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영어 몰입교육 논란이 불거지며 사교육비를 늘릴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었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가 2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는 20조 9천억원으로 전년(20조400억원)에 비해 4.3% 증가하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23만3천원)도 전년(22만2천원)에 비해 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과부는 물가상승률(4.7%)을 감안하면 그리 큰 증가 폭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실질임금뿐만 아니라 명목임금까지 줄어들고 소비를 급격히 줄이고 있는 가운데 사교육비가 4.3%가량 늘어났다는 것은 결코 적은 증가율이 아니다. 

 

 더구나 세부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사교육비가 늘어났음이 명백하다. 일반 교과별로는 전년에 비해 영어(11.8%)와 수학(8.8%)의 사교육비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고 논술(-12.5%) 사교육비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가장 강조한 것이 소위 '아륀지'로 희화화된 영어몰입교육, 영어 공교육 완성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교육비가 가장 증가한 교과 영역이 바로 영어라는 것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교육 증가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더구나 대입자율화 정책에 따라 대학들이 2009학년도 입시에서 논술고사 시행을 대폭 축소해 논술 사교육비가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는 지난해 사교육이 크게 늘었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현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정부가 아닌가. 공약과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 4개 교육기관은 이날 오전 코리아나호텔에서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공동선언을 했다.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의 환경에 묶여있고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해 교육 주체들이 함께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에 나서 사교육비를 줄여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현 정부와 현 정부와 배가 맞는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온갖 엉터리 교육정책들을 남발해놓고, 무슨 염치가 있어서 그런 ‘눈 가리고 아웅 쑈’를 한다는 말인가. 정말 기만도 이만저만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현 정부는 지난해 9월말에도 이처럼 황당한 생쑈를 벌인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 23일 국무회의에서 "학원비가 크게 올라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면서 실태조사와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합동점검단을 꾸려 학원의 탈세 및 담합을 단속하는 등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자신들이 사교육비가 오를 수밖에 없는 제도와 정책들을 내놓고 이를 마치 일부 비양심적인 학원업계의 행태 때문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원업계가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긴 탓에 각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난 측면도 있고, 학원업계 내에 탈세와 담합 행위가 만연한다면 당연히 찾아내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권출범 하자마자 학교자율화 방침을 천명하고 국제중 신설, 기숙형 공립고 및 자사고 100개 설립과 고교 선택권제 도입 등 한결같이 학교교육의 사교육화와 사교육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온 것은 바로 이명박정부 자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교육비가 너무 오른다며 학원비를 단속하겠다고 설레발을 치다가 이제는 사교육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오자 ‘공교육 활성화’선언이라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 정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를 전국에 300곳을 지정, 한 학교당 평균 2억원씩 모두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사교육을 부추겨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을 늘이게 하고, 다시 가계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으로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코미디도 이런 서글픈 코미디가 없다.

 

정말 이 정권의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엿부러 시간을 내 설명해주겠다. 현 정부의 각종 교육정책들이 왜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의존을 강화하는지를 보려면 한국 학교교육의 왜곡된 경쟁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 고교 평준화의 틀이 유지된 외환위기 이전 한국 사회의 성공 경로는 크게 세칭 일류대→변호사/의사 등 전문직과 일류 직장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88만원세대와 같은 신조어들이 상징하듯이 양질의 직장은 부족해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졌으며 실업률은 높아졌다. 또 계층간 소득 및 자산 양극화가 심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이른바 소수는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다수는 과거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승자독식 구조’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성공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앞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큰 몫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나 가계는 성공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앞설 수 있다면 상당한 투자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의 사교육에 조금이라도 더 투자해 자녀가 좋은 대학→좋은 직장이라는 ‘성공 코스’에 진입할 수 있다면 투자수익률 관점에서 수지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이런 방향으로 치열한 경쟁을 가속화해 왔다. 이런 ‘승자독식 구조’에서 이득을 보는 일부 소수 기득권 계층과 이들을 기반으로 삼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투자대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정책 및 제도를 빈익빈 부익부 구조로 바꾸도록 애써온 측면도 작용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어고와 과학기술고 등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 등이 확대돼온 반면 학교교육은 계속 위기를 겪고 있는 과정도 이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외환위기 이후 성공경로가 특목고/자사고→명문대→전문직/대기업 직장 구조로 한 단계가 더 추가됐다고 할 수 있다. 성공경로가 한 단계 덧붙여지는 것은 개인과 가계의 경쟁이 한 단계 더 빨리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초기의 조그만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적인 차이로 이어지는 경로의존(Path Dependency) 현상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1점 차이로 A라는 학생은 외고에 진학하고 B라는 학생은 외고에 진학하는 데 실패했다고 하자. 이 같은 초기의 차이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향후 최종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차이가 결코 작지 않을 수 있다. 가령 A라는 학생은 외고→명문대→전문직/고소득 연봉자의 경로를 밟는 반면, B라는 학생은 일반고→비명문대→저소득 직장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을 개연성이 커진다. 물론 한 번의 차이를 만회할 기회가 도중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진정한 의미의 ‘두 번째 기회’는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심화될수록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좀더 많은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자녀를 특목고에 진학시키려는 유인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특목고 진학을 노리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아래 <도표1>의 전개형(extensive) 게임이론 모형을 통해 살펴볼 수도 있다. 전개형 게임방식이란 도리짓고땡 화투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선택을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먼저 화투 게임 시작 전에 판돈 10원씩을 건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시작 전의 초기 상태는 학부모 A와 학부모 B가 사교육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반에서 평균 10등을 다투는 자녀를 각각 두고 있다. 즉 두 학부모 자녀의 성적이 (10등, 10등)으로 같다. 또 설명의 편의를 위해 학부모 A는 고소득층이며 학부모 B는 중하위 소득계층이다. 선행학습 효과든 예상시험문제 풀기 연습이든 사교육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며, 학부모의 선택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도표 1> 사교육 팽창을 초래하는 교육정책


 

 


이제 고소득자인 학부모 A는 정부가 학교자율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정보를 접한 후 자신의 자녀에 대해 사교육을 시킬지를 결정한다. 즉 판돈을 얼마를 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만일 월 50만원짜리 사교육을 선택하면 자신의 자녀는 5등으로 올라서는 반면 상대방 자녀는 15등으로 내려가고(5등, 15등), 공교육을 선택하면 자신의 자녀와 상대방의 자녀 모두 10등으로 같다(10등, 10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부모 A는 당연히 월 50만원의 판돈을 걸고 사교육을 시켜 (5등, 15등)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다음에, 중하위 소득계층인 학부모 B는 학교자율화 확대 정책과 고소득자인 학부모 A가 사교육에 50만원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학부모 B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50만원 콜을 하며 사교육을 선택하게 된다. 그 경우 두 학부모의 자녀 성적은 (10등, 10등)으로 처음 초기 상태로 환원되게 된다. 결국 두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사교육을 선택하지만 결과는 고스톱 게임의 판돈만 50만원으로 올라갈 뿐 성적을 올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등수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소득자인 학부모 A는 판돈 올리기를 주장한다. 학부모 B의 밑천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돈으로 밀어 부치려는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정부가 자사고 100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다. 말하자면 판돈을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리는 정책을 발표하는 셈인 것이다. 이를 보고 학부모 A는 올라간 판돈을 걸고 자사고 입학을 위해 사교육을 선택하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이 경우 학부모 B는 갈등을 하게 된다. 밑천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든 것을 줄여가며 사교육을 선택해 게임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 결과 두 학부모 자녀의 성적은 다시 (10등, 10등)으로 같아지게 된다.


여기에 이명박정부가 다시 국제중 설립이라는 정책으로 화투판의 판돈을 월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일거에 끌어 올린다. 학부모 A는 이를 환영하지만 학부모 B는 저축통장을 해약하고 집을 팔지 않으면 거의 포기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된다. 학부모 B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식으로 200만원으로 올라간 판돈을 걸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이런 게임이 무한대로 계속될 수 있다. 말하자면 사교육시장이 무한대로 계속 확대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은 모조리 붕괴되고 이른바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일부 사립학교들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립학교들은 프리미엄을 내세워 천문학적 등록금을 내라고 할 것이다. 또 중하위 소득의 일반서민 계층은 계속높아지는 판돈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고소득계층만을 위한 천문학적등록금의 사립학교와 사교육시장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중고 공교육의 경쟁이 불필요하게 과열되면 교육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엉뚱한 목표가 대체하게 된다. 원래 초중고 학교교육 과정은 미성년자인 어린 학생들이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필요한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한편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필요한 지식과 판단력을 습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정책은 이러한 기본목적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러한 기본목적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소모적인 ‘다단계 돈 지르기’ 교육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사교육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돈을 많이 들이든 돈을 들이지 않든 일정 수의 누군가는 이른바 명문대에 반드시 가게 되어 있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20조원을 투자하든 100조원을 투자하든 또는 공교육이 무너지든 사교육이 횡행하든 결국에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정책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누군가는 명문대에 가는데 가능한 한 돈을 들이지 않고 적성별 능력별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선발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특목고니 영재고니 국제중이니 하는 소모적인 돈 지르기 게임을 중간에 다단계식으로 개입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교육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특목고니 영재고니 국제중이니 하는 다단계 돈 지르기 소모전은 단지 명문대에 가기 위한, 그야말로 불요불급한 선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이른바 명문대들의 특권을 유지해주기 위한 반칙적이고 편법적인 다단계 선발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어차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다단계 돈 지르기 소모전을 하지 않더라도 공부를 잘 하며 어떤 방식에 의해 선발을 하더라도 명문대를 갈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100명의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들이 평준화와 특목고 방식의 두 가지 중간단계를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평준화 방식으로 명문대를 가는 아이들과 특목고 방식으로 명문대를 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그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수십 조원의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모든 학부모들이 온갖 반칙과 편법 등 아귀다툼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제도상의 미미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망국적인 소모적 입시제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렇다고 국제중이나 특목고와 같은 소모적인 다단계 돈 지르기를 거쳐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대학 가자마자 노벨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논문을 금방 쓰기라도 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기껏해야 수학문제 하나더 풀 수 있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있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만일 국제중이나 특목고와 같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세계적인 논문을 써낼 정도의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면 대한민국 대학을 모조리 없애버려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수준도 못 따라가는 대학을 놔둬서 무엇 하겠는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정권이 남발하고 있는 국제중이나 특목고, 자사고 확대와 같은 교육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이명박정부의 엉터리 교육정책은 단지 교육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엉터리 교육정책의 남발로 한국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큰 비효율과 낭비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각 가정은 지출 여력을 넘어서는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가계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곳에 최적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다른 생산적인 영역으로 가야 할 돈들이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사교육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바로 이 시기에 말이다. 제발 염치라도 있으면 자신들의 엉터리 정책 남발에 대해 석고대죄부터 하기 바란다. 정말 학생과 학부모간의 백해무익한 무한경쟁을 부추기면서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양 ‘공교육 활성화 선언’과 같은 이벤트나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설업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4대강 사업처럼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탕진하고 사회복지예산은 대폭 줄이면서도 ‘신빈곤층’ 발언이나 아무 생각없이 뱉었다가 집어삼키는 현 정권의 유치한 쇼를 여러번 봐줄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28. 09:17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


