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 성원으로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이 예스24 종합 17위까지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성원에 보답코자 무려 머리말씩이나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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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 어렵다고 한지도 오래돼 무감각해질 지경까지 왔다. 이런 저런 정부를 겪어봤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했지만 기대감이 높지 않다. 한 때 부동산에, 주식에, 펀드에 열광했지만 그 열광도 가라앉았다. 많은 돈을 들여 뛰어난 스펙을 쌓았지만 졸업해도 젊은이들은 갈 곳이 없다. 쌓아놓고 벌어놓은 게 많지 않은데 50대 초반에 퇴직한 베이비부머들은 막막하다. 일자리도, 복지도 부족한 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지만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곳도 드물다. 대다수 언론들은 거대 광고주나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실한 정보를 넘어 광고주의 이해에 오염된 정보가 넘쳐난다. 그들 언론의 정보를 믿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 책은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답답해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기획됐다. 형식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 직접 답변하는 형식으로 전개했다. 그 동안 각종 강연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받았던 질문들을 기초로 삼았다. 경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 진행 과정에서 받았던 청취자들의 질문도 반영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하다 보니 일종의 ‘생활경제학’이 됐다. 한국경제 구조에 대한 고담준론보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알고 싶어 하는 경제 현상과 판단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았다. 물론 여기에 실은 내용이 ‘만병통치약’도 ‘절대 진리’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연구소가 현 시점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정보와 최선의 조언을 담았다는 점만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세대간 대결구도가 극명해졌지만, 잘못된 경제구조로 불안하고 힘겨워 한다는 점은 모든 세대가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20~40대든, 50대 이상 노후세대든 서로가 처한 상황과 고민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세대간 공감대 형성에 일조했으면 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의 트위터 친구(@jumeok_)가 보내준 사진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아래 이미지 참조) 리어카에 한 가득 폐지를 싣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친 한 노인이 고개를 떨구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머리말을 쓰기 며칠 전 비슷한 실제 상황에 마주쳐 60대 할머니를 대신해 리어카를 끌어보았다. 겨우 100여 미터 떨어진 고물상까지 가는데 땀이 솟았다. 고물상에서 무게를 재보니 리어카 무게를 포함해 360 킬로그램이나 됐다.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해도 그 노인이 손에 쥐는 돈은 1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 노인 복지 수준은 뒤에서 두 번째인 우리 상황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는 50대 이상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마저 왜 노후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경제구조를 바꾸고 나라 살림살이만 제대로 해도 우리 부모님들을 지금보다 더 잘 모실 여유는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면 우리의 현재도, 노후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은 선대인경제연구소 출범 이후 연구소 명의로 처음 발간하는 책이다. 지난해 출범하면서 우리 연구소는 재벌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은 정직한 정보, 일반 가계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경제정보를 생산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같은 취지에 상당히 걸맞은 첫 책이 탄생한 것 같아 흡족하다.



선대인경제연구소는 앞으로도 정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연구소지만 10년 후 삼성경제연구소를 능가할 연구소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아무쪼록 부족한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조언과 채찍질을 기대한다.

by 선대인 2013. 4. 4. 09:42

 

박근혜정부 출범 뒤 첫 부동산 종합대책이 나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을 내놓았다. 부동산대책의 강도가 세고, 범위가 넓어서 그렇게 표현했을 텐데, 어이 없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거품을 열심히 빼도 시원찮을 판에 거품 잔뜩 키우는 정책을 내놓는 정부나, 이를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하는 언론이나 정말 제 정신이 아니다.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에는 단기적으로는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 대다수 일반가계와 한국경제에는 '종합 독극물 세트'가 될 거라고 장담한다.

 

지금은 부동산 부양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여전히 주택거품을 빼야 할 때다. 외환위기 직후인 김대중정부 초기에는 워낙 주택가격이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에 일정한 부양책이 필요했다. 물론 그 부양책도 너무 오래 지속하는 바람에 부동산 투기 화염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오히려 집값이 너무 높아 주택 가격이 더 빠져야 하는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동산 부양책을 써봐야 부동산시장의 가격조절 압력 때문에 그 효과가 오래가지도 못하고 부동산시장의 조정 기간만 길어지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증가 등 부동산거품의 크기만 키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시장도, 한국경제도 뻗어버린다.

