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신문들을 받아본 사람들은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광공업생산 급감 등의 소식을 아마 1면에서 모두 접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코스피(KOSPI) 주가지수가 올 2월 초 1,200포인트를 돌파했다가 다시 1,000포인트 근처까지 주저앉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600원대를 넘보고 있다. 한편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광공업 생산은 저년 동월 대비 약 25.6% 급감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광공업생산 증가율이 지난해 10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11월부터 3개월 연속 사상 최대 감소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원/달러 환율폭등과 사상 최악의 광공업생산 급감은 한국경제가 이미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달러 환율폭등은 한국경제 붕괴의 시한폭탄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폭등은 기본적으로 은행의 과다한 외화차입으로 인한 외화 상환 수요와 세계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외국인들의 국내 자산 매각에 따른 외화 수요 등 펀드멘털상의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 출범 초기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환율 기조를 추구한데다,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겠다는 무리한 욕심으로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는 등 잘못된 정부 정책이 환율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원달러 환율폭등의 배경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무관해 보이는 광공업생산의 급속한 감소와 GDP성장률의 급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환율 폭등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상관관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왜 환율이 폭등하면 제조업생산이 급감할까? 환율이 폭등하는 상태에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 모두가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기업들은 기존에 확보한 원자재를 활용해서 생산을 하고 있을 뿐, 환율이 폭등한 뒤로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다.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데 어떻게 공장을 돌리겠는가? 더욱이 내수가 빠르게 급강하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같은 환율 폭등으로 인한 생산 정체 현상이 올해 초부터 기업의 본격적인 생산 정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환율 폭등으로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해 생산을 줄이면 대기업도 납품을 받지 못해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급등하게 되면 원자재를 수입해서 생산하는 업체들은 수입원가가 50%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업종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원가구조를 보면 원재료비가 70% 정도이고 인건비는 10%, 물류비 등 기타 관리비가 20% 정도를 차지한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이 40% 이상 오르면, 수입원자재 비중이 전체 원자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기업들의 원가상승 부담은 20% 가량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가격을 그만큼 올리지 않는 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도 급감하는 상황에서는 기업 연쇄도산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원달러 환율폭등은 고유가보다도 악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유가는 에너지절감 노력이나 원화 강세로도 어느 정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또한 유가 상승은 원유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업에만 선별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금리정책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악성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원/달러 환율 폭등은 수출기업에도 타격을 준다. 달러 수입물가는 2008년부터 20% 이상 상승하고 있는데 반해 달러 수출물가는 10% 수준 이하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국내 수출기업이 원자재 달러 수입물가상승을 달러 수출가격 인상에 절반 정도 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머지는 원/달러 환율 폭등으로 인한 환차익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제살 깎아먹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달러 수입물가 상승을 달러 수출물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물경기 불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원달러 환율을 정상 궤도로 하루빨리 환원하는 것이 최우선 정책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와 정치권은 부동산 거품 붕괴를 억지로 막겠다는 일념 하에 저금리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정부와 보조를 맞춰 큰 폭의 금리인하를 거듭해온 것은 일견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경제 금융위기는 자산경제에서는 자산 디플레에 따른 투자손실 회피와 금융기관 부실에 대한 우려로 투자자와 예금자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빼가려 한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경제에서는 원/달러 환율폭등을 진정시키는 것이 악성 불황을 막는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마당에 한국은행이 대폭적인 금리인하를 한 것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더욱 더 돈을 빼가라는 것이며 원/달러 환율 폭등을 부채질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와 긍정적 효과가 큰 것을 기준으로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현 국면에서 올바른 정책순서는 금융시장의 신용위기를 해소한 다음에 경기부양인 것이다. 나아가 자산시장의 가격조정을 엉터리 정책 남발로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부작용과 혼란만 커질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환율폭등과 극도의 경기침체는 부동산 거품의 조정을 막으려는 현 정부와 정치권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증폭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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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3. 3. 11:37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영어 몰입교육 논란이 불거지며 사교육비를 늘릴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었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가 2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는 20조 9천억원으로 전년(20조400억원)에 비해 4.3% 증가하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23만3천원)도 전년(22만2천원)에 비해 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과부는 물가상승률(4.7%)을 감안하면 그리 큰 증가 폭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실질임금뿐만 아니라 명목임금까지 줄어들고 소비를 급격히 줄이고 있는 가운데 사교육비가 4.3%가량 늘어났다는 것은 결코 적은 증가율이 아니다. 

 

 더구나 세부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사교육비가 늘어났음이 명백하다. 일반 교과별로는 전년에 비해 영어(11.8%)와 수학(8.8%)의 사교육비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고 논술(-12.5%) 사교육비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가장 강조한 것이 소위 '아륀지'로 희화화된 영어몰입교육, 영어 공교육 완성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교육비가 가장 증가한 교과 영역이 바로 영어라는 것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교육 증가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더구나 대입자율화 정책에 따라 대학들이 2009학년도 입시에서 논술고사 시행을 대폭 축소해 논술 사교육비가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는 지난해 사교육이 크게 늘었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현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정부가 아닌가. 공약과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 4개 교육기관은 이날 오전 코리아나호텔에서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공동선언을 했다.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의 환경에 묶여있고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해 교육 주체들이 함께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에 나서 사교육비를 줄여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현 정부와 현 정부와 배가 맞는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온갖 엉터리 교육정책들을 남발해놓고, 무슨 염치가 있어서 그런 ‘눈 가리고 아웅 쑈’를 한다는 말인가. 정말 기만도 이만저만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현 정부는 지난해 9월말에도 이처럼 황당한 생쑈를 벌인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 23일 국무회의에서 "학원비가 크게 올라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면서 실태조사와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합동점검단을 꾸려 학원의 탈세 및 담합을 단속하는 등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자신들이 사교육비가 오를 수밖에 없는 제도와 정책들을 내놓고 이를 마치 일부 비양심적인 학원업계의 행태 때문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원업계가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긴 탓에 각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난 측면도 있고, 학원업계 내에 탈세와 담합 행위가 만연한다면 당연히 찾아내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권출범 하자마자 학교자율화 방침을 천명하고 국제중 신설, 기숙형 공립고 및 자사고 100개 설립과 고교 선택권제 도입 등 한결같이 학교교육의 사교육화와 사교육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온 것은 바로 이명박정부 자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교육비가 너무 오른다며 학원비를 단속하겠다고 설레발을 치다가 이제는 사교육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오자 ‘공교육 활성화’선언이라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 정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를 전국에 300곳을 지정, 한 학교당 평균 2억원씩 모두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사교육을 부추겨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을 늘이게 하고, 다시 가계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으로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코미디도 이런 서글픈 코미디가 없다.

 

정말 이 정권의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엿부러 시간을 내 설명해주겠다. 현 정부의 각종 교육정책들이 왜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의존을 강화하는지를 보려면 한국 학교교육의 왜곡된 경쟁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 고교 평준화의 틀이 유지된 외환위기 이전 한국 사회의 성공 경로는 크게 세칭 일류대→변호사/의사 등 전문직과 일류 직장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88만원세대와 같은 신조어들이 상징하듯이 양질의 직장은 부족해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졌으며 실업률은 높아졌다. 또 계층간 소득 및 자산 양극화가 심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이른바 소수는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다수는 과거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승자독식 구조’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성공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앞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큰 몫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나 가계는 성공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앞설 수 있다면 상당한 투자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의 사교육에 조금이라도 더 투자해 자녀가 좋은 대학→좋은 직장이라는 ‘성공 코스’에 진입할 수 있다면 투자수익률 관점에서 수지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이런 방향으로 치열한 경쟁을 가속화해 왔다. 이런 ‘승자독식 구조’에서 이득을 보는 일부 소수 기득권 계층과 이들을 기반으로 삼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투자대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정책 및 제도를 빈익빈 부익부 구조로 바꾸도록 애써온 측면도 작용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어고와 과학기술고 등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 등이 확대돼온 반면 학교교육은 계속 위기를 겪고 있는 과정도 이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외환위기 이후 성공경로가 특목고/자사고→명문대→전문직/대기업 직장 구조로 한 단계가 더 추가됐다고 할 수 있다. 성공경로가 한 단계 덧붙여지는 것은 개인과 가계의 경쟁이 한 단계 더 빨리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초기의 조그만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적인 차이로 이어지는 경로의존(Path Dependency) 현상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1점 차이로 A라는 학생은 외고에 진학하고 B라는 학생은 외고에 진학하는 데 실패했다고 하자. 이 같은 초기의 차이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향후 최종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차이가 결코 작지 않을 수 있다. 가령 A라는 학생은 외고→명문대→전문직/고소득 연봉자의 경로를 밟는 반면, B라는 학생은 일반고→비명문대→저소득 직장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을 개연성이 커진다. 물론 한 번의 차이를 만회할 기회가 도중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진정한 의미의 ‘두 번째 기회’는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심화될수록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좀더 많은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자녀를 특목고에 진학시키려는 유인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특목고 진학을 노리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아래 <도표1>의 전개형(extensive) 게임이론 모형을 통해 살펴볼 수도 있다. 전개형 게임방식이란 도리짓고땡 화투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선택을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먼저 화투 게임 시작 전에 판돈 10원씩을 건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시작 전의 초기 상태는 학부모 A와 학부모 B가 사교육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반에서 평균 10등을 다투는 자녀를 각각 두고 있다. 즉 두 학부모 자녀의 성적이 (10등, 10등)으로 같다. 또 설명의 편의를 위해 학부모 A는 고소득층이며 학부모 B는 중하위 소득계층이다. 선행학습 효과든 예상시험문제 풀기 연습이든 사교육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며, 학부모의 선택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도표 1> 사교육 팽창을 초래하는 교육정책


