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듯이 집을 사라.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자신에게 필요해서이거나 아니면 투자(또는 투기) 차익을 노리기 위해서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은 후자의 이유 때문에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주기적으로 투기 열풍이 불었고, 그때마다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세 하락기에는 후자의 이유로 부동산을 살 이유와 기회가 크게 줄어든다. 부동산도 필요에 따라 사는 시대가 된다. 그렇다면 다른 물건처럼 소득 대비 적절한 가격인지를 따져서 사야 한다. 비싸다면 깎기도 해야 하고, 자신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아직 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2. 저금리라고 빚을 내서 집을 사면 큰 코 다친다. 이미 빚을 내서 집을 살 사람은 거의 다 샀지만, 그래도 아직 빚을 내서 집을 살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저금리는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거품기의 저금리 시대와는 다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부동산 거품이 꺼질까 두려워서 정책 당국이 억지로 눌러 놓은 저금리다. 하지만 향후 경제위기가 전개됨에 따라 한국은행 기준 금리와는 별개로 시장 금리는 올라갈 수도 있다. 물론 길게 보면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를 겪는 동안에는 상당 기간 저금리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은 오르기보다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저금리라 해도 집값이 떨어지는데 다달이 수십만~수백만 원씩 이자를 낸다면 은행의 노예일 뿐이다.

 

3. 부동산을 구입할 때는 팔 때를 염두에 두라. 1960년대 이후 수십 년 동안 부동산을 사두면 파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됐다. 하지만 향후에는 고령화에 따라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 그런 시대에는 부동산이 과거와 같은 환금성을 가지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실수요가 아니라면 투자 목적의 부동산 구입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히 여윳돈 없이 부동산만 들고 있다가는 필요할 때 현금화하지 못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4. 부동산은 가지고 있으면 비용이 발생함을 잊지 말라.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전세살이의 불편함만 강조되고 주택 보유와 거래 등에 따른 비용은 무시됐다. 비용이 발생해도 그보다 큰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어서 그 정도 비용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때는 부동산 수수료와 취득세, 재산세, 부채 이자 등 각종 비용이 점점 크게 와 닿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이명박정부 때는 역주행했지만, 향후 한국의 복지지출 등은 늘어나는데 세원은 부족해 어떤 식으로든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보유에 따르는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기 바란다.

 

5. 소유보다는 활용의 관점에서 접근하라.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 나중에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투기적 욕심으로 빚을 잔뜩 진 채 불편한 아파트에 들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투기적 욕심이 충족되는 시기는 지나갔다. 오히려 그 같은 집을 자비로 수리하고 리모델링하거나 많은 부담금을 낼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집은 소유해서 시세 차익을 남기기보다는 자동차처럼 활용하는 내구재로 접근해야 하는 시대가 오게 된다.

 

6.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환상, 경기가 좋아지면 집값이 오른다는 환상을 버려라. 한국 언론의 잘못된 왜곡 보도로 여전히 한국에서는 주택이 부족하고, 결국 집값은 오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오산이다. 향후 급격히 진행되는 인구감소에 따른 부동산 구매력 감소로 이미 수도권 곳곳에서 예정된 물량만으로도 장기간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또한 경기가 회복되면 집값이 오른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물론 경기 변동의 영향을 일정하게는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5~10년 정도의 소득을 미리 당겨다가 부동산을 사버린 상태다. 더구나 향후 인구감소 시기와 맞물리는 대세 하락기에는 경기가 일정하게 회복되면 자동적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7. 고점 때 가격을 기준점으로 판단하면 낭패 본다(잠재적 매수자의 경우). 집을 사려는 많은 이들이 2006년 말 또는 2008년 중반의 꼭짓점 가격을 심리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때 못 샀던 사람들이 그때보다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으니 이제는 집을 사도 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경우가 많다. 아직 수도권 실거래가 기준으로 집값은 머리 꼭대기에서 어깨까지 내려온 정도밖에 안 된다. 장시간에 걸쳐 발바닥까지 내려갈 일이 남았다는 뜻이다. 괜히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추가로 집값이 더 떨어지는 경험을 하기 십상이다. 일본에서도 이 같은 착시 효과 때문에 버블 붕괴 직후 집을 샀다가 이후 십수 년에 걸쳐서 집값이 몇 분의 1로 떨어진 지역이 수두룩하다. 정말 실수요인 경우에도 집값은 충분히 흥정한 다음 사라.