 

 

<그림>

주) 한국은행과 국민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이번 대책의 주요내용 가운데는 다주택자가 미분양을 구입할 때 양도세를 5년 동안 면제해주고 생애 첫 주택자에게 취득세 등 각종 세금을 5년 동안 면제해주는 등 세금 부담을 크게 줄여주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거나, 어쩔 수 없이 내놓은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지금 집값은 가격이 비싸서 떨어지는 거지, 세금부담 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니다. 세금부담 때문이라면 세금 부담이 지금보다 높았던 노무현정부 때 왜 올랐겠는가? 어차피 지금 거래되는 부동산의 약 90% 이상은 각종 명목으로나 다운계약서 등을 이용한 탈세를 통해서든 과세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집값이 올라야 양도소득세도 내게 된다. 지금 상태로 가서는 5년 동안 집값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 연말까지 구입하는 주택에 대해 양도세 5년간 감면? 이런 정책에 혹해 안 살 집 무리하게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량이 줄어드는 건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이미 과거 빚을 내서 살 사람도 거의 다 사버려 수요가 거의 고갈된 상태다. 어차피 가격이 조정되지 않고서는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백약이 무효다. 물론 정부로서는 집값 정상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집값 하락 속도와 그 폭은 어느 정도 조절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부동산 가격을 억지로 떠받치려는 정책은 오히려 길게 보면 화를 부를 뿐이다. 결국 한국경제의 화약고인 부동산 거품을 키우게 되고, 가격 조정을 방해해 침체 기간만 길어질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고통이 있겠지만 집값이 정상화되면 부동산거래도 어느 시기에는 정상화된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억지로 집값을 떠받치려 하면 할수록 부작용은 더 길어진다.

 

이번 대책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하는 건 생애 첫 주택자에게 DTI, LTV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이미 기존 수요는 고갈돼 아직은 소득이 부족한 젊은이들이나 수억원 빚을 내지 않으면 집을 살 수 없는 서민가계들만 남은 상태다. 이들에게 빚을 왕창 내게 해줄 테니 떨어지는 부동산시장을 받쳐줄 제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대열에 이들마저 물귀신처럼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좀비를 양산하는 악마인 네크로멘서 수준이다.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혈안이 돼 정부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더구나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엇박자인가? 한쪽에서는 하우스푸어를 구제한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렇게 또 다시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또 세수가 부족해 적자국채를 발행해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면서 다른 쪽에서는 부동산 세금을 대폭 깎아주고 있다. 이명박정부에서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폭 깎아줘 서민들의 부가가치세와 유류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게 올랐다. 그런데 또 부동산 세금 깎아주고 서민들에게 세금 바가지 씌우게 생겼다.

도대체 이게 정부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 이명박정부 때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봐서 박근혜정부 시작할 때는 그래도 이명박보다는 낫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바닥 아래 바닥이 있는 격이다. ‘인사참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책참사까지 계속될 판이다. 그것도 출범 40여일밖에 안 된 정부가 새 희망을 불어넣기는커녕 소수 기득권을 위해 국민들을 절망의 늪으로 빠트려도 되나?

하여튼 며칠 전 경기종합대책에 이어 어제 부동산종합대책을 보니 이 나라 5년 동안 설거지는커녕 빚만 또 잔뜩 늘리고 폭탄만 돌리다 허송세월하게 생겼다. 이 나라 정부정치권과 1% 경제기득권들이야 신날지 몰라도 이 나라 백성들은 5년 동안 무수한 고통을 당하게 생겼다.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부동산 부양책, 호가가 뛰는 등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효과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부동산시장은 제 갈 길 다시 가게 될 것이다. 이번 대책에 혹해서 무리하지 빚을 얻어 집을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대책은 무주택서민에게 집 살 기회가 아니라 하우스푸어 행렬 초대장일 뿐이다. 대략 자산가치로 6500조원 이상 되는 부동산시장의 가격하락 압력을 이런 식의 정부대책으로 막지는 못한다. 철수레에 덤벼드는 사마귀의 형세일 뿐이다. 시장압력에 대들면 결국 철수레에 깔리게 돼있다. 다른 선진국들이 바보라서 부동산 거품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이 같은 대책은 보통 부동산 거품 파열 직전에 나온다. ‘토건족 정부였던 이명박정부가 27번의 부동산대책으로도 막지 못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박근혜정부가 막을 수 있을까. 이명박정부의 각종 부동산대책으로도 막지 못했기에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인 부동산부자들의 기대에 자신은 더 잘 부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내놓은 대책이 이번 대책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도 결국 몇 달 후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새로 내놓을 대책은 뾰족하게 없다. 마지막 기대감도 시장에서 사라질 때 부동산시장은 그 동안 지연시켰던 가격 조정까지 한꺼번에 반영해 더 큰 폭의 하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수많은 과오가 긴 세월에 걸쳐 누적돼 발생한 문제를 아무것도 없었던 양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많은 문제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더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집값 부양 시그널을 주지 않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주택정책 및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부동산 투기 사이클의 진폭을 키우고 하우스푸어를 대량으로 양산한 선분양제 같은 제도들 고치는 한편 공공임대/전세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 서민 주거난을 해소해가야 한다. 서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토록 무리한 주택 투기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하우스푸어로 전락했거나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일반 가계들에게. 그 동안 지나치게 과욕을 부렸다면 지금이라도 가계의 재무구조를 다시 점검하고 부채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부채 조정에 나서는 것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가계생활로 돌아가는 길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에서 신간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을 출간했습니다. 출간 직후 예스24 '오늘의 책' 등 4대 서점의 메인 도서로 성정된 이 책을 선대인경제연구소 웹사이트(www.sdinomics.com) 링크를 통해 사시면 좀 더 저렴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소 공지사항 참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13. 4. 2. 10:28