 

 


이제 고소득자인 학부모 A는 정부가 학교자율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정보를 접한 후 자신의 자녀에 대해 사교육을 시킬지를 결정한다. 즉 판돈을 얼마를 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만일 월 50만원짜리 사교육을 선택하면 자신의 자녀는 5등으로 올라서는 반면 상대방 자녀는 15등으로 내려가고(5등, 15등), 공교육을 선택하면 자신의 자녀와 상대방의 자녀 모두 10등으로 같다(10등, 10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부모 A는 당연히 월 50만원의 판돈을 걸고 사교육을 시켜 (5등, 15등)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다음에, 중하위 소득계층인 학부모 B는 학교자율화 확대 정책과 고소득자인 학부모 A가 사교육에 50만원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학부모 B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50만원 콜을 하며 사교육을 선택하게 된다. 그 경우 두 학부모의 자녀 성적은 (10등, 10등)으로 처음 초기 상태로 환원되게 된다. 결국 두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사교육을 선택하지만 결과는 고스톱 게임의 판돈만 50만원으로 올라갈 뿐 성적을 올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등수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소득자인 학부모 A는 판돈 올리기를 주장한다. 학부모 B의 밑천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돈으로 밀어 부치려는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정부가 자사고 100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다. 말하자면 판돈을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리는 정책을 발표하는 셈인 것이다. 이를 보고 학부모 A는 올라간 판돈을 걸고 자사고 입학을 위해 사교육을 선택하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이 경우 학부모 B는 갈등을 하게 된다. 밑천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든 것을 줄여가며 사교육을 선택해 게임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 결과 두 학부모 자녀의 성적은 다시 (10등, 10등)으로 같아지게 된다.


여기에 이명박정부가 다시 국제중 설립이라는 정책으로 화투판의 판돈을 월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일거에 끌어 올린다. 학부모 A는 이를 환영하지만 학부모 B는 저축통장을 해약하고 집을 팔지 않으면 거의 포기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된다. 학부모 B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식으로 200만원으로 올라간 판돈을 걸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이런 게임이 무한대로 계속될 수 있다. 말하자면 사교육시장이 무한대로 계속 확대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은 모조리 붕괴되고 이른바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일부 사립학교들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립학교들은 프리미엄을 내세워 천문학적 등록금을 내라고 할 것이다. 또 중하위 소득의 일반서민 계층은 계속높아지는 판돈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고소득계층만을 위한 천문학적등록금의 사립학교와 사교육시장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중고 공교육의 경쟁이 불필요하게 과열되면 교육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엉뚱한 목표가 대체하게 된다. 원래 초중고 학교교육 과정은 미성년자인 어린 학생들이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필요한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한편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필요한 지식과 판단력을 습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정책은 이러한 기본목적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러한 기본목적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소모적인 ‘다단계 돈 지르기’ 교육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사교육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돈을 많이 들이든 돈을 들이지 않든 일정 수의 누군가는 이른바 명문대에 반드시 가게 되어 있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20조원을 투자하든 100조원을 투자하든 또는 공교육이 무너지든 사교육이 횡행하든 결국에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정책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누군가는 명문대에 가는데 가능한 한 돈을 들이지 않고 적성별 능력별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선발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특목고니 영재고니 국제중이니 하는 소모적인 돈 지르기 게임을 중간에 다단계식으로 개입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교육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특목고니 영재고니 국제중이니 하는 다단계 돈 지르기 소모전은 단지 명문대에 가기 위한, 그야말로 불요불급한 선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이른바 명문대들의 특권을 유지해주기 위한 반칙적이고 편법적인 다단계 선발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어차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다단계 돈 지르기 소모전을 하지 않더라도 공부를 잘 하며 어떤 방식에 의해 선발을 하더라도 명문대를 갈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100명의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들이 평준화와 특목고 방식의 두 가지 중간단계를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평준화 방식으로 명문대를 가는 아이들과 특목고 방식으로 명문대를 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그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수십 조원의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모든 학부모들이 온갖 반칙과 편법 등 아귀다툼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제도상의 미미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망국적인 소모적 입시제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렇다고 국제중이나 특목고와 같은 소모적인 다단계 돈 지르기를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대학 가자마자 노벨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논문을 금방 쓰기라도 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기껏해야 수학문제 하나더 풀 수 있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있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만일 국제중이나 특목고와 같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세계적인 논문을 써낼 정도의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면 대한민국 대학을 모조리 없애버려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수준도 못 따라가는 대학을 놔둬서 무엇 하겠는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정권이 남발하고 있는 국제중이나 특목고, 자사고 확대와 같은 교육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이명박정부의 엉터리 교육정책은 단지 교육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엉터리 교육정책의 남발로 한국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큰 비효율과 낭비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각 가정은 지출 여력을 넘어서는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가계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곳에 최적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다른 생산적인 영역으로 가야 할 돈들이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사교육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바로 이 시기에 말이다. 제발 염치라도 있으면 자신들의 엉터리 정책 남발에 대해 석고대죄부터 하기 바란다. 정말 학생과 학부모간의 백해무익한 무한경쟁을 부추기면서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양 ‘공교육 활성화 선언’과 같은 이벤트나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설업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4대강 사업처럼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탕진하고 사회복지예산은 대폭 줄이면서도 ‘신빈곤층’ 발언이나 아무 생각없이 뱉었다가 집어삼키는 현 정권의 유치한 쇼를 여러번 봐줄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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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2. 28. 09:17

"지구촌 곳곳 몰아치는 자연재해---중국엔 가뭄, 유럽엔 강풍, 호주는 폭염과 폭우…."


2월 11일자 연합뉴스 보도의 제목이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호주 제 2도시 멜번에서는 약 100년만의 최대 산불이 발생했고, 중국에서는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1급 가뭄경보를 내고 인공강우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또 유럽에서는 폭설과 폭우, 강풍이 몰아쳐 험난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80년만의 겨울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실 화왕산 억새풀 태우기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도 이 같은 겨울 가뭄에 따른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이는 “이번 사고는 천재지변”이라는 창녕군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바싹 건조한 상태에서 억새풀 태우기 행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런 행사를 진행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번 참사는 ‘인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이상 기후들이 지구 온난화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필자도 솔직히 고백컨대 잘 몰랐다. 심지어 7~8년 전 한 신문사의 국제부에서 일할 때 ‘사상 최고의 폭염’ ‘사상 최대의 태풍 피해’ 등등의 외신 기사를 보고 옮기면서도 속으로는 언론의 과장 보도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거. 해마다 매번 최고이고 최대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 유학중이던 2006년 봄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미국에서 권위 있는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제임스 홀드런 교수가 수업 첫 시간에 한 말 때문이었다. “현재 전 세계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이고,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키는 바로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달렸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특히 수업 내용 후반부에 지구온난화의 충격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는 동안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수업 덕분에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10여권의 책을 읽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 앨 고어가 쓴 ‘불편한 진실’이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며 미국 대중들이 인식에서 ‘티핑 포인트’가 발생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같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가 버락 오바마 신임 미 행정부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에너지정책을 수립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같은 인식의 변화를 찾아보기 여전히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2002년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5160만 환산톤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아홉번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배출량은 90년부터 2002년까지 약 99.7% 증가했다. 배출량 상위 20개국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증가율 118.6%를 기록한 인도네시아만이 유일하게 한국을 앞섰다. 같은 기간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 증가율 16.4%, OECD 회원국의 평균 증가율 13.8%와 비교하면 얼마나 빠른 증가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강력히 비난하는 미국도 16.7%의 증가율에 그쳤고, 프랑스 (6.9%), 이탈리아(8.3%) 등 EU국가들은 그보다 훨씬 낮다. 또 우리나라 소득 수준 대비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4년 기준 한국의 ‘소득대비 에너지 사용량(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1인당 GDP로 나눈 값)’에서 한국은 0.05로 31개 OECD국가중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소득대비에너지사용량(0.05)을 100으로 환산할 경우, 일본은 36, 독일 69, 프랑스 71, 미국이 97로 나타나 선진국보다도 에너지 소비가 훨씬 많았다. 한국은 또 2003년말 기준으로 대체에너지 사용실적(443만6000 석유환산톤)이 총 에너지 사용량의 2.1%에 그쳐, 대체에너지 사용비중에서 31개 OECD 국가 중 30위다. 한국보다 대체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가는 헝가리뿐이었다. 한 마디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최대의 ‘반환경국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지구온난화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도 아니다. 여름철 게릴라성 폭우 및 폭염의 증가, 중국 네이멍구 지역 사막화로 인한 극심한 황사 현상, 소나무 재선충 확산으로 인한 소나무숲 고사, 생태계 혼란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등.


