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이번 용산 참사를 통해 느끼고 있듯이 지금까지 도심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원주민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고 주거의 질을 높이며, 공동체의 자족적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주택정책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치달았습니다. 오히려 조합을 돈으로 구워삶아 온갖 명목으로 건축비를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건설사와 투기 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의 잔치였습니다. 건설사가 재개발사업지 한 곳에서만 수천억원의 폭리를 취하고, 투기꾼들이 개인당 수억원의 투기차익을 챙기는 동안 세입자들은 자신들 소유의 점포 시세의 4분의 1밖에 보상받지 못하는 부조리가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재개발 재건축 지구로 지정만 되면 땅값과 집값이 폭등해 가난한 세입자들은 변두리로, 변두리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지난 글 ‘용산 참사와 전방위 불량국가, 대한민국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407334을 참조해주십시오.

 

이 같은 문제점을 뻔히 보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건설업체들과 투기꾼들이 최대한 빨리 사업을 추진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등 법제를 마련했습니다. 심지어 도정법 등이 규정한 법절차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주민 동의를 조작하는 등 탈법과 불법이 횡행해도 행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사실상 폭력배나 다름없는 용역철거업체들의 폭력과 온갖 행패에도 눈 감았습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바로잡겠다고 서울시가 나서고, 나름대로 이 분야 전문가라는 분들도 도정법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둥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의 폭리와 투기 수익을 양산하는 지금의 도심 재개발 체계를 그대로 두고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습니다. 현행 재개발 재건축 제도는 공공이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정한 구역 지정 요건을 충족하면 민간이 조합을 결성해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개발이익이 생겨나므로 조합이 시행사 역할을 맡아 시공사를 선정해 공동주택 건립 사업을 추진토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합은 폭리를 노리는 건설사들의 돈과 로비에 휘둘리거나 결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철거업체 선정과정과 주민 동의 과정에서 폭력과 비리가 횡행합니다. 이 같은 막대한 폭리를 건설업자와 개발업자, 투기꾼들이 가져가도록 만드는 제도적 틀을 가지고서는 각종 비리와 폭력, 주변 땅값 및 집값 폭등, 조합원의 높은 분담금,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획일적인 아파트 일변도의 주택 공급, 시장 수요와 무관한 중대형 평형 위주의 공급,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각종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공공이 흡수해 집값을 낮추고 충분한 도시기반 인프라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환원해야 합니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은 땅주인, 거주자, 개발 대행기관(토공, 주공, 각 지방도시개발공사 등),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 투기세력 등에 의해 배분되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라는 갈비를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뜯어먹어, 결국 수혜자가 돼야 할 서민들은 앙상한 뼈다귀만 핥게 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런 개발이익을 공공이 최대한 흡수해 그것을 저렴한 장기임대나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흡수하느냐고요? 현재 분양가 가운데 택지비가 보통 30~50% 가량 차지하고, 직간접공사비가 40~50%정도로 두 가지가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우선, 택지비를 봅시다. 지금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세력이 뛰어들어 땅값을 띄워 놓은 다음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 보상을 하므로 개발이익이 땅주인과 거주자, 투기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개발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사전 매입 후 개발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보상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습니다. 부지 확보까지만 정부가 하고 이후 주택 공급과정은 이를 통합해서 관리할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나 컨소시엄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사업을 맡깁니다. 따라서 택지 조성도 토공이나 주공이 하지 않고 CM회사가 가격 경쟁을 통해 선정한 민간 토목업체가 합니다. CM이 경쟁입찰을 붙여 시공사를 선정하면 실제 건축비도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입니다. 공기도 현재 26~30개월 정도인데 2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분양가보다 절반 아래로 훨씬 빨리 공급할 수 있습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묻고 통제하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은 이른 전문 CM이나 PM(Project Manager)들을 통해 얼마든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토지임대부 주택 같은 사기적인 ‘반값아파트’가 아니라 진짜 ‘반값 아파트’ 얼마든지 실현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서는 CM이 책임감리와 비슷한 역할 정도만 하게 하고 있는데요. CM이 건설공사 전반을 관리하되 공사 전반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CM at full risk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또 토지보상, 감정평가, 감리제도, 금융기관 공사보증 제도, 하도급 구조, 건설업역 제도 등 건설산업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대단히 많은 작업이 필요하지만 집권세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재개발 재건축 사업뿐만 아니라 후진적 건설산업 전반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효과를 생각하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 또한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기관과 관련 정부부처를 동원해 ‘방송장악’에 기울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사기적 분양가의 거품을 뺄 의지도 없지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들 멋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도시 기반시설 과부하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용적률을 올리는 등 투기 거품을 부추기는데 혈안이 돼 있으니까요.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공공이 흡수해 진정한 의미의 ‘반값아파트’를 공급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서민주거안정은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많은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듯이 주공이나 SH공사 같은 건설공기업들의 역할을 키우자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라면 지금 같은 방대한 구조의 토공, 주공이나 SH공사 같은 지방공기업도 필요 없습니다. 토공, 주공은 정부의 기획에 따라 토지를 매입하고 CM사 선정해서 정부 계약을 대행하고 계약 이행을 점검하면 됩니다. 또 향후 장기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임대주택 관리 업무 부문을 키우면 됩니다. 이처럼 공기업 개혁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주체로서 공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해 재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에 맞게 조직을 Redesign하고 Restructuring, Reengineering해야 합니다.

 

(옆으로 새는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무식하게 Downsizing 개념밖에 모르는 게 이 정부입니다. 오히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경기부양이라는 명목 아래 온갖 불필요한 건설토목사업을 벌이며 폐지, 축소, 또는 역할 전환이 필요한 토공, 주공, 수공, 농업기반공사 등 온갖 개발시대의 건설공기업들의 일감을 늘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정부 개혁은 단순히 조직을 오렸다 붙였다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상황에 맞게 정부의 역할과 역량 배분을 재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정부니 큰 정부니 하는 양적 논의는 매우 무식한 접근법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단순히 ‘작은 정부’라는 것도 시대착오적 개념인데, 이런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가 내세우는 ‘작은 정부’라는 목표조차 실현할 능력이 없는 엉터리정부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강바닥 정비와 경인운하 같은 사업에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한편 애꿎은 각종 복지지출이나 삭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흐름을 볼 때 현 정부가 호기롭게 추진하겠다고 했던 토공, 주공 통폐합도 ‘할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며 없던 일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사 통폐합된다 한들 정부의 엉터리 정책 사업들을 계속 받쳐주는 도구일뿐이라면 그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외치는 구호는 온통 통폐합 아니면 민영화밖에 없으니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선진국의 정부 개혁이 궁극적으로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민 전체의 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공기업의 영역을 줄이거나, 공공독과점 구조를 민영 독과점 구조로 바꿔 재벌기업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것을 공기업 개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가 엉망인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위에서 봤듯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폐해를 없앨 수 있습니다. 또한 저렴하고 질 좋은 아파트를 도심에 대량으로 공급해 원주민들이 떠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적 틀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해봐야 근본적 해법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70년대 당시의 법적, 제도적 틀로는 더 이상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틀 안에 답이 없는데 아무리 기존의 틀을 지지고 볶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같은 경우가 바로 상자 밖에서 생각해야 답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 같은 근본적 해법을 생각도 못하겠지만, 생각한다고 해봐야 실행할 의지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조차도 단순한 우발적 사고로 처리하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제물로 해 어물쩍 넘어갈 태세인 것 같으니까요. 결국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실현할 세력을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그 과업을 실현하는 밑거름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29.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