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트윗했던 김상수감독의 한겨레 칼럼 기고문 정명훈, 토목공사식 성과주의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08291.html 에 대해 제 의견을 밝힙니다.

 

당초 저는 해당 칼럼의 내용만으로 봤을 때 서울시민의 세금이 정명훈(편의상 존칭 생략)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특권적 대우를 위해 잘못 쓰이고 있다고 봐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시길 권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부 클래식 애호가들과 서울시향에 있는 제 학교 후배 등을 통해 사안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해당 칼럼이 투입된 비용만을 고려해 실제로 서울시향의 수준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또 클래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만족감이 얼마나 향상됐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었고, 또 정명훈에 대한 대우에 대한 국제 비교에서 보기에 따라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짧지만 사과하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직접 글을 쓴 당사자가 아니지만, 트위터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메신저가 유통된 컨텐츠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기에 사과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칼럼이 무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균형감 있고 입체적으로 해당 문제를 짚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 칼럼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저는 문화예술 행위에 대한 가치 평가 문제이니 문화예술과 관련된 행위로만 논의를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명훈이 어떤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명훈에게 수십 억원의 시민 세금이 투입됩니다. 그러면 그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그 세금이 쓰이는 과정이 투명한지에 대해 시민으로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체적인 균형감의 문제를 떠나 3000만원 판공비, 유럽에 있다는 외국인 보좌관 활동비 3만유로(4500만원), 해외활동비 4만유로(6000만원) 등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용도 서울시향에서 정명훈씨의 은행 계좌로 입금됐다. 용도의 근거나 서류는 서울시향에 없다.”는 칼럼의 지적은 정당합니다. 또한 칼럼 내용에는 빠져 있지만 계약서상에 명시된 것과는 별개로 훨씬 많은 보수를 정명훈에 지급하는 변칙계약문제는 세금 집행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또한 정명훈에 지급된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단순히 클래식 애호가나 그 분야 몇몇 전문가들의 판단으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 서울시향의 음악 수준이 높아졌다고 느끼니 된 것 아니냐고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 분들의 의견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세금이 투입된 것이니만큼 클래식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서울시민들 입장에서 그만한 돈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실에서는 시민들 모두가 그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고, 일일이 다 판단할 능력과 여유를 가지지 못할 수 있지만 공공기관은 최소한 그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과정을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정명훈 선생님에 대한 보수가 그 정도나 되는지 한때 서울시에 있었던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 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우리가 정명훈에 대해 쓰는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그 돈이 정명훈의 명성에 걸맞게 정당하게, 또는 효과적으로 쓰였다 해도 시민들의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정명훈에게 지급된 세금을 뛰어넘는 효과를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투입했을 때 더 바람직하게 쓰일 수는 없었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정명훈에 대한 보수를 좀 줄이거나 차상위급 지휘자를 영입하는 대신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의, 특히 재능은 있으나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예술교육을 위해 쓰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사실은 모든 공공정책에 있어서 당연히 따져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우리는 소홀히 해왔다고 저는 느낍니다. 단순히 정명훈에 대한 보수를 깎자거나 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정명훈에 대한 보수가 올라갈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데 대한 시민들의 동의가 일정하게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해 획기적 전환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제가 서울시 재직 때 각종 문화예술 예산이라는 것이 세빛둥둥섬이니 한강예술섬이니 창작스튜디오니 하는 토건사업을 위한 포장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정작 문화예술 인력에 대한 투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일반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투자는 매우 빈약한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공공도서관만 일례로 들어도 서울시에 도서관다운 도서관의 수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시설관리공단이 시설 관리하듯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시에서 도서관 정책 담당 인력이 과장 포함 두 명에 불과하고 도서관 건립비에 비해 도서 장서 예산은 쥐꼬리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오세훈 문화시정의 실체입니다. 아마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상당수 지자체가 이런 식의 실정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정작 시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문화예술 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이번 논란이 단순히 정명훈에 대한 지급이 많으냐 적으냐 수준의 논의를 넘어 세금 집행의 투명성과 문화예술정책 효과에 대한 시민공감대를 높이고, 서울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상으로 상식인으로서, 또 공공정책상의 예산전문가로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글 읽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by 선대인 2011. 12. 5.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