지구 온난화 현상의 하나로 한반도에서도 지난 30년간 봄철 습도가 5%나 낮아졌다. 이 때문에 산불 피해 면적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지구 온난화와 일정한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산불피해면적은 1980년대에 1만880㏊, 1990년대에 1만3975㏊, 2000년대에 3만5711㏊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4월에 일어난 사상최대의 동해안 산불은 9일 동안 서울 남산 78개에 해당하는 2만3794㏊의 임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전 19년간의 총 산불피해면적과 맞먹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 밖에도 대형 산불 2, 3, 4위가 모두 최근 10년 사이에 발생했다. 1996년의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면적 3762㏊), 2002년의 충남 청양 산불(피해면적 3095㏊), 2005년 낙산사를 태운 강원도 양양 산불(피해면적 973㏊) 등이다. 낙엽 등 가연물질이 쌓인 탓도 있지만 겨울철의 고온 건조한 날씨가 산불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2월 10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산불건수는 예년보다 50%, 지난해보다 9배나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지역적으로 가뭄이 가장 극심한 영남지방에 피해가 집중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올해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산불 위험시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세계 각국의 온난화 추세에 따른 산불 피해 확산과도 일치하는 흐름이다.


산불로 발생한 알래스카 아한대지역 숲의 소실 면적을 보여주는 아래 그래프를 보자. 


알래스카 아한대지역의 숲은 북아메리카의 북쪽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숲이다. 그런데 매년 이 숲이 산불에 의해 소실되는 면적은 1970년대 이래로 1990년대말까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해기온이 높아지고 토양 수분이 증발하면서 자연발생적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이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형산불 발생 횟수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해왔음을 아래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럽의 경우 80년대보다 90년대에 산불 발생 횟수가 줄어든 점은 예외다.)



 이처럼 최근 8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는 현상과 산불 피해의 경향적 증가 현상 하나만 봐도 지구온난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건설족의 수장’이자 ‘삽질경제학의 태두'인 이명박 대통령은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고 하자 10일 강원도 업무보고 현장에서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소규모 댐 건설 방안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국토부도 2001년부터 댐을 건설하지 않아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경북 군위 등 5곳에 대형 댐을 짓겠다며 여론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긴 말 하지 않겠지만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댐은 불가능하다. 또한 댐을 더 지어 물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여전히 이 정부가 7,80년대 개발연대의 정책적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정부가 건설하고자 하는 댐은 대부분 상류지역이고 비도 적게 오는 지역이다. 수조원의 돈을 들여 댐을 건설해봐야 연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용수의 양은 연간 4~5억 톤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해당 지역들의 연간 강수량 등을 감안하면 부풀려진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2001년 당시 정부가 마련한 수자원장기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수자원 총량 1,240억톤 가운데 자연 증발(42%)하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31%)을 제외하고 실제 이용되는 물은 27%인 337억톤(27%)이다. 겨우 4억~5억톤의 물을 더 이용하자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수조원의 돈을 들이는 것이 과연 비용효과적인가.


돈을 안 들이고도 물 부족을 해결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12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뭄을 겪고 있는 태백시에서 태백시가 운영하는 리조트가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은 태백시민 5000명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 전국 각지에 지어진 골프장 등 각종 위락 및 리조트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물 값을 현실화하고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대형 사업장과 위락장에서 10% 정도만 아끼도록 하면 물 가뭄은 얼마든지 해소된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의 경우 염색 공정 기술 혁신으로 생산공정에서 드는 물의 소비량을 90% 가량 절약한 사례도 있다.

또 댐 지을 돈으로 가정용 빗물 저수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등 생활용수 공급원을 다양화하는데 써보라. 훨씬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면서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물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토건족 정부는 무조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서 해결하려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뭐든지 빌미만 생기면 토목사업으로 해결하려는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인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발현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문제 해결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족속들이니 이들은 확 갈아치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3. 08:33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최근 용산 참사현장에서 숨진 철거민들을 ‘떼잡이들’이라고 막말했던 박장규 용산구청장(74)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표현은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알 카에다식 자살폭탄 테러’ ‘세입자란 양의 탈을 쓴 폭력집단’이라고 비난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막말에 비하면 오히려 점잖아 보인다.

 

도대체 막대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 재개발 현장에서 쫓겨나고, 이에 항의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런 막말을 하는 ‘엽기적인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집권여당은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흑인들이 숨지거나 구타당하면 해당 지방정부의 수장은 큰 정치적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공식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이렇게 세입자들을 폭도로 몰고 용역 폭력 등은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법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독재국가에서 벌어지는 법의 이중잣대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소위 말하는 ‘건설족’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특권을 챙기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지 잘 모른다. 박 구청장은 이 같은 건설족 정치인의 대표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자체 수준에서 어떻게 건설업자들을 배불리기 위해 시민들의 세금을 축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될 수 있다.

 

우선, 아래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퍼온 박 구청장의 프로필을 보자.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임광토건 전무이사로 출발해 남양진흥기업(주) 이사, 동영개발(주)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92년부터 이듬해까지 용산구의회 초대 도시건설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도시건설상임위원장은 각종 관내 개발사업 정보를 알 수 있고, 그런 사업들을 주무를 수 있는 노른자위다. 각종 이권과 특혜, 떡고물 등을 노리는 시의원, 구의원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2000년 보궐선거에서 용산구청장으로 당선돼 내리 3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자신에게 운영권이 위임돼 있는 사회복지법인인 상희원을 통해 2004년 5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천 명의 유권자에게 총 8억8000여만 원을 제공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으나,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공직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처신을 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MBC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상희원은 관내 건설업체 38곳으로부터 18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건설 회사들은 구청장 권한인 재개발 인가나 설계 변경 등을 허락받기 위해 상희원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건설족으로서 그의 ‘활약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역시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용산 비전 2010’의 주요 사업의 상단 주요 메뉴를 보면 한강로 일대 개발, 국제업무지구 조성, 철도 지하화, 종합행정타운 건립 등 온통 개발사업 뿐이다. 물론 이 같은 개발사업들은 서울시와 중앙정부 등의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기는 하나 ‘건설족’으로서 박 구청장의 이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용산종합행정타운 건립과 관련해 건설족들은 어떻게 예산을 낭비해 건설업체들을 배불리는지를 보여줄 것이다.(아래 조감도 참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입찰제도에 대한 기초학습이 좀 필요하다. 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멈추면 당신은 여전히 건설족들에게 당하게 된다. 건설족들은 빠삭하게 알고 각종 이권을 나눠먹는 개발사업의 메커니즘을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기에 그들이 마음놓고 시민의 혈세로 파티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면 안 읽는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산구는 이 사업을 통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안 퍼줘도 되는 시민의 혈세 380억원 가량을 낭비했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설명을 시작해보자.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사용하는 입찰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가격 위주로 경쟁하게 하는 가격(최저가) 경쟁입찰과 적격심사제, 대안입찰, 턴키입찰(설계시공일괄입찰) 등 크게 네 가지다. 물론 수의계약과 같은 다른 방식도 있고, 민간자본유치사업(민자사업)도 큰 틀에서는 공공공사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 한국형 턴키 제도는 턴키 제도가 아니다?

 

이 가운데 특히 턴키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턴키 공사는 일괄입찰계약 방식의 하나로 도급자가 건설공사의 재원조달, 토지 구매, 설계와 시공, 시운전 등을 모두 마친 뒤 발주자에게 인계하는 공사를 의미한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턴키 방식은 주로 표준적이거나 반복적인 건축공사에 적용된다. 특정한 종류의 공장 건설에 전문화된 건설업체가 기존에 지은 공장과 비슷하게 지어서 발주자에게 납품할 때 활용되는 입찰방식이 턴키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 설계도면을 재활용하면 되므로 설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의 턴키 방식은 공기 단축 및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주로 발주된다.

 

하지만 턴키 제도를 원형 그대로 국내에서 실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설계와 시공, 감리 등의 업역(業域)이 완전히 분리돼 있어서 이를 통합해서 공사를 진행하는 턴키 방식이 사실상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또 표준적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표준도면, 표준시방서, 표준품셈 등 공사 표준이 잘 정리돼 있어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이 같은 표준이 아예 없거나 부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턴키 방식은 일반 건설업체가 설계회사에 용역을 주고 설계도면을 작성해 함께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질됐다. 한 마디로 기존에는 발주처가 설계회사를 통해 설계용역을 마친 뒤 시공사를 선정했던 것을 시공사가 설계회사와 짝을 이뤄 입찰하게 한 제도일 뿐이다.

