 수준에서 163.8% 수준까지 오히려 이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더구나 2004년 이 비율이 122.1%였던 것에 비하면 이미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채비율 163.8%는 이미 부동산거품이 꺼진 미국이나 남유럽국가들을 모두 포함한 OECD국가 평균 130%대보다 훨씬 높다. 대다수 국가가 경제위기를 맞아 공공부채는 늘리더라도 가계부채는 다이어트를 유도했다. 하지만 한국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심산으로 공공부채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를 계속 늘리는 위험천만한 역주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지금 속도로 계속 늘게 되면 박근혜정부 임기 말인 2017년에는 약 1218조원에 이르게 된다. 부채 비율은 180% 수준에 육박할 수도 있다. 가계가 버는 소득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9000만원의 빚을 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계부채 문제는 1000조원이라는 양적 문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악화돼 있다는 게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특히 2008년 이후 가계부채 문제는 질적으로도 더욱 악화됐다. 보험사, 대부업체, 신용카드 할부까지 대출금리가 높은 악성 부채가 늘어났다. 또한 부산, 대전 등 지방 부동산까지 가격이 부풀어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던 지방의 가계부채까지 크게 늘리고 악화시켰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내다가 나중에 원리금을 함께 내거나 일시상환해야 하는 구조다. 처음에는 풍선의 바람구멍처럼 이자만 조금 내다가 원리금을 내는 시기가 도래하면 부담이 풍선 몸통처럼 확 커진다고 해서 이를 풍선식 대출(balloon payment)이라고 한다. 이 같은 풍선식 대출 구조는 미국 대공황을 불렀던 금융상품 구조여서 미국에서는 이후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선분양제와 맞물려 3~5년간의 거치기간을 가진 주택대출 상품이 오히려 일반화돼 주택투기의 진폭을 키우는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당장의 집값 급락을 막겠다고 2008년부터 거치기간 연장을 5년째 실시하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70% 이상의 주택대출 가계가 이자만 내고 있는데도, 이 부담조차 견디지 못해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이 가라앉은 것이다.
그런데 가계부채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나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전세금 규모는 최소 6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는 집 주인이 투기적 목적이 아니라 여유 있는 주거공간을 세입자에게 전세로 준 경우도 있겠지만, 전세를 끼고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여러 채 산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따라서 전세금의 절반인 300조원을 주택 소유자가 금융회사 대신 세입자에게 빌린 돈이라고 보면 현재 가계부채는 1000조원 수준에서 1300조원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주택대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주택대출액은 415조원 수준이지만 전세금의 절반만 포함해도 바로 715조원 수준으로 급증하게 된다. 또한 가계부채는 아니지만, 금융권 전체의 부동산 담보대출은 훨씬 더 많다. 금융권 전체의 기업 및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및 PF대출 잔액 등을 포함하면 전체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700조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다시 전세금 규모를 더하면 곧바로 부동산 관련 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선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미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 상황인데도 정부는 마른 수건 쥐어짜듯 생애 첫 주택구입자와 전세입자까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유도하고 있다. 그것이 마치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선심 쓰듯이 말이다. 사실은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구람라잔(현재 인도은행 총재)이 ‘폴트라인’에서 소득이 안 되는 가계에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하는 정책이야말로 최악의 포퓰리즘 대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OECD국가들 가운데 복지 지출 비중이 가장 낮은 수준인 한국에 대해 ‘망국적인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떠드는 기득권 언론들 가운데 정부의 ‘비 내서 집 사라’ 대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언론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정도면 부동산 떠받치기와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에만 혈안이 돼 정신이 나간 정부요, 언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고 부동산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지금 시중은행은 재무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 단계적으로 대출규제를 강화해 고부채 가구들 중심으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만기 대출액을 분할해 거품을 빼나가면서도 시스템 차원의 금융위기는 피해가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이른바 펌랜딩(firm landing), 즉 견착륙 대책이다.
지금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이 불가능한데도, 무리하게 연착륙을 시도하면서 오히려 경착륙 가능성을 키우는 모양새다.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충격을 받더라도 지금 국내 부동산 시장은 펌 랜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때다. 그나마 펌 랜딩의 기회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정부와 토건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한국 부동산이 착륙해야 할 공항의 기상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나마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 것도 가계부채라는 아주 위험한 폭탄을 연료로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비상착륙 말고는 선택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학자 최윤식소장이 저서 <2030 대담한 미래>라는 책에서 쓴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위기는 대부분 오래 전에 시작되고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악화되지만, 겉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한순간이다. 터져 나온 후에는 어떤 정책을 시도해도 막을 수 없다.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타이밍을 이미 놓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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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경제전망보고서>와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 등 제공
http://www.sdinomics.com/data/notice/1642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 서울(1월23일), 대구/부산(1월25일) 무료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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