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후 아파트 신규 분양시장과 기존 주택시장이 동시에 침체로 접어든 데 이어 최근으로 올수록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세 상승’을 부르짖던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들이나 언론들도 이제는 이구동성으로 주택시장 위기를 합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언론에는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는 기사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대세상승’을 부르짖다가 올 초에는 ‘상저하고’라며 하반기에는 집값이 뛴다고 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하반기까지 내리 침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 하반기가 기회”라고 선동하는 이들도 있고, 꼭 올해가 아니어도 내년쯤에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아직은 필자의 역할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독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이번 글에서는 향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해보기로 하자.
우선 향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현재 주택시장이 어떤 국면에 와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보통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은 보통 10~20년 정도의 장기 사이클을 그린다. 대략적으로는 부동산시장의 주기가 약 18년 정도로 수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택시장 사이클의 흐름으로 볼 때 수도권 주택시장 상황은 여전히 부동산 버블 붕괴의 초기 국면에 놓여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 한강이남 11개 구의 아파트 실질가격 추이를 나타낸 <도표 1>을 보자. 많은 이들이 집값을 생각할 때 명목가격 추이만 생각한다. 그래서 집값은 늘 오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가격 지수 추이를 살펴보면 사정은 사뭇 달라 보인다.
<도표 1> 서울 강남 11개구 아파트 실질가격 추이. 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국민은행이 주택 가격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한국은 크게 두 차례의 부동산 버블기를 겪었다. <도표 1>을 보면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1987~1991년 5월) → 하강(1991년 6월~1998년 11월) → 상승(1998년 12월~2006년 말) → 하강(2007년 초~ 최근)의 파동을 그리고 있다. 즉, 부동산 버블과 버블 붕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2009년 상반기에 집값이 국지적으로 반등했다고는 하나,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2차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약한 흐름일 뿐이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호가 위주 지수다. 집값이 오를 때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만, 집값이 내릴 때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흐름을 보면 이미 대세 하락 흐름에 들어 있음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 연구소는 호가가 아닌 국토부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수도권 수천 개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가격패턴을 산출해 보았다. 그 결과는 아래 <도표2>와 같다. 이를 보면 호가와 실거래가의 갭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2006년 말에서 2007초의 고점대비 서울 강남3구의 경우 이미 11.6%, 수도권 도시의 경우 25~30% 가량 떨어진 상태다. 명목가격으로 이만큼 하락했는데, 위에서 본 실질가격으로 환산하면 훨씬 더 많이 떨어진 셈이 된다. 2006년 이후 국내 누적 물가상승률은 약 15%에 이른다. 따라서 아파트 실질 가격으로는 강남 3구의 경우 26.6%, 수도권 도시들의 경우 40~45% 가량 떨어진 셈이 된다.
<도표 2> 수도권 주요 지역 아파트 가격 추이 비교.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도표2>의 실거래가 패턴 추이는 올 4월 초까지 신고된 아파트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미 석 달 가량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하락폭이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는 주택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통계인 거래량 지표를 살펴보자.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부터 집계됐으므로 그 이전의 거래량은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1996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자체적으로 추정해보았다. <도표 3>은 가계부채와 아파트 거래량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증감에다 주택 가격 수준을 감안해 아파트 거래량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도표 3>에서 2006년 이전 부분은 바로 이렇게 도출한 추정에 의한 거래량 추이다. 거래량 지표를 보면 1차 폭등기 때는 전국적으로 집값이 뛰면서 전국 아파트 거래가 활발했다. 2차 폭등기 때는 수도권에서만 집값이 뛰었고 이미 집값이 많이 뛴 상황이어서 거래량이 1차 폭등기 때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하반기의 거래량은 1차 폭등기 때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때 가격과 거래량이 단기간에 폭증했음을 알 수 있다.
<도표 3> 전국 아파트 거래량 및 가격 추이 (1996.1Q~2010.1Q).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2차 폭등기 이후인 2007년부터는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국토해양부 실거래가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까지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집값이 일정하게 떨어졌는데(국민은행 가격지수로는 소폭의 조정기로 나오지만 당시 실거래가가 집계됐다면 상당폭 떨어져서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거래량은 2003년 1분기부터 급감했다. 거래 침체가 지속되면서 빚을 지고 산 사람들이 몇 분기 후부터 초조한 마음에 집값을 낮춰 내놓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런 현상은 2006년 폭등기 이후 거래량 감소에 따른 집값 하락이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것과도 마찬가지다.