지역아동복지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학습을 지도하거나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부모들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입니다. 주로 아이들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해주기 때문에 ‘공부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순수 비영리민간단체들이 시작했던 사업인데, 그 사회적 역할을 인정받아 정부 예산 지원을 일부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산은 센터 운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가 급식비를 뺀 공부방 월 평균 운영비만 600만원이라는 정책연구 보고서를 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 들어 공부방 한 곳당 지원액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월 지원비는 220만원. 올해 초 월 465만원을 지원키로 국회 보건복지위(보건복지위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런 현실을 이해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가 의결했으나,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안은 월 219만원으로 줄어들었네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서민들이 고통받고, 이명박 대통령이 ‘신빈곤층’ 운운하며 생쑈를 벌이는 와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사회복지 일을 하는 아내 말에 따르면 예산 지원이 부족해 이들 아동복지센터 직원들은 사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들 인건비를 받아간다고 합니다. 이들 직원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박봉(월 1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네요.)이지만,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공동체 생활을 몸에 익히며, 학원 과외를 받는 아이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여건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끼며 버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보람과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2~3년 지나면 여건이 너무 힘들어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그런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극빈자나 저소득층, 장애인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이들 아이들의 가정이 경제적 문제 등으로 해체 위기를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들 센터에 아이들을 맡기려는 수요는 늘고 있는데, 수용 인원과 예산에 한계가 있어 다 못 받는다고 합니다.


이 같은 지역아동복지센터의 수는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예산 지원액도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선진국 가운데는 이들 지역아동센터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건립하고, 운영하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민간에서 하는 사업들을 정부가 쥐꼬리만큼 보조해주는 수준인데, 그마저도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국의 지역아동센터에 정부가 지원해주는 예산은 모두 합해봐야 359억원. 이 예산을 두 배로 늘려봐야 72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 정부는 최근 차상위 계층 21만명에 대한 의료급여를 오는 4월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기초생활 수급자 숫자도 지난해보다 1만명 줄였습니다. 정부가 겉으로 말하는 사회 안전망 강화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이 정도 수준의 복지지원도 감당할 수 없는 나라라면 말도 안 합니다. 온갖 불요불급한 건설토목사업에는 돈을 펑펑 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당장 현 정부가 국민들 대다수가 그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4대강 하천정비 사업에 털어 넣는 돈만 향후 4년간 18조원이라고 합니다. 지역아동센터에 올해 투입하는 돈의 500배가 넘는 돈입니다. 더구나 정부는 올해 4대강 정비사업 예산 등 지난해보다 26%나 증액된 SOC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이미 기존에 발표한 대로 종합부동산세 대폭 완화와 소득세법, 법인세, 상속세 완화 등을 통해 상류층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안을 관철시켰습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올초 ‘녹색뉴딜’이라는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을 또 한 번 내놓았습니다. ‘녹색’이라고 포장했지만, 도대체 왜 하는지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건설토목 사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고급 스테이크로 포장한 저질 소시지’였습니다.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 ‘삽질경제학’의 대가라서 좀 더 심하긴 하겠지만, 한국 정부의 토건사업 위주 개발 일변도 정책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역 정치권과 함께 티 나는 개발사업을 하면 되지 정말 시민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급을 하면 수요는 생긴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따라 개발계획을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개발시대 때에나 통하던 방식입니다. 개발시대 때에는 기본적인 사회인프라가 부족하니 짓기만 하면 다 수요가 생겨나고 성장 잠재력 확충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웬만한 사회기반시설은 대부분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콘크리트 사업에 투자해봤자, 성장 잠재력이 얼마나 확충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이용하지도 않는 공항, 도로, 관광지를 만들어놓는다고 그게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장 주변에 사시는 곳부터 한 번 확인해보세요. 제가 서울시에 재직하면서 느꼈지만, 도서관 짓는데 1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정작 매년 도서 구입비 예산은 1억원 남짓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에 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책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문예회관이나 공연장이라며 수백억원을 들이는데 정작 짓고 나면 질 낮은 프로그램밖에 안 돌아갑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일산의 킨텍스나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산 킨텍스를 짓는데는 2400억원, 종합운동장을 짓는데는 약 1200억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산 킨텍스의 연중 가동률은 50%도 안팎입니다. 그나마 그 정도 규모의 전시면적이 필요한 행사를 치르는 날 수는 일년에 불과 2~3주 안팎입니다. 그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는 안에서 뭐하는지 아십니까? 겨울에 인공 눈썰매장 한 켠에서 운용하고, 여름에 간이 물놀이장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기존에 있는 킨텍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지금 제2킨텍스를 짓는다고 난리입니다.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부 리그팀이 경기하는 게 일년에 10여차례에 불과한데, 그 외에는 그 큰 운동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시민들에게 거의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고, 경제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막대한 개발사업을 누구를 위해 하는 겁니까?


위의 지역아동센터 예에서 본 거서처럼 돈들이 남아돌아서, 다른 데는 쓸 데가 없어서 이런데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 간 아이들을 키우던 제 처가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사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한국의 열악한 복지 현실에 마음이 찢어질 정도랍니다. 장애 때문에 생활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해 변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 가만 있던 집값이 재개발 붐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라 자활대상자 지원에서 제외된 노인, 한 달 생활비 10만원 정도로 버티며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 등등. 아내가 담당하는 케이스만 220가구. 그런데 아내와 동료 사회복지사 한 명의 급료를 포함해 220가구를 대상으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배정된 1년 예산은 겨우 1억5000만원이랍니다. 아내는 예산이 몇 천만원만 더 있어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안타까워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들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체로 매년 수십조원씩 낭비하면서 당장 기초적인 사회복지 체계도 제대로 구축을 못하고 있다니요. 그런데 아직도 정부 관료와 정치권은 이런 개발사업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왜냐?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뭘 만들고 짓는다 하면 사람들이 혹하니까요. 정치권은 표 얻을 수 있고, 뒷돈 받을 수 있으니 좋고, 관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복지 프로그램 돌리느니 생색나는 실적 만들어서 좋고, 건설업체들은 사업으로 돈 벌어서 좋습니다. 관변 학자나 연구소들은 용역 프로젝트 많아져서 좋고, 언론들은 건설업체들 광고 물량 많아져서 좋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개발 옹호세력들을 저는 ‘개발 5적’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토건족, 건설족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일본도 버블이 붕괴할 때 토건족의 압력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도 없는 댐이 지어지고 노루와 토끼만 다니는 도로도 숱하게 생겼습니다. 많은 리조트와 골프장은 버려지고 도산했고요. 이런 개발사업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 재정 고갈을 부추겼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아직도 ‘개발만이 살길’인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부유층을 위해 막대한 감세안까지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니 재정건전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있을까요?


이제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나 수요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경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이 첨단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이 이런 영역으로 배분되도록 해야 합니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한 국가경제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 배분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사람에게 투자해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창출하고, 첨단기술을 육성합니다. 한국 같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 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냅니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미국 보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보스턴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것도, 고층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0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웬만한 도로는 누더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보스턴이 못 사는 동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스턴의 평균 가구 소득은 미국 평균의 약 2배 정도입니다. 소득 수준으로는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도시입니다. 싱가폴이 2000년대 초반 일시적인 불경기로 휘청거릴 때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던 도시도 바로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싱가폴 경제는 이후 생명공학기술과 의료산업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보스턴에 뭐가 있길래 행정구역상으로 60여만명, 광역 보스턴(Greater Boston)으로 따져도 340만 정도에 불과한 도시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낼까요?


보스턴에는 인재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과 MIT, 보스턴대학(BU), 보스턴칼리지(BC),터프츠 대학 등을 필두로 100여개의 각종 대학들에서 매년 엄청난 인재가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인재들이 뉴욕이나 워싱턴으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보스턴에 남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하버드 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해 있고, 관련 분야에 쏟아져 나오는 인재들을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제약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MIT를 중심으로 한 각종 IT산업과 로봇공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미국 전역에서 이전해옵니다. 또한 인재들은 자신들의 벤처기업을 만들어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베인 앤 컴퍼니나 보스턴 컨설팅그룹 등 세계 유수의 컨설팅펌들도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역시 보스턴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이들 회사의 토대가 됐습니다.

