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MBC PD수첩 김재영 PD가 다년간의 부동산 문제 관련 취재를 바탕으로 출간한 동명의 책이 촉발한 현상이다. 이 책은 이미 인터넷서점 예스24 집계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들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 책을 소개하고 하우스푸어 관련 기획들을 펼치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2006년 이후 부동산 고점기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으나 집값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자 부담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계들을 말한다. 이미 수도권에서만 줄잡아 10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우스푸어가 부동산 버블 붕괴 시대의 화두가 될 공산이 커보이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화두라면 88만원세대가 있다. 이 또한 우석훈박사가 쓴 동명의 책에서 비롯됐다. 알다시피 저임금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시기에 평균 월급 88만원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든 10대, 20대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사이에 공통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묘한 관계를 본다. 우선, 공통점은 이들 모두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라는 점이다. 하우스푸어야 그렇다 치고, 88만원세대가 부동산 거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명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일면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경제 영역은 한껏 비대해진 반면 생산경제 영역은 침체 일로를 겪었다.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기보다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가계도 무리하게 빚을 빌려 주택 투기에 가담하면서 은행에 이자내는 월세생활자로 전락해 씀씀이를 줄였다. 그렇게 빚어진 만성적인 내수 침체는 다시 제품과 서비스 수요를 줄여 생산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 이 같은 부담을 88만원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88만원세대는 치솟은 집값 때문에 원룸이나 고시촌, 심지어 쪽방을 전전하게 됐다. 결혼해서 애 낳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돼버렸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는 집값, 땅값은 금값이 되는 반면 사람 값은 똥값이 되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가 88만원세대였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88만원세대가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동산 거품의 한 산물이라고 본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 가담 여부에서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하우스푸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 투기 붐에 가담하거나 편승한 사람들이다. 물론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분양 광고 수익을 노린 무책임한 선동보도의 책임도 크다. 그렇다고 무리한 탐욕을 부린 가계들의 자기 책임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세대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50,60대 부모세대와 뒤늦게 뛰어든 30,40대가 하우스푸어의 주축이다. 반면 88만원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의 불똥을 맞은 경우다.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재빨리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거론하고 있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다. 마음 같아서는 필자도 그 정도 선심은 쓰고 싶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막대한 국가채무 형태로 자식세대의 부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그 부담을 늘리게 될 공산이 크다. 온갖 사고는 기성세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이미 최대 피해자인 자식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게 자식 가진 기성세대가 할 짓인가.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 취약계층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될 DTI규제 완화 조치를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선분양제와 같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부터 고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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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8. 6. 07:16

지금 국내에는 경착륙하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논리로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는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으로 연착륙을 바라는 주장이라면 필자도 동의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연착륙론이 오염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연착륙론은 주로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재벌계 연구소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 신문들에서 주로 내놓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착륙론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연착륙론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론에 가깝다.

 