이로 미뤄볼 때 거래량 감소가 집값 하락에 1~3분기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어떨까? 2008년 말 집값 급락 후 집값이 죽 빠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부동산에 사활을 건 현 정부는 막대한 부동산 투기 선동책을 동원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쳤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거래량이 1·2차 폭등기보다 매우 미미한 수준임을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거래량 침체가 2분기 이상 지속된다면 가격은 가파르게 급락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은 그 전초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이 여전히 전초전에 가깝다는 사실은 아래 <도표4>에서 일본과 미국 부동산 가격과 거래량 추이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거래 침체와 가격 하락이 동반되면서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올랐던 기간에 못지않은 장기간의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도표 4> 일본과 미국의 부동산 거래량 및 가격 추이.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런 가운데 7월 9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출구전략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조차도 “경기 본격회복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주택 가격은 오른다”고 선동하지만, 현재 경제와 주택시장의 구체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무식한 발언이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은 가계부문에서만 340조원의 가계 부채를 쌓아올려서 만든 악성 거품이다. 가계 부채 위에 쌓아올려진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한 조치가 사상 최저금리를 16개월 동안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와 경기 부양을 위한 유동성이 급증한 상태에서도 주택 가격은 이미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가 오르면 주택 가격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강부자 정권’조차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동산 버블의 붕괴 압력은 그만큼 큰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미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고 한다. 부실채권을 털기 위해 대규모 상각과 매각을 단행했는데도 가파른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거품을 호가로 아무리 떠받치려 해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 거래가격이다. 이미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 고점 대비 20~30%씩 집값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고 빚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가계들부터 무너지면서 은행 연체율도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부동산 붐에 편승해 무리하게 사업을 펼쳐온 건설업계의 줄도산 위기로 번지고 있다. 120조원이 넘는 PF대출을 고리로 금융권의 부실 채권은 더욱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저축은행의 경우에는 PF대출 부실이 심각해져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에 다시 나섰다. 우리은행을 시발로 해서 시중은행에서도 PF대출 부실 여파가 불거지고 있다. 더구나 저축은행의 경우에는 2006년 이후 발생한 주택대출 31조원 가량 역시 부실화될 위험에 바로 노출돼 있다.
더구나 지금 언론에서 제대로 거론되지 않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도 시설운영자금 등의 명목으로 빚을 내 2005년 이후 부동산에 투자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중소기업 대출은 445조원에 이른다. 특히 2006년 이후 4년 동안에 발생한 대출만 216조원에 이른다. 관련 세부통계가 없어 정확한 실상 파악은 어렵지만, 이 가운데 적지 않은 대출이 부동산관련 대출로 추정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소기업의 자금수요가 경기변동에 연동하기보다는 부동산시황에 연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사실 이들 기업에 대한 부동산 대출은 이미 2008년 말부터 부실해지고 있었지만, 금융기관들이 추가 대출을 일으켜 연체를 막아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수면 아래에서 부실 채권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부실 채권들을 미루고 감추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는 그 같은 부실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주택시장에서 본격적인 충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구나 2012년 이후로는 인구 감소와 2기 신도시의 입주물량 대량 공급으로 이미 가라앉고 있는 주택시장을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2010년대 한국의 주택시장은 저출산·고령화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격히 진행되는 만큼 그 충격 또한 어느 나라보다 깊고 클 것이다.
그런데도 근시안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정부와 정치권은 그에 대한 전략적 대비가 부실한 상태다. 오히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빼기보다는 ‘부동산 연착륙’이라는 명목 아래 오히려 건설업체의 정상적 시장 퇴출을 지연시키고 부실 은폐를 방조하고 가계 부채 증가를 부추겼다. 단기적 충격을 줄이겠다는 욕심으로 주택시장의 가격 조정을 지연시키면 시킬수록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는 커지고, 주택시장의 침체는 길어질 뿐이다.
보통 10~20년 정도의 장기파동을 그리는 주택시장의 사이클은 주식시장처럼 짧지 않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심하고 오랜 기간 지속됐던 만큼 거품 해소 기간도 그만큼 심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것이 순리다. 그런 주택시장 사이클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겨우 머리에서 어깨 정도로 내려온 수준이다. 일시적 기복은 있겠지만 집값은 아직도 장시간에 걸쳐 발바닥까지 내려갈 일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집값이 싼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역발상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의 역발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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