 

박근혜대통령이 핵심 국정목표로 내세운 창조경제를 두고 정치권과 관가가 연일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목표를 이해하는 관료와 정치인들이 없어서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사실 수십 년 동안 정반대 방향의 행정관행과 사고방식에 젖어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창조경제를 하라니 이해될 리가 있나. 더구나 창조경제는 누가 시키고, 거기에 맞춰 따르는 식과는 정반대의 경제 개념이다. 정부가 4대강사업 하듯이 대규모 재정을 직접 투입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 자연스러운 문화 및 산업생태계가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역대 어떤 정부의 정치인과 관료들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내세운 창조경제와 무관하게 원래 의미의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워싱턴DC, 텍사스주 오스틴, 시애틀. 이 미국 도시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이들 지역은 예술가, 음악가, 동성애자들이 많이 산다. 또 이른바 첨단기술산업들이 발전해 있다. 이런 첨단기술산업들이 주는 고용과 고임금의 기회와 삶의 질을 누리려는 고학력층 인재들이 많이 산다.

이들 지역은 저명한 지리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대표적인 창조 도시로 꼽는 미국의 도시들이다. 창조도시는 지난 20~30년 전부터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해 선진산업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지속적 발전을 해나가는 도시를 말한다. 이런 창조부문의 일자리로 플로리다 교수는 과학과 엔지니어링, R&D, 기술 기반 산업, 미술 분야, 음악, 문화, 심지적인 일과 디자인 분야, 또는 보건 금융 법률 등 지식 기반 전문직 분야 등을 들고 있다. 이 창조 부문 일자리는 미국 내 일자리의 약 30%를 차지하며 이들 일자리에 돌아가는 임금은 전체의 47%에 이른다. 그만큼 고부가가치 일자리라는 사실이다.

플로리다 교수는 이런 창조 부문이 번창하는 창조도시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크게 3T를 들고 있다. 여기서 3T는 기술(Technology),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 관용도(Tolerance)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부가가치 창조경제 시대에 걸맞게 기술과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 수용되는데 관용도에 이르면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게 된다. 관용도는 여러 문화적, 예술적 개방성과 생각과 가치관, 성적 취향 등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춘 지역일수록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문턱 낮은 도시가 되고 그들이 가진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을 꽃 피우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미국내 삼성반도체 공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텍사스 오스틴이 대표적 사례다. (‘도시와 창조계급’(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푸른길) 110~111쪽에서 발췌 요약했다.)