원래 의미의 연착륙을 생각해보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에 비유하자면, 바늘로 쿡 찔러서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 경착륙이라면 풍선의 바람 구멍을 열어 서서히 바람을 빼나가는 것이 연착륙이다. 따라서 연착륙론은 부동산 가격의 하향 조정을 점진적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연착륙론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거품이 좀 빠질만하면 거품을 다시 불어넣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2008년말 이후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쓴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의 근거도 연착륙론이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더했고, 이미 상당수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4년 주택 시장 침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까지 지속됐던 2000년대 1차 부동산 폭등기가 일단락되자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경착륙은 안 된다연착륙론으로 포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그 결과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을 투톱으로 투기 과열지구 해제 등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또한 판교신도시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건설업계를 먹여살리기 위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짐으로써 수도권 중심의 2차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결국 지금까지 연착륙론은 부동산 거품 빼기를 계속 미루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이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원을 탕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품은 계속 커져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 규모도 커지고, 가계 부채는 늘어왔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워 한국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2004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 당시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건설경기 부양론에 휘둘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뺐더라면 지금 같은 위기감에 시달렸을 것인가. 따라서 불순한 속내를 가지고 연착륙을 부르짖어온 사람들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일 버블 붕괴서 배울 것이라는 칼럼에서 주장한 연착륙론또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칼럼주장대로라면 일본이 “89년에서 90년에 걸쳐 금리를 2.5%에서 6%로 수직상승시킨 것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2008년말 주택 가격 급락 현상이 일어나자 5.25%이던 기준금리를 2%라는 사상 최저금리로 낮췄고,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과 DTI 및 재건축 규제 완화, 부동산 세금 감면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 물량 매입,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토건 부양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지난해 9 DTI규제를 다시 묶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기준 금리 인상이나 지난해 DTI규제 재도입 또한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빠르게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이미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마지못해 취한 고육책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경제 정책을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용해 갈 데까지 가보길 원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게는 성에 안 찰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너무 조급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민경제와 일반가계를 볼모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속내가 보이는 느려터진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일보 스스로 몇 달 전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한국 정부는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기보다는 여전히 부동산 버블을 방치하는 기조에 가깝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대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조장책으로 시장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용수철도 수축돼야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법인데, 현 정부는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이 되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가로막고 있다.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용수철은 끊어져 복원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건설업계를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으니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이미 고갈된 수요 이상의 공급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이미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도 수급 조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좀비처럼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실 채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바닥을 친 뒤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잠재 수요자들을 계속 무리하게 빚을 내 사게 함으로써 결국 주택시장 회복을 주도할 미래 수요를 고갈시키게 된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당겨써버림으로써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키우는 반면 주택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과 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현재 건설업계 및 부동산업계 및 이들의 대변지격인 기득권 언론들이 주문한 결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정확히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전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지연시킨 탓에 일본의 주택시장이 자연스러운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컸지만, 초기에 각종 토건부양책으로 재정을 탕진하고,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수요 대비 과도한 주택 공급을 지속해 부동산 시장이 복원력을 잃어버린 가운데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황들이 2010년대 한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자고 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어오른 상황에서도 연착륙운운하며 추가 부양책을 주문하는 세력들이야말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 경착륙을 넘어 한국경제의 불시착을 유도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희희낙락했던 건설업계와 금융업계, 그리고 아파트 분양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게 돌아갈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올 충격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들은 일반가계와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이들 좀비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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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8. 3. 09:10

축구장에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어느 순간 관중석 앞쪽에 앉은 관중들이 경기를 좀 더 잘 보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차례로 모두 일어서야 했다. 일어선 앞 사람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축구장 관중들은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불편하게 서서 봐야 했다. 모두가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익히 잘 아는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다. 이 예화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동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화다.


그런데 2000년대 국내 부동산 상황은 합성의 오류가 난무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개인이 부동산 시장에 차례로 뛰어든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옆의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또 다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값이 더 뛸까 불안해서 거액의 빚을 내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다. 더 나중에는 투기 광풍이 불어 ‘묻지마 투자’까지 횡행했다. 그렇게 해서 수도권 아파트 값을 평균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가계의 상당수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한국경제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생산경제에 가야 할 돈은 급격히 위축됐다. 부동산 비용 상승으로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인상된 임대료를 내느라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은 열 사람 쓸 것을 다섯 사람만 쓰거나 열 사람을 다 쓰되 저임금으로 부리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이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실업 급증과 비정규직 증가로 나타났다.


빚을 내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외환위기 직후 25%에 육박하던 가계 순저축율은 2008년말 2.5%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과거 은행에서 이자수입을 타서 쓰던 가계들이 이제 은행에 거꾸로 매월 수십만~수백만원씩을 월세 내듯 꼬박꼬박 이자로 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시중은행들은 국내 최대 월세 임대사업자들이 됐다. 1,2백만원씩을 은행 이자로 내고 난 가계들은 그만큼 소비를 줄여야 했고, 이는 지속적인 내수침체로 이어져 더더욱 생산경제를 위축시켰다. 정부와 상당수 언론은 줄곧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에 따른 향후 차익 실현 기대감으로 현재 소비가 는다는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들먹였다. 하지만 부동산 부채 증가로 인한 내수 위축 효과는 자산효과를 압도했다. 이 때문에 지표상으로는 GDP성장률 4~5%를 오르내렸지만, 서민경제는 항상 침체기였다.