 

보스턴 필하모닉과 보스턴 발레단처럼 보스턴은 젊은 예술혼과 창조성이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인구 60만의 도시에 공립도서관만 36개나 됩니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닌, 진짜 공립도서관이 30개도 채 안 되는 것과 너무나 비교됩니다. 이런 보스턴 경제의 활력이 모두 사람과 교육,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선진경제가 가는 길이 바로 이런 방향입니다.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자식 세대가 살 수 있는,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무턱대고 내지르는 토건국가적 개발사업 남발을 자제해야 합니다. 충분히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과거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적 행태는 멈춰야 합니다. 대신 그렇게 아낀 돈을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중고 과정에서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만들고, 오히려 ‘경쟁의 무풍지대’인 대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벌 기업들의 독과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조 대신 국내시장에서도 국제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더 많은 도서관을, 더 많은 문화공연장을, 더 많은 체육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소득층과 노후세대를 위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체계적으로 마련해가야 합니다. 제대로 된 공공건설사업 발주 시스템을 만들면 이를 위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제에 희망이 있습니다. 땅과 집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세대 홀로, 또는 부모세대 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합심해서 힘과 지혜를 모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27. 10:26

많은 이들이 최근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집값 반등에 이러다 다시 집값이 상승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더구나 현 정부는 말로는 온갖 소리를 다 해대지만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실상 올인한 정부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난번 글에서 필자는 강남 아파트의 거래 현황을 통해 왜 강남 집값 상승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좀더 폭을 넓혀 왜 지금의 일시적인 집값 반등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인지를 미분양물량의 조정기간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호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유효 수요에 비해 주택은 매우 과잉 공급된 상태다.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90년대 전반에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으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 후에도 주택은 계속 공급돼 미분양 물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93년부터 이미 미분양 물량은 크게 늘어나 95년 미분양 물량은 15만 호를 넘어섰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주택 가격이 9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래프상으로 명목가격지수는 크게 안 떨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지수로는 외환위기 때까지 거의 반토막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기를 바란다) 사실 미분양 물량은 91년부터 꾸준히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당시에는 건설업계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금융시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공식 미분양 물량과 비공식 미분양 물량의 괴리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95년 공식적으로만 15만여호를 넘어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 최소 3~4년 이상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16만호를 넘는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여러가지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당시에는 가계 저축률이 20%를 넘어설 정도로 여윳돈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담보대출 310조원과 2%대의 가계 저축률이 말해주듯 가계의 매수 여력이 고갈된 상태다. 사실 지금은 그동안 무리하게 집을 산 가계들이 빚 청산과 채무 조정을 하기에 바쁘다. 사실 현재 집값 수준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샀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극심한 경제 침체 속에서도 여전히 충분한 구매력을 가진 가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획부동산을 비롯한 투기꾼들이 준동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토지보상금을 받은 가계들이 집을 살 수도 있겠지만, 전체 부동산시장의 판세를 바꾸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둘째, 당시에는 경제성장율과 가계의 소득 증가율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 기정사실화돼 있고, 가계의 실질소득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세째,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한국의 수출대상인 세계 경기가 호조를 보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세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갈수록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알리는 신호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네째, 더구나 현재의 미분양물량 16만호는 최고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90년대 초중반 미분양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데는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뒤늦게 200만호 주택 공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탓이 크다. 그런데 2006년경부터 본격화된 제2기 수도권 신도시와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한꺼번에 지정한 뉴타운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2010년대에 본격화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겠지만, 적어도 계획상으로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공공택지와 뉴타운, 재개발 등 도시 정비사업 지구에서만 약 135만여 가구가 신규로 수도권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참고로, 이 물량은 민간 택지 공급 물량이나 각 지자체별 지구단위 계획에 의한 공동주택 공급 물량은 빠진 수치이다.

다섯째, 2000년대 부동산 버블이 가장 극심했던 수도권의 경우로 한정해본다면 당시에는 수도권으로 매년 20만~30만명이 순유입되던 시기였다. 그만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 해소에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지난해 5만명 전후로 줄어들었다. 수도권 인구유입도 이제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추세로 본다면 향후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더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자,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현재의 미분양물량을 해소하는데 몇 년 정도가 걸릴까? 지금보다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이 훨씬 좋았던 90년대 초중반에도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데 미분양 물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95년으로부터 계산해도 최소 3~4년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는 얼마나 걸린다고 볼 수 있을까? 미분양 물량만 놓고 봐도 주택 시장의 침체가 최소 3~4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3~4년 후면 주택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미분양 물량 측면에서만 최소 3~4년 걸린다는 것일뿐이다.

 

다른 요인들까지 고려하면 국내 주택시장은 앞으로는 몇 년 전과 같은 폭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외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가계의 부동산 부채 청산 기간 등 현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2010년대 이후 본격 전개될 급속한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새로운 주택시장 유입층인 젋은 세대의 소득 감소, 수도권 순유입 인구의 추세적 감소 등 때문에 주택시장이 90년대 후반과 같은 회복세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런 마당에 유착에 빠진 건설업계와 '건설족 정부'는 전세계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중대형 분양 위주 공급을 고집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국민들의 투기심리를 불러일으켜 거품이 잔뜩 묻은 고분양가 아파트들을 팔아먹으려 한다. 하지만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부동산 거품을 억지로 떠받치려는 이 같은 시도들 때문에 한국 주택시장은 장기침체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과 정부, 건설업계의 무분별한 정책과 단기적 과욕이 바로 국내 주택시장의 정상적 자기조절 과정을 깨뜨려 장기침체를 가져오는 것이다. 경제의 큰 흐름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주택 시장과 이를 둘러싼 국내외 경제의 큰 흐름을 읽고 있다면 부동산시장의 일시적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24. 10:36

현재 수도권 주택시장에서는 주택 수급 측면에서 심각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는 현재 집값 수준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내내 계속됐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함에 따라 이제 가계가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졌던 부채를 청산해야 할 시기다.

이런 가운데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호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유효 수요에 비해 주택은 매우 과잉 공급된 상태다. 주택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은 있겠지만, 올해부터 2015년까지 제2기 신도시와 뉴타운 등에서 최소 135만여 가구가 신규로 수도권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이처럼 현재 집값과 가계의 경제력 수준에서 볼 때 과다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거나 계획돼 있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서민들이 제대로 된 주거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인가구 문제다. 최근 주택건설업계는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2008년 기준으로 110%에 육박하자 1인가구 수 증가를 거론하며 주택부족론을 설파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주택유효수요 인구가 줄더라도 1인가구가 늘어나 (분양) 주택 공급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계상에서 큰 문제가 있기는 하나, 어쨌든 2005년 기준으로 1인가구는 317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1인가구 대부분은 주택을 소유할만한 유효 소득계층으로 보기 어렵다. 2008년 현재 1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31만원으로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소득 327만원의 약 40% 정도에 불과했다. 또 서울시내 1인 가구 가운데 월 100만원 미만 소득자가 45%, 100~200만원 소득자가 31%로 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지금의 고분양 주택 유효수요계층이라고 볼 수 있을 월 소득 300만원 이상 1인 가구는 8%에 불과했다. 1인가구 수 증가를 근거로 주택이 부족하니 집값은 오르게 마련이고, 분양주택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택업계의 논리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한편 급속한 고령화로 서울의 경우 2000년 26만여 가구인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수가 2020년경에는 약 81만여 가구로 세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저소득층인 1인가구의 급증이나 고령 가구의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공공임대/전세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 1인가구 등을 위해 중대형 평형 위주의 고분양가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 같은 착시와 건설업계의 욕심 때문에 현재도 전체 미분양 물량 가운데 중대형 평형의 미분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7월말 기준 중대형 평형이라고 볼 수 있는 85㎡ 초과 평형이 전체 미분양 물량의 53.8%를 차지했다. 또한 현재 2기 신도시를 비롯, 수도권 공공택지와 신도시 사업,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사업 등을 통해 향후 공급될 물량의 상당수가 중대형 평형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판교신도시 등 2기 신도시와 수도권 주요 공공택지에서 공급될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평형은 전체의 37.3%로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때보다 약 10.4%포인트 가량 비중이 더 높다.

