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하고 있는 선대인입니다. 나꼽살 들은 분들 가운데 제가 동아일보 다니다 나온 사정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 계셔서 참고될 만한 글을 소개합니다. 여력이 없어서 새로 쓰지는 못해 제 책에 쓴 글 일부를 발췌해서 가져왔습니다. 댓글에서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고 지적하는 분들 계신데, 트위터에 소개하기 위해 블로그에 옮겨온 글이라서 그렇습니다. 오해 없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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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절친했던 제 친구를 떠올리지 않고 대학시절을 회상할 수 없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그 친구는 약간은 침울한 표정을 지닌, 감수성이 매우 발달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대학 교지를 만드는 동아리 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필력이 대단했던 친구입니다. 대학시절 제 친구의 필력을 능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천재적인 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제 친구 같은 사람을 일컫는 거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의 꿈은 동아일보 기자였습니다. 그냥 기자도, 신문기자도 아닌 콕 집어서 동아일보 기자말입니다. 누군가 네 성향으로 보면 한겨레기자가 더 맞지 않니?”라고 물어보면 그 친구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동아일보가 월급 더 많이 주잖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친구의 솔직한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한겨레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 주류 신문에 들어가서 주류 신문을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주류 신문 중에 그나마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게 동아일보다.” 그게 그 친구 생각이었습니다. 상당히 호기롭고 어찌 들으면 상당히 순진한 답변이었지만, 대학시절 제게는 마음 깊이 와 닿는 답변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제 장래희망도 당초 외교관에서 기자로 바뀌었습니다. 기자 중에서도 동아일보 기자가 되는 게 꿈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간이 갈수록 동아일보의 논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졸업할 때가지 동아일보는 제가 가고 싶은 제1순위 신문사였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인지 졸업과 동시에 동아일보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신문사에 입사하지 못했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늘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그 친구는 졸업을 앞두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정신분열증을 앓았습니다. 이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연락하고 지냈는데 이제는 그 친구와 연락마저 끊어졌습니다. 제가 유학 갔다 온 뒤 그 친구 연락처가 모두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제가 대학시절 내내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언론을 바꿔서 세상을 바꿔보자’. 동아일보에 입사해서도 저는 그 친구 몫까지 다해보겠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좌절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내가 동아일보를 바꾸고, 언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의 매트릭스 속에서 나의 꿈과 뇌수가 녹아내렸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아일보를 뛰쳐나온 것이 20025월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친구는 매우 순진했습니다. 왜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지 그 구조를 몰랐습니다. 왜 우리보다 앞서 입사했던 혈기방장한 선배들이 자신들이 몸담은 언론을 바꾸기보다는 자신들을 바꾸는 길을 택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현실의 힘은 그만큼 강고했던 것이고, 우리에게는 순수한 혈기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장의 집필을 앞두고 저의 20대를 돌이켜 보다 보니 제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의 젊은 후배님들은 제 친구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자의 재능과 열정을 자신을 둘러싼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꽃 피우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점차 기성세대에 편입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실이 충분히 우울한데, 이대로 가다간 미래는 더 암울할 수 있다고 말하려니 원고를 쓰는 제 손에서 힘이 빠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잿빛 미래를 장밋빛 미래로 바꿀 수 있는 주역은 역시 이 땅의 청춘들입니다. 미래를 바꾸려면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올바로 아는 것이 설사 고통스럽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장을 더욱 정성들여 썼습니다.

 

젊은 후배님들, 우리 좌절하지 맙시다. 저도 아직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제 친구와 함께 꾸었던 꿈을 신문사 안에서 이루진 못했지만 신문사 밖에서는 꼭 이루고 말 겁니다. 꿈에 이르는 경로는 조금 달라졌지만 저와 제 친구가 함께 꾸었던 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좌절하기에는 우린 아직 너무 젊습니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 울먼의 시 청춘을 여러분께 바칩니다. 여러분들이 영원히 청춘으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영원히 청춘으로 남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란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리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되어 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무선 우체국'을 통해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by 선대인 2011. 12. 5. 11:48

지난 주말 트윗했던 김상수감독의 한겨레 칼럼 기고문 정명훈, 토목공사식 성과주의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08291.html 에 대해 제 의견을 밝힙니다.

 

