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책연구소인 KDI마저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할 정도고, 어제는 조선일보마저 사설을 통해 무슨 꿍꿍이인지 같은 식의 주문을 했습니다. 또한 금통위원들 가운데 세 분이 가계부채 증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금통위 의사록이 발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기획재정부나 한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여러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낸 가계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작용할 것입니다. 기준금리 인상시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속도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일반인들 가운데는 현재의 저금리가 경제주체들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글에서는 현재의 저금리가 가계 부채 및 이자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구체적으로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알다시피 2004년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펌프질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예대율이 100%를 넘어서자 CD와 은행채를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단기 외화자금까지 차입해 부동산에 펌프질을 한 것은 이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미국발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터지면서 2008년말에는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뛰어올랐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이 5.5%이던 기준금리를 2.0%로 가파르게 인하해 인위적인 시장 저금리 기조를 만들어 경기를 부양했습니다. 그리고 2.0% 수준의 저금리를 15개월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상 최저 금리가 가계 이자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래 <도표>를 참고로 봅시다.

도표를 보면 정부의 저금리 기조에 따라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함께 하락하다가 은행들이 자금난에

2005년 중반 이후부터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은행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예금금리가 더 가파르게 상승해 예대마진이 지속적으로 줄어 2008년말 예대마진이 급감했습니다. 자금 확보에 혈안이 된 은행들이 고금리 특판 등을 통해 예금 유치에 나서면서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한 결과입니다. 그러다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이 같은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정부의 인위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한숨 돌린 은행들은 대출금리는 다시 조금씩 올리는 반면 예금금리는 지속적으로 낮춰 예대마진을 확대합니다. 이를 통해 연체율 증가 등으로 인한 부실을 털어내고 자금난을 극복하는 한편 수익성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금리는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가계들은 어땠을까요? 언론에서는 주택담보대출자 등 주로 빚을 진 가계 부담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사들이 많은데, 예금을 가진 가계들도 많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양쪽의 비중이 다를 뿐 금융자산과 부채를 함께 가진 가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표현과 분석의 편의상 부채 가계와 예금 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 상에서 개인 부문 금융부채는 2009년 3분기 현재 875조원, 개인 부문 금융자산 가운데 이자수익이 발생하는 예금액은 895조원 정도로 비슷합니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금융부채의 급격한 증가로, 특히 2005년 이후 금리의 상승으로 대출이자와 예금이자가 동시에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부채를 많이 진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 반면 금융자산이 많은 가계의 예금이자수입도 급증한 것입니다. 이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촉진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자기 조절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경제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인위적으로 기준금리를 억눌렀습니다. 그 결과 대출이자부담과 예금이자 소득이 동시에 확 줄었습니다. 물론 저금리 상황 아래에서 은행이 상대적으로 대출금리를 더 높게 유지한 결과 대출이자 부담이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습니다.

 

이 경우 부채 가계와 예금 가계의 이자소득에는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요? 2008년 말 대출이자부담은 연환산 63조원이었다가 이후 금리 인하로 연환산 45조원 전후 수준으로 떨어져 연간 약 18조원이 감소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인위적인 저금리로 18조원의 보조금을 준 꼴입니다. 반면 예금가계는 1008년말 38조원 가량의 이자소득을 올리다가 2009년에는 30조원으로 8조원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예금가계에 8조원을 과세한 꼴이 됩니다.

 

이것은 연간 기준이고요. 이미 15개월이 경과했으므로 약 부채 가계에는 22.5조원의 보조금을 주고, 예금 가계에는 10조원 가량 과세를 한 꼴입니다. 만약 현 정부가 올해말까지 기준금리를 현 상태대로 유지한다고 하면 각각의 수치는 36조원, 16조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를 냉철하게 따져보면 현재의 저금리 기조는 사실 경제적 형평성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일해 번 소득을 저축해온 가계에는 오히려 과세를 하고, 이렇게 벌어들인 세금으로  무리하게 빚을 내 부동산 투자 등을 행하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큰 위기를 몰고온 가계에는 오히려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꼴인 것입니다. 또한 외형경쟁 확대 과정에서 무분별한 가계 대출로 국민경제 전체에 큰 위기를 가져온 금융기관들에게도 저금리 기조를 통해 급감했던 예대마진 수입을 다시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확대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를 고려하면 일반 국민들이 저금리로 인해 떠안는 부담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이 같은 불공정한 상황을 용인할 수 있을까요?

 

사실 경제위기라는 핑계를 대면서 매우 낮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상당 부분은 바로 부동산 대출을 잔뜩 진 가계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2008년말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가 역설적으로 너무 극심한 경제위기 때문에 붕괴가 지연됐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거꾸로 지금의 사상 최저금리 하에서도 수도권 주택시장이 붕괴되고 있는 마당에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지금의 수도권 주택시장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위험한 경제학>에서 종부세/양도세/상속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 감면과 연간 수십조원의 추가 토건 부양책, 저금리 유지 및 가계대출 만기 연장,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각종 직간접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현 정부 임기 안해 300조~400조원 정도로 잡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2008년 하반기의 DTI규제 완화로 지난 한해에 늘어난 가계 부채 45조원과 부동산 펌프질 과정에서 무리한 외화자금난에 시달린 은행들을 대신해 한은이 갚아준 외화 차입금, 그리고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제도적 부양책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부양을 위해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원을 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위에서 본 것 같은 심각한 경제적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지도 못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소진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이명박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리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듣고 있으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현 정부의 엄청난 부동산 부양책을 보지는 못하고, 현 정부 내에서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난다고 이명박이 집값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니 말입니다. 지금 집값은 이명박 정부 '때문'이 아니라 이 정부의 사활을 건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백보를 양보해 지난 일은 경제위기 때문이었다고 치더라도 이제 정부 주장대로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다면 이 비정상적인 상황은 단계적으로라도 탈피해가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향후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가가 앙등할 경우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버블이 일순간에 터져버리는 것을 막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하든 현재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어느 정도 극도의 위기감이 가라앉은 지금 상황에서라도 풍선의 바람구멍을 열어 바람을 빼듯 거품을 빼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끝까지 부동산 거품을 떠받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저는 왠지 당랑거철의 모습을 보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데 말입니다. 

  

 

 

*우리 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94853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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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4. 29. 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