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는 가운데 주택 선분양제의 문제점과 폐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제도인 선분양제는 건설 및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운다. 투기적 분양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인한 건설업계의 극단적인 부침, 분양자의 금융부담 증가 등의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붐이 일 때는 차익을 노린 주택 투기를 조장하는 반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자산 가치 폭락에 의한 가계의 경제적 피해를 키우고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을 초래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문제들이 금융권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처럼 큰 문제점과 폐해를 낳는 선분양 제도의 도입 배경과 존속과정을 먼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주택 선분양 제도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주택건설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판단한 정책당국이 주택건설업체들의 금융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제도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제도권 금융에 이자를 물지 않고 주택 수요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선분양제는 당시 민간 주택건설업체들이 모도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유입 가속화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분양제는 시장가격 이하로 책정된 분양가와 실제 시장거래가격 간의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를 유발시켰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고착화 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다. 반복적인 부동산 투기 파동과 경기 침체기에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 피해가 두드러지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때문에 이미 1995년 선분양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분양가 규제도 함께 자율화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사태는 엉뚱하게 치달았다. 건설업계의 분양가 자율화 요구는 즉각 받아들이면서도 외환위기 직후 고사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후분양제 도입은 뒤로 미뤄졌다.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분양가마저 자율화돼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의 힘만 일방적으로 잔뜩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2003년초 노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후분양제 도입 방침이 결정됐으나, 당시 건설교통부 등의 미온적 태도로 후분양제 도입은 지지부진해지고 선분양제가 여전히 대세를 이뤘다. 한국 주택시장은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 자율화라는 공급자를 위해서는 최선이지만 소비자를 위해서는 최악의 제도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빠른 속도로 커지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사업의 진행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보자.
시행사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택지를 분양 받거나 매입한 뒤 해당 택지에서 사업할 시공사와 공사도급 계약을 맺고 주택건설사업을 총괄 진행한다. 시행사가 개발업자인 경우에는 개인 전주(錢主)들로부터 돈을 빌려 택지를 매입하기도 한다. 또 주택 건설업체들 가운데는 직접 시행사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는 해당 사업지의 조합이 시행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시행사보다 규모가 큰 시공사가 신용보증을 서서 금융기관이 시행사에 택지 매입비 등 초기 사업자금을 대주게 하는 한편 시공사 자신도 직접 자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분양이 이뤄진 뒤 해당 주택사업의 분양계약자들이 내는 중도금 및 잔금을 대출해주고 수익을 올린다. 분양계약자 입장에서는 분양 계약금을 낸 뒤 자신의 돈이나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가 완공되면 입주하는 것이다. 이상이 선분양제 하의 주택건설 사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다음에, 선분양제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선분양제는 주택가격의 등락폭과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운다고 할 수 있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 건설업체들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서둘러 주택 분양을 크게 늘린다. 주택가격이 오르는 추세에서는 손쉽게 분양할 수 있고 선분양 대금으로 큰 부담 없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는 약간의 초기 계약금만 있으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으므로 분양권 전매차익(분양권 전매 허용시)이나 입주 후 매매차익을 기대하고 자신의 예산한도를 넘어서서 무리한 청약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초과 수요에 의한 청약 과열→주택건설업체의 고분양가 분양→주변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집값 상승폭을 키우는 주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져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이 무리한 선분양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미분양만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침체에 빠지는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둘째, 선분양제는 분양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긴 시차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수급 미스매칭을 유발한다. 선분양제 하에서는 아파트 분양 시점에서 입주 시점까지 최소한 3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획 및 토지 매입 기간까지 포함하면 입주시점까지 4~5년 정도 걸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차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우는 속성을 갖고 있다. 부동산 붐이 일 때는 주택건설업체들이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실제 수요 이상으로 건설 물량을 늘리고, 부동산 붐이 꺼지면 수익성이 떨어지므로 사업을 줄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차가 있기 때문에 주택건설업체들은 주택 경기가 정점을 지난 뒤까지도 주택을 공급하게 된다. 거꾸로 주택 경기가 바닥을 친 뒤 회복할 때에도 주택건설업체들은 뒤늦게 이를 인식하고 그때서야 주택 공급을 계획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선분양제는 주택 수급 불균형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시킨다. 이는 선분양제와 후분양제 하에서 주택건설업체가 하는 사업 판단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는 금융비용의 상당 부분을 분양계약자에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예산제약을 넘어 무리한 사업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후분양제였다면 매년 평균 2개의 주택사업을 벌일 주택업체가 선분양제에서는 3개 이상의 사업을 벌이게 되는 식이다. 또한 3년 후 분양시점이 아니라 바로 당장의 분양률만 높이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근시안적인 사업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부동산 거품기에 분양된 주택은 부동산 침체기에 입주가 시작돼 가뜩이나 가라앉는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내게 된다. 