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최근 용산 참사현장에서 숨진 철거민들을 ‘떼잡이들’이라고 막말했던 박장규 용산구청장(74)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표현은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알 카에다식 자살폭탄 테러’ ‘세입자란 양의 탈을 쓴 폭력집단’이라고 비난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막말에 비하면 오히려 점잖아 보인다.
도대체 막대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 재개발 현장에서 쫓겨나고, 이에 항의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런 막말을 하는 ‘엽기적인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집권여당은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흑인들이 숨지거나 구타당하면 해당 지방정부의 수장은 큰 정치적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공식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이렇게 세입자들을 폭도로 몰고 용역 폭력 등은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법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독재국가에서 벌어지는 법의 이중잣대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소위 말하는 ‘건설족’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특권을 챙기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지 잘 모른다. 박 구청장은 이 같은 건설족 정치인의 대표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자체 수준에서 어떻게 건설업자들을 배불리기 위해 시민들의 세금을 축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될 수 있다.
우선, 아래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퍼온 박 구청장의 프로필을 보자.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임광토건 전무이사로 출발해 남양진흥기업(주) 이사, 동영개발(주)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92년부터 이듬해까지 용산구의회 초대 도시건설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도시건설상임위원장은 각종 관내 개발사업 정보를 알 수 있고, 그런 사업들을 주무를 수 있는 노른자위다. 각종 이권과 특혜, 떡고물 등을 노리는 시의원, 구의원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2000년 보궐선거에서 용산구청장으로 당선돼 내리 3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자신에게 운영권이 위임돼 있는 사회복지법인인 상희원을 통해 2004년 5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천 명의 유권자에게 총 8억8000여만 원을 제공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으나,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공직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처신을 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MBC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상희원은 관내 건설업체 38곳으로부터 18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건설 회사들은 구청장 권한인 재개발 인가나 설계 변경 등을 허락받기 위해 상희원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건설족으로서 그의 ‘활약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역시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용산 비전 2010’의 주요 사업의 상단 주요 메뉴를 보면 한강로 일대 개발, 국제업무지구 조성, 철도 지하화, 종합행정타운 건립 등 온통 개발사업 뿐이다. 물론 이 같은 개발사업들은 서울시와 중앙정부 등의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기는 하나 ‘건설족’으로서 박 구청장의 이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용산종합행정타운 건립과 관련해 건설족들은 어떻게 예산을 낭비해 건설업체들을 배불리는지를 보여줄 것이다.(아래 조감도 참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입찰제도에 대한 기초학습이 좀 필요하다. 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멈추면 당신은 여전히 건설족들에게 당하게 된다. 건설족들은 빠삭하게 알고 각종 이권을 나눠먹는 개발사업의 메커니즘을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기에 그들이 마음놓고 시민의 혈세로 파티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면 안 읽는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산구는 이 사업을 통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안 퍼줘도 되는 시민의 혈세 380억원 가량을 낭비했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설명을 시작해보자.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사용하는 입찰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가격 위주로 경쟁하게 하는 가격(최저가) 경쟁입찰과 적격심사제, 대안입찰, 턴키입찰(설계시공일괄입찰) 등 크게 네 가지다. 물론 수의계약과 같은 다른 방식도 있고, 민간자본유치사업(민자사업)도 큰 틀에서는 공공공사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 한국형 턴키 제도는 턴키 제도가 아니다?
이 가운데 특히 턴키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턴키 공사는 일괄입찰계약 방식의 하나로 도급자가 건설공사의 재원조달, 토지 구매, 설계와 시공, 시운전 등을 모두 마친 뒤 발주자에게 인계하는 공사를 의미한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턴키 방식은 주로 표준적이거나 반복적인 건축공사에 적용된다. 특정한 종류의 공장 건설에 전문화된 건설업체가 기존에 지은 공장과 비슷하게 지어서 발주자에게 납품할 때 활용되는 입찰방식이 턴키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 설계도면을 재활용하면 되므로 설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의 턴키 방식은 공기 단축 및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주로 발주된다.
하지만 턴키 제도를 원형 그대로 국내에서 실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설계와 시공, 감리 등의 업역(業域)이 완전히 분리돼 있어서 이를 통합해서 공사를 진행하는 턴키 방식이 사실상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또 표준적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표준도면, 표준시방서, 표준품셈 등 공사 표준이 잘 정리돼 있어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이 같은 표준이 아예 없거나 부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턴키 방식은 일반 건설업체가 설계회사에 용역을 주고 설계도면을 작성해 함께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질됐다. 한 마디로 기존에는 발주처가 설계회사를 통해 설계용역을 마친 뒤 시공사를 선정했던 것을 시공사가 설계회사와 짝을 이뤄 입찰하게 한 제도일 뿐이다.