 

또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60㎡이하 중소형 주택비율은 재개발사업 전 63%에서 사업 후 30%로 줄어들고, 매매가 5억원 미만 주택 비율도 86%에서 30%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업 전 전세가 4000만원 미만 주택 비율이 83%에 이르렀으나 사업 후에는 이 같은 주택은 단 하나도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다가구 주택이 사라져 저소득층은 심각한 주거난을 겪는 한편, 경기 남부 축에서는 넘쳐나는 중대형 물량으로 집 주인들이 역전세난을 겪고 있다. 이처럼 현 상태에서도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주택 수급상의 엄청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택건설업체들은 여전히 정부 지원을 배경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져 고가 중대형 일변도의 공급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 또한 건설업계와 유착에 빠져 투기수요를 부추기는 등 국가경제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지어진 중대형 평형 위주의 분양 물량은 대규모로 미분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더욱 장기화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23. 08:57

강연을 다닐 때마다 많이 느끼지만 제가 <부동산 대폭락시대가 온다>의 저자이다 보니 부동산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들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부동산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부동산문제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가계 입장에서 부동산은 가계 자산 가운데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이라고 해봐야 집 한 채 가질까 말까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주택 가격의 향방이 궁금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여러 강연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더라도 당혹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수준을 넘어 강남 집값의 호가 위주 반짝 반등세에 맞춰 수익을 노리고 해당 지역 집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건전한 경제 생활을 하기 위한 가계의 일반적인 관심 수준을 훌쩍 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부 분들 가운데는 그런 문제에 대한 판단까지 저한테 묻는데,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한 자신의 투자 판단에 대한 의견에 제가 굳이 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자신의 판단으로, 자기 책임 아래 조용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야를 좀더 넓혀 정부 정책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지금 미국발 부동산 버블 붕괴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 집값 폭등을 경험했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에서도 부동산 버블이 본격적으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처럼 필사적으로 버블 붕괴를 가로막는 정부는 제대로 된 나라치고 없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해 사그라드는 일반 국민들의 투기 심리를 부추기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는다고 관련 세금을 완화하고 거래 규제를 완화하고 사실상 대출규제를 완화하며 행정적으로 재개발 재건축 등의 주택사업 과정의 사업성을 인위적으로 높여주는 등 주택 및 부동산 관련 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집값을 낮추기 위한 것도 아니고, 과도했던 부동산 투기 거품이 시장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가라앉고 있는 시점에 집값을 오히려 떠받치기 위해 온갖 규제를 해제하고 온갖 개발 특혜를 제공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치고 어디에 있을까요?

이처럼 제대로 된 정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해괴망칙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일반 가계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경제가 급속히 침체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집값 떠받치기’를 사명으로 태어난 정부이니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이 정부가 무슨 짓을 할지에 관해서는 저도 모르기는 피차 일반입니다. 이명박의 속에 들어앉지 않은 이상 알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지난해 4/4분기 -5.6%, 연환산으로 -22%대의 경악할만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공장가동률이 뚝뚝 떨어지고 감원과 해고가 양산되는 상황에서도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웃기는 일 아닌가요? 이런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현 정부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인식,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과 그 구체적 양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같은 인식을 전제로 많은 분들이 관심 갖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해 한 번 살펴볼까요.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들을 중심으로 반짝 가격 반등이 있었습니다. 집값이 떨어질 때는 당연히 국지적으로, 상황에 따라 매수자와 매도자간 심리 공방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세 하락장에서 이 같은 심리 공방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합니다. 물론 강남이나 잠실 재건축 단지 등의 경우 정부나 서울시가 나서서 사업성을 좋게 해준 것이므로 단기적으로 집값이 1~2억 정도 반등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같은 반짝 반등세도 대세하락 흐름 속에 곧 묻힐 것입니다. 실제로 강남 3구, 강남 3구 안에서도 재건축 단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최악의 거래 침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또 양도세를 감면한다고 해봐야 호가 위주로 떨어지던 집값 하락세를 실제 거래가격으로 현실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금 집을 살 사람은 다 샀습니다. 자기 소득도 없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지난 몇 년간 다 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증거가 공식적으로면 310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담보대출 잔고입니다. 비공식적인 부동산 담보대출까지 합치면 이를 훌쩍 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전세계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도 지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일례로, 제조업가동률 그래프를 보면 외환위기 때보다 떠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현 정부에 이미 장악당한 KBS와 원래 재벌방송인 SBS,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언론들이 기만적인 왜곡보도를 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잘못된 현실인식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빚을 내서 집을 샀던 많은 이들이 엄청난 부채 상환 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론이 입만 열면 구매력 있는 실수요자들이 샀다고 하는 강남만 하더라도 80% 이상의 사람들이 빚을 얻어 집을 샀습니다. 집을 사놓고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20%도 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투기 범벅입니다. 그 사람들도 지금 같은 경제 위기에서 빚 청산에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에 조금 버티고는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손 들고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조금 더 길게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수도권은 주택 공급과잉입니다. 단적인 증거가 공식적으로만 3만호를 넘는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현재 계획된 주택공급물량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15년까지 140만호 가량 됩니다. 경기 침체 여파를 고려해 보수적으로 산정한 주택 공급 물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경이 되면 수도권 전체에서는 수십만호의 공급 초과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통계청 인구 추계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주택을 집중적으로 구입하는 35~54세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실제로 은퇴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입니다. 또 노동생산성이 높은 30~40대 인구가 이미 2006년부터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15세에서 64세로 분류되는 생산가능 인구도 2016년부터 감소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경제 활력이 감퇴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부동산 거품기에 졌던 부채 청산을 하느라 몇 년간 허덕이는 사이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로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 1인가구 증가나 인구 1000명당 주택 수 등을 근거로 아직도 주택이 부족하다고 떠벌리는 것은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정보 조작이자 왜곡일 뿐입니다. 제가 이전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1인가구의 4분의 3 이상은 월 소득 200만원 이하로 지금 공급되는 분양주택의 유효 수요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주택정책상의 사회적 보호와 지원 대상이 되야 할 사람들입니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주택 시장에서 유효 수요인 가구라는 단위 대신 인구를 끌어와 마치 주택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건설족들의 술수일 뿐입니다.

 

지금 매매용 주택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한 것은 공공주택이고 소형주택일 뿐입니다. OECD국가들 대부분이 20~30%의 공공주택 재고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불과 3.2%입니다. 투자용, 투기용 주택은 포화상태이고 엄청난 공급 초과가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소득층과 가능하다면 중산층까지 저렴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전세주택은 태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쾌적하고 저렴한 공공임대/전세주택을 최대한 많이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공공주택에 대한 수요는 넘쳐납니다. 서울시가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이 1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것도 그 같은 수요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자신들의 과욕으로 도산 위기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에 온갖 명목을 붙여 국민의 혈세를 지원해주고 거품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고분양가 주택을 짓게 합니다. 반면 온갖 규제를 다 풀어 국민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거품 잔뜩 묻은 아파트를 사게 할 투기수요 만들기에 안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동산 버블기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빠지는 현 상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앞뒤 분간 못하고 자신의 경제체력을 넘어서서 투기적 차익을 노리는 주택 거래를 하는 사람은 투기꾼이 아니라면 바보일뿐입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호구입니다.

 

굴곡은 있겠지만, 집값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 대세하락할 것입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정된 주거 확보 측면에서 집 살 시기를 노리는 분들이라면 결코 서둘 이유가 없습니다. 넉넉잡아 향후 5년 안에 지금 집값 수준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에 집을 살 수 있는 시기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괜히 ‘강부자 정권’과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매달고 있는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에 휩쓸려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자산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경험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최대한 집값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해온 제가 굳이 이렇게까지 말씀드리는 것은 최근 진행되는 상황 때문입니다. 상당수 분들이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해체 움직임으로 집값이 재폭등하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가 각종 개발 호재를 만들어내면 최근 강남 재건축처럼 일부 지역에서 반짝 반등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과거와 같은 전반적 폭등세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일부에서 자꾸 외환위기 때와 같은 V자형 반등을 말씀하시는데, 가계의 경제체력과 부채 수준,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전반적 체력을 고려할 때 그때와 지금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6~7년 동안의 집값 조정을 끝내고 반등할 시점이었던 외환위기 때와 7~8년간의 집값 폭등을 끝내고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다릅니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구 감소와 소득 감소, 부채 청산으로 인한 수요 급감과 향후 예정된 극심한 공급 과잉 양상을 생각하면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현 정부의 거듭된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본식 장기 부동산시장 침체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절대 현 정권과 일부 언론의 선동책에 넘어가 가계경제의 위기를 자초하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부동산 거품과 그 거품에 편승한 과욕의 폐해가 어떠한지는 지금 전세계가 목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정부와 정치권의 거듭된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거품 때문에 고통받아 왔습니다. 부동산에 돈이 묶이는 바람에 내수가 침체하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됐고, 이제 버블 붕괴 과정의 혹독한 충격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버블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한국 경제는 너무나 막대한 부동산 버블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전세계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시기이고, 이것을 우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있겠지만, 한국경제가 정상적인 제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안타깝지만 감내해야 하는 충격입니다. 근본적 수술을 통해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 종양을 떼내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현 정권은 자신들 임기 내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속셈으로 이 같은 근본 수술을 미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악성 종양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해 부동산 투기판을 더욱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와 이와 연관된 건설경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 경제 전체를 희생하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시장원리’를 외치는 정권이 하는 짓마다 시장의 정상적인 조정 과정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땅값, 집값이 너무 높았고 사람은 똥값이었으므로 이제 사람값을 높이고 땅값, 집값은 낮아지는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런 흐름을 정반대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시장의 자기 조정 과정을 억지로 교란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과거 일본 정부가 버블 붕괴기에 썼던 건설경기부양책이 결국 좀비기업들을 양산해 이후 일본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됐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벌이고 있는 각종 정책도 시장의 자기 조정 메커니즘을 가로막아 결국은 부동산 시장, 더 나아가 한국 경제 전체의 침체를 장기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순전히 자신들 임기 내에 닥칠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정치적 욕심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전국민이, 그 중에서도 밑바닥 서민들이 입는다는 점에서 현 정권의 정책방향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 정권은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해 건설경기 부양한다’ ‘서민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가격 폭락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악한 여론 조작입니다. 현 정부는 4대강사업 등 쓸데없는 토건사업으로 가득한 건설경기 부양에 돈을 수십조원을 탕진하면서,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없애는 등 서민을 오히려 죽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억지로 부양하는 바람에 거래가 일어나지 않아 부동산중개업소와 이삿짐센터, 인테리어업자들이 죽어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있지만 실제 서민들의 대출금리는 줄지 않고 은행들의 예대마진 수입만 늘려주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살려 경제를 살린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환상이자 착각입니다. 경제를 살린 결과 나중에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부동산 시장도 자연스레 회복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은 한국경제의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인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는 한국경제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태어난다 해도 그것은 더욱 불공정한 경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경제, 조만간 또 다시 더 큰 위기를 몰고 올 지속불가능한 경제일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막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과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절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야권이 제대로 된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을 이뤄갈 세력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같은 구조개혁을 이뤄낼 제대로 된 정치세력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합니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지 않고 자산경제와 생산경제가 조화롭게 선순환하며 성장하는 나라. 지식정보화시대를 선도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금 제대로 된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을 주도할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7. 11:59









며칠 전 (2월 12일) MBC 뉴스에서 “정부, 아파트값 통제?‥시장 왜곡 우려라는 제목으로 국토부의 실거래가 관리 문제를 비판했다. 못 보신 분들은 이 링크(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41&newsid=20090213225706728&p=imbc)를 통해 한 번 보시기 바란다.


