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영화 제보자를 보았습니다. 강추합니다. 연기와 연출 모두 뛰어나지만 진실의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감동적입니다. "국민이 국가"라는 대사가 영화 변호사의 메시지였다면, "진실이 국익"이라는 이 한 마디가 영화 제보자의 메시지를 압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옛 일도 생각나게 하더군요. 동아일보를 나온 뒤 유학 가기 전 미디어다음에서 1년 반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는 매우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당시 언론들의 '황우석 찬양'보도가 잇따르고, '황우석열풍'이 거세게 일기 시작할 때도 "황우석교수 수백억원대 정부 예산 지원 논란"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검색해봐도 원문은 찾을 수 없고, 누군가의 블로그에 옮겨진 글만 있군요.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ypetopia&logNo=80007531234
)
당시 이 정도 수준의 문제 제기를 했을 뿐인데도, 당시 기사 댓글의 80% 이상이 제 기사를 비판 또는 비난하고 예산 지원을 옹호하는 댓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댓글 중에는 "퇴근길에 등판에 도끼날 꽂힐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식의 협박성 댓글도 달렸습니다. 이후 저는 유학길에 올랐고, 황우석 열풍은 더욱 거세졌으며 결국 '제보자'의 배경이 된 피디수첩의 보도가 나왔죠. 피디수첩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들이 편을 갈라 대부분 황우석교수를 감싸는 보도를 했었던 걸로 압니다.
이처럼 '조작된 영웅' 황우석열풍이 거셀 때 온갖 사내외의 압력을 뚫고 보도를 할 수 있었던 한학수피디 등 피디수첩팀의 용기와 진실에 대한 열정은 정말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이후 문화방송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고, '진실의 목격자' 피디수첩팀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네요. '제보자'를 보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 정부가, 우리 사회와 언론이 얼마나 허술하고 엉터리이며 부패한지 알 수 있지만 지금 시대는 이제 그런 정부와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언론조차 거의 사라진 상황이네요. 그게 한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참고로, 피디수첩 보도를 미국 유학시절 접하고 이를 당시 미국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침공 당시 미국 언론의 '애국주의 보도'와 비교해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01/04/200601040500053/200601040500053_1.html
그 때 마무리에서 제가 썼던 문장은 이랬습니다. "수년 동안 한 과학자의 사기극을 검증하지도 못한 채 국민을 오도했고,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난 시점에서도 제대로 반성할 줄 모르는 언론. 과연 그들은 스스로 생산하는 뉴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런 뉴스를 국민들이 신뢰해주기를 자신 있게 바랄 수 있는가." 지금 대다수 한국 언론에게 여전히 전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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