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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절친했던 제 친구를 떠올리지 않고 대학시절을 회상할 수 없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그 친구는 약간은 침울한 표정을 지닌, 감수성이 매우 발달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대학 교지를 만드는 동아리 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필력이 대단했던 친구입니다. 대학시절 제 친구의 필력을 능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천재적인 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제 친구 같은 사람을 일컫는 거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의 꿈은 ‘동아일보 기자’였습니다. 그냥 기자도, 신문기자도 아닌 콕 집어서 ‘동아일보 기자’ 말입니다. 누군가 “네 성향으로 보면 한겨레기자가 더 맞지 않니?”라고 물어보면 그 친구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동아일보가 월급 더 많이 주잖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친구의 솔직한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한겨레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 주류 신문에 들어가서 주류 신문을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주류 신문 중에 그나마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게 동아일보다.” 그게 그 친구 생각이었습니다. 상당히 호기롭고 어찌 들으면 상당히 순진한 답변이었지만, 대학시절 제게는 마음 깊이 와 닿는 답변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제 장래희망도 당초 외교관에서 기자로 바뀌었습니다. 기자 중에서도 동아일보 기자가 되는 게 꿈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간이 갈수록 동아일보의 논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졸업할 때가지 동아일보는 제가 가고 싶은 제1순위 신문사였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인지 졸업과 동시에 동아일보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신문사에 입사하지 못했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늘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그 친구는 졸업을 앞두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정신분열증을 앓았습니다. 이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연락하고 지냈는데 이제는 그 친구와 연락마저 끊어졌습니다. 제가 유학 갔다 온 뒤 그 친구 연락처가 모두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제가 대학시절 내내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언론을 바꿔서 세상을 바꿔보자’. 동아일보에 입사해서도 저는 그 친구 몫까지 다해보겠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좌절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내가 동아일보를 바꾸고, 언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의 매트릭스 속에서 나의 꿈과 뇌수가 녹아내렸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아일보를 뛰쳐나온 것이 2002년 5월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친구는 매우 순진했습니다. 왜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지 그 구조를 몰랐습니다. 왜 우리보다 앞서 입사했던 혈기방장한 선배들이 자신들이 몸담은 언론을 바꾸기보다는 자신들을 바꾸는 길을 택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현실의 힘은 그만큼 강고했던 것이고, 우리에게는 순수한 혈기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장의 집필을 앞두고 저의 20대를 돌이켜 보다 보니 제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의 젊은 후배님들은 제 친구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자의 재능과 열정을 자신을 둘러싼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꽃 피우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점차 기성세대에 편입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실이 충분히 우울한데, 이대로 가다간 미래는 더 암울할 수 있다고 말하려니 원고를 쓰는 제 손에서 힘이 빠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잿빛 미래를 장밋빛 미래로 바꿀 수 있는 주역은 역시 이 땅의 청춘들입니다. 미래를 바꾸려면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올바로 아는 것이 설사 고통스럽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장을 더욱 정성들여 썼습니다.
젊은 후배님들, 우리 좌절하지 맙시다. 저도 아직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제 친구와 함께 꾸었던 꿈을 신문사 안에서 이루진 못했지만 신문사 밖에서는 꼭 이루고 말 겁니다. 꿈에 이르는 경로는 조금 달라졌지만 저와 제 친구가 함께 꾸었던 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좌절하기에는 우린 아직 너무 젊습니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 울먼의 시 ‘청춘’을 여러분께 바칩니다. 여러분들이 영원히 청춘으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영원히 청춘으로 남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란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리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되어 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무선 우체국'을 통해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