 

재벌계 대형 건설사들은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하는 턴키 입찰제도의 특성을 활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합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통 전체 공사 예정금액의 3% 가량을 설계금액으로 쓰는데 이는 1,000억 원대 공사의 경우 30억 원을 선투자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사 수주에 대한 확신도 없이 수십억 원대의 설계비를 선투자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상위 1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거액의 선투자 비용이 일종의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같은 진입장벽을 활용, 이들 상위 대형 건설사들은 사실상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했다. 상위 6개 내지 10개 건설사들이 돌아가면서 공사를 수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적인 담합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턴키입찰 방식은 설계와 가격 점수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대형 건설업체들은 발주처 로비 등을 통해 설계점수 비중을 가격 점수보다 높이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끼리는 가격은 일정한 수준에서 철저히 담합하는 반면, 설계 점수를 통해서만 경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설계점수도 평가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주로 의존하고 평가점수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져 사후 전문가들 사이의 검증(Peer Review)이 불가능하다 보니 설계점수 평가위원들을 향한 탈법적, 불법적 로비가 구조화됐다. 이처럼 한국의 턴키입찰 제도는 원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돌연변이가 돼버린 것이다.

◆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공사

이제 서울시 지하철 공사 사례들을 통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2001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 7개 공구를 모두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7개 공구 가운데 5개 공구에는 2개 업체군, 나머지 2개 공구에는 3개 업체군만이 응찰했다. 참여 업체들은 대표입찰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공구에 공동도급자로 참여해 사실상 모두 한 건씩은 공사를 수주했다.

 

이처럼 7개 공구에서 20개 미만의 대형 건설업체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 공사의평균낙찰률은 98.3%였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이 모두 1,000억~1,6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공사들이었다. 만약 이들 공사들을 1,0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에 적용된 최저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2001년 당시 경쟁입찰제의 평균 낙찰률이 65%였으므로 낙찰률이 33% 이상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업체간 담합이 성행하기 전 같은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서울시 2기 지하철 6~8호선의 평균 낙찰률도 68% 정도였던 것에 비춰 봐도 30% 이상 높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공사 예정가격의 30% 이상이 사실상 담합에 의해 낭비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 총합이 9,400억원 정도이므로 3,000억원 이상이 7개 공구 입찰에서만 낭비된 셈이다.

 

이렇게 낙찰률이 높아진 이유는 사실상 담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각 공구별 입찰가격을 보면 서로 담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금액 차이가 적다.

<도표1> 지하철 9호선 1단계 입찰참여 업체별 입찰 가격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실제로 공정위는 이듬해인 2002년 7월 903, 909공구에서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 등 두 업체가 들러리 교차입찰 방식으로 담합한 사실을 밝혀내고 33억 여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33억 원은 두 업체가 해당 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추가로 얻은 추정 이익 약 795억 원(=2,650억×30%)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업체들은 담합이 매번 적발된다고 해도 이 정도 과징금을 무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현재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으로는 이들 업체들의 담합 유인을 절대 없애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업체들의 담합 사실은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과징금의 실효성은 훨씬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

이제 이 글의 종착지인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를 보자. 지난해 3월 입찰이 이뤄진 이 사업은 용산구청이 서울시 지원을 받아 126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발주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용산구 이태원동 34-87번지 일대 1만3497㎡의 대지 위에 지하5~지상10층, 연면적 5만6069㎡ 규모의 용산구청사를 짓는 사업이다.

 

그런데 아래 <도표2>를 보면, 이 공사에 입찰한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의 입찰금액이 불과 0.0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금액 1,200억 원대 공사에 두 업체의 입찰금액이 불과 2,50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담합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담합을 입증할 수가 없다”며 관련 당국들은 손을 놓고 있다. 개발업체 사장 출신인 박 구청장이 이런 메커니즘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도표2>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입찰 결과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쯤에서 재벌 건설업체 직원들은 초기 투입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니 원래 턴키입찰 공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도표 3>을 참조로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사업에 한 달 앞서 발주됐던 지하철 9호선 2단계 915~917공구 건설사업을 보자. 필자가 서울시에 재직할 때 업체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사업이기도 하다. 아래 도표를 보면, 낙찰률이 각각 60%와 72%, 86%로 9호선 1단계 때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지하철 9호선 1단계 사업의 평균 낙찰율 98.3%에 비하면 약 12~38% 가량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업체간 담합 여지를 최대한 없애고 실질적 경쟁을 유도한 효과다. 사실 916공구의 경우에는 사실 막판에 담합이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에 퍼진 소문이다. 그런데도 이 3개 공구에서만 9호선 1단계 때와 비교할 때 약 95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쟁입찰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적용해도 이만큼 거액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
도표3> 지하철 9호선 2단계 낙찰 결과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위에서 본 것처럼 재벌 건설업체들과 일부 ‘건설족’ 정치인들은 이같은 이권들을 주고 받으며 강고하게 결합돼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건설족 정치인들은 내가 무슨 무슨 개발을 했네 떠벌리고, 시민들은 속사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 정치인들이 내 집값 올려주니 좋다며 선거에서 연거푸 찍어준다. 이 같은 상황은 꼭 용산구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기야 그런 행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의 탄생 아니겠는가? 이 정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줄이면서도 왜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 사업에 약 20조원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아는가? 경인운하 사업 또한 턴키로 발주한다는 것을. 하긴 제 버릇 남주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주요 사업인 청계천 사업, 동남권유통단지, 지하철 7호선, 심지어 단순한 주택시공사업인 은평뉴타운에까지 턴키입찰 방식을 도입해 시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낭비한 시민의 세금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필자는 그가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고 만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그들이 가증스럽다. 이 모든 일들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 등 서민이 대규모로 쫓겨나는 과정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하는 것은 극도로 아까워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분양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들에게는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그냥 퍼주는 정부와 지자체를 온전한 정부, 지자체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현재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기득권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하는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단면 또한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2. 10:52
 

이 대통령은 2월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쇼’까지 연출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듣고 '신빈곤층'을 한 번 찾아나서 보았다.


사례1:
2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를 따라 가니 컨테이너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 옆에는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니 양모씨(60)가 전기장판 위에서 한 눈에도 낡아빠진 홑이불 두 겹을 덮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단칸방에 발을 디디자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전해져 왔다. 싱크대 위에는 냄비와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이가 맞지 앉는 싱크대 아래 수납문에는 음식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역시 이가 맞지 않는 수납장들이 방 한 켠에 놓여 있었으나, 내용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창문쪽에는 야전용 군복 외투가 걸려 있었다. 양씨의 유일한 겨울 외출복이라고 했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인 전기 장판뿐이었다.

                     <사진: 양씨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 전경> 

                   