국토부는 부동산시장의 거래 투명화를 위해 도입한 주택실거래가 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MBC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는 “각 아파트의 기준가격 위 아래로 어느 정도의 폭을 정하고 이 폭을 벗어날 경우 적정하지 않은 거래가 포함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운데 적정 가격의 상한선을 벗어난 거래는 모두 공개하면서도 ‘다운계약’ 등의 방지를 위해 하한선을 벗어난 거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값이 오를 때는 모두 거래 가격이 공개되지만, 내릴 때는 일정 선 이하의 거래 가격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MBC뉴스에 소개된 국토해양부 담당자는 "8월부터 급락이 이제 시작됐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8월 중,후반 이후부터는 사실상은 부적정으로 떨어진 경우가 많죠"라고 말했다. MBC 뉴스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막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편 국토부는 누락건수는 물론이고 누락시키는 기준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국토부가 사실상 실거래가 통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몇 달 전 국토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문제에 대해 문의한 적이 있다. 그때도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 추이를 통해 도출된 기준가격에서 일정한 허용범위를 정하고, 부적정한 실거래 가격이라고 판단되면 한국감정원에 현장조사를 의뢰하고 있다”며 부적정 가격으로 판단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판단 기준이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당시 담당자는 적정가격의 상한선을 벗어난 거래가는 공개한다는 사실을 필자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 국토부 공인 통계인 국민은행 통계도 실상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시장의 폭락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 도표를 보면 오히려 지난해 하반기에도 집값이 소폭이나마 상승하다가 연말 이후에야 소폭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국민은행 통계도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정부 압력 때문에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물론 수도권 내에서도 인천이나 일부 개발 호재 지역에 따라 집값이 소폭 상승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하락한 경우도 많아 전체적으로는 통계상 집값 하락폭이 적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실제 부동산시장의 현장 분위기와 각종 부동산 통계의 하락폭은 딴판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자신들 입맛대로 통계를 관리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정부는 자금난에 빠진 건설업계를 지원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택가격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10월 21일 발표한 ‘가계 주거 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 방안’ 보도자료에는 정부가 공인하는 국민은행 통계가 아닌, 출처 불명의 부동산가격 자료가 실려 있다. 특히 이 자료에서는 서울 강남권과 수도권 신도시에서 최근 거래된 아파트 실제 가격은 2006년 말 고점 대비 약 15~20% 하락했다며 역시 출처 불명의 몇 개 아파트 거래 사례를 아래처럼 제시하고 있다.

 


강남권과 수도권 신도시에서 실제 거래된 가격은 '06년말 고점 대비 15~20% 수준 크게 하락 


대치동 A아파트(31평형) : ('06.12)11.0억원 → (‘08.9)8.9억원, 분당 B아파트 : ('06.10)7.5억원 → ('08.9)6.0억원, 용인 C아파트 : (’06.12)5.5억원 → (‘08.8)4.4억원


 (출처: 10.21대책 발표 자료 1쪽)


정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판단 잘못으로 생겨난 미분양 적체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의 집값 폭락세가 잘 드러난 자료를 써야 하겠는데, 당시 국민은행 통계는 전혀 떨어진 걸로 나오지 않으니 인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공인하는 통계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한편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출처도 밝히지 않은 주택가격 통계 자료를 갖다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한 마디로 파렴치하다 못해 코미디 수준의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건설업체들을 먹여살리려는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공인한 통계도 버리는 정부가 어떻게 서민을 위한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을 내놓겠는가?


국토부는 주택 보급률을 갖고도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오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국토부는 지난 연말에는 소위 ‘새로운 주택 보급률’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기존 주택보급률 산정방식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8.1%에 이르렀지만, 새 주택 보급률 산정방식으로는 99.6%로 100%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1인가구 증가와 다가구 주택의 구분 거처를 반영하기 위한 개정의 필요성이 일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계 전문가 의견 수렴을 한 지 불과 20일만에 새로운 산정 방식을 내놓은 과정은 곱게 보기 어렵다. 부동산 하락기에 주택보급률을 100% 아래로 내려서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므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건설업계의 주장을 뒷받침해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심리전’의 하나가 아니냐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또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라는 통계에 관한 것이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라는 것은 국토부가 2002년 건교부 시절 ‘2003~2012년간 주택종합계획’을 수립할 때 주택보급률과 함께 양적 지표로 삼겠다며 거론한 지표다. 하지만, 주택 시장의 유효 수요 단위는 개개인이 아닌 가구라는 점에서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라는 것을 주택정책의 주요 지표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에 가깝다. 간단해 보이지만 ‘가구’나 ‘주택’을 어느 범위로 한정할 것이냐에 대해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어서 국제적으로 통일된 지표를 만들기 어렵다. 그나마 가구가 아닌 인구당 주택 수는 상대적으로 비교하기가 용이해 국제적 비교 지표로 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나 ‘건설족’ 부동산 전문가들은 마치 이게 국제 표준인 양 떠벌리며 “주택 보급률은 많이 높아졌지만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라는 여전히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며 주택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족들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에서 한국은 280호 정도인데, 400~500호 수준이므로 주택공급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를 근거로 한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하겠다.)


필자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위와 같은 문제점을 설명한 뒤 국토부 담당자 두 사람에게 각국의 산정방식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니 우물쭈물하며 “자신들도 정확히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담당자는 “미국 경우에도 트레일러 같은 이동식 차량에 거주할 경우 이를 주택으로 치는 주도 있고, 아닌 주도 있다”고 답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당초부터 주택정책의 지표로 삼기 힘든 지표였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구체적인 주택 사정이 다 다른데도 국내 주택 공급이 부족하므로 주택을 더 지어야 한다는 건설족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일부로 갖다붙인 지표일 뿐인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각종 통계나 지표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국토부의 통계 관리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한다는 나라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렴치한 행태다. 더구나 정권마저 건설업계 사장 출신의 ‘건설족 정부’이니 오죽하겠는가. 어떻게 보면 자신들끼리는 지난 연말부터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하면서도 3%대 성장을 한다고 떠벌렸고, "용산참사 보도를 덮기 위해 군포살인사건을 적극 홍보하라"고 하는  정부이니 이 정도 수준의 통계나 지표 관리야 약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정보 관리 또는 조작을 통한 시장 왜곡 시도야말로 건전한 시장경제 발전을 위해서 가장 피해야 하는 일이다. 건전한 시장경제는 정확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까지 했지만, 정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국민들의 올바른 경제적 판단을 오도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현 정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경제 운영 능력으로는 일개 네티즌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니 실력으로도 형편없는 정부다. 이러면서도 말끝마다 ‘시장원리’를 내세우면서 하는 짓은 모두 ‘시장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기득권 챙기기로 가고 있으니 이 땅에 사는 국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이들에게서는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 기회가 오면 국민의 힘으로 확 갈아엎는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6. 09:07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분석 및 시사점’ 자료를 보면 주택을 집중적으로 구입하는 35살에서 54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은 2011년부터다. 또 노동생산성이 높은 30~40대 인구가 이미 2006년부터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15세에서 64세로 분류되는 생산가능 인구도 2016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우려되고 있다. 이 같은 인구 구조 변화가 주택시장에 가져올 영향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구 요인 단 하나만으로 주택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주택 수요 측면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엉터리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여전히 ‘1인가구가 급속히 증가해 주택 수요가 늘어난다’거나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순유입되므로 수도권 주택 수요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반박한다. 약 4분의 3이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인 1인가구의 실태를 생각하면 1인가구가 유효 주택수요가구가 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지난 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면 수도권 인구 순유입에 따른 집값 상승론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까?