축구장의 바보들 예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축구장에서 모든 관중들이 다 일어선다고 모두 같은 시야를 확보하는 게 아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어린이는 일어서도 경기를 볼 수 없다. 심지어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부동산 시장의 원초적 불공정성은 훨씬 컸다. 우선, 주택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심했고, 평형별로, 가격대별로 편차가 심했다. 세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없던 젊은 세대에 비해 자금력과 부동산 투자 노하우까지 갖춘 기성세대는 부동산 투자로 덕을 봤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부동산 거품으로 일자리와 소득까지 줄어든 상태에서 집값까지 뛰자 결혼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 돼버렸다. 계층별로 양극화도 심해졌다. 부동산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10년 이상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불과 1~2년 만에 벌기도 했다. 소득 양극화보다 자산 양극화가 훨씬 더 극심해졌고, 집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근로의욕 감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덕을 본 것인가? 물론 부동산 가격이 올라 고가 주택 보유자와 투기성 다주택자를 합쳐 5% 정도로 추정되는 부동산 부자들은 큰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한 채가 고작이다. 이제 수도권의 웬만한 지역은 대부분 집값이 올라 이제 싼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 세대는 많은 돈을 주택에 깔고 앉아 소비를 줄여야 한다. 2억원이면 될 집을 5억원에 사게 되면 3억원 만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쓸 돈이 줄어든다. 사실상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자녀가 출가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 신혼 집 장만을 도와주는 것을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도권의 웬만한 평형 전세가 2억원에 이르고, 매매가가 4,5억원을 쉽게 넘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머리를 싸매지 않겠는가? 자녀들 집 장만 비용이 커지면 자신들의 노후 비용은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이치다. 자녀들의 집장만을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자식들이 높은 집값을 감당하느라 등골이 휘는 모습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처럼 부동산 거품은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국민 대다수를 사실상 더욱 가난하게 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가장 확실하게 서민들을 말살하는 게임이자,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게임이다. 부동산 부자 5%를 승자로 만들기 위해 선량한 국민 95%가 패자가 돼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도 집을 한 채라도 가진 상당수 국민들이 정부의 거듭된 정책실패와 기득권 언론의 선동에 휘둘려 집값 올리느라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자산양극화는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정치적 계급투쟁 양상까지 띠고 있다. 주택 소유여부에 따라 계급적 이해를 달리하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의 계급투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집값의 하향 안정을 바라던 사람들도 일단 거액의 빚을 지고 집을 산 뒤에는 180도 달라졌다. 거의 전 재산이 걸린 주택 가격이 올라주지 않으면 가계경제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변화가 정치적 태도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더해 부동산 투기 조장꾼들의 선동과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성 언론들의 왜곡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교’의 신도가 돼버렸다. “2004년 이전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를 외치던 여론이 다수였으나, 이후에는 부동산 규제 완화 여론이 다수가 돼버렸다”는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처럼 이를 생생히 입증하는 말도 없다.


집값을 둘러싼 계급투쟁은 급기야 정권을 교체하는 숨은 원동력이 됐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바라는 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권을 빼앗겼다. 임기 내내 건설족 정치인과 관료, 건설재벌, 그리고 기득권 언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운데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정책실패를 거듭했던 탓이다. 반대로 부동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은 현 대통령인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재임 기간 동안 모두 32개의 뉴타운을 지정해 서울 강북 집값을 거세게 밀어 올렸다.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7.5%를 한꺼번에 개발하게 한 탓에 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전세난 등 서민 주거난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또한 경부 대운하 등 각종 개발 공약과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 등을 통해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메시지로 집권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현 정부에게 부동산은 재개발 철거민들을 ‘법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권력살인을 하는 것조차 합리화할 만큼 신성시됐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수준을 넘어 ‘강부자 정권’ 자신들과 정치적 기반인 건설업계 및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온갖 특혜성 정책들을 남발했다.