 

8. 호가와 실거래가를 혼동하지 마라(잠재적 매도자의 경우). 집을 파는 사람들은 자신이 샀던 과거의 가격이나 고점 때 가격을 자기 집 가격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이미 5억 원 이상에서는 팔리지 않는 게 현실인데, 자신이 7억 원에 집을 샀으니 내 집값은 7억 원이라고 우기는 경우다. 그 집에서 계속 산다면 문제가 없지만 집을 처분하려 할 때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곤란하다. 더구나 부동산 정보업체 등에서는 집주인들의 기대가 담긴 매도 호가에 근접한 시세를 게시한다. 그래서 더더욱 집주인들의 착각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정말 팔 생각이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9. 거시경제 흐름을 모르고 부동산을 논하지 마라. 부동산 대세 상승기 때는 별 이유도 없이 올랐다. 사실은 투기 열풍이 불어서였지만 조그만 개발 호재나 말도 안 되는 온갖 핑계를 갖다 대도 올랐다. 그래서 거시경제 흐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 땅만 보고 다니는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예측을 빙자한 선동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세 하락기에는 다르다. 특히 막대한 가계 부채를 동반한 부동산 거품은 조그만 경제적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 따라서 향후에는 경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동산에 접근해선 안 된다. 거시경제 흐름에 대한 이해는 건전한 가계경제를 꾸려나가는 데도 필수적이다.

 

10. 언론의 거짓 보도에 속지 마라.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한국 언론 대부분(심지어 정도는 약하지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의 부동산 관련 기사조차)은 일반 가계 편이 아니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건설업체의 입장이나 부동산업계의 시각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라. 그들은 언제나 집을 사라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거기에 현혹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베스트셀러 <문제는 경제다> http://bit.ly/wMdRvb

by 선대인 2012. 3. 12. 14:47



생각해 보니 제 새 책 <문제는 경제다>가 출간됐는데, 제 블로그에 그 사실을 한 번도 제대로 소개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미 아실 분들 계시겠지만, <문제는 경제다>가 과분하게도 출간 첫 주에 교보문고 종합 5위와 예스24에서 8위에 올랐습니다. 그 동안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래에 <문제는 경제다>의 머릿말로  제 책 소개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이 글 보시는 분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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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원고를 쓰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책을 쓰기 위해 분석한 많은 데이터들 때문이다. 데이터는 그냥 보면 숫자의 집합에 불과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 무미건조한 데이터들의 이면에는 한국경제의 참혹한 현실이 숨어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느닷없이 쫓겨난 실업자들의 절망, ‘미친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눈물, 치솟는 집값에, 또는 전세난에 불안해하는 맞벌이 부부들의 시름,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난 세입자들의 절규, 소득은 주는데 뛰는 물가에 전전긍긍하는 가정주부들의 한숨,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따라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의 고독,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도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내부식민지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하소연, 동네 골목상권까지 장악해 버린 재벌 유통업체들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분노...이 모든 참상이 책을 쓰는 내내 한겨울 삭풍처럼 나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리고 수없이 분노했다. 혼잣말로 쌍욕을 하기도 했다. 이 참혹한 배경 위에서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재벌들이 온갖 특혜를 받고도 여전히 가계와 하청기업들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파렴치함에, 이들에 대한 특혜를 남발하면서도 오뎅쇼등으로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이명박정부의 기만적 행태에, 서민들의 분노와 아픔, 절규에 대해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과 무기력과 탐욕에, 그리고 대기업 광고주들의 광고에 목을 매 1% 기득권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언론들의 사태 왜곡과 본질 호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제대로 알아야 한다.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미래도 전망할 수 있고, 그 미래를 바꿀 단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 진단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꿀 희망의 근거들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희극으로 끝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미래를 희극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쓴 목적과 방향은 네 가지다.