양씨는 매월 단 한 푼의 수입도 없다.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가깝다. 그나마 몇 달 전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후원 받은 60만원으로 왼쪽 눈을 수술해 볼 수는 있게 됐지만, 다른 쪽 눈은 백내장을 너무 오래 알아 수술해봐야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해 수술을 하지도 못했다. 양씨를 부양해줄 수 있는 가족도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양씨는 현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차상위계층도, 기초노령연금대상자도 아닌 완벽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도 한 때는 꽤 떵떵거리고 살던 지역 유지였다. 상당한 부농이었던 그는 한때 고양시체육회장과 새마을지도자, 어용소방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함께 살아오던 처가 도박에 빠지면서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5년 전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양씨의 전 재산을 차압했다. 처와 헤어진 뒤 빚쟁이들을 피해 집을 나와 전국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것은 2년 전. 당시 백내장으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더 이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막막해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일을 할 수 없어 친구들이 간간히 건네주는 용돈이나 약값 외에는 아무런 수입이 없었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과거 빚쟁이들에게 차압 당해 찾을 길이 없는 양씨 명의의 승용차 두 대에 대한 세금 및 과태료 체납액이 500여 만원을 넘지만 도저히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 체납액을 갚을 수 없어 자신 명의의 승용차 두 대를 말소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백내장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어 병원과 약국 신세를 질 일이 많지만,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 공제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구청공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현장 실사를 나오기도 했지만, 정해진 규정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그는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간간이 전달되는 쌀과 라면 등 생필품과 간간이 들리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건설업을 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도 이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 원래 컨테이너가 자리잡은 땅은 이종사촌 소유였으나, 이종사촌이 지난 9월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긴 뒤에는 계속 땅주인으로부터 그곳에서 나가달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잠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양씨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나오면서 이번 겨울은 그에게 아마 가장 추운 겨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2: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는 양씨뿐만 아니다. 일산동구 사리현동의 한 빌라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55). 그는 8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된 뒤로는 일을 할 수 없어 근로소득은 전무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여서 구청에서 30여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면서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2000년 무렵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9평짜리 집의 시세가 오르면서 수급권자 자격에서 탈락된 것. 그나마 인근 교회에서 매월 1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고 있고 장애인수당 7만원도 받고 있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셈이다. 한 장애인지원단체로부터는 가끔씩 교통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김씨는 하반신을 쓸 수가 없어 변을 본 뒤에도 혼자서 처리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변이 묻은 채로 그대로 있거나, 변이 묻은 옷을 오랫동안 세탁하지 못해 집안에는 늘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씨 아파트를 방문한 날에는 인근 교회의 봉사자들이 나와 집안 청소를 한 뒤인데도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큰 마음을 먹고 월 이용료 4만원을 내고 가까운 동사무소를 통해 생활도우미를 부르고 있지만, 부담이 작지 않다. 김씨는 아파트 시세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으니 팔 수도 없다생활도우미 비용만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례3:
권모 할머니(81)의 경우는 지난해 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된 경우다. 차상위 계층으로 일정 금액까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았던 권씨는 내년부터 이 같은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진2: 권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전경>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권할머니는 무너져가는 토담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실직 상태인 아들을 비롯해 자녀들의 생활이 모두 어려워 식비 정도만 도움을 받을 뿐 다른 생활비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으로 매월 8만원, 기초 경증장애수당으로 2만원을 받고, 구청에서 쌀을 지원받는 것 외에 한 복지기관의 주선으로 연결된 후원자로부터 분기별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권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이 몸에 7군데나 박혀 거동이 불편해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노인성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어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이번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되면서 그 동안 받아오던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직계 가족과 그 배우자의 수입도 차상위 계층 판정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얼마 전 둘째 사위가 승진하면서 연봉이 오른 때문이다. 사위의 승진으로 권할머니 생활이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규정 때문에 그는 그나마 누리던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해서 제대로 사회복지 혜택을 입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황모 할머니(66)의 경우를 살펴보자. 황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한 달에 39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단칸방 월세 10만원과 전기료와 수도료,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 8만~10만원을 매월 내고 나면 남는 돈은 매월 20만원 남짓. 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황씨는 병원비와 약값, 교통비,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늘 돈은 부족하다. 겨울이지만 연탄도 마음 놓고 못 때고, 이불도 변변치 않아 냉기를 가까스로 면할 정도로만 지낸다. 세탁기는 아예 살 엄두도 못내 엄동설한에도 찬물 빨래를 해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국내 복지제도는 아직 빈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나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제도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거나 확충된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현행 복지제도는 어떻게 보면 지원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과 융통성 없는 행정 체계 때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위에서 본 것처럼 많은 복지지원 대상자들이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기관, 자선단체, 복지관련단체 등 민간부문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 부문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간 부문 복지지원사업을 주도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사정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고양시 관내에는 시로부터 운영예산을 지원받는 사회복지기관이 5군데 있지만, 실제 관내 복지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5개 사회복지관 가운데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이 담당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은 모두 180여 케이스에 이른다. 그나마 올해 9월부터 일산동구 고봉동과 풍산동을 담당하는 거점센터를 따로 열어 40 케이스 정도가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180여 케이스를 담당하는 인력은 거점센터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복지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추가로 찾아내 지원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9월 일산복지관 거점센터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당 동사무소 등으로부터 잠재적 지원대상자 명단으로 건네 받은 케이스는 모두 25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거점센터 직원 2명이 40여 케이스를 상담해 지원하고 나니 지원 대상자를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거점센터 직원 김모씨는“200여건의 케이스들은 아예 상담도 진행해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도 못하고 있다”며 “고양시 전체로 볼 때도 5개 사회복지기관이 커버하고 있지 못한 빈곤층 대상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거점센터 직원이 내년 초부터 한 명 증원될 예정이지만, 이번에는 당초 고양시가 편성했던 거점센터 지원예산 1억 원이 7,000만 원으로 줄었다.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3,000만원 삭감된 것이다. 2,000만원 전후 수준인 담당 직원 세 명의 연봉을 제외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을 뿐이다. 결국 거점센터 입장에서는 민간의 독지가나 관련 자선단체의 후원을 요청해 필요한 복지지원 대상자와 연결해주는 일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래 <도표>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올해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 정부는 실질적으로는 올해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증액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장을 둘러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그나마 받던 복지 지원마저 끊어질 상황에 처한 빈곤층만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빈곤층을 발굴해 지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여론조작용 표현일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하는 '신빈곤층'이라는 레토릭은 마치 원래 빈곤층은 충분한 사회복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정말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다. '신빈곤층' 챙기기 전에 원래 있는 빈곤층들에 대한 복지지원이나 깎지 말고 제대로 챙기라는 말씀이다. 하긴 사회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고, 주변에서 그럴듯한 신조어 하나 갖고 오면 생색내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게 몸에 밴 이명박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게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 더구나 건설토목사업에 퍼붓는 돈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쇼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며 어린애와 통화하는 쇼는 보기가 정말 역겹다. 그런 대중용 이벤트로 열악한 사회복지 현실을 외면하는 자신의 태도를 포장하니 역겹다는 것이다. 아무리 쇼라는 것을 알고봐도 속내가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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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2. 10. 14:04

이 대통령은 2월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쇼’까지 연출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듣고 '신빈곤층'을 한 번 찾아나서 보았다.


사례1:
2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를 따라 가니 컨테이너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 옆에는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니 양모씨(60)가 전기장판 위에서 한 눈에도 낡아빠진 홑이불 두 겹을 덮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단칸방에 발을 디디자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전해져 왔다. 싱크대 위에는 냄비와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이가 맞지 앉는 싱크대 아래 수납문에는 음식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역시 이가 맞지 않는 수납장들이 방 한 켠에 놓여 있었으나, 내용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창문쪽에는 야전용 군복 외투가 걸려 있었다. 양씨의 유일한 겨울 외출복이라고 했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인 전기 장판뿐이었다.

                     <사진: 양씨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 전경> 

                   

