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공제 폭탄? 억울하지만 큰 방향은 맞다고 이른바 진보쪽의 조세 전문가라는 분이 쓰셨네요. 

http://m.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318


제게는 복지국가라는 도그마에 빠져서 한국 조세구조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전형적인 글로 보입니다. 


길게 쓰는 건 연구소 이벤트용 <경제전망보고서> 쓰느라 시간이 없어 나중으로 미루고 몇 가지만 짚자면,


-한국에서는 근로소득세 안에서의 조세 형평성 문제보다 세목간의 형평성 문제가 훨씬 큽니다. 예를 들어, 법인세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관련 세금에서 걷어야 할 세금을 제대로 안 걷고 있는 문제가 훨씬 크다는 거죠. 그런데 이들 세금은 대부분 부유층에서 걷어야 하는 세금. 이들 세금은 잘 안 걷으면서 근로소득세 안에서만 형평성 맞추자고 하면 귀결은 봉급생활자 부담만 늘리는 세금증세가 될 수밖에 없죠. 


-근로소득 안에서 비과세나 공제 혜택에서 고소득층이 혜택을 많이 받는다고 따지는데, 틀리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비과세나 공제, 감면(이를 전문적으로는 조세지출이라고 부릅니다)는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되기에 가능하면 비과세감면 등은 줄여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비과세감면 혜택의 귀착 정도를 보면 그나마 근로소득세 내의 공제 혜택이 소득 계층간에 대체로 골고루 돌아가는 편입니다. 법인세나 종합소득세는 극소수 대기업이나 고소득자가 비과세감면 혜택의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구체적으로는 2010년 기준 법인세 비과세감면 혜택의 약 40%(2조 9400억 정도)가 상위 44개 대기업에, 그리고 종합소득세 비과세감면 혜택의 46.5%가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자의 0.006%에 불과한 3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근로소득세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많은 중산층 서민 계층도 이런 혜택을 받습니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소득 2000만~6000만원 사이의 근로자들에게 혜택의 약 66.9%가 돌아갑니다. 비록 근로소득세도 상대적으로 고소득자가 많은 혜택을 받기는 하지만 법인세나 종합소득세와 같은 극단적인 고소득층 편중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나마 조세지출상의 형평성이 가장 높은 세목입니다. 그런데 다른 비과세감면 혜택의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지적하거나 시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지금 정부가 하듯이 근로소득자 공제 혜택만 줄이자고 하면 결과적으로 그게 조세 형평성에 기여하게 될까요? 


-비과세감면 혜택과 관련해 더 이야기하면 이명박정부 5년 동안 법인세와 소득세에서 엄청나게 비과세감면 혜택을 남발했습니다. 그 가운데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귀착된 금액만 최소 30~40조는 될 겁니다. 근로소득자들 공제 혜택은 오히려 거기에 비하면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이려는 시도가 계속됐습니다. 그 귀결이 이번 연말정산 폭탄으로 돌아온 것이고요. 


-제가 말하는 건 납세자연맹처럼 무조건 세금 늘리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한국 사회의 조세현실을 인식하지 않고, 그냥 복지국가라는 이념을 쫓아서 복지를 위해 증세하는 방향이면 무조건 다 옳다는 식의 주장 역시 문제입니다.


-이른바 진보라는 분들이 증세를 참 쉽게들 이야기하는데, 나보다 훨씬 잘 사는 사람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그나마 낸 세금들이 우리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보다는 4대강사업처럼 엉뚱한 곳에 탕진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는데 증세에 쉽게 동의한다고요? 제가 볼 때는 너무 순진한 발상입니다.


-특히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자본"에서 잘 보여줬지만, 최고소득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자본소득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부동산 등 자산소득이고요. 그래서 피케티도 자산소득, 그리고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강조하는 겁니다. 흔히 버핏세라고 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근로소득에 비해 형편없이 세율이 낮은 부유층의 자본이득에 대해 과세하자는 거고요. 그런데 어찌 우리 나라에만 오면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이야기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쑥 들어가고 근로소득자들 형평 맞추자는(현실에서는 진짜 부유층과 부자들 세금은 늘지 않고,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의 세금 부담 증가로 귀결되는) 좁디좁은 범주 안에서만 이야기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정과세와 엉뚱하게 탕진하는 세금을 제대로 된 곳에 옮겨서 쓰는 재정지출개혁이 전제돼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증세도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소득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나라에서 무작정 증세를 하면 그게 정말 증세가 될까요? 제가 볼 때는 이번 연말정산 파동처럼 사실상의 서민 증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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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5. 1. 21. 07:04