첫째, 재벌들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언론들이 왜곡하는 한국경제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언론매체는 늘어나지만 선량한 대다수 서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묻히고 있다. 서민의 입장에서 체감하는 한국경제의 생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거듭된 정책실패가 쌓이고 쌓여 한국경제가 큰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일반 가계들은 이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 위기를 경고해 일반 가계가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셋째, 지금까지 정치권력의 교체는 있었지만, 경제권력의 교체는 없었다.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경제권력 교체를 위해 한국경제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넷째, 지난해 11월부터 팟캐스트 라디오방송 나는 꼽사리다에 참여하면서 현실의 한국경제를 잘 알 수 있는 책을 써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그 같은 청취자들의 요청에 부응해 최대한 현실의 한국경제 입문서 역할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미국의 저명한 독립 저널리스트인 I. F. 스톤의 글을 인용하며 머리말을 맺고자 한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이 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by 선대인 2012. 3. 10. 12:04

 

안녕하세요. 선대인입니다. 평소 저를 격려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최근 김진표 아웃과 민주당 혁신 부르짖으니 기본적인 사실까지 왜곡하며 저를 악의적으로 인신공격하는 분들도 눈에 띕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총선, 대선에서 전략적 방향에 대해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계실 테고, 거기에 대한 논리적 비판은 저도 얼마든지 수용할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바탕을 둔 인신공격은 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그 가운데 제일 심각한 것은 요새 동아일보 같은 수구신문에서 일했던 제 경력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입사한 게 1996년입니다. 당시 동아일보가 지금과 같은 수구신문이었을까요? 동아일보는 80년대말, 90년대 초까지는 이 땅의 민주화를 선도하던 신문이었고, 대표적 야당지였습니다. 저는 고교시절부터 그런 동아일보를 읽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와서 동아일보 논조가 조금씩 변한다고 느끼면서도 동아일보에 꽤 기대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대학에서 연세대 교지를 만들면서 저는 언론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습니다. 졸업 당시 저는 한국 언론의 주류를 바꿔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동아일보는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신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드시겠지만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동아일보에서 제가 한 역할 아니겠습니까? 저는 동아일보 기자시절 한국기자협회상을 여러 번 받았는데

1. 외환위기 이후 서울역에서 노숙자 체험 르뽀

2.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양 사연

3. 공정과세로 가는 길(참여연대와 공동 기획) 과 같은 기사들이었습니다.

 

지금의 동아일보 같으면 1, 3의 기사는 아예 실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기자로서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사회부 때까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데스크와 싸워가며 자랑스러운 기사를 많이 썼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나꼽살에서 밝힌 대로 삼성의 편법 상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가 통째로 날라가는 등 아픔과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부에 가서입니다. 저는 사실 정치부를 원하지 않았는데, 사회부에서 능력을 인정받다 보니 동아일보의 전통상 정치부 막내기자로 발탁됐습니다. 더구나 제 고향이 경북경산이다 보니 제가 원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을 출입하게 됐고, 한나라당 안에서는 영남권 꼴통 의원들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꼴통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 정치부에서도 다른 기자들이 소홀히 하는 예산 기사를 많이 발굴해 특종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지방교부금 가운데 특별교부금의 사용 내역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정부의 조중동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그런 역할로 스스로를 위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당시에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한 편을 먹고 김대중정부와 싸우는데, 저는 한나라당 출입기자인데다 막내기자다 보니 최전방 소총수처럼 굳은 기사를 도맡아 처리해야 했습니다. 지금 저를 흠집내는 사람들이 주로 거론하는 기사들이 아마도 그 당시에 쓴 기사들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정말 너무나 괴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의의 필봉을 휘둘러보고 싶었던 저로서는 마음의 상처와 자괴감이 너무 컸습니다. 당시에 우리 큰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10년 후 내가 쓴 기사를 볼 때 내가 당당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국제부에 지망해서 간 뒤 6개월 후 동아일보를 사직했습니다. 너무 대책 없이 퇴사했기에 이후 1년 반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자른 게 아니라, 제 스스로 사직했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일부러 실업보험 한 푼 타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한 때 동아일보에서 원치 않게 부끄러운 기사를 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이렇게 나온 게 그렇게도 잘못한 것입니까? 그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금도 동아일보에 남아서 온갖 왜곡기사를 쓰고 있어야 되는 겁니까? 솔직히 입장 바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같으면 처자식이 있는데 양가 부모님과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름대로 사회에서 대우받는다는 직장 때려치울 수 있습니까?