 

이 글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주의사항을 먼저 말하고자 한다. 이 글은 수도권 인구 순유입 증가에 따라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글이다. 따라서 인구 순유입 변수 하나가 향후 집값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주의사항은 현재 일반인들 사이에는 ‘주택수급이 주택가격을 사실상 결정한다’는 인식에 관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는 그 같은 인식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이는 현재 국내 주택보급률이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므로 매매용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건설업계의 공급 부족론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를 내세워 건설업계는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투기를 조장해왔다. 또한 이 같은 논리를 통해 건설업체들은 자신들의 사기적인 고분양가가 수요 대비 공급 부족 때문에 생겨나는 정상적인 시장 가격이라고 합리화하는 한편 폭리를 취할 수 있는 매매용 주택을 계속 지을 명분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주택 수급 사정이 집값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90년대 초 1기 신도시건설 이후 집값의 침체로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것이 결국 2000년대 초반 집값이 뛰는 한 단초가 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총량적인 관점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에 의한 10~20% 정도의 대체 수요를 포함해 해당 시점의 주택 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집값 폭등이 순전히 주택부족 때문에 발생했고, 그러므로 지금의 높은 집값은 공급부족 때문에 빚어지는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은 한 마디로 터무니없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이 2002년 이후의 집값 폭등의 주요인은 정부의 정책실패와 은행권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 남발에 따른 투기 수요의 급증 때문이다. 만약 집값이 주택부족 때문만이라면,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90년대 중반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이 폭등했던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수도권 인구 순유입 추이>에 관한 아래 그래프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그래프를 보면 70~80년대에는 매년 수도권으로 약 30~50만명의 인구가 유입됐다. 이 같은 추세는 9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꺾여 외환위기 때인 98년 바닥에 이르렀다. 그러다 이후 월드컵 열기와 카드채 거품으로 경기가 좋았던 2002년 20만명대까지 회복됐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떨어져 지난해 경우 연환산으로 연간 5만 2000명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흐름을 보면 수도권의 인구 순유입은 전반적인 경기와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증감을 보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향적으로는 수도권으로 순유입되는 인구가 뚜렷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수도권의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증가 속도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인구 순유입을 서울, 경기, 인천으로 세분화한 다음 그래프를 살펴보자.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90년 이후 경기도와 서울의 인구 증감이 거울에 비친 이미지처럼 반대 방향의 진폭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90년대 이후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경기도권의 신도시와 공공택지 지구 등으로 서울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구 순유입이라는 관점으로만 한정한다면 서울의 주택 수요는 향후 전개될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 은퇴와 겹쳐져 늘어날 이유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경기도는 서울과 지방에서 동시에 인구가 유입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수도권 인구 유입은 과거처럼 수도권 주택시장을 뒤흔들 주요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위 그래프에서 2002년 이후 추세선을 보더라도 향후 수도권 인구 순유입 추이가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2008년 인구 순유입 인구(5만2000명)을 같은 해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 2.8명으로 나누면 1만8500여 가구 정도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근 몇 년 동안 수도권에서 매년 20만호 가까운 주택이 지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수도권의 순유입 인구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주택 정책 측면에서 본다면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리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수도권 인구의 과밀화로 수도권은 교통 혼잡과 대기 오염, 주택 난 등 각종 규모의 불경제 효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지방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웬만한 사업은 경제성을 갖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런 상태로는 한국 경제와 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도권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주택을 더 공급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국토의 균형적 발전체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같은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참고로, 지난해 주택 공급 호수를 보면 전국적인 주택 공급 물량은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주택 공급 물량은 2004~2006년 수준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부동산 붐에 편승한 뒤늦은 주택 공급과 분양가 상한제 실시를 앞둔 ‘밀어내기 분양’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2007년이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건설업계가 공급 물량이 줄어든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적어도 수도권의 경우 큰 폭의 물량 위축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2000년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국가들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 주택 공급이 대폭 줄어든 것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도권 주택 보급률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반면 위에서 보듯이 수도권 인구 순유입은 급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주택 공급 물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주택 공급 물량 감소로 2,3년 후 수도권 집값이 다시 급등할 것처럼 말하는 언론 보도는 무책임한 선동보도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주택 공급 추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될 때 다시 한 번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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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2. 13. 18:13

"지구촌 곳곳 몰아치는 자연재해---중국엔 가뭄, 유럽엔 강풍, 호주는 폭염과 폭우…."


2월 11일자 연합뉴스 보도의 제목이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호주 제 2도시 멜번에서는 약 100년만의 최대 산불이 발생했고, 중국에서는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1급 가뭄경보를 내고 인공강우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또 유럽에서는 폭설과 폭우, 강풍이 몰아쳐 험난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80년만의 겨울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실 화왕산 억새풀 태우기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도 이 같은 겨울 가뭄에 따른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이는 “이번 사고는 천재지변”이라는 창녕군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바싹 건조한 상태에서 억새풀 태우기 행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런 행사를 진행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번 참사는 ‘인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이상 기후들이 지구 온난화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필자도 솔직히 고백컨대 잘 몰랐다. 심지어 7~8년 전 한 신문사의 국제부에서 일할 때 ‘사상 최고의 폭염’ ‘사상 최대의 태풍 피해’ 등등의 외신 기사를 보고 옮기면서도 속으로는 언론의 과장 보도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거. 해마다 매번 최고이고 최대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 유학중이던 2006년 봄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미국에서 권위 있는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제임스 홀드런 교수가 수업 첫 시간에 한 말 때문이었다. “현재 전 세계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이고,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키는 바로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달렸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특히 수업 내용 후반부에 지구온난화의 충격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는 동안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수업 덕분에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10여권의 책을 읽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 앨 고어가 쓴 ‘불편한 진실’이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며 미국 대중들이 인식에서 ‘티핑 포인트’가 발생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같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가 버락 오바마 신임 미 행정부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에너지정책을 수립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같은 인식의 변화를 찾아보기 여전히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2002년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5160만 환산톤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아홉번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배출량은 90년부터 2002년까지 약 99.7% 증가했다. 배출량 상위 20개국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증가율 118.6%를 기록한 인도네시아만이 유일하게 한국을 앞섰다. 같은 기간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 증가율 16.4%, OECD 회원국의 평균 증가율 13.8%와 비교하면 얼마나 빠른 증가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강력히 비난하는 미국도 16.7%의 증가율에 그쳤고, 프랑스 (6.9%), 이탈리아(8.3%) 등 EU국가들은 그보다 훨씬 낮다. 또 우리나라 소득 수준 대비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4년 기준 한국의 ‘소득대비 에너지 사용량(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1인당 GDP로 나눈 값)’에서 한국은 0.05로 31개 OECD국가중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소득대비에너지사용량(0.05)을 100으로 환산할 경우, 일본은 36, 독일 69, 프랑스 71, 미국이 97로 나타나 선진국보다도 에너지 소비가 훨씬 많았다. 한국은 또 2003년말 기준으로 대체에너지 사용실적(443만6000 석유환산톤)이 총 에너지 사용량의 2.1%에 그쳐, 대체에너지 사용비중에서 31개 OECD 국가 중 30위다. 한국보다 대체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가는 헝가리뿐이었다. 한 마디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최대의 ‘반환경국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지구온난화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도 아니다. 여름철 게릴라성 폭우 및 폭염의 증가, 중국 네이멍구 지역 사막화로 인한 극심한 황사 현상, 소나무 재선충 확산으로 인한 소나무숲 고사, 생태계 혼란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등.


지구 온난화 현상의 하나로 한반도에서도 지난 30년간 봄철 습도가 5%나 낮아졌다. 이 때문에 산불 피해 면적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지구 온난화와 일정한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산불피해면적은 1980년대에 1만880㏊, 1990년대에 1만3975㏊, 2000년대에 3만5711㏊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4월에 일어난 사상최대의 동해안 산불은 9일 동안 서울 남산 78개에 해당하는 2만3794㏊의 임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전 19년간의 총 산불피해면적과 맞먹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 밖에도 대형 산불 2, 3, 4위가 모두 최근 10년 사이에 발생했다. 1996년의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면적 3762㏊), 2002년의 충남 청양 산불(피해면적 3095㏊), 2005년 낙산사를 태운 강원도 양양 산불(피해면적 973㏊) 등이다. 낙엽 등 가연물질이 쌓인 탓도 있지만 겨울철의 고온 건조한 날씨가 산불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2월 10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산불건수는 예년보다 50%, 지난해보다 9배나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지역적으로 가뭄이 가장 극심한 영남지방에 피해가 집중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올해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산불 위험시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세계 각국의 온난화 추세에 따른 산불 피해 확산과도 일치하는 흐름이다.


산불로 발생한 알래스카 아한대지역 숲의 소실 면적을 보여주는 아래 그래프를 보자. 


알래스카 아한대지역의 숲은 북아메리카의 북쪽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숲이다. 그런데 매년 이 숲이 산불에 의해 소실되는 면적은 1970년대 이래로 1990년대말까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해기온이 높아지고 토양 수분이 증발하면서 자연발생적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이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형산불 발생 횟수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해왔음을 아래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럽의 경우 80년대보다 90년대에 산불 발생 횟수가 줄어든 점은 예외다.)



 이처럼 최근 8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는 현상과 산불 피해의 경향적 증가 현상 하나만 봐도 지구온난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건설족의 수장’이자 ‘삽질경제학의 태두'인 이명박 대통령은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고 하자 10일 강원도 업무보고 현장에서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소규모 댐 건설 방안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국토부도 2001년부터 댐을 건설하지 않아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경북 군위 등 5곳에 대형 댐을 짓겠다며 여론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긴 말 하지 않겠지만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 댐은 불가능하다. 또한 댐을 더 지어 물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여전히 이 정부가 7,80년대 개발연대의 정책적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정부가 건설하고자 하는 댐은 대부분 상류지역이고 비도 적게 오는 지역이다. 수조원의 돈을 들여 댐을 건설해봐야 연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용수의 양은 연간 4~5억 톤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해당 지역들의 연간 강수량 등을 감안하면 부풀려진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2001년 당시 정부가 마련한 수자원장기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수자원 총량 1,240억톤 가운데 자연 증발(42%)하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31%)을 제외하고 실제 이용되는 물은 27%인 337억톤(27%)이다. 겨우 4억~5억톤의 물을 더 이용하자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수조원의 돈을 들이는 것이 과연 비용효과적인가.


돈을 안 들이고도 물 부족을 해결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12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뭄을 겪고 있는 태백시에서 태백시가 운영하는 리조트가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은 태백시민 5000명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 전국 각지에 지어진 골프장 등 각종 위락 및 리조트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물 값을 현실화하고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대형 사업장과 위락장에서 10% 정도만 아끼도록 하면 물 가뭄은 얼마든지 해소된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의 경우 염색 공정 기술 혁신으로 생산공정에서 드는 물의 소비량을 90% 가량 절약한 사례도 있다.