지금 서울 잠실이나 과천, 용인, 분당 등 수도권 전역에서 쏟아지고 있는 ‘물량 폭탄’들이 집값 하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져 주택건설업체들이 긴축 경영을 통해 분양 물량을 대폭 줄이다 보면 정작 몇 년 후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때에는 입주물량 부족으로 주택경기를 더욱 가열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면 후분양제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건설업체의 자체 자금이 더 많이 들어가야 하고, 3년 후 입주시점에 분양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또 주택건설사업에 돈을 대주는 금융기관 역시 3년 후 입주 시점에서 성공적으로 분양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하므로 좀더 냉철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성을 따져 대출을 하게 된다. 또 주택건설업체는 가능하다면 주택경기 침체기에 저렴한 비용을 들여 사업을 시작해 부동산 활황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완공 분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경우 주택건설업계 전체로는 자연스럽게 경기 침체기 때에 주택건설사업을 시작해 경기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며 경기 활황기에 완공주택 증가로 주택가격 급등을 제어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선분양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주택 수급의 진폭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있고,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선분양제 탓이 크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의 갑작스러운 냉각으로 주택건설회사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 계약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공기업인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건설사의 부도나 파산 등에 의해 생겨나는 분양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 주택 수요자의 피해는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건설회사 등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택분양 보증사고[1] 세대수와 주택분양 보증사고 금액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사이에 보증사고가 난 세대 수만 7,000 가구에 사고금액은 1조5,877억 원에 이르고 있어 올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세대수의 80%와 사고금액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분양보증 사고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아파트건설 공정이 당초 계획에 비해 15% 이상 늦어진 현장이 지난해 11월 53곳 6,866가구에서 올해는 85곳 2만3,168가구로 늘었다. 특히 공정이 20~25%가량 지연돼 분양보증 사고 대상이 되기 직전의 사업장은 지난해 11월 21곳 3,656가구에서 올해 55곳 1만3,095가구로 3배 이상 늘었다. 이것은 앞으로 분양 계약자들의 피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다섯째, 선분양제 아래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완공 입주 전에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주택을 청약할 수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후분양제에 비해 자신의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분양만 받으면 앉은 자리에서 몇 억원의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시장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 그 결과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판교신도시 등 수도권의 웬만한 주택단지에는 청약 경쟁률이 수백~수천 대 1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투기적 가수요가 생겨났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분양 시점이 아닌 3년 후 입주 시점의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소득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계약자들이 아파트 입주하기도 전에 중도금과 잔금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금융권에 수억 원의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실제로 MBC <PD수첩>팀이 지난해 11월에 방영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조사한 내용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PD수첩>팀이 무작위로 샘플링한 경기도 용인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200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3억4,6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가구 가운데 금융권 대출을 갖고 있는 세대는 전체 세대의 81.5%인 163가구였고, 대출이 없는 집은 37세대(18.5%)에 불과했다. 대출이 2억원 이하인 경우는 28세대, 2억원~3억원인 경우는 29세대, 3억원~5억원인 경우는 58세대였고, 5억원 이상인 경우도 58세대나 됐다. 물론 용인의 경우 부동산 투기 붐이 극에 달했을 때 대규모 분양이 이뤄졌으므로 정도가 심한 편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 차입을 통한 가계의 부동산 투기는 용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잔뜩 빚을 진 가계들이 지금처럼 주택가격이 급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세차익은커녕 극심한 자산가치 하락과 함께 감당하기 힘든 부채만 떠안게 된다. 특히 기존에 보유한 주택의 가격이 뛰면서 이를 담보로 수도권 등지에 추가로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은 양쪽 집의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고 대출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 개인파산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만일 판교신도시 주택을 완공시점에 맞춰 후분양제로 청약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주택 수요자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건설사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주택 수요자들만 부동산버블 붕괴로 자산가치 급감이라는 위험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서울과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소위 입주 대란과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인 아파트를 팔아 은행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또 기존 주택을 팔아 넓은 평수 아파트로 옮겨가려 했던 실거주 목적의 계약자들도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기존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져 신규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을 치를 수 없어 입주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계약자들이 선택하는 대안은 신규 분양 아파트를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최근 송파구 잠실 재건축 아파트 단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세값까지 급락하며 역전세난까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분양제가 주택 공급자에게 유리하고 주택 소비자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해서 주택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선분양제는 부동산 경기 호황기에 주택건설업체가 무리한 주택사업을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건설업체들은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켜 주택 청약자들을 희생양 삼아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국토부가 집계한 올해 9월 기준 미분양 157,241가구 가운데 404,36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만일 후분양제였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미분양 물량이 최소한 117,000여 가구에 달한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8.21 부동산 대책’에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11월초 ‘건설사들이 조기 분양에 나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재건축 후분양제를 폐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