 

그렇게 제 나름대로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고난의 시절을 거쳐 왔는데, 지금 동아일보의 수구 기득권 이미지를 저에게 덧씌워 비난하니 정말 야속합니다. 애초부터 동아일보 들어간 제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동아일보는 신문기자를 지망하던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던 신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던 많은 기자들이 외환위기 이후 동아일보가 재벌광고주에 영합하는 조선일보 아류가 되면서 2000년대 초반 동아일보를 떠났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명이고요. 당시 사정은 제 연배의 기자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기자들이 모두 판단력이 모자라 동아일보를 선택했던 것일까요? 제발 비판을 하더라도 구체적 맥락을 좀 알고 비판해주세요.

 

동아일보 기자 경력 외에 제가 오세훈 시장 보좌진의 일원으로 일한 것을 문제삼기도 하더군요. 심지어 일부에서는 제가 한나라당 당원이었고, 오세훈 선거를 뛰고 들어갔다는 식으로 왜곡하던데 그런 사실 전혀 없습니다.

 

저는 2004년부터 2005년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 미디어다음 취재팀에서 부동산문제 등에 천착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기자 시절 알던 오세훈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변호사로 일할 때 회사가 근처여서 몇 번 밥을 같이 먹으며 다시 친분을 맺게 됐습니다. 저는 2005년 여름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경실련의 김헌동 단장님과 함께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라는 책을 썼고, 당시 출판사를 통해 오세훈에게도 한 권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사실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늦깎이 유학을 간데다 공부 양이 너무 많아 다른 생각을 잘 하기 힘들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학 가 있는 동안 그는 덜컥 시장이 되더군요. 그리고 유학 도중 서울시청에 출입하던 후배 기자한테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와 김헌동 단장이 공저한 그 책이 서울시 간부들의 필독서가 됐다는 겁니다. 웬 일인가 해서 알아봤더니, 이 양반이 임기 초반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아파트 분양원가 심의위원회, 입찰제도 개혁, SH공사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장기전세 주택 등 제가 책에서 주문했던 정책들을 추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출범 당시 크게 기대했으나, 5년 내내 공공부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도 하지 못했던 노무현정부에 크게 실망해 있던 저는 당시 오세훈의 움직임에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차에 오시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서울시 주택정책을 비롯해 정책 전반을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했던 저로서는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기자로서 가졌던 문제의식, 그리고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한 내용들을 서울시라는 무대에서 실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특히 서울시 주택정책과 입찰제도 개혁 등을 통해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내면 그 자체로 사회에 큰 기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디어다음에서 9개월 만 더 일하면 행사할 수 있었던 스톡옵션도 포기하고 서울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기존 관료들과 싸우면서 쓰레기시멘트 문제와 아토피문제에 대해 서울시가 관심을 기울이게 했고, 뉴타운 재개발 지역이나 지하철 역사의 석면문제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조치를 취하는데 기여했습니다. 하나은행에 특혜 주는 식으로 변질되던 은평자사고 문제를 조금이나 개선하기도 했고, 성미산 개발을 막기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또 지하철 9호선 2단계 사업에서 건설업체간 담합을 분쇄해 약 1000억원 가까이 아꼈습니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건 2008년 총선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치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추가 지정을 막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뉴타운 특집을 통해 자세히 밝히겠습니다.) 정말 그 시절에 관료들과 오세훈의 정치권 똘마니들과 싸워가며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낙 직후 오세훈이 줏대 없이 중앙정부에 영합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늘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최선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저로서는 서울시에 들어간지 일 년도 안 돼 미련 없이 나왔습니다. 그 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0년 말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오세훈을 본격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를 대인배양심선언등등으로 추어주더니 이제 와서 민주당을 비판하니 저를 오세훈 똘마니로 비난하니 정말 인심의 변화가 험악함을 느낍니다.