양씨는 매월 단 한 푼의 수입도 없다.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가깝다. 그나마 몇 달 전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후원 받은 60만원으로 왼쪽 눈을 수술해 볼 수는 있게 됐지만, 다른 쪽 눈은 백내장을 너무 오래 알아 수술해봐야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해 수술을 하지도 못했다. 양씨를 부양해줄 수 있는 가족도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양씨는 현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차상위계층도, 기초노령연금대상자도 아닌 완벽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도 한 때는 꽤 떵떵거리고 살던 지역 유지였다. 상당한 부농이었던 그는 한때 고양시체육회장과 새마을지도자, 어용소방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함께 살아오던 처가 도박에 빠지면서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5년 전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양씨의 전 재산을 차압했다. 처와 헤어진 뒤 빚쟁이들을 피해 집을 나와 전국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것은 2년 전. 당시 백내장으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더 이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막막해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일을 할 수 없어 친구들이 간간히 건네주는 용돈이나 약값 외에는 아무런 수입이 없었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과거 빚쟁이들에게 차압 당해 찾을 길이 없는 양씨 명의의 승용차 두 대에 대한 세금 및 과태료 체납액이 500여 만원을 넘지만 도저히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 체납액을 갚을 수 없어 자신 명의의 승용차 두 대를 말소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백내장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어 병원과 약국 신세를 질 일이 많지만,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 공제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구청공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현장 실사를 나오기도 했지만, 정해진 규정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그는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간간이 전달되는 쌀과 라면 등 생필품과 간간이 들리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건설업을 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도 이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 원래 컨테이너가 자리잡은 땅은 이종사촌 소유였으나, 이종사촌이 지난 9월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긴 뒤에는 계속 땅주인으로부터 그곳에서 나가달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잠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양씨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나오면서 이번 겨울은 그에게 아마 가장 추운 겨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2: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는 양씨뿐만 아니다. 일산동구 사리현동의 한 빌라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55). 그는 8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된 뒤로는 일을 할 수 없어 근로소득은 전무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여서 구청에서 30여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면서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2000년 무렵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9평짜리 집의 시세가 오르면서 수급권자 자격에서 탈락된 것. 그나마 인근 교회에서 매월 1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고 있고 장애인수당 7만원도 받고 있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셈이다. 한 장애인지원단체로부터는 가끔씩 교통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김씨는 하반신을 쓸 수가 없어 변을 본 뒤에도 혼자서 처리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변이 묻은 채로 그대로 있거나, 변이 묻은 옷을 오랫동안 세탁하지 못해 집안에는 늘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씨 아파트를 방문한 날에는 인근 교회의 봉사자들이 나와 집안 청소를 한 뒤인데도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큰 마음을 먹고 월 이용료 4만원을 내고 가까운 동사무소를 통해 생활도우미를 부르고 있지만, 부담이 작지 않다. 김씨는 아파트 시세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으니 팔 수도 없다생활도우미 비용만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례3:
권모 할머니(81)의 경우는 지난해 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된 경우다. 차상위 계층으로 일정 금액까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았던 권씨는 내년부터 이 같은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진2: 권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전경>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권할머니는 무너져가는 토담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실직 상태인 아들을 비롯해 자녀들의 생활이 모두 어려워 식비 정도만 도움을 받을 뿐 다른 생활비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으로 매월 8만원, 기초 경증장애수당으로 2만원을 받고, 구청에서 쌀을 지원받는 것 외에 한 복지기관의 주선으로 연결된 후원자로부터 분기별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권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이 몸에 7군데나 박혀 거동이 불편해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노인성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어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이번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되면서 그 동안 받아오던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직계 가족과 그 배우자의 수입도 차상위 계층 판정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얼마 전 둘째 사위가 승진하면서 연봉이 오른 때문이다. 사위의 승진으로 권할머니 생활이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규정 때문에 그는 그나마 누리던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해서 제대로 사회복지 혜택을 입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황모 할머니(66)의 경우를 살펴보자. 황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한 달에 39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단칸방 월세 10만원과 전기료와 수도료,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 8만~10만원을 매월 내고 나면 남는 돈은 매월 20만원 남짓. 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황씨는 병원비와 약값, 교통비,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늘 돈은 부족하다. 겨울이지만 연탄도 마음 놓고 못 때고, 이불도 변변치 않아 냉기를 가까스로 면할 정도로만 지낸다. 세탁기는 아예 살 엄두도 못내 엄동설한에도 찬물 빨래를 해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국내 복지제도는 아직 빈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나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제도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거나 확충된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현행 복지제도는 어떻게 보면 지원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과 융통성 없는 행정 체계 때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위에서 본 것처럼 많은 복지지원 대상자들이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기관, 자선단체, 복지관련단체 등 민간부문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 부문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간 부문 복지지원사업을 주도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사정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고양시 관내에는 시로부터 운영예산을 지원받는 사회복지기관이 5군데 있지만, 실제 관내 복지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5개 사회복지관 가운데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이 담당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은 모두 180여 케이스에 이른다. 그나마 올해 9월부터 일산동구 고봉동과 풍산동을 담당하는 거점센터를 따로 열어 40 케이스 정도가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180여 케이스를 담당하는 인력은 거점센터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복지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추가로 찾아내 지원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9월 일산복지관 거점센터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당 동사무소 등으로부터 잠재적 지원대상자 명단으로 건네 받은 케이스는 모두 25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거점센터 직원 2명이 40여 케이스를 상담해 지원하고 나니 지원 대상자를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거점센터 직원 김모씨는“200여건의 케이스들은 아예 상담도 진행해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도 못하고 있다”며 “고양시 전체로 볼 때도 5개 사회복지기관이 커버하고 있지 못한 빈곤층 대상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거점센터 직원이 내년 초부터 한 명 증원될 예정이지만, 이번에는 당초 고양시가 편성했던 거점센터 지원예산 1억 원이 7,000만 원으로 줄었다.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3,000만원 삭감된 것이다. 2,000만원 전후 수준인 담당 직원 세 명의 연봉을 제외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을 뿐이다. 결국 거점센터 입장에서는 민간의 독지가나 관련 자선단체의 후원을 요청해 필요한 복지지원 대상자와 연결해주는 일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래 <도표>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올해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 정부는 실질적으로는 올해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증액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장을 둘러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그나마 받던 복지 지원마저 끊어질 상황에 처한 빈곤층만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빈곤층을 발굴해 지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여론조작용 표현일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하는 '신빈곤층'이라는 레토릭은 마치 원래 빈곤층은 충분한 사회복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정말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다. '신빈곤층' 챙기기 전에 원래 있는 빈곤층들에 대한 복지지원이나 깎지 말고 제대로 챙기라는 말씀이다. 하긴 사회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고, 주변에서 그럴듯한 신조어 하나 갖고 오면 생색내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게 몸에 밴 이명박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게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 더구나 건설토목사업에 퍼붓는 돈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쇼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며 어린애와 통화하는 쇼는 보기가 정말 역겹다. 그런 대중용 이벤트로 열악한 사회복지 현실을 외면하는 자신의 태도를 포장하니 역겹다는 것이다. 아무리 쇼라는 것을 알고봐도 속내가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0. 11:40

 

최근 상당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과 건설업계는 꺼져가는 부동산 투기심리를 “1인 가구 증가로 향후 주택 수요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되살리려 하고 있다. 또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 분양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당수 언론들도 이 같은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수년 전부터 한 광고기획사가 만들고 언론이 확대재생산한 ‘골드미스/골드미스터’라는 용어와 겹쳐져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방해하고 있다.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과 상당수 언론들의 ‘1인 가구 증가→주택수요 증가→ 분양주택 공급 필요’라는 도식은 늘어나는 1인 가구들이 대부분 주택을 살 수 있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이들은 1인 가구가 대부분 상당한 소득과 구매력을 가지고 자기 개성을 추구하는 골드미스 또는 골드 미스터라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1인 가구 추계치는 대단히 왜곡되어 있으며 부풀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1인 가구 급증은 집값 폭등과 청년실업 증가, 소득 부족으로 인한 결혼 지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독거 노인 가구의 증가 등 한국사회의 심각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지를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도표>에서 1인 가구는 전국적으로 2000년 222만여 가구에서 2005년 317만여 가구로 43%나 급증했다. 전국 1인 가구 연령별 증감 현황을 보면 30대와 45-54세, 75세 이후 연령대에서 특히 많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75세 이후 고령층은 배우자와 사별한 독거노인 가구수가 급증한 때문이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30-34세는 주로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노처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45-49세는 주로 배우자와 이혼해 홀로 살고 있는 경우다. 이처럼 1인 가구의 증가는 젊은층의 만혼(晩婚) 현상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독거 노인 가구의 증가, 이혼의 증가 등 최근 악화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문제들을 고스란히 응축해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1인가구 현황; 통계청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혼인 상태별로 1인 가구를 파악해 보면 2000년-2005년 기간 동안 이혼이 70% 가량 급증하고, 미혼 1인 가구도 49% 늘어났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나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도 각각 38%, 28%씩 증가했다. 하지만 비중 면에서는 미혼 1인 가구가 47만 가구가 늘어나 전체 1인 가구 증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즉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능력 부족으로 결혼을 제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의 경제력은 어떨까? 2005년 현재 전국 1인 가구 가운데 취업자 비율은 54%로 전체 15세 이상 인구의 취업자 비중 60.3%보다 상당히 낮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이후부터 취업 비중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전국 평균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취업 비중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1인 가구의 평균 소득을 보면 경제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아래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2008년 현재 1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31만원으로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소득 327만원의 약 40% 정도에 불과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서울시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월 평균소득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서울시내 1인 가구 가운데 월 100만원 미만 소득자가 45%, 100~200만원 소득자가 31%로 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약 4분의 3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인 것이다. 반면 ‘골드미스/미스터’라고 부를 수 있을 계층을 넓게 잡아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이라고 할 때 해당 1인 가구는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골드 미스/미스터’는 재벌계 광고회사와 기성 언론이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례를 부풀려 만들어낸 환상일 뿐 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표2> 가구원수별 소득; 통계청자료로부터 KSERI작성


또 1인 거주 주택의 평형 구성비를 보면 19평 이하 소형 주택에 거주하는 비중이 86%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 69%로 19평 이하 거주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1인 가구의 급증 현상은 집값 폭등과 청년실업 증가, 소득 부족으로 인한 결혼 지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독거 노인 가구의 증가,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불안정 등으로 인한 이혼 증가 등 한국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점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들이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밑바닥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과 충격이 1인 가구 증가라는 흐름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1인 가구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보호 또는 지원이 필요한 가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이나 언론 보도처럼 이들 1인 가구 대부분이 현재 계획돼 있는 중대형 위주 수도권 주택공급 물량의 유효수요층으로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따라서 주택정책적 측면에서는 이들 1인 가구들을 위한 저렴하고 질 좋으면서 독신자가 생활하기 편리한 공공임대/전세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독거 노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실버형 주택’ 모델을 개발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역세권 등에 대규모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7. 10:38

어제 MBC 뉴스데스크를 보는 도중 이명박 대통령의 신빈곤층발언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까지 연출했다.