당초 저는 해당 칼럼의 내용만으로 봤을 때 서울시민의 세금이 정명훈(편의상 존칭 생략)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특권적 대우를 위해 잘못 쓰이고 있다고 봐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시길 권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부 클래식 애호가들과 서울시향에 있는 제 학교 후배 등을 통해 사안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해당 칼럼이 투입된 비용만을 고려해 실제로 서울시향의 수준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또 클래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만족감이 얼마나 향상됐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었고, 또 정명훈에 대한 대우에 대한 국제 비교에서 보기에 따라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짧지만 사과하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직접 글을 쓴 당사자가 아니지만, 트위터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메신저가 유통된 컨텐츠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기에 사과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칼럼이 무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균형감 있고 입체적으로 해당 문제를 짚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 칼럼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저는 문화예술 행위에 대한 가치 평가 문제이니 문화예술과 관련된 행위로만 논의를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명훈이 어떤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명훈에게 수십 억원의 시민 세금이 투입됩니다. 그러면 그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그 세금이 쓰이는 과정이 투명한지에 대해 시민으로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체적인 균형감의 문제를 떠나 3000만원 판공비, 유럽에 있다는 외국인 보좌관 활동비 3만유로(4500만원), 해외활동비 4만유로(6000만원) 등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용도 서울시향에서 정명훈씨의 은행 계좌로 입금됐다. 용도의 근거나 서류는 서울시향에 없다.”는 칼럼의 지적은 정당합니다. 또한 칼럼 내용에는 빠져 있지만 계약서상에 명시된 것과는 별개로 훨씬 많은 보수를 정명훈에 지급하는 변칙계약문제는 세금 집행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또한 정명훈에 지급된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단순히 클래식 애호가나 그 분야 몇몇 전문가들의 판단으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 서울시향의 음악 수준이 높아졌다고 느끼니 된 것 아니냐고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 분들의 의견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세금이 투입된 것이니만큼 클래식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서울시민들 입장에서 그만한 돈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실에서는 시민들 모두가 그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고, 일일이 다 판단할 능력과 여유를 가지지 못할 수 있지만 공공기관은 최소한 그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과정을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정명훈 선생님에 대한 보수가 그 정도나 되는지 한때 서울시에 있었던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 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우리가 정명훈에 대해 쓰는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그 돈이 정명훈의 명성에 걸맞게 정당하게, 또는 효과적으로 쓰였다 해도 시민들의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정명훈에게 지급된 세금을 뛰어넘는 효과를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투입했을 때 더 바람직하게 쓰일 수는 없었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정명훈에 대한 보수를 좀 줄이거나 차상위급 지휘자를 영입하는 대신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의, 특히 재능은 있으나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예술교육을 위해 쓰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사실은 모든 공공정책에 있어서 당연히 따져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우리는 소홀히 해왔다고 저는 느낍니다. 단순히 정명훈에 대한 보수를 깎자거나 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정명훈에 대한 보수가 올라갈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데 대한 시민들의 동의가 일정하게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해 획기적 전환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제가 서울시 재직 때 각종 문화예술 예산이라는 것이 세빛둥둥섬이니 한강예술섬이니 창작스튜디오니 하는 토건사업을 위한 포장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정작 문화예술 인력에 대한 투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일반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투자는 매우 빈약한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공공도서관만 일례로 들어도 서울시에 도서관다운 도서관의 수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시설관리공단이 시설 관리하듯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시에서 도서관 정책 담당 인력이 과장 포함 두 명에 불과하고 도서관 건립비에 비해 도서 장서 예산은 쥐꼬리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오세훈 문화시정의 실체입니다. 아마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상당수 지자체가 이런 식의 실정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정작 시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문화예술 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이번 논란이 단순히 정명훈에 대한 지급이 많으냐 적으냐 수준의 논의를 넘어 세금 집행의 투명성과 문화예술정책 효과에 대한 시민공감대를 높이고, 서울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상으로 상식인으로서, 또 공공정책상의 예산전문가로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글 읽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by 선대인 2011. 12. 5. 10:08

안녕하세요. 선대인입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미 두 달여 전부터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사직한 상태입니다.

 

사직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발전적 독립이라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풀뿌리 시민정치압력운동을 지향하는 세금혁명당 활동에 좀 더 힘을 쏟고 우석훈 박사 등과 계획하고 있는 나꼼수 경제편을 진행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경제미디어도 준비할 생각입니다. 물론 호구지책으로 제 이름을 딴 경제연구소 설립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여러 일들을 진행하려면 아무래도 좀 더 자유롭게 운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사직한 상태에서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시작하시는 정치세력화 작업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누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금혁명당이 김광수소장이 추진하는 정당의 2중대 아니냐는 의심을 계속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이대로 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3년 전 김광수경제연구소에 합류하면서 연구소를 독립적인 전문연구기관으로 키우는 한편 연구소를 토대로 정직하고 신뢰받는 미디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재직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그 같은 목표를 위해 매진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게 생각합니다
 

연구소를 떠나며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세금혁명당은 소장님께서 추진하시는 정치세력화와는 조직 차원에서는 무관합니다. 다만 세금혁명당은 처음 제안취지에서부터 그랬지만, 기존 세력이든 신진 세력이든 특정 정파를 편들기보다는 세금재정이라는 정책의제를 중심으로 정치압력을 행사하려는 운동체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표로 있기는 하지만 SNS를 기반으로 한 조직의 특성상 제가 세금혁명당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특정 정파를 지지하도록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세금혁명당을 김광수소장님이 추진하는 정당과 연관 짓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저를 떠나 이 나라 살림살이를 바꿔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로 뭉친 순수한 시민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동안 저는 부동산과 세금재정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이 사회의 기득권구조와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성원과 격려, 조언과 질책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 비록 김광수경제연구소를 떠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염원하면서 좀 더 좋은 나라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저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믿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07

 

 

선대인 삼가 올림

 

by 선대인 2011. 10. 7.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