 

이밖에 제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인지 선대인이 10년 전부터 부동산 폭락을 주장했다는 식으로 흠집 내는 분도 있는 모양입니다. 김헌동 단장과 함께 쓴 책에서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지, 예측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의 저로서는 부동산시장을 전망할 만한 실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 시절 끝 무렵인 2007년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점점 내연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위험을 감지했습니다. 한국 부동산시장도 위험하겠다 싶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온갖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부동산시장도 상당히 위험하겠다 싶어 2008년 중반부터 부동산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겁니다. 실제로 2008년의 급락기를 비롯해 부동산 대세하락은 진행되고 있고요.

 

어쩌다 보니 제 인생 얘기를 늘어놓게 됐네요.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보니 저도 꽤 유명해졌나 봅니다.^^ 어쨌든 저는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이 나올 때는 시간이 지나면 제 진심을 알아주겠지 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제가 직접 설명하는 글을 쓰게 된 겁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치권력의 교체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의 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소위 민주화 정부가 들어섰다는 데도 민생경제가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온 것은 재벌과 토건족을 핵심 축으로 하는 경제권력이 바뀌지 않은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꼽살에서도 여러 번 말씀드렸고, 최근 출간한 저의 졸저에서 소상히 밝혔습니다. 제가 그 동안 써온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누구보다 강력히 반이명박, 반새누리당 입장을 견지해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지금의 야권을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최대한 야권이 환골탈태해 경제개혁까지 나설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정권교체를 단순히 이명박정부에 복수하기 위해서거나 야권의 정치 엘리트들이 떵떵거리는 걸 보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다수 서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구조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도록 하기 위한 거잖아요. 저는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봅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요즘 제가 민주당을 더 비판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도와주는 것 아내가고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저뿐만 아니라 주요 야권 언론이 비판해도 민주당의 행태가 잘 바뀌질 않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민주당 개혁을 압박할 수 있을 때 압박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저는 민주당을 최대한 압박해서 변화하게 하는 것이 민주당에 대한 민심의 지지를 높여서 궁극적으로는 정권 교체에도 도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 최근 한 달여 동안 민주당을 집중 비판해 온 겁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할 때라고 믿으니까요. 이렇게 선거를 앞두고 민심의 개혁 요구가 높을 때도 개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언제 개혁하겠습니까? 그리고 잘 하고 있으면 제가 왜 민주당을 비판합니까? 제가 가락시영 종상향 때를 제외하고 박원순시장 비판하는 것 본 적 있습니까? 오히려 대체로 늘 칭찬하는 편입니다. 일반 서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한다면 제가 절대 비판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정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삶이 제 기준이니까요.

 

그리고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앞으로 여야 총선 대진표가 나오면 저도 기본적으로는 야권이 한 석이라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김진표는 이미 공언했듯이 예외가 될 겁니다. 야권 전체에서 7~10명 정도를 선정해 지지운동을 강력히 펼치겠지만, 조세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세금혁명당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적어도 김진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최근 총선유권자넷이 새누리당 대다수 의원들과 함께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세 번 이상 김진표를 낙선대상으로 지목한 것과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지금까지 말씀드린 저의 생각에 동의 안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제 생각에 대해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듣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저에 대한 허위 사실을 근거로 인신공격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는 김진표를 공격할 때도 그가 공직자로서 행한 정책과 행보를 근거로 비판하지 그의 부인이 삼성 비서실 출신이니, 어떤 교회에 다니니 이런 사실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나름대로 민주당 쪽에 인맥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그동안 비판해온 내용은 나름대로 구체적 근거를 가지고 한 얘기였지, 결코 단순한 인상만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많이 참아서 그렇지 민주당 안의 구체적 행태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에서 마련한 많은 재벌개혁안들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손을 거치며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김진표나 박기춘이 경기도당위원장을 하면서 민주당 도의원들을 통해 경기도의회 예산을 엉뚱한 사업들에 배정토록 한 사실 등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말씀을 못 드릴 뿐이지요.

 

이렇게 설명 드렸는데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엠엘비 파크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어 주십시오. 315일 이후 어느 때라도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 신상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올해 두 번의 선택을 앞두고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의견을 나눠도 좋겠습니다. 의견 알려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선대인 2012. 3. 9.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