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책연구소인 KDI마저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할 정도고, 어제는 조선일보마저 사설을 통해 무슨 꿍꿍이인지 같은 식의 주문을 했습니다. 또한 금통위원들 가운데 세 분이 가계부채 증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금통위 의사록이 발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기획재정부나 한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여러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낸 가계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작용할 것입니다. 기준금리 인상시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속도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일반인들 가운데는 현재의 저금리가 경제주체들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글에서는 현재의 저금리가 가계 부채 및 이자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구체적으로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알다시피 2004년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펌프질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예대율이 100%를 넘어서자 CD와 은행채를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단기 외화자금까지 차입해 부동산에 펌프질을 한 것은 이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미국발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터지면서 2008년말에는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뛰어올랐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이 5.5%이던 기준금리를 2.0%로 가파르게 인하해 인위적인 시장 저금리 기조를 만들어 경기를 부양했습니다. 그리고 2.0% 수준의 저금리를 15개월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상 최저 금리가 가계 이자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래 <도표>를 참고로 봅시다.

도표를 보면 정부의 저금리 기조에 따라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함께 하락하다가 은행들이 자금난에

2005년 중반 이후부터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은행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예금금리가 더 가파르게 상승해 예대마진이 지속적으로 줄어 2008년말 예대마진이 급감했습니다. 자금 확보에 혈안이 된 은행들이 고금리 특판 등을 통해 예금 유치에 나서면서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한 결과입니다. 그러다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이 같은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정부의 인위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한숨 돌린 은행들은 대출금리는 다시 조금씩 올리는 반면 예금금리는 지속적으로 낮춰 예대마진을 확대합니다. 이를 통해 연체율 증가 등으로 인한 부실을 털어내고 자금난을 극복하는 한편 수익성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금리는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가계들은 어땠을까요? 언론에서는 주택담보대출자 등 주로 빚을 진 가계 부담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사들이 많은데, 예금을 가진 가계들도 많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양쪽의 비중이 다를 뿐 금융자산과 부채를 함께 가진 가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표현과 분석의 편의상 부채 가계와 예금 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 상에서 개인 부문 금융부채는 2009년 3분기 현재 875조원, 개인 부문 금융자산 가운데 이자수익이 발생하는 예금액은 895조원 정도로 비슷합니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금융부채의 급격한 증가로, 특히 2005년 이후 금리의 상승으로 대출이자와 예금이자가 동시에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부채를 많이 진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 반면 금융자산이 많은 가계의 예금이자수입도 급증한 것입니다. 이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촉진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자기 조절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경제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인위적으로 기준금리를 억눌렀습니다. 그 결과 대출이자부담과 예금이자 소득이 동시에 확 줄었습니다. 물론 저금리 상황 아래에서 은행이 상대적으로 대출금리를 더 높게 유지한 결과 대출이자 부담이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습니다.

 

이 경우 부채 가계와 예금 가계의 이자소득에는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요? 2008년 말 대출이자부담은 연환산 63조원이었다가 이후 금리 인하로 연환산 45조원 전후 수준으로 떨어져 연간 약 18조원이 감소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인위적인 저금리로 18조원의 보조금을 준 꼴입니다. 반면 예금가계는 1008년말 38조원 가량의 이자소득을 올리다가 2009년에는 30조원으로 8조원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예금가계에 8조원을 과세한 꼴이 됩니다.

 

이것은 연간 기준이고요. 이미 15개월이 경과했으므로 약 부채 가계에는 22.5조원의 보조금을 주고, 예금 가계에는 10조원 가량 과세를 한 꼴입니다. 만약 현 정부가 올해말까지 기준금리를 현 상태대로 유지한다고 하면 각각의 수치는 36조원, 16조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를 냉철하게 따져보면 현재의 저금리 기조는 사실 경제적 형평성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일해 번 소득을 저축해온 가계에는 오히려 과세를 하고, 이렇게 벌어들인 세금으로  무리하게 빚을 내 부동산 투자 등을 행하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큰 위기를 몰고온 가계에는 오히려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꼴인 것입니다. 또한 외형경쟁 확대 과정에서 무분별한 가계 대출로 국민경제 전체에 큰 위기를 가져온 금융기관들에게도 저금리 기조를 통해 급감했던 예대마진 수입을 다시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확대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를 고려하면 일반 국민들이 저금리로 인해 떠안는 부담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이 같은 불공정한 상황을 용인할 수 있을까요?

