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생각해보면 나는 천성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패거리에 속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연, 지연 이런 거 따진 적 없고 그런 걸 계기로 한 모임에 잘 나가지도 않는다. 심지어 지역 연고의 축구팀이나 야구팀도 특별히 응원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유학 다녀온 학교 동문회에도 거의 나가본 적이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을 따로 만나긴 하고, 워낙 희귀한 성씨이다 보니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소규모 종친 모임에는 가끔 나가긴 한다. 그렇다고 그 모임을 계기로 어떤 다른 걸 도모해본 적 없고, 그냥 편하게 떠들다 온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보잘 것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랐고, 특별히 어떤 조직이나 인맥의 도움 없이 살아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대신 그런 조직이나 소속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가치나 지향을 기준으로 살아왔던 편이다. 그렇다고 나의 가치가 이념이나 추상적 구호 수준에 머물지는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분석해보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내 가치 체계를 정립하고 책 출간 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왔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특정 정파나 진영 논리에서 생각하거나 어떤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건 익숙하지도 않고, 매우 불편하다.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조직에 몸 담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떤 조직에서도 큰 미련 없이 떠나왔던 것 같다. 스스로를 진보라거나 보수라고 생각하고 규정해본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야권이거나 진보로 분류된다고 해서 비판할 걸 비판하지 않은 적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이거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호평해주는 것이고, 그게 아닌 것 같으면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정파적 관점이나 진영 논리, 또는 특정 이념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지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
앞으로도 나라는 사람은 계속 지금까지처럼 살게 될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가끔이지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나와 보는 관점이 다른 분들도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좀 이해해주면 좋겠다. 어쨌거나 구체적 데이터와 분석을 근거로 한 목소리는 계속 내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참여나 정치적 참여에는 당분간 조금 거리를 두려 한다. 특히 정치권과의 거리는 상당히 많이 두려 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아직은 조그만 연구소를 잘 키워서 눈치 보지 않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정보들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교육기관과 미디어들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몇 년간 실현하고 싶은 주요 목표들이기도 하다.
현실은 의욕보다는 늘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래도 뒤돌아보면 2년 반 전 유지나 될 수 있을까 스스로 걱정됐던 연구소가 여기까지 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목표들을 충실히 실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중 상당 부분은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들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