텍사스 주의 오스틴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하이테크 산업 발전 사례로 언급된다. 1984년 설립된 델컴퓨터 사의 성공에 힘입어, 오스틴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개발 거점이 되었다. 오늘날 이 도시는 1750개가 넘는 하이테크 기업들이 입지하고 있으며, 이 기업들에서 11만 명이 넘는 사람들(오스틴 전체 고용자 수의 20%)이 근무하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의 선도적 거점으로서, 오스틴은 지역에서 교육 받은 지식 노동자 풀과 광범위한 레크리에이션 기회 그리고 높은 삶의 질을 보유하고 있다. 이 도시 노동력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다.(중략) 오스틴은 환경과 레크리에이션 어메니티(Amenity)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만든 대표적 도시다. (중략) 사실 오스틴은 라이브 음악과 얼터너티브 영화에 있어서는 미국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며, 암벽 등반, 활 사냥, 산악 자전거타기와 같은 야외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야간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이 도시는 경제, 레크리에이션, 환경 부문 모두에서 미국 최고의 도시 반열에 올라 있다.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도시 1, ‘포천이 선정한 하이테크 산업도시 1, ‘POV매건진이 선정한 붐타운 2, ‘워킹 매거진이 선정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5위 그리고 바이시클링 매거진이 선정한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 6위 등이 그것이다. (중략) 오스틴은 또한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질 문제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 도시는 고급 인재를 유치하고 보유하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어메니티와 문화 어메니티 조성을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창조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첨단산업 기반과 살기 좋은 라이프스타일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PMG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첨단산업 노동자들은 급여 조건에 이어 해당지역의 삶의 질을 일자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가족 및 친구와의 근접성, 기업의 각종 부수적 혜택, 스톡옵션, 기업 안정성 등을 압도하는 조건이었다. (‘도시와 창조계급’ 113쪽에서 재인용) 창조도시는 한 마디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넘치며 총체적으로 매력 있는 생활환경이 갖춰질 때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추진하는 전략은 여전히 개발시대의 한 방 신화에 기대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각종 경제자유구역이니 혁신도시니 국제자유도시니 하는 이름들을 내걸었지만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표적 사례로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사업들을 살펴보자. 정부는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송도, 영종, 청라지구를 각각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송도는 지식정보산업, 바이오, 첨단산업클러스터 단지로, 영종은 운북복합레저단지, 용유무의관광단지, 영종물류복합단지, 메디시티로 개발하며 청라지구는 레저스포츠단지와 첨단산업단지, 로봇랜드 등을 조성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계획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인천은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끼고 있지만 서울의 위성도시에 가까운 지역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금융이나 첨단산업, 관광 기능을 제공할 수 없었다. 대중국 수출입 기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인천 자체도 서울과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창조도시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거의 텅 비어있던 송도와 청라, 영종도 등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며 각종 세제 및 개발상의 특혜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삶의 질 측면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찾아오고 싶은 어떤 매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당초부터 부동산 개발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한 때 아파트 투기가 극성을 부렸으나 그것이 신기루였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투기 거품도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 이들 도시들을 건설하기 위해 2조원을 넘게 들여 인천대교를 건설하는 등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고, 인천시는 막대한 부채를 쌓아 올렸다. 또한 이들 지역에 신도시들이 들어서면서 구도심의 주택가들이 텅 비고 상가가 죽으며 구도심과 신도시 지역이 함께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사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의 다수는 여전히 한 방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부터가 그렇고, 전북 주민들의 새만금사업 유치 열기나 부산과 경남북 주민들의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이 모두 그런 환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은 세금으로 경기장 건설 등 막대한 건설사업을 벌이게 돼 오히려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보다는 재정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 그렇게 열을 올린 것도 바로 이런 환상 때문이다. 하지만 전남도와 전남 영암군이 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했다가 이미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신기루일 뿐이다. 그것은 그들 사업이나 행사 유치를 통해 이득을 보는 재벌건설업체와 지역토호세력,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노린 외지 부동산 투기세력에게는 좋을지 모르나 결코 시민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정말 아시안게임이나 F1 대회를 치르고 새만금이나 경인운하사업을 할 돈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복지시설을 짓고 다양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지역의 인재를 키웠더라면 한국경제는 중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아졌을 것이다.

경제 발전은 그렇게 한 방에 이뤄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조성된 양질의 생활환경 속에서 인적 자원과 자본, 기술, 문화환경 등이 결합할 때 생겨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창조경제의 성격상 탑다운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하는 창조경제가 뭔지 눈치 살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창조경제는 사실 그런 일방적 지시와 눈치 살피기의 정반대편에 있는 개념이다. 더구나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현오석, 서승환 등 주요 경제정책 라인은 창조경제와는 거리가 먼 개발경제론자들이다. 사실 한국의 관료들 대부분이 창조경제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업무 방식과 문화에 젖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창조경제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될 리가 없다. 문화정책이라고 하면 예술가들을 키우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창작스튜디오라는 건물 짓는 사람들, 홍대 앞을 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해 오히려 가난한 예술가들을 내쫓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창조경제는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감성과 감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그나마 추진할 때 가능한 일이다. 정말 창조경제를 하고 싶다면 민간의 창조적 감수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시켜야 한다. 그 포스트의 주요 인사들은 지금 국장급 관료들보다 평균 20년 가량은 젊은 세대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될 것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에서 신간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을 출간했습니다. 출간 직후 예스24 '오늘의 책' 과 알라딘 '편집자의 선택'에 선정된 이 책을 선대인경제연구소 웹사이트(www.sdinomics.com) 링크를 통해 사시면 좀 더 저렴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소 공지사항 참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13. 4. 1.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