또 댐 지을 돈으로 가정용 빗물 저수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등 생활용수 공급원을 다양화하는데 써보라. 훨씬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면서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물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토건족 정부는 무조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서 해결하려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뭐든지 빌미만 생기면 토목사업으로 해결하려는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인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발현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문제 해결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족속들이니 이들은 확 갈아치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3. 08:33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최근 용산 참사현장에서 숨진 철거민들을 ‘떼잡이들’이라고 막말했던 박장규 용산구청장(74)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표현은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알 카에다식 자살폭탄 테러’ ‘세입자란 양의 탈을 쓴 폭력집단’이라고 비난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막말에 비하면 오히려 점잖아 보인다.

 

도대체 막대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 재개발 현장에서 쫓겨나고, 이에 항의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런 막말을 하는 ‘엽기적인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집권여당은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흑인들이 숨지거나 구타당하면 해당 지방정부의 수장은 큰 정치적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공식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이렇게 세입자들을 폭도로 몰고 용역 폭력 등은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법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독재국가에서 벌어지는 법의 이중잣대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소위 말하는 ‘건설족’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특권을 챙기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지 잘 모른다. 박 구청장은 이 같은 건설족 정치인의 대표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자체 수준에서 어떻게 건설업자들을 배불리기 위해 시민들의 세금을 축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될 수 있다.

 

우선, 아래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퍼온 박 구청장의 프로필을 보자.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임광토건 전무이사로 출발해 남양진흥기업(주) 이사, 동영개발(주)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92년부터 이듬해까지 용산구의회 초대 도시건설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도시건설상임위원장은 각종 관내 개발사업 정보를 알 수 있고, 그런 사업들을 주무를 수 있는 노른자위다. 각종 이권과 특혜, 떡고물 등을 노리는 시의원, 구의원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2000년 보궐선거에서 용산구청장으로 당선돼 내리 3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자신에게 운영권이 위임돼 있는 사회복지법인인 상희원을 통해 2004년 5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천 명의 유권자에게 총 8억8000여만 원을 제공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으나,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공직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처신을 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MBC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상희원은 관내 건설업체 38곳으로부터 18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건설 회사들은 구청장 권한인 재개발 인가나 설계 변경 등을 허락받기 위해 상희원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건설족으로서 그의 ‘활약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역시 용산구청 홈페이지에서  ‘용산 비전 2010’의 주요 사업의 상단 주요 메뉴를 보면 한강로 일대 개발, 국제업무지구 조성, 철도 지하화, 종합행정타운 건립 등 온통 개발사업 뿐이다. 물론 이 같은 개발사업들은 서울시와 중앙정부 등의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기는 하나 ‘건설족’으로서 박 구청장의 이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용산종합행정타운 건립과 관련해 건설족들은 어떻게 예산을 낭비해 건설업체들을 배불리는지를 보여줄 것이다.(아래 조감도 참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입찰제도에 대한 기초학습이 좀 필요하다. 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멈추면 당신은 여전히 건설족들에게 당하게 된다. 건설족들은 빠삭하게 알고 각종 이권을 나눠먹는 개발사업의 메커니즘을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기에 그들이 마음놓고 시민의 혈세로 파티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면 안 읽는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산구는 이 사업을 통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안 퍼줘도 되는 시민의 혈세 380억원 가량을 낭비했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설명을 시작해보자.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사용하는 입찰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가격 위주로 경쟁하게 하는 가격(최저가) 경쟁입찰과 적격심사제, 대안입찰, 턴키입찰(설계시공일괄입찰) 등 크게 네 가지다. 물론 수의계약과 같은 다른 방식도 있고, 민간자본유치사업(민자사업)도 큰 틀에서는 공공공사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 한국형 턴키 제도는 턴키 제도가 아니다?

 

이 가운데 특히 턴키 방식은 현재 예산 낭비와 건설업체간 담합구조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턴키 공사는 일괄입찰계약 방식의 하나로 도급자가 건설공사의 재원조달, 토지 구매, 설계와 시공, 시운전 등을 모두 마친 뒤 발주자에게 인계하는 공사를 의미한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턴키 방식은 주로 표준적이거나 반복적인 건축공사에 적용된다. 특정한 종류의 공장 건설에 전문화된 건설업체가 기존에 지은 공장과 비슷하게 지어서 발주자에게 납품할 때 활용되는 입찰방식이 턴키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 설계도면을 재활용하면 되므로 설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의 턴키 방식은 공기 단축 및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주로 발주된다.

 

하지만 턴키 제도를 원형 그대로 국내에서 실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설계와 시공, 감리 등의 업역(業域)이 완전히 분리돼 있어서 이를 통합해서 공사를 진행하는 턴키 방식이 사실상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또 표준적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표준도면, 표준시방서, 표준품셈 등 공사 표준이 잘 정리돼 있어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이 같은 표준이 아예 없거나 부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턴키 방식은 일반 건설업체가 설계회사에 용역을 주고 설계도면을 작성해 함께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질됐다. 한 마디로 기존에는 발주처가 설계회사를 통해 설계용역을 마친 뒤 시공사를 선정했던 것을 시공사가 설계회사와 짝을 이뤄 입찰하게 한 제도일 뿐이다.

 

재벌계 대형 건설사들은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하는 턴키 입찰제도의 특성을 활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합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통 전체 공사 예정금액의 3% 가량을 설계금액으로 쓰는데 이는 1,000억 원대 공사의 경우 30억 원을 선투자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사 수주에 대한 확신도 없이 수십억 원대의 설계비를 선투자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상위 1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거액의 선투자 비용이 일종의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같은 진입장벽을 활용, 이들 상위 대형 건설사들은 사실상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했다. 상위 6개 내지 10개 건설사들이 돌아가면서 공사를 수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적인 담합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턴키입찰 방식은 설계와 가격 점수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대형 건설업체들은 발주처 로비 등을 통해 설계점수 비중을 가격 점수보다 높이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끼리는 가격은 일정한 수준에서 철저히 담합하는 반면, 설계 점수를 통해서만 경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설계점수도 평가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주로 의존하고 평가점수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져 사후 전문가들 사이의 검증(Peer Review)이 불가능하다 보니 설계점수 평가위원들을 향한 탈법적, 불법적 로비가 구조화됐다. 이처럼 한국의 턴키입찰 제도는 원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돌연변이가 돼버린 것이다.

◆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공사

이제 서울시 지하철 공사 사례들을 통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2001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 7개 공구를 모두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7개 공구 가운데 5개 공구에는 2개 업체군, 나머지 2개 공구에는 3개 업체군만이 응찰했다. 참여 업체들은 대표입찰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공구에 공동도급자로 참여해 사실상 모두 한 건씩은 공사를 수주했다.

 

이처럼 7개 공구에서 20개 미만의 대형 건설업체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 공사의평균낙찰률은 98.3%였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이 모두 1,000억~1,6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공사들이었다. 만약 이들 공사들을 1,0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에 적용된 최저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2001년 당시 경쟁입찰제의 평균 낙찰률이 65%였으므로 낙찰률이 33% 이상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업체간 담합이 성행하기 전 같은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서울시 2기 지하철 6~8호선의 평균 낙찰률도 68% 정도였던 것에 비춰 봐도 30% 이상 높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공사 예정가격의 30% 이상이 사실상 담합에 의해 낭비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 총합이 9,400억원 정도이므로 3,000억원 이상이 7개 공구 입찰에서만 낭비된 셈이다.

 

이렇게 낙찰률이 높아진 이유는 사실상 담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각 공구별 입찰가격을 보면 서로 담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금액 차이가 적다.

<도표1> 지하철 9호선 1단계 입찰참여 업체별 입찰 가격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실제로 공정위는 이듬해인 2002년 7월 903, 909공구에서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 등 두 업체가 들러리 교차입찰 방식으로 담합한 사실을 밝혀내고 33억 여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33억 원은 두 업체가 해당 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추가로 얻은 추정 이익 약 795억 원(=2,650억×30%)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업체들은 담합이 매번 적발된다고 해도 이 정도 과징금을 무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현재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으로는 이들 업체들의 담합 유인을 절대 없애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업체들의 담합 사실은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과징금의 실효성은 훨씬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

이제 이 글의 종착지인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를 보자. 지난해 3월 입찰이 이뤄진 이 사업은 용산구청이 서울시 지원을 받아 126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발주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용산구 이태원동 34-87번지 일대 1만3497㎡의 대지 위에 지하5~지상10층, 연면적 5만6069㎡ 규모의 용산구청사를 짓는 사업이다.