이렇게 볼 때 부동산 거품을 꺼뜨리지 않고서는 절대 서민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 거품 부양에 목숨 건 현 정부는 이미 태생부터 최악의 반서민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말끝마다 ‘서민 정부’임을 내세우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동원된 온갖 경기 부양책의 명목도 대부분 서민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같은 것이었다. 현 정부가 쏟아내는 수사나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서민들을 우선 배려하라”는 주문을 쏟아내고 재래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사먹기도 했다. 새벽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신빈곤층’ 가정 어린이와 통화하며 울먹이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을 접할 때마다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실제 정책은 특권층을 위한 기득권 위주로 운용하면서 서민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생색내기 쇼라는 게 너무나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서민가계에 돌아가는 혜택은 늘 쥐꼬리만했다. 오히려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는 등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의 지원과 보장을 줄이기까지 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마트의 상권 잠식 때문에 한탄하면 “옛날에는 (국민들이) 죽어지냈는데 요즘에는 할 말 다한다”는 식으로 윽박질렀다.


현 정부는 ‘친서민’을 부르짖지만, 실제 그들의 정책 속에는 서민이 없다. 말끝마다 친서민을 내세우지만, 정책은 늘 반서민이었다. 당장 미국 부시행정부가 실시했던 감세안을 흉내내 현 정부가 실시한 감세안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안 혜택의 70%가 중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고 떠벌렸지만 실제로는 감세 혜택의 80%가 철저히 부유층과 매출 1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돌아간다. 더구나 현 정부는 감세 규모가 5년간 100조원에 육박하는 사실을 숨기고 36.5조원이라고 지금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한 해에만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 GDP 대비 5%를 넘는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부가가치세와 에너지세, 주세 등 간접세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간접세 비중이 높아지면 역진성으로 인해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같은 감세안에 대한 민심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번에는 ‘친서민 세제’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분칠을 시도하고 있다. 1조 9500억원짜리 각종 세제 혜택을 내놓았지만, 기존에 시행되던 것을 연장하거나 이미 예정됐던 방안들을 제외한 감면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친서민임을 내세우기 위한 어설픈 짜깁기 임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친서민’을 떠벌일 이유도 없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친서민 정부인 것인데, 이 정부는 자신들이 제 발 저리니 말끝마다 친서민이라고 떠벌일 뿐이다.


결국 현 정부가 말하는 ‘친서민’은 자신들이 ‘친재벌’과 ‘친부유층’을 눈속임하기 위한 사기술에 불과하다. 말로는 서민 경기부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를 실시해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4대강 강바닥에 2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으며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과 소수 재벌 건설업체들에게 온갖 퍼주기를 일삼으면서도 현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피해본다’고 선량한 서민들을 세뇌시켰다. 당장 숨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건설족 정부’에 엉겨 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아니면 집값이 오를 때 빚을 내 집을 여러 채 사들였다가 이제는 ‘집값을 올려 달라’고 댕댕거리는 다주택 투기자들이 서민이라는 말인가.


오히려 현 정부 들어 서민 경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공동체의 유대는 깨지고 있으며 각 개개인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해지는 ‘만성불안사회’가 되고 있다. 기득권에만 유리한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 편법 승계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이 사실상 법의 지배를 벗어난 특권세력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고 집값이 폭등해 결혼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다. 국제중과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을 통해 사교육비를 늘리는 정책을 만들고 ‘사교육비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파렴치한 정부다. 수십 조원의 돈을 강바닥에 쳐바르면서도 가뜩이나 빈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외면하는 정부는 결코 친서민 정부일 수 없다. 특권층의, 특권층에 의한,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 정부일 뿐이다. 

by 선대인 2010. 8. 2.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