 

사실 경제위기라는 핑계를 대면서 매우 낮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상당 부분은 바로 부동산 대출을 잔뜩 진 가계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2008년말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가 역설적으로 너무 극심한 경제위기 때문에 붕괴가 지연됐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거꾸로 지금의 사상 최저금리 하에서도 수도권 주택시장이 붕괴되고 있는 마당에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지금의 수도권 주택시장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위험한 경제학>에서 종부세/양도세/상속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 감면과 연간 수십조원의 추가 토건 부양책, 저금리 유지 및 가계대출 만기 연장,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각종 직간접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현 정부 임기 안해 300조~400조원 정도로 잡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2008년 하반기의 DTI규제 완화로 지난 한해에 늘어난 가계 부채 45조원과 부동산 펌프질 과정에서 무리한 외화자금난에 시달린 은행들을 대신해 한은이 갚아준 외화 차입금, 그리고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제도적 부양책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부양을 위해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원을 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위에서 본 것 같은 심각한 경제적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지도 못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소진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이명박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리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듣고 있으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현 정부의 엄청난 부동산 부양책을 보지는 못하고, 현 정부 내에서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난다고 이명박이 집값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니 말입니다. 지금 집값은 이명박 정부 '때문'이 아니라 이 정부의 사활을 건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백보를 양보해 지난 일은 경제위기 때문이었다고 치더라도 이제 정부 주장대로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다면 이 비정상적인 상황은 단계적으로라도 탈피해가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향후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가가 앙등할 경우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버블이 일순간에 터져버리는 것을 막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하든 현재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어느 정도 극도의 위기감이 가라앉은 지금 상황에서라도 풍선의 바람구멍을 열어 바람을 빼듯 거품을 빼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끝까지 부동산 거품을 떠받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저는 왠지 당랑거철의 모습을 보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데 말입니다. 

  

 

 

*우리 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94853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4. 29. 08:19

한 제조업체가 호황기 때 무리한 경영판단에 따라 생산한 제품이 경기가 식으면서 대규모 재고로 남게 됐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들 기업의 재고를 대량으로 사줘야 할까. 말도 안 되는 질문 같지만 현 정부는 며칠 전 ‘4.23 미분양 해소대책’을 통해 이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적어도 건설업계에 한해서는 말이다. 물론 국민경제를 걱정하는 척했지만, ‘강부자 정권’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의 ‘스폰서’인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계에 준 당근이라는 점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지금은 건설업계 지원이 아닌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270개이던 종합건설업체 수는 2001년 이후 1만3000개 수준으로 늘어난 뒤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8년 522개 업체가 부도났고, 2000년대 부동산 호황기에도 매년 150개 업체가 부도났지만 지난해에는 87개에 불과했다. 건설업체들의 평균수주액도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3년 78.8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대대적인 토건 부양책 덕으로 96.4억원으로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정부 부양책과 구조조정 회피로 한계선상에 이른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 지금까지 건설업계 구조조정을 회피하며 오히려 지원에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지금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은 800조원을 넘나드는 가계부채의 위기이지 건설업계 위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규 분양아파트 갈아타기 수요 위주로 DTI규제를 완화했다. 상당수 언론들이 사태를 침소봉대하는 저축은행의 건설업계 PF대출 규모는 11.8조원이다. 전체 예금취급기관 대출액의 1%, 전체 가계부채의 1.4%도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기는커녕 건설업계 부양을 위해 가계 부채를 더 늘려도 된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허황된 ‘건설업계 대마불사’ 논리를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특혜를 남발하면서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는 대통령의 립서비스는 기만적이다. 우리보다 경제상황이 나쁜 미국과 유럽도 금융업계의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금융시스템의 한 축도 아닌 특정 업계를 살린다고 역주행에 열심이다. 