 

그런데 아래 <도표2>를 보면, 이 공사에 입찰한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의 입찰금액이 불과 0.0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금액 1,200억 원대 공사에 두 업체의 입찰금액이 불과 2,50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담합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담합을 입증할 수가 없다”며 관련 당국들은 손을 놓고 있다. 개발업체 사장 출신인 박 구청장이 이런 메커니즘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도표2>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입찰 결과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쯤에서 재벌 건설업체 직원들은 초기 투입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니 원래 턴키입찰 공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도표 3>을 참조로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사업에 한 달 앞서 발주됐던 지하철 9호선 2단계 915~917공구 건설사업을 보자. 필자가 서울시에 재직할 때 업체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사업이기도 하다. 아래 도표를 보면, 낙찰률이 각각 60%와 72%, 86%로 9호선 1단계 때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지하철 9호선 1단계 사업의 평균 낙찰율 98.3%에 비하면 약 12~38% 가량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업체간 담합 여지를 최대한 없애고 실질적 경쟁을 유도한 효과다. 사실 916공구의 경우에는 사실 막판에 담합이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에 퍼진 소문이다. 그런데도 이 3개 공구에서만 9호선 1단계 때와 비교할 때 약 95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쟁입찰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적용해도 이만큼 거액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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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3> 지하철 9호선 2단계 낙찰 결과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위에서 본 것처럼 재벌 건설업체들과 일부 ‘건설족’ 정치인들은 이같은 이권들을 주고 받으며 강고하게 결합돼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건설족 정치인들은 내가 무슨 무슨 개발을 했네 떠벌리고, 시민들은 속사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 정치인들이 내 집값 올려주니 좋다며 선거에서 연거푸 찍어준다. 이 같은 상황은 꼭 용산구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기야 그런 행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의 탄생 아니겠는가? 이 정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줄이면서도 왜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 사업에 약 20조원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아는가? 경인운하 사업 또한 턴키로 발주한다는 것을. 하긴 제 버릇 남주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주요 사업인 청계천 사업, 동남권유통단지, 지하철 7호선, 심지어 단순한 주택시공사업인 은평뉴타운에까지 턴키입찰 방식을 도입해 시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낭비한 시민의 세금만 줄잡아 1조원 가량은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필자는 그가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고 만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그들이 가증스럽다. 이 모든 일들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 등 서민이 대규모로 쫓겨나는 과정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하는 것은 극도로 아까워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분양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들에게는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그냥 퍼주는 정부와 지자체를 온전한 정부, 지자체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현재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기득권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하는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단면 또한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2. 12. 10:52
 

이 대통령은 2월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쇼’까지 연출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듣고 '신빈곤층'을 한 번 찾아나서 보았다.


사례1:
2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를 따라 가니 컨테이너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 옆에는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니 양모씨(60)가 전기장판 위에서 한 눈에도 낡아빠진 홑이불 두 겹을 덮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단칸방에 발을 디디자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전해져 왔다. 싱크대 위에는 냄비와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이가 맞지 앉는 싱크대 아래 수납문에는 음식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역시 이가 맞지 않는 수납장들이 방 한 켠에 놓여 있었으나, 내용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창문쪽에는 야전용 군복 외투가 걸려 있었다. 양씨의 유일한 겨울 외출복이라고 했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인 전기 장판뿐이었다.

                     <사진: 양씨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 전경> 

                   

양씨는 매월 단 한 푼의 수입도 없다.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가깝다. 그나마 몇 달 전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후원 받은 60만원으로 왼쪽 눈을 수술해 볼 수는 있게 됐지만, 다른 쪽 눈은 백내장을 너무 오래 알아 수술해봐야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해 수술을 하지도 못했다. 양씨를 부양해줄 수 있는 가족도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양씨는 현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차상위계층도, 기초노령연금대상자도 아닌 완벽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도 한 때는 꽤 떵떵거리고 살던 지역 유지였다. 상당한 부농이었던 그는 한때 고양시체육회장과 새마을지도자, 어용소방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함께 살아오던 처가 도박에 빠지면서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5년 전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양씨의 전 재산을 차압했다. 처와 헤어진 뒤 빚쟁이들을 피해 집을 나와 전국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것은 2년 전. 당시 백내장으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더 이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막막해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일을 할 수 없어 친구들이 간간히 건네주는 용돈이나 약값 외에는 아무런 수입이 없었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과거 빚쟁이들에게 차압 당해 찾을 길이 없는 양씨 명의의 승용차 두 대에 대한 세금 및 과태료 체납액이 500여 만원을 넘지만 도저히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 체납액을 갚을 수 없어 자신 명의의 승용차 두 대를 말소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백내장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어 병원과 약국 신세를 질 일이 많지만,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 공제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구청공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현장 실사를 나오기도 했지만, 정해진 규정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그는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간간이 전달되는 쌀과 라면 등 생필품과 간간이 들리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건설업을 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도 이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 원래 컨테이너가 자리잡은 땅은 이종사촌 소유였으나, 이종사촌이 지난 9월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긴 뒤에는 계속 땅주인으로부터 그곳에서 나가달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잠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양씨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나오면서 이번 겨울은 그에게 아마 가장 추운 겨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2: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는 양씨뿐만 아니다. 일산동구 사리현동의 한 빌라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55). 그는 8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된 뒤로는 일을 할 수 없어 근로소득은 전무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여서 구청에서 30여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면서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2000년 무렵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9평짜리 집의 시세가 오르면서 수급권자 자격에서 탈락된 것. 그나마 인근 교회에서 매월 1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고 있고 장애인수당 7만원도 받고 있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셈이다. 한 장애인지원단체로부터는 가끔씩 교통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김씨는 하반신을 쓸 수가 없어 변을 본 뒤에도 혼자서 처리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변이 묻은 채로 그대로 있거나, 변이 묻은 옷을 오랫동안 세탁하지 못해 집안에는 늘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씨 아파트를 방문한 날에는 인근 교회의 봉사자들이 나와 집안 청소를 한 뒤인데도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큰 마음을 먹고 월 이용료 4만원을 내고 가까운 동사무소를 통해 생활도우미를 부르고 있지만, 부담이 작지 않다. 김씨는 아파트 시세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으니 팔 수도 없다생활도우미 비용만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례3:
권모 할머니(81)의 경우는 지난해 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된 경우다. 차상위 계층으로 일정 금액까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았던 권씨는 내년부터 이 같은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진2: 권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전경>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권할머니는 무너져가는 토담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실직 상태인 아들을 비롯해 자녀들의 생활이 모두 어려워 식비 정도만 도움을 받을 뿐 다른 생활비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으로 매월 8만원, 기초 경증장애수당으로 2만원을 받고, 구청에서 쌀을 지원받는 것 외에 한 복지기관의 주선으로 연결된 후원자로부터 분기별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권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이 몸에 7군데나 박혀 거동이 불편해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노인성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어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이번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되면서 그 동안 받아오던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직계 가족과 그 배우자의 수입도 차상위 계층 판정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얼마 전 둘째 사위가 승진하면서 연봉이 오른 때문이다. 사위의 승진으로 권할머니 생활이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규정 때문에 그는 그나마 누리던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해서 제대로 사회복지 혜택을 입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황모 할머니(66)의 경우를 살펴보자. 황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한 달에 39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단칸방 월세 10만원과 전기료와 수도료,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 8만~10만원을 매월 내고 나면 남는 돈은 매월 20만원 남짓. 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황씨는 병원비와 약값, 교통비,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늘 돈은 부족하다. 겨울이지만 연탄도 마음 놓고 못 때고, 이불도 변변치 않아 냉기를 가까스로 면할 정도로만 지낸다. 세탁기는 아예 살 엄두도 못내 엄동설한에도 찬물 빨래를 해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국내 복지제도는 아직 빈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나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제도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거나 확충된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현행 복지제도는 어떻게 보면 지원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과 융통성 없는 행정 체계 때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위에서 본 것처럼 많은 복지지원 대상자들이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기관, 자선단체, 복지관련단체 등 민간부문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 부문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간 부문 복지지원사업을 주도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사정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고양시 관내에는 시로부터 운영예산을 지원받는 사회복지기관이 5군데 있지만, 실제 관내 복지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5개 사회복지관 가운데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이 담당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은 모두 180여 케이스에 이른다. 그나마 올해 9월부터 일산동구 고봉동과 풍산동을 담당하는 거점센터를 따로 열어 40 케이스 정도가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180여 케이스를 담당하는 인력은 거점센터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복지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추가로 찾아내 지원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9월 일산복지관 거점센터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당 동사무소 등으로부터 잠재적 지원대상자 명단으로 건네 받은 케이스는 모두 25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거점센터 직원 2명이 40여 케이스를 상담해 지원하고 나니 지원 대상자를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거점센터 직원 김모씨는“200여건의 케이스들은 아예 상담도 진행해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도 못하고 있다”며 “고양시 전체로 볼 때도 5개 사회복지기관이 커버하고 있지 못한 빈곤층 대상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거점센터 직원이 내년 초부터 한 명 증원될 예정이지만, 이번에는 당초 고양시가 편성했던 거점센터 지원예산 1억 원이 7,000만 원으로 줄었다.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3,000만원 삭감된 것이다. 2,000만원 전후 수준인 담당 직원 세 명의 연봉을 제외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을 뿐이다. 결국 거점센터 입장에서는 민간의 독지가나 관련 자선단체의 후원을 요청해 필요한 복지지원 대상자와 연결해주는 일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래 <도표>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올해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 정부는 실질적으로는 올해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증액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장을 둘러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그나마 받던 복지 지원마저 끊어질 상황에 처한 빈곤층만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빈곤층을 발굴해 지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여론조작용 표현일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하는 '신빈곤층'이라는 레토릭은 마치 원래 빈곤층은 충분한 사회복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정말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다. '신빈곤층' 챙기기 전에 원래 있는 빈곤층들에 대한 복지지원이나 깎지 말고 제대로 챙기라는 말씀이다. 하긴 사회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고, 주변에서 그럴듯한 신조어 하나 갖고 오면 생색내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게 몸에 밴 이명박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게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 더구나 건설토목사업에 퍼붓는 돈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쇼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며 어린애와 통화하는 쇼는 보기가 정말 역겹다. 그런 대중용 이벤트로 열악한 사회복지 현실을 외면하는 자신의 태도를 포장하니 역겹다는 것이다. 아무리 쇼라는 것을 알고봐도 속내가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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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9. 2. 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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