 왜 이 대통령의 행위를 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바로 앞에 나온 MBC 보도내용과 지난해 말 정부가 통과시킨 정부 예산안 내용 때문에 그렇다. 이 대통령의 신빈곤층 발언에 앞선 MBC 보도 내용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차상위 계층 21만명에 대한 의료급여를 오는 4월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기초생활 수급자 숫자도 지난해보다 1만명 줄였다. 정부가 겉으로 말하는 사회 안전망 강화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뒤이은 보도에서는 대학생 63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 금리는 연 7.3%로 전 학기보다 0.5%포인트 떨어지는데 그쳤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7% 포인트나 떨어졌지만,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를 2배 이상 높여 사실상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돈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실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 하루의 뉴스에서만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기막힌 일들은 지금 계속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필자는 처가 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기에 기막힌 국내 사회복지의 현실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 처가 돌보는 사회복지 대상자 가운데는 단 돈 몇 만원이 아쉬운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당초 처가 맡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복지기관 거점센터 예산은 당초 1억원에서 7000만원으로 깎였다. 시의원 한 사람이 성과가 없어 예산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거점센터가 지난해 10월에 시작했으니 예산 심의 시기인 12월에 성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예산 7000만원으로 박하디 박한 사회복지사 세 사람 연봉(평균 2000만원) 6000만원을 지급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는다. 그것으로 1년 내내 그 거점센터가 돌보는 지원 대상자 240여 케이스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들이 손을 놓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 예산이 없으니 잠재적인 민간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이 부르틀 지경이다. 그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정말 가슴이 미어질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해 12 12일과 13 2009년도 예산안과 감세법안 등 예산 부수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정부는 당시 4대강 정비사업 예산 등 지난해보다 26%나 증액된 SOC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이미 기존에 발표한 대로 종합부동산세 대폭 완화와 소득세법, 법인세, 상속세 완화 등을 통해 상류층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안을 관철시켰다.

이처럼 강행 처리된 올해 예산안에 대해 당시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경기를 살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 띄운 해설자료를 통해 올해 예산안은 1) 사회안전망 구축 등 경제 위기 관리 2) 뉴딜, 구조조정, 인력 양성으로 미래 대비 3) 신기술과 녹색산업 투자로 경제 재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안전망 구축 등 경제 위기 관리를 올해 예산안 편성의 가장 큰 방향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말 이 같은 목표를 정말 실현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확정된 올해 예산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도표1>을 참고로 올해 예산내역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지난해보다 26% 늘어난 24.7조원 규모의 SOC사업이 눈에 띈다. 이 같은 SOC사업 예산을 편성한 것과 관련하여 현 정부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경기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희태 대표는 지난해 12 15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례 회동에서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하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올초 녹색뉴딜이라는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을 또 한 번 내놓았다. ‘녹색이라고 포장했지만, 4대강 사업과 중소 댐 건설 등 도대체 왜 하는지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건설토목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고급 스테이크로 포장한 저질 소시지였다.

 

<도표1> 2009년도 정부예산안 내역



() 기획재정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이미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질 정도로 불필요한 건설토목사업이 남발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래 <도표2>에서 1970년대 이후 건설산업의 부가가치가 전체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시기에 건설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크게 늘어나 11~12%대를 유지하다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90년대 말 IMF사태 직후 8%대까지 낮아졌다가 2000년대 부동산 투기가 본격화되면서 9%대로 상승하여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 OECD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에는 90년대 초에 4% 수준에서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하여 5%대로 증가하였으나 이 정도 수준에서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부동산 투기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부가가치 비중으로 볼 때 한국 경제는 미국보다 두 배 가량 더 건설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에 9.7%를 기록한 후 버블 붕괴와 장기불황으로 계속 줄어들어 2005년에는 6.1%까지 감소했다.



건설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발경제 시대에 비해 건설토목사업의 경기부양 효과와 일자리창출 효과는 매우 낮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SOC예산을 줄이기는커녕 대폭 늘린 것이다. 그 가운데는 대운하 추진을 위한 걸치기 예산으로 의심받는 4대강 하천정비 예산 17,000억 원과 소위 형님예산으로 비판 받는 포항지역 건설예산 4,370억 원도 포함돼 있다. 특히 4대강 하천정비 사업에는 향후 4년간 모두 14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나왔다. 홍수 대비 물길 정비라는 내용 외에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의 근거도 없이 14조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건설업체들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정치인들이 과시용 지역 예산으로 가장 선호하는 도로 예산은 모두 94,942억 원이나 편성됐다. 국토해양부는 당초 지난 10월 도로예산으로 79,540억 원을 편성했다. 이곳 저곳 공사를 벌리기 보다는 완공위주의 집중투자를 통해 예산 효율성을 높인다고 이같이 편성했었다. 그런데 11월 수정예산안에서는 경기침체를 내세워 선도사업이라며 10월보다 18.6%가 늘어난 모두 93,966억 원을 편성했고, 이마저도 국회에서 더 증액돼 통과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예산에 반영된 음성~충주고속도로, 충주~제천고속도로, 동해~삼척고속도로, 상주~영덕고속도로 등은 2007년 국가기간교통망계획에서 모두 경제성이 낮다고 평가된 사업이었다.



이처럼 상당수가 불요불급한 예산인 토목건설사업에 국가 자원이 과다 배분되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절실히 필요하거나 향후 국가발전 면에서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한 곳에는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이 주가 되는 보건복지 예산이다. 정부와 여당은 줄기차게 경기침체 시에 가장 타격을 많이 받는다며 대규모 지원을 할 것처럼 떠들어 댔으나 2009년도 보건복지 예산은 전년대비 10.4% 증가에 그쳐 전체 예산 증가율 10.6%보다 낮게 나타났다.


보건복지 예산은 74.7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25.9%를 차지하여 겉으로는 매우 크게 보인다. 하지만 2005년부터 정부 세출예산에 포함된 국민연금(7.7조원)과 건강보험(31.6조원) 급여액이 약 39.3조원 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한 보건복지 예산 비중은 35.4조원 안팎으로 줄어들어 전체 예산의 12.3%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체 보건복지 예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사회보장연금 지출 증가율이 2005-2007년 증가율 수준인 14~17% 수준을 유지한다면 순수한 보건복지 예산 증가율은 대략 5~7% 정도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복지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취약한 복지 인프라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었다.


아래 <도표 3>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도표3> OECD 사회지출 비중 및 한국의 기초생활보장 지급 실적


(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수정예산안에서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요구로 실업급여 및 기초생활 수급자 지원 확대,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등에 1조원, 청년실업 대책에 3,000억 원을 추가로 배정했다. 그러나 이 정도 증액으로는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편성해놓았으니 MBC 뉴스 보도에서 보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굳이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현실의 절실한 문제에 대응하거나 미래를 전략적으로 대비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방향과 내용이 대부분 이런 것이다. 과거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지금 한국 정부와 같은 대규모 건설토목사업을 잇따라 편성했다가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로 몰고가면서 정부 부채만 잔뜩 키웠던 일본의 경기 부양책조차 건설토목사업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이름부터 생활대책으로 서민층 보호 위주로 돼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정부는 광역경제권 선도포르젝트녹색뉴딜이니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경기부양이니 온갖 명목으로 시대착오적인 7,80년대식 건설토목사업에 예산을 탕진하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으니 거의 범죄적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서도 이명박은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고 하니 쑈도 이런 생쑈도 없다. 쑈도 속과 겉이 다르고, 속내가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원래 신빈곤층은 없었고, 정부가 전혀 그동안 나몰라라 하며 돌보지 않은 빈곤층만 있을 뿐이다. 설사 이명박이 이름붙이 신빈곤층이 있다고 한들, 한쪽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깎으면서 새로 신빈곤층을 찾아내 지원을 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닌가? 어차피 현재 상황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결여돼 있고, 따라서 전혀 상황 파악과 장악을 할 수 없는 이명박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제발 코웃음이 나오게 하는 생쑈만이라도 집어치우고 지하 벙커에 숨어서 대중의 눈 앞에서 어른거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6. 08:50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http://cafe.daum.net/kseriforum)에 '똘아씨'님이 올린 글입니다. 좀더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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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경기의 하락은 캐나다 서민 경제에도 주름살을 만들었고 경제침체에 따른 석유 소비량의 감소는 캐나다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져와 특히 오일산업에 의존하는 캐나다 중부지역의 경제도 그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의 경제 위기는 어느 나라도 피해갈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라 각 나라마다 그 강도가 다르고 경제와 사회구조의 건실성 여부에 체감온도는 물론 그 영향과 해법이 다를 것이다.

 

필자가 사는 캐나다 중부지역 중소도시에서 느끼는 경기 체감은 아직은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물론 캐나다내에서도 지역적 특성과 산업구조에 따라 체감온도가 다를수 밖에 없고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냐에 따라 개인적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극한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주로 서민들을 고객으로 하는 편의점과 주유소를 운영하는 필자가 가장 관심있게 살피는 것은 서민들의 구매력 즉 소비여력이다고가품이나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에 대한 소비감소는 어쩔수 없더라도 저소득층에게 생필품의 구매력은 생존을 좌우할수 있다.  그 끈 즉 구매력이 무너지면 사회전체가 붕괴할수도 있으며 회복하기에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경제의 체질중 하나이기도한 불황기에 적응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탁월하고 경험도 많이 축적되어 있다. 이는 캐나다 경제의 특징중 하나인 계절적 요인에 의해 불황기에 잘 적응되어있다는 뜻이다.