재벌계 대형 건설사들은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하는 턴키 입찰제도의 특성을 활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합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통 전체 공사 예정금액의 3% 가량을 설계금액으로 쓰는데 이는 1,000억 원대 공사의 경우 30억 원을 선투자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사 수주에 대한 확신도 없이 수십억 원대의 설계비를 선투자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상위 1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거액의 선투자 비용이 일종의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같은 진입장벽을 활용, 이들 상위 대형 건설사들은 사실상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했다. 상위 6개 내지 10개 건설사들이 돌아가면서 공사를 수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적인 담합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턴키입찰 방식은 설계와 가격 점수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대형 건설업체들은 발주처 로비 등을 통해 설계점수 비중을 가격 점수보다 높이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끼리는 가격은 일정한 수준에서 철저히 담합하는 반면, 설계 점수를 통해서만 경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설계점수도 평가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주로 의존하고 평가점수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져 사후 전문가들 사이의 검증(Peer Review)이 불가능하다 보니 설계점수 평가위원들을 향한 탈법적, 불법적 로비가 구조화됐다. 이처럼 한국의 턴키입찰 제도는 원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돌연변이가 돼버린 것이다.
◆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공사
이제 서울시 지하철 공사 사례들을 통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2001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 7개 공구를 모두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7개 공구 가운데 5개 공구에는 2개 업체군, 나머지 2개 공구에는 3개 업체군만이 응찰했다. 참여 업체들은 대표입찰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공구에 공동도급자로 참여해 사실상 모두 한 건씩은 공사를 수주했다.
이처럼 7개 공구에서 20개 미만의 대형 건설업체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 공사의평균낙찰률은 98.3%였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이 모두 1,000억~1,6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공사들이었다. 만약 이들 공사들을 1,0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에 적용된 최저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2001년 당시 경쟁입찰제의 평균 낙찰률이 65%였으므로 낙찰률이 33% 이상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업체간 담합이 성행하기 전 같은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서울시 2기 지하철 6~8호선의 평균 낙찰률도 68% 정도였던 것에 비춰 봐도 30% 이상 높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공사 예정가격의 30% 이상이 사실상 담합에 의해 낭비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 총합이 9,400억원 정도이므로 3,000억원 이상이 7개 공구 입찰에서만 낭비된 셈이다.
이렇게 낙찰률이 높아진 이유는 사실상 담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각 공구별 입찰가격을 보면 서로 담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금액 차이가 적다.
<도표1> 지하철 9호선 1단계 입찰참여 업체별 입찰 가격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실제로 공정위는 이듬해인 2002년 7월 903, 909공구에서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 등 두 업체가 ‘들러리 교차입찰’ 방식으로 담합한 사실을 밝혀내고 33억 여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33억 원은 두 업체가 해당 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추가로 얻은 추정 이익 약 795억 원(=2,650억×30%)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업체들은 담합이 매번 적발된다고 해도 이 정도 과징금을 무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현재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으로는 이들 업체들의 담합 유인을 절대 없애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업체들의 담합 사실은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과징금의 실효성은 훨씬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
이제 이 글의 종착지인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를 보자. 지난해 3월 입찰이 이뤄진 이 사업은 용산구청이 서울시 지원을 받아 126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발주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용산구 이태원동 34-87번지 일대 1만3497㎡의 대지 위에 지하5~지상10층, 연면적 5만6069㎡ 규모의 용산구청사를 짓는 사업이다.
그런데 아래 <도표2>를 보면, 이 공사에 입찰한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의 입찰금액이 불과 0.0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금액 1,200억 원대 공사에 두 업체의 입찰금액이 불과 2,50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담합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담합을 입증할 수가 없다”며 관련 당국들은 손을 놓고 있다. 개발업체 사장 출신인 박 구청장이 이런 메커니즘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도표2>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입찰 결과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쯤에서 재벌 건설업체 직원들은 초기 투입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니 원래 턴키입찰 공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도표 3>을 참조로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사업에 한 달 앞서 발주됐던 지하철 9호선 2단계 915~917공구 건설사업을 보자. 필자가 서울시에 재직할 때 업체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사업이기도 하다. 아래 도표를 보면, 낙찰률이 각각 60%와 72%, 86%로 9호선 1단계 때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지하철 9호선 1단계 사업의 평균 낙찰율 98.3%에 비하면 약 12~38% 가량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업체간 담합 여지를 최대한 없애고 실질적 경쟁을 유도한 효과다. 사실 916공구의 경우에는 사실 막판에 담합이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에 퍼진 소문이다. 그런데도 이 3개 공구에서만 9호선 1단계 때와 비교할 때 약 95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쟁입찰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적용해도 이만큼 거액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도표3> 지하철 9호선 2단계 낙찰 결과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위에서 본 것처럼 재벌 건설업체들과 일부 ‘건설족’ 정치인들은 이같은 이권들을 주고 받으며 강고하게 결합돼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건설족 정치인들은 내가 무슨 무슨 개발을 했네 떠벌리고, 시민들은 속사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 정치인들이 내 집값 올려주니 좋다며 선거에서 연거푸 찍어준다. 이 같은 상황은 꼭 용산구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기야 그런 행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의 탄생 아니겠는가? 이 정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줄이면서도 왜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 사업에 약 20조원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아는가? 경인운하 사업 또한 턴키로 발주한다는 것을. 하긴 제 버릇 남주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주요 사업인 청계천 사업, 동남권유통단지, 지하철 7호선, 심지어 단순한 주택시공사업인 은평뉴타운에까지 턴키입찰 방식을 도입해 시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낭비한 시민의 세금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필자는 그가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고 만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그들이 가증스럽다. 이 모든 일들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 등 서민이 대규모로 쫓겨나는 과정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하는 것은 극도로 아까워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분양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들에게는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그냥 퍼주는 정부와 지자체를 온전한 정부, 지자체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현재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기득권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하는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단면 또한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