전세난이 심각하다. 그런데 정부는 월세 대책을 내놓았다. 왼쪽 다리가 가렵다는데 오른쪽 다리를 긁는 셈이다. 정부 논리는 이렇다. 전세수요가 월세시장으로 이동하면 전세가를 낮출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주거비가 높지 않은 곳에서도 대략 1억원 보증금에 월세만 70만~80만원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식이라면 주거비가 조금 더 높은 서울 강남 같은 곳에서는 보증금 2억원에 월세만 100만원 넘을 수도 있다. 이걸 중산층을 위한 임대아파트 정책이란다. 전세로 살다가 월세로 옮기면 주거 부담이 갑절 이상 높아진다. 이를 선택할 중산층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지금의 전세난은 정부가 집값 떠받치기를 지속하면서 만들어낸 전세난에 가깝다. 정부는 잔뜩 오른 전세가가 무슨 문제냐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다. 고작 대책이라고는 ‘빚내서 집 사라’며 전세 세입자를 매매시장 쪽으로 토끼몰이하느라 바빴다. 전세시장 안에서도 집주인들이 높여 부르는 전세가를 전세자금대출 등으로 세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돈풀기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전세난의 핵심이 보증금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전세’의 부족 때문인데도 이를 해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빚을 잔뜩 진 집주인들에게 최대한 ‘버티라’는 신호를 주며, 이들이 정부 부양책과 저금리에 기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도록 하는 바람에 전세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번에 나온 대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동안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크게 완화해준 전세시장이 가급적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는 게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이다. 그런데 기업들로 하여금 민간 임대아파트를 왕창 지어서 월세 전환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세 세입자들을 매매나 월세 쪽으로 ‘토끼몰이’해서 어떻게든 집값을 떠받치고 다주택자나 건설업자들의 이익을 챙겨주고자 할 뿐이다.


이번 대책에서도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는 택지, 세제, 자금 등 전방위적 지원책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임대료 상한선 5% 제한과 8년 임대 지속 조건 외에 거의 아무런 공공성도 확보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초기 임대료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고, 세입자도 기업들이 마음대로 골라 받을 수 있게 했다. 공공성도 거의 확보하지 않은 채 건설기업들에 특혜를 주겠다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특히 민간 건설업자가 제안하면 그린벨트 지역까지 풀 수 있도록 한 조처는 심히 우려스럽다. 이건 건설업자나 자산가들이 땅 사놓고 개발하는 식으로 투기를 버젓이 할 수 있다. 그린벨트 투기 조장책에 가깝다.


정말 필요한 건 공공임대주택 확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5% 수준으로 10~30%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 한국 사회의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추세나 1인가구의 증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높은 주거비 부담 등을 고려하면 공공임대주택이나 협동조합형 주택 등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정말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전세가를 안정화하고 싶다면 과거 서울시가 공급한 장기전세(시프트)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고, 높은 경쟁률까지 보였다. 또한 세입자에게 매우 불리한 임대차시장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 세입자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등록하게 하고 적절한 수준의 임대소득세를 물리는 한편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내팽개치고 이번처럼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의 민원을 정책이라고 포장해서 내놓는 한 서민 주거가 안정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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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5. 1. 20. 09:06

생각해보면 나는 천성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패거리에 속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연, 지연 이런 거 따진 적 없고 그런 걸 계기로 한 모임에 잘 나가지도 않는다. 심지어 지역 연고의 축구팀이나 야구팀도 특별히 응원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유학 다녀온 학교 동문회에도 거의 나가본 적이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을 따로 만나긴 하고, 워낙 희귀한 성씨이다 보니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소규모 종친 모임에는 가끔 나가긴 한다. 그렇다고 그 모임을 계기로 어떤 다른 걸 도모해본 적 없고, 그냥 편하게 떠들다 온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보잘 것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랐고, 특별히 어떤 조직이나 인맥의 도움 없이 살아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대신 그런 조직이나 소속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가치나 지향을 기준으로 살아왔던 편이다. 그렇다고 나의 가치가 이념이나 추상적 구호 수준에 머물지는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분석해보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내 가치 체계를 정립하고 책 출간 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왔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특정 정파나 진영 논리에서 생각하거나 어떤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건 익숙하지도 않고, 매우 불편하다.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조직에 몸 담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떤 조직에서도 큰 미련 없이 떠나왔던 것 같다. 스스로를 진보라거나 보수라고 생각하고 규정해본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야권이거나 진보로 분류된다고 해서 비판할 걸 비판하지 않은 적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이거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호평해주는 것이고, 그게 아닌 것 같으면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정파적 관점이나 진영 논리, 또는 특정 이념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지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 


앞으로도 나라는 사람은 계속 지금까지처럼 살게 될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가끔이지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나와 보는 관점이 다른 분들도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좀 이해해주면 좋겠다. 어쨌거나 구체적 데이터와 분석을 근거로 한 목소리는 계속 내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참여나 정치적 참여에는 당분간 조금 거리를 두려 한다. 특히 정치권과의 거리는 상당히 많이 두려 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아직은 조그만 연구소를 잘 키워서 눈치 보지 않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정보들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교육기관과 미디어들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몇 년간 실현하고 싶은 주요 목표들이기도 하다. 


현실은 의욕보다는 늘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래도 뒤돌아보면 2년 반 전 유지나 될 수 있을까 스스로 걱정됐던 연구소가 여기까지 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목표들을 충실히 실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중 상당 부분은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들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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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5. 1. 19.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