 

그렇다고 이미 대세가 기운 주택시장을 되살릴 수는 없다. 현재 주택거래 침체는 가계 소득 대비 너무 오른 집값의 정상적 조정을 정부가 방해한 탓이 크다. 정상적인 집값 조정을 교란할수록 정부가 내세우는 ‘주택거래 활성화’는 멀어질 뿐이다. 또한 건설업계 구조조정 지연은 시장 수요를 뛰어넘는 주택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얼마 전까지 “부동산 버블이 없다”고 부인했던 정부의 다급함만 노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장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더구나 이번 대책의 재원 부담을 이미 막대한 빚에 허덕이는 공기업에 떠넘겨 정부의 부양 여력도 상당히 소진됐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정부의 막대한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주택시장의 반등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고, 수도권의 주택 가격과 거래량은 다시 2008년 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 45조원이라는 버블의 규모만 더 키우고 말았다. 비대해진 건설업체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 발버둥칠수록 부동산 거품만 커지고 소중한 자원은 낭비되며 지식정보화 시대의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활로만 막힐 뿐이다. 국민은 건설업계의 ‘봉’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4. 28. 09:19

 며칠 전 쓴  "또 미분양 대책, 국민이 건설업계 봉인가"라는 글은 정부 정책이 국민경제 전체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왜 부당하고 위험하며 건설업계에 대한 특혜인지를 설명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미분양 대책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미분양 대책 효과에 대해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전반적 상황: 주택시장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대세하락 흐름에 들어있습니다. 사상 최저금리와 만기대출 상환연장,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건 부양책,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수도권 전매 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 양도세/종부세/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 감면 등 대규모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반등은 6개월에 머물렀습니다. 한 분석기사가 설명하듯이 이미 수도권의 주택 가격과 거래량은 2008년 하반기 수준까지 돌아갔습니다. 특히 아래 <도표1>에서 보듯이 지난해 일시적으로 늘어난 거래량조차도 45조원이라는 가계부채를 동원해 마지막 남아있던 수요를 짜낸 것이었지만, 이제 그나마도 고갈돼 현재 집값 수준에서는 더 이상 거래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가 미분양 대책을 내놓은 것 또한 2008년 하반기의 데자뷰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버블 붕괴를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붕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제 정부의 미분양 대책이야말로 정부 스스로 현재 주택시장의 심각성을 공식 인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에 이어 잇따라 각종 경제연구소들이 대세하락 가능성을 제기한 데 대해 전문연구기관도 아닌 국토해양부가 "버블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속으로는 정부 스스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도표1>

 

(주) 한국은행 및 국토해양부 자료를 바탕으로 KSERI 추정, 작성

 

-이제, 어제 정부 미분양 대책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코멘트해보겠습니다. 어제 발표 내용 가운데 가장 큰 내용은 미분양 매입과 비강남 거주자의 신규 입주 아파트 갈아타기 수요에 대한 DTI규제 완화입니다.

 