 

호황기에도 겨울철에는 경제활동이 제한적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오일산업이나 건설 설비 업종에서는 그런한 것을 염두에 두고 투자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겨울철에는 Lay off 상태에서 그 동안 모아둔 돈이나 실업보험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다음해 봄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경기하락은 묘하게 이 계절적 요인과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아직은 버틸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대비하듯 캐나다 서민은 주수입원을 상실한 즉 직업이 없는 기간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캐나다에서 서민 경제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원동력 즉 가계 수입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연금에 의해 노후생활을 이어가는 노년층에서는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매월 일정액의 노후연금은 기초생활비 이외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구매력은 주로 생필품을 구입하는데 사용된다.

 

실업보험도 마찬가지이다. 이 실업보험은 최장 10개월 까지 지급되는데 작년 하반기를 기준하면 올 여름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가을 추수기에 농산물 수확으로 도움은 되겠지만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지역경제는 물론 서민생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원주민(인디언)에게 지급되는 지원금도 만만치 않다.  달달이 몇차례에 걸쳐 지급되는데 그날은 각종 매장은 북적거림을 넘어 싺쓸이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또한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장형 지원금 역시 그 액수는 미미하지만 중요한 수입원일 것이다.  18세 이하 자녀에게 주는 GST 환급금 속칭 우유값이라고도 하는데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그리고 저소득 층에 지급되는 지원금(소득신고를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환급금)도 그 액수가 많지만 대부분 생필품 구매에 활용될 것이다.

 

이러한 많지 않은 돈들이 모여 서민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로서 사회보장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것을 운영할수 있는 재정 즉 세금의 많고 적음이 불만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조세부담율의 상승과 사회보장제도의 정착 여부는 선진국의 잣대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앞을 예측할수 없는 현실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금년 경제 전망도 엇갈리는데 희망 섞인 전망은 올 하반기에는 회복될거라는 말도 있고 불경기가 몇년 이어질거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캐나다 중부지역에서는 국제 석유가가 그 기준이 되고 있다. 일반인은 물론 오일관련 업체에서는 민감하게 작용하는데 작년초에는 휘발류값이 1.40(루니화)까지 오른다는 예측을 했었고 작년 여름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불 이하로 내려간다는 전망도 했었다. 그 수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 흐름은 정확히 파악하고 준비를 해왔고 부동산가격의 가파른 상승에는 은행융자 비율을 낮추어 위험에 대비해왔다.

 

금년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정유회사에서 올 6월까지 새로운 투자계획이 없을것이며 상반기에 석유소비량의 증가와 함께 국제 유가가 상승하여 하절기에는 국제 유가는 배럴당 65불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아마 그 정도 되어야 신규투자를 할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 보다는 석유소비량이 기존 시설 용량을 넘어설 때 신규 설비투자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그때에 가서야 새로운 일거리와 노동시장이 활성화 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2010년을 기대해야 하는데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캐나다 정부에서도 미국의 경제 부양정책에 버금가는 각종 경기 부양책이 나올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어떤 정책이 나오던 경기 부양책이 서민들의 소비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었으면 한다

 

1억원의 경기 부양효과가 있다고 할때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2천만원 정도가 소비되어 생산 활동으로 돌아오지만 100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모두 시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불경기에 경기 부양정책은 서민 경제 즉 소비력의 확대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그 과실이 서민속으로 흘러가야 소비의 확대 즉 경제 활성화의 불씨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면 재투자 여력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소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환상에 불과하다.

 

일견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이 증가하여 한국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소비가 뒤따르지 않은 국제 경제 현실은 수출을 둔화 시킬수 밖에 없고 기름값등 원자재 가격 상승은 국내경제에 짐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서민은 불황과 고물가의 이중고에 허덕일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들이 느끼는 경기체감도 다뭇 다르다. 한국에서의 송금에 의지하는 유학생이나 초기 이민자들에게는 환율과 한국경제의 침체가 고통을 증가시키고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인들중에 취업을 해야하는 경우는 고용불안이 문제이고 또한 한인들을 상태로 하는 비지니스는 큰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지만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편의점이나 그로서리 스토아등 생필품을 취급하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다. 고가품을 취급하는 곳보다는 저가의 생필품을 파는 곳은 그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만큼 up and  down이 적은 안정적인 사업이라고 할수도 있다. 고객이 현지 주민이고 그 수요가 한정적인 것이 흠이되어 큰 돈은 못만진다고 하지만 여간해서 망했다는 말은 듣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도 올해는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이다. 이는 연간 개인소득을 줄인다는 의미 보다는 회사에 적립되는 이익금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이고 적자가 날수도 있다.

 

매출이나 이익이 지난해 보다 적어진다고 직원을 줄일 계획은 없으며 최근에 승인난 필리핀 노동자의 채용계획도 그대로 진행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대비한 노후장비 교체등 투자도 늦추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알수는 없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예상밖의 큰 수익이 생길거라는 희망과 그 준비는 지금 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5. 10:19

 

제 고향은 대구의 위성도시격인 경산시에서도 시골인 남산면입니다. 경산포도 주산지로 유명한 동네인데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쇠락해가는 고향 마을의 소식들을 듣게 됩니다. 고향 마을에는 이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 어른들이 대부분이고요. 청장년들과 어린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끔 보이는 청장년층은 대부분 도회지로 나갔다가 해고되거나 자영업 등을 하다 실패해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경우입니다. 부모님들이 짓던 농사를 물려받거나 거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치밀한 구상과 열정으로 벤처기업농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제 고향 친구들이나 선후배들 가운데도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도회지에서 변변찮은 일들을 하며 사기를 당하거나 노름에 빠져 이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학력이 낮은 편이라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이혼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혼한 뒤 아이들은 시골의 부모님께 맡기는 경우도 많은 모양입니다. 가뜩이나 연로한데다 농사일에 바쁜 시골 부모님들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썩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곡된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가 만들어낸 실업과 이혼 등의 문제를 농촌 시골마을의 연로한 부모님들이 온몸으로 떠안고 있는 형국입니다. 또한 골병이 들대로 든 한국경제가 시골마을까지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농촌은 점점 쇠락하고, 내부적으로 재생산이 되지 않는 상황까지 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우리 농촌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으니 더더욱 걱정입니다.

 

미국 유학 동안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의 포도밭과 포도주 양조장(winery) 등을 돌아보면서 참 부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네들은 포도밭에서 우리처럼 포도를 생산해 팔기보다는 양조장에서 포도주를 생산해 파는 것이 주수익원이었습니다. 또한 양조장에서 직접 생산한 포도주와 어울리는 음식들을 중심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포도밭에도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조경까지 해가면서 관광지처럼 꾸며 놓은 곳도 있었고요. 그런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향긋한 포도주를 음미하던 시간은 얼마나 여유롭고 낭만적인지요. 저희 가족들 외에도 곳곳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가는 양조장마다 늘 붐비더군요. 각 지방 정부들은 그런 양조장들을 묶어 ‘양조장 투어(winery tour)' 루트까지 만들고 교통편까지 제공하면서 관광상품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근사해보이든지 언젠가 나이가 들면 고향에서 ‘한국형 와이너리’를 한 번 운영해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왜 농업은 1차 산업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양조산업과 같은 2차 산업이나 관광상품 자원으로서 3차 산업과 연계해 발전시킬 생각을 못할까요? 왜 FTA체결한다면서 농민들에게 농업보조금을 풀어 포도나 복숭아 등 수익용 작물을 캐내게 해 사실상 우리 농업이 하루빨리 고사되기만을 바랄까요? 우리 농촌을 덴마크나 프랑스 등의 선진 농업국가로 만들 기회는 정말 없는 걸까요? 지금처럼 ‘1년 뼈빠지게 일해 번 돈을 다음해 농비로 도로 써야 하는 농업’이 아니라 정말 품위 있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벤처농기업과 관광자원으로 농촌을 탈바꿈시킨다면 우리 젊은이들도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을 텐데요.

 

그렇게 하지 않으니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꾸역꾸역 밀려들고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다 다시 폐인이 돼 낙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시 인구만 계속 늘어 치솟는 부동산 값에 일조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농업의 선진화 방향으로는 투자하지 않고, 농촌을 발전시킨다는 핑계로 시골마을 골목까지 시꺼먼 아스팔트를 깔아 건설업체 좋은 일만 시키고 있으니 한심할 뿐입니다.(실제로 이번에 가보니 마을 골목까지 시커먼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전에 있던 멀쩡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뜯어내고, 다시 아스팔트를 까는데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소담스러운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확 깨트리는 그 미적 무감각이라니요!) 

 

제 고향마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의 한국 경제는 선진경제로 나아가기는커녕 70,80년대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습니다. 막대한 정부 예산과 국민들의 돈을 엉뚱한 곳에 탕진하면서 제대로 된 선진경제로 도약할 기회들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거듭된 무능과 정책실패가 우리 부모님과 자식 세대를 포함해 모든 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극한까지 와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빨리 공정한 경쟁규칙을 확립하고 사장된 자원이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활력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연구소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뜻 있는 분들과 합심협력해나갈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더 이상 나락으로 빠지기 전에 제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되니까요.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2.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