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 몰아치는 자연재해---중국엔 가뭄, 유럽엔 강풍, 호주는 폭염과 폭우…."


2월 11일자 연합뉴스 보도의 제목이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호주 제 2도시 멜번에서는 약 100년만의 최대 산불이 발생했고, 중국에서는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1급 가뭄경보를 내고 인공강우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또 유럽에서는 폭설과 폭우, 강풍이 몰아쳐 험난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80년만의 겨울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실 화왕산 억새풀 태우기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도 이 같은 겨울 가뭄에 따른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이는 “이번 사고는 천재지변”이라는 창녕군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바싹 건조한 상태에서 억새풀 태우기 행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런 행사를 진행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번 참사는 ‘인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이상 기후들이 지구 온난화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필자도 솔직히 고백컨대 잘 몰랐다. 심지어 7~8년 전 한 신문사의 국제부에서 일할 때 ‘사상 최고의 폭염’ ‘사상 최대의 태풍 피해’ 등등의 외신 기사를 보고 옮기면서도 속으로는 언론의 과장 보도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거. 해마다 매번 최고이고 최대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 유학중이던 2006년 봄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미국에서 권위 있는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제임스 홀드런 교수가 수업 첫 시간에 한 말 때문이었다. “현재 전 세계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이고,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키는 바로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달렸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특히 수업 내용 후반부에 지구온난화의 충격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는 동안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수업 덕분에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10여권의 책을 읽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 앨 고어가 쓴 ‘불편한 진실’이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며 미국 대중들이 인식에서 ‘티핑 포인트’가 발생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같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가 버락 오바마 신임 미 행정부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에너지정책을 수립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같은 인식의 변화를 찾아보기 여전히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2002년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5160만 환산톤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아홉번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배출량은 90년부터 2002년까지 약 99.7% 증가했다. 배출량 상위 20개국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증가율 118.6%를 기록한 인도네시아만이 유일하게 한국을 앞섰다. 같은 기간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 증가율 16.4%, OECD 회원국의 평균 증가율 13.8%와 비교하면 얼마나 빠른 증가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강력히 비난하는 미국도 16.7%의 증가율에 그쳤고, 프랑스 (6.9%), 이탈리아(8.3%) 등 EU국가들은 그보다 훨씬 낮다. 또 우리나라 소득 수준 대비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4년 기준 한국의 ‘소득대비 에너지 사용량(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1인당 GDP로 나눈 값)’에서 한국은 0.05로 31개 OECD국가중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소득대비에너지사용량(0.05)을 100으로 환산할 경우, 일본은 36, 독일 69, 프랑스 71, 미국이 97로 나타나 선진국보다도 에너지 소비가 훨씬 많았다. 한국은 또 2003년말 기준으로 대체에너지 사용실적(443만6000 석유환산톤)이 총 에너지 사용량의 2.1%에 그쳐, 대체에너지 사용비중에서 31개 OECD 국가 중 30위다. 한국보다 대체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가는 헝가리뿐이었다. 한 마디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최대의 ‘반환경국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지구온난화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도 아니다. 여름철 게릴라성 폭우 및 폭염의 증가, 중국 네이멍구 지역 사막화로 인한 극심한 황사 현상, 소나무 재선충 확산으로 인한 소나무숲 고사, 생태계 혼란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등.


지구 온난화 현상의 하나로 한반도에서도 지난 30년간 봄철 습도가 5%나 낮아졌다. 이 때문에 산불 피해 면적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지구 온난화와 일정한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산불피해면적은 1980년대에 1만880㏊, 1990년대에 1만3975㏊, 2000년대에 3만5711㏊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4월에 일어난 사상최대의 동해안 산불은 9일 동안 서울 남산 78개에 해당하는 2만3794㏊의 임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전 19년간의 총 산불피해면적과 맞먹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 밖에도 대형 산불 2, 3, 4위가 모두 최근 10년 사이에 발생했다. 1996년의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면적 3762㏊), 2002년의 충남 청양 산불(피해면적 3095㏊), 2005년 낙산사를 태운 강원도 양양 산불(피해면적 973㏊) 등이다. 낙엽 등 가연물질이 쌓인 탓도 있지만 겨울철의 고온 건조한 날씨가 산불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2월 10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산불건수는 예년보다 50%, 지난해보다 9배나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지역적으로 가뭄이 가장 극심한 영남지방에 피해가 집중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올해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산불 위험시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세계 각국의 온난화 추세에 따른 산불 피해 확산과도 일치하는 흐름이다.


산불로 발생한 알래스카 아한대지역 숲의 소실 면적을 보여주는 아래 그래프를 보자. 


알래스카 아한대지역의 숲은 북아메리카의 북쪽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숲이다. 그런데 매년 이 숲이 산불에 의해 소실되는 면적은 1970년대 이래로 1990년대말까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해기온이 높아지고 토양 수분이 증발하면서 자연발생적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이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형산불 발생 횟수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해왔음을 아래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럽의 경우 80년대보다 90년대에 산불 발생 횟수가 줄어든 점은 예외다.)



 이처럼 최근 8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는 현상과 산불 피해의 경향적 증가 현상 하나만 봐도 지구온난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건설족의 수장’이자 ‘삽질경제학의 태두'인 이명박 대통령은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고 하자 10일 강원도 업무보고 현장에서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소규모 댐 건설 방안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국토부도 2001년부터 댐을 건설하지 않아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경북 군위 등 5곳에 대형 댐을 짓겠다며 여론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긴 말 하지 않겠지만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댐은 불가능하다. 또한 댐을 더 지어 물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여전히 이 정부가 7,80년대 개발연대의 정책적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정부가 건설하고자 하는 댐은 대부분 상류지역이고 비도 적게 오는 지역이다. 수조원의 돈을 들여 댐을 건설해봐야 연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용수의 양은 연간 4~5억 톤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해당 지역들의 연간 강수량 등을 감안하면 부풀려진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2001년 당시 정부가 마련한 수자원장기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수자원 총량 1,240억톤 가운데 자연 증발(42%)하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31%)을 제외하고 실제 이용되는 물은 27%인 337억톤(27%)이다. 겨우 4억~5억톤의 물을 더 이용하자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수조원의 돈을 들이는 것이 과연 비용효과적인가.


돈을 안 들이고도 물 부족을 해결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12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뭄을 겪고 있는 태백시에서 태백시가 운영하는 리조트가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은 태백시민 5000명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 전국 각지에 지어진 골프장 등 각종 위락 및 리조트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물 값을 현실화하고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대형 사업장과 위락장에서 10% 정도만 아끼도록 하면 물 가뭄은 얼마든지 해소된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의 경우 염색 공정 기술 혁신으로 생산공정에서 드는 물의 소비량을 90% 가량 절약한 사례도 있다.

또 댐 지을 돈으로 가정용 빗물 저수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등 생활용수 공급원을 다양화하는데 써보라. 훨씬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면서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물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토건족 정부는 무조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서 해결하려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뭐든지 빌미만 생기면 토목사업으로 해결하려는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인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발현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문제 해결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족속들이니 이들은 확 갈아치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3. 0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