-먼저, 미분양 매입은 대한주택보증(대주보)을 통해 3조원어치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해주고, LH공사를 통해서 1조원어치 공공임대용으로 매입하는 방식 두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전자는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이는 쉽게 말해 미분양 아파트를 담보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에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효과가 크지 영구적으로 미분양을 매입해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이는 건설업체 부도를 지연시키는, 사실상 구조조정 지연책의 측면이 큽니다. 이미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크게 지연됐는데 이를 더욱 지연시키고 '좀비기업'들을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를 초래하는 조치이기도 하고요. 다만 3조원어치는 실제 미분양 물량이 현재 20만호 이상이고, 향후 지속되는 공급으로 미분양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코끼리 비스켓 정도일 뿐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한편 LH공사의 미분양 물량 매입 규모가 1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정부의 부양 여력이 이미 많이 소진돼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LH공사는 아래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각종 신도시개발사업과 보금자리 주택사업 등 정부사업에 동원돼 부채가 100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2008년 기준 90조원 수준). 자금여력이 바닥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공공택지 개발 사업도 취소하고 있는 마당에 추가로 미분양 물량 매입을 늘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반면 <도표3>에서 보는 것처럼 대한주택보증은 주택시장 침체기 이전에 부동산 호황기 때 분양사고가 없어 엄청난 순익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주보를 동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주보에 의한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은 건설업계 지원 효과가 상대적으로 단기적이고 미약합니다. 또한 정부가 대주보에 대해 민영화 일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염두에 둔 대주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대주보는 선분양제를 폐지하면 사실상 존재할 필요가 없는 기업입니다.)

 

<도표3> 대한주택보증의 수익/비용 추이

 

-이어 신규 입주 아파트 갈아타기 수요자에 대한 DTI규제 완화에 대해 살펴봅시다. 일부 언론이 '사실상 비강남지역 DTI규제 완화'라고 표현한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주택 잠재수요자에 대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갈아타기 수요에 대해서만 완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또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미분양/미입주 물량을 줄여 건설사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철저히 건설업계 위주의 사고방식인 것이지요. 어쨌거나 상당 부분 DTI규제를 완화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DTI규제를 확 풀고 싶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시기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구전략이 조금씩 가동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IMF마저 버블을 경고하며 기준금리 인상을 권고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할 경우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앞당겨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택 대세하락세가 뚜렷해진 상황이고, 이미 마지막 남은 투기적 가수요까지 지난해 소진해버린 상황에서 이 정도 DTI규제 완화로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이번 조치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만큼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밖에 미분양 매입 펀드 등은 미미한 조치들입니다. 큰 효과도 없습니다. 오죽 시장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면 캠코에 의해 보증을 서도록 하겠습니까. 최근 제가 만난 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국내 대표도 "최근 주택시장 분위기를 생각하면 미분양 매입 펀드에 메리트를 느낄 자본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효과는 시장에 주는 '심리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지속되면 언제든 다시 부양책을 쓰겠다는 시그널을 주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이번 조치는 양날의 시그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정부 스스로 지금 주택시장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공인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시장 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 버블 없다"는 식으로 심리전을 펼쳐오다가 불과 몇 주만에 이런 대책을 내놓을 정도니 "정말 시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면..."이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지요. 어느 쪽의 효과가 클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도 전자의 효과가 후자의 효과를 압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해 정부의 대대적 부양책을 쓴 뒤로도 대세하락 흐름을 막지 못한 것을 이미 확인한 이상 전자의 심리적 효과가 얼마나 먹힐지 의문입니다. 더구나 위에서 설명했지만, 정부가  이미 미분양 물량 매입과 DTI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2008년보다 훨씬 더 제약돼 있다는 사실만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어제 대책 내용을 시장에서 잘 뜯어본다면 오히려 투기심리 위축 효과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첫머리에 말씀드렸지만, 이미 현재 집값과 가계소득 수준에서 대부분의 주택 수요는 이미 고갈돼 버렸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수요마저 지난해에 거의 다 소진해버렸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부양책을 쓴다 한들 버블 붕괴가 본격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막으면 막으려 할수록 지난해 가계부채 45조원을 늘린 것처럼 거품 붕괴의 에너지만 키우고 한국경제가 '삽질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활로를 찾는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또한 그런 활로를 개척하는데 소중하게 쓸 수 있는 정부의 자원만 자꾸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소진하게 될 뿐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지금이라도 부동산 거품이라는 종양을 떼내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건설하는 길로 나서길 바랍니다.

 

 

 

*우